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미동맹의 挑戰과 課題

이동복
전 국회의원,
신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자유민주연구원 고문

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하는 한미동맹이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문제 전문가로 한미 안보동맹의 앞으로 관하여 집중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고든 창(Gordon G. Chang)이 최근 “미국, 한국을 잃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한편으로는 “미국과 한국 사이의 군사동맹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잃는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통탄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혈맹(血盟)’ 관계는 더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는 비관론을 제시하여 읽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2020년의 벽두에서 한미동맹은 지금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 양국은 2월 24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양국 간 당면한 현안인 방위비분담 문제에 관한 다른 입장을 좁히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한미관계는 2017년에 출범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로 그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해 왔다. 한미 양국은 재작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통상적으로 5년 주기로 유지해 오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관한 ‘특별조치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 2019년분을 1년짜리로 합의했었다. 그 시한이 2019년 12월 31일로 만료되었기 때문에 2020년 이후의 분담금 내용을 새로이 합의하지 않으면 올해부터 주한미군 유지에 어려움이 초래되게 되어 있다.

이 1년 시한의 ‘특별조치협정’에서 한미 양국이 합의한 2019년의 한국 측 분담금은 2018년 대비 8.2%의 인상률을 적용한 1조389억 원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는 이 한국 측 분담금을 2019년도분의 5배에 해당하는 50억 달러(한화로 약 6조 원)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 관한 양국 간의 협의가 난항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 다양한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적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NATO와 일본 등에 대해서도 “그동안 미국의 부담이 과중했다”라는 이유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트럼프 자신이 심지어 “주한미군 감축” 카드마저 만지작거리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단순한 “방위 분담금의 조정” 차원을 넘어서 전통적인 한미 안보동맹 관계의 기조에 이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형편인 것이 사실이다.

사실은 2017년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새로이 출범한 이래 전개되고 있는 양국관계의 껄끄러운 상황은 그 원인이 방위비 분담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양국 간에는 동맹 관계 관리의 차원에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및 미국과 이란 관계의 악화에 따른 호르무즈(Hormuz) 해협 파병 및 한국에 전개된 사드(THAAD) 방공포대의 운영 등 난제들이 산적(山積)해 있고 이들 난제를 해결하는 양국의 노력은 사사건건 박빙(薄氷)을 밟는 것과 같은 난항(難航)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 현안은 수면(水面) 위로 드러난 빙산(氷山)의 각(角)들일 뿐이고 한미관계 표류(漂流)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한미동맹의 본질(本質)에 관하여 수면 아래서 뿌리가 자라고 있는 양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미국 수도 워싱턴의 링컨(Abraham Lincoln) 기념관 옆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 조형물’ 입구 진입로 바닥의 명문(銘文)에 새겨져 있다.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와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조국의 부름에 호응한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ur nation honor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라는 문구(文句)다. 이와 함께 이 조형물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를 키워드로 삼고 있다. 한 마디로 한미동맹은 “혈맹(alliance in blood)”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패망시킨 전승국(戰勝國)으로 한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고, 38선 이남에 거주하는 전체 한국인의 2/3가 공산주의 학정(虐政)을 모면케 해주었으며, 대한민국이 유엔을 산파역(産婆役)으로 하여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독립을 획득한 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 주었고, 1950년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으로 하여금 북한을 ‘침략자’로 낙인(烙印)찍고 미군 위주의 16개 회원국의 군대로 유엔군을 편성, 파견하여 대한민국이 북한에 의한 공산화 통일의 희생양(犧牲羊)이 되는 것을 모면하게 해준 나라이다. 6.25 전쟁이 계속된 3년 동안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연인원으로 572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33,741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에 참전하고 있던 유엔군 병력의 총수는 94만 4천 명으로 그 가운데 62.6%인 59만 명이 한국군, 32%인 30만 명이 미군으로 한미 양국 군이 전체 유엔군의 94.6%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한미 양국의 관계는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 한미 양국 간에는 전쟁의 포화가 멎고 2개월여가 지난 뒤인 1953년 10월 1일 양국 간에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이 체결(양국의 국회 비준이 완료된 뒤인 1954년 11월 18일 자로 발효)됨으로써 비로소 공식적인 ‘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휴전 이후 북한의 재남침이 있으면 6·25 때처럼 무방비 상태로 이를 맞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보장 조치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당시)이 집념으로 성사시킨 외교적 성과였다. 그러나 이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한 초기의 ‘한미동맹’은 여전히 북한에 의한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무력 남침의 경우에만 작동(作動)되는 ‘전수방어(專守防禦)’ 전용(專用)으로 NATO 식의 “유사시 미군의 자동참전(自動參戰)” 보장조치가 빠진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같은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승만의 집요한 대미외교의 결과 한미동맹은 “주한미군의 무기한 유지”와 “주한미군의 인계철선(引繼鐵線; Tripwire) 배치”라는 2개의 이빨로 무장한 가운데 출범했었다. 이로써 한미동맹은 “미군의 유사시 자동개입” 문제를 일단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그 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팎의 정세변화에 따라서 끊임없는 적응과 진화를 계속해 왔다. 1960년대 중반 한국군이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지는 것을 계기로 1968년부터 연례행사 화 된 한미 국방장관회의가 1971년부터는 ‘한미 안보협의회’로 격상‧확대되었고, 1978년에는 한미 양 국군이 ‘연합사령부(CFC; Combined Forces Command)’를 구성하여 연합작전체제를 구축했으며 작전계획-5027과 5029, 그리고 5015등 유사시 한미 양 국군의 연합작전계획들이 개발되어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한미 국방장관회의에서 연례적으로 반복되던 미국의 “유사시 억지력(Deterrence) 제공” 약속은 1990년부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등장하고, 1991년 미국이 한국에 배치됐던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것을 계기로 “유사시 핵우산(Nuclear Umbrella) 제공” 약속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 제공” 약속으로 보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애초 예상치 못했던 변수의 등장으로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동요를 겪기 시작했다. 동맹의 일방인 한국 쪽에 진보정권 등장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김대중(1998∼2003)‧노무현(2003∼2008) 대통령이 이끄는 2개의 진보정권들은 종래의 한미동맹 기조를 벗어난 친북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전통적인 한미동맹 기반의 본질적 동요를 초래했다. 이들 두 진보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보수 정권인 이명박(2008∼2013) 정권이 2013년에는 역시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권에 의하여 계승되었지만, 이들 두 보수 정권은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서 한국 정국을 강타한 “대통령 탄핵 파동”의 격랑(激浪) 속에서 2017년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진보정권의 등장을 허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은 물론 한미동맹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태풍 속으로 함입(陷入)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미동맹은 그동안 한반도 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진화를 거듭해 오는 과정에서 2009년에는 ‘미래비전’, 그리고 2013년에는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향후의 한미동맹은 대북한 ‘전수방어’의 소극적 임무를 탈피하여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쌍무적(Bilateral), 지역적(Regional) 및 세계적(Global) 차원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 문제였다. 특히 2017년 한국에서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고 이에 앞서서 같은 해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양국 간에는 동맹 관계의 본질을 형성하는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기반이 유실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어 오고 있다.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진화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요체(要諦)는 여전히 대북정책, 그 가운데서도 북한의 핵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 기간 중 집요한 궤도이탈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동맹’ 차원의 ‘공조(共助)’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아 왔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한미동맹이 아니라 북한과의 ‘민족 공조’를 앞세우는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가 노골화된 것이다. 문 정권은, 이른바 ‘운전자론(運轉者論)’을 앞세우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마치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명국인(明國人) 심유경(沈惟敬)이 명과 왜(倭) 사이에서 시도했던 ‘강화회담(講和會談)’ 방식을 방불케 하는 ‘양다리 외교’를 시도했다.

