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위기와 대응

이용준 전 외교부 차관보, 북핵담당대사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말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동안 한미관계는 한국의 민주화 문제, 인권문제, 주한미군 철수문제, 통상문제 등을 둘러싸고 가끔 큰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한미동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 당시 민주화와 인권 문제로 한미관계가 큰 홍역을 치를 때에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주한미군 전면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등장했던 카터 행정부도 의회의 반대에 밀려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미관계의 통상적 갈등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한미동맹 위기설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고, 이런 기류는 유럽 국가들에까지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에 대한 경시 풍조가 심각한 수준인 데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 역시 노골적인 친중, 친북 정책으로 미국을 격분시키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고 한미동맹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향후 이러한 양국관계 위기의 파장이 어디에까지 미치게 될지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가 현실화 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동맹관계 위기의 연원

과거 한미 관계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한국 정부의 친북성향 국내외정책으로 인해 한미관계가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갈등의 소재는 주로 대북한 경제원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대북한 정책을 둘러싼 이견들이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의 최초 정상회담에서 시작된 양국 간의 파열음은 그 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내내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미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깊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미 경외심으로 인해, 대북정책 관련 한미 간 불협화음이 양국관계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고 한미 안보협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었다.

한국 정부의 이념적 편향으로 인해 한미동맹 자체가 위기를 겪기 시작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5년간이었다. 그 기간 중 한미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정책 전반이 철저히 남북한 관계의 종속변수가 되었다.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은 자기부처 현안업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채널조차 없어, 외교안보 전반을 총괄하던 통일부총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형편이었다. 그 때문에 두 부처가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북한 핵문제 역시 그러한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한미 양국 사이에는 북한 핵문제, 대북 경수로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종전선언, 서해북방한계선(NLL),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남북경협 등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팽팽한 이견이 지속되었고, 주한미군 기지이전(LPP), 용산기지 반환, 평택기지 건설비,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작계5029, 아프가니스탄 파병, 이라크 파병 등 군사문제에 관한 마찰도 연일 계속되었다. 그 밖에도 북한 인권문제, 동북아균형자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등 온갖 외교 현안들을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무렵 노무현 정부가 좌파 지지세력의 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이라크 파병, 아프간 파병, 한미 FTA 체결 등 중대한 조치들을 단행함에 따라 양국관계는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분히 친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양국 간 갈등 고조로 인해 주한미군의 대폭 철수가 현실화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 친북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유지 필요성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그 후 9년여 만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능가하는 좌편향 정책으로 한미관계를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미래 자체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노골적 친북정책을 취했을망정 중국에 대해서는 의연했고, 박근혜 정부는 과도한 친중국 편향으로 인해 미국 조야의 강한 의혹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대북한 정책은 그와 상관없이 단호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노골적인 친북정책에 더하여, 박근혜 정부를 훨씬 능가하는 대중국 굴종외교를 전개하고 있어, 한미관계가 미증유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정책을 숨기거나 망설이는 기미도 없고, 양국관계의 파국을 완화하거나 해결하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반미적 색채가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친중, 친북 편향외교에 따른 한미동맹의 위기
(친중 굴종외교에 따른 위기)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 편향 정책으로 인해 한미동맹은 세 방면에서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첫째 위기는 미중 패권경쟁의 본격화로 냉전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미중 진영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현저한 친중국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을 분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의 차원을 넘어 점차 친미진영과 반미진영 간 대결,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전체주의 진영 간 대결, 세계 문명사회와 비문명사회 간의 대결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국은 북한 핵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문제, 한미 합동군사훈련 문제, 한미일 삼각안보협력 문제, 한반도 평화협정/종전선언 문제, 미사일방어 문제, 화웨이 제재문제 등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안들에서 대부분 중국 측 입장에 동조하고 있고, 중국이 반대하는 모든 국제적 활동에 불참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미중 쟁점현안 미국입장 중국입장 한국 정부의 선택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가입 가입 반대 가입 요구 창설회원으로 가입(박근혜 정부)
중국군 전승70주년 열병식 참석 참석 반대 참석 요구 박근혜대통령 참석(박근혜 정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강력 반대 영유권 주장 반대입장 표명요청 거부(박근혜/문재인 정부)
한미일 3자 안보협력/합동훈련 강력 희망 강력 반대 협력 회피, 사실상 와해(박근혜/문재인정부)
미사일 방어체제 설치 배치 희망 강경 반대 사드기지 가동불허, ‘3불약속’(문재인정부)
대북한 제재조치 해제 문제 해제 반대 해제 주장 중국/북한 입장 동조(문재인 정부)
북핵문제 해결 방식 일괄타결 단계적 해결 중국/북한 입장 동조(문재인 정부)
한반도 종전선언/평화협정 반대 찬성 적극 추진(문재인 정부)
한미 합동군사훈련 적극 희망 강력 반대 3대 합동군사훈련 폐지(문재인 정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문제 참여 요청 참여 반대 참여 거부(문재인 정부)
대북한 밀무역단속 합동해상작전 참여 요청 참여 반대 참여 거부(문재인 정부)
화웨이 제재문제 동참 요구 불참 요구 불참 입장(문재인 정부)

군사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은 남중국해의 광활한 영역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과 불법 점거에 항거하는 미국, 일본, 호주, 영국, 프랑스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불참하고 있고, 한반도 해역에서 북한 선박의 밀무역을 단속하기 위한 미, 일,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7개국의 합동해상작전에도 불참하고 있다. 한미일 3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실시해 온 합동해상훈련도 기피하고 있고, 미국이 군사보안 문제를 이유로 실시하는 화웨이 제재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정부의 이러한 친중적 성향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좌파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우파 정부인 박근혜 정부 때부터 사실상 시작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한국이 이미 미국 진영을 떠나 중국 진영으로 기울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이러한 한미동맹의 위기로 인해, 워싱턴 조야에는 친한파 인사의 씨가 말랐고, 한국의 동맹 이탈과 중국진영 편입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친북정책에 따른 위기)

한미동맹의 둘째 위기는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친북 편향적 성향을 띠게 됨에 따라 북핵문제, 대북정책, 군사안보문제 등 북한관련 동맹현안에 있어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과거 노무현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친북정책 노선이 추구되고 그에 더하여 친중 굴종외교까지 추가됨에 따라, 한미 양국 사이를 연결해 줄 최소한의 접점마저 상실된 상황이다.

이에 따른 미국 정부의 강력한 거부반응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은커녕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이로 인해 한미관계 악화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고, 주한미군 대폭 감축과 한미동맹의 와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는 2018년의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한국군의 전반적 방어태세 이완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고려연방제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이 나라 좌익세력에게 불감청고소원의 축복이 될지도 모르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다.

(한미일 삼각협력 파괴에 따른 위기)

한미동맹의 셋째 위기는 한국 정부가 반일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을 폐기하는 등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근간인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의 파괴를 주도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위기가 수면위로 부상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관제 반일민족주의 캠페인이 결과론적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을 파괴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김일성의 이른바 ‘갓끈 전술’ 개념에 따라 반일정책을 통해 삼각협력체제를 타파하고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 궁극적 의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 반일 정책 뒤에 숨겨져 있던 반미적 의도가 비로소 민낯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지소미아 파기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별다른 무마 노력을 기울이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바꾸거나 하다못해 그럴싸한 해명이라도 하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현재의 상황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별다른 이의나 우려가 없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한미일 협력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처음부터 한국 정부의 목표였다면 그것은 단순한 획기적 대외정책 변화의 차원을 넘어 한국이 건국 이래 소속되어 온 국제정치적 진영을 아예 송두리째 바꾸려는 원대한 전략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수립 이래 70년간 한국은 미국과 서유럽을 주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일원이었다. 수십 년간 아태지역을 포함한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이는 다양한 외교적 공동행동, 합동군사훈련, 다국적 연합군 등에 참여함으로써 그들과 각별한 유대를 맺어왔다. 그 구성원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과 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 등 NATO 회원국들로서, 국제 문명사회와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구성하는 핵심 국가들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이 돌연 방향을 급선회해 세계 공산주의-전체주의 진영의 대표격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결성한 ‘북방 삼각체제’ 카르텔의 문전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과거 6.25 남침의 주역이었고, 미국이 이란과 더불어 최대의 잠재적국으로 간주하는 나라들이다. 미국은 이러한 동맹국을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동맹국에 대한 의리가 없기로 정평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배신한 한국에 대해 보여줄 인내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한국의 동맹파괴 행위가 초래할 대가

한국 정부의 동맹파괴 행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무엇보다 먼저 한미동맹, 특히 주한미군 문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 유지비 총액에 해당되는 약6조원의 방위비 부담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무시하면서도 굳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원한다면 마땅히 주둔비용 전액을 ‘용병료’로 지불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것이 합의될 가능성은 없을 테니, 이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은 이 나라 외환시장과 대외신인도 및 외국인 투자에 큰 타격을 주어,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 한미관계가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와 평택기지의 효용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주한미군을 절대 철수하거나 대폭 감축하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좌파진영은 물론 우파진영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안일한 생각이다. 미국은 박정희-전두환 시대 이래로 여러 차례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시도했다. 양국관계가 긴밀하던 시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지상군의 대부분을 철수하고 주한미군을 공군 위주로 재편성 하려는 것이 수십 년 전부터 미국의 일관된 소망이었다. 그것을 외교협상을 통해 만류하고, 방해하고, 교섭이 실패하면 미국 의회와 언론까지 동원해 번번이 좌절시킨 것은 바로 한국 정부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한 주한 미지상군 철수라는 미국 국방부의 오랜 꿈은 아직 유효하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얼마나 열심히 반대를 할 것인가?

