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능선 전투 전적비를 찾아서

최상진
수필가 / 본 협회 편집위원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 양구

내가 사는 마을은/대안산 아래 작은 마을/저 너머 북녘하늘 바라보며/

소리쳐 부르면

이산가족 달려 나와/손짓 할 것 같은데/아무리 불러 봐도/대답이 없어요.

가칠봉 정상에 올라/산 아래 북녘 땅 바라보며/소리쳐 부르면

북한 친구 달려 나와/뛰어놀 것 같은데/아무리 불러 봐도/메아리만 대답해요. (중략)

 

1977년 6.25전쟁 47주년을 맞아 경찰청이 주관한 제 1회 전국 학생 백일장 아래 우리 마을”이란 작품이다. 양구의 어린 소녀의 시에서 우리민족의 참담하고 불행한 전쟁의 양상을 떠 올리고 인류 역사상 어디서도 전례가 없는 동족상잔의 참혹성과 그 결과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바닥에는 동판으로 “You want peace, remember war!!”, 즉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문구가 새삼 가슴깊이 와 닿는다.

이번에 답사한 양구 지역은 우리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6.25전쟁 시 군사 요충지로 격전의 현장이었다. 6.25전쟁이 만 1년을 경과한 시점(1951년 7월)에서 펼쳐진 양구지역 전투는 전쟁 당사국과 지원 강대국들의 지루한 협상과 치열한 고지전의 공방속에서 피아 장병들의 막대한 희생과국토의 파괴 등 목적과 결과에 비해 과정상 너무나 큰 희생을 낳았고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던 전투이었다. 이 땅에 그러한 전쟁의 참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68년전 이곳 양구에서 있었던 치열했던 전투를 회고해 본다.

1951년 양구 전선

전쟁의 피로감은 고조되고

1951년 4월 지평리 전투를 기점으로 6.25 한국전쟁은 양상은 전면전에서 휴전을 염두에 둔 국지전, 고지전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양구와 철원지역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회담과 직결된 곳으로 1953년 7월 27일 협상이 종료 될 때까지 쌍방이 협상 주도권과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행해진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 2년차인 1951년 6월의 전황은 피아간 극심한 피해로 전쟁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각자의 정치상황에 따른 대안, 즉 휴전에 관한 논의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5차 공세의 실패로 인한 10만의 병력의 손실과 소련이 약속한 60개 사단규모의 전투장비 및 전쟁물자 지원이 지연됨으로 1주일 이상의 전투를 수행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북한은 더 이상의 폭격 목표물이 없을 정로 철저히 파괴되어 김일성 체제 유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 7만 8,8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힘에 의한 승리는 힘들다는 결론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과 확전, 궁극적으로 대치하게 될 소련과의 마찰로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대전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人海)전술과 미국의 화해(火海)전술은 현대전의 전술로는 너무나 무식하고 비인간적 살상의 형태였다.

억지와 이기적인 지루한 휴전 협상

미국과 중국의 소비적 전투로 힘이 약화되기를 내심 희망한 소련은 공산 3국(소련, 중국, 북한)의 대표 격으로 1951년 6월23일 소련 유엔 대표 말리크가 휴전 제의를 발표하고 1주일 후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정식 제안하고 중국의 팽더화이(彭德懷)와 북한의 김일성에게 수락함으로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은 처음에는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어 7월 26일에는 의제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후 일차적인 어려움은 양군의 경계선의 책정문제였다. 이미 38도선을 넘어서 진출하고 있던 미국은 양군의 접촉선에 따라서 결정하자고 주장한 반면, 공산측은 38도선의 원상회복을 고집함과 동시 한반도로부터 외국군(특히 미군)의 철수를 고수하여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8월 22일에 공산측이 회담의 중단성명을 냄으로써 회담은 정지되었다. 회담은 시작은 순탄해 보였으나 설전(舌戰)이 혈전(血戰)으로 이어지며 2년 간 죽음의 시간이 흘러갔다.

– 19517월 전선(戰線)의 난기류

여전히 전투는 미국과 중국의 주도로 치러지고 있었지만 국군의 경우 군 체제의 정비와 훈련으로 점차 일선 전투부대의 역할이 커졌다. 미군은 여전히 막강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전장의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지상전투에서는 기계화 부대의 기동능력을 극대화해 나갔다. 그러나 전투가 장기화하자 휴전과 정전을 염두에 둔 전략이 구사되어 무리한 남하, 북진의 완승개념의 전투가 아닌 휴전 또는 전쟁 재발 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 즉 전면전에서 고지전, 산악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전투의 양상이 바뀌면서 공중폭격이나 첨단병기의 운용이 제한적이었고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우선되는 뺏고 빼앗기는 살상의 소모전이 지속되었고 승자도 패자로 가릴 수 없는 혼돈의 시간에서 참전국의 정치적 입장은 어떤 목적이던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하기 힘든 방향으로 기울어져 미국과 중국은 휴전협상의 조급증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1년 7월 이후의 전투들에서 치열했던 전투상황 속에서 전쟁 영웅담들이 전쟁으로 야기된 비극적인 모습과 처절함이 전적비와 추모비에 새겨져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서글픔에 가슴을 여민다.

양구지역 9대 전투

양구 전쟁기념관에는 야외에 9개의 기둥에 1951년 6월부터 12월까지 양구에서 일어난 전투 양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투명 기간(1951년) 참전 부대
도솔산 전투 6.4–6.20 미 해병 제1사단 외. 국군 해병 1연대
대우산 전투 7.8 -7.31 미 제 2사단. 네델란드 대대. 국군 해병
피의능선 전투 8.18-9.5 미 제10군단. 미 제2사단. 국군 3,5,7,8사단
백석산 전투 8.18-10.28 국군 제7,8사단. 미 제96야전 포병대대
펀치볼 전투 8.31-9.20 미 해병 1사단, 국군 제 1 해병연대
가칠봉 전투 9.4 -10.14 국군 제 5사단
단장의 능선 전투 9.13-10.13 미 제 10군단, 제 2사단. 프랑스/네델란드 대대
949고지 전투 11.17-11.18 국군 제6사단, 제 8사단
X마스 고지 전투 12.25-12.28 국군 제 7사단

당시 양구지역은 6개월 동안 사상최대의 폭격이 가해지고 피해규모도 엄청나 피아간에 사상자가 아군은 전사 2,797명, 부상 외 13,801명, 적군은 전사 25,422명, 포로 2,015명이 발생하였다.

산하(山河)를 붉게 물든 피의 능선 전투

피의 능선 전투는 중공군 6차 공세(2차 춘계 공세)의 하반기에 해당한다.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1951년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한 유엔군은 향후 전황을 전쟁 이전상태로 회귀해 휴전으로 종결하고 최종 목표인 통일국가는 유엔 기구를 통해 계속 추구하기로 내부방침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군의 1차 저지선을 임진강-영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설정하고(서부전선에서는 38선에서 3-9km 정도, 동부전선에서는 16km 북쪽의 산과 고지를 연결하는 선) 이를 캔사스 선이라 명명했다. 예상보다 쉽게 캔사스 선을 확보한 유엔군은 캔사스 선의 북방 10-20km 내에 방어선을 설치하여 최종 방어에 주력하게 되었는데 이 선이 유엔군이 주장한 휴전회담 당시의 군사접촉선으로 휴전선의 기초가 되었다.

양구지역 전투의 또 다른 특징은 공산군의 불성실한 회담(전황이 불리한 경우 갖은 핑계로 회담 불참, 중지)태도에 유엔군은 강력한 군사적 압력으로 그들을 회담장으로 불러낸다는 전략이었다. 피의 능선 전투를 비롯한 양구지역 전투는 당시 공산군의 동북부 주요 보급기지인 해안분지(亥安盆地)를 확보와 캔사스선 고수를 위한 전투로 휴전 초기 최대의 격전지로 손꼽히고 있다.