문 정권은 동맹의 다른 일방인 미국의 편에 서서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공조’의 차원에서 북한의 편에 서서 북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당연히, 임진왜란 때 심유경의 기만적인 ‘강화외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 같은 문 정권의 ‘양다리 외교’가 성공할 리 만무했다. 한동안 문 정권의 ‘양다리 외교’가 2017년 미국에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와의 ‘밀월(蜜月)’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시(錯視) 현상이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착시가 오래갈 수 없었다. 트럼프는 오로지 모든 그의 내치‧ 외교 행위를 올해 11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전략의 틀 속으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원비장(自願裨將)’ 역할을 잠시 용납하는 듯했지만, 싱가포르(2017)와 하노이(2018년), 그리고 판문점(2019)에서 김정은(金正恩)을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의 외교적 방법에 따른 해결 기대를 사실상 접어 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치명적 상처는 한미동맹의 몫이 되었다. 동맹의 기초인 “공통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토대가 크게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통의 가치”와 “상회 신뢰의 토대” 상실이 지난해 말의 한‧미‧일 간의 지소미아 파동을 초래했었다. 지소미아 파동은 문재인 정권의 막바지 양보로 봉합(縫合)이 된 상태로 아직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한미 양국 간에 “공통의 가치”와 ‘상호 신뢰“가 회복되느냐의 여부에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올해 4월 15일 대한민국에서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1월에 미국에서 시행하는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양국의 정치 판도가 새롭게 짜인 뒤에라야 그 향배가 드러날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북한의 제21대 총선공작 실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머리말

오는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선거개입 공작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은 매시기 총선, 대선, 지자체선거 등 한국의 권력재편기에 대응하여 선거개입 공작을 자행해 왔다. 따라서 북한의 선거공작에 놀아나지 않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북한은 정권수립 이후 대한민국의 강력한 안보축인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왔다. 실제 북한은 ‘민족공조’가 평화공조이며 ‘한미공조’는 전쟁공조라며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남 선전선동을 일상화해 온바 있다.

북한이 총선에 개입하는 배경에는 선거라는 합법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대남전략의 일환으로 이른바 전조선 혁명을 위한 3대(북한, 남한, 국제) 혁명역량 강화노선 중 ‘남한사회주의혁명 역량’을 강화시켜 남한혁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김정은이 2016년 제7차 당 대회에서 사업총화를 통해 “우리 대에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조국통일(적화통일)을 방침을 하달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들은 남한혁명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합법공작과 비합법공작을 전개하고 있는 중인데, 4.15 총선이라는 합법국면을 맞이하여 적화혁명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각 부서마다 총력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역대 선거 공작 사례

북한은 2000년대 이전에는 주로 비합법공간인 지하 간첩망을 통해 선거공작을 은밀히 전개했다. 김낙중 간첩사건에서 밝혀졌듯이 북한은 이른바 진보정당 구축공작과 국회진출 공작의 일환으로 제14대 총선 시 민중당 후보 18명에게 7,900만원이라는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했고, 민혁당 사건에서도 확인되었듯이 1995년 지자체선거와 제15대 총선 출마자 6명에게 4,500만원을 지원한 바 있다. 2011년 왕재산 사건에서는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의 대중적 기반 강화 및 지자체장 선거 지원을 지령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비합법 선거공작과 함께 한국이 ‘사이버 강국’이라는 현실에 주목하고 정보파급력이 무차별적이며 신속한 사이버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다방면에서 선거공작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사이버공격 역량이 세계 4위 수준이라는 자신감에 기반을 둔다. 작년 8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발표한 전문가 패널보고서에서 해킹을 통한 금전탈취 등 북한의 사이버공격 역량이 악명 높게 공인된 바 있다.

북한의 4.15 총선공작 양상과 특징

첫째, 북한은 사이버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남심리전 차원의 선거공작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주로 <구국전선>, <우리민족끼리> 등 50여개(총 180개중 적극적 활동하는 사이트) 대남대외 선전사이트를 적극 활용하여 이미 선거용 선전선동을 전개 중이다. 또한 북한이 이미 확보한 국내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유튜브계정, 트위터계정,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선거공작도 병행하고 있다.

실례로 북한은 올 1월 1일 「통일전선부」 소속의 대남혁명전위대인 「반제민전」의 충성맹세문에서 “보수적폐 무리들의 부활과 재집권 야망을 전 민중의 이름으로 분쇄하겠다”고 총선투쟁을 다짐한 바 있다. 이후 각 대남 선전 웹사이트 매체들에서 보수정당을 악성비방하며 가짜뉴스 등 여론조작을 확산시키고 특정당 후보들의 심판(낙선)을 독려하고 있다. 반제민전은 2월 14일 ‘무혈 쿠데타를 노린 탄핵 놀음’이란 논평을 통해 “당리당략과 보수재집권에 환장이 되어 정의와 진보에 거리낌 없이 도전해나서는 역적패당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계 민중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패당의 정권찬탈을 위한 발악적 책동에 각성을 가지고 그를 철저히 분쇄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올 2월 21일 대남선전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날이 갈수록 환멸만을 자아내는 보수역적무리’라는 논평에서 “최근 남조선에서 《총선》이 가까와올수록 권력에 환장한 보수패거리들의 싸움이 더욱 치렬해지고 있다…….중략…….날이 갈수록 환멸과 구토감만 자아내는 보수야당들이야말로 악취풍기는 적폐의 오물장, 인간추물들의 서식장이다. 남조선각계층은 민생은 아랑곳없이 정쟁에만 혈안이 되여 정치판을 아비규환의 란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보수패당을 모조리 력사의 시궁창에 처박고야 말 것이다.”라며 노골적으로 보수 세력을 낙선을 선동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의 이른바 댓글공작팀의 흑색선전 등 여론조작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는 여론조작의 대명사인 이른바 ‘드루킹’의 원조 격인 북한의 댓글공작팀이 가세하여 다방면에서 가짜뉴스를 전파시킬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해킹 등 비합법적 입수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국내 유수의 카페, 블로그, 자유게시판 등에 댓글을 달며 여론조작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은 이러한 댓글이 내국인인지 북한의 댓글공작원 인지를 판별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실례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태영호 전 공사에 대해 2월 26일 북한의 대외선전웹 사이트인 <메아리>에서는 ‘대결광신자들의 쓰레기 영입 놀음’이라는 논평에서는 태공사에 대한 악성비방을 전개 한바 있다. 문제는 선거막판에 특정정당 후보에 대한 악성 흑색선전 공세를 펼치면 이를 해명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선거가 치러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공간에서의 흑색선전이 실 시각으로 오프라인에 확산되어 여론조작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넷째, 북한은 이번 4.15 총선구도를 기본적으로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의 구도로 편성하고 이와 함께, 평화세력 대 전쟁세력의 구도를 중점 부각시키고 있다. 북한이 지칭하는 ‘평화세력’이란 이른바 종북좌파세력, 짝퉁진보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6.15선언-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 지지세력, 통일세력, 자칭 진보세력 등을 의미한다. 반면, ‘전쟁세력’이란 보수우파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6.15선언-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 반대 세력, 반통일세력, 반민주세력, 수구꼴통세력, 썩은 세력, 보수패당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북한은 2012년 대선 시 반제민전의 <구국전선>을 통해 국내 종북권에게 ‘전쟁반대-평화수호’의 투쟁구호를 하달하며 “평화옹호 진보민주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고 선동하며 “000당이 당선되면 핵전쟁 터진다”라고 선동한 바 있다. 2020년 1월 6일 반제민전은 ‘추악한 오명으로 얼룩진 자유한국당의 1년간 행적’이라는 장문의 논평에서 동당을 동족대결당, 친미사대당, 전쟁을 부추기는 당 등으로 매도한 바 있다.

