송년한미우호의 밤 인사말

황 진 하
본 협회 회장
전 국회국방위원장

주한미국대사관 로버트 랩슨 대사대리님,
한미연합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람스 대장님 내외분,
전 국방부장관 김동신 장관님 내외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최병혁 대장님 내외분,
미국 대사관 공관원과 한미연합사 주요참모 여러분,
오늘 행사를 적극 지원해주신 애국 후원자 여러분,
내외 귀빈,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신사 숙녀 여러분!

2019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매우 바쁘신 시간에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성탄 축하와 함께 축복받으시는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렇게 덕담과 축복을 나누어야 하는 시기에 한반도 정세는 안타깝게도 변하지 않는 북한의 핵 무장 야망과 끊임없는 미사일 발사 시험 등, 불안 조장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전비 태세가 요구되는 절박한 시기이며 시험과 도전을 받고 있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본인은 먼저 이렇게 불확실성이 만연하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도 한미동맹 강화와 우호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계신 주한 미국대사관의 해리 해리스 대사님과 오늘 대사님을 대리해서 참석해 주신 로버트 랩슨 대사대리님의 노고에 대하여 높은 찬사와 함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로버트 랩슨 대사대리님을 큰 박수로 격려하고 감사의 뜻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불철주야 최고의 연합전비태세 유지로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시키고 있는 한미연합사령부 로버트 에이브람스 사령관과 그 장병들에게 최고의 신뢰를 보내며 그 노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로버트 에이브람스 사령관께 뜨거운 박수로 치하와 함께 성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한미동맹은 6.25 전쟁에서 함께 싸워 피로 사수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가져온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었습니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피로 맺은 혈맹이며 월남전에서 그리고 중동전에서도 함께 싸우며 그 관계를 더욱 다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에는 지속적으로 시련과 도전이 있었습니다. 불의의 사건 사고 때문에 시련을 겪기도 했고, 주변 정세의 변화와 한미 양국의 각각 사정, 시각차 때문에, 그리고 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적대세력들 때문에 시련 이상의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련과 도전들을 지혜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쌓였고 더욱 굳건한 동맹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들입니다. 북한 핵 문제가 그렇고, GISOMIA 문제가 그렇고,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그렇습니다.

– 북한 핵 문제는 반드시 CVID 식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 GISOMIA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합니다.
– 방위비 분담은 양국의 지혜를 모아 반드시 성공적으로 합의해야 합니다.

본인은 확신합니다. 현재의 시련과 도전도 반드시 성공적으로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 두 나라는 분명한 공동가치와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가진 70년간의 성공적인 경험과 역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러한 소중한 가치와 목표, 경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외칩니다. 70년간의 성공적 동맹 경험과 역사를 계승하자고, “같이 갑시다”를 외칩니다.

우리 한미우호협회는 여러분과 함께 앞장서서 이러한 노력을 해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여러분! 힘찬 박수로 화답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이 자리는 이러한 양 국민의 결의를 다지고 화합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함께 정담을 나누시면서 오늘의 행사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행사를 위하여 많은 분들께서 힘을 모아 주셨습니다. 특히 박정수 준비위원장님과 준비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Merry Christmas와 Happy New Year를 기원해드립니다. 그리고 “같이 갑시다”를 선창합니다. 여러분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

Welcoming Remarks
for Korea America Year-End Friendship Night

Robert Rapson, Chargé d’Affaires ad interim, U.S. Embassy Seoul,
Robert Abrams, Commander of UNC/CFC/USFK and Mrs. Abrams,
Former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Kim Dong-shin and Mrs. Kim,
General Choi Byung-hyuk, Deputy Commander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and Mrs. Choi,
Distinguished guests from U.S. Embassy and key staffs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Our active event sponsors and member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Ladies and gentlemen!

The eventful 2019 is drawing to a close. I would like to thank all of you for attending the tonight’s event to wrap up this year at a very busy time. I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blessed new year.

Ladies and gentlemen!
In this time of sharing virtue and blessings,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being threatened the peace by North Korea’s nuclear ambition and constant missile tests, so it is just the time that the strong alliance and combined readiness posture of ROK and U.S. is desperately required to cope with the situation and is also being tested and challenged in the same time.

First of all,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 appreciation and high praise for Ambassador Harry Harris of the U.S. Embassy to Seoul, and Deputy Chief of Mission Robert Rapson who is here as Chargé d’Affaires ad interim on behalf of the Ambassador. They are doing their best to strengthen and develop the ROK-US alliance, despite the prevailing uncertainty and turbulent situation.

Ladies and gentlemen!
Please give a big applause and thank to Robert Rapson, Chargé d’Affaires ad interim!

And at this time,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and utmost belief to Commander Robert Abrams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and his soldiers who are devoting themselves to deter North Korea’s war provocations and protect the peace and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by maintaining the utmost combined readiness posture day and night.

Ladies and gentlemen! Please send a warm round of applause to Commander Robert Abrams.

The ROK-U.S. alliance has been an unprecedented success in a world that has preserved peace and prosperity on the Korean Peninsula which we fought together and blood-pledged in the Korean War. The ROK-U.S. alliance is not just an alliance, but a blood alliance, and we have further strengthened our relationship by fighting together in the Vietnam and the Middle East War.

Nevertheless, there were many challenges and hardships because of the unfortunate incidents, and was challenged more than just hardship by the changes in the surrounding circumstances, the different situ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the antagonists who tried to drive it apart. But we have wisely overcome these challenges and hardships.

Thereby, we have become more reliable and stronger allies. The challenges and hardships we face now are also formidable. Those are the continuing North Korean nuclear ambition, the GISOMIA issue, and the Special Measure Agreement(SMA) issue, etc.

–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must be resolved in a CVID manner.
– The GISOMIA must be maintained.
– The SMA must be successfully agreed upon by the two countries’ wisdom

I’m confident that we will successfully overcome the current hardships and challenges. The reasons are the followings.

First, we have a common goal and value to protect free democracy to develop a market economy and achieve peaceful unification in this land.

Second, We trust our 70 years of successful experience and history.

Third, there is an absolute majority of the people who support these precious values, goals, and experiences absolutely.

We now constantly shout “Let’s go together” to keep our common values and goals and to inherit 70 years of successful experience and history.

W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will take the lead in making this effort with you. In the sense of determination, Everyone! Please give a big round of applause.

Tonight, we prepared this party to cement the resolve of the two peoples and to ensure unity. Please enjoy the tonight’s event, dinner, good company and performance.

I sincerely thank all the sponsors who have supported for tonight’s event. In particular, I would like to thank Chairman Park Jung-soo and all the members of the Preparation Committee for the event.

I wish all of you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Let’s shout “Let’s go together.” “Kachi-Kapshida!

Thank you.

 

 

송년 한미우호의 밤 인사말

손 경 식
본 협회 이사장

오늘 이 행사에 참석해 주신,
로버트 에이브람스 한미연합사 사령관님,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님,
마이클 빌스 미8군 사령관님,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님을 비롯한
신사숙녀 귀빈 여러분께 환영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준비하시느라 수고해주신 황진하 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9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나라에는 많은 사건과 변화 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우리 경제의 성장 추세가 꺾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좁게는 미중간 무역분쟁의 영향이 컸고 세계 경제의 위축 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투자가 활발히 더 일어나도록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둘째는, 전략물자 수출입에 관한 한일간의 분쟁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입 특혜국가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입 심사를 받아야 하는 백색국가로 지정하고, 이에 대한 항의로서 한국이 정보교류협정 “지소미아”의 효력을 중단시키려는 조치를 취하면서 촉발된 한일간의 불협화 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의 조치에 항의하는 뜻에서 일본제품을 불매하거나 일본 관광을 자제하는 기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이웃하여 생활 관습이 비슷하고 민간차원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 역시 머지 않아 해소될 것이라 믿습니다.

셋째는, 북한과 미국간 교섭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미간에도 방위비 협상 등의 문제가
예전과는 달리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 국민들이 걱정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것 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뢰를 기반으로 현명한 해법을 찾아나가리라 믿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60년간 굳건한 동맹국이었습니다. 한국동란 중 미국이 많은 젊은 이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수립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깊이 감사합니다. 우리 한국도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도와 싸웠습니다.

오늘날 한미관계는 군사적으로는 동맹관계요, 경제적으로는 활발한 교역상대국이며
정치문화적으로는 공동의 가치관을 갖고 국제무대에서 서로 협력하는 우호친선 관계 입니다.

더 나아가, 한미일 3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더불어 세계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한미양국은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모두 살펴본다면 다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러한 기본적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다소 불 협화음이 있더라도 서로 폭 넓은 이해와 신뢰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2019년이 성공적 한 해였기를 기원합니다.
다가오는 2020년 새해에도 모든 일이 잘 되고, 희망과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Welcoming Remarks for
Korea America Year End Friendship Night

Shon, Kyung Shik

Good evening ladies and gentlemen,
I would like to extend my most sincere welcome and thanks to General Robert Abrams, the Commander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General Byung Hyuk Choi, the Deputy Commander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General Michael Bills, the Commander of the Eighth U.S. Army,
Mr. Robert Rapson, the Deputy Chief of Mission to the U.S. Embassy in Seoul,
And many other distinguished guests attending tonight’s event.
I would also like to thank President Jin Ha Hwang for organizing and putting together this wonderful event.

