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해체, 평화공존전략이 가져다 줄 위험성

오종택
전 한국대학생포럼 회장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같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중략)…….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秋日抒情(1940.7)>

 

많은 사람들이 한미동맹이 해체를 앞두고 있다고 바라본다. 그 배경에 쉽게 잊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이다. 바로 전체주의 국가들의 동맹을 잊고 나의 동맹을 해체하는 모습들이다. 그 대가는 전 세계적인 전란이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은 바로 평화공존전략의 희생양이 된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다루고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2차 대전은 나치와 소련 간의 동맹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점(폴란드 침공).
  2. 네빌 체임벌린처럼 동맹을 해체하면서까지 독재국가와의 평화공존을 부르짖는 과정은 본연 독재에 대한 묵인과 방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
  3. 그 대가로 수십만 명의 청춘들이 총탄에 찢기고 더운 피가 길거리에서, 들판에서, 하늘에서 흩뿌려진다는 점.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의 해체는 모두가 느끼는 현상이다. 동맹의 약화를 원하는 쪽이 있고 이를 우려하는 쪽도 분명히 나뉜 갈래가 그 현상이다. 이 나뉜 갈래 끝 양쪽에서는 학식과 덕력을 갖추었다는 어른들이 서로 싸우기 바쁘다. 그리고 청춘들은 무기력하게 그들의 정치와 그들의 토론이 만든 미래에 몸을 내맡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이 오늘날 보여주는 무기력함은 청춘들이 쌍수들어 환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존 세대보다 불안을 앞서 느끼는 젊은이들은 한미동맹의 약화로 도리어 한반도에 이미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파시즘의 정의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치나 소련이나 근본은 같다. 나치들은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라고 설명하였다. 히틀러는 1941년 2월, 대중연설에서 ‘국가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으로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대인이 가진 통념과 다르다. 이들은 동일하게 인간의 자유 본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권력이 통제하고자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들의 정책과 정체성은 자연히 경제침체와 공공부채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국가사회주의는 절대 자유시장경제보다 윤리적으로나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없다. 결국 분배실패와 국가실패에서 온 불만과 불안은 다른 곳으로 돌려진다. 국수주의와 가공된 외부의 적을 향한 대외침략으로 말이다. 그것은 건국하자마자 침략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치와 소련의 모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미동맹이 맞대고 있는 현대 중국과 북한의 그 모습과도 같다.

이처럼 나치와 소련이 이러한 배경에서 침략을 위한 적당한 동맹을 맺었던 것처럼 중국과 북한이 적당한 동맹을 맺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자국의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야만이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체제들이다. 그에 따라 침략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서로 좋은 동반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육지 건너와 바다 건너에 이러한 상반된 체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를 누리고자하면 응당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어야한다. 여론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에 긍정적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오늘의 젊은이들은 청춘을 침식한다고 하는 징병제도도 기꺼이 감수하고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386세대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평화공존전략을 줄기차게 추구한다. 그 결과 북한과 중국 사이의 동맹이 가진 위험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한미동맹 해체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 안보를 해체한다는 자기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인륜과 평화를 서로 머릿속에 잇지 못하는 도덕적 모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평화구상이 가진 도덕적 모순은 소련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 아인 랜드(Ayn Rand)가 잘 짚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의 평화구상이 세계대전 같은 ‘전쟁의 뿌리’임을 지적한다.

“오늘날 평화운동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본질을 들여다보자. 그들은 사랑과 우리 인류의 생존을 고려해보자면서…(중략)…모든 방위력은 국가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다면서 버려져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은 인류의 이름으로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류(類)의 평화운동들은 독재체제들에 반발하지 않는다. 이 운동의 소속된 사람들의 정치관은 전체주의의 모든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으며, 복지만능의 국가주의에서 사회주의에서 파시즘에서 공산주의까지 아우른다.

이 논리는 그들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무력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한 국가의 정부가 자신들의 시민에게 무력으로 억압적인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들이 잘 무장한 전체주의 정부 앞에서는 우리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무력을 쓰는 그들의 유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상, 아인 랜드, “전쟁의 뿌리”>

한미동맹의 약화는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가에서 반인륜에 침묵하는 쪽의 목소리가 강해진 것이다. 시민의 인권 사유재산에 대한 약탈과 파괴, 노동교화소와 고문실 등을 자행하는 독재정권들의 문제에 침묵하고 그들과 공존하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바로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반인륜적인 것들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70년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미국의 헌법적 정신이 근거다. 미국은 정부가 절대로 그런 짓을 자행하지 않겠다는 헌법을 만든 유일한 우방이기 때문이다. 약해진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것은 대다수 독재와 더욱 가까워지는 우리 국가의 모습이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 아인 랜드는 이들을 짚었다. 전체주의 정부에게 무력을 쓰는 것을 거부하나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무력을 쓰는 유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평화운동’의 사상적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것은 “전쟁의 뿌리(The Roots of War)”다.

독재국가에게 평화공존 정책을 제시한 이상 그들 독재국가는 모든 종류의 독재적 지배를 위한 시간을 번다. 그래서 한미동맹 해체를 가져오는 그들의 평화공존전략은 독재국가와 공범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결국엔 그 모순이 전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 추악한 모순의 대가는 젊은 세대가 진다.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말이다.

선배와 어른들이 이런 비극을 막는데 실패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청년들은 하나 둘 씩 그런 미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미동맹의 위기를 청년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 전란의 미래다.

북한과의 대치뿐 아니라 대화 국면에도 중요한 韓美同盟, 그리고 현재 위태로운 한미관계

유재영
협회 대학생위원장

여섯 차례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북핵폐기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했다고 내세운 남북군사합의마저 무시한 채 미사일 시험, 함박도 무장화 등 적대행위를 강행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과 한미동맹 훈련축소를 비롯한 여러 유인책이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이태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만족할만한 회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북미대화에 괜한 오지랖을 피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의 입장을 우선시하면서 비난을 받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수모지만, 무리하게 ‘한반도 운전자론’을 고집하는 정부 지도층의 현실감각 결핍도 걱정스럽다.