다섯째, 북한은 총선 전에 전쟁공포와 사회혼란 조성을 위해 낮은 단계에서 제한적인 군사도발이나 사이버테러를 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정정당이 집권하면 전쟁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육·해상 및 공중 월경·복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회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통신망, 금융망, 사회안전망 등 국가기간망 및 사설망에 대해 사이버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 3월 2일 북한이 4개월 만에 원산에서 동해상으로 불상의 발사체 2발을 발사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일부에서는 총선 국면에서 북한의 무모한 무력도발은 자칫하면, 유권자들의 잠재된 안보의식을 결집시켜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망하나, 북한은 이미 이를 상정한 편익분석을 마치고, 군사도발로 인한 안보결집표를 상회하는 전쟁공포의 위협으로 인한 이른바 평화안정 갈망표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올 초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대남 선거용 사이버심리전의 내용을 보면,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등 보수정당과 특정 인사들에 대해서 악성비방하며 직접 심판론을 제기하고 낙선투쟁을 독려하고 있는 반면, 집권여당이나 정의당에 대해서는 전혀 비방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4.15 총선과 관련한 북한의 대남 선거공작 의중을 가늠할 수 있다.

북한의 4.15 총선공작 저의

이번 4.15 총선을 겨냥한 북한의 공작 목표는 ① 전략적으로 대남적화전략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것이며 ② 전술적으로는 북한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국회를 안정적으로 장악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즉 특정 정당 후보들을 낙선시키고 이른바 북한에 우호적인 정당의 후보들이 가능하다면 개헌 가능선인 2/3의 의석을 차지하도록 공작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적화혁명을 위한 북한의 대남노선이 개헌을 통해 반영되면, 연방제 통일 등 합법영역에서의 적화혁명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설령 개헌의석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북한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국회를 장악하게 되면 북한은 다양한 대남적화혁명 공작을 전개할 기반을 합법영역에 구축하게 된다. 결국 북한은 합법 공작과 비합법 공작 및 반(半)합법 공작을 배합하여 총선공작에 나서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합법영역에서 대남공작부서를 총동원하여 전개하는 4.15 총선공작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앞서 제시한 민족민주혁명당, 왕재산간첩단 등의 사례와 같이, 그동안 한국의 선거에 대응하여 합법영역과 반(半)합법영역에서는 통일전선부의 교포망과 대남심리전을, 비합법영역에서는 문화교류국의 지하간첩망과 정찰총국의 해외간첩망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배합해 선거공작을 전개해온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전과 같이 예외 없이 진전된 선거공작을 전개할 것이다.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도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등 무력증강과 대남간첩공작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북한정권의 의도를 직시해야 한다.

맺는 말

이렇게 북한의 4.15 총선공작이 다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정작 공정선거를 관리해야 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북한의 선거 개입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금지한 조항 등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의 눈치나 보며 항의나 경고도 못하는 정부라면 헌법체제를 수호할 의지가 없다고 보인다.

현 상태에서 북한의 총선공작을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유권자인 우리 국민들이 북한이 대남적화혁명전략의 일환으로 전개하는 제21대 총선공작의 실체와 저의를 인식하여, 냉철한 판단으로 가짜뉴스나 여론조작 공세에 말려들지 않고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성숙된 민주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코로나 대응, 국민안전이 우선이다
–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한국의 코로나 대응 –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본 협회 편집위원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코로나가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세계로 퍼졌다. 이에 대한 Worldometers 통계를 보면 2020년 2월 24일 기준으로 코로나에 감염된 국가는 33개국, 감염자 수는 79,561명, 회복된 사람은 25,076명, 사망한 사람은 2,619명이다. 치료 중인 사람이 51,866명, 그중에서 78%는 증상이 미미하고 반면, 22%는 심각하다. 처음에는 감염자의 99% 이상, 사망의 99%가 중국에서 발생했으나 그 이후 전 세계로 퍼져가는 양상이다. 사태의 초기에는 중국과 가까운 일본, 싱가포르,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 주로 분포되어있지만, 중국과 거리가 먼 미국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감염되었다. 그 이후 미국 등 대부분 나라는 중국발 입국 통제로 추가 감염의 소지부터 없애는데 방역의 초점을 맞추어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는 코로나 환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2020년 코로나는 2003년 사스는 물론 2015년 메르스 때보다 국경을 넘는 인구 이동이 급증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감염된 국가는 모두 입국 제한조치를 취했고 다만 그 강도만 나라마다 달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외적으로 중국발 입국 통제에 대해 소극적이라 방역망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대구와 경북지역의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했고, 전국으로 확산해 확진자 숫자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정부는 700명대가 넘어선 시점에서 경계 단계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였다. 2월 19일까지 51명이던 확진자가 20일 하루에 53명이 추가되면서 104명을 넘어 24일 기준 763명이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다른 나라는 물론 발병국가인 중국마저 한국인을 입국 통제해, 한국은 스스로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정부의 코로나 해결 능력에 대한 불신은 병에 대한 불안을 공포로 번지도록 만들었다. 공포 심리로 모임 등 사회활동은 취소되고, 소비가 얼어붙는 등 경제 전반이 마비되고 있다.

코로나는 아직 그 정체는 모르고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고, 중국에서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으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나라에 따라 코로나의 충격은 다르게 나타난다. 전염병의 피해는 병 자체보다 어떻게 대응하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등의 전문가들은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로 인한 피해의 80-90%는 심리적인 문제에 기인했다고 본다. 이 당시도 입원자나 사망한 사람은 우려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고 오래갔다. 의학과 방역시스템 문제보다 컨트롤 타워 문제가 더 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병의 확산과 불안 심리는 정부의 초기 대응에 좌우되며, 안전에 관한 관심은 남성보다 여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코로나 대응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응은 대조적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환자가 절반도 안 되지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충격이 깊어지는데 미국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한 1월 31일 이후 2주일도 되지 않아 극복한 모습이다.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여주는 S&P 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코로나 발병 이후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하락했으나 2월 10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충격은 중국에 공장이 있는 애플이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정도고, 경제 기반이 탄탄한 덕분에 고용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늘었고 기업의 실적도 예상보다 양호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코로나 사태로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 전망되어 미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한 데다, 코로나 감염의 증가 속도는 둔화해 불안 심리가 줄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도체 빼고 전 산업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받았고 충격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길어져 성장률은 1%대도 어려울 정도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이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두 나라의 여건이 다르나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한국은 코로나의 충격을 키웠고 반면, 미국은 줄일 수 있게 만들었다. 먼저 경제정책부터 살펴보면, 미국은 기업이 일자리 만들고, 외국으로 떠났던 기업이 돌아오도록 만드는 정책을 폈다. 덕분에 경제 성장은 역대 최고치를, 실업률은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러한 성과는 코로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다. 반면, 한국은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등 기업이 투자를 포기하고 해외로 떠나게 만드는 정책이 판을 쳤다. 경제는 외환위기 상황으로 악화했고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커져, 코로나에 대한 불안은 공포로 이어졌다.