한미 동맹관계의 악화는 양국 간의 정보공유에도 대단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북한동정 관련 전자정보 공유 등에 있어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보다 미국의 적인 중국, 북한을 더 중시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과연 미국이 어떤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한국에 대한 최첨단 무기의 판매마저 중단될지도 모른다. 첨단 무기체계의 민감한 기술정보가 중국이나 북한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점을 미국이 어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한국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연합사령부와 별개로 유엔군사령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면 한국이 중국 또는 북한의 침공을 받아 전시상태가 될 경우 한국군 사령관이 한미연합군을 통합지휘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동맹국인 미국보다 가상 적국인 중국, 북한에 대해 더 호감을 보이고 있는 한국 정부가 임명하는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미국 정부가 과연 주한미군과 수십만 증원병력에 대한 지휘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의회가 이를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이완은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와 군사정책 전반에도 변화를 불러옴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군사적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안보체제에서 일본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리라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 이탈에 따른 공백을 메우려 미일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보다 강력히 지원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독도문제, 과거사 문제 등 한.일 간의 오랜 쟁점현안들에 있어서도 점차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인 일본 측 입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예상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반일 캠페인은 당초 의도와는 반대로 동북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군사적 역할을 확대시키고 한일 현안에 관한 일본 정부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가 현재 직면한 한미동맹과 국가안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백하고 간단하다. 현재의 모든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들이 그 핵심이다. 첫째, 대중국 굴종외교를 종식시키고 미국의 동맹국으로 완전히 복귀해야 한다. 둘째, 시대착오적인 종북 정책을 중단하고 북한 핵문제와 여타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 및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외교적 공조를 재개해야 한다. 셋째,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여 휴전선 일원에서의 대북한 감시, 정찰, 방어훈련, 심리전활동을 재개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넷째,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의 조건 없는 연장과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통해 한미일 삼각안보협력과 합동해상훈련을 복원해야 한다. 다섯째, 태평양 지역에서 실시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합동해상훈련과 합동작전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한 일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상의 5개항 조치는 그간의 비정상적 정책을 원점으로 복구시켜 정상화시키는 조치들이며, 국가안보의 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해야 할 5개의 추가적 대응조치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섯째, 상주의 사드 기지를 즉각 가동하고 추가적 사드 포대 도입과 저고도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체제를 전국적 규모로 배치한다. 일곱째, 미사일 주권을 포기하는 대중국 ‘3불약속’을 폐기하고, 북한 핵미사일의 방어를 위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과 연계된 고도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한다. 여덟째, 북한의 어떠한 재래식 군사공격도 미국의 도움 없이 능히 격퇴할 수 있을 만큼 우월한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해 최단 시일 내에 대규모 군비증강을 실시한다. 아홉째, 자유민주주의 우방들과 협조 하에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개선 및 개혁개방을 위한 압박외교를 전개한다. 열째, 북한에 대한 핵억지력 확보를 위해 독자핵무장, 미국 전술핵 반입 등 가용한 방안을 국가차원에서 논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여타 조치들의 신속한 이행을 지연시키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상 열거한 열 가지 조치들 중 문재인 정부 하에서 실현 가능한 조치는 단 하나도 없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 이러한 조치들의 필요성을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부에 대해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둘째,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가 현 정부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을 여러 경로로 미국 정부에 알림으로써 미국 정부가 한미동맹에 대해 졸속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미국 내 여론을 환기시키는 일이다.

중국에 줄 섰다가 맞게 될 한국의 미래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남북군사합의·지소미아 파기 등 현 정권 외교·안보 의문투성이
미국 멀리 중국 가까이전략은 한미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
중국과 손잡고 성공한 나라 없어인접국 ‘1GDP’ 3분의 1

정부 여당의 ‘중국 편향’이 심해지고 있다. 최근 부산시 여러 곳에 내걸렸던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경축’ 현판은 그 작은 징표다. 중국 공산당의 존재는 수도 서울의 시의회까지 들어왔다. 지난달 말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중국 건국 기념사진 전시회는 공산당 정권 수립과 경제 발전을 찬양하는 사진 160여 장으로 채워졌다. 6·25 때 이 땅에서 14만 명의 젊은 피를 흘린 미국을 위한 경축 행사는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서울시의회가 국군에게 총을 쏜 중국에는 장소를 내주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중국 관련 경제 포럼에선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리더십’ ‘한·중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이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이 포럼에는 설훈, 김두관, 정동영 등 범여권 실세 의원들이 참석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여당 정치인들은 이제 ‘미국을 대체할 중국’과 ‘새로운 한·중 관계’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안민석 의원이 “한국이 북·중과 연대하여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욱일기의 반입을 막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취해온 의문투성이의 외교 안보 조치들 역시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거기엔 ‘친중(親中) 전략’이 숨어있다. 환경영향평가를 핑계로 미룬 사드 정식 배치, 안보 역량을 약화시킨 남북 군사 합의, 한·일 간 지소미아(GSOMIA· 군사 정보 보호 협정) 파기, 한·미·일 안보 협력 대신 중국 포함 다자 협력 추구 등은 한미(韓美) 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중국에 이로운 조치다. 문 정부 외교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는(원미친중;遠美親中)’ 전략이다. 그 목적은 북한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식 연방제 통일을 하는 데 중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에 미군이 있는 한 통일에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이므로, 문 대통령은 통일과 미군 철수를 함께 추진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결단의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

한국 좌파 정치권은 ‘연방제 통일’이야말로 7,500만 한민족이 ‘분단 체제’를 끝내고 강대국 앞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대전제라고 본다. 이 목표를 위해 ‘친중반미(親中反美)’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청와대가 북핵 문제에 작은 돌파구라도 열리면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에 총력을 쏟을 태세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성과를 동력으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방제 개헌(改憲)에 다가선다는 계산법이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것’이 문 정부가 꿈꾸듯이 남북한 공동 발전과 평화통일로 가는 길일까? 우린 장밋빛 미래 대신 리스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이탈해 북·중·러 삼각 체제에 편입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한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받을 충격은 1997년 IMF 위기 이상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가 예상되면 연방제 통일을 우려한 국제 자본이 한국을 이탈할 것이고 주식과 원화 가치는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부자들이 해외로 떠나면 부동산 시장도 위험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제외되면 수출 길은 급격히 좁아진다.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 실업자는 급증하고 청년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금융기관 파산으로 수십 년 부어왔던 개인연금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좌파가 꿈꾸는 것처럼 북한 개발 붐이 일어나기도 전에 한국 경제부터 무너질 수 있다.

또 한미 동맹을 버리고 연방제에 합의한 한국은 장차 북한과 대등하게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자국의 군사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정치 체제를 강요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말처럼, 핵 무력을 가진 김정은 일인 독재 체제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짓누르게 될 것이다. 말이 ‘평화적 연방제 통일’이지, 북한 주도의 흡수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란 든든한 친구를 버린 한국은 중국 관계에서도 대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리란 보장이 없다.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중국은 한국에 종속과 굴욕을 강요할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과 손잡아서 성공한 나라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14국 중 러시아를 제외하고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14국의 1인당 GDP 평균은 3,064달러에 불과하다(그래픽 참조). 캄보디아와 미얀마 베트남은 마오(毛) 사상 영향으로 내전과 학살에 시달렸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협력한 국가들은 지금 엄청난 빚에 신음 중이다. 북한 대외경제성 관리조차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은 잘사는데, 중국과 동맹 맺은 우리는 못산다”고 하소연하겠는가. 중국 땅 끝에 위치한 한국이 3만달러 수준에 오른 것은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을 버리고 ‘중국 줄’에 서는 선택은 지난 70년간 우리가 누려온 자유 민주와 풍요의 정치 경제 구조를 근본부터 파괴하는 일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은 자유민주 정치가 가능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힘이 미치는 곳엔 감시와 억압이 있을 뿐이다. 지금의 위구르 지역과 홍콩을 보라.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 위에서나 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의 ‘친구’지만, 중국은 ‘친구’가 될 수 없다.

* 본 칼럼은 조선일보 동북아시아 연구소장 지해범씨가 조선일보(‘지해범의 아웃룩; 2019년 10월 9일)’에 기고한 글을 본 협회지에 옮긴 글입니다.

내가 느끼는 이 시대의 한미동맹

이승복
아시아투데이 전략기획팀장
본 협회 청년위원장/편집위원

세상이 온통 시끄럽기만 하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개혁 당해야 할 사람이 장관이 되고, 이를 두고 분노해서 나온 두 갈래의 집회의 모습에서, 나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시대이지만 해방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이 투영되고 있음을 짐작해 본다.