외교적 호의를 베푸는 데 살갑지 않은 반응을 내놓는 북한은 참으로 답답한 대화상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정세를 직시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또한 반성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숙원인 대북제재 완화는 현재 미국의 결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북한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써 정도만 남북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즉, 한국과 협력해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다지는 데 계속 이용할 것이다. 예컨대 2017년부터 미국이 광범위한 경제제재를 북한에 가하자, 김정은이 초창기에 손을 벌린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북한외교에 힘을 실었다). 참고로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방법들이 교묘해지고 미국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지금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북한의 한국 패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이 북한 비핵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대북 협상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가 더욱더 견고해져야만 하며, 이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행태의 대북 대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 번째, 강력한 한미동맹을 앞세워 미국의 핵우산 보호 아래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현 동맹국의 역외 핵자산이 언제든 전진배치 되어 전술핵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러면 북핵으로부터의 비대칭적 안보위협을 지금보다는 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한미공조가 잘 이루어질수록 북한은 핵심 대화 파트너인 미국을 포섭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라도 한국의 안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한미 외교·안보 실무진들 간 교류가 긴밀할 경우 북한은 주요 대미 연락망(contact point) 확보 등의 이유로라도 한국을 찾아 나설 것이다.

강력한 국방력과 사회체제 우위를 내세운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diplomatic solution)을 강구 할지라도,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굳혀서 북한 이슈에 있어 주요 협상국의 지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짚어보면 긴밀한 한미공조는 대북 강경책뿐 아니라 유화책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전작업이라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며, 한미관계가 취약해진 지금 시점에 꼭 환기되어야 할 사실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있어 ‘리비아 모델’(일명 先 핵폐기, 後 보상)을 주장해온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을 해임 시키고, 국무부에서 인질문제 특사로 지낸 로버트 오브라인을 신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였다. 비록 오브라이언 보좌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이 없으나, 그가 백악관 및 국무부에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팀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앞으로 북한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폼페이오 사단’의 영향력이 커지자, 청와대는 미국과 북핵 이슈에 대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논평했다. 언뜻 보면 지금의 한미관계에 청신호가 켜진 것 같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일방적인 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한일군사협정) 파기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각종 친중 발언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가 계속 친북 및 반일 외교를 고집하자, 美 국무부는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내 비추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6년만에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한미관계는 여러 악재(惡材)를 마주하고 있다.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한미관계 개선을 위한 결의를 다질 것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같이 갑시다 : Go Together

♣ “美국민 70% 한미동맹 지지”

주한미군 주둔 찬성률 5%포인트 낮아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연례조사

미국 국민 가운데 70%는 한미관계가 미국 국가안보를 강화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9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인 여론과 외교정책’ 여론조사 결과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지지도는 69%로 지난해 74%에 비해 5%포인트 낮아졌다. 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미군이 방어에 나서는 데 찬성하는 비중도 지난해 64%에서 58%로 소폭 낮아졌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미국 맥아더재단 등의 지원으로 실시된 이번 온라인 조사는 지난 7월 7일부터 20일까지 전국 성인 205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오차범위는 ±2.3%다.

한미관계가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은 공화당 지지자 74%, 민주당 지지자 70%, 무당파 68% 등으로 정치적 성향에 큰 영향 없이 고르게 나타났다. 주한미군 주둔도 확대 12%, 유지 57% 등 합계 69%의 지지를 얻었다. 이에 비해 주한미군 철수는 13%만 찬성했고,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16%에 그쳤다. 이에 대해 CCGA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를 방위비 협상카드로 쓰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미국인들은 주한미군에 대한 강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주한미군과 유사시 미군의 전쟁 참여에 대한 지지율이 전년대비 소폭 감소한 것은 미북 비핵화 협상 이후 북한의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잦아든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발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의 국제적 영향력에 대한 미국 국민의 인식은 10점 만점에 5점으로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4.8%였다. 일본의 영향력은 6점을 얻었다. 이번 조사에선 작년과 달리 북한에 대한 설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출처 : 매일경제 2019년 9월 9일 기사)

언론속의 한미관계

♣靑 “미군기지 조기반환” NSC회의 후 공개 요구

기지 26곳 평택으로 이전 촉구

청와대는 30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용산 등 미군 기지 26곳의 조기 반환과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로의 조기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NSC까지 열어 주한 미군기지 ‘조기 반환’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미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 이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해 왔고, 우리 정부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를 불러 ‘자제’를 요구했다. 이 같은 한·미 갈등 상황에서 미군기지 조기 반환 요구는 미국에 대한 공개적 압박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는 이날 NSC 이후 낸 보도 자료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른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며 “용산기지 반환 절차는 금년 내 개시하고, 기지 반환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는 원주, 부평, 동두천 지역의 네 기지는 최대한 조기 반환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강원도 원주의 캠프 롱, 캠프 이글, 그리고 경기도 동두천의 캠프 호비 사격장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기지 반환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군이 당초 합의한 일정대로 기지를 이전하지 않고 있는 만큼 이전이 최대한 빨리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합의에 따른 평택기지로의 이전을 정해진 절차대로 추진하자는 것”이라며 “미국 측에 사전 통보를 했다”고 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지소미아를 둘러싼 한·미 갈등과 미국의 급격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대한 반발로 ‘미군기지 조기 반환’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최근 한·미 갈등 상황에 대해 “동맹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고 말해 왔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미국이 항의할 것을 알고도 이번과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지소미아 파기 이후 미국이 반발하자 오히려 이번 기회에 대립각을 확실히 세우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반환이 예정됐던 미군기지 80개 중 지금까지 54개가 반환됐고 26개가 남았는데 계속 진행돼오던 것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다른 한·미 안보 현안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용산의 한·미 연합사 본부까지 평택으로 이전할 경우 서울 등 수도권 방어 전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조선일보 2019년 8월 31일 기사)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을 다녀와서

최상진
수필가, 본 협회 편집위원

굳세어라 금순아

지금은 가보지도 못하고 또 언젠가는 가 볼 수 있을 장진호전투의 흔적을 찾아 10월 27일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개최된 제 4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에 본회 채연석 사무국장님과 참석의 기회를 얻었다.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통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일가친척으로 가슴 아픈 생이별의 애환을 알았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자유를 찾아 살아야겠다는 처절함과, 피난민을 살려야겠다는 미군의 희생적 헌신으로 이룩된 기적의 흥남철수를 알게 되었다. 흥남부두에 산더미 같이 쌓아둔 각종 무기와 전쟁물자를 폭파하는 불기둥으로 마감되는 철수작전의 전편은 2차 세계대전시 스탈리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전사의 2대 동계전투로 지칭되며, 오키나와 전투, 이오지마(유황도) 전투와 더불어 미 해병대 역사상 3대 전투로 손꼽히는 장진호 전투로 한국전쟁 중 미군의 희생이 가장 컸던 치열한 전투였다.