코로나 위기관리정책도 전혀 다르다. 미국은 전문가 중심이고 반면, 한국은 대통령 중심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전문가들이 나서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해 2주 내 중국을 다녀온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해 확산을 막았고,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는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나서서 불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니까 의료기관을 나무랐고 의사협회의 감염 위험자 입국 제한 권고는 무시했다. 미국에 이어 다른 나라들도 자국민 안전에 최우선순위를 두자 정부가 마지못해 부분적 입국 제한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후속 조치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신종 바이러스는 과학의 영역이자 국민 안전과 국가안보의 문제다. 전문가를 제치고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사람처럼 설치고, 정권의 이해득실부터 계산하면서 사태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발병하자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늦장 대응하고, 민관협력은 물론 정부 부처 협력에도 구멍이 생겼다. 우한 폐렴의 수용 시설과 초중고교 개학연기를 놓고 혼란이 생겼고, 3차 감염자가 중국 바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공수처 만드는데 열을 내는 이상한 일이 벌였다. 중국이 우한 폐렴을 숨기다가 뒤늦게 인정하는 바람에 화를 키워 사망자가 그만큼 많아졌고, 우한 도시 자체를 폐쇄해도 해결하지 못했던 이유도 정권 유지와 제왕적 지도자에 기인하기 때문인데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도 그렇다.

외교정책도 전혀 달랐다. 미국은 철저하게 국익 우선이었고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 눈치 보기였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수출과 관광 수입의 중국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중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도가 지나쳤다. 중국인 관광 수입이 큰 미국은 물론, 중국과의 경제협력의 강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센 북한, 홍콩, 대만도 철저하게 국익 중심이었다. 북한은 일찌감치 국경을 봉쇄했고, 홍콩과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 눈치를 보는 더 큰 이유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4월 선거 전에 한국을 방문하도록 분위기를 만들려고 공을 들이는 데 있다. 중국에 우한 폐렴에 관한 정보라도 공유하자고 요구해야 할 마당에, 슬슬 기고 피해를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는 듯한 외교정책은 선거에 오히려 악재가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저자세는 코로나 위기를 키웠다. 지지자마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그의 말에 실망하고, 정부가 중국발 입국을 제한하지 않은데 반대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우한 폐렴의 발병과 중국 당국의 대응을 보면서 지금까지 환상에 빠졌다고 후회한다. 더군다나 사드를 배치했다고 중국이 한국에 무자비하게 보복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중국에 대한 문 정권의 저자세 외교정책에 분노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이지만, 중국이 공장 가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확산하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입국 제한조차 소극적인 우리나라는 다시 코로나 위기를 맞고, 외교정책의 실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선거에서 문 정권 심판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나라의 위기 대처 역량을 좌우한다. 미국은 코로나 발병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동요하는 기색이 작은데 우리나라는 크게 동요했다. 코로나는 아직 그 정체는 모르고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병한 이후 지금까지 치사율이 메르스 때보다 낮아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민도 코로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한국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미국 정부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코로나 환자가 아니라면 마스크를 쓰지 말고 손 씻기를 권고했다. 마스크가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크지 않고 불안 심리만 키우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정부의 권고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아 심리적으로 편해져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했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은 그만큼 작았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고, 서울시장은 한 수 더 떠 팔꿈치 악수하고, 국민에게는 외부 출입을 자제하라고 했다. 코로나의 진원지가 한국인 것처럼 요란하게 대응하다 보니, 불안 심리가 더 커져 상가에 불이 꺼지고 소비 심리가 사라졌다. 게다가 정부가 마스크를 중국에 대량으로 보낸다고 하자 품귀현상을 예상한 사람은 매점매석을 했고, 정부는 단속·처벌한다고 난리를 치는 혼란도 발생했다. 코로나 불안과 사회 혼란을 키워놓고는 문 대통령과 장관들은 선거를 지원한다고 사람을 모아놓고 행사를 벌였다. 문 대통령은 부산으로 달려가 마스크 끼고는 난데없이 ‘부산형 일자리’를 말했으나 부산 경제는 최악이다. 성동구 보건소로 가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우한 폐렴에 대응을 잘한다고 자화자찬할 때 우한 폐렴은 서울 전역으로 확산했다.

선거를 의식한 코로나 대응은 민심이 떠나게 만든다. 안 그래도 경제가 소득주도성장에다 공정경제 등으로 최악이 되었는데 코로나 사태까지 덮쳤다. 정부의 임기응변적인 대응과 이에 따른 불안 심리로 관광은 물론 음식, 숙박, 항공 등 관련 산업은 직격탄의 피해가 더 커졌고, 제조업 등도 유탄을 맞았다.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재정투입확대로 해결한다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경제정책과 위기관리방식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 실업률 숫자 낮춘다고 고령층 일자리 사업을 강화하다가 건강이 취약한 고령층의 특성상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 고용이 취약한 청년층은 아르바이트 일자리 구하는 일이 코로나로 더 어려워진 마당에 선거를 의식한 정년 연장은 청년을 분노하게 만든다. 차라리 코로나 사태를 제대로 관리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면 정부의 위기관리역량을 높여야 한다. 이중적 태도와 병 주고 약 주는 뒷북 대응이 아니라 과감하고도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 과학적 판단을 정치적 판단에 우선하고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며 국민이 신뢰를 느끼도록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광우병, 세월호, 원자력 괴담으로 이어진 바 있다. 괴담을 만든 주체가 현 정부의 지지 세력이라고 안심할지 모르나 코로나는 전염병이라 괴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비상사태 선포처럼 우리도 과감한 조치를 하자고 주장한다. 코로나는 증세가 양성이었다가 음성으로 재판정될 정도로 불확실하고, 국경을 넘어선 국제적인 전염병인 만큼 추가 감염의 소지부터 사전에 차단하자는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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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국방차관보 “북한 도발에 대한 다양한 대응 수단 준비돼 있어”

하이노 클링크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이 도발하면) 다양한 수단을 통해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북측이 도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외교적 해법을 원한다고 30일(현지시간) 말했다.

클링크 부차관보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대학원(엘리엇스쿨)이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경쟁’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국방부 입장을 붇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셈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 수 있다며 도발을 시사한 점을 언급하면서 “나는 우리가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응할 자세가 돼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것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정부에 있는 모든 사람은 외교적 해결책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클링크 부차관보는 지난해 한미 양국이 대규모 연합훈련을 잠정 중단하고 규모를 조정해 시행 중인 것에 대해선 “일부 훈련의 규모와 범위, 기간에 조정이 있었다”며 “(트럼프)대통령은 외교에서 이길 모든 기회를 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출처 : 매일경제 2020년 1월 31일 기사)

♣ 한미연합훈련 사실상 취소, 軍안팎 “안보공백 우려”

한·미 군 당국이 27일 우한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다음 달 초로 예정됐던 전반기 한·미 연합훈련을 ‘무기한 연기’했다.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사령부는 이날 공동발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코로나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함에 따라 기존 계획했던 한미연합사령부 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을 별도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이날 ‘연기’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상반기 연합훈련이 취소된 것으로 해석됐다.