1951년 휴전회담 기간 중 북한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은 주요 고지대를 요새화하여 미군과 국군에게 큰 난제였다. “피의 능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된 수리봉 983 고지를 중심으로 940, 773 고지는 현재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이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 제 12 보병사단과 제 27 보병사단은 북쪽의 문등리 계곡과 사태리 계곡 일대, 아군의 후방지역인 인제 일대까지 관측하며 주저항선과 주보급로는 물론 화력지원과 병력 이동상황 등 모든 군사행동을 제어하고 있었다.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7일 아침 한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8월 25일 10여 일에 달하는 공격으로 능선을 점령했으나 다음날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이때 한국군 제36연대는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 뒤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 대대 ,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그리고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공격을 감행했다. 8월 27일, 940고지에 있던 미 제9연대 제2대대가 983고지를 공격하였고, 28일에는 제3대대가 동쪽에서 긴 능선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8월 30일에는 제1대대 및 제2대대가 북쪽 940고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능선 정상의 수백 미터 전방까지 진출했다가 적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말았다. 이후 9월 3일까지 제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러, 3주일 동안 지속된 한·미 양군의 공격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투 결과 북한군 제6 보병사단 13 보병연대, 제12 보병사단, 제27 보병사단은 1,250명이 사살되는 등 총 15,000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해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한국군 제5 보병사단 36 보병연대와 미 제2 보병사단 역시 전사 326명, 부상 2,032명에 실종 414명이라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한·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하였다. 하루 평균 3만-5만 여발, 총 42만 여발의 포탄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2천 여발의 대인지뢰가 터지는 가운데 수많은 장병들이 발목이 절단되는 부상자를 감수해가며 끝내 고지를 탈취하는 모습을 미국 기자가 ‘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으로 격전 상황을 보도하면서 ‘피의 능선’이라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국군 제21 보병사단 “백두산 부대”가 수비하고 있으며 당시 격전지에는 1980년 11월11일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기타 양구지역 주요 전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솔산 전투

도솔산(해발 1,148)은 해안분지를 감제관측 할 수 있는 요충지로 미 8군으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 제 5해병연대와 교대해 도솔산 탈환을 명령 받은 국군 제 1해병연대는 악전고투 끝에 야간기습으로 도솔산을 점령하였다. 국군 해병대 5대 전투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도솔산 전투로 이승만 대통령이 무적해병의 휘호를 하사하고 해병대를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다.

펀치볼 전투

“펀치볼을 공격해 공산군의 요충지를 탈취하고 아군의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확보 한다”는 전략은 휴전회담 이전에 세운 아군의 작전개념 이었다. 와이오밍선의 구축과 공산 측을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게 할 목적으로 행해진 이 작전에서 미 해병 1사단과 국군 해병 제 1연대는 탈환 고지 명을 적개심 고취 차원에서 김일성 고지, 모택동 고지로 명명하여 북한군 제 3군단 1사단을 치열한 혈전 끝에 펀치 볼을 확보했다.

가칠봉 전투

펀치 볼 전투에서 전세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작전지역의 중앙인 가칠봉 일대에 국군 제 5사단을 투입하면서 전투는 시작되었다. 차후 작전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1,122고지(가칠봉 전방 500m)를 점령하기 위해 40일 동안 고지쟁탈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국군은 여섯 번의 쟁탈전을 거치며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하며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단장의 능선 전투

남으로 처져있던 주저항선을 정리하기 위하여 양구 북방의 931고지(일명 단장의 능선)를 1개월에 걸친 공격 끝에 점령한 전투이다. 미 2사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단장의 능선을 공격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잔여 2개 연대를 투입하여 전차를 주축으로 한 특수임무 부대로 적의 후방을 강타하면서 이 능선을 확보하였다.

양구지역 전적 비 방문을 마치며

아직 무언가 어색한 기운이 돌지만 오늘의 양구는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곳이다. 펀치 볼이 상표가 되어 펀치 볼 시래기가 특산품으로 팔리고 70년 전 피에 젖은 전쟁 상처가 상품이 되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미 제 2 보병사단 과 국군 제 5사단 36연대가 주축이 되어 피로서 지킨 현장에서 산화한 국군용사와 혈맹으로 이 나라를 지켜준 미군 장병들에게 감사의 묵념을 드린다. 굳건한 한미동맹만이 이 나라를 지켜왔고 또 지켜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깊어지는 여행이었다. 동행해 주신 협회 채연석 사무국장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한미우호협회가 한미동맹의 영원한 기축이 되기를 기원한다.

양구지구 9대 전투기념물
(양구 전쟁기념관)

도솔산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양구 전쟁기념관)

 

100세 인생 생활의 힌트 (12)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이사장, 본 협회 부회장

방학이 되어 3세 손자들이 자주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옵니다. 중1, 중2, 고1들입니다. 우리 세대는 고맘때 6.25를 당했지요. 중4를 마치고 한 달도 안돼서였습니다. 80평생 가운데 전쟁 전 그 4년간의 중학생활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떠오릅니다. 그때 공부하던 옛날 얘기를 3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얘들아, 중고 기초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단다.

중고 3세들에게

앞으로 모든 지식의 기계적 작업은 다 AI 인공지능이 가져간다. 그러나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만은 끝까지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중고 시절에 「영어」, 「수학」, 「독서」, 이 3가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A. 수학공부 이야기:

수학은 숫자 공부를 넘어서 차분히 이치를 따지는 「습관」을 몸에 익히는 훈련이다.
학원에서 가르치듯 정답만 빨리 내는 기계적 학습은 절대 안 된다. 사고력을 죽인단다.

1. 계산의 기본원리: “=” 등호 이야기:

“=”를 건너가면 (+)는 (-)가 되고, (x)는 (÷)가 된다. 이런 학원식 공부는 절대 하지마라.
“=”는 「좌변」과 「우변」이 똑같다는 기호다. 그러니,
양변에 똑같이 (+),(-),(x),(÷)를 해야 한다. 양변에서 똑같이 (+)를 빼주니까, 좌변에선 (+)가
없어지고, 우변에선 (-)가 생기는 것이다.
양변을 똑같이 (÷)를 해주니까, 좌변에선 (x)가 없어지고, 우변은 (÷)를 해주게 된다.

2. 응용문제 풀이: 우선 「답」을 “x”라 해놓고 생각해라.

(문제) 닭과 개가 합해서 5마리가 있다. 다리는 합해서 14개다. 몇 마리씩이냐?
(답) 먼저 닭은 x마리, 개는 y마리라 해놓고 생각하여라.
x+y=5마리…①
닭다리는 ‘2 x (x)’개, 개다리는 ‘4 x (y)’개다.
2x+4y=14개…②
풀면, 닭x=3마리, 개y=2마리가 된다.

3. 문제 만들기:
‘닭 4마리, 개 2마리’가 답이 되는 문제를 만들어 보아라.

B. 외국어공부 이야기

나의 경험 얘기다. 초등학교 때 배운 일본말로 그 후 계속 책을 읽은 덕분에 일생 일에도 써 먹고, 교양과 지식도 많이 얻었다. 영어는 중고 6년, 대학 4년, 10년 동안 공부했어도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한다. 외국어는 계속 읽지 않으면 결국 장식품에 그치고 만다.

한 가지 뜻밖에 덕을 본 것이 있다. 50이 넘어 「Word Power Made Easy」를 공부한 일이다. 유명 영어교수의 권유로 중2, 고1, 고3 세 아이들과 부모 다섯이서 공부를 했다. 단어공부는 물론, 독해력과 회화까지 놀랍게 향상되었다. 2년이 지나니 TIME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희들도 고교, 대학시절에 이 책으로 공부해 봐라. 교과서 단어 8천개에 1만 단어가 추가되더구나. 미국 대학생 수준 실력이다.

C. 국어(독서)공부 이야기: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생각은 누구나 제나라 말로 하게 된다. 아는 낱말 수가 「사고」의 수준을 결정한다. 모르는 말로 생각을 할 수는 없으니까.
독서는 어려서부터의 청소년기 습관이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서양인들은 대개 책을 읽고 있다. 초중고 때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한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D. 나에겐 한 가지 한이 있다. 전쟁 중에 학창생활을 보낸 탓에 예술에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 흥을 못 느낀다. 정서적 불구자가 된 셈이지. 학생 때 되도록 많은 예술작품을 접하도록 해라. 물론 문학작품도 매한가지다.

E. 끝으로, 학교 성적에 대한 자세다.

시험성적에 구애하지 말고 올바른 공부법을 따라야 한다. 느려도 괜찮으니 “하나하나 이치를 따져보고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과 함께 확고한 실력이 쌓이고 공부에 자신이 생긴다. 학기말 시험은 2주 정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성적은 신경 쓰지 말아라. 평상시의 올바른 공부법이 차츰 내신 성적도 힘차게 밀어 올리고 대학 입시 때도 원하는 진로를 자유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든다. 중고시절의 기초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수영장에서 생긴 일

정소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소설가, 본 협회 편집위원

민구 씨는 60대 초입에 들어선 사람이다.