왜 우리는 이러한 행사를 하는가

이 행사는 대한민국 보훈처의 산하단체인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장진호 전투참전 전투영웅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다짐하는 의식이다.

A noble sacrifice, Remember in the name of the Republic of Korea
-고귀한 희생,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

초대의 글에서 장진호 전투를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미 해병 제 1사단 1만 5천여 명이 함경남도 개마공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 명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이 전투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중궁군은 함흥지역 진출이 2주간이나 지연되었고,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포함한 국군 및 유엔군의 흥남철수작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을 주축으로 미 육군 제7사단 2개 대대와 영국 해병 제41 코만도 부대, 한국 카투사(미 제 2사단 소속) 등이 참가하였으며, 미 육군 제 3사단이 후방방어를 지원하였고 한국 해병대 제5대대도 철수작전 지원을 위해 장진호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세계 2대 동계전투, 미 해병대 3대 전투, 6.25전쟁 3대 전투로 기록되는 장진호 전투에서는 아군 4천500명이 전사하고 7천500명이 부상당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이 장진호전투 추모행사에는 생존해 있는 참전 용사 및 가족이 매년 초대되었는데 금년에도 참전 생존영웅 ‘밀턴 메이스 워커(Milton Mayes Walker)’씨 등 6명의 참전용사와 다수의 가족이 참석하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미군 참전사에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펜타코에 위치한 미 해병 박물관에 조각된 방한판초를 입고 엄동설한에 퇴각하는 병사들의 동상과 영화 “Retreat Hell”(후퇴! 천만의 말씀!!)에서, 각종 서적에서 이 전투를 강조하고 있다. 1984년 6,000명의 회원으로 결성된 장진호전투의 생존자 기념모임 “Chosin Few”는 지금도 세계 52개 지역에서 생존자와 그 가족들에게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의 역사적 사실들

당시 상황을 요약하면,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후 10월20일 평양을 탈환하고 11월24일에는 미 육군 7사단 선발대가 압록강까지 도달했다. 한편 미군이 38선을 넘어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호언을 해오던 중국 공산당은 항미원조(抗美援助)의 기치아래 1950년 10월 4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10월 8일 동북변방군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이름을 바꿔 김일성에게 참전통보를 하였다. 중공군은 유엔군의 평양탈환 시점인 10월 19일 부터 압록강을 도강하기 시작하였고 장진호 전투의 주력부대인 중공군 제 9병단은 11월 7일 평북 중강진 대안에서 압록강을 건너와 장진호 깊숙한 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김일성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5개월 후인 11월은 미군 대 중공군의 전투로 전쟁의 성격이나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즉 아시아 극동의 일 개 우방, 대한민국의 피침은 소련을 배후로 한 중국이라는 거대 공산집단과 자유 민주주의의 진영인 미국과 유엔의 전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념과 사상의 확대는 추종집단과 그 집단이 가지는 영토의 확대로 세력을 넓혀 왔다. 이미 밝혀진 일이지만 6.25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미국과 정면대결을 망설인 스탈린이 모택동을 대리인으로 하여 시작된 전쟁이다. 당시 중국(중국 공산당)은 북한과의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로 표현할 정도의 이념공유 동지자로서 침공의 일원이 되었다. 장진호 전투는 관점에 따라 승, 패를 해석할 수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여러 가지의 기록과 많은 반성의 여지를 남긴 전투였다.

첫째, 역사상 미국과 중국이 격돌한 최초의 전쟁

미국이나 중국 모두 자국의 이득이 없이 동맹의 명분으로 참전하였고 특히 중국의 경우 국공내전의 마지막 수순에 국력을 쏟아야 하는 상태로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미국과는 국력이나 군사력 모두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둘째, 세계 최강의 미군이 포위섬멸 위기에 빠지다

미국은 자만했다. 1950년 크리스마스를 고향에서 보내자고 장병들을 격려했고 또 가능성이 있는 진격을 감행했다. 자만은 상대를 경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공군의 참전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국군 7사단 7연대가 10월 26일 압록강 초산에서 통일의 염원으로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을 때 중공군은 이미 장림산맥 일대에 매복해 있었고 그 규모도 유엔군이 추산한 3만 5천명의 열 배를 능가하는 숫자였다. 11월 말 서부전선 군우리에서 미 제 2사단은 사단의 상징인 인디안 태형을 방불케 하는 참혹한 공격을 당해 괴멸의 상태가 되었고 미 해병 제 1사단은 북한의 임시수도 강계를 점령하고 서부전선의 미 8군과 연계한다는 전략으로 개마고원 장진호에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는 미군이 70년 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허술한 첩보, 정보망을 운영했을까? 후세 전쟁사가 들은 당시 상황을 적의 정교한 포위섬멸작전에 걸려던 전후무후 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셋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2대 동계전투, 교훈과 실전의 차이

우리는 어려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이 함경남도 청천강 유역의 개마고원 일대 중강진이라고 배웠다. 이곳이 바로 그 곳이다. 10월 말이면 눈이 내리고 1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2도, 최저기온은 영하 30도, 시속 60km의 강풍이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35-40도까지 내려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기상조건이 된다. 이 조건은 적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늘의 형벌이었다. 윤활유와 기름으로 운영되는 모든 무기체계는 얼어서 무기력해 졌고 작동이 되어도 정밀도가 떨어졌다. 동상과 동사자가 속출했고 총상으로 전사한 병력보다 동사자가 더 많았다는 추산과 중공군이 미군과 대등한 기동력을 가졌다면 미군은 몰살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가 겪은 동계전투의 교훈은 적용되지 않았고 경험과 훈련으로 준비되지 않은 군대는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었다.

