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對)북한 비대칭전력

여 명
서울시의원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일.”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비난하는 북한의 논평이화제다. 한국에서는 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삶은 소대가리’ 표현이 김정은이 발작하듯 쏘아 올려대는 미사일 발사체보다 ‘핫한’ 반응이다. 아마 저 논평을 쓴 북한 당국자도 한국의 반응을 보며 내심 흐뭇했을 것이다. 북한의 이런 격한 반응은 우리 대통령에 대한 근본적 무시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무시의 근거는 아마도 균열이 커지고 있는 한미동맹일 테다.

올해로 69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첫 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공유하는 체제동맹이다. 이 토대에 기반해서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민주국가들의 배려와 지원으로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었다.

둘째로는 북·중·러의 대륙세력, 즉 공산전체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연대에 맞선 한미일 해양 자유국가의 삼각편대 구축이다. 이 삼각편대가 공고할수록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이 유지된다.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은 각국의 정치·경제 안정성으로도 이어진다.

셋째, 한미동맹은 우리 국방안보의 핵심축이다. 1953년 전쟁 중인 이승만은 기습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한다. 그의 명분은 미국과 북한의 휴전협상을 반대하며 ‘북진통일이 아니면 안 된다’ 이었다. 이승만의 이와 같은 무리수는 그야말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멱살을 잡다시피 끌고 와 당시 세계 최강국 미국으로 하여금 최빈국 대한민국과 동등한 위치의 ‘군사동맹’을 맺게 한다. 그 이후로 (몇 차례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 핵무기에 맞선 대한민국의 비대칭전력이다. 비대칭전력이란 전차나 야포 등의 재래식 무기가 아닌 특수전력을 가리키는 군사용어로서, 적에 비해 월등히 앞서는 전략무기를 지칭한다. 주로 핵무기다.

그리고 한국의 비대칭전력은 한미군사동맹이다. 전술했듯 한미동맹이 갖고 있는 함의인 1. 자유민주주의 체제 우월성 2. 세계최강국과의 ‘혈맹’ 이라는 군사력의 우월성 3.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해양세력의 패권 우월성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 비대칭전력에 균열이 가고 있다. 2019년에도 여전히 80년대식 반미주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 일당들 때문이다. 이들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북한 핵미사일을 최소한으로 방어할 수 있는 사드 미사일 배치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마치 미국에 나라를 팔아넘기기라도 하는 양 반대하더니, 군통수권을 가진 지금은 김정은의 눈치를 보느라 한미군사훈련 마저 도둑 장가가듯 ‘몰래’ 진행하고 있다. (이마저도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일이라는 조롱이나 당하고 있는 실정)

‘이 정권의 핵심 세력이 북한 정권에 부역하는 세력이라 그렇다’ 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통일에 대한 이상과 방향이 일반적인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와는 별개로 국가경영에는 원칙이 있다. 국가의 핵심이익인 영토주권과 국민 안전에 대한 사항은 양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주의 정치학을 처음 주창함으로써 근대 정치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신생약소국의 생존에 대해 몇 가지 전략을 남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동맹’ 에 관한 부분이다. 국가는 자신의 동맹국이 자신보다 힘이 셀 때, 다른 국가가 그 동맹을 파기하라고 협박하거나 회유해도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설사 동맹국의 편들 들어서 적대국가와의 전쟁에서 진다하더라도, 동맹국과의 신의를 지킨 보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맹을 파기할 경우, 회유한 국가조차 이용가치가 다하면 기회주의 국가로 분류할 것이므로 위험하며, 과거의 동맹국을 적으로 돌리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당장 최근의 한국 안보현실을 살펴보더라도 마키아벨리의 말이 그대로 증명된다. 박근혜 정부가 친중정책으로 기울 때 한미동맹은 균열이 생겼었고, 시진핑은 박 대통령이 칭화대에서 중국어로 인사말을 한 직후 우리 방공식별구역 KADIZ 침범으로 화답했다. 내놓고 반미친중(북)을 하는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균열은 크레바스가 됐다. 이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문 대통령과 한미동맹을 조롱한다. (참고로,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 사상가는 마키아벨리라고 한다.)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소리’ 라느니, 자신들이 핵미사일을 쏘면 ‘똥오줌을 갈긴다’ 느니 하며 구애 수준으로 애북愛北적 발언을 이어가는 문 대통령에게 인격적 모독을 가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굳건할 때라야 중국도, 북한도 우리를 쉽게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비대칭전력이며, 그래야 동아시아의 군사 강대국들 틈에서 중재자 역할이나마 할 수 있다. 진짜 중간자가 되려 하면 한국은 길을 잃고 만다.