2019 is coming to a close, and it has been a year filled with a lot of changes and events in Korea.

First of all, Korea’s economic growth has been slowing down. There are many reasons for this, including the trade dispute between the U.S. and China, which has had a huge impact. However, this phenomenon is mostly in line with the global economic downturn, and the government should be more considerate in terms of policy-making to promote investment.

Secondly, there is the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regarding the import and export of strategic materials. I am referring to the tension and discord caused by Japan removing Korea from its list of favored economic partners, with Korea taking steps towards withdrawing from the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in protest.

There has been a growing trend of Koreans boycotting Japanese products and refraining from traveling to Japan as a sign of protest as well. However, the two countries are so close to each other geographically and share a similar lifestyle, and economic cooperation and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wo countries are still ongoing in the private sector. I am sure this dispute will be resolved shortly.

Lastly, while negotiations are ongoing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Korea and the U.S. are having some difficulty over issues such as sharing of the defense costs. It is true that some Koreans are concerned about it. However, I am sure the two countries will reach a wise solution based on trust regarding this issue as well.

Korea and the U.S. have been firm allies for the past 60 years. The U.S. protected this country at the cost of countless American youths during the Korean War. We are deeply grateful to the US. Korea has also fought alongside the U.S. in Vietnam, Iraq and Afghanistan.

Today, Korea and the U.S. are strong military allies and active trading partners, and we cooperate with each other in the international stage with the same political and cultural values.

Furthermore, I believe that Korea, the U.S., and Japan must work together to establish peace in Northeast Asia and the rest of the world. Korea and the U.S is a very special relationship which has been no case at all throughout the history and today as well. In order to do so, we must be more understanding and trusting of each other, even if there may be some occasional discords.

Ladies and gentlemen,
Again, 2019 is coming to an end soon. I hope you all had a wonderful 2019, and I wish that 2020 is an even better. year filled with happiness and joy for everyone here tonight.
And I hope the Korea-U.S. alliance grows stronger than ever before in 2020.

Thank you very much.

 

송년 한미우호의 밤 축사

로버트 랩슨
주한미대사관 대사 대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 대사관의 부대사 랩슨입니다. 반갑습니다.

귀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영어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진하 회장님, 손경식 이사장님, 그리고 한미우호협회 관계자 여러분,
한미동맹을 기념하는 2019년 송년 한미우호의 밤 행사에 초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밤 자리를 함께하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워하신 해리스 대사님을 대신해서 여러분들께 인사말씀 전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이미 여러 번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좋은 친구이며 파트너입니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심(린치핀) 동맹국입니다.

한미동맹은 전장에서 형성되어 공동의 굳은 의지로 단련되었고, 한국과 미국의 육·해·공 해병대 군인뿐 아니라 외교관, 민간인 및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를 거쳐 더욱 깊어지고 강화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을 돌아보면 한미간 파트너십은 튼튼한 경제‧투자관계, 깊은 인적관계, 민주주의와 법치,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증진시키는 공동의 노력으로까지 확대되며 더욱 번성해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파트너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같은 주도적인 계획들을 통해 더욱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이는 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난 일년 반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에 우리는 북한과의 수십 년간의 교착상태를 깨기 위한 역사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병행하여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수립할 수 있는 조치들을 진행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계시는 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외교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준비태세를 잘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뛰어난 장병들이 매일 같이 이 준비태세를 훌륭하게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를 지키기 위한 장병 여러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한미연합 장병들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늘밤 지난달 평택에서 훈련 도중에 목숨을 잃은 젊은 미군 니콜라스 파네 핀토 상병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짧은 인생을 조국에 대한 봉사로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살다 간 그를 떠올리며, 우리는 다시 한번 자유는 결코 평화 시에도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한미동맹이 여러 가지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더라도 우리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 도전과제를 극복할 것입니다.

귀빈 여러분. 마지막으로 오늘 이 훌륭한 행사를 주최해주신 한미우호협회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미동맹에 대한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은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우호관계를 이어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역할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초청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같이 갑시다!

Commemoration Remarks for
Korea America Year End Friendship Night

Robert Rapson
Charge d’ Affaires ad interim, U.S. Embassy Seoul

Good evening ladies and gentlemen.
Permit me, in English, to begin by thanking President Hwang, Chairman Sohn, and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inviting me to this premiere gala event celebrating our alliance. I also like to extend best wishes from my boss Ambassador Harris who very much wished he could be here tonight as well.

You all heard this before. But it bears repeating. The United States has no better friend and partner than the Republic of Korea; America’s lynch pin, an ally in the East Asia region.

Ours is an alliance forged in battle. Tempered by our shared commitment. And deepened and strengthened by successive generations of ROK and U.S. soldiers, sailors, airmen, and marines as well as diplomats, civilians, and just plain ordinary citizens.

The last several decades had seen the flourishing of our bilateral partnership to include robust economic and investment relations, deepening people to people ties, and expanding joint efforts to promote democracy, the rule of law, and free and fair trade.

We are now also extending the reach of our partnership through initiatives such as our Indo-Pacific Strategy and Korea’s New Southern Policy, which will help to promote peace and prosperity throughout the region.

Over the past year and a half, under the leadership of President Trump and President Moon, we have made historic moves to break the decades long deadlock with Pyongyang. The United States remains ready to proceed, in parallel with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with steps to help establish an endur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as this audience knows all too well, while creating room for diplomacy to work, we must maintain readiness, And readiness is what both our terrific armed forces do so well on day-in and day-out basis. Thank you for your service that protects us all. How about a round of applause?

Tonight, I also like to take a moment to remember Specialist Nicholas Pene Pinto. A young U.S. service member who was killed in a training exercise in Pyongtaek last month.

In remembrance of his life, lost in service to his country, in the cause of security and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we are pointedly reminded that freedom is not free. Even in the time of peace, it is a struggle. And as our alliance faces challenges as it always has, we will overcome those challenges as we always do.

Ladies and gentlemen, let me close by thanking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holding this wonderful event. Your good works and dedication to the alliance play such a key role in maintaining close tie and friendship between our two countries. Keep it up.

Thank you again for inviting me to speak tonight. 같이 갑시다!

 

송년 한미우호의밤 축사

로버트 에이브람스 대장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 사령관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와 제 아내 코니를 오늘 이 멋진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이렇게 축사를 할 기회를 주셔서 한미우호협회와 황진하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한미동맹과 한미동맹을 통해 형성된 여러 친분관계, 그리고 금년 한해동안 한미우호협회가 행한 성과를 기념하고 축하는 자리입니다.

한미우호협회는 유엔사, 연합사, 주한미군사 장병들을 위해서 음악회, 세미나 친선행사 등을 계속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사들은 미국 장병들과 한측 주최자들이 함께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미우호협회와 후원자들로부터 받은 지원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우정을 계속 이어 나가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정이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가는 한 이러한 우정은 계속 지속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같은 지도자들과 한미우호협회에 있는 분들이 함께 한다면 한미동맹은 결코 무너질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주한 미군장병과 한국에 거주하는 그들 가족 2만 8천명을 대신해서 여러분들의 우정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보여준 우정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장병들 모두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위대한 우리 두 국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한미 동맹은 철통같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부대임을 자부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

Commeration Remarks for
Korea America Year End Friendship Night

GEN Robert B. Abrams
Commander, UNC/CFC/USFK

Thank you for inviting me and Connie to join you here this evening and giving me a chance to speak. General Hwang and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thank you for hosting this great event.

Tonight is a celebration of the ROK-US Alliance and the many friendships it has cultivated over many years. It is also a chance to recognize the great work done by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throughout the year.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has sponsored music concerts, seminars, and social events with United Nations Forces Command, Combined Forces Command, and U.S. Forces Personnel. All of those events are instrumental in strengthening the bond between American serivce members and our Korean hosts.

The support we receive from our committed partners and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is invaluable. It is the foundation for many of our past and present friendships.

These are friendships that have stood the test of time. They are friendships that will endure as long as we continue to stand side by side.

With leaders like all of you and friends such as those at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I am supremely confident that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lliance will remain unbreakable.