넷째, 전사에 빛날 성공적인 철수작전

손자병법의 36계는 주위상(走爲上;도망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싸움에 전략상 후퇴도 필요하다. 손자가 정리한 병법이지만 미군은 6.25전쟁 중 36계를 많이 활용하였다. 작전상 후퇴에는 후퇴의 법칙이 적용된다. 적과의 마찰을 최소화하여 병력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아군의 무기와 전략물자를 적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퇴각에 필요한 전투만 행하되 민간의 안위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이 패주(敗走)와 전략적 철수와의 차이점이다. 상상을 해보자. 영하 30도 안팎의 혹독한 추위에서 10배의 적군에 포위되어 2만의 병력과 6백만 톤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무탈하게 이동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장진호 후동리, 유동리에서 흥남까지는 약 126km, 주위는 1,000­2,000m의 고산지대로 통로는 고작 우마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기복이 심한 협곡의 오솔길뿐이었다. 11월 27일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대공세가 시작됨과 동시 불가의 벽을 파악한 사령부는 곧바로 30일 철수명령이 내린다. 유명한 전투에는 항상 명장의 슬기와 지휘가 존재하듯dl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P. 스미스 소장은 전략물자를 모두 버리고 수송기로 병력을 철수하라는 상부의 권유를 거절하고 부하들과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용기와 결기를 보여 주었다.
“Retreat Hell, We are just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

빛나는 흥남 철수 작전

장진강 전투의 대미를 장식한 흥남철수가 2차 세계대전의 덩케르크(Dunkrik) 철수와 비교될 수 없는 사실은 10만명의 민간 피난민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피난민들은 장진호에서부터 살인적 추위와 기아를 이겨가며 자유를 찾아 미군을 쫒아왔다. 군대와 피난민의 운명이 국운과 같이하는 어려운 선택을 맞았다. 전시에는 군의 선택은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작전상 후퇴하는 군대는 재기를 위해 군대만의 대피를 먼저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흥남철수의 빛나는 공적은 자유를 지키는 전쟁, 국민을 지키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전 인류에게 보여준 것에 있다. 이 어려운 결정을 내린 미 제 10군단장 알몬드 소장, 끊임없는 설득으로 피난민 선승을 허락받은 국군 제 1군단장 김백일 장군과 통역사 현봉학 박사, 25만 톤의 군수물자를 바다에 던지고 14,000명의 피난민을 실은 메드리스 빅토리아호 이야기 등등은 전설 같은 기록이지만 그 속에 내재된 전쟁 휴머니즘은 흥남철수를 성공리에 이끈 신의 선물이었다. 이 10만 명의 피난민 속에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그들 중 한사람인 김치5가 작년 제3회 추모행사에 초대되었다.

뜨거운 가슴으로 묵념을 드리다

애국가가 연주되고 미국 국가 ‘The Star Sprangled Banner’가 울려 퍼질 때 헨리 J. 쉐이퍼 미 해병대 병장(예)은 의족과 의수로 국가에 대한 경례를 바치면서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까지 6.25 한국전쟁의 미군 참전비를 취재하면서 이토록 감동적인 현장을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장진호 전투 69주년을 맞아 90대의 노병, 전쟁영웅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친 이국땅 대한민국에서 산화한 동료와 수많은 순국선열들에게 묵념을 드린다. 국가의 안위가 지금처럼 흔들린 적이 없는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기며 은혜를 준 구국의 영웅들에게 진정어린 존경과 감사드린다. 우리는 모르는 사실과 잊혀 진 사실로 우리에게 닥아 올 재앙을 외면하고 눈감아버린다. 안일한 평화공세와 무개념적 대응이 위기를 자초하고 자멸의 함정으로 빠져들게 한다.
66년이 지난 2016년 국가보훈행사로 처음 치러진 이 행사가 만시지탄의 안타까움도 있지만 순수한 애국정신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며 무겁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나왔다.

100세 인생 생활의 힌트 (13)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이사장, 본 협회 부회장

몽테뉴는 젊어서 자신의 분신같이 아끼던 친구가 졸지에 병마로 쓰러지자 거의 실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성으로는 상실의 충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여색의 길을 찾아 들어 갔습니다. 시간이 그를 나락의 위기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2세들에게

6・25를 겪고 살아온 우리 세대는 지금의 정국 속에서 모두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다. 속수무책, 속으로만 끌탕하지 말고 몽테뉴처럼 벗어날 길을 모색해 보자.
세상 살다 보면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고 무간지옥에 갇혀 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 내 생각이 좀 참고가 될지 모르겠구나.
나는 요즈음 우울을 벗어나려 즐거운 일들을 모아 생활에 도입하고 있다.