한일 GSOMIA 파기가 부르게 될 나비효과

김건호
고등학교 역사교사

2019년 8월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협정의 종료를 공식 발표함에 따라 동북아의 평화를 지탱하고 있었던 한미일 간 안보협력체제에 중대한 변화를 야기하게 되었다. 해당 문제는 과거사 논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포함하여 역사·경제·정치 등의 다양한 이슈가 엮여 있지만 이번 기고문에서는 한일 GSOMIA의 파기가 부르게 될 나비효과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GSOMIA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한일 GSOMIA의 파기가 가져올 것으로 생각되는 결과들에 대해 다뤄본 뒤에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GSOMIA는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군사정보협정”이라 명명한다. GSOMIA가 체결되면 협정국 사이에 군사 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게 되는데 다만 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모든 정보가 상대국에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사안별로 검토해 선별적인 정보 교환이 이뤄진다. 현재(2019.08.25.)기준으로 한국은 34개국 및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GSOMIA를 체결한 상태이며 참고로 협정국 34개국 안에는 한국과 같은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 국가로 비춰지는 러시아와 베트남도 포함되어있다. 그 중 한일 GSOMIA는 2016년 11월 23일 33번째로 체결되었는데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GSOMIA의 경우 유효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거나 5년을 설정하였지만 유독 일본과의 GSOMIA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설정했었다. 이는 체결 당시 국민적 반발이 심각했었기 때문에 고려되었던 방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한일 간 반목으로 인하여 한일 GSOMIA는 종료하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이러한 결정은 한국에 나비효과를 부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한일 GSOMIA가 체결될 당시 아시아 일대의 안보환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자신이 처음으로 총리가 된 2006년부터 착실하게 새로운 안보 구상을 준비하였는데 그가 마련한 안보시스템은 미국-일본-인도-호주를 묶어 “Asia’s Democratic Security Diamond”였다. 굳이 안보동맹에 ‘민주적’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것은 非민주적 국가를 겨냥한 것으로 노골적인 대중국 봉쇄망을 형성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에 사임함에 따라 이러한 구상은 흐지부지 되는 듯 했는데 2012년 12월에 다시 총리에 취임하면서 그의 민주적 안보동맹 구상은 부활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구상에 포함되어있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미동맹은 린치핀(Linchpin), 미일동맹은 코너스톤(Cornerstone)에 비유하며 한미일 동맹의 결속을 강조함에 따라 해당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일을 동시에 묶을 수 있는 안보협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기제가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체결된 것인 바로 한일 GSOMIA였던 것이다. 한일 GSOMIA가 체결됨에 따라 한국은 아시아에 형성되고 있는 대중국 포위망에 동참하여 자유민주국가의 대열에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한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간과한 채 단순히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일 GSOMIA를 파기하자고 주장하거나 정책 입안을 한 사람이 있다면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며 장래 국가안보에 끼치게 될 해악은 전부 책임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일 GSOMIA의 파기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오고 한미일 간 안보협력체제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이 20세기 동북아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었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새로운 안보시스템을 거부하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미국이 중국의 패권경쟁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확실하게 억제하여 동북아의 평화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반발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오히려 아시아의 안보구상에서 한국을 배제시키려 하고 미일동맹이 갖는 무게감을 훨씬 키우기 위해 노력한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 GSOMIA의 파기는 새로운 기회처럼 여겨질 가능성조차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1965년부터 지속되어 왔었던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근간을 완전하게 흔들거나 심한 경우에는 붕괴시키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과물은 더 큰 나비 효과를 부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바로 한국의 대외 신인도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일 GSOMIA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한 축인 동시에 아시아에서 非민주적 국가인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형성하는 안보시스템의 한 일환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한국이 탈피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군다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방위선인 ‘도련선’(島鍊線)을 선포하고 그 중에서도 핵심으로 강조하는 제1도련선에 한반도 전체를 포함시켜놓은 상황 속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체제에서 탈피하는 행위는 중국이 앞으로 행할 수 있는 국익침해 행위를 묵과하는 상황을 초래할 때 전 세계 어느 국가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한일 GSOMIA파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최선이라면 한일 간 갈등 국면이 완화되면서 완전히 종료될 것으로 예정되는 11월 23일 이전에 해당 발표가 취소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10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은 한일 갈등의 해소를 위한 실마리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판단된다. KBS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최근 8월22일-23일 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7%가 일왕 즉위식에 축하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고려 가능한 사안이라고 답했던 점을 한국 정부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예정대로 오는 11월에 한일 GSOMIA가 파기된다면 한미동맹의 균열을 최소화하고 새롭게 재편되어가는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질서에 어떤 방식으로 합류할 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일본-인도-호주로 형성된 ‘민주적 안보동맹’ 국가들은 2016년 1월부터 매년 인도 뉴델리에서 회의를 개최하며 4자 동맹의 형태를 지향해가고 있고 지난 5월에는 미국-일본-호주-프랑스가 인도양에서 첫 합동훈련을 가지며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힌 상태다.