모 재벌 회사의 상무까지 하고 한 5년 전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온데다가 재벌회사의 상무까지 했으니,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적 의미에서 인생결산표라 할 수 있는 은퇴 후의 재정 상태를 보면 그리 만족할 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최절정기라 할 수 있는 은퇴 무렵, 아파트를 제외하고 퇴직금까지 포함하여 근 열 장 정도를 꾸렸는데, 은퇴 후 한 5 년을 놀고나니 그마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요새 사람들이 다들 한 8,9 십은 산다고 하니 아직 남은 2,30년을 뭘 먹고 살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답답한 노후에 대해 더 안달하는 사람은 민구 씨와 일생 같이 살아온 김 여사이다. 따지고 보면 민구씨가 이 정도의 인생결산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김 여사의 공 탓이었다.

월급 등 수입을 애오라지 마누라에게 부지런히 갖다 준 사람은 민구씨였지만 그것을 알뜰히 저축하고 불려서 오늘의 그런 금액으로 만들어 내놓은 사람은 김 여사 자신이었다. 그 점에서 민구씨는 열 번 입을 열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 인생의 역정 속에서 현실이라는 파도를 이겨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으로 김 여사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자신의 단산수술이었다. 김 여사는 첫 아들놈 희철을 낳고나서부터 벌써부터 단산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둘은 벅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안을 내지리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 첫딸인 희애를 가지고 말았다.

“여보, 나 해 버리고 말았어요.”

산부인과 침대 위에서 핏덩이를 옆에 누이고 있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뭘? 아기를 잘 낳았으면 됐지…”

“당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서…단산수술을 받아 버렸어요…”

그들의 결산대조표가 민구씨의 은퇴 후 5년여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고정 수입이 없게 된 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역시 외아들 희철의 결혼과 도미 유학 탓이 가장 컸다. 이것은 푼돈으로 해결될 일들이 아니었다.

아들놈이 오랫동안 연애를 한 며느릿감을 더 기다리라 할 수 없는 것도 인생의 원리이다. 결혼을 한 아들놈이 별 직장이 없어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도 없었다. 그것도 신혼의 아내마저 떨쳐놓고 혼자 떠나겠다고 하니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왠지는 모르지만 김 여사도 옛날 같지가 않았다. 얄팍한 저금통장을 들고 이 은행 저 은행 뛰어다니던 그녀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는 지나가는 투로, 일평생 한 남자만 쳐다보며 살다가 늙어버려 여자로서는 폐기처분된 자기 같은 여자야 말로 진정 노벨평화상 수상자감이라나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민구씨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세 여자가, 즉 시어머니와 딸과 며느리가 사이가 좋아 자주 만나고 키득거리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경우 민구씨를 부르지도 않았다.

민구씨는 요즘 하버드대학생이 되고 말았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요즘 말로 하버드대학생이라고 한다나. 전국대학생은 전국의 산을 누비는 사람을 말하고, 동국대학생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삼복더위 속에서 혹서와 외로움에 지친 민구씨는 예년에는 전혀 하지 않던 일을 이번 여름에는 하고 말았다. 마누라쟁이는 딸년과 며느리를 만난다고 아침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타러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즉 그는 근 십년 이래로 찾지 않던 풀장을 찾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수영을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풀장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물이 들어간 귀를 흔들고 있는 민구씨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와글거려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버님, 청년 같은 몸이세요. 몸짱이세요!”

“아빠, 아랫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헤라클레스 같아요.”

“당신 대학생 때 수영선수였잖아요!”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을 내려다보니, 자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늙고 젊은 여자 셋이서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민구씨의 눈에 황급히 물살을 가르는 인어들처럼 비쳤다.

 

*정소성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수상

한미우호의 밤 인사말

황 진 하
본 협회 회장/전 국회국방위원장

존경하는 박재민 국방부 차관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최병혁 대장님 내외분,
주한미군사 참모장 스테판 윌리엄스 소장님 내외분,
미첼 모스 공보공사 참사님,
미국 대사관에서 오신 귀빈 여러분,
한미우호상 수상자와 주한미군 모범장병 여러분!
이 행사를 적극 후원해 주신 애국 후원자 여러분,
자랑스러운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
신사숙녀 여러분!

바쁘신 일정들을 무릅쓰고 오늘의 뜻깊은 행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마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 한미우호협회는 그동안 6.25 전쟁을 상기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유사시에는 반드시 승리를 위하여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주한미군 장병들을 위로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매년 June Festival이라고 명명된 한미우호의 밤을 개최하여 왔습니다.

이제 11일 후가 되면 우리는 6.25 69주년을 맞게 됩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북한의 끈질긴 비핵화 거부로 진정한 평화가 아닌 위장된 평화와 같은 긴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단단한 한미동맹의 결속과 대비가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본인이 매우 다행스럽게, 그리고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탁월한 리더십과 한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지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님과 주한 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신 로버트 에이브람스 장군이 우리와 함께 현재와 같은 긴장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해리 해리스 대사께서는 오늘 본국 출장으로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대사로 부임하기 전, 지금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이 바뀐 전 태평양 사령부의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태평양 지역 그리고 특히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전쟁억지를 위한 확실한 비전을 갖고 대사에 부임하셨기 때문에 현 한반도 상황에서 최적임의 대사님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본인이 국방위원장 시절 태평양 사령부를 방문했을 당시 함께 나눈 대화에서 이미 이를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로버트 에이브람스 연합사령관의 뛰어난 군사전략과 용기를 겸비한 리더쉽에 대해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세계최강의 연합사로써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나가리라 확신합니다. 그는 그의 아버님, 형님, 자기 자신 등 3 부자가 한국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해 오신 미국군이 자부심으로 삼고 있는 집안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한국군의 정예 사단장과 군단장을 역임했으며 미 육군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미연합작전부서에서 중책을 역임한 한국군 내 최고의 연합작전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에이브람스 사령관과 함께 최강의 연합전비태세를 발전시키고 발휘할 수 있는 환상의 콤비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용장 밑에 약한 부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써 내려온 한미동맹, 탁월한 주한 미 대사님과 연합사령관님의 리더십이 환상의 콤비 최병혁 부사령관님과 함께 단련된 한미 연합 장병들은 세계 최강의 장병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들 중 대표자들이 오는 수상을 하였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뜨거운 박수로 이들에게 감사와 성원을 보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하여 그리고 한미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서로 다짐합시다.

오늘 밤은 우리의 동맹 강화를 다짐하고 우의를 더욱 단단히 하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각테이불 별로 이러한 뜻과 정담을 나누시면서 맛있는 식사와 공연을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영사를 마치기 전에 이번 행사를 위하여 준비위원장이신 정의승 위원장님과 우리 한미우호협회 회원님들이 또 기타 여러분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범장병들을 격려해주시는 뜻으로 다시 한 번 힘찬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We go together!
Let’s go together!

Honorable Park Jae-min, Vice Minister,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General Choi, Byung Hyuk, Deputy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and his lovely wife,
Major General Stephan Williams, and his lovely wife,
Mr.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Distinguished guests from U.S. Embassy,
Recipient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wards and Exemplary USFK service members,
Our active event sponsors,
Proud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Ladies and Gentlemen!

Let me first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to everyone for taking the time out of your busy schedule to attend tonight’s event.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has been hosting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Night successfully every year, referred to as ‘June Festival’, lest we forget the Korean War and to comfort the U.S. service members who has been doing their best to keep the freedom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o strengthen our resolve of the ROK-US alliance.

Ten days later we will again commemorate the 69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and current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unstable, just like a camouflaged peace but tension, because North Korea continuously objects to denuclearize. Therefore further solid and robust ROK-US alliance is even more critical than ever.

Under such a significant circumstances, I strongly believe that we are very fortunate and it is truly a blessing for Korean people that we are having Ambassador Harry Harris and General Abrams,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United States Forces Korea with us who have exceptional leadership and special affection for Korea.

Ambassador Harry Harris served as the Commander of U.S. Pacific Command, which restructured recently as the USINDOPACOM before coming to Seoul as an Ambassador, and he has full Knowledge of the strategic importance of Pacific area, particularly on Korean peninsula and has a clear vision to deter war on the Korean peninsular. So I am confident that he is the most qualified Ambassador to Seoul. I already assured it through the in-depth dialogue with him when I visited to his office when he was the Commander of US Pacific Command and I was the 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ttee of the National Assembly then, So I again, would like to commend and pay respect to him.