On behalf of the over 28,000 U.S. service members and families living here in Korea, thank you. Thank you for your friendship. What you do matters to them, it matters to me, it matters to our great nations. Because of you, the Republic of Korea-U.S. alliance is iron clad. And the most capable joint war fighting force in the world.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

 

한미동맹의 위기와 대응

이용준 전 외교부 차관보, 북핵담당대사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말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동안 한미관계는 한국의 민주화 문제, 인권문제, 주한미군 철수문제, 통상문제 등을 둘러싸고 가끔 큰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한미동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 당시 민주화와 인권 문제로 한미관계가 큰 홍역을 치를 때에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주한미군 전면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등장했던 카터 행정부도 의회의 반대에 밀려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미관계의 통상적 갈등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한미동맹 위기설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고, 이런 기류는 유럽 국가들에까지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에 대한 경시 풍조가 심각한 수준인 데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 역시 노골적인 친중, 친북 정책으로 미국을 격분시키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고 한미동맹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향후 이러한 양국관계 위기의 파장이 어디에까지 미치게 될지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가 현실화 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동맹관계 위기의 연원

과거 한미 관계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한국 정부의 친북성향 국내외정책으로 인해 한미관계가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갈등의 소재는 주로 대북한 경제원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대북한 정책을 둘러싼 이견들이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의 최초 정상회담에서 시작된 양국 간의 파열음은 그 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내내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미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깊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미 경외심으로 인해, 대북정책 관련 한미 간 불협화음이 양국관계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고 한미 안보협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었다.

한국 정부의 이념적 편향으로 인해 한미동맹 자체가 위기를 겪기 시작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5년간이었다. 그 기간 중 한미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정책 전반이 철저히 남북한 관계의 종속변수가 되었다.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은 자기부처 현안업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채널조차 없어, 외교안보 전반을 총괄하던 통일부총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형편이었다. 그 때문에 두 부처가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북한 핵문제 역시 그러한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한미 양국 사이에는 북한 핵문제, 대북 경수로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종전선언, 서해북방한계선(NLL),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남북경협 등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팽팽한 이견이 지속되었고, 주한미군 기지이전(LPP), 용산기지 반환, 평택기지 건설비,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작계5029, 아프가니스탄 파병, 이라크 파병 등 군사문제에 관한 마찰도 연일 계속되었다. 그 밖에도 북한 인권문제, 동북아균형자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등 온갖 외교 현안들을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무렵 노무현 정부가 좌파 지지세력의 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이라크 파병, 아프간 파병, 한미 FTA 체결 등 중대한 조치들을 단행함에 따라 양국관계는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분히 친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양국 간 갈등 고조로 인해 주한미군의 대폭 철수가 현실화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 친북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유지 필요성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그 후 9년여 만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능가하는 좌편향 정책으로 한미관계를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미래 자체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노골적 친북정책을 취했을망정 중국에 대해서는 의연했고, 박근혜 정부는 과도한 친중국 편향으로 인해 미국 조야의 강한 의혹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대북한 정책은 그와 상관없이 단호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노골적인 친북정책에 더하여, 박근혜 정부를 훨씬 능가하는 대중국 굴종외교를 전개하고 있어, 한미관계가 미증유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정책을 숨기거나 망설이는 기미도 없고, 양국관계의 파국을 완화하거나 해결하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반미적 색채가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친중, 친북 편향외교에 따른 한미동맹의 위기
(친중 굴종외교에 따른 위기)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 편향 정책으로 인해 한미동맹은 세 방면에서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첫째 위기는 미중 패권경쟁의 본격화로 냉전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미중 진영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현저한 친중국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을 분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의 차원을 넘어 점차 친미진영과 반미진영 간 대결,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전체주의 진영 간 대결, 세계 문명사회와 비문명사회 간의 대결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국은 북한 핵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문제, 한미 합동군사훈련 문제, 한미일 삼각안보협력 문제, 한반도 평화협정/종전선언 문제, 미사일방어 문제, 화웨이 제재문제 등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안들에서 대부분 중국 측 입장에 동조하고 있고, 중국이 반대하는 모든 국제적 활동에 불참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미중 쟁점현안 미국입장 중국입장 한국 정부의 선택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가입 가입 반대 가입 요구 창설회원으로 가입(박근혜 정부)
중국군 전승70주년 열병식 참석 참석 반대 참석 요구 박근혜대통령 참석(박근혜 정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강력 반대 영유권 주장 반대입장 표명요청 거부(박근혜/문재인 정부)
한미일 3자 안보협력/합동훈련 강력 희망 강력 반대 협력 회피, 사실상 와해(박근혜/문재인정부)
미사일 방어체제 설치 배치 희망 강경 반대 사드기지 가동불허, ‘3불약속’(문재인정부)
대북한 제재조치 해제 문제 해제 반대 해제 주장 중국/북한 입장 동조(문재인 정부)
북핵문제 해결 방식 일괄타결 단계적 해결 중국/북한 입장 동조(문재인 정부)
한반도 종전선언/평화협정 반대 찬성 적극 추진(문재인 정부)
한미 합동군사훈련 적극 희망 강력 반대 3대 합동군사훈련 폐지(문재인 정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문제 참여 요청 참여 반대 참여 거부(문재인 정부)
대북한 밀무역단속 합동해상작전 참여 요청 참여 반대 참여 거부(문재인 정부)
화웨이 제재문제 동참 요구 불참 요구 불참 입장(문재인 정부)

군사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은 남중국해의 광활한 영역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과 불법 점거에 항거하는 미국, 일본, 호주, 영국, 프랑스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불참하고 있고, 한반도 해역에서 북한 선박의 밀무역을 단속하기 위한 미, 일,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7개국의 합동해상작전에도 불참하고 있다. 한미일 3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실시해 온 합동해상훈련도 기피하고 있고, 미국이 군사보안 문제를 이유로 실시하는 화웨이 제재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정부의 이러한 친중적 성향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좌파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우파 정부인 박근혜 정부 때부터 사실상 시작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한국이 이미 미국 진영을 떠나 중국 진영으로 기울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이러한 한미동맹의 위기로 인해, 워싱턴 조야에는 친한파 인사의 씨가 말랐고, 한국의 동맹 이탈과 중국진영 편입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친북정책에 따른 위기)

한미동맹의 둘째 위기는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친북 편향적 성향을 띠게 됨에 따라 북핵문제, 대북정책, 군사안보문제 등 북한관련 동맹현안에 있어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과거 노무현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친북정책 노선이 추구되고 그에 더하여 친중 굴종외교까지 추가됨에 따라, 한미 양국 사이를 연결해 줄 최소한의 접점마저 상실된 상황이다.

이에 따른 미국 정부의 강력한 거부반응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은커녕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이로 인해 한미관계 악화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고, 주한미군 대폭 감축과 한미동맹의 와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는 2018년의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한국군의 전반적 방어태세 이완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고려연방제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이 나라 좌익세력에게 불감청고소원의 축복이 될지도 모르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다.

(한미일 삼각협력 파괴에 따른 위기)

한미동맹의 셋째 위기는 한국 정부가 반일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을 폐기하는 등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근간인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의 파괴를 주도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위기가 수면위로 부상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관제 반일민족주의 캠페인이 결과론적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을 파괴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김일성의 이른바 ‘갓끈 전술’ 개념에 따라 반일정책을 통해 삼각협력체제를 타파하고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 궁극적 의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 반일 정책 뒤에 숨겨져 있던 반미적 의도가 비로소 민낯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지소미아 파기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별다른 무마 노력을 기울이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바꾸거나 하다못해 그럴싸한 해명이라도 하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현재의 상황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별다른 이의나 우려가 없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한미일 협력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처음부터 한국 정부의 목표였다면 그것은 단순한 획기적 대외정책 변화의 차원을 넘어 한국이 건국 이래 소속되어 온 국제정치적 진영을 아예 송두리째 바꾸려는 원대한 전략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수립 이래 70년간 한국은 미국과 서유럽을 주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일원이었다. 수십 년간 아태지역을 포함한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이는 다양한 외교적 공동행동, 합동군사훈련, 다국적 연합군 등에 참여함으로써 그들과 각별한 유대를 맺어왔다. 그 구성원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과 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 등 NATO 회원국들로서, 국제 문명사회와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구성하는 핵심 국가들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이 돌연 방향을 급선회해 세계 공산주의-전체주의 진영의 대표격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결성한 ‘북방 삼각체제’ 카르텔의 문전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과거 6.25 남침의 주역이었고, 미국이 이란과 더불어 최대의 잠재적국으로 간주하는 나라들이다. 미국은 이러한 동맹국을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동맹국에 대한 의리가 없기로 정평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배신한 한국에 대해 보여줄 인내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한국의 동맹파괴 행위가 초래할 대가

한국 정부의 동맹파괴 행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무엇보다 먼저 한미동맹, 특히 주한미군 문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 유지비 총액에 해당되는 약6조원의 방위비 부담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무시하면서도 굳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원한다면 마땅히 주둔비용 전액을 ‘용병료’로 지불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것이 합의될 가능성은 없을 테니, 이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은 이 나라 외환시장과 대외신인도 및 외국인 투자에 큰 타격을 주어,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 한미관계가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와 평택기지의 효용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주한미군을 절대 철수하거나 대폭 감축하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좌파진영은 물론 우파진영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안일한 생각이다. 미국은 박정희-전두환 시대 이래로 여러 차례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시도했다. 양국관계가 긴밀하던 시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지상군의 대부분을 철수하고 주한미군을 공군 위주로 재편성 하려는 것이 수십 년 전부터 미국의 일관된 소망이었다. 그것을 외교협상을 통해 만류하고, 방해하고, 교섭이 실패하면 미국 의회와 언론까지 동원해 번번이 좌절시킨 것은 바로 한국 정부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한 주한 미지상군 철수라는 미국 국방부의 오랜 꿈은 아직 유효하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얼마나 열심히 반대를 할 것인가?