이처럼 동북아의 안보질서가 對중국 포위망의 형태로 구상을 마치고 현실화되어가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중단하는 결과가 새로운 시스템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정확하고 충실한 설명이 보충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한-미-일 협력체와 민주적 안보 동맹에서 탈피하여 북한과 중국이 중심이 되는 질서에 편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매우 잘못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될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개별적인 연합 훈련조차 완전히 참여가 배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한미 동맹은 약화 내지 해체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의 장래에도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이다. 이처럼 한일 GSOMIA의 파기는 상상할 수 없는 나비효과를 부를 것으로 예상되며 다시 한 번 종료조치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심리학: 가장 미국적인 행복론

이동준
㈜두산 전략팀장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실용적이고 긍정적인 미국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매우 미국적인 학문분야입니다.

1998년 미국심리학회 회장 마틴 셀리그먼은 보통사람들의 행복추구를 위한 새로운 심리학을 주창합니다 .이는 심리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존 심리학과는 차별화되는 내용이었으며, 고도화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신적 공허함을 느끼던 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일반적인 인문학 분야들의 오랜 역사를 생각하면 상당히 젊은 학문인 셈입니다.

긍정심리학의 가치

긍정심리학은 더 행복해 지기 위한 세가지 Path를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Pleasant life, Engaging life, Meaningful life가 그 내용입니다.

Pleasant life는 말 그대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역의 약 50%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행복감도 타고난다’ 는 이야기가 실제 근거가 있는 셈이지요. 긍정심리학에선 이 영역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테크닉들을 개발하여 제시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합니다. (10~15% 개선) Engaging life는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가 정립한 개념으로, ‘몰입(flow)’ 에 해당합니다. 적절한 정도로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할 때 느끼는, 시간이 멈춘 듯한 집중상태지요. 그 극치가‘무아지경’ 이 될테구요. Meaningful life는 ‘소명의식(calling)’을 지칭합니다. 많은 경우, 사회, 국가, 종교, 학문 등 자아보다 더 큰 대상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며, 삶의 목적이 되겠지요.

다양한 연구결과는, ‘몰입’과 ‘소명의식’이 ‘즐거움 추구’와 비교할 때,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와 지속성에서 훨씬 우세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타고난 행복감이 부족한 사람도 몰입과 소명 영역의 개척 정도에 따라 충분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지요.

세 영역 각각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에는 정답이 없으며, 각자의 기질과 성향에 맞게 개발해야 합니다. 다만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이런 체계와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즐거움만 추구하는 것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지요.

한국사회 적용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행복을 유예하는데 익숙한 한국사회에, ‘더 행복하면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메시지는 신선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남을 더 잘 도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자신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거나, 빈곤문제가 심각한 국가에서 긍정심리학은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긍정심리학이 자랄 토대가 마련된 사회입니다.

긍정심리학의 한계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할 것도 없이, 행복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라는 건 우리모두 직관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역사상 수많은 논의와 주장이 있어 왔습니다.

긍정심리학은 이러한 인류의 행복추구 이론들을 폭넓게 검토했고, 신약인증 과정처럼 엄격한 검증방법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중 하나의 방법론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긍정심리학이 모든 사람에게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긍정심리학은 학문의 영역입니다. 행복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론과 공식에 천착할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공식에 맞게 하루를 보냈나?,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되었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정작 행복한 순간들을 놓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요.

결어

소크라테스는 근엄한 표정의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밝고 명랑한 꼿꼿함’(몽테뉴, 수상록)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저 또한 밝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만의 Pleasure, Flow, Meaning 을 파악하고 정교화하기 위해 내면을 열심히 탐구합니다. 평생 지속할 즐거운 과제입니다.

같이 갑시다 : Go Together

♣ 평택 미군기지에 한미 동맹 조형물 들어섰다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됐다. 가로·세로 각각 15m, 높이 5m인 이 조형물은 ‘함께하는 내일, 아름다운 동행’을 주제로 한미 장병이 협력해 역경을 극복해온 모습을 형상화했다.