급기야는 오늘 여자 대학생들로 구성된 시위가 미대사관저의 담장을 넘어버린 날이다. 현행범을 두고도 여자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현장 조치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이 또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찰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하다. 나중에 추행이나 과잉진압에 대한 소송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 그 순간 법의 수호자가 아닌 철저히 직장인으로서의 모습으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제정신의 모습들인가라는 강한의구심을 갖게 한 날이다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책으로만 배우고 단 한 번도 실천하려 애쓰지 않은 기성세대와 그 내용마저도 목적을 위해서는 과감히 변질 시켜버리는 일부 집단의 잘못된 인식에 따른 결과가 너무도 참혹하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
70년의 역사 속에서 건국, 지원, 분단, 전쟁, 국방, 경제발전 그리고 동북아 우방의 중심으로 함께 해온 역사가 어느 날 갑자기 선이 아닌 악, 평등이 아닌 불평등으로 규정되어지고 그렇게 이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라는 담장아래서 우리가 받은 혜택을 주장하는 사람은 순간 제국의 앞잡이이며, 분단의 책임자이며, 소위 늙은이들의 한풀이 주장이라는 메아리가 그냥 덮어버린다. 이에는 논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미국의 압제와 영향력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논리는 얼핏 듣는 순간 매우 그럴싸하다. 이제 우리가 경제 강국이 되었고, 세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있으며,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에 우뚝 서 있는 이러한 힘이 있음에도 대국의 힘의 논리에 굴복한다는 것 자체가 사대주의이며 이제는 우리가 자주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들은 정말 멋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렇게 잘 산다하여 방위분담금 올리겠다고 하니 도둑놈이라 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받다가 갑자기 올리니 이는 우리를 무시한 처사이기에 도둑놈 심보라 한다. 우리가 국방비리만 잘 관리해도 그 정도의 군사력은 갖춘다는 논리로 또 포장해 버린다. 그리고 이참에 아예 나가라는 주장도 한다. 이 또한 그냥 들으면 대단히 정의롭고 애국심에 불타는 좋은 이야기로 들린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지금 세대에는 들리는 대로만 인식되어진다는 것이다. 논리고 주변 상황을 볼 것 없이 주전론은 애국자이고 주화론은 매국노로 평가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지성으로 둔갑한 채 활개 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대는 먹고 살기 힘들다. 미국의 보호아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제품을 수없이 실어 날랐던 초호황의 단물을 마신80년대의 세대와는 달리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며 달려와도 직장 잡기 어려운 고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호황의 시대에 일자리가 넘치고, 무엇이든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꿈의 시대를 살면서 꽃길만 걸어 온 배부른 선각자들께서 그야말로 밥 잘 먹고 배설하는 것들이 이 시대를 주도하는 주장이 되어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이러한 기득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미국으로 도움 받은 최고의 국방 상황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초호황의 경제 혜택을 받은 줄을 모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이것이 바로 잡힐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미국의 존재와 한미동맹이 무언지도 잘 모르고, 동맹이 균열되었을 때의 모습들은 전혀 모르고,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반미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자제분들은 고귀하게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시민권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그 배설과도 같은 요설에 그냥 휘둘리고 있으며 ‘ 이정도 사는 데 미국 없어도 되잖아’라는 참 편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도 우리를 혈맹이며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미국 공화당 내의 한반도 담당 상원의원들 사이에서의 기류는 한반도내에서의 한국이라는 정부의 인식과 역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미 상원의원 코리 가드너와 한미동맹관계에 대해 의견교환을 나누고 있는 필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충돌이라고 멋들어진 표현은 내게는 관심사는 아니나 미국이 멀어지면 좋아할 것은 중국과 러시아이며 가깝게 있는 대국의 힘의 논리에 눌리게 되면 고려, 조선조 내내 힘없이 누려 지낸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해 본다

힘에 의해 나라 잃고 설움 당하고, 총칼 앞에서 피의 항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연 한번 잃은 주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면 답은 자명하다

대국에게 기대고 종속적으로 살자는 뜻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최고로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북한도 이미 중국의 경제력 앞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힘의 논리 앞에는 명분도 필요 없다. 자국의 이익 앞에는 어떠한 선과 악이 없다

전쟁나면 UN이 도와줄 거고 국제법으로 해결될 거라는 생각,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동북아의 균형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상상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름을 빨리 인식하고 잘못된 정책과 방향에 대해 이제는 국민들에게 정확이 알리고 수정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권력에 취해 있는 자들의 문제인식의 한계가 있고 언론의 행태도 큰 문제가 있다.

시대정신에서 도외시 되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어쩌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해야 재정비가 가능하리라는 위험하고 서글픈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때는 기존의 동맹의 개념과는 다른 철저한 사업적 방식의 관계유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 에이 설마 뭐 그 정도까지야 하겠어. 그렇게 우리 국민들이 우매하지 않아’라고 자위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있다. 정말 불과 3년도 채 안된 시기에 이렇게 북한스러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는 분명히 위험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너무도 잘 사는 나라에서 성장 해온 터라 위기감이 많이 부족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현장에서 취재하다보면 인식의 변화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집 사는 데 은행에서 돈 좀 빌리려는 데, 좋은 조건으로 우호적이며 오래 거래한 은행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출 없이 한 번에 집을 살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당연히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 은행과 거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이자가 좀 밀려도 집이 경매로 안 넘겨진다.

내 자산 상황을 잘 아는 오래된 좋은 은행을 두고 자꾸 신규 은행과 계좌를 만드는 것이 과연 얼마나 유리한지는 위기 상황이 닥쳐봐야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 국가경영이라는 중요한 명제에 있어 감정과 선동이 아닌 냉정한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중요한 시기이다

자칫하면 비오는 날 우산 뺏기고 거리로 나아가 앉을 수도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상황이다. 한미동맹은 가난한 집안에게 잘 살라고 무상 임대도 해주고, 일부러 납품도 받아주고, 조금 위험하면 아들도 보내주고, 그렇게 좋은 은행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어렵게 설명하고 거창하게 설명해 봤자 인터넷시대에 전자사전으로 공부한 이 시대정신에는 맞지 않다

한미동맹,
그 가깝고도 뜨거운 마음이, 이제는 어렵고도 먼 길을 돌고 있다. 혼돈과 갈등의 시기에 지켜가야 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이제는 더 많이 전도하고, 포교해야 한다. 종교처럼…

한국전쟁 초기전투와 미군의 값진 희생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평화공원 개장을 환영하며

최상진
수필가, 본 협회 편집위원

폴과 요셉

폴(Paul)과 요셉(Joseph)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 규수의 미 육군 캠프인 캠프 우드에서 만났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두 사람은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젊음의 의욕이 넘치는 가운데 훈련 중 이었지만 승리자의 일원으로 꿈같은 이국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생한지 6일째인 1950년 6월30일 출동명령이 발동되고 7월1일 이다츠께 공항에서 4대의 더글러스 C-54 수송기에 분승한 그들은 스미스 특임부대의 일원으로 8시45분 부산에 도착한 후 오후 8시경 기차로 대전을 거쳐 오산북쪽 죽미령 언덕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나의 친구 Paul에게

– 중략 –

7월5일 오전 8시 피할 수 없는 전장의 불꽃이 타올랐어.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철수명령을 받았고

나는 폴이 있던 언덕으로 단숨에 달려갔지.

포화 속으로 탈출구를 찾으며 언덕을 올랐을 때

참호 속에서 웃고 있는 폴을 발견했지.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필립모리스 담배 하나를 반으로 잘라 나누어 피웠지.

진지에서 적들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참호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어.

산마루 보이는 적군을 향해 사격을 시작할 때

폴은 적의 포탄에 머리와 가슴을 맞았지

끔찍한 고통 속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전우, 그 죽음을 지키는 나

신이시여!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운 시련의 고통을 주려 하십니까?

친구의 눈물과 죽어가는 몸부림을 보며 가장 소중한 벗을…

친구의 창백한 얼굴엔 죽음의 가면이 드리워져 있었어.

나의 소중한 벗이 들이쉬는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네.

– 중 략 –

폴, 내 소중한 친구야

너를 위하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신이 나를 데려가는 그 날까지 영원히 너를 위해 기도할 뿐…

7월5일 첫 전투에서 전사한 소중한 친구 폴을 생각하며…

– 1995년 6월 Joseph A. Langone

초전(初戰), 오산 죽미령 전투

적의 진전을 지연하라!

극동사령부(사령관 맥아더)의 작전명령 1호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화하여 지연전 수행부대를 북쪽으로 전진시키고 현재 서울에서 수원으로 남하하고 있는 적과 대치상황을 유지하면서 적의 전진을 지연시킬 것.” 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의사결정 과정은 전광석화 같았으나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남하하는 북한군의 파죽지세 공세를 막을 수 없었다. 유엔 안보리는 불과 7일 동안 1차 결의안으로 ‘북한군의 침략중지와 38선 이북으로 철수 할 것’을 요구하였고 2차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유엔의 이름으로 모든 지원을 제공 한다’는 결의안을 가결시켰지만 이미 서울은 함락되었고 대전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유엔군 파견의 합법적 절차를 거친 유엔은 1950년 7월5일 지연특공대로 미 제 8군 제 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와 제 52야전 포병대대가 주축이 된 540명의 스미스 특임부대를 선정하였다.

‘7월 5일 오전 7시, 수원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 모습이 드러났다. 8시 16분 첫 사격을 시작으로 스미스 부대는 포탄을 쏘아대며 공격하였지만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약 10km에 달하는 긴 행렬의 북한군 트럭과 보병이 나타났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댔고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북한군이 스미스부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특임부대는 오후 2시 30분 퇴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임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여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 역시 약 5,000명 중 127여 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해설 인용)

죽미령 전투는 미군과 북한군이 첫 격돌한 전투였고 상황은 군사력 10 대 1, T-34 전차포와 105mm 곡사포의 대결로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꽃다운 나이의 조셉도 생전 생각하지도 못한 이국땅 낯선 곳 죽미령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죽미령 전투에서 미군은 죽음으로 임무를 수행하였고 미군이 지킨 6시간 15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위치에 있는 유엔 참전국들도 전쟁에 대한 파괴와 염증은 패전국과 마찬가지였다. 유엔이 결성되었지만 집단안전보장 체제 가동을 위한 합의와 결정, 또 자국 군대 파견의 절차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반면 전쟁 당사자인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국과의 교전을 원치 않았으며 만약 미국의 참전한다 하더라도 주력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끝장내려는 속셈인 만큼 전략은 오직하나 속전속결 이었다.

일본의 맥아더 사령관은 6월29일 한국전선을 직접 시찰한 후 지상군파견을 결심하였다. 미군은 죽미령 전투를 통해 상대에게 미군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전쟁의 성격과 상대의 강약을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급조된 스미스 특임부대 만으로 대처한 북한과의 초전 죽미령 전투는 패전으로 끝났고 후속부대인 미 제 24사단 제 34연대가 구축한 오산의 후방 평택-안성 저지선마저 북한군의 파죽지세 공세에 밀려 천안 남쪽 공주 지역까지 철수한 미군은 7월8일 금강 유역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반면 미군참전으로 남진속도가 늦춰진 북한군은 미 공군의 공습으로 전력은 다소 약화되었지만 대대적 낙동강 공세를 준비하고 미군은 주력부대의 이동과 공군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전선이 다소 안정된 가운데 수도 서울 탈환을 위한 9.15 인천 상륙작전을 구상한다. 소중한 시간을 더욱 소중한 목숨으로 지연시킨 죽미령 전투의 6시간 15분은 비록 패전이기는 하나 한국을 구사일생 방어해준 골든타임 이었다.