한미 동맹관계의 악화는 양국 간의 정보공유에도 대단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북한동정 관련 전자정보 공유 등에 있어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보다 미국의 적인 중국, 북한을 더 중시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과연 미국이 어떤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한국에 대한 최첨단 무기의 판매마저 중단될지도 모른다. 첨단 무기체계의 민감한 기술정보가 중국이나 북한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점을 미국이 어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한국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연합사령부와 별개로 유엔군사령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면 한국이 중국 또는 북한의 침공을 받아 전시상태가 될 경우 한국군 사령관이 한미연합군을 통합지휘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동맹국인 미국보다 가상 적국인 중국, 북한에 대해 더 호감을 보이고 있는 한국 정부가 임명하는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미국 정부가 과연 주한미군과 수십만 증원병력에 대한 지휘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의회가 이를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이완은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와 군사정책 전반에도 변화를 불러옴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군사적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안보체제에서 일본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리라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 이탈에 따른 공백을 메우려 미일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보다 강력히 지원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독도문제, 과거사 문제 등 한.일 간의 오랜 쟁점현안들에 있어서도 점차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인 일본 측 입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예상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반일 캠페인은 당초 의도와는 반대로 동북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군사적 역할을 확대시키고 한일 현안에 관한 일본 정부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가 현재 직면한 한미동맹과 국가안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백하고 간단하다. 현재의 모든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들이 그 핵심이다. 첫째, 대중국 굴종외교를 종식시키고 미국의 동맹국으로 완전히 복귀해야 한다. 둘째, 시대착오적인 종북 정책을 중단하고 북한 핵문제와 여타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 및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외교적 공조를 재개해야 한다. 셋째,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여 휴전선 일원에서의 대북한 감시, 정찰, 방어훈련, 심리전활동을 재개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넷째,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의 조건 없는 연장과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통해 한미일 삼각안보협력과 합동해상훈련을 복원해야 한다. 다섯째, 태평양 지역에서 실시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합동해상훈련과 합동작전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한 일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상의 5개항 조치는 그간의 비정상적 정책을 원점으로 복구시켜 정상화시키는 조치들이며, 국가안보의 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해야 할 5개의 추가적 대응조치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섯째, 상주의 사드 기지를 즉각 가동하고 추가적 사드 포대 도입과 저고도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체제를 전국적 규모로 배치한다. 일곱째, 미사일 주권을 포기하는 대중국 ‘3불약속’을 폐기하고, 북한 핵미사일의 방어를 위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과 연계된 고도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한다. 여덟째, 북한의 어떠한 재래식 군사공격도 미국의 도움 없이 능히 격퇴할 수 있을 만큼 우월한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해 최단 시일 내에 대규모 군비증강을 실시한다. 아홉째, 자유민주주의 우방들과 협조 하에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개선 및 개혁개방을 위한 압박외교를 전개한다. 열째, 북한에 대한 핵억지력 확보를 위해 독자핵무장, 미국 전술핵 반입 등 가용한 방안을 국가차원에서 논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여타 조치들의 신속한 이행을 지연시키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상 열거한 열 가지 조치들 중 문재인 정부 하에서 실현 가능한 조치는 단 하나도 없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 이러한 조치들의 필요성을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부에 대해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둘째,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가 현 정부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을 여러 경로로 미국 정부에 알림으로써 미국 정부가 한미동맹에 대해 졸속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미국 내 여론을 환기시키는 일이다.

중국에 줄 섰다가 맞게 될 한국의 미래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남북군사합의·지소미아 파기 등 현 정권 외교·안보 의문투성이
미국 멀리 중국 가까이전략은 한미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
중국과 손잡고 성공한 나라 없어인접국 ‘1GDP’ 3분의 1

정부 여당의 ‘중국 편향’이 심해지고 있다. 최근 부산시 여러 곳에 내걸렸던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경축’ 현판은 그 작은 징표다. 중국 공산당의 존재는 수도 서울의 시의회까지 들어왔다. 지난달 말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중국 건국 기념사진 전시회는 공산당 정권 수립과 경제 발전을 찬양하는 사진 160여 장으로 채워졌다. 6·25 때 이 땅에서 14만 명의 젊은 피를 흘린 미국을 위한 경축 행사는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서울시의회가 국군에게 총을 쏜 중국에는 장소를 내주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중국 관련 경제 포럼에선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리더십’ ‘한·중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이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이 포럼에는 설훈, 김두관, 정동영 등 범여권 실세 의원들이 참석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여당 정치인들은 이제 ‘미국을 대체할 중국’과 ‘새로운 한·중 관계’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안민석 의원이 “한국이 북·중과 연대하여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욱일기의 반입을 막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취해온 의문투성이의 외교 안보 조치들 역시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거기엔 ‘친중(親中) 전략’이 숨어있다. 환경영향평가를 핑계로 미룬 사드 정식 배치, 안보 역량을 약화시킨 남북 군사 합의, 한·일 간 지소미아(GSOMIA· 군사 정보 보호 협정) 파기, 한·미·일 안보 협력 대신 중국 포함 다자 협력 추구 등은 한미(韓美) 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중국에 이로운 조치다. 문 정부 외교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는(원미친중;遠美親中)’ 전략이다. 그 목적은 북한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식 연방제 통일을 하는 데 중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에 미군이 있는 한 통일에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이므로, 문 대통령은 통일과 미군 철수를 함께 추진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결단의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

한국 좌파 정치권은 ‘연방제 통일’이야말로 7,500만 한민족이 ‘분단 체제’를 끝내고 강대국 앞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대전제라고 본다. 이 목표를 위해 ‘친중반미(親中反美)’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청와대가 북핵 문제에 작은 돌파구라도 열리면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에 총력을 쏟을 태세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성과를 동력으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방제 개헌(改憲)에 다가선다는 계산법이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것’이 문 정부가 꿈꾸듯이 남북한 공동 발전과 평화통일로 가는 길일까? 우린 장밋빛 미래 대신 리스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이탈해 북·중·러 삼각 체제에 편입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한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받을 충격은 1997년 IMF 위기 이상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가 예상되면 연방제 통일을 우려한 국제 자본이 한국을 이탈할 것이고 주식과 원화 가치는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부자들이 해외로 떠나면 부동산 시장도 위험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제외되면 수출 길은 급격히 좁아진다.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 실업자는 급증하고 청년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금융기관 파산으로 수십 년 부어왔던 개인연금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좌파가 꿈꾸는 것처럼 북한 개발 붐이 일어나기도 전에 한국 경제부터 무너질 수 있다.

또 한미 동맹을 버리고 연방제에 합의한 한국은 장차 북한과 대등하게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자국의 군사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정치 체제를 강요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말처럼, 핵 무력을 가진 김정은 일인 독재 체제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짓누르게 될 것이다. 말이 ‘평화적 연방제 통일’이지, 북한 주도의 흡수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란 든든한 친구를 버린 한국은 중국 관계에서도 대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리란 보장이 없다.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중국은 한국에 종속과 굴욕을 강요할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과 손잡아서 성공한 나라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14국 중 러시아를 제외하고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14국의 1인당 GDP 평균은 3,064달러에 불과하다(그래픽 참조). 캄보디아와 미얀마 베트남은 마오(毛) 사상 영향으로 내전과 학살에 시달렸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협력한 국가들은 지금 엄청난 빚에 신음 중이다. 북한 대외경제성 관리조차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은 잘사는데, 중국과 동맹 맺은 우리는 못산다”고 하소연하겠는가. 중국 땅 끝에 위치한 한국이 3만달러 수준에 오른 것은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을 버리고 ‘중국 줄’에 서는 선택은 지난 70년간 우리가 누려온 자유 민주와 풍요의 정치 경제 구조를 근본부터 파괴하는 일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은 자유민주 정치가 가능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힘이 미치는 곳엔 감시와 억압이 있을 뿐이다. 지금의 위구르 지역과 홍콩을 보라.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 위에서나 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의 ‘친구’지만, 중국은 ‘친구’가 될 수 없다.

* 본 칼럼은 조선일보 동북아시아 연구소장 지해범씨가 조선일보(‘지해범의 아웃룩; 2019년 10월 9일)’에 기고한 글을 본 협회지에 옮긴 글입니다.