Also, I would like to recognize General Robert Abrams, Commander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family whole dedication themselves to the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r and give infinite confidence to him and courageous leadership. And I am convinced that he will carry out his important mission successfully with the strongest and utmost ROK-US combined readiness posture.

He is a member of the Abraham’s family whose father, brother and himself have contributed to the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 with deep affection for Republic of Korea, so the US military is very much proud of him.

General Choi, Byung Hyuk, Deputy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served as the commanders of elite Division and the Corps of ROK Army. As he graduated from U.S. Army War College, Carlile Barracks Pennsylvania, and served the key post at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he is known as the best expert on combined operation. I am confident General Choi and General Abrams will make a perfect duo in making and demonstrating the vigilant and unbeatable combined readiness posture.

There is an old saying in Korea, “No single weak subordinate can be under brave General” like in English “A good general will make good men.” I am certain that ROK-US combined warriors are truly the strongest one in the world trained under and by the exceptional leadership of Ambassador Harry Harris and General Abrams, who are part of this historic legacy and tradition of the ROK-US alliance.

Ladies and gentlemen, At this juncture Why don’t we give them the warmest round of applause.

Tonight, we are gathered here to strengthen our alliance and our friendship. At this meaningful opportunity, let us promise each other to do our best to promote the robust ROK-US alliance and friendship. And please enjoy the meal, the performance, and let’s heat friendship up.

Before concluding my speech, I would like to recognize preparation committee chairman Chung Eui Sung’s devoted efforts, and special thanks to the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everyone who actively sponsored for tonight’s event.

Ladies and gentlemen, may I solicit your warmest round of applause to chairman Jung and all the sponsors to express our appreciation, and again to cheer up USFK warriors.

We go together! Let’s go together!
Thank you very much!

한미우호의 밤 축사

박재민 / 국방부 차관

안녕하십니까. 국방부 차관 박재민입니다.

먼저 한미동맹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한미우호협회 회원과 내빈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황진하 회장님을 비롯한 한미우호협회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미동맹은 지난 70여 년간 한반도 방위는 물론,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에도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특히,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난 한 해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한 덕분입니다.

지금,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오고 있습 니다. 남북군사합의는 1953년 정전협정의 정신을 구현하여 남북이 신뢰를 구축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보다 나은 여건을 조성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지난해 11월 1일부로 지상·해상·공중에서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였습니다.

먼저, 남과 북은 DMZ 內 양측 GP 11개소를 시범 철수한 후 상호검증을 완료하였습 니다. 또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화기를 제거하고, 남북 공동경비초소를 설치하는 등 비무장화를 완료하였습니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비무장지대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해
지뢰제거 및 남북을 잇는 도로 개설을 완료하였고, 현재는 공동유해발굴 사전준비 차원으로 화살머리고지 우리 측 지역에서 기초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두 차례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였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볼 때는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면서 비핵화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은 간단하지 않으며, 이의 성공적 진행과 성과가 있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이 굳건한 한미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다가올 미래에도 한반도의 평화 를 지켜내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의 한미 국방당국 간 공조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합니다. 올해만 해도 정경두 국방장관님과 섀너핸 美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의 장관회담을 비롯 하여, 수차례의 유선협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면서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나간다는 공동의 입장을 거듭 재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근간에는 금일 한미우호상을 수상하는 주한미군 장병을 비롯하여
전후방 각지에서 불철주야 헌신해온 한미 양국군 장병들의 노고가 자리 잡고 있습 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오늘의 알찬 행사를 준비해주시고, 이런 귀한 자리에 초청해주신 한미우호협회 황진하 회장님과 참석해주신 모든 내빈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한미우호협회가 양국의 동맹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Good Evening, I am the Vice Minister of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Park Jae-Min.

Firstly,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st gratitude to President Hwang Jin Ha, the members of the Korea-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distinguished guests for participating in this event with their deep interest in the ROK-U.S. Alliance.

The ROK-U.S. Alliance made great contributions to not only the defense of the ROK but also to its development of free democracy and economic prosperity. In particular, the dynamic changes to the security environment around the Korean Peninsula that we had witnessed over the past year was possible only because the robust ROK-U.S. alliance have been supporting the diplomatic efforts to achieve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litary domain.

As it stands, the two Koreas are faithfully implementing the Agreement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Historic Panmunjom Declaration in the Military Domain also known as the CMA. The CMA strives to lay the groundwork upon which denuclearization and peace may be established on the Korean Peninsula by embodying the Armistice Agreement of 1953 through inter-Korean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and prevention of accidental conflicts. As per the CMA, the two Koreas ceased all hostile acts in land, sea, and air as of November 1st, 2018.

The two Koreas executed the pilot withdrawals of 11 GPs each in the DMZ and completed mutual verifications. Furthermore, the demilitarization of the Panmunjom Joint Security Area was completed with the removal of firearms and installations of joint patrol posts. Furthermore, mines were removed and an inter-Korean road was laid last year for the Joint Remains Recovery in the Demilitarized Zone. As of now, pilot remains recovery operations are taking place on the southern side of the Arrowhead heights as preparatory measures for the Joint Remains Recovery that will follow.

I have conviction that the aforementioned measures will substantively contribute to the alleviation of military tension and establishment of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dmittedly, North Korea did fire short range missiles in two separate occasions of late.

However, the North Korean position of staying faithful to the CMA and maintaining the denuclearization conversation momentum remains changed.

Of course, achieving denuclearization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ill be by no means an easy task. To say that progress and success will depend on an unwavering and steadfast ROK-U.S. Alliance is an understatement.The ROK-U.S. Alliance will continue in the future, as it has done so devoutly until now, to serve as a linchpin in preserving and establishing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through its complete denuclearization.

The coordination between the ROK-U.S. authorities is more robust now than ever.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Jeong Kyeongdoo and Acting Secretary of Defense Patrick Shanahan repeatedly reaffirmed the common goal of supporting the diplomatic effort to denuclearize the Korean Peninsula while maintaining a steadfast combined defense posture through their frequent phone calls as well as their two Ministerial Meetings in April and in June.

Etched at the bedrock of the ROK-U.S. alliance are the exemplary efforts displayed by the winner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ward and all other service members of our great two nations in all their expertise and station alike.
I would like to devote this moment to them and extend my deepest gratitude.

Finally, I would like to thank once more President Hwang Jin Ha for inviting me to this meaningful event as well as all the distinguished guests for their participation. My wishes go to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for its perpetual growth and with hopes that it continues its central role in developing the ROK-U.S. Alliance.

주한미공보참사관 축사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미첼 모스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축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황진하 회장님, 박재민 차관님, 최병혁 대장님, 윌리암스 소장님,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사님께서 오늘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씀하시면서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시면서 한미우호협회의 훌륭한 활동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황진하 회장님께서 대사님의 훌륭한 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외에도 저보다 훨씬 머리좋고 잘생기시고 재미도 있으신 분이신데 아쉽지만 오늘 제가 대사님을 대신해서 축사를 드리겠습니다.

또한 오늘 수상하신 장병 여러분들의 봉사와 헌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리고 축하 말씀 드립니다. 수상자 여러분들께서는 동료와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한 것 외에도 한미동맹을 지키고 강화해 나가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의 역할을 해왔으며, 또 이 지역 전체의 안보와 안정의 주춧돌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6년 전에 우리는 한미동맹의 ‘환갑’, 즉 한미동맹 60주년을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형성되고, 또 자유를 추구하면서 우리가 함께 흘린 피로 더욱 단단해진 한미동맹은 지난 60여 년 동안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해서 이 한미동맹을 아끼고 여기에 투자를 하고 또 헌신해 나아간다면 미래에도 우리 한미동맹은 번영하고 발전에 나갈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군사동맹이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분야의 파트너십들, 즉 경제, 사회, 학계에서의 양국 간 파트너십들입니다. 올해 말이면 풀브라이트로 알려져 있는 한미교육위원단의 70주년 창설기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미교육위원단은 그 동안 수천 명의 풀브라이트 학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고, 또 학계, 정계, 재계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서 수많은 지도자들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올해 우리는 미 국무부 창설 230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20년 동안 외교관 생활을 해온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서 한국에 부임하는 주한미국 대사로서 저희 해리 해리스 대사님 보다 더 훌륭한 적임자는 없을 것입니다.

신의있는 동맹국 여러분들게 대사님에 대한 일화를 여러분께 짤막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해리스 대사님과 같이 근무한 사람들은 그 분이 어떤분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해리 해리스 대사님을 모시고 롯데가 32억 달러를 투자해서 루이지애나에 세울 화학공장 준공식에 대사님과 함께 참석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댈러스에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으나 악천후 때문에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어 대사님을 승용차에 모시고 제가 직접 운전을 해서 6시간 동안 계속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 운전해가야 했습니다.