특임부대장, 스미스 중령(예비역 준장)

그는 1916년 5월 7일 미국 뉴저지 주 렘버트빌에서 출생하고 1939년 뉴욕의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찰스 비 스미스 중령은 2차 대전 시 일본과의 과달카날 전투에서 세운 전공으로 한국전쟁의 구원투수로 오산 죽미령 전투에 투입되었다. 1975년 7월과 1987년 7월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오산 죽미령 전투 전몰장병 추도식 및 유엔군 초전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인터뷰에서 “저는 스미스 특수 임무부대가 북한 공산군의 공격으로부터 세계평화와 한국의 안보유지에 작은 공헌으로 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계속 치러야 할 대가는 ‘힘과 경제 그리고 헌신’이라는 것을 항상 가슴깊이 새겨두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2004년 5월 27일 88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대한민국을 지켜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공원 개장

오산의 북쪽에 자리 잡은 죽미령(竹美嶺)은 글자 그대로 대나무가 아름다운 고개 마루이다. 오산 평택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교통이 발달되어 평시에는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곳이기는 하나 환란 시는 항상 아비규환 전화(戰禍)의 현장이었다.

1955년 7월5일 죽미령 전투 5년 후 미 제 24사단 장병들이 참전용사 540명을 기억하는 540개의 돌을 쌓아 (구)유엔군 초전 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1982년 맞은편 둔덕에 (신) 초전 기념비를 건립하고 2013년 유엔군 초전 기념관을 정식 개관하였다. 위도 37도의 평택-안성-원주-삼척線은 한국전쟁 시 3차례 전장(戰場), 즉 1950년 7월의 북한군 남하,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한군 퇴각, 마지막으로 1951년 중공군 1차 춘계공세의 한계 저지선으로 혹독한 전란을 겪었고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오산, 평택, 안성은 육로교통의 대동맥으로 남해와 서해를 통한 외적의 통로였고 격전지였다.

또한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도 수많은 내전과 피난민들로 고통을 겪은 이 지역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 오산은 미군의 초전지역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에 대한 열망과 6.25 전쟁의 올바른 이해와 오산 죽미령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 위해 현재 초전기념관 부지에 약 6만3천 평을 추가 매입하고 182억 원을 들여 ‘오산 죽미령 초전기념 공원’을 조성, 11월 초 개장을 앞두고 있다.

6.25 초기전투와 미군의 고귀한 희생

6.25전쟁 발발에서 천안전투에서 24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가 될 때 까지 국군에 대한 기록이나 무용담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해방 후 군정종료와 함께 1949년 6월30일 남한 주재 5만의 미 지상군 전투 병력이 철수했다. 군정 당시에도 소련과 북한은 끊임없이 미군철수를 주장해 왔고 비밀리에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이 철수하고 만 1년 후 6.25전쟁은 발발하였지만 한국군(국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지켜줄 군대도 무기도 없었다. 만일 북한군이 T-34 전차부대와 같이 제공권을 압도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전쟁은 10일 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끔직한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초기전투에 투입된 미군들은 인간방패로 적의 탱크를 저지하였고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다.

본지(영원한 친구들)에서는 이미 제 232호(오산 스미스부대 추모비를 다녀와서; 본지 편집위원 김봉주/2019년 9월호), 제 242호(개미고지전투 미군장병 전몰추모비 답사; 본회 사무국장 채연석/2018년 12월호) 통해 미군의 초기전투와 참전비 답사기를 게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맹방으로 한미동맹의 초석이 된 미군 장병들의 헌신을 기린바 있다.

참전비 참배의 목적은 그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함이다. 준비된 군대와 무기로 남침한 70년 전의 북한과 핵으로 무장한 지금의 북한은 힘의 논리로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다. 상황은 그 때와 유사하게 전개되고 좌편향의 종북세력은 상대의 평화공세에 동조하여 정신적, 군사적 무장을 해제시키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는 다시 기록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국민과 정치인들은 이 땅에 부국강병과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만이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한미동맹의 위기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대한민국의 안보는 크게 ① 한미동맹(국군과 주한미군) ② 국정원 등 안보수사기관 ③ 국민의 안보의식이라는 3가지 축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보의 3대 축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안보의 핵심 축이자 강력한 전쟁 억지력(deterrence)인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이의 근본 원인은 북한의 대남전략(對南戰略)에 부응하는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 체계

북한의 대남전략을 이해해야 한미동맹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對南戰略)이란 김씨 집단의 정권 목표인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전조선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남한을 향해 전개하는 모든 실천적인 행동지침을 말한다. 따라서 대남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이른바 ‘전조선 혁명’ 전략을 파악해야 한다.

북한의 전조선혁명 전략은 크게 남조선혁명 단계와 조국통일 단계로 구분되는데, <도표>에서 보듯이, 1단계(당면목표, 남조선혁명 완수)인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단계와 2단계(최종목표: 적화통일)인 남북합작을 통한 사회주의혁명 단계가 그것이다.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은 북한의 남한사회 성격평가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한국 사회를 미국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식민지사회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해방’이란 남조선혁명을 위해선 먼저 남한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미 제국주의(주한미군 및 미 대사관 관료 등)를 남한 땅에서 축출하고 남한민족의 해방을 이룬다는 의미이며, ‘(인민)민주주의혁명’이란 미국의 대리통치정권이며 독재정권이라 규정하는 남한 정권을 남한 인민의 힘으로 타도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체제인 인민정권(민족자주정권이라 표현)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해방은 ‘미제축출=주한미군 철수자주화’를,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남한정권 타도 후 인민정권 수립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어 북한은 2단계로 남북합작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을 진행시켜 이른바 전조선혁명을 완성한다는 전략이다.

<도표1> 북한의 전조선혁명 전략

위 전략은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에서 체계화된 것인데 김정은 정권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 김정은은 제4차 당대표자회(2012)와 제7차 당 대회(2016)에서 당 규약을 수정했으나, 이른바 남조선혁명전략인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노선을 그대로 채택한바 있다. 대남전략에 입각한 김정은의 대남통일과제는 2016년 <제7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서> 중 ‘제3편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에 잘 집약되어 있다.

김정은은 제7차 당 대회 연설을 통해 ① 우리 대에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 ② 조국통일노선은 조국통일 3대헌장에 전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③ 북과 남은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는 위에서 연방 국가를 창립해야 한다. ④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평화보장과 연방제 실현, 이것이 조국통일3대헌장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당의 투쟁방침이다. ⑤ 이를 위해 “대조선적대시정책 철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남조선 침략군대(미군)와 전쟁장비 철수, 전쟁연습 중단, 대북 심리전방송과 삐라살포 중지, 화해와 단합에 저촉되는 각종 법률적·제도적 장치(국가보안법, 국정원 등 안보수사기관 해체 등 의미)의 제거” 등의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상에서 보듯이, 북한 대남전략의 핵심은 한국 땅에서 강력한 전쟁억지력인 세계 최강의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미동맹의 근간을 무력화하고 적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북한은 민족자주권을 확립해야 통일이 된다는 미명 하에 ‘반미자주화투쟁’을 선동하고 있는데 핵심 내용은“주한미군 철수, 조미 평화협정 체결, 유엔사 해체”등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대남전략에 부응하는 안보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철수론

북한의 대남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주한미군은 이른바 남조선혁명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세계최강의 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한 북한의 남조선혁명은 요원하다. 북한은 전쟁을 개시하면 한국군과 2만 7천여 명의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미 본토에서 ‘시차별 부대전개목록’(TPFDL)에 입각해 투입되는 69만 명의 증원군을 상대해야 한다. 일찍이 김일성은 남조선에 주한미군이 있는 한 남조선혁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주한미군 철수’를 대남혁명의 선결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북한은 남한혁명의 최대 장애물인 세계최강의 미군을 남한 땅에서 철수시켜 군사적 공백상태를 유도하고 이를 이용하여 무력으로 적화통일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북한의 남침전쟁을 억제하는 가장 큰 억지력(deterrence)인 주한미군을 먼저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의도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정부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고 있으나, 「판문점선언」(2018.4.27.)에서 명시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종국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실제 문대통령과 김정은은 한때 ‘북한의 비핵화’(북핵 폐기)는 뒷전으로 밀어 버리고 ‘종전선언’의 채택을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종전(終戰)선언이란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겠다는 선언이다. 현재 한반도는 휴전상태이다.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을 단행하여 3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정전)협정을 맺었고, 이러한 휴전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선언에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은 북한의 위장 평화전술에 부응하는 반()안보적 선언이다.

북한이 비핵화 이전에 종전선언 채택에 주력하는 저의는 ①한반도의 전쟁종식을 선언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위장)평화 분위기에 도취되도록 하고 ②현 정전체제를 무력화시켜 유엔군사령부를 불능화시키고 ③ 평화협정 체결을 유도하여 ④ 적화혁명의 걸림돌이 되는 세계 최강의 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시켜,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명시된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 통일 후 높은 단계연방제를 달성하여 결국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인 전 한반도의 공산화통일(적화혁명) 여건을 조성시키려는 것이다. 즉 종전선언은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인 한미동맹을 약화, 무력화시켜 이른바 적화혁명을 앞당기자는 것으로 집약된다.

북한의 평화협정은 전쟁협정 !

평화협정 체결도 종전선언과 같은 연장선에서 제기된다.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의 논리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켜 우리 내부의 군사적 공백을 틈타 무력으로 적화통일 하겠다는 간교한 책략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들은 평화에 환호하나,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전쟁협정 체결 주장에 다름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추진도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부응하려는 시책이다. 한국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강력한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이의 물리력인 한미연합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군이 자동개입함으로써 인계철선(trip wire)의 역할을 하는 강력한 전쟁억지력이다.