내가 느끼는 이 시대의 한미동맹

이승복
아시아투데이 전략기획팀장
본 협회 청년위원장/편집위원

세상이 온통 시끄럽기만 하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개혁 당해야 할 사람이 장관이 되고, 이를 두고 분노해서 나온 두 갈래의 집회의 모습에서, 나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시대이지만 해방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이 투영되고 있음을 짐작해 본다.

급기야는 오늘 여자 대학생들로 구성된 시위가 미대사관저의 담장을 넘어버린 날이다. 현행범을 두고도 여자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현장 조치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이 또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찰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하다. 나중에 추행이나 과잉진압에 대한 소송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 그 순간 법의 수호자가 아닌 철저히 직장인으로서의 모습으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제정신의 모습들인가라는 강한의구심을 갖게 한 날이다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책으로만 배우고 단 한 번도 실천하려 애쓰지 않은 기성세대와 그 내용마저도 목적을 위해서는 과감히 변질 시켜버리는 일부 집단의 잘못된 인식에 따른 결과가 너무도 참혹하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
70년의 역사 속에서 건국, 지원, 분단, 전쟁, 국방, 경제발전 그리고 동북아 우방의 중심으로 함께 해온 역사가 어느 날 갑자기 선이 아닌 악, 평등이 아닌 불평등으로 규정되어지고 그렇게 이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라는 담장아래서 우리가 받은 혜택을 주장하는 사람은 순간 제국의 앞잡이이며, 분단의 책임자이며, 소위 늙은이들의 한풀이 주장이라는 메아리가 그냥 덮어버린다. 이에는 논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미국의 압제와 영향력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논리는 얼핏 듣는 순간 매우 그럴싸하다. 이제 우리가 경제 강국이 되었고, 세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있으며,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에 우뚝 서 있는 이러한 힘이 있음에도 대국의 힘의 논리에 굴복한다는 것 자체가 사대주의이며 이제는 우리가 자주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들은 정말 멋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렇게 잘 산다하여 방위분담금 올리겠다고 하니 도둑놈이라 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받다가 갑자기 올리니 이는 우리를 무시한 처사이기에 도둑놈 심보라 한다. 우리가 국방비리만 잘 관리해도 그 정도의 군사력은 갖춘다는 논리로 또 포장해 버린다. 그리고 이참에 아예 나가라는 주장도 한다. 이 또한 그냥 들으면 대단히 정의롭고 애국심에 불타는 좋은 이야기로 들린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지금 세대에는 들리는 대로만 인식되어진다는 것이다. 논리고 주변 상황을 볼 것 없이 주전론은 애국자이고 주화론은 매국노로 평가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지성으로 둔갑한 채 활개 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대는 먹고 살기 힘들다. 미국의 보호아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제품을 수없이 실어 날랐던 초호황의 단물을 마신80년대의 세대와는 달리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며 달려와도 직장 잡기 어려운 고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호황의 시대에 일자리가 넘치고, 무엇이든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꿈의 시대를 살면서 꽃길만 걸어 온 배부른 선각자들께서 그야말로 밥 잘 먹고 배설하는 것들이 이 시대를 주도하는 주장이 되어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이러한 기득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미국으로 도움 받은 최고의 국방 상황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초호황의 경제 혜택을 받은 줄을 모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이것이 바로 잡힐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미국의 존재와 한미동맹이 무언지도 잘 모르고, 동맹이 균열되었을 때의 모습들은 전혀 모르고,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반미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자제분들은 고귀하게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시민권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그 배설과도 같은 요설에 그냥 휘둘리고 있으며 ‘ 이정도 사는 데 미국 없어도 되잖아’라는 참 편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도 우리를 혈맹이며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미국 공화당 내의 한반도 담당 상원의원들 사이에서의 기류는 한반도내에서의 한국이라는 정부의 인식과 역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미 상원의원 코리 가드너와 한미동맹관계에 대해 의견교환을 나누고 있는 필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충돌이라고 멋들어진 표현은 내게는 관심사는 아니나 미국이 멀어지면 좋아할 것은 중국과 러시아이며 가깝게 있는 대국의 힘의 논리에 눌리게 되면 고려, 조선조 내내 힘없이 누려 지낸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해 본다

힘에 의해 나라 잃고 설움 당하고, 총칼 앞에서 피의 항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연 한번 잃은 주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면 답은 자명하다

대국에게 기대고 종속적으로 살자는 뜻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최고로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북한도 이미 중국의 경제력 앞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힘의 논리 앞에는 명분도 필요 없다. 자국의 이익 앞에는 어떠한 선과 악이 없다

전쟁나면 UN이 도와줄 거고 국제법으로 해결될 거라는 생각,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동북아의 균형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상상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름을 빨리 인식하고 잘못된 정책과 방향에 대해 이제는 국민들에게 정확이 알리고 수정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권력에 취해 있는 자들의 문제인식의 한계가 있고 언론의 행태도 큰 문제가 있다.

시대정신에서 도외시 되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어쩌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해야 재정비가 가능하리라는 위험하고 서글픈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때는 기존의 동맹의 개념과는 다른 철저한 사업적 방식의 관계유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 에이 설마 뭐 그 정도까지야 하겠어. 그렇게 우리 국민들이 우매하지 않아’라고 자위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있다. 정말 불과 3년도 채 안된 시기에 이렇게 북한스러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는 분명히 위험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너무도 잘 사는 나라에서 성장 해온 터라 위기감이 많이 부족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현장에서 취재하다보면 인식의 변화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집 사는 데 은행에서 돈 좀 빌리려는 데, 좋은 조건으로 우호적이며 오래 거래한 은행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출 없이 한 번에 집을 살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당연히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 은행과 거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이자가 좀 밀려도 집이 경매로 안 넘겨진다.

내 자산 상황을 잘 아는 오래된 좋은 은행을 두고 자꾸 신규 은행과 계좌를 만드는 것이 과연 얼마나 유리한지는 위기 상황이 닥쳐봐야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 국가경영이라는 중요한 명제에 있어 감정과 선동이 아닌 냉정한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중요한 시기이다

자칫하면 비오는 날 우산 뺏기고 거리로 나아가 앉을 수도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상황이다. 한미동맹은 가난한 집안에게 잘 살라고 무상 임대도 해주고, 일부러 납품도 받아주고, 조금 위험하면 아들도 보내주고, 그렇게 좋은 은행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어렵게 설명하고 거창하게 설명해 봤자 인터넷시대에 전자사전으로 공부한 이 시대정신에는 맞지 않다

한미동맹,
그 가깝고도 뜨거운 마음이, 이제는 어렵고도 먼 길을 돌고 있다. 혼돈과 갈등의 시기에 지켜가야 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이제는 더 많이 전도하고, 포교해야 한다. 종교처럼…

한국전쟁 초기전투와 미군의 값진 희생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평화공원 개장을 환영하며

최상진
수필가, 본 협회 편집위원

폴과 요셉

폴(Paul)과 요셉(Joseph)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 규수의 미 육군 캠프인 캠프 우드에서 만났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두 사람은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젊음의 의욕이 넘치는 가운데 훈련 중 이었지만 승리자의 일원으로 꿈같은 이국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생한지 6일째인 1950년 6월30일 출동명령이 발동되고 7월1일 이다츠께 공항에서 4대의 더글러스 C-54 수송기에 분승한 그들은 스미스 특임부대의 일원으로 8시45분 부산에 도착한 후 오후 8시경 기차로 대전을 거쳐 오산북쪽 죽미령 언덕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나의 친구 Paul에게

– 중략 –

7월5일 오전 8시 피할 수 없는 전장의 불꽃이 타올랐어.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철수명령을 받았고

나는 폴이 있던 언덕으로 단숨에 달려갔지.

포화 속으로 탈출구를 찾으며 언덕을 올랐을 때

참호 속에서 웃고 있는 폴을 발견했지.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필립모리스 담배 하나를 반으로 잘라 나누어 피웠지.

진지에서 적들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참호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어.

산마루 보이는 적군을 향해 사격을 시작할 때

폴은 적의 포탄에 머리와 가슴을 맞았지

끔찍한 고통 속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전우, 그 죽음을 지키는 나

신이시여!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운 시련의 고통을 주려 하십니까?

친구의 눈물과 죽어가는 몸부림을 보며 가장 소중한 벗을…

친구의 창백한 얼굴엔 죽음의 가면이 드리워져 있었어.

나의 소중한 벗이 들이쉬는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네.

– 중 략 –

폴, 내 소중한 친구야

너를 위하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신이 나를 데려가는 그 날까지 영원히 너를 위해 기도할 뿐…

7월5일 첫 전투에서 전사한 소중한 친구 폴을 생각하며…

– 1995년 6월 Joseph A. Langone

초전(初戰), 오산 죽미령 전투

적의 진전을 지연하라!