저는 외교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내는 편인데, 레이크 찰주까지 가는데 예비량까지 생각해서 연료를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레이크 찰주에 거의 다와 시내로 진입하는 다리 위에서 교통 혼잡이 발생하여 꼼짝달싹 못하는 정체 상황이 되자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불안해졌습니다. 점점 불안감이 고조되어가는 저의 모습을 보신 대사님께서, “미첼, 무슨 걱정이 있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사님께 “ 대사님을 모시고 운전하고 가다가 레이크찰스 다리위에서 기름이 다 떨어지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해리스 대사님은 P3 초계기 조종사로부터 군 복무를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대사님 하시는 말씀이, “미첼, 분명히 우리는 조종사가 아니고, 다행히 우리는 지금 비행기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사님은 그런 리더이십니다.

신의 있는 동맹이자 이 지역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이 지역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지지합니다. 또한 우리는 양국의 파트너십을 더욱 확장하여서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추구하는 상호 호혜적인 목표를 온전히 실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일함으로써 계속해서 민간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역과 해로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함께 협력함으로써 우리가 많은 대가를 희생하면서도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가치, 그리고 원칙들을 수호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협력함으로써 5G와 같이 부상하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 시민들을 위해서 최대한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핵심적인 인프라가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대사님보다 훌륭하게 연설 못할 것이라고 처음에 말씀을 드렸는데 너무 오랜 시간 말씀을 드린 것 같아서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미우호협회가 계속해서 한미동맹을 위해서 해주시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수상자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한미동맹과 한미 간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헌신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의 노력 덕택에 우리는 한미동맹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일에 매진 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갑시다!

Commemoration Remarks for Korea American Friendship Night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President Hwang,

Vice Minister Park,

General Choi,

General Williams,

Ladies and Gentlemen, 안녕하세요!

Ambassador Harris sends his regrets in not being with us tonight, and he sends his best wishes and thanks for all the great work that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does.

And I have to ask for your indulgence because Ambassador Harris, in addition to all the very complimentary things that President Hwang said about him, he is smarter, better looking, and a lot funnier than I am. But I’ll do the best I can.

I would also like to commend the service and dedication of the military officers who received the awards tonight. In addition to serving their colleagues and communities, these awardees devoted their lives to protecting and promoting US-ROK alliance, and we are deeply grateful for your service.

Ours is an alliance that serves as the foundation for peace and prospe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s a cornerstone for security and stability in the region. 6 years ago, we concluded the US-ROK alliance ‘환갑,’ which of course was our 60th anniversary.

Forged in the crucible of war, hardened by blood spilled together in the pursuit of freedom, our alliance has stood the test of time over more than six decades. And will continue to thrive for generations to come. As long as we nourish it, invest in it and remain committed to it.

Let us not forget the other partnerships between our two countries: economic, social, academic that our military alliance made possible. Later this year, we will celebrate the 7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American Educational Commission, our Fulbright Commission, which have given scholarships to over 7,000 Fulbright Scholars from Korea and the United States have created multiple generations of leaders, academics, politics and business.

This year we will also celebrate the 230th anniversary of the Department of State. Having served as a diplomat for the past 20 years, I can credibly tell you that you cannot have a stronger embassador from President Trump to the Republic of Korea than Ambassador Harry Harris.

As a loyal ally, do you want to hear a quick story? Those of you who have served for Ambassador Harris knows what it is like. But, I had the honor of accompanying him to Lake Charles for the opening of Lotte Petro Chemical Plant there, which represents 3.2 billion Dollars in Korean foreign direct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The weather was terrible. All the flights from Dallas to Lake Charles were canceled. I’d wound up driving the ambassador for 6 hours in the dragging rain to Lake Charles.

I’m a diplomat, we get things done. But, we don’t always think in terms of reserves. So, we had enough gas to get to Lake Charles in my estimation, but we didn’t have enough gas to get to be stuck in a massive traffic jam in a long bridge to get to Lake Charles. He sees that I’m getting nervous and asks “Mitchell, what’s going on?” I said “Sir, I’m afraid I might be known as the guy who ran out of gas with Ambassador Harris in the bridge to Lake Charles.

Many of you Know that the Ambassador started out as a P-3 pilot. He returned to me and said “We were clearly not aviators but luckily we were not in a plane.” That’s the kind of lead he is.

As a loyal ally and partner in the region, the United States support President Moon Jae In’s effort to build South Korea to even a more powerful country that can contribute to the regional peace and prosperity.

We are hopeful that we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expand our partnerships together even further, to fully realize the mutually beneficial objectives outlined in the U.S. 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 and South Korea’s New Southern Policy.

Working together, we can unlock private investment and infrastructure that keeps sea lanes and airspace free, open and secure. Working together, we can safeguard the values and principles that we had fought so dearly to preserve. And working together, we can ensure that emerging technologies such as 5G are deployed to the maximum benefit of our peoples, and our critical infrastructure remain safe and secure. So, I told you that I wasn’t great as Ambassador Harris. I’d gone on too long.

Let me conclude by thanking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their tireless efforts to host such a wonderful event every year. To the awardees, again congratulations and thank you for your efforts to maintain, to grow the great friendship between our two countries. Each day, thanks to your commitment and the commitment of everyone in this room, our two countries can remain focused on creating a better future.

같이 갑시다!

 

한미우호의 밤 축사

대장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안녕하십니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최병혁 대장입니다.
먼저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이렇게 성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황진하 회장님과 한미우호협회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빛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부여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한미장병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오늘 “한미 우호상”을 수상한 “엘라이니 클라이네스 대위” 등 4명에게도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은 오천년 역사 속에 빛날 “역사적인 전환기” 를 맞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험난하지만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2018년, 남북 양 정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습니다. 미북 정상도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9.19 군사합의”를 통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정전협정의 기본정신을 준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JSA 비무장화”, “남북공동유해발굴”, “DMZ 평화의 길” 조성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들을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역경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함께 이겨내 온 한미동맹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강력한 동맹이자 친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미양국의 우정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 한미장병 여러분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여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의 최전선(Freedom‘s Frontier)’에서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한미장병 여러분과 오늘 “한미 우호상” 수상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친구 한미장병 여러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박수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한미연합사 전 장병은 강력한 연합방위태세를 바탕으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기여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지난 28년간 한미동맹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신 황진하 회장님과 한미우호협회 회원여러분께 연합사 한미장병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미우호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한미동맹의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해 우리의 우정을 빛내기 위해 소중한 걸음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e go together!

Good Evening. I am CFC Deputy Commander, General Choi Byung Hyuk. First I would like to thank President Hwang, Jin Ha and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hosting magnificent event for ROK US Alliance. Also, I would like to thank distinguished guests for your valuable prepense on this beautiful night as the name of ‘friendship’.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ROK US service members for carrying out their given mission all around Republic of Korea at this moment.
Especially, I would like to sincerely congratulate 4 personnels including Captain Elaine Clines for being awarded with ‘Korea America friendship award.

As you all know, Korea faces “historical grand turning point” which will shine in five thousand years of history. We have started perilous yet great journey for settling everlasting peace on Korean Peninsula.

In 2018, Both leaders of ROK and North Korea agreed on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everlasting peace on Peninsula through Panmunjum Declaration and Pyongyang Joint Declaration. Leaders of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promised their cooperative efforts on denuclearization on Peninsula and world peace through “Singapore Summit”.

Our Military prevented armed conflict on Peninsula through CMA, conducted various activities on fulfill basic principles of Armistice Agreement. As a result, we are baring substantive fruits to de-escalate Military tensions and establish trust such as “JSA demilitarization”, “Inter Korea Joint Remains Recovery”, “DMZ Road to Peace”.

“Adversity teaches you true friend”. ROK US alliance is the most successful and strongest alliance and friend in the world today as we have overcame many hardships during past 70 years.

Therefore, we are gathered here today to remember effort of ROK US service members who tried to enhance peace on Peninsula and brotherhood of both Seoul and Washington.

I would like to thank ROK US men and women in uniform for faithfully executing their mission at Freedom’s Frontier at this very moment and to the recipient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Award.”
Ladies and Gentlemen, please give a round of applause to our friends, ROK US service members. (Clap!)

Thank you for your applause. On the strength of your support I promise that all CFC members will support diplomatic efforts based on robust combined defense posture and will contribute to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settle permanent peace on Peninsula.