  • DVD로 흘러간 옛 명화를 본다.
    화면에 정다웠던 옛 명우들이 나타나면 긴 상영시간이 꿈같이 흐른다.
  • 가라오케로 듣기만 해도 정겨운 옛 노래를 같이 부른다. 우리 세대에겐 일본 엔카도 한몫 낀다.
  • 일본 온천향에 들어가 대엿새 지내다 온다. 외부 소식이 완전 단절되어 마음이 평화롭다. 저가항공에 밥은 아내가 지어주니, 제주행 휴가 정도 비용이면 된다.
  • 집안 2세들과 월례 모임을 갖는다. 식구끼리만 나눌 수 있는 얘기를 한다.
    ⅰ 여유 돈이 생기거든 시티에 달러예금을 해라. 은행 이자보다 낫고 인플레 방어도 된다.
    ⅱ 언론이 편향적이니, 조선일보 사설 정도로 밸런스를 잡아라. 초중고 애들 사상교육도 겸해라.
  • 지금은 「각자도생」의 계절이다.
    ⅰ 제각기 제 식구 살아나갈 궁리를 해라.
    ⅱ 어린 3세들의 장래를 위해, 그동안 정치가에 내맡겼던 나라 일도 이제는 내 개인 걱정거리로 챙겨야 한다.
  • 나만의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이제는 나라고 사회고 누구 하나 믿고 기댈 데가 없다.
    자, 어디 한번 요즘 말썽 많은 「한일문제」를 가지고 판단공부를 하여보자.
  • 정치가들의 반일 쇼 (1)
    정치가들은 인기가 떨어지면 애꿎은 반일로 인기 회복을 꾀한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반일은 반한을 불러와, 안보를 해치고, 경제를 해치고, 민간교류를 해치고, 재일교포의 생업을 해친다. 실익은 하나도 없이 공연히 상대방 국민감정만 해쳐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가져 오고 있다.국제문제의 판단은 「국익」 하나면 된다. 「과거의 역사」문제로 「현재의 국익」을 해치지 못하도록 국민이 엄중히 감시해야 한다. 역사와 현재의 국익은 따로 떼어 처리해야 할 완전 별개 사항이다.
  • 정치가들의 반일 쇼 (2)
    반일로 불러들이는 경제적 리스크를 한번 살펴보자.
    일본서 들여오는 반도체 부품이 30%만 부족해도 우리나라 총생산(GDP)이 2.2% 감소한다. 우리 경제의 3대 리스크의 하나다.
    금융계는 더욱 심각하다. 1997, 8년 IMF때 18조원에 이르는 일본의 특별융자가 금융위기를 넘기는데 크게 기여했고, 현재도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각자 10조원대의 일본 융자를 쓰고 있다. 반도체 때도 그랬듯이 일이 터지고 나서 허둥대도 때는 이미 늦다.
    정치가들의 화려한 반일 쇼에 가려 온 국민의 염통에 고름이 끼는 것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 풀뿌리 민간교류의 탄탄한 저변:
    정치적으로 최악이던 지난 8월에도 도・현간 자매결연이 19곳이나 되고, 지자체간 결연은 143곳이나 되었다. 관광교류는 줄어서도 4, 5백만이고, 문화, 스포츠, 청소년 학생교류도 수십만을 헤아렸다. 반일, 반한의 목소리가 아무리 거세게 파도쳐도, 풀뿌리 민간교류는 끊일 줄 모르고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한일관계를 가지고 「판단」 공부를 해본 보기였다. 이렇게 스스로 판단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등대

김정화

 

어쩌면 너는

버티어가는 목마른 뿌리들에게

한줄기 시원한 빗줄기

쏟아부울 마음으로

끝 모를 바다만을 향하고 있는지

 

자고 나면 새로워진 푸른 길을

더듬거리며 지우고 가는 발자국들에게

따뜻한 손 내밀여

지친 땀을 닦아주는

성직자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는지

 

한곳에 오래도록 남아

가진 것 없고

세찬 바람에 얼굴이 갈라져도

그 자리에서 끝끝내

하나의 이름으로 남고 싶은지

한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한반도 核시대,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미래비전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통일연구원 초청위원

한반도 핵시대의 도래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 간에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던 ‘재래식 균형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 7월 ICBM 발사와 9월 수소탄 실험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이 美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려는 미국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었다. 냉전시대 서유럽의 NATO 국가들이 과연 미국이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소련의 핵공격을 무릅쓰고 파리와 함부르크를 방어할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듯이, 이제 한국도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을 독점한 가운데 미국의 對韓 방위공약에 대한 신뢰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한미동맹은 창설 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해있다.

김정은이 핵포기를 약속했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지 않는 국민이 80%에 달한다. 여섯 차례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북핵폐기에 진전이 없자 비핵화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좌절감이 분출하고 있다. 1945년 지구상에서 핵시대가 열린 이래 핵개발 단계에 있던 나라들은 외부의 압박과 설득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핵을 완성한 나라의 핵포기는 체제변화를 통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사례뿐이다. 이라크와 시리아(군사공격), 이란(제재), 리비아(당근)는 전자에 해당하고, 남아공과 우크라이나는 후자에 해당된다 남아공은 흑백정권 교체기라는 내부 요인으로,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 붕괴라는 외부 요인으로 체제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도 사회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북핵의 볼모가 된 오늘의 상황은 우리가 먼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소위 비핵화외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비핵화외교는 처음에는 당근으로 핵포기를 설득하다가 1차 핵실험 후부터 채찍을 들고 압박했으나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다. 트럼프의 최대압박 정책도 실패한 비핵화외교의 막바지 시도일 뿐이며, 미국 내에서도 비핵화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대북압박의 일환으로 제한적 군사옵션이 거론되었지만, 전면전이 아닌 한 북한의 핵포기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상당기간 핵을 가진 북한과의 공존을 각오하고 북한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핵폐기를 실현하는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현주소

하와이와 괌은 물론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치, 외교,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김일성은 30년 전에 핵개발을 미끼로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어 직접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토대로 선대의 숙원이었던 미북 정상회담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북핵을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강박관념이 커진 탓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한다는 구실로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등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핵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미국에서 한미동맹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고 국제질서와 동맹의 가치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다. 그는 국제협약을 파기하는 것은 물론 오로지 돈을 잣대로 동맹의 가치를 재단하며 우방국들을 압박한다. 한미훈련을 값비싼 전쟁게임으로 비하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한다며 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도 트럼프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미국에 대한 위협은 아니고 다른 나라도 하는 실험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북한의 핵, ICBM 시험 중단과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자랑하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트럼프로 인해 북핵문제의 불확실성만 높아졌다. 그가 美본토를 위협하는 ICBM만 폐기하고 북한이 핵을 탑재한 단·중거리 미사일을 갖도록 용인하는 것은 아닌지, 내년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국지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지 많은 국민이 불안해한다.