극동사령부(사령관 맥아더)의 작전명령 1호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화하여 지연전 수행부대를 북쪽으로 전진시키고 현재 서울에서 수원으로 남하하고 있는 적과 대치상황을 유지하면서 적의 전진을 지연시킬 것.” 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의사결정 과정은 전광석화 같았으나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남하하는 북한군의 파죽지세 공세를 막을 수 없었다. 유엔 안보리는 불과 7일 동안 1차 결의안으로 ‘북한군의 침략중지와 38선 이북으로 철수 할 것’을 요구하였고 2차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유엔의 이름으로 모든 지원을 제공 한다’는 결의안을 가결시켰지만 이미 서울은 함락되었고 대전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유엔군 파견의 합법적 절차를 거친 유엔은 1950년 7월5일 지연특공대로 미 제 8군 제 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와 제 52야전 포병대대가 주축이 된 540명의 스미스 특임부대를 선정하였다.

‘7월 5일 오전 7시, 수원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 모습이 드러났다. 8시 16분 첫 사격을 시작으로 스미스 부대는 포탄을 쏘아대며 공격하였지만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약 10km에 달하는 긴 행렬의 북한군 트럭과 보병이 나타났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댔고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북한군이 스미스부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특임부대는 오후 2시 30분 퇴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임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여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 역시 약 5,000명 중 127여 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해설 인용)

죽미령 전투는 미군과 북한군이 첫 격돌한 전투였고 상황은 군사력 10 대 1, T-34 전차포와 105mm 곡사포의 대결로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꽃다운 나이의 조셉도 생전 생각하지도 못한 이국땅 낯선 곳 죽미령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죽미령 전투에서 미군은 죽음으로 임무를 수행하였고 미군이 지킨 6시간 15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위치에 있는 유엔 참전국들도 전쟁에 대한 파괴와 염증은 패전국과 마찬가지였다. 유엔이 결성되었지만 집단안전보장 체제 가동을 위한 합의와 결정, 또 자국 군대 파견의 절차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반면 전쟁 당사자인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국과의 교전을 원치 않았으며 만약 미국의 참전한다 하더라도 주력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끝장내려는 속셈인 만큼 전략은 오직하나 속전속결 이었다.

일본의 맥아더 사령관은 6월29일 한국전선을 직접 시찰한 후 지상군파견을 결심하였다. 미군은 죽미령 전투를 통해 상대에게 미군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전쟁의 성격과 상대의 강약을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급조된 스미스 특임부대 만으로 대처한 북한과의 초전 죽미령 전투는 패전으로 끝났고 후속부대인 미 제 24사단 제 34연대가 구축한 오산의 후방 평택-안성 저지선마저 북한군의 파죽지세 공세에 밀려 천안 남쪽 공주 지역까지 철수한 미군은 7월8일 금강 유역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반면 미군참전으로 남진속도가 늦춰진 북한군은 미 공군의 공습으로 전력은 다소 약화되었지만 대대적 낙동강 공세를 준비하고 미군은 주력부대의 이동과 공군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전선이 다소 안정된 가운데 수도 서울 탈환을 위한 9.15 인천 상륙작전을 구상한다. 소중한 시간을 더욱 소중한 목숨으로 지연시킨 죽미령 전투의 6시간 15분은 비록 패전이기는 하나 한국을 구사일생 방어해준 골든타임 이었다.

특임부대장, 스미스 중령(예비역 준장)

그는 1916년 5월 7일 미국 뉴저지 주 렘버트빌에서 출생하고 1939년 뉴욕의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찰스 비 스미스 중령은 2차 대전 시 일본과의 과달카날 전투에서 세운 전공으로 한국전쟁의 구원투수로 오산 죽미령 전투에 투입되었다. 1975년 7월과 1987년 7월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오산 죽미령 전투 전몰장병 추도식 및 유엔군 초전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인터뷰에서 “저는 스미스 특수 임무부대가 북한 공산군의 공격으로부터 세계평화와 한국의 안보유지에 작은 공헌으로 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계속 치러야 할 대가는 ‘힘과 경제 그리고 헌신’이라는 것을 항상 가슴깊이 새겨두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2004년 5월 27일 88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대한민국을 지켜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공원 개장

오산의 북쪽에 자리 잡은 죽미령(竹美嶺)은 글자 그대로 대나무가 아름다운 고개 마루이다. 오산 평택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교통이 발달되어 평시에는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곳이기는 하나 환란 시는 항상 아비규환 전화(戰禍)의 현장이었다.

1955년 7월5일 죽미령 전투 5년 후 미 제 24사단 장병들이 참전용사 540명을 기억하는 540개의 돌을 쌓아 (구)유엔군 초전 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1982년 맞은편 둔덕에 (신) 초전 기념비를 건립하고 2013년 유엔군 초전 기념관을 정식 개관하였다. 위도 37도의 평택-안성-원주-삼척線은 한국전쟁 시 3차례 전장(戰場), 즉 1950년 7월의 북한군 남하,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한군 퇴각, 마지막으로 1951년 중공군 1차 춘계공세의 한계 저지선으로 혹독한 전란을 겪었고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오산, 평택, 안성은 육로교통의 대동맥으로 남해와 서해를 통한 외적의 통로였고 격전지였다.

또한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도 수많은 내전과 피난민들로 고통을 겪은 이 지역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 오산은 미군의 초전지역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에 대한 열망과 6.25 전쟁의 올바른 이해와 오산 죽미령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 위해 현재 초전기념관 부지에 약 6만3천 평을 추가 매입하고 182억 원을 들여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공원’을 조성, 11월 초 개장을 앞두고 있다.

6.25 초기전투와 미군의 고귀한 희생

6.25전쟁 발발에서 천안전투에서 24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가 될 때 까지 국군에 대한 기록이나 무용담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해방 후 군정종료와 함께 1949년 6월30일 남한 주재 5만의 미 지상군 전투 병력이 철수했다. 군정 당시에도 소련과 북한은 끊임없이 미군철수를 주장해 왔고 비밀리에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이 철수하고 만 1년 후 6.25전쟁은 발발하였지만 한국군(국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지켜줄 군대도 무기도 없었다. 만일 북한군이 T-34 전차부대와 같이 제공권을 압도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전쟁은 10일 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끔직한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초기전투에 투입된 미군들은 인간방패로 적의 탱크를 저지하였고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다.

본지(영원한 친구들)에서는 이미 제 232호(오산 스미스부대 추모비를 다녀와서; 본지 편집위원 김봉주/2019년 9월호), 제 242호(개미고지전투 미군장병 전몰추모비 답사; 본회 사무국장 채연석/2018년 12월호) 통해 미군의 초기전투와 참전비 답사기를 게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맹방으로 한미동맹의 초석이 된 미군 장병들의 헌신을 기린바 있다.

참전비 참배의 목적은 그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함이다. 준비된 군대와 무기로 남침한 70년 전의 북한과 핵으로 무장한 지금의 북한은 힘의 논리로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다. 상황은 그 때와 유사하게 전개되고 좌편향의 종북세력은 상대의 평화공세에 동조하여 정신적, 군사적 무장을 해제시키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는 다시 기록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국민과 정치인들은 이 땅에 부국강병과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만이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한미동맹의 위기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대한민국의 안보는 크게 ① 한미동맹(국군과 주한미군) ② 국정원 등 안보수사기관 ③ 국민의 안보의식이라는 3가지 축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보의 3대 축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안보의 핵심 축이자 강력한 전쟁 억지력(deterrence)인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이의 근본 원인은 북한의 대남전략(對南戰略)에 부응하는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 체계

북한의 대남전략을 이해해야 한미동맹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對南戰略)이란 김씨 집단의 정권 목표인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전조선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남한을 향해 전개하는 모든 실천적인 행동지침을 말한다. 따라서 대남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이른바 ‘전조선 혁명’ 전략을 파악해야 한다.

북한의 전조선혁명 전략은 크게 남조선혁명 단계와 조국통일 단계로 구분되는데, <도표>에서 보듯이, 1단계(당면목표, 남조선혁명 완수)인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단계와 2단계(최종목표: 적화통일)인 남북합작을 통한 사회주의혁명 단계가 그것이다.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은 북한의 남한사회 성격평가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한국 사회를 미국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식민지사회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해방’이란 남조선혁명을 위해선 먼저 남한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미 제국주의(주한미군 및 미 대사관 관료 등)를 남한 땅에서 축출하고 남한민족의 해방을 이룬다는 의미이며, ‘(인민)민주주의혁명’이란 미국의 대리통치정권이며 독재정권이라 규정하는 남한 정권을 남한 인민의 힘으로 타도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체제인 인민정권(민족자주정권이라 표현)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해방은 ‘미제축출=주한미군 철수자주화’를,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남한정권 타도 후 인민정권 수립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어 북한은 2단계로 남북합작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을 진행시켜 이른바 전조선혁명을 완성한다는 전략이다.