Lastly, on behalf of all CFC members,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to president Hwang and members of the society for being stout supporter of ROK US alliance for last 28 years. I wish boundless development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bright future of the Alliance. I thank all of you for your valuable attendance to honor our friendship. Thank you. Wo go together!

한미 우호상 수상자

PFC Emily Lopez (미 육군 에밀리 로페즈 일병)

6-52 방공포대대 지휘부 운전병인 로페즈 일병은35 방공포여단 6-52대대 장병들과 수원 시민들 그리고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로페즈 일병은 대대 지휘부 간부들과 수원시장을 포함한 시의원들과 대대가 수원 지역사회를 지원하는방안을 토의하는 회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부대의 신뢰 증진 및 부대와 지역 주민 간의 차후 협력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로페즈 일병은 지역 공군기지에서 한국 공군과의 교류를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카투사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 있는 8군 카투사 우호 워크샵에 참석하였습니다. 로페즈 일
병은 한국어-영어 수업 그리고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동료들과 지휘자들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열린 마음과 지역문화
를 배우고 싶은 열망은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부단히 지역문화탐방을 하고 있어 지역 문화를 경험하고자하는 병사들은 로페즈 일병을 찾아갑니다. 로페즈 일
병은 친선 프로그램의 발전과 한미 장병 간의 동료애와 유대강화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IT2 Marcus Foster (미 해군 마커스 포스터 병장)

주한미해군사령부 소속 마커스 포스터 병장은 미 해군과 한국 해군 지휘부를 통합하는 주요 네트워크 확장 프로젝트에 대한 감독, 추적 및 유지를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탁월한 홍보대사로써 한국 해군 장병들과 협력하여 복잡한 해상 프로젝트를 미 해군이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그 절차를 이해시켰습니다. 그는 12,000 달러 프로젝트에 대한 공간 할당 및 추가 지원 요구 사항의 조정 및 유효성 확인에 있어 한국 해군 장병들과 매일 통신망을 유지했습니다. 포스터 병장의 노력으로 미 해군은 한국 해군과 실시간 중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고, 미 해군의 기획참모부와 민군작전부가 한국 해군의 해당 부서들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터 병장은 주한 미해군은 물론 미 해군 전체를 대표하는 훌륭한 병사로서 기지 내에서 한미 해군 장병들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Capt Elaine Clines (미 공군 일레인 클린즈 대위)

일레인 클린즈 대위는 한측 업무협조관들과의 관계 증진과 한미동맹 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발작을 일으킨 한국인 시민을 발
견하고 같이 있던 동료와 함께 발작 중인 한국인 환자를 응급조치를 실시한 후 지역 응급치료팀(EMS)이 도착할 때까지 환자를 안정시켰습니다. 또한, 클린즈 대위는 51비
행단의 이노베이션 엔진(Innovation Engine)부서와 같이 업무 일하면서 지역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기지에서 사용되는 모든 화학 장비 가방을 최신으로 개선하였
습니다. 또한 지역내 한국 교회를 통해 2~4세의 지역 어린이들에게 놀이 및 영어를 가르치는 큐비스( Cubbies) 프로그램을 주도하였으며, 지역내 고아원과도 계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소속 비행중대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고, 전국 어린이 치과 건강의 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거의 매주 자원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지역 사회에 총 50시간 이상을 헌신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은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산 공군기지 내의
공동체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Sgt Jacob Fuller (미 해병대 제이콥 풀러 하사)

풀러 병장은 헌신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해병입니다. ‘무적’ 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풀러 병장은 병력 결원이 발생 시 주로 선임 부사관이 수행하는 훈련반장 직책을 훌륭
히 수행하였습니다. 풀러 병장은 주어진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35개 이상의 체력 검정과 12개 이상의 지역 훈련 기록을 관리하고 훈련일정을 관리
했습니다.

풀러 병장은 전 기지내의 유일한 화생방 및 핵방어 요원입니다. 그는 화생방 및 핵전 상황하에서 장비 운용, 훈련, 그리고 준비태세 능력 등을 크게 향상 시켰습니다. 그 결
과 부대훈련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작전부서들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풀러 병장은 ‘무적’ 부대의 SMP(Single Marine Program)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임기 동안 그는SMP 행사를 5회 개최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에 남부 소방소와 베
들레함 교회에서 자원봉사로 영어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천고등학교에서 ‘할로윈 트릭 오어 트릿; Hallowin trick or treat’ 행사, 포항시 드림스타트 프로그램
및 포항 해병대 체험 캠프 행사와 연계하여 어린이날 행사 등의 공동체 활동에도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무적’ 부대 근무는 8개월 정도밖에 안되지만 풀러 병장은 여러 활동을 통해 포항시민과 미해병대의 관계를 크게 증진시킨 주한미해병대의 자랑스런 해병입니다.

선택의 결단 : 중립은 없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전 고려대 석좌교수,
전 서울대 초빙교수

이 글은 필자가 태평양 아시아 협회 발족 25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본 협회 월간지 영원한 친구들의 게재를 위해 약간 수정을 가하여 기고한 글입니다

나라의 위기 중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위기는 국가 존립의 위기입니다. 경제위기, 사회 문화적 위기도 물론 심각합니다. 이런 위기는 우리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향방의 문제는 한번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바로 그 위기의 절벽에 놓여 있습니다. 잘 아시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많은 것이 코앞에 놓여 있습니다. 화웨이 문제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사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중국해 문제는 어떤 입장인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따를 것인가, 미국의 인도 태평양전략을 쫓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미국과 중국 중에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해양세력을 선택

국제정치에서 지정학을 애기할 때 크게 대륙지향국가냐, 해양지향국가냐로 그 나라의 성격을 구분합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우리는 지난 5천년을 대륙지향국가로 지내 왔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대한민국만 해양지향국가로 변신했습니다. 해방과 6.25 사변 당시의 아시아 지도를 보십시오. 아시아 대륙이 몽땅 빨갛고 한반도 끝인 한국만 파란색으로 남았습니다. 마치 붉은 대륙에 매달린 파란 맹장 같았습니다.

이념적으로 지도를 보면 한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선택을 하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 덕분이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이 대륙국가인 소련의 영향력 하에 공산화 되었지만 유독 우리만 공산화를 면하고 자유주의 세계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륙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피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대륙과 단절된 우리는 대륙 대신 바다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을 아셨던 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분은 바다 너머를 개척하여 우리를 무역대국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이 두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두 분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두 분 덕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국제상황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이념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와 평등, 즉 자유의 세계와 공산 전체주의 세력 중에 누구 편에 설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얘기하면 냉전적인 사고라고 비난하지요. 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냉전체제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냉전의 주체가 바뀌어 돌아 온 것이지요. 과거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주체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대 변형된 공산주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어려운 선택이니 어물어물 지내보자고 넘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립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대국 사람들이 우리 꾀에 넘어 갈 바보입니까?

선택의 중요성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길 짐승 나라와 날 짐승 나라 사이에 전쟁이 났습니다. 길짐승 나라 특사가 박쥐나라를 방문하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박쥐나라 대표는 “우리는 걷기도 하지만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길 짐승나라 편을 못 들겠다” 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뒤 날 짐승 나라 특사가 찾아 왔습니다. 박쥐 대표가 이번에는 “우리는 날기도 하지만 걷기도 합니다” 라며 같은 편이 될 수 없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참 처신을 잘했지요? 현명하지요? 그런데 길짐승과 날 짐승이 뜻밖에 화해협정을 맺었습니다. 두 나라의 일치된 의견은 얄미운 박쥐나라를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박쥐는 그 뒤 새와 동물이 뛰 노는 벌판에 나오지 못하고 동굴에 숨어 살며 밤에만 다닌다고 합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해야 할 시점에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애매모호하거나, 요리저리 피해 갈 상황이 아니라면 확실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선택할 시점에 왔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체제일 때 한국에게는 운신의 폭이 넓었습니다. 미. 중 화해 시대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으며 중국과 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누려 왔습니다. 지금은 미‧일로 수출하는 것 보다 중국 수출량이 더 많습니다. 중국 무역이 우리 무역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끝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후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걸며 확실하게 중국견제 정책으로 돌아 섰습니다. 미. 중간에 갈등이 있을 때 우리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아집니다.