한·미는 애초 다음 달 9일부터 2주간 실내 ‘워게임’ 형태의 전반기 연합지휘소연습(CPX)을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최근까지도 훈련 축소 방안이 유력했지만 우한 코로나가 급속 확산돼 우리 군은 물론 주한 미군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자 훈련 취소가 전격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과 연합사는 “한·미 장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박한기 합참의장이 먼저 훈련 연기를 제안했다”며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은 현 상황의 엄중함에 공감하고 연기하기로 합의해 결정했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이유로 대규모 연합 실기동 훈련이 모두 폐지된 상황에서 이번 연합훈련까지 취소되자 군 안팎에서는 안보 공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한·미는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3대 연합훈련을 폐지했는데, 여기에 감염병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실내 훈련마저 취소된 것이다. 현 정권이 추진 중인 임기 내(202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훈련 취소 공식 발표 직전 미국 워싱턴 국방대학교 강연에서 “하나의 훈련이나 연습이 취소된다고 군사대비태세가 약화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연합방위태세가 이미 확고하고 발전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연합훈련이 취소된 상황에서 국방부 장관이 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군 내부에서 5명의 우한 코로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해 총 확진자는 25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추가 5명 중 2명은 부대 내 감염으로 인한 확진자다. 격리자는 9990여명으로 사실상 1만 명을 기록했다.

(출처: 조선일보 2020년 2월 28일 기사)

언론속의 한미관계

♣ 美 “방위비협상서 순환배치 비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한국에 전략자산비용은 요구 안해… 호르무즈 파병은 협상의제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16일(현지 시각)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었다. 워싱턴에서 14~15일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6차 회의가 합의 없이 끝난 지 하루 만이다. 막판 협상을 앞두고 미국의 외교·국방 수장이 분담금 인상을 공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쯤 월스트리트저널 웹사이트에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아니라 동맹이다’란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올렸다. 서울의 아침 시간에 맞춰 미국 정부 입장을 전한 것이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미국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한국이 한반도 미군 주둔의 가장 직접적인 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하고 있다”면서 “비용이 증가하면서 한국의 부담 몫은 줄어들고 있다. 현행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한국 방위 비용의 일부만 담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기고문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가 국무·국방장관의 최우선순위 관심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국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기존 SMA 틀에는 반영되지 않은 ‘준비태세 비용'”이라고 했다. 미군이 한국 방어 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선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와 역외 훈련비용 등이 발생하는데 그 일부를 분담해달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한국이 직접적인 혜택을 보는 핵우산이나 다른 전략자산 등에 대해서는 비용 분담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한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동맹 기여로 인정해 분담금 협상에서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과 관련해선 “파병 문제는 이 협상의 논의 주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향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대놓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최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기존 분담금의 5배인 5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는 거의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5차 회의에서 미국 측 협상팀이 분담금 인상 총액을 약 40억 달러로 내린 것으로 알려진 후 실제 합의될 액수는 그보다 낮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국무·국방장관의 기고는 그 적정선을 찾기 위해 막판 압박을 가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본지와 인터뷰한 미 국무부 고위 관리도 “협상은 거의 막바지”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 과정을 면밀히 챙기고 있다고 한다.

국무부 고위 관리는 ‘목표 총액을 더 줄였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큰 숫자들은 혼란만 줄 뿐이다. 숫자는 더 이상 우리 논의와 협상의 초점이 아니다”라면서 “한국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한·미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관심은 한국이 동맹에 기여할 방안을 찾아 미국 납세자에게 가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방위비와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는 “한국의 무기 구입이 미국 경제, 무역,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미국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는 직접적인 기여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핵심 관심사는 기존 SMA 틀에는 반영되지 않는 ‘준비 태세 비용’이라고 했다. 그는 “미군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자원을 갖추고 한반도에서 고도의 준비 태세를 갖추려면 한국 사정에 맞게 훈련하고 장비를 갖추고 계속 순환 배치하게 되는데, 이 비용의 일부가 한반도 밖에서도 발생한다”며 “(그 비용을) 한국이 전부 부담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부분을 분담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와 관련해선 “설사 협상에서 언급됐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고 (그 문제는) 다른 적절한 채널을 통해 다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토지 임대료 등을 방위비에 포함하는 방안, 면세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됐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면서 “그런 사안들이 논의의 중심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국방장관은 이날 기고문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결국 한국 경제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한국 부담 기여분의 90% 이상이 주한 미군에 고용된 한국인들의 급여, 건설 계약, 미군 유지를 위해 현지에서 구매하는 서비스 형태로 지역 경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 분담금의 일부인 많은 돈이 재화와 서비스 면에서 한국 경제로 직접 되돌아간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20년 1월 18일 기사)

♣ 정의선, 美주지사 동계회의서 수소 모빌리티 시연…경제협력 강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저에서 개최된 ‘전미주지사협회 리셉션’에 참석해 수소사회 비전과 모빌리티 혁신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주미대사관과 전미주지사협회가 공동 개최한 리셉션 행사는 이달 7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전미주지사협회 동계회의의 일환이다. 현대차그룹은 주미한국대사관저 입구에 수소전기차 넥쏘를 전시하고 친환경 공기 정화 기능을 시연했다.

리셉션에는 행사 주최 측인 이수혁 주미한국대사와 전미주지사협회 의장인 래리 호건(Larry Hogan) 메릴랜드 주지사 등 26개 주 주지사, 주 정부 관계자, 초청받은 한국 경제계 주요 인사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방미해 긴밀한 한미 경제협력 관계를 증명해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에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회장도 “한국 기업들이 57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로 한미 경제협력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우리가 공유한 가치에서 비롯된 우정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양국 번영을 기원한다”고 화답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주지사들에게 수소전기차 친환경성을 소개하며 넥쏘 탑재 기술과 현대차그룹의 미래 수소사회 청사진을 설명했다.

공기정화 시연은 넥쏘의 공기 흡입구에 연결된 투명 비닐 풍선 안의 오염된 공기가 차량 내 3단계 공기정화 시스템을 거쳐 청정 공기로 바뀐 뒤 배기구에 연결된 투명 비닐 풍선 안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지사와 주정부 관계자들이 수소전기차의 친환경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면서 “미국 내 수소전기차와 수소 인프라스트럭처 확대가 가속화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전미주지사협회 회의는 미국 50개 주와 5개 자치령 주지사들이 매년 동계와 하계 두 차례 주정부 간 정책 이슈를 논의하고 세계 각국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는 자리다. 이수혁 주미대사가 주재한 이번 공식 리셉션은 한국대사관저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 (출처 : 매일경제 2020년 2월 10일 기사)

3代를 이어온 티몬스家의 자유 수호 의지
-낙동강 서부전선, 서북산 전적비를 찾아서-

최상진
수필가, 본 협회 편집위원

1995년 12월 제20대 주한 미 8군 사령관 리처드 F 티몬스 중장과 육군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 장병은 1950년 8월에 미 제25사단 예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한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경남 함안 서북산 고지(738m)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로버트 L 티몬스 대위 외 100여 명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서북산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티몬스 대위는 미 제25사단 제5연대 1대대 중대장으로 하와이 주둔부대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파병되었고 19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서북산 고지전에서 8월 23일 총격으로 부상을 당해 후송되는 중 북한군 기관총 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한국에 파병된 지 만 1개월도 안 되는 시점에 애석하게 전사한 그의 시신은 1년 뒤 발견되어 미 워싱턴 소재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당시 일곱 살의 나이였던 그의 아들 리처드는 아버지의 전사가 군인의 길을 택하는 중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보병학교 출신인 리처드 F 티몬스는 소령 시절(80년 1-81.2) 미 2사단 작전장교로 한국에 1차 근무하였으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 미 워싱턴 주 포트루이스의 제7 경보병 사단장을 역임 후 1994년 10월부터 1997년 8월까지 제20대 주한 미 8군 사령관을 역임하였다.