<도표1> 북한의 전조선혁명 전략

위 전략은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에서 체계화된 것인데 김정은 정권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 김정은은 제4차 당대표자회(2012)와 제7차 당 대회(2016)에서 당 규약을 수정했으나, 이른바 남조선혁명전략인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노선을 그대로 채택한바 있다. 대남전략에 입각한 김정은의 대남통일과제는 2016년 <제7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서> 중 ‘제3편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에 잘 집약되어 있다.

김정은은 제7차 당 대회 연설을 통해 ① 우리 대에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 ② 조국통일노선은 조국통일 3대헌장에 전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③ 북과 남은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는 위에서 연방 국가를 창립해야 한다. ④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평화보장과 연방제 실현, 이것이 조국통일3대헌장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당의 투쟁방침이다. ⑤ 이를 위해 “대조선적대시정책 철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남조선 침략군대(미군)와 전쟁장비 철수, 전쟁연습 중단, 대북 심리전방송과 삐라살포 중지, 화해와 단합에 저촉되는 각종 법률적·제도적 장치(국가보안법, 국정원 등 안보수사기관 해체 등 의미)의 제거” 등의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상에서 보듯이, 북한 대남전략의 핵심은 한국 땅에서 강력한 전쟁억지력인 세계 최강의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미동맹의 근간을 무력화하고 적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북한은 민족자주권을 확립해야 통일이 된다는 미명 하에 ‘반미자주화투쟁’을 선동하고 있는데 핵심 내용은“주한미군 철수, 조미 평화협정 체결, 유엔사 해체”등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대남전략에 부응하는 안보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철수론

북한의 대남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주한미군은 이른바 남조선혁명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세계최강의 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한 북한의 남조선혁명은 요원하다. 북한은 전쟁을 개시하면 한국군과 2만 7천여 명의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미 본토에서 ‘시차별 부대전개목록’(TPFDL)에 입각해 투입되는 69만 명의 증원군을 상대해야 한다. 일찍이 김일성은 남조선에 주한미군이 있는 한 남조선혁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주한미군 철수’를 대남혁명의 선결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북한은 남한혁명의 최대 장애물인 세계최강의 미군을 남한 땅에서 철수시켜 군사적 공백상태를 유도하고 이를 이용하여 무력으로 적화통일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북한의 남침전쟁을 억제하는 가장 큰 억지력(deterrence)인 주한미군을 먼저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의도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정부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고 있으나, 「판문점선언」(2018.4.27.)에서 명시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종국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실제 문대통령과 김정은은 한때 ‘북한의 비핵화’(북핵 폐기)는 뒷전으로 밀어 버리고 ‘종전선언’의 채택을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종전(終戰)선언이란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겠다는 선언이다. 현재 한반도는 휴전상태이다.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을 단행하여 3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정전)협정을 맺었고, 이러한 휴전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선언에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은 북한의 위장 평화전술에 부응하는 반()안보적 선언이다.

북한이 비핵화 이전에 종전선언 채택에 주력하는 저의는 ①한반도의 전쟁종식을 선언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위장)평화 분위기에 도취되도록 하고 ②현 정전체제를 무력화시켜 유엔군사령부를 불능화시키고 ③ 평화협정 체결을 유도하여 ④ 적화혁명의 걸림돌이 되는 세계 최강의 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시켜,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명시된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 통일 후 높은 단계연방제를 달성하여 결국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인 전 한반도의 공산화통일(적화혁명) 여건을 조성시키려는 것이다. 즉 종전선언은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인 한미동맹을 약화, 무력화시켜 이른바 적화혁명을 앞당기자는 것으로 집약된다.

북한의 평화협정은 전쟁협정 !

평화협정 체결도 종전선언과 같은 연장선에서 제기된다.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의 논리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켜 우리 내부의 군사적 공백을 틈타 무력으로 적화통일 하겠다는 간교한 책략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들은 평화에 환호하나,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전쟁협정 체결 주장에 다름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추진도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부응하려는 시책이다. 한국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강력한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이의 물리력인 한미연합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군이 자동개입함으로써 인계철선(trip wire)의 역할을 하는 강력한 전쟁억지력이다.

우리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주한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작전지휘권이 미국에 예속되어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군의 통수권은 분명히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평시 작전통제권도 1994년 12월 한국군에게 이양된 바 있다. 다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아닌 ‘한미연합사령부’에 부여한 상태이다. 따라서 북한의 전쟁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한미 공동방위기구인 ‘한미연합사’에 귀속된 전시작전통제권을 놓고 미국에 군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논리는 부당하다.

이의 연장선에서 문정부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수반하며, 인계철선 기능의 부재로 미군의 자동파병을 어렵게 하여 결국 적화로 가는 비단길을 깔아 주는 격이다.

기타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사례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말로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한미동맹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앞선 사례는 문정부가 북한이 대남전략에 충실히 부응하여 안보의 핵심 동력인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 사례이다 .

이외에도 ▲기 배치된 사드(THAAD)의 정상적 작동 방해꾼들에 대한 지속적 묵인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3 NO 원칙’(사드 추가 배치 불용,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미 참여, 한·미·일 3국 군사동맹 반대) 수용 ▲유엔사 관할권을 무시한 평양공동선언 부속 남북군사합의서 채택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강행 등이 있다.

한미동맹의 위기 근원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주 요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동맹인 미국과의 ‘신뢰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기저에는 문정권의 대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와대 내에 주사파 운동권 출신 참모들의 반미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운동권 시절의 반미 적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통 관료출신의 청와대 외교안보라인들도 이들에게 동화되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코드화된 정책 대변에 연연하고 있다.

한편 외교부는 미국과의 당당한 협력외교를 전개한다는 미명 하에 ‘(한미)동맹파’를 적폐 시하고 이른바 자주파들을 전면에 내세워 대미정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말이 ‘자주파’지 그들이 정책패턴을 보면 ‘반미/대북 굴종파’라 할 수 있다.

동맹이란 양국이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책연대와 공조를 통해 각자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문정부는 동맹인 미국을 외면하고 북한측 입장만을 옹호, 대변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양국 간 신뢰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말로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미국과의 공조를 배격하고 북한과 이른바 민족공조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연세대 특임교수)라는 분의 행보를 보면, “한미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은 사실상 남북관계를 희생하고 있다”, “한미관계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이다”, “하루빨리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고 있다. 이는 북핵개발 등 한반도 문제의 북한책임론을 도외시하고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며 한미동맹의 균열을 촉발시키는 주장이다. 더나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공조에 역행하는 것으로 북한 정권의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것이다. 문정권이 이런 자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바로 한미동맹의 균열과 와해를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미동맹의 복원을 위한 제언

한미동맹의 균열을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는 향후 중대한 안보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굳건한 안전장치인 한미동맹을 와해시켜 놓고 국가발전은 커녕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균열된 한미동맹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친북-친중-반일-반미 코드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먼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손상된 한미 간의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서 지적한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제 정책을 중단하고 한미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게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민간차원에서라도 한미동맹의 복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미우호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는 이유이다.

일본은 왜 미국을 선택했는가?

채 연 석
본 협회 사무국장

1. 서 언: 한국정부의 일본과 GSOMIA 중단 선언
                –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붕괴 위기-

2019년 8월 22일,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유일한 군사협정으로 2016년 11월에 북한의 병력 이동과 사회 동향, 북 핵·미사일 관련 정보 등을 일본과 공유하기 위해 체결했다. 한국은 탈북자나 북·중 접경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수집한 대북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고, 일본은 주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이나 핵에 관한 기술 제원 분석 자료를 한국에 제공하기로 하였다. 특히 일본은 한국이 보유하지 않은 정보수집 위성 5기를 비롯하여, 이지스함 6척,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초계기 110여 대 등의 다양한 정보자산을 통해 수집한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한국과 공유하기로 하여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 간의 안보협력은 물론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도 매우 긴요하게 작용한다. 지소미아는 단순히 한-일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한미일 공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한국이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과 함께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중단 선언이 발표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동맹국 사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깊은 우려와 실망’이라는 표현이 연일 쏟아져 나왔고, 일본정부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중요한 국가안보협정을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의 전략물자 수출금지 조치에 대한 보복적 차원에서 중단시킨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극한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되고 급기야는 북핵 미사일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지소미아 안보협정마저 중단시킴으로써 우방국 일본을 적대국으로 만들고 그 결과로 동맹국 미국이 등을 돌림으로써 우리 안보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중단 선택이 ‘진정 국익에 부합되는 올바른 선택이었던가’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한 국가의 지도자들의 선택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일본은 국가가 중요한 기로(위기상황)에 서 있을 때 그들 지도자들은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강대부국으로 성장시켰는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일본의 전략적 선택
     – 명치유신과 부국강병의 길, 대동아 공영권의 꿈

일본은 근세기에 세계의 열강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아시아 제국을 휩쓸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초강대국 미국과의 패권을 겨루며 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일본 제국을 달성한 바 있다. 그리고 2차 대전에서 패망 후 짧은 기간 내에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세계 제 3의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여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본이 그렇게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들 지도자들은 과연 어떠한 국내외 정책과 전략을 선택하였는가?