우리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주한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작전지휘권이 미국에 예속되어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군의 통수권은 분명히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평시 작전통제권도 1994년 12월 한국군에게 이양된 바 있다. 다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아닌 ‘한미연합사령부’에 부여한 상태이다. 따라서 북한의 전쟁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한미 공동방위기구인 ‘한미연합사’에 귀속된 전시작전통제권을 놓고 미국에 군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논리는 부당하다.

이의 연장선에서 문정부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수반하며, 인계철선 기능의 부재로 미군의 자동파병을 어렵게 하여 결국 적화로 가는 비단길을 깔아 주는 격이다.

기타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사례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말로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한미동맹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앞선 사례는 문정부가 북한이 대남전략에 충실히 부응하여 안보의 핵심 동력인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 사례이다 .

이외에도 ▲기 배치된 사드(THAAD)의 정상적 작동 방해꾼들에 대한 지속적 묵인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3 NO 원칙’(사드 추가 배치 불용,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미 참여, 한·미·일 3국 군사동맹 반대) 수용 ▲유엔사 관할권을 무시한 평양공동선언 부속 남북군사합의서 채택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강행 등이 있다.

한미동맹의 위기 근원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주 요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동맹인 미국과의 ‘신뢰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기저에는 문정권의 대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와대 내에 주사파 운동권 출신 참모들의 반미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운동권 시절의 반미 적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통 관료출신의 청와대 외교안보라인들도 이들에게 동화되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코드화된 정책 대변에 연연하고 있다.

한편 외교부는 미국과의 당당한 협력외교를 전개한다는 미명 하에 ‘(한미)동맹파’를 적폐 시하고 이른바 자주파들을 전면에 내세워 대미정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말이 ‘자주파’지 그들이 정책패턴을 보면 ‘반미/대북 굴종파’라 할 수 있다.

동맹이란 양국이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책연대와 공조를 통해 각자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문정부는 동맹인 미국을 외면하고 북한측 입장만을 옹호, 대변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양국 간 신뢰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말로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미국과의 공조를 배격하고 북한과 이른바 민족공조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연세대 특임교수)라는 분의 행보를 보면, “한미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은 사실상 남북관계를 희생하고 있다”, “한미관계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이다”, “하루빨리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고 있다. 이는 북핵개발 등 한반도 문제의 북한책임론을 도외시하고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며 한미동맹의 균열을 촉발시키는 주장이다. 더나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공조에 역행하는 것으로 북한 정권의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것이다. 문정권이 이런 자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바로 한미동맹의 균열과 와해를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미동맹의 복원을 위한 제언

한미동맹의 균열을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는 향후 중대한 안보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굳건한 안전장치인 한미동맹을 와해시켜 놓고 국가발전은 커녕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균열된 한미동맹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친북-친중-반일-반미 코드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먼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손상된 한미 간의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서 지적한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제 정책을 중단하고 한미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게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민간차원에서라도 한미동맹의 복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미우호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는 이유이다.

일본은 왜 미국을 선택했는가?

채 연 석
본 협회 사무국장

1. 서 언: 한국정부의 일본과 GSOMIA 중단 선언
                –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붕괴 위기-

2019년 8월 22일,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유일한 군사협정으로 2016년 11월에 북한의 병력 이동과 사회 동향, 북 핵·미사일 관련 정보 등을 일본과 공유하기 위해 체결했다. 한국은 탈북자나 북·중 접경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수집한 대북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고, 일본은 주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이나 핵에 관한 기술 제원 분석 자료를 한국에 제공하기로 하였다. 특히 일본은 한국이 보유하지 않은 정보수집 위성 5기를 비롯하여, 이지스함 6척,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초계기 110여 대 등의 다양한 정보자산을 통해 수집한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한국과 공유하기로 하여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 간의 안보협력은 물론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도 매우 긴요하게 작용한다. 지소미아는 단순히 한-일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한미일 공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한국이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과 함께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중단 선언이 발표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동맹국 사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깊은 우려와 실망’이라는 표현이 연일 쏟아져 나왔고, 일본정부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중요한 국가안보협정을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의 전략물자 수출금지 조치에 대한 보복적 차원에서 중단시킨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극한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되고 급기야는 북핵 미사일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지소미아 안보협정마저 중단시킴으로써 우방국 일본을 적대국으로 만들고 그 결과로 동맹국 미국이 등을 돌림으로써 우리 안보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중단 선택이 ‘진정 국익에 부합되는 올바른 선택이었던가’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한 국가의 지도자들의 선택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일본은 국가가 중요한 기로(위기상황)에 서 있을 때 그들 지도자들은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강대부국으로 성장시켰는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일본의 전략적 선택
     – 명치유신과 부국강병의 길, 대동아 공영권의 꿈

일본은 근세기에 세계의 열강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아시아 제국을 휩쓸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초강대국 미국과의 패권을 겨루며 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일본 제국을 달성한 바 있다. 그리고 2차 대전에서 패망 후 짧은 기간 내에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세계 제 3의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여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본이 그렇게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들 지도자들은 과연 어떠한 국내외 정책과 전략을 선택하였는가?

임진왜란 이후 출범한 도쿠가와 에도 막부는 260여 년간 쇄국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19세기에 들어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열강들의 서세동점의 세력에 시달리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4척의 군함의 위용에 굴복하여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고 개항을 하게 된다. 그리고 1868년 왕정복고와 함께 명치(明治;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명치유신은 쇠약해진 일본이 일거에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명치유신과 동시에 일본은 군사개혁을 핵심으로 국정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명치 군대는 처음에는 국내안정을 위주로 하는 치안유지군의 성격을 띠었으나 중국 및 조선 등 아시아에서의 서양열강이 각축하는 국제정세 하에서 자국안보의 눈을 뜨고 ‘정한론’의 대두와 함께 점차 외정군(外征軍)의 성격으로 변모하면서 해외점령정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880년대 이러한 위기의 안보정세 하에서 근대일본의 군사와 정치토대를 마련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 총리는 자신의 ‘외교정략론’에서 ‘주권선’과 ‘이익선’의 논리에 의해 조선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청국과 러시아, 영국등과의 각축전에서 청일전쟁으로 중국을 굴복시켰으며,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을 우방으로 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일전을 통해 승리함으로써 조선에서의 기득권을 장악하여 국가 이익선의 개념을 남만주까지 대폭 확장시키는 외교정책을 선택한다. 한편, 러일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당시의 글로벌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의 최강국으로 등장하는 독일에 대응하기 위해 3차에 걸쳐 영일동맹을 체결하고(1902,1905,1911), 불일협상(1907), 러일협상(1907)을 맺어 4국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우방국을 많이 확보하여 자국안보를 유지해 나가는 한편, 해양에서는 동아시아에서의 제해권을 획득하여 해군력의 우위를 점하고 급기야는 태평양에서의 미국과의 경쟁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소련의 위협이 점증되자 동아연맹의 주창자이자 만주사변을 일으킨 주역인 이시하라 간지 중장은 소련과 미국, 영국의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총합적인 국가전략과 국방정책(국방국책대강, 1936)을 추진하며 대륙침략을 감행하게 된다.

일본은 중일전쟁이후에도 열강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략을 펼쳐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는 한편,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의 저지를 위해 독‧일 군사협정 구상, 영국과 프랑스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일‧이태리 정치협상을 구상하고 중일전쟁 이후의 차기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이태리, 독일과의 방공협정을 강화한다. 차후 일본은 국익을 위해 일본의 국방자급권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여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남방자원 탈취를 위해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일전을 구상하며 미국을 저지하기 위해 독일, 이태리와 3국동맹, 소련과의 중립조약 등을 맺고 태평양 전쟁을 감행하게 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비록 미국에 굴복하여 패전하였으나,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의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3. 일본은 왜 미국을 선택했는가?
     – 요시다 정부의 결단과 일본 외교의 기축 對美외교-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던 일본이 어떻게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일본이 미국을 선택했고 미일동맹을 국가전략의 제일로 삼고 일관성 있게 유지 강화해 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출발은 패전 직후 패망한 일본을 부흥시킨 요시다(吉田茂) 수상의 독트린, 즉 ‘요시다 독트린’에서 출발한다. 이는 연합군 총사령부 점령 아래 일본 정권의 수장이던 요시다 시게루 수상이 주장한 일본의 외교노선이다. 요시다 독트린이 가지는 성격은 “ 1)냉전 상황에서 스스로를 서방세계,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제휴를 외교의 기조로 하고, 2)안전보장 면에 있어서는 미국에 의존해서 스스로의 방위력은 최소한도로 하고 경제외교를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즉, 일본의 안보 문제는 오직 미국에 의존하는 한편, 군사적 예산은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출하고 일본의 경제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요시다가 수상이던 195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동맹국의 군사력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미국은 1950년 6월, 강화 임무를 가지고 방일한 존 포스트 덜레스를 통한 일본과의 회담에서 일본을 재무장하여 군사적 지원을 받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시다는 덜레스의 요구를 거절하고, 맥아더의 양측의 의견에 대한 타협안을 수용함으로써 재군비를 회피하였다. 이후 일본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발전에 국가역량을 집중 할 수 있었다.