그 기간 한국은 김영삼 정부 시절로 1994년 6월 경수로 관련 1차 북핵 위기,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폭 검토,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특사), 김일성 사망, 남북 정상회담 취소 등 한·미·북간의 굵직한 사안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직책을 수행하였다. 그의 아들 즉 로버트 티몬스 대위의 손자인 리처드 티몬스 2세 또한 미 육군 대위로 한국 근무를 자원, 1996년부터 1997년까지 1년간 판문점 인근 미 2사단 최전방 초소에서 근무함으로써 3대에 걸쳐 한국 방위를 담당하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육신은 고국인 미국에 모셨지만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버지의 영혼을 서북산에 모신 청출어람의 아들 그리고 자원해서 조상의 흔적을 찾아 한국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한 손자, 나의 조국이 아닌 우방 대한민국에서 3대를 이어간 그들의 숭고한 역할에 옷깃을 여미고 큰 절로 감사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08월 낙동강 서남부 전선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린 미군은 근 한 달 동안 패전과 후퇴의 연속이었고 군대의 사기는 전쟁수행 능력을 상실한 채 적의 격퇴보다는 북한군의 남하속도를 지연시키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6.25 발발 그 다음날 한국으로 날라 와 종군기자로 목숨 건 맹활약을 펼친 “마가레트 히긴스” 기자는 그녀의 저서 ‘War in Korea – 자유를 위한 희생’에서 초기 한국전의 진면목인 준비가 되지 않은 전쟁의 맹점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병사들 사이에 만연한 심리적 혼란 상태를 인정하고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바츄카포는 소련제 탱크의 대적이 되지 못한다. – 초동준비의 미흡. 셋째, 준비가 되지 못한 군대가 겪는 절망과 공포가 재현되지 않게 국가적 대처를 해야 한다. 즉 해방 이후 미·소의 신탁통치와 에치슨라인 설정 등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 정치권이 보여준 안이한 태도와 미흡한 전쟁준비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전쟁을 책임지고 있는 월턴 H 워커 미 8군 사령관으로서는 더 물러설 수 없는 절제절명의 위기에서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특단의 조치와 전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의 승리자인 미군이 겪은 초기 30여 일 동안의 한국전선은 참담했다.

초기 일천 명 미만의 미군은 병력면에서 압도적 우위인 북한과 1:5 심지어는 1:50의 비율로 싸워야 했고 북한의 1,000대 이상의 소련제 중전차(T-34)는 미군의 경전차와 대적이 되지 않았다. 막강한 제공권이 가졌다고는 하나 산악전투에 능숙한 적의 기갑부대를 제압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피난민 가운데서 나타나 기습 공격하는 게릴라식 기만전술, 아군과 북한군을 잘 식별하지 못해 가해지는 오폭피해 까지 전쟁에 익숙하지 못한 병사들의 피로감과 패배감은 커졌고 심지어는 전장을 이탈하는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히긴스는 기자의 사명을 ‘상처받는 전선의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라 했다. 준비 안 된 군대가 겪는 절망과 공포의 순간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므로 다시는 재현되지 않게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정치권과 군부의 올바른 판단과 훈련이 젊은 군인들의 아까운 생명을 지키고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워커 사령관의 유명한 진지 사수명령 ‘Stand or Die(더 이상 후퇴는 없다)’는 이 시점에 하달이 되었고, 그 동안 적의 남하 지연과 수비 작전은 사수, 공격 작전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최일선에 전면방어진지(全面防禦陣地)를 구축하여 방어와 공격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상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병력과 예비 병력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낙동강 방어전선을 낙동강 하구부터 남쪽 해안 마산까지 큰 반원형으로 설치하여 산악전이 필수적인 동북부는 한국군이, 왜관 방면과 서남부는 미군으로 재편성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대구 공세에 못지않게 서부전선의 마산 침공을 염려하고 있었다. 부산까지 50여 km, 방호산(方虎山)이 지휘하는 북한군 6사단의 전투력을 감안할 때 부지불식간에 허를 찔려 전장이 무너질 염려가 컸다. 7월 10일에서 15일 전후로 한국전선에 두 번째로 파견된 신예병력인 미 제 1기병사단을 왜관 다부동 방면에, 피로감이 짙은 미 제24사단을 교체하여 미 제 25사단 전체를 대구 북부전선(상주)에 배치하여 마산지역 방어에 임하도록 하였다.

마산을 점령하면 적의 숨통을 조르는 것이다.

북한군 제6사단은 6.25남침 이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될 때 김포를 점령, 파죽지세로 지금의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호남지역을 관통해 7월 25일 목포, 여수를 점령하고, 7월 28일 하동에 집결한다. 7월 29일 마산 방면으로 공격을 개시한 6사단은 30일 진주-마산 도로를 차단하고 31일 진주를 점령한다. “마산을 점령하면 적의 숨통을 조르는 것이다” 방호산의 목표는 낙동강 남서부 전선에서 부산의 전방인 마산을 점령하고 부산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개전 한 달 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미 워커 8군사령관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으며, 마산지역 방어가 대구 북부 다부동 전선 이상으로 중요하고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 산하 조선 의용군 부대로 1937년부터 38년까지 일본 제국군과 항일전을 벌였고,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에는 국민당의 장개석 부대와도 전투를 벌였던 실전경험이 풍부한 부대였다. 중부전선에서 대구가 부산수호의 최종관문이라면 서부전선에서는 마산이 부산의 육상, 해상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피아 양보할 수 없는 중요거점이 되었으며 사활을 건 일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산지구 전투는 미 제 25사단이 배치된 8월 초부터 9월 중순 까지 치러지는데 초기는 마산 진동초등학교와 국군 해병의 봉암리 전투, 이어 킨 특수임무부대의 진주 탈환 공격과 포병의 무덤, 마지막으로 북한의 저항전투인 서북산 중심의 고지전으로 구분된다.

진동리 지구 전투

미 25사단이 미처 도착하기 전 갑자기 사라진 북한군 제 6사단과 4사단의 행방을 찾아 존 H 처치 미 제 24사단장은 중형전차 5대, 장갑차 4개를 보강 편성한 19연대 1대대(대대장 길버트 체크 중령)에게 위력정찰을 명령한다. 이때 미군은 정찰임무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적진 30km 부근까지 침투하여 포위되는 고초도 겪었지만 적의 위치를 파악한 후 진동초등학교에 설치된 임시본부로 귀환한다. 다음날인 8월 2일 아침 7시, 전력이 강화된 사실을 모르는 북한 6사단은 기습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철의 마이크란 별명의 연대장 마이켈리스의 빗발치는 포화 속의 진두지휘와 포병대대의 반격으로 6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백선엽 장군이 극찬한 마이켈리스 연대장은 바로 왜관 다부동 볼링장전투(본지 252호에 소개)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뒤 1969-72년에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미8군사령관을 역임하였다. 한편 잔적 섬멸의 임무를 부여받은 미 27연대에 배속된 국군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진동리 야반산을 탈환하고 혁혁한 공을 세워 전원 1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았다.

킨 특수임무부대와 봉암리 포병의 무덤

워커사령관의 명령을 접한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에 140km를 이동하여 방어배치를 완료하였고, 사단장 킨 소장은 지역 내 모든 작전부대의 통합지휘권을 부여받아 마산-진주 축선 방면의 사단급 반격작전을 수립한다. 이름하여 킨 특수임무부대로 한국전쟁 최초의 공격임무를 수행한 특수작전 부대였다. 작전목표는 진주를 탈환함으로써 북한군의 예비전력을 진주, 마산 일대로 유인하여 대구방면의 압력을 완화시키고 북한군을 낙동강 전선에 고착시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반격작전을 위해 미 제 25사단에는 제 5연대 전투단과 미 8군 예비의 미 제5해병연대, 한국군 김성은 해병부대 등이 배속되었다.