미국의 군과 관료집단의 태도도 문제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비합리적인 정책이 이들의 저항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있었다.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가 좌절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는 미국의 국익을 폭넓게 조망하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신뢰할 만 한 참모가 없다. 카터의 철군에 반대해서 옷을 벗은 싱글러브 소장과 같은 용기 있는 군인도 찾기 어렵다.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코트 국가정보국장과 같은 정직한 인사들이 줄줄이 떠나고, 그 자리를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는 예스맨들이 채우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야심이 큰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역대 美정부가 제공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는 ‘전례 없는’(unique)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안전보장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국의 對韓 안보 공약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대해 우리국민은 아는 바가 없다.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 북핵문제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했던 탈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하며 국익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경쟁시대가 도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중국, 이란과 북한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고 서방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현상변경세력으로 규정했다. 이 세력의 특징은 미국과의 전쟁은 피하면서도 공격적인 외교, 대담한 군사행동, 우호세력을 활용한 대리전을 배합해서 미국 영향권의 주변부를 공략하고 동맹을 위협하는 소위, ‘간보기’(probing)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확보, 이란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원,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반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 핵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북한을 대리인으로 삼고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는 간보기 전략의 장이자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안보우려도 해소되어야 한다며 ‘쌍중단’과 ‘쌍괘병행’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미훈련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러시아 모두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양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핵폐기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도 전략적으로 미·중, 미·러의 경쟁관계를 잘 이용해왔다.

북핵문제가 강대국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할수록 북핵폐기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러시아의 지원 하에 동북아 질서를 자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부담을 주는 지정학적 게임을 펼칠 것이며, 그 만큼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한반도 핵시대, 동맹의 미래비전

한반도 핵시대에 한미동맹은 유럽의 NATO처럼 핵동맹이어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시대의 냉엄한 교훈이다.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한 경쟁국들은 모두 상대방의 핵개발에 자체 핵개발로 응수했다. 적대세력의 핵에 핵으로 맞대응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이다. 한 국가의 재래식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상대방의 수소탄 한 발을 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핵을 보유한 핵국과 그렇지 않은 비핵국 사이의 관계에서, 핵무기는 비핵국으로서는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한 핵국의 절대무기인 것이다.

이런 제반 상황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며 비핵화외교를 하던 기존의 한반도 안보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실체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우리도 핵으로 맞대응하면서 북한의 핵사용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구도로 안보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북핵폐기 목표를 단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력을 모아야 할 초점을 단기간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북핵위협에 대한 대응, 즉 억지와 방어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핵을 독점한 북한이 가하는 정치·외교·군사적 위협과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사회·심리적 압박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제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기대를 걸며 유지해왔던 재래식 대결구도가 북한의 핵독점으로 와해되었음을 자각하고 비핵화외교를 고수하던 북핵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일방적인 핵보유로 조성된 전략적 불균형을 우리가 핵옵션을 행사해서 한반도에서 ‘핵 對 핵’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핵의 균형에 입각한 새로운 한반도 핵시대를 열어야 한다. 핵균형 시대에는 전략적 취약성이 전략적 안정성으로, 공포의 불균형이 공포의 균형으로 대체됨으로써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 미∙중 관계와 같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도 핵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는 북한의 재래도발에 대한 ‘재래억지’(conventional deterrence)와 핵도발에 대응한 ‘핵억지’(nuclear deterrence) 사이에 괴리가 있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재래억지는 휴전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한미동맹의 병력과 화력을 전진 배치하는 태세를 유지했다. 북한의 도발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성공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서 애당초 도발을 생각하지도 못하도록 한 것이다. 휴전 이후 1·21 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비정규전 성격의 도발은 있었지만 국지전이나 전면전 등 대규모 도발은 전진배치에 기반 한 억지태세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동맹의 핵억지는 재래억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 채 핵억지를 미국의 핵자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핵우산은 한반도 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한 것이 아니라 ICBM, SLBM, 중거리폭격기 등 역외에 배치된 핵투발 수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이다. 만약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는 경우 역외의 전략핵자산으로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트럼프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핵을 사용한 김정은이 살아남을 시나리오가 없다고 할 정도의 보복위협을 통해 북한을 억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진배치가 생략된 채 역외 핵자산에 의존하는 억지태세는 북한에 핵이 없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구시대의 유물일 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늘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아울러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해서 지금도 미국이 소규모의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NATO와 비교해도 타당하지 않다.

결론

한국은 ‘북한에 의한 핵독점’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에 처해있다. 핵시대가 열린 이래 군사적으로 대치한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유일하다. 국민을 북핵의 볼모로 만든 오늘의 현실은 노태우 정부 이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가 고수했던 비핵화외교의 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이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이 추진했던 비핵화외교를 ‘서희 담판’과 대비하여 건국 이후 최대의 외교참사이자 되풀이해선 안 될 안보참사로 기록할 것이다.

북한은 전술적 차원에서 수용한 비핵화란 용어를 공세적으로 역이용해서 한미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고 보상을 챙기면서 핵개발에 성공했다. 겉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비핵화외교의 장막 뒤에서 핵개발에 전력하면서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반면에 한미는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한의 핵포기일 것으로 믿고 경제・외교・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북한을 설득했고, 이제는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 군사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실정이다.

한미동맹은 현재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 번영과 평화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대등한 동맹을 만들기 위해 한국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맞서 당당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책임 있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가는 게 능사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동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적절히 분담해야 당당해질 수 있다. 세상이 달라졌고 국민의식도 바뀌었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자존과 국격을 지키며 의견대립과 마찰도 불사하는 치열하고 주체적인 대미외교를 원한다. 정부와 국민 모두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결의와 동맹도 국익을 위해 활용한다는 용미(用美)의 자세로 무장해야 한다.