한편 전후 일본의 위정자들은 국익에 바탕을 둔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철저히 자국의 헌법(평화헌법)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일관된 정책을 잘 추구하고 있다. 일국의 헌법은 국가통치의 가장 근간이 되는 법으로 국가이익, 즉 국가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지켜야 할 법칙 또는 행동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미국의 극동정책과 대일점령정책의 일환으로 제정 되었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시대상황적 안보정세에 따른 극동 정책의 변화와 평화헌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직후 일본은 미소 양극체제를 중심으로 한 냉전기를 거쳐 소련 및 동구권이 붕괴된 냉전 종언에 이르기까지 냉전초기에는 한반도 전쟁으로 시작한 재군비의 출발로부터 냉전의 종료 전까지 소련의 ‘해양요새전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극동전략의 일환인 ‘해양전략’의 전초기지 역할로서, 냉전 후에는 새로운 전략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처로서 일본의 방위정책과 방위전략이 그때그때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전후(戰後) 오직 자국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선택했고, 70여 년간을 일관되게 대미외교를 국가외교의 기축(基軸)으로 하여 적극적인 대미외교를 전개하면서 미일동맹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4.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함의

1945년 2차 대전이 종료함에 따라 반세기 이상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놓여있었던 한일 양국은 거의 유사한 운명에 처해 있었다. 세계는 미소 양대 강국이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냉전체제로 진입하였고 그리고 양국은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을 동맹국으로 하는 매우 훌륭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미일안보체제가 출발하였고, 1960년 1월 19일 양국 간에 체결된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신 조약에 의거하여 미일 안보동맹체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미일동맹체제는 냉전시대 일본의 최대 안보위협인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켜내고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1등 공신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한미동맹은 휴전 직후 1953년에 10월 1일, 미 워싱톤에서 변영태 외무부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조인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 34호로 정식으로 발효된 대한민국과 미국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미동맹체제가 출발하게 되었으며, 한미동맹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이처럼 한일양국은 미국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 질서에 편입하게 되면서 한국은 한‧미동맹체제를, 일본은 미일동맹 체제를 각각 구축하게 되었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양국은 자연스럽게 우호협력체제를 만들어 감으로써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가 형성되었다.

미일동맹체제는 한미동맹과 우리안보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순기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가 세계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즉 미일안보동맹에 의해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미군은 한국은 물론 세계지역의 분쟁발생지역에 신속히 투입할 수 있도록 일본의 군사전략적 요충지역(오키나와, 요코스카, 사세보 등)에 3해병기동군(III MEF) 전력을 비롯하여 해, 공군 최첨단 전력들이 배치되어 운용된다. 또한 주일미군사령부가 위치하는 요코다(橫田)를 비롯하여 요코스카, 사세보, 후텐마, 가데나 등에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어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의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태세도 갖추고 있다. 유엔사후방기지회원국(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9개국)들은 자국의 선박 및 항공기를 이곳에 파견할 수 있다. 유사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주일미군의 존재는 한반도 전쟁의 위협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일본에 주둔하는 미 7함대의 활동은 아태지역 해상로의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평시 역내 국가들의 안전한 해상무역활동의 기반을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5. 결 언
     – 국익을 위한 한국의 전략적 선택-한미동맹 강화와 지소미아 중단 재고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중차대한 한미일 삼각한보협력체제가 우리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는 곧 많은 애국 지식인들에게는 국가의 존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위정자들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국익을 위해서는 신중한 판단과 결정을 했다. 한때 우리의 위정자들도 어려운 시기에 신중한 판단과 올바른 결정을 한 바 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튼튼한 안보를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의 위상과 국력이 신장하였다. 바로 슈퍼 강대국 미국을 우리의 강력한 동맹국으로 선택하고 동맹유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강하고 믿음직한 동맹국과 우방국을 스스로 저버리고 신 애치슨라인을 스스로 그어가며, 한미동맹을 깨뜨려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과 일본은 과거에도 중요했고 현재도 변함없이 우리 안보와 번영,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우방국들이다.

국가안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활적(critical)인 국익이다. 우리는 오늘의 어려운 안보위기상황 하에서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명치유신 이후 100년간 근세 일본을 세계 최고의 강대부국으로 성장시켰고, 2차 대전 패전이후 불구대천의 미국을 가장 친한 우방으로 선택하여 대미외교를 국가전략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냉전이후 주적 소련이 사라진 후에도 자국의 헌법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국익을 위해 더욱 미일동맹을 강화하여 국가안보를 튼튼히 보장해 나가는 일본의 선택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설사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여 비핵화를 달성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중국,러시아 등의 안보위협에 계속 대처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공존을 위해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지소미아 중단결정은 사활적인 국익차원에서 반드시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 해체, 평화공존전략이 가져다 줄 위험성

오종택
전 한국대학생포럼 회장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같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중략)…….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秋日抒情(1940.7)>

 

많은 사람들이 한미동맹이 해체를 앞두고 있다고 바라본다. 그 배경에 쉽게 잊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이다. 바로 전체주의 국가들의 동맹을 잊고 나의 동맹을 해체하는 모습들이다. 그 대가는 전 세계적인 전란이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은 바로 평화공존전략의 희생양이 된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다루고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2차 대전은 나치와 소련 간의 동맹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점(폴란드 침공).
  2. 네빌 체임벌린처럼 동맹을 해체하면서까지 독재국가와의 평화공존을 부르짖는 과정은 본연 독재에 대한 묵인과 방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
  3. 그 대가로 수십만 명의 청춘들이 총탄에 찢기고 더운 피가 길거리에서, 들판에서, 하늘에서 흩뿌려진다는 점.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의 해체는 모두가 느끼는 현상이다. 동맹의 약화를 원하는 쪽이 있고 이를 우려하는 쪽도 분명히 나뉜 갈래가 그 현상이다. 이 나뉜 갈래 끝 양쪽에서는 학식과 덕력을 갖추었다는 어른들이 서로 싸우기 바쁘다. 그리고 청춘들은 무기력하게 그들의 정치와 그들의 토론이 만든 미래에 몸을 내맡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이 오늘날 보여주는 무기력함은 청춘들이 쌍수들어 환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존 세대보다 불안을 앞서 느끼는 젊은이들은 한미동맹의 약화로 도리어 한반도에 이미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파시즘의 정의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치나 소련이나 근본은 같다. 나치들은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라고 설명하였다. 히틀러는 1941년 2월, 대중연설에서 ‘국가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으로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대인이 가진 통념과 다르다. 이들은 동일하게 인간의 자유 본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권력이 통제하고자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들의 정책과 정체성은 자연히 경제침체와 공공부채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국가사회주의는 절대 자유시장경제보다 윤리적으로나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없다. 결국 분배실패와 국가실패에서 온 불만과 불안은 다른 곳으로 돌려진다. 국수주의와 가공된 외부의 적을 향한 대외침략으로 말이다. 그것은 건국하자마자 침략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치와 소련의 모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미동맹이 맞대고 있는 현대 중국과 북한의 그 모습과도 같다.

이처럼 나치와 소련이 이러한 배경에서 침략을 위한 적당한 동맹을 맺었던 것처럼 중국과 북한이 적당한 동맹을 맺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자국의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야만이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체제들이다. 그에 따라 침략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서로 좋은 동반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육지 건너와 바다 건너에 이러한 상반된 체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를 누리고자하면 응당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어야한다. 여론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에 긍정적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오늘의 젊은이들은 청춘을 침식한다고 하는 징병제도도 기꺼이 감수하고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386세대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평화공존전략을 줄기차게 추구한다. 그 결과 북한과 중국 사이의 동맹이 가진 위험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한미동맹 해체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 안보를 해체한다는 자기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인륜과 평화를 서로 머릿속에 잇지 못하는 도덕적 모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평화구상이 가진 도덕적 모순은 소련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 아인 랜드(Ayn Rand)가 잘 짚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의 평화구상이 세계대전 같은 ‘전쟁의 뿌리’임을 지적한다.

“오늘날 평화운동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본질을 들여다보자. 그들은 사랑과 우리 인류의 생존을 고려해보자면서…(중략)…모든 방위력은 국가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다면서 버려져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은 인류의 이름으로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류(類)의 평화운동들은 독재체제들에 반발하지 않는다. 이 운동의 소속된 사람들의 정치관은 전체주의의 모든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으며, 복지만능의 국가주의에서 사회주의에서 파시즘에서 공산주의까지 아우른다.

이 논리는 그들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무력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한 국가의 정부가 자신들의 시민에게 무력으로 억압적인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들이 잘 무장한 전체주의 정부 앞에서는 우리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무력을 쓰는 그들의 유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상, 아인 랜드, “전쟁의 뿌리”>

한미동맹의 약화는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가에서 반인륜에 침묵하는 쪽의 목소리가 강해진 것이다. 시민의 인권 사유재산에 대한 약탈과 파괴, 노동교화소와 고문실 등을 자행하는 독재정권들의 문제에 침묵하고 그들과 공존하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바로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반인륜적인 것들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70년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미국의 헌법적 정신이 근거다. 미국은 정부가 절대로 그런 짓을 자행하지 않겠다는 헌법을 만든 유일한 우방이기 때문이다. 약해진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것은 대다수 독재와 더욱 가까워지는 우리 국가의 모습이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 아인 랜드는 이들을 짚었다. 전체주의 정부에게 무력을 쓰는 것을 거부하나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무력을 쓰는 유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평화운동’의 사상적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것은 “전쟁의 뿌리(The Roots of War)”다.

독재국가에게 평화공존 정책을 제시한 이상 그들 독재국가는 모든 종류의 독재적 지배를 위한 시간을 번다. 그래서 한미동맹 해체를 가져오는 그들의 평화공존전략은 독재국가와 공범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결국엔 그 모순이 전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 추악한 모순의 대가는 젊은 세대가 진다.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말이다.

선배와 어른들이 이런 비극을 막는데 실패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청년들은 하나 둘 씩 그런 미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미동맹의 위기를 청년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 전란의 미래다.

북한과의 대치뿐 아니라 대화 국면에도 중요한 韓美同盟, 그리고 현재 위태로운 한미관계

유재영
협회 대학생위원장

여섯 차례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북핵폐기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했다고 내세운 남북군사합의마저 무시한 채 미사일 시험, 함박도 무장화 등 적대행위를 강행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과 한미동맹 훈련축소를 비롯한 여러 유인책이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이태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만족할만한 회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북미대화에 괜한 오지랖을 피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의 입장을 우선시하면서 비난을 받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수모지만, 무리하게 ‘한반도 운전자론’을 고집하는 정부 지도층의 현실감각 결핍도 걱정스럽다.