한반도의 지정학: 운명

한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지정학입니다. 그 나라가 어느 자리에 위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거대한 에너지가 흐르는 경로 상에 위치한 약소국은 그때그때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고 생성되었습니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에 붙은 반도이기 때문에 지난 5천년을 대륙국가, 즉 중국의 영향력 아래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7년 시진핑이 트럼프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본래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한반도는 반도라는 속성 때문에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강해지면서 일어난 전쟁이고,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 전쟁도 한반도를 놓고 대륙과 해양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중 어느 한쪽이 완승하지 못할 때 한반도 분할론이 제기 됐습니다. 지금의 38선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지요.

임진왜란 발발 3개월 후 왜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명나라가 참전하게 되면서 전선이 교착되었습니다. 그러자 명의 심유경과 일장수 고니시 유키나까(小西行長)간에 한반도 분할지배가 논의됐습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명나라 간에 다시 강화회담을 하면서 히데요시는 강화 7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선 4도( 경상, 전라, 충청, 경기) 분할 지배였습니다. 1894년 청.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습니다. 그럼에도 3국 간섭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자 일본은 한반도 분할을 러시아에 제시했습니다.

선택의 실수

이런 우리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지정학의 볼모, 즉 어쩔 수 없는 반도의 운명을 타고 난 것입니까? 주변 강대국의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는 운명입니까? 아닙니다, 그 운명 안에서도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아니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상황이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21세기가 20여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우리의 상황은 다시 19세기 말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조선이 막 개방을 시작했던 1880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이 한 문건을 들고 귀국했습니다. 중국의 외교관 황쭈센(황주헌)이 쓴 『조선책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여 지리적으로 반드시 쟁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아, 시세의 핍박함은 위태롭고도 위태로우며 기회의 찾아옴은 미세하고도 미세하다.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면 조선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조선만이 이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한다. 이야말로 부엌에서 불이나 집이 타게 되었는데 처마에 있는 제비와 참새는 그것도 모르고 저희 끼리 지저귀고 있으니 이야 말로 연작처당이 아닌가? 지혜로운 자만이 기회를 탈 수 있고, 군자만이 미세함을 알 수 있으며, 호걸만이 위태로움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것이 조선에 인물이 있어 급히 일어나 일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황쭈센은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친중, 결일, 연미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위기를 모르고 참새와 제비처럼 저마다 짹잭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때의 참새와 제비가 아닙니까? 조선은 방황했습니다. 친중을 하다가 친일로, 다시 친일에서 친러로 돌아 섰습니다. 결국 그러다가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때 조선의 각성을 외치던 황쭈센의 목소리가 지금 우리 귀에도 쟁쟁 함은 어찜입니까? 지금 이 나라는 황의 말대로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 미세한 기회 속에서 나라의 운명을 구해 낼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인물, 위기를 국민과 함께 극복해 낼 수 용기 있는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내 나라를 잃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를 잃었습니까? 아니면 백성들이 나라를 망쳤습니까? 아닙니다. 조선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쳤습니다. 누가 갖다 바쳤습니까? 이완용을 비롯한 내각들의 서명으로, 고종의 무능으로, 한일 합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운영하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부를 누가 운영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국민은 일단 대표에게 나라를 맡기면 나라는 맡은 자의 책임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무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권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하버드대학의 그래함 엘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에는 언제나 패권국이 있고 그에 도전하는 도전국이 있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시절 당시 패권국이던 아테네에게 스파르타가 도전하여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인용하여 만든 말이지요. 앨리슨 교수는 지난 5백 년 동안 세계의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을 분석했는데 16건 가운데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지금의 미. 중 갈등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미중 갈등의 한 복판 속에 놓여 있습니다. 패권국인 미국과 도전국인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 적이 있습니다. 17세기 임진란이후 중국 대륙은 명이 쇠하고 청이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대륙의 패권국이던 명나라를 선택하였습니다. 도전국인 청나라는 조선을 침공하여 정묘‧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러시아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패권국은 영국이었고 도전국은 러시아였습니다. 일본은 이 세력 판도를 읽고 패권국인 영국 편에 가담했습니다. 국왕인 고종은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집무하는 아관파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자 우리는 기댈 언덕을 잃고 말았습니다. 선택을 잘못한 것이지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두 가지 틀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무엇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정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위 정치 현실주의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이상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나라의 목표와 이상과 부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상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양과 대륙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패권국과 도전국이라는 힘의 관계 등으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해양과 대륙, 패권국과 도전국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운명입니다. 이 운명을 어떻게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현실과 이상입니다. 현실은 누구의 힘이 더 크냐를 판단하여 힘이 센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이상이지요. 어느 나라가 더 우리의 이상에 부합하느냐는 겁니다.

보수 쪽 입장에 있는 분들은 대개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국 쪽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동안의 한미동맹의 혜택도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미국 편에 섰던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2030년 까지는 아니 2050년 까지 미국 우위의 세력판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니 미국편에 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너무나 중요해 미국은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는 미국의 세계전략인 태평양-인도양 전략에 가담치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제외하고 일본, 인도, 오스트렐리아를 주축으로 새 전략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1949년 애치슨 라인 같지요. 왜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호칭하고 신무기를 공급하기로 했을까요. 한반도를 포기했을 경우도 일본 대만 필립핀 선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함입니다. 반면 이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사드를 추가 배치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국에게 우리의 주권 사항을 양보한 것이지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막으려면 한국-미국-일본의 안보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협력 없이는 북한 미사일의 종착점을 알 수 없습니다. 지구 곡면 때문이지요. 또 현대전은 전장이 범위가 넓어져 우리 단독으로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현실인데도 이 정부는 왜 과거사를 두고 반일 캠페인을 극성스럽게 해 댈까요?

현실주의 입장에서 힘을 보아서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 현실주의 입장을 넘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가치의 선택

가치의 중요성입니다. 대한민국이 품은 이상이 어느 쪽과 맞느냐는 것입니다.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말더듬이 죠지 6세가 말더듬이 장애를 넘어 사상 최고의 명연설을 했던 것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이 가치의 전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끼며 지켜오던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 내려는 싸움이 지금 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치를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힘이 센 쪽을 택하기보다 우리 이상과 목표에 맞는 국가가 누구냐 입니다. 자유와 억압, 민주대 전제, 개인대 전체, 자유시장대 통제경제 중 어느 가치를 따를 것이냐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내세우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 압박에 굴복하여 19세기 이전으로 돌아 갈 것이냐 아니면 지난 70년의 번영을 지켜 나갈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당연히 미국을, 해양지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동맹의 조정은 통일 후에라도 늦지 않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토록 맺기를 갈망했던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습니다. 그는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 대대로 덕을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개인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가의 관계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애써 만든 동맹이라는 소중한 관계를 깨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미. 중의 협력시대에는 선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중의 대결 시대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당연히 미국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시아 대륙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해양이 먼저입니다. 태평양에서 힘을 얻어 아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도 중립통일이니 민족 통일이니 애매한 통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의 자유 통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좌파세력의 한미동맹 파괴활동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한국 좌파세력의 특징

한국의 좌파세력은 서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좌파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의 좌파세력 중에는 자기 나라를 부정하고 해치는 반국가적인 세력이 있는 점이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종북세력이다. 북한공산정권의 폭정에 견디다 못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탈북민들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 현재 3만 명에 달하는데도 이들 종북세력은 불가사의하게도 무조건 북한이 좋다고 한다.

종북세력이 존재하는 근본이유는 한반도가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경우는 달랐다. 과거 동서독 병립시대에 동독에서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해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분단국가인 베트남의 경우는 달랐다. 남부 월남은 정치불안과 부패가 심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6개국의 군사지원에도 불구하고 베트콩의 끈질긴 전복활동과 월맹 정규군의 진격으로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한국의 반국가적인 좌파세력은 해방직후에 결성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그 후신인 남로당이 그 뿌리이다. 이들 좌파세력은 6‧25전쟁을 계기로 거의 소멸되었으나 1960년대에 들어 지하조직의 형태로 부활했다. 북한으로부터 공작원들이 남파되어 오기도 하고, 남로당의 잔존세력이 비밀리에 조직을 재건하기도 했다. 이들 좌파지하세력의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말의 통일혁명당 사건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자신이 존경한다고 공언해 물의를 빚은 신영복은 통일혁명당의 군사책임자였다.