한일 역사 갈등의 고양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에서는 한일관계와 한미동맹은 별개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냉전시대에는 소련, 중국, 북한이라는 사회주의권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안보동맹으로서의 남방 삼각관계로서의 한미일 협력이 강조되어 한국과 미국 일본을 하나로 엮어서 생각하는 방식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북방으로부터의 연합된 공통의 위협이 약화된 사회주의권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한미일의 협력 필요성은 예전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안보 면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희박해져갔다. 또한,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화되면서 일본과 점차 대등한 관계를 가지게 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동등한 주권국가로서의 독립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한일이 일체화된 그룹에 속한다는 의식은 약화되었다. 양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동질성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한국과 일본이 같은 진영에 속하고 협력적 기운이 고양되는 것이 당연시될 줄로 알았지만, 한일 양국관계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은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일 양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적인 역사 수정주의의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억압되었던 진보적인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표면에 등장하였고, 이들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완전하게 청산되어 있지 않았던 미완의 과제들을 정면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충격적인 경험의 고백이 있은 직후부터 위안부 문제는 정치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도 상대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한국에서 일본에 대해 숨겨진 이슈들을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 시대의 ‘가혹한 가해자’였음을 상기시킨 것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사회당이나 자민당 내의 비둘기파들을 중심으로 한 리버럴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역사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1993년 고노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등은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냉전 후 한일 양국의 ‘역사화해’를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의 협력 분위기를 고양하려던 지역협력의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사회에서도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한 반동적 역사관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1993년 자민당 비둘기파에 의한 역사 반성과 사죄에 제동을 걸면서 자긍심을 가진 역사관, 사죄와 반성보다는 일본의 자존심을 높이는 ‘국민의 역사’ 재구성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이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였다. 현재 아베정권의 지지부대의 모태가 되는 우익세력 ‘일본회의’가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 당시의 민족주의적 세력의 조직화는 자국 내에서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인 동시에, 한일 양국 간의 ‘자극과 반응’의 흐름 속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한일관계가 미국의 조정이나 매개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길항관계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사태의 전개였다. 사실상 미국도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입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이 한국의 식민지 시대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처리에 임하지 않은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평화헌법 제정 등을 통해 ‘징벌적 평화(punitive peace)’를 요구하였다는 측면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두려워한 측면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일 간의 역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일의 협력적 움직임이 지속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첫째, 일본 내에 전전의 경험을 공유하고 식민지와 전쟁에 대해 회한의 심정을 가진 진보적이거나 리버럴한 정치세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유럽에서의 지역통합의 전개를 보면서 동아시아에서도 다자간 협력의 제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정치지도자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동아시아 협력 구상’이라든가 ‘한중일 협력’의 기운이 고양되면서 한일은 지역의 일원으로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었다. 셋째, 1989년부터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미사일 개발은 한일 양국으로 하여금 소련과 중국에 대신하는 ‘새로운 위협요소’로 자리 잡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일이 공동 대처하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재발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이 한일 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의 하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초강국인 미국의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인 존재감이나 한미동맹, 미일동맹의 유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은 거의 없었다.

2001년 9.11사태의 발발로 인해 세계가 테러집단에 의한 대량살상무기의 획득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상당 기간 미국은 자국에 도전하는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처를 뒤로 하고 북한, 이란, 이라크 등 ‘악의 축’의 국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연계하여 미국과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면서 점차적으로 미일동맹을 글로벌화 시키는 데 집중하였다. 반면 중국의 부상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중국의 성장을 과실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가속화되어 한국은 중국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통상무역을 통해 단기적이 이익을 많이 축적해 나갔다.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보면,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자연스런 공동 대처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피해자로서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한중 양국의 공통성 때문이었으며, 중국이 아직은 개발도상국으로서 지역 및 세계질서를 교란하지 않는다는 온화한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는 데 대해, 일본은 국제적인 지원을 통해 국제안보와 일본의 국가안보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점차 정착되어 갔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능력이 향상되면서 한국은 북한문제의 처리에 골머리를 썩여야했다. 진보정권하에서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보수정권하에서는 ‘압박과 제재’ 정책이 번갈아 시행되었지만, 북한의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싶다는 심정에서는 공통된 접근법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대북 견제와 억지전략으로서의 기본 성격에 의문을 가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미국과의 동맹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2010년을 전후 하에 한일 간의 갈등의 역학은 변화의 조짐을 나타냈다.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이 탄생한 이후 하토야마 정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유화적 동아시아 정책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9월 이른바 ‘센카쿠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몸으로 체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은 점차 중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급선회에 나섰다. 2012년 정권을 다시 잡은 아베는 중국에 대한 경계감을 숨기지 않고 내세우면서, 중국을 포위하고 해양진출을 억제하려는 미-일-호-인도 4개국에 의한 ‘다이아몬드 안보구상’을 내놓았고, 나중에 이 개념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재 명명되면서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의 중추적인 요소를 형성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미국도 이 전략에 동승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전략은 더욱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의 요체가 바로 인접국인 한반도의 한국과 북한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질서의 도전자인 중국으로 이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정면 대응하는 글로벌 차원의 파트너로서 점점 협력의 날실을 촘촘하게 짜나가기 시작했다.