외교적 호의를 베푸는 데 살갑지 않은 반응을 내놓는 북한은 참으로 답답한 대화상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정세를 직시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또한 반성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숙원인 대북제재 완화는 현재 미국의 결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북한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써 정도만 남북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즉, 한국과 협력해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다지는 데 계속 이용할 것이다. 예컨대 2017년부터 미국이 광범위한 경제제재를 북한에 가하자, 김정은이 초창기에 손을 벌린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북한외교에 힘을 실었다). 참고로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방법들이 교묘해지고 미국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지금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북한의 한국 패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이 북한 비핵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대북 협상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가 더욱더 견고해져야만 하며, 이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행태의 대북 대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 번째, 강력한 한미동맹을 앞세워 미국의 핵우산 보호 아래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현 동맹국의 역외 핵자산이 언제든 전진배치 되어 전술핵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러면 북핵으로부터의 비대칭적 안보위협을 지금보다는 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한미공조가 잘 이루어질수록 북한은 핵심 대화 파트너인 미국을 포섭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라도 한국의 안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한미 외교·안보 실무진들 간 교류가 긴밀할 경우 북한은 주요 대미 연락망(contact point) 확보 등의 이유로라도 한국을 찾아 나설 것이다.

강력한 국방력과 사회체제 우위를 내세운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diplomatic solution)을 강구 할지라도,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굳혀서 북한 이슈에 있어 주요 협상국의 지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짚어보면 긴밀한 한미공조는 대북 강경책뿐 아니라 유화책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전작업이라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며, 한미관계가 취약해진 지금 시점에 꼭 환기되어야 할 사실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있어 ‘리비아 모델’(일명 先 핵폐기, 後 보상)을 주장해온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을 해임 시키고, 국무부에서 인질문제 특사로 지낸 로버트 오브라인을 신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였다. 비록 오브라이언 보좌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이 없으나, 그가 백악관 및 국무부에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팀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앞으로 북한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폼페이오 사단’의 영향력이 커지자, 청와대는 미국과 북핵 이슈에 대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논평했다. 언뜻 보면 지금의 한미관계에 청신호가 켜진 것 같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일방적인 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한일군사협정) 파기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각종 친중 발언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가 계속 친북 및 반일 외교를 고집하자, 美 국무부는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내 비추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6년만에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한미관계는 여러 악재(惡材)를 마주하고 있다.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한미관계 개선을 위한 결의를 다질 것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한반도 核시대,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미래비전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통일연구원 초청위원

한반도 핵시대의 도래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 간에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던 ‘재래식 균형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 7월 ICBM 발사와 9월 수소탄 실험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이 美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려는 미국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었다. 냉전시대 서유럽의 NATO 국가들이 과연 미국이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소련의 핵공격을 무릅쓰고 파리와 함부르크를 방어할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듯이, 이제 한국도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을 독점한 가운데 미국의 對韓 방위공약에 대한 신뢰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한미동맹은 창설 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해있다.

김정은이 핵포기를 약속했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지 않는 국민이 80%에 달한다. 여섯 차례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북핵폐기에 진전이 없자 비핵화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좌절감이 분출하고 있다. 1945년 지구상에서 핵시대가 열린 이래 핵개발 단계에 있던 나라들은 외부의 압박과 설득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핵을 완성한 나라의 핵포기는 체제변화를 통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사례뿐이다. 이라크와 시리아(군사공격), 이란(제재), 리비아(당근)는 전자에 해당하고, 남아공과 우크라이나는 후자에 해당된다 남아공은 흑백정권 교체기라는 내부 요인으로,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 붕괴라는 외부 요인으로 체제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도 사회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북핵의 볼모가 된 오늘의 상황은 우리가 먼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소위 비핵화외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비핵화외교는 처음에는 당근으로 핵포기를 설득하다가 1차 핵실험 후부터 채찍을 들고 압박했으나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다. 트럼프의 최대압박 정책도 실패한 비핵화외교의 막바지 시도일 뿐이며, 미국 내에서도 비핵화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대북압박의 일환으로 제한적 군사옵션이 거론되었지만, 전면전이 아닌 한 북한의 핵포기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상당기간 핵을 가진 북한과의 공존을 각오하고 북한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핵폐기를 실현하는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현주소

하와이와 괌은 물론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치, 외교,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김일성은 30년 전에 핵개발을 미끼로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어 직접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토대로 선대의 숙원이었던 미북 정상회담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북핵을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강박관념이 커진 탓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한다는 구실로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등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핵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미국에서 한미동맹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고 국제질서와 동맹의 가치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다. 그는 국제협약을 파기하는 것은 물론 오로지 돈을 잣대로 동맹의 가치를 재단하며 우방국들을 압박한다. 한미훈련을 값비싼 전쟁게임으로 비하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한다며 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도 트럼프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미국에 대한 위협은 아니고 다른 나라도 하는 실험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북한의 핵, ICBM 시험 중단과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자랑하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트럼프로 인해 북핵문제의 불확실성만 높아졌다. 그가 美본토를 위협하는 ICBM만 폐기하고 북한이 핵을 탑재한 단·중거리 미사일을 갖도록 용인하는 것은 아닌지, 내년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국지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지 많은 국민이 불안해한다.

미국의 군과 관료집단의 태도도 문제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비합리적인 정책이 이들의 저항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있었다.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가 좌절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는 미국의 국익을 폭넓게 조망하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신뢰할 만 한 참모가 없다. 카터의 철군에 반대해서 옷을 벗은 싱글러브 소장과 같은 용기 있는 군인도 찾기 어렵다.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코트 국가정보국장과 같은 정직한 인사들이 줄줄이 떠나고, 그 자리를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는 예스맨들이 채우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야심이 큰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역대 美정부가 제공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는 ‘전례 없는’(unique)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안전보장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국의 對韓 안보 공약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대해 우리국민은 아는 바가 없다.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 북핵문제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했던 탈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하며 국익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경쟁시대가 도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중국, 이란과 북한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고 서방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현상변경세력으로 규정했다. 이 세력의 특징은 미국과의 전쟁은 피하면서도 공격적인 외교, 대담한 군사행동, 우호세력을 활용한 대리전을 배합해서 미국 영향권의 주변부를 공략하고 동맹을 위협하는 소위, ‘간보기’(probing)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확보, 이란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원,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반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 핵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북한을 대리인으로 삼고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는 간보기 전략의 장이자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안보우려도 해소되어야 한다며 ‘쌍중단’과 ‘쌍괘병행’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미훈련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러시아 모두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양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핵폐기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도 전략적으로 미·중, 미·러의 경쟁관계를 잘 이용해왔다.

북핵문제가 강대국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할수록 북핵폐기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러시아의 지원 하에 동북아 질서를 자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부담을 주는 지정학적 게임을 펼칠 것이며, 그 만큼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한반도 핵시대, 동맹의 미래비전

한반도 핵시대에 한미동맹은 유럽의 NATO처럼 핵동맹이어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시대의 냉엄한 교훈이다.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한 경쟁국들은 모두 상대방의 핵개발에 자체 핵개발로 응수했다. 적대세력의 핵에 핵으로 맞대응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이다. 한 국가의 재래식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상대방의 수소탄 한 발을 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핵을 보유한 핵국과 그렇지 않은 비핵국 사이의 관계에서, 핵무기는 비핵국으로서는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한 핵국의 절대무기인 것이다.

이런 제반 상황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며 비핵화외교를 하던 기존의 한반도 안보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실체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우리도 핵으로 맞대응하면서 북한의 핵사용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구도로 안보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북핵폐기 목표를 단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력을 모아야 할 초점을 단기간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북핵위협에 대한 대응, 즉 억지와 방어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핵을 독점한 북한이 가하는 정치·외교·군사적 위협과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사회·심리적 압박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제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기대를 걸며 유지해왔던 재래식 대결구도가 북한의 핵독점으로 와해되었음을 자각하고 비핵화외교를 고수하던 북핵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일방적인 핵보유로 조성된 전략적 불균형을 우리가 핵옵션을 행사해서 한반도에서 ‘핵 對 핵’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핵의 균형에 입각한 새로운 한반도 핵시대를 열어야 한다. 핵균형 시대에는 전략적 취약성이 전략적 안정성으로, 공포의 불균형이 공포의 균형으로 대체됨으로써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 미∙중 관계와 같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도 핵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는 북한의 재래도발에 대한 ‘재래억지’(conventional deterrence)와 핵도발에 대응한 ‘핵억지’(nuclear deterrence) 사이에 괴리가 있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재래억지는 휴전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한미동맹의 병력과 화력을 전진 배치하는 태세를 유지했다. 북한의 도발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성공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서 애당초 도발을 생각하지도 못하도록 한 것이다. 휴전 이후 1·21 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비정규전 성격의 도발은 있었지만 국지전이나 전면전 등 대규모 도발은 전진배치에 기반 한 억지태세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동맹의 핵억지는 재래억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 채 핵억지를 미국의 핵자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핵우산은 한반도 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한 것이 아니라 ICBM, SLBM, 중거리폭격기 등 역외에 배치된 핵투발 수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이다. 만약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는 경우 역외의 전략핵자산으로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트럼프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핵을 사용한 김정은이 살아남을 시나리오가 없다고 할 정도의 보복위협을 통해 북한을 억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진배치가 생략된 채 역외 핵자산에 의존하는 억지태세는 북한에 핵이 없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구시대의 유물일 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늘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아울러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해서 지금도 미국이 소규모의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NATO와 비교해도 타당하지 않다.

결론

한국은 ‘북한에 의한 핵독점’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에 처해있다. 핵시대가 열린 이래 군사적으로 대치한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유일하다. 국민을 북핵의 볼모로 만든 오늘의 현실은 노태우 정부 이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가 고수했던 비핵화외교의 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이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이 추진했던 비핵화외교를 ‘서희 담판’과 대비하여 건국 이후 최대의 외교참사이자 되풀이해선 안 될 안보참사로 기록할 것이다.

북한은 전술적 차원에서 수용한 비핵화란 용어를 공세적으로 역이용해서 한미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고 보상을 챙기면서 핵개발에 성공했다. 겉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비핵화외교의 장막 뒤에서 핵개발에 전력하면서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반면에 한미는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한의 핵포기일 것으로 믿고 경제・외교・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북한을 설득했고, 이제는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 군사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실정이다.