한국의 종북세력은 대개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내세우기 때문에 선의의 평화통일논자들과 혼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반국가적 좌파세력의 실제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근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파괴와 소멸을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국가적 좌파세력의 통계가 없어 그 규모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주한미군철수와 맥아더 동상철거를 주장하는 세력과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순수한 지역주민들을 제외한-직업적 좌파활동가들과 사법부가 정식으로 반국가단체라고 판결한 종북단체 소속원들이 반국가적 좌파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출범한 한국진보연대는 국내의 좌파세력 지도자들을 총망라한 단일조직이다. 한국진보연대는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등 여러 계급과 계층별 대중 조직들 및 진보정당 등 총 37개 단체가 가입한 좌파진영의 단일 연합체이다.

이 단체의 상당수 간부들은 실정법 위반 경력의 소지자들이다. 박근혜 탄핵운동에 앞장섰던 이 단체의 주요임무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이다. 한국진보연대는 출범 당시 한미 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4대 과제를 내걸었다. 이 4대 과제 중 비정규직 철폐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3대 과제들은 모두 외교 안보정책과 관련된 분야들이다. 현재 한국진보연대의 10개항 강령 중 제1항이 제국주의적 지배정책 반대와 나라의 자주권 쟁취로 되어있다.

좌파학생들의 경우, 1980년대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이어 1990년대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대표적인 반국가 학생운동조직이다. 한총련은 나중에 대학생들의 외면을 받아 PD(평등파)계열이 NL(민족해방파) 주류파로부터 떨어져 나가 전국학생회협의회(전대련)을 결성했다. 그러나 곧 NL계열의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결성되어 이들은 2017년 10월 트럼프 미국대통령 방한반대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트럼프 참수경연대회까지 개최했다. 이 같은 끔직한 행사를 개최하는 저의는 미국의 여론을 자극해 주한미군을 스스로 철수시키려는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5년 4월 출범한 한대련은 한 때 20여개 대학의 총학생회를 거느렸는데 한대련의 11기 회장을 지낸 김모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요즘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한진련)을 이끌고 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한진련은 박근혜 탄핵 1주년을 맞은 2018년 3월 1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출범에 즈음하여 “새로운 봄,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서 우리 대학생들도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주장하면서 “평화의 길, 통일의 길, 적폐청산의 길, 그리고 대학생문제 해결의 길로 더욱 달려 나가야한다”고 선언했다.

한진련이 그동안 1년여에 걸쳐 수행한 활동은 국민들의 큰 우려를 낳았다. 이들은 작년 10월부터 연말에 걸쳐 국민주권연대 등 12개 단체와 협력해 백두칭송위원회이니 위인맞이환영단이니 하는 이름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모임을 만들어 세종로 일대에서 춤추고 노래를 했다. 한진련은 작년 11월 초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 들이닥쳐 “한반도 내정간섭 일삼은 주한미국사령관 지명자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사과하라”, “한반도평화 방해하는 주한미군 철수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진련은 올해 들어 지난 2월에는 김정은 연구모임을 발족시켰다. 이 모임은 “김정은이 왜 위인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김정은이 “북한의 모든 주민에게 크나큰 지지를 받고 있다”느니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펼친 세심함” 이니 하고 칭송을 했다. 이들은 또한 김정은이 한 말을 가사로 해서 작곡한 노래도 불렀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서울 세종로 일대, 특히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국민주권연대 및 청년당과 함께 “한반도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진련은 지난 4월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4층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의원회관사무실에 쳐들어가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은 사퇴하라”, “김학의 성접대 사건 은폐 황교안은 사퇴하라”, “세월호 진실 은폐주범 황교안은 사퇴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회장 김모 군 한 사람에 대해서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한진련은 또한 같은 시기에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자유한국당 해산을 주장하는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벌이기도 했다.

한진련의 가장 최근의 움직임으로는 지난 6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을 맞아 서울 신촌에서 개최한 통일한마당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사진전, 통일을 바라는 한마디 적기와 한반도 버튼 판매, 북한 물품 박람회, 대동강맥주를 먹고 싶은 소망을 담은 맥주 나눔, ‘분단적폐 쏘기’, 자유한국당 비판행사 등 총 8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분단적폐 쏘기’ 프로그램은 장난감 총으로 트럼프, 나경원, 황교안, 대한애국당 등을 쏘아 넘어뜨리는 행사였다. 이날 오후에는 6·15 통일문화제를 열고 대학생들의 연설과 노래, 춤 공연 등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참가자들은 그 후 장소를 광화문으로 옮겨 6·15 19주년 민족자주대회에 참여했다. 같은 날 부산에서도 ‘통일, 멀다고 말 하면 안되겠구나’, 춘천에서는 ‘6·15 강원도민 통일 문화제’, 광주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 청년학생대회’라는 이름으로 6·15 남북 공동선언 19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3대혁명 역량과 남한의 친북세력

북한정권은 한반도의 공산통일을 위해 3대 혁명역량의 강화라는 중요한 전략을 갖고 있다. 이미 1964년 2월부터 북한당국은 이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북한의 혁명역량, 남한의 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역량 세 가지이다. 북한의 혁명역량이란 적화통일에 필요한 북한 자체의 군사력 외교력 등 힘을 의미하고, 남한의 혁명역량은 북한의 도움으로 남한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지하조직의 힘 등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앞에 소개한 한진련 같은 학생단체가 남한의 혁명역량에 들어간다. 국제적 혁명역량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만들어 내는 여론과 지지 세력을 의미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에서 중요한 남한의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서 북한 당국은 남한 사회의 노동자 농민 학생 등 혁명을 이끌 계층을 양성한다. 이들은 결정적 시기가 오면 ‘남조선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발휘한다. 남한의 혁명역량 문제는 6·25전쟁 이전에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김일성이 1949년에 남한을 침공하려 하자 모택동은 이를 말리면서 남한의 게릴라부대를 활용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전쟁직전인 1950년 4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박헌영이 한자리에 앉아 남침작전을 논의할 때 박헌영은 만약 북한의 인민군이 서울만 함락하면 남한에서 활동하는 빨치산부대가 사흘 안에 나머지 지역을 해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헌영의 ‘좌경모험주의’ 때문에 과도한 빨치산활동을 벌여 ‘혁명역량’을 희생시킨데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휴전이후 김일성이 박헌영을 처형하는데 중요한 구실로 이용되었다. 정부는 이상과 같은 조직적인 좌파세력의 한미동맹 파괴 기도를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

외교의 신이라는 이승만 박사의 한미동맹 결성 공로

김정은은 2017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맞아 미국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급인 화성 14형의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이로써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개발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시간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북핵의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위한 대북협상이 성공하리라는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김정은의 평화공세를 액면 그대로 믿고 남북관계 증진에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북핵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북한의 ‘레이짐 체인지’를 이룩하거나, 아니면 한국도 자체 핵개발을 하든지 미국의 핵을 재배치하는 길 외는 없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든 긴밀한 한미동맹 관계는 중요하다.

한미동맹의 근거가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외교의 신’이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 덕분에 체결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이 휴전협정 교섭을 시작하자 한반도 통일 이전에 휴전을 하는 것은 제2의 6·25전쟁을 부르는 행위라고 강력 반대했다. 그는 휴전협상을 깨기 위해 휴전회담에 정부대표를 보내지 않고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정부의 방침이 바뀌지 않자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의 조건으로 한미동맹의 결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그 대신 1951년 12월 20일 국가안보회의에서 휴전협정 체결이후 공산측이 다시 한국을 침략할 경우 무제한 응징한다는 NSC 118/2호 계획을 입안해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이승만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휴전을 반대했다. 결국 트루먼 행정부는 1952년 휴전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그를 체포해 제거하는 이른바 ‘에버레디작전’을 수립했다.

그런데 휴전협정 체결 약 2개월 전인 1953년 5월 29일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당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이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국무부 합참 연석회의에서 그 동안 미국정부 특사로 이승만 대통령과 휴전문제를 협상을 하던 국무부 차관보 월터 S. 로버트슨의 발언 한 마디로 사태가 급변했다. 그는 회의 도중 발언권을 얻어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한국 정부를 접수합니까? 정녕 우리 자신을 침략자의 입장으로 몰고 가고 싶은 겁니까?”하고 이승만 체포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승만이 요구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방법 외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에버레디작전은 중지되고 이승만 박사가 그렇게도 바라던 한미동맹 결성 쪽으로 미국의 대한정책이 급선회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의 한미동맹 결성 방침이 한국정부에 통고되고 이승만은 휴전에 동의하게 된다.

휴전협정 조인 직후인 1953년 8월 8일 경무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이 거행되었다.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약에 서명했다. 변영태 뒤에 서서 가조인 행사에 입회한 이 박사는 곧 특별담화를 내고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며…….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대한민국은 곧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