반면, 북한은 김정일 말기와 김정은 초기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급격하게 발전시켜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 나아가 하와이와 괌을 타격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 데 이어, 2016년 즈음이 되면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미사일 타격능력의 개발에까지 나섰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은 북한을 최대 압박을 통해 공세적 움직임을 제어하려는 욕구와 더불어, 중국 등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통하여 북한의 불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통일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인 ‘통일대박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바란 점에서 박근혜정권은 새로운 대북접근법을 시도한 것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움직임은 일본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정도의 불신을 자아내게 했다. 첫째는, 중국군 창설 70주년에 북경 천안문 망루에 푸틴 및 시진핑과 함께 서게 됨으로써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이 ‘탈일본’하여 중국에 다가서고 있다는 깊은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 둘째, 한국과 중국이 피해자의식이 공유를 기초로 하여 일본에 대한 역사문제 공략을 함께 시도함으로써 일본의 우익세력의 발흥을 더욱 강화시켰다. 일본 언론에서는 ‘중한’이라는 단어를 활용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이 전략적으로 한 바구니에 있으며, 이들 두 나라가 역사문제를 내세워 일본을 괴롭힌다는 인상을 확산시켜나갔다. 당시 오바마정권 하에서의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접근법을 통해 북한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법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일 간 역사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안부 합의’를 종용하는 한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할 것을 주문하였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 한국은 일본을 향해 두 가지의 도전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위안부 합의의 형해화’ 및 강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였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1965년 청구권조약에 의해 징용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일본과의 정면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관여정책’이었다.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염두에 두고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신한반도 평화구상을 내놓으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강한 압박과 제재를 선호하는 일본과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징용문제가 완결되었다는 일본이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거듭 요구하고 협의와 중재를 부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무반응, 무대책,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의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한국의 대응에 대한 불만감으로 표시로 사실상 경제보복에 해당하는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국가로부터의 배제‘를 선언하였다. 특히 전자는 수출관리의 불비를 이유로 하였으나, 후자와 관련해서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내걸었던 관계로 한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마치 한국이 북한과의 연루 속에 비우호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한국의 기간산업에 대한 재량적 자의적 규제조치를 취하고, 한국만을 쏙 빼내어 비우호국 취급을 함으로써, 외교 갈등은 본격적으로 경제 분쟁으로 비화하였다, 한국은 이에 대항하여 민간차원에서는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운동을 벌이는 한편, 정부차원에서는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동시에 안전보장을 이유로 했다는 점을 틀어 안보협력의 상징이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연장을 사실상 중단하는 결정을 8월 22일에 내림으로써 경제 분쟁을 안보협력의 거부라는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한일 간의 고질적인 역사분쟁은 언제고 미국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역사문제에 관한 직접적인 개입을 늘 회피해왔다. 자국도 역사의 죄인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전 행정부였다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설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겠지만, 현재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통상과 무역을 ‘무기화’하는 전략을 상시적으로 구사하는 관계도 있고 해서 굳이 한일 간의 경제 분쟁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에 대항하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중단을 선언하고 나자 ‘우려를 넘어 실망하였다’는 논평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조치들에 대한 대항조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이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대응하여 한미일 협력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상징적 의미도 가진 것이어서 다지 한일관계의 유동화에 그치지 않고 한미관계의 본질적 수정 내기 미국의 권위와 설득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지소미아의 연장 중단을 일본에 통보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지소미아의 자동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소미아는 11월 23일까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다. 따라서 일본과의 협의 여하에 따라서는 막판에라도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한일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관리 가능한 관계 재수립을 위해서는 한국이 11월 23일 이전에 이를 번복할 수 있는 정책적 재량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이에 상응하는 우호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국을 다시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켜 우호국으로 대우한다는 외교적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양국이 한걸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한일 갈등은 서로가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미국도 한일 간의 장기적인 갈등이 자국의 이해에 반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적극적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일 간의 갈등은 결국 양자에게는 손해를 가져올 뿐이고, 북한에게는 직접적인 수혜를 안겨줄 뿐이며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게 한다는 점에서 하수중의 하수의 결정이다. 양국의 지도자의 냉정하고 현명한 사태의 관리과 관계 회복이 더욱 중요해 지는 시점이다.

바람직한 한미동맹과 6.25 참전 미국용사를 바라보며

윤영선/본 협회 뉴욕지회장

과거의 한미관계는 정치, 군사, 문화 등 다른 영역과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대외관계에 있어서 다른 영역과 분리되어 경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마찬가지로 경제관계는 안보관계로 규정되게 되기 마련이다. 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안보를 축으로 하는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관계가 경제마찰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한국 전쟁이후 미국이 한국의 전후복구를 경제원조 등으로 지원하여 준 것이나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구제 금융을 통하여 필요한 외환을 긴급 지원하여 한국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준 것도 군사・안보적인 관계가 경제관계로 규정한 사례로 이해할 수가 있다.

현재 문재인정부와 미국과 한미동맹관계의 변화에 따른 안보위험의 증가와 해외투자자의 동요는 간접적인 경로로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한미동맹과 경제관계를 후퇴시킬 수 있다.

현 자본시장의 전면개방으로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된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방향의 처리 및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친북한 정책으로 인하여 한미관계의 변화가 한국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장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한국 경제는 상당한 영향과 혼란에 빠질 수가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 안보에도 상당한 충격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행태가 그러하고 일본의 일방적인 행동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이러한 행태들은 문재인정부의 일방적인 친북정책 추진을 기회로 삼아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관계의 균열과 불안이 심화되는 경우에는 한국 국가신용 등급의 하락과 외국자본의 증시이탈, 이에 따른 주가하락, 한국발행 채권의 연장애로 등 금융 외환 시장까지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 경우 현재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위축된 국내 및 중소기업의 소비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되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도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상태가 되어 실물경제에까지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이것은 제2의 외환위기도 올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발전적인 한미 경제관계 및 한미동맹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인의 안보불안감을 해소하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한국정부를 시험할 수 없게끔 한미관계를 더욱더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어중간한 정책이나 행동을 계속 취해나간다면 한국의 안보는 더욱더 불안한 형국이 조성될 것이고, 결국 이는 한미동맹의 균열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미 간의 안보・군사적 협력뿐만 아니라 양국 간의 경제협력도 강화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한미 양국 간 경제마찰과 긴장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안보 불안이 경제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한미 안보협력 및 동맹관계를 확고하게 하면서 자주국방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할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리 매력적인 제안을 북한에 던진다 해도 북한은 그들의 핵무기 일부를 폐기할지는 모르나 절대로 핵무기 전체를 폐기하는 협상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현재의 핵은 그대로 보유한 채 단지 더 이상의 핵실험을 중지하는 것으로 하고 이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우리는 북핵폐기와 관련하여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라도 한미동맹을 더욱더 굳건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이처럼 소중한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동안 한미우호협회 미국 뉴욕지회는 지난 9년간 매년 6월 25일경을 전후하여 6.25 참전 미국 용사를 위한 보은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 행사를 2010년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행사시 300여명의 참전용사와 뉴저지 주(NJ) 주지사를 포함한 30여명의 미 주류사회의 인사들이 이 행사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6.25 참전용사들이 점점 줄어감에 따라 9년이 지난 올해 행사에는 참석인원이 25% 정도 줄었다. 미연방센서국이 최근 6.25휴전 66주년(7월 27일) 자료에 의하면 2019년 미국 전지역 6.25 참전미군의 생존자는 93만 2,700명 정도로 2010년의 300여만 명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숫자는 6.25전쟁 참전미군과 휴전이 끝날 때까지의 미 참전용사의 숫자를 집계한 것으로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뉴욕지회의 보은행사는 앞으로 2-3년 정도 지나면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미주 지회는 2년 전부터 6.25 참전 보은행사에 돌아가신 한국전 참전용사의 가족이나 손자들도 초대하여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으며 행사시마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축사를 계속하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여러분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