한미동맹은 현재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 번영과 평화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대등한 동맹을 만들기 위해 한국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맞서 당당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책임 있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가는 게 능사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동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적절히 분담해야 당당해질 수 있다. 세상이 달라졌고 국민의식도 바뀌었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자존과 국격을 지키며 의견대립과 마찰도 불사하는 치열하고 주체적인 대미외교를 원한다. 정부와 국민 모두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결의와 동맹도 국익을 위해 활용한다는 용미(用美)의 자세로 무장해야 한다.

한일 역사 갈등의 고양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에서는 한일관계와 한미동맹은 별개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냉전시대에는 소련, 중국, 북한이라는 사회주의권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안보동맹으로서의 남방 삼각관계로서의 한미일 협력이 강조되어 한국과 미국 일본을 하나로 엮어서 생각하는 방식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북방으로부터의 연합된 공통의 위협이 약화된 사회주의권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한미일의 협력 필요성은 예전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안보 면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희박해져갔다. 또한,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화되면서 일본과 점차 대등한 관계를 가지게 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동등한 주권국가로서의 독립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한일이 일체화된 그룹에 속한다는 의식은 약화되었다. 양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동질성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한국과 일본이 같은 진영에 속하고 협력적 기운이 고양되는 것이 당연시될 줄로 알았지만, 한일 양국관계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은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일 양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적인 역사 수정주의의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억압되었던 진보적인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표면에 등장하였고, 이들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완전하게 청산되어 있지 않았던 미완의 과제들을 정면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충격적인 경험의 고백이 있은 직후부터 위안부 문제는 정치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도 상대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한국에서 일본에 대해 숨겨진 이슈들을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 시대의 ‘가혹한 가해자’였음을 상기시킨 것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사회당이나 자민당 내의 비둘기파들을 중심으로 한 리버럴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역사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1993년 고노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등은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냉전 후 한일 양국의 ‘역사화해’를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의 협력 분위기를 고양하려던 지역협력의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사회에서도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한 반동적 역사관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1993년 자민당 비둘기파에 의한 역사 반성과 사죄에 제동을 걸면서 자긍심을 가진 역사관, 사죄와 반성보다는 일본의 자존심을 높이는 ‘국민의 역사’ 재구성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이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였다. 현재 아베정권의 지지부대의 모태가 되는 우익세력 ‘일본회의’가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 당시의 민족주의적 세력의 조직화는 자국 내에서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인 동시에, 한일 양국 간의 ‘자극과 반응’의 흐름 속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한일관계가 미국의 조정이나 매개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길항관계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사태의 전개였다. 사실상 미국도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입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이 한국의 식민지 시대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처리에 임하지 않은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평화헌법 제정 등을 통해 ‘징벌적 평화(punitive peace)’를 요구하였다는 측면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두려워한 측면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일 간의 역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일의 협력적 움직임이 지속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첫째, 일본 내에 전전의 경험을 공유하고 식민지와 전쟁에 대해 회한의 심정을 가진 진보적이거나 리버럴한 정치세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유럽에서의 지역통합의 전개를 보면서 동아시아에서도 다자간 협력의 제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정치지도자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동아시아 협력 구상’이라든가 ‘한중일 협력’의 기운이 고양되면서 한일은 지역의 일원으로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었다. 셋째, 1989년부터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미사일 개발은 한일 양국으로 하여금 소련과 중국에 대신하는 ‘새로운 위협요소’로 자리 잡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일이 공동 대처하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재발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이 한일 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의 하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초강국인 미국의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인 존재감이나 한미동맹, 미일동맹의 유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은 거의 없었다.

2001년 9.11사태의 발발로 인해 세계가 테러집단에 의한 대량살상무기의 획득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상당 기간 미국은 자국에 도전하는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처를 뒤로 하고 북한, 이란, 이라크 등 ‘악의 축’의 국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연계하여 미국과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면서 점차적으로 미일동맹을 글로벌화 시키는 데 집중하였다. 반면 중국의 부상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중국의 성장을 과실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가속화되어 한국은 중국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통상무역을 통해 단기적이 이익을 많이 축적해 나갔다.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보면,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자연스런 공동 대처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피해자로서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한중 양국의 공통성 때문이었으며, 중국이 아직은 개발도상국으로서 지역 및 세계질서를 교란하지 않는다는 온화한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는 데 대해, 일본은 국제적인 지원을 통해 국제안보와 일본의 국가안보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점차 정착되어 갔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능력이 향상되면서 한국은 북한문제의 처리에 골머리를 썩여야했다. 진보정권하에서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보수정권하에서는 ‘압박과 제재’ 정책이 번갈아 시행되었지만, 북한의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싶다는 심정에서는 공통된 접근법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대북 견제와 억지전략으로서의 기본 성격에 의문을 가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미국과의 동맹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2010년을 전후 하에 한일 간의 갈등의 역학은 변화의 조짐을 나타냈다.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이 탄생한 이후 하토야마 정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유화적 동아시아 정책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9월 이른바 ‘센카쿠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몸으로 체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은 점차 중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급선회에 나섰다. 2012년 정권을 다시 잡은 아베는 중국에 대한 경계감을 숨기지 않고 내세우면서, 중국을 포위하고 해양진출을 억제하려는 미-일-호-인도 4개국에 의한 ‘다이아몬드 안보구상’을 내놓았고, 나중에 이 개념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재 명명되면서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의 중추적인 요소를 형성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미국도 이 전략에 동승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전략은 더욱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의 요체가 바로 인접국인 한반도의 한국과 북한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질서의 도전자인 중국으로 이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정면 대응하는 글로벌 차원의 파트너로서 점점 협력의 날실을 촘촘하게 짜나가기 시작했다.

반면, 북한은 김정일 말기와 김정은 초기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급격하게 발전시켜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 나아가 하와이와 괌을 타격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 데 이어, 2016년 즈음이 되면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미사일 타격능력의 개발에까지 나섰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은 북한을 최대 압박을 통해 공세적 움직임을 제어하려는 욕구와 더불어, 중국 등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통하여 북한의 불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통일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인 ‘통일대박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바란 점에서 박근혜정권은 새로운 대북접근법을 시도한 것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움직임은 일본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정도의 불신을 자아내게 했다. 첫째는, 중국군 창설 70주년에 북경 천안문 망루에 푸틴 및 시진핑과 함께 서게 됨으로써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이 ‘탈일본’하여 중국에 다가서고 있다는 깊은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 둘째, 한국과 중국이 피해자의식이 공유를 기초로 하여 일본에 대한 역사문제 공략을 함께 시도함으로써 일본의 우익세력의 발흥을 더욱 강화시켰다. 일본 언론에서는 ‘중한’이라는 단어를 활용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이 전략적으로 한 바구니에 있으며, 이들 두 나라가 역사문제를 내세워 일본을 괴롭힌다는 인상을 확산시켜나갔다. 당시 오바마정권 하에서의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접근법을 통해 북한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법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일 간 역사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안부 합의’를 종용하는 한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할 것을 주문하였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 한국은 일본을 향해 두 가지의 도전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위안부 합의의 형해화’ 및 강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였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1965년 청구권조약에 의해 징용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일본과의 정면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관여정책’이었다.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염두에 두고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신한반도 평화구상을 내놓으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강한 압박과 제재를 선호하는 일본과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징용문제가 완결되었다는 일본이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거듭 요구하고 협의와 중재를 부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무반응, 무대책,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의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한국의 대응에 대한 불만감으로 표시로 사실상 경제보복에 해당하는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국가로부터의 배제‘를 선언하였다. 특히 전자는 수출관리의 불비를 이유로 하였으나, 후자와 관련해서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내걸었던 관계로 한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마치 한국이 북한과의 연루 속에 비우호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한국의 기간산업에 대한 재량적 자의적 규제조치를 취하고, 한국만을 쏙 빼내어 비우호국 취급을 함으로써, 외교 갈등은 본격적으로 경제 분쟁으로 비화하였다, 한국은 이에 대항하여 민간차원에서는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운동을 벌이는 한편, 정부차원에서는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동시에 안전보장을 이유로 했다는 점을 틀어 안보협력의 상징이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연장을 사실상 중단하는 결정을 8월 22일에 내림으로써 경제 분쟁을 안보협력의 거부라는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한일 간의 고질적인 역사분쟁은 언제고 미국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역사문제에 관한 직접적인 개입을 늘 회피해왔다. 자국도 역사의 죄인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전 행정부였다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설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겠지만, 현재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통상과 무역을 ‘무기화’하는 전략을 상시적으로 구사하는 관계도 있고 해서 굳이 한일 간의 경제 분쟁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에 대항하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중단을 선언하고 나자 ‘우려를 넘어 실망하였다’는 논평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조치들에 대한 대항조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이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대응하여 한미일 협력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상징적 의미도 가진 것이어서 다지 한일관계의 유동화에 그치지 않고 한미관계의 본질적 수정 내기 미국의 권위와 설득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지소미아의 연장 중단을 일본에 통보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지소미아의 자동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소미아는 11월 23일까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다. 따라서 일본과의 협의 여하에 따라서는 막판에라도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한일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관리 가능한 관계 재수립을 위해서는 한국이 11월 23일 이전에 이를 번복할 수 있는 정책적 재량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이에 상응하는 우호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국을 다시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켜 우호국으로 대우한다는 외교적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양국이 한걸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한일 갈등은 서로가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미국도 한일 간의 장기적인 갈등이 자국의 이해에 반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적극적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일 간의 갈등은 결국 양자에게는 손해를 가져올 뿐이고, 북한에게는 직접적인 수혜를 안겨줄 뿐이며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게 한다는 점에서 하수중의 하수의 결정이다. 양국의 지도자의 냉정하고 현명한 사태의 관리과 관계 회복이 더욱 중요해 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