킨 특임대는 세 갈래의 공격루트- 즉 35연대에게는 진주방면 서북도로, 제 5연대에게는 여항산, 서북산의 일명 진주고개, 제 1 해병연대에게는 진주 남동쪽 해안을 관통하여 진주 공격-를 설정하여, 8월 7일 06시 30분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작전 초기에는 보강된 전력과 막강한 항공지원으로 괘방산 일대의 북한군을 대파하였으나 극심한 더위와 일사병, 거세지는 북한군의 저항으로 힘겨운 전투를 이어갔고, 제 5연대 본부가 봉암리 계곡에서 포위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555 포병대대와 제90 포병대대 370여명의 사상자 발생과 수십대의 중화기가 파괴되는 등 막대한 전투손실을 입어 후일 포병의 무덤이라 일컬어졌다. 이 무렵 대구 북방의 전황이 악화되고 예비대가 필요함에 따라 제1해병여단과 제5연대의 일부가 배속 해제되고 8월 16일 킨 특임대는 해체되었다. 이렇게 최초의 공격작전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북한군 또한 막대한 손실을 입어 4천여 명의 사상자와 13대의 전차가 파괴되는 등 6사단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갓데미산, 서북산 고지전

서북산(738m)은 서울 근교의 도봉산(740m) 정도의 높이로 진주와 마산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정점이며 직선상으로는 마산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이다. 8월 18일 방호산은 마산과 진주의 전진기지이자 전투관측과 보급기지로서의 유리한 역할을 지닌 여항산(774m)과 서북산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이로부터 피아간 19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고, 앞에서 소개한 서북산 전적비의 로버트 티몬스 대위도 이 전투에서 산화하였다.

6.25 한국전쟁 초기에 가장 치열한 고지전으로 미군은 이곳에서 ‘God damn’을 연발하였다고 하여 갓 데미산이라 불리었으며, ‘병사들의 시신이 산을 이루었다’하여 백골산으로도 불린다. 마산지구 전투는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의 전투력 증강과 국군해병 김성은 부대의 통영상륙작전 등으로 북한군 정예 6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을 격퇴하여 임시수도 부산을 지킬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치열한 포병사격과 공중폭격으로 산의 높이가 낮아졌다는 서북산에는 인근 창원의 천주산과 같이 진달래가 무성하다. 4월이 되면 우방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고귀한 생명이 뿌린 혈흔만큼 진분홍의 진달래가 격전지를 붉게 물들일 것이다.

서북산 전적비 앞에서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을 남겼는지, 전쟁으로 얻은 고귀한 가치는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우리에게도 티몬스家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켜준 한미동맹의 숭고한 정신과 양국의 순국선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은혜를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호국산행을 도와주신 대구의 산어귀 산악회 회원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서북산 전적비에 숨겨진 숭고한 의미가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본 미군참전비 답사기는 한미우호협회 홈페이지(kafs.or.kr) 자료실(간행물; 영원한친구들)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100세인생 생활의힌트(17)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후생이 두렵구나. 지금만 못하리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4, 50이 되어도 이름이 나지 않으면 그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학생시절, 제자들에게 일러주는 공자의 이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50에 “知天命”이란 이런 뜻이로구나!
팔십 들어 지난 4년 동안 친지들과 「몽테뉴수상록」을 공부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2년 동안은 집안 2세들과 「논어」를 공부해 보자고 의논했습니다.

502세들에게

공자는 세 살 때 부모를 여의고 어린 시절을 몹시 고단하게 자랐다. 마구잡이 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열다섯 살 무렵부터 공부에 열중하여 서른 살 경에는 지역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지도자로 명망을 얻었다.
차츰 학문이 높아져 그의 인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사상이 널리 알려져 52세에 고국인 魯노나라 사법장관(大司寇)에 등용되었다. 4년에 걸쳐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진력하였으나, 뿌리 깊은 세도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56세에 국외로 망명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이웃 아홉 나라를 전전하며 도의정치를 실현하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심혈을 기울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4년 만에 69세로 실의 속에 다시 고국의 땅을 밟았다. 74세에 영면할 때까지 후계자 양성을 위해 영재 교육의 길을 걸었다.

이하 논어 20편, 499 구절 가운데 몇 절을 뽑아 논어의 한 면모를 보이려 한다. 모든 절구가 다 단편적이고 독립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i. 나와 같지 않은 이를 벗하지 마라.

ii. 「시전 詩傳」 3백수는 한마디로 「思無邪 사무사」: “사악 wicked한 것을 생각마라”

ⅲ. 十五에 “志學 지학”: 배움에 뜻을 두고

      三十에 “立”: 제 발로 서고

      四十에 “不惑 불혹”: 신념에 흔들림이 없고

      五十에 “知天命”: 천직을 깨닫고

      六十에 “耳順”: 듣는 대로 다 이해하고

     七十에 “不踰矩 불유구”: 도덕을 어김이 없다.

ⅳ. 군자는 한 가지 틀에 매이지 않는다.

ⅴ. 사람들과 화목하되, 같아지지는 마라. (和而이不同)

ⅵ. 책만 읽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책을 읽지 않으면 위태롭다.

ⅶ. “아는 것”은 아는 줄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줄 아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ⅷ. 여자와 소인은 거두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ⅸ. 「恕 서」: 내 마음 미루어 남의 마음을 살펴라. (공자 이념의 중심 핵)

「己기所소不불欲욕 勿물施시於어人하라」: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마라.

ⅹ. 원한을 덕으로 갚으리이까?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덕은 덕으로 갚고, 원한은 공정함直으로 갚아라.

ⅹi. 知가 好만 못하고, 好가 樂만 못하고, 樂이 安만 못하다. (安=安心立命)

ⅹii. 中 이상 지성인에게는 上을 얘기해도 좋지만, 中 이하 지성인에게는 上을 얘기함은 마땅치 않다.

ⅹiii. 富가 바란다고 얻어진다면 마부가 되어서라도 얻어 보겠지만, 기왕 안 되는 것이라면 나 좋아하는 일이나 하겠다.

ⅹiv. 백성은 이끌 대상이고, 뜻을 알릴 대상이 아니다. (2500년 전 서민은 문자를 해독 못했다)

ⅹv. 질서가 선 나라에선 빈천함이 부끄러운 것이고, 기강이 무너진 나라에선 부귀함이 부끄러운 것이다.

ⅹvi. 싹부터 노란 이도 있고, 싹은 싱싱한데 열매를 못 맺는 이도 있다.

ⅹvii. 같이 배워도 함께 길을 못 가는 이가 있고, 같이 걸어도 함께 서지 못하는 이가 있고, 같이 선사람 중에도 카리스마 권위를 못 지니는 이가 있다.