임진왜란 이후 출범한 도쿠가와 에도 막부는 260여 년간 쇄국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19세기에 들어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열강들의 서세동점의 세력에 시달리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4척의 군함의 위용에 굴복하여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고 개항을 하게 된다. 그리고 1868년 왕정복고와 함께 명치(明治;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명치유신은 쇠약해진 일본이 일거에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명치유신과 동시에 일본은 군사개혁을 핵심으로 국정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명치 군대는 처음에는 국내안정을 위주로 하는 치안유지군의 성격을 띠었으나 중국 및 조선 등 아시아에서의 서양열강이 각축하는 국제정세 하에서 자국안보의 눈을 뜨고 ‘정한론’의 대두와 함께 점차 외정군(外征軍)의 성격으로 변모하면서 해외점령정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880년대 이러한 위기의 안보정세 하에서 근대일본의 군사와 정치토대를 마련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 총리는 자신의 ‘외교정략론’에서 ‘주권선’과 ‘이익선’의 논리에 의해 조선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청국과 러시아, 영국등과의 각축전에서 청일전쟁으로 중국을 굴복시켰으며,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을 우방으로 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일전을 통해 승리함으로써 조선에서의 기득권을 장악하여 국가 이익선의 개념을 남만주까지 대폭 확장시키는 외교정책을 선택한다. 한편, 러일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당시의 글로벌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의 최강국으로 등장하는 독일에 대응하기 위해 3차에 걸쳐 영일동맹을 체결하고(1902,1905,1911), 불일협상(1907), 러일협상(1907)을 맺어 4국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우방국을 많이 확보하여 자국안보를 유지해 나가는 한편, 해양에서는 동아시아에서의 제해권을 획득하여 해군력의 우위를 점하고 급기야는 태평양에서의 미국과의 경쟁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소련의 위협이 점증되자 동아연맹의 주창자이자 만주사변을 일으킨 주역인 이시하라 간지 중장은 소련과 미국, 영국의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총합적인 국가전략과 국방정책(국방국책대강, 1936)을 추진하며 대륙침략을 감행하게 된다.

일본은 중일전쟁이후에도 열강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략을 펼쳐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는 한편,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의 저지를 위해 독‧일 군사협정 구상, 영국과 프랑스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일‧이태리 정치협상을 구상하고 중일전쟁 이후의 차기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이태리, 독일과의 방공협정을 강화한다. 차후 일본은 국익을 위해 일본의 국방자급권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여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남방자원 탈취를 위해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일전을 구상하며 미국을 저지하기 위해 독일, 이태리와 3국동맹, 소련과의 중립조약 등을 맺고 태평양 전쟁을 감행하게 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비록 미국에 굴복하여 패전하였으나,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의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3. 일본은 왜 미국을 선택했는가?
     – 요시다 정부의 결단과 일본 외교의 기축 對美외교-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던 일본이 어떻게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일본이 미국을 선택했고 미일동맹을 국가전략의 제일로 삼고 일관성 있게 유지 강화해 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출발은 패전 직후 패망한 일본을 부흥시킨 요시다(吉田茂) 수상의 독트린, 즉 ‘요시다 독트린’에서 출발한다. 이는 연합군 총사령부 점령 아래 일본 정권의 수장이던 요시다 시게루 수상이 주장한 일본의 외교노선이다. 요시다 독트린이 가지는 성격은 “ 1)냉전 상황에서 스스로를 서방세계,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제휴를 외교의 기조로 하고, 2)안전보장 면에 있어서는 미국에 의존해서 스스로의 방위력은 최소한도로 하고 경제외교를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즉, 일본의 안보 문제는 오직 미국에 의존하는 한편, 군사적 예산은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출하고 일본의 경제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요시다가 수상이던 195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동맹국의 군사력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미국은 1950년 6월, 강화 임무를 가지고 방일한 존 포스트 덜레스를 통한 일본과의 회담에서 일본을 재무장하여 군사적 지원을 받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시다는 덜레스의 요구를 거절하고, 맥아더의 양측의 의견에 대한 타협안을 수용함으로써 재군비를 회피하였다. 이후 일본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발전에 국가역량을 집중 할 수 있었다.

한편 전후 일본의 위정자들은 국익에 바탕을 둔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철저히 자국의 헌법(평화헌법)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일관된 정책을 잘 추구하고 있다. 일국의 헌법은 국가통치의 가장 근간이 되는 법으로 국가이익, 즉 국가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지켜야 할 법칙 또는 행동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미국의 극동정책과 대일점령정책의 일환으로 제정 되었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시대상황적 안보정세에 따른 극동 정책의 변화와 평화헌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직후 일본은 미소 양극체제를 중심으로 한 냉전기를 거쳐 소련 및 동구권이 붕괴된 냉전 종언에 이르기까지 냉전초기에는 한반도 전쟁으로 시작한 재군비의 출발로부터 냉전의 종료 전까지 소련의 ‘해양요새전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극동전략의 일환인 ‘해양전략’의 전초기지 역할로서, 냉전 후에는 새로운 전략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처로서 일본의 방위정책과 방위전략이 그때그때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전후(戰後) 오직 자국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선택했고, 70여 년간을 일관되게 대미외교를 국가외교의 기축(基軸)으로 하여 적극적인 대미외교를 전개하면서 미일동맹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4.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함의

1945년 2차 대전이 종료함에 따라 반세기 이상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놓여있었던 한일 양국은 거의 유사한 운명에 처해 있었다. 세계는 미소 양대 강국이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냉전체제로 진입하였고 그리고 양국은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을 동맹국으로 하는 매우 훌륭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미일안보체제가 출발하였고, 1960년 1월 19일 양국 간에 체결된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신 조약에 의거하여 미일 안보동맹체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미일동맹체제는 냉전시대 일본의 최대 안보위협인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켜내고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1등 공신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한미동맹은 휴전 직후 1953년에 10월 1일, 미 워싱톤에서 변영태 외무부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조인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 34호로 정식으로 발효된 대한민국과 미국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미동맹체제가 출발하게 되었으며, 한미동맹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이처럼 한일양국은 미국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 질서에 편입하게 되면서 한국은 한‧미동맹체제를, 일본은 미일동맹 체제를 각각 구축하게 되었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양국은 자연스럽게 우호협력체제를 만들어 감으로써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가 형성되었다.

미일동맹체제는 한미동맹과 우리안보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순기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가 세계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즉 미일안보동맹에 의해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미군은 한국은 물론 세계지역의 분쟁발생지역에 신속히 투입할 수 있도록 일본의 군사전략적 요충지역(오키나와, 요코스카, 사세보 등)에 3해병기동군(III MEF) 전력을 비롯하여 해, 공군 최첨단 전력들이 배치되어 운용된다. 또한 주일미군사령부가 위치하는 요코다(橫田)를 비롯하여 요코스카, 사세보, 후텐마, 가데나 등에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어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의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태세도 갖추고 있다. 유엔사후방기지회원국(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9개국)들은 자국의 선박 및 항공기를 이곳에 파견할 수 있다. 유사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주일미군의 존재는 한반도 전쟁의 위협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일본에 주둔하는 미 7함대의 활동은 아태지역 해상로의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평시 역내 국가들의 안전한 해상무역활동의 기반을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5. 결 언
     – 국익을 위한 한국의 전략적 선택-한미동맹 강화와 지소미아 중단 재고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중차대한 한미일 삼각한보협력체제가 우리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는 곧 많은 애국 지식인들에게는 국가의 존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위정자들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국익을 위해서는 신중한 판단과 결정을 했다. 한때 우리의 위정자들도 어려운 시기에 신중한 판단과 올바른 결정을 한 바 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튼튼한 안보를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의 위상과 국력이 신장하였다. 바로 슈퍼 강대국 미국을 우리의 강력한 동맹국으로 선택하고 동맹유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강하고 믿음직한 동맹국과 우방국을 스스로 저버리고 신 애치슨라인을 스스로 그어가며, 한미동맹을 깨뜨려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과 일본은 과거에도 중요했고 현재도 변함없이 우리 안보와 번영,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우방국들이다.

국가안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활적(critical)인 국익이다. 우리는 오늘의 어려운 안보위기상황 하에서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명치유신 이후 100년간 근세 일본을 세계 최고의 강대부국으로 성장시켰고, 2차 대전 패전이후 불구대천의 미국을 가장 친한 우방으로 선택하여 대미외교를 국가전략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냉전이후 주적 소련이 사라진 후에도 자국의 헌법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국익을 위해 더욱 미일동맹을 강화하여 국가안보를 튼튼히 보장해 나가는 일본의 선택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설사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여 비핵화를 달성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중국,러시아 등의 안보위협에 계속 대처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공존을 위해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지소미아 중단결정은 사활적인 국익차원에서 반드시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