인생의 밑바닥을 걸어온 청소년기 30년, 50대 4년간의 국가 통치 경험, 14년간의 천하주류 방랑기, 그리고 심혈을 기울인 말년의 후계자 양성- 이런 경륜이 타고난 천품과 일체가 되어 세계 사상사에 「유교」철학이라는 하나의 금자탑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 「논어」텍스트는 성백효 「論語集註」

겨울비

김정화

그가 걸어온 자리에
녹슨 못이 뽑혀 나가듯
작은 구멍이뚫리고

그 작은 구명으로
그가 쉴 새 없이 드나들어
맑은 눈물이 채워지고

못이 뽑혀나가고
맑은 눈물이 채워지고
긴 밤 자작자작 드나드는
어떤 발걸음

낯선 길을 헤마다 지친
내 꿈에서 떨어져 내린 꽃잎일까

녹슨 못이 뽑혀진 자리에
작은 구명이 뚫어진 자리에
그가 조용조용 드나들며

누군가의 꿈에서 떨어져 울고 있는
꿈 조각들을 일으키며

마침내
오래도록 기다리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얗고 빨간 꽃잎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6.25전쟁 70주년에 한미동맹을 생각한다

황진하
본 협회 회장, 전 국회국방위원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우리 회원님 여러분 모두 만복을 받으셔서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신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우리 협회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뛰어올 수 있었던 한해였다고 자부하면서 이는 회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확신하고 이 기회를 빌려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제 2020년을 맞으면서 새 희망이 넘치고 그 희망과 목표를 성취해 나아가려는 포부와 열정이 샘솟아야 할 신년 벽두에 있습니다. 서로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덕담을 주고받으며 결기를 다져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반도 안팎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못한 상태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국충정과 애국심에 불타는 우리 협회 회원님들께 우리 협회의 임무가 더없이 소중하고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며 엄중한 시기라는 점을 상기시켜드리면서 우리 협회가 더더욱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하여 앞장서서 최선의 노력을 해나가자는 간곡한 당부와 강력한 요청을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연초부터 긴장된 마음으로 심기일전하시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핵무기 문제입니다. 실마리가 전혀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작년도 싱가포르에서, 작년도에는 두 차례, 즉 하노이와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희망적 진전이라도 생기는 게 아닌가 기대했으나 비핵화를 위한 미북 간의 대화는 한발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중순 한국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는 북한에 최종적 입장 조율과 함께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빈손으로 한국을 떠났고, 그 이후 있었던 갑작스러운 중국방문에서도 별 성과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공군 사령관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2017년도에 했던 것이 많이 있어 우리는 꽤 빨리 먼지를 털어내고 준비할 수 있다.”라며 군사적 선택까지 다시 테이블 위로 복귀시키는 듯한 발언이 나오는 등, 오히려 더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있어 한반도에 언제 먹구름이 닥쳐올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세계적인 국제정치학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가 작년 3월 미 조지타운대 세미나에서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엄청난 시간 낭비이다.”라고 했던 지적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둘째로 올해는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이,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북한은 이제까지 정치적으로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선거 시기를 절대 놓치지 않고 늘 최대한으로 악용해왔던 역사적 사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국내정치는 여야갈등과 국론분열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에서 경제 사정이 민생을 위협하면서 민심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있으므로 총선 전후의 갈등과 총선 후의 후유증이 어느 때보다 걱정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선거 때문에 한반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선거에 유불리를 따지면서 소극적 대처를 하거나 심각성이 과소평가되어 지나갈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피비린내 났던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희생과 비극을 우리 민족에게 가져왔는가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풍전등화와 같았던 국가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구했으며,
그 잿더미 위에서 어떻게 우리가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는지?

올해는 그 교훈들을 철저하게 챙기고 상기해야 할 필요가 절실한 해입니다. 6.25 전쟁의 교훈을 오늘에 되살리고, 위대한 한미동맹과 우리 국민의 저력이 어우러져 이루어 냈던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를 재창출해나가야 할 때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협회는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올해가 한미동맹의 확고한 유지 발전이 더욱 심각하게 요구되는 해라는 점을 인식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고자 하며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동참이 있으시기를 당부, 요청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회원 여러분들의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올리는 동시에 금년도에 우리 협회가 쏟아야 할 시대적 사명과 최선을 다해 나가자는 다짐의 말씀을 함께 올립니다.

새해 아침에
한미우호협회장 황진하

진실의 심판대에 선 ‘北비핵화 쇼’ 

이용준
前 외교부 차관보, 전 북핵담당 대사,
본 협회 편집위원

2018 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한과 미국의 ‘북한 비핵화 쇼’는 북한의 오는 연말 협상 시한 설정에 따라 ‘진실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간의 온갖 과장된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단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세 나라 정상이 벌여 온 현란한 외교 쇼를 통해 국제사회는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첫째, 북한은 전면 비핵화를 이행할 의사가 전혀 없고 제재 해제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과 미국 정부는 공히 북한의 비핵화 실현보다는 협상을 위한 협상과 그에 따른 국내정치적 이익에 주로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암울한 교착 상태는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귀결이다. 미·북 간의 협상이 더 계속되더라도 출구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의 소원대로 대북(對北) 제재를 해제한다고 북한이 전면 비핵화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고, 반대로 제재 지속으로 경제난이 더 악화한다고 해서 이에 굴복해 핵 포기 결단을 내릴 북한도 아니다. 지난 2년간 핵·미사일 제조 능력을 고도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됐고, 눈속임으로 폐쇄했던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도 원상복구 되고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시간에 쫓기는 북한은 미국의 조기 양보를 얻어내려 연말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연일 미국을 압박 중이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발사 카드를 흔들어대고 있으나, 이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절박한 초조감의 몸짓으로 보인다. 미국이 굴복하지 않으면 이는 북한에 커다란 자충수가 될 것이다. 과거 북한은 ‘벼랑 끝 외교’가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 굴욕적 후퇴보다는 벼랑 끝에서 뛰어내려 고통을 감수하는 길을 택하곤 했다. 탄핵안 표결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기보다는 북한이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현시점에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려면 과거보다 훨씬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지난 2년간 동북아 국가 관계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김에 따라, 북한이 큰 난관에 부닥쳐도 중국과 한국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중 패권싸움의 첨예한 대립 속에 미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의 의무와 정신을 배반하고 중국에 굴종하는 외교 행태를 통해 대미(對美) 발언권과 견제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특단의 행동을 취함에 있어 과거보다 훨씬 더 큰 ‘행동의 자유’를 갖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과 협의 없이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하더라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2017년 말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던 지난 2년의 마지막 골든타임은 한국 정부가 주도한 ‘비핵화 쇼’로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로 인해 외교적 방식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더욱더 요원한 꿈이 됐다. 이제 북한의 전면 비핵화를 위해서는 경제적·군사적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 변경의 길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미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북한에 대한 ‘행동의 자유’를 보유하고 있는 현 시기는 한국으로서도 매우 예민한 불확실성의 시기다. 유사시에 대비해 자위를 위한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망을 대폭 확충해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의 국방 태세는 정체불명의 ‘9·19 남북 군사합의’로 녹슬어 방치된 상태다.

그 와중에 중국은 자주국이기를 포기한 듯한 문재인 정부의 ‘3불(不) 약속’으로도 부족하다면서, 한국이 자위를 위한 미사일 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백기 투항할 것을 고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중화주의의 환상을 쫓는 정체불명의 세력들과 국내 좌익 세력은 이에 편승해 주한미군 철수와 중국 진영으로의 귀속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엔 미국 핵우산을 중국 핵우산으로 대체하는 해괴한 구상까지 제기됐다. 한국에 핵 공격이나 핵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과 그 동맹국인 중국뿐인데, 중국 핵우산으로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를 막겠다니 실로 기발한 발상이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북한 핵우산에 의존하자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본 글은 필자가 지난 해 12월 12일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본 협회지에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