조형물 제막식이 10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가운데 탑모양 조형물은 인천상륙작전에서 한미 양국 군인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을, 주변에 원형으로 설치된 ‘역사의 벽’은 6·25전쟁 이후 한미동맹의 발전 과정을 각각 담았다. 바닥에는 북한의 남침과 정전협정 조인, 한미연합사령부 창설과 주한미군사령부 평택 이전 등 한미동맹의 주요 역사를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역사의 시계’와 6·25전쟁의 주요 전투 등을 표시한 ‘한반도 조형’이 설치됐다. 원 바깥쪽에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 상징물 아래 각 군의 특징과 한미 양국군의 창설이 기록돼 있다.

정 장관은 축사를 통해 “이 조형물은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영광스러운 기록임과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는 지금, 한미동맹은 강력한 힘으로 변화를 뒷받침하면서 위대한 동맹의 역사와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우리의 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으며, 절대 변치 않을 것”이라며 “이 조형물은 우리의 공동의 과거의 기록이자, 우리의 헌신에 대한 표현이며, 밝은 미래를 향한 등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미동맹 상징조형물은 한미 기업 간 협력을 지원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미국 육군성에 기부한 것이다.

♣ 美국방부 “한·미·일 정보공유는 안보 핵심”… 지소미아 파기 우회 경고
    [지소미아 파기] 일부 “한·미 관계 문제 생길 수도”

미 국방부는 22일(현지 시각) 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정보 공유는 (한·미·일) 공동 안보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는 핵심”이라고 밝혔다. 지소미아 파기가 지역 안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브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지소미아 폐기에 대한 본지 질의에 “한국과 일본이 입장 차를 해소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며 “신속히 그렇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또 “미국과 일본, 한국이 우애와 결속을 통해 협력할 때 우리는 더욱 강하고 동북아시아는 더 안전하다”고 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난 9일 한국을 방문해 정경두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 협력에 상당히 기여한다”며 유지를 요청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전하면서 “이번 결정은 (한·일 간) 역사와 무역에 대한 논쟁을 더욱 증폭시키고 북한에 대한 안보 협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조시 스미스 로이터통신 기자는 트위터에 “이번 결정은 한·일 안보 협력 약화를 우려하는 미국을 경악하게 할 것”이라고 썼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 (미국의 반대에도)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를 포기하기로 한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결정은 미국의 우려를 자아낼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매슈 하 민주주의수호재단 연구원은 본지에 “이건 미국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간 것”이라며 “북한이 지속적으로 미사일 실험을 하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과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이렇게 가면 미국과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청와대가 ‘미국과 소통했고, 미국은 이해하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한국의 낮 시간은 미국의 새벽으로 국무부와 백악관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일방적인 통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는 트위터에서 “솔직히 나는 최근에 현 한국 정부와 민감한 정보·기술을 교환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9년 8월 23일 기사)

언론속의 한미관계

♣ “한국, 중국과의 3不 깨고 미국 MD 참여해야”

미사일 전문가 윌리엄스
이 최근 쏜 단거리 미사일, 한국 레이더로는 포착 어려워방어체계와 통합해야 요격

북한이 최근 잇따라 발사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위해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해야 한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발언에 이어 미국발 ‘안보 청구서’가 민관 등 각 분야에서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7년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하자 ‘미국의 MD 체계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 입장을 표명했었다.

미사일 전문가인 이언 윌리엄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12일(현지 시각) 북한이 최근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비행고도가 50㎞ 미만으로 낮게 비행하기 때문에 (한국의) 레이더로 포착하기 어려워 패트리엇 미사일로 요격하기 힘들다”며 “북한 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정확히 찾아낼 수 있도록 레이더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많은 레이더로 북한 미사일을 탐지해 요격미사일을 발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2017년에 중국과 한 (3불) 약속을 파기하고 미국 MD 체계에 참여해야 한다”며 “미국 MD 체계에는 북한 단거리 미사일의 발사와 비행을 감지할 수 있는 자산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MD망 참여로) 한국에 배치된 사드와 패트리엇 미사일, 한국 밖의 사드 및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와 레이더 기능이 통합되면 강력한 탐지 기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리 시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이날 RFA(자유아시아방송)에 “미국은 한국과 주한 미군을 위협하는 북한의 새로운 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한국의 미국 MD 합류가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력을 향상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MD에 합류하게 되면 미국 전체 미사일 방어망에 연동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 군 관계자는 “현재 우리 군은 MD에 편입돼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MD에 편입된 것과 비슷하다”면서도 “하지만 명목적으로 MD에 편입되면 패트리엇 등 추가 요격 자산이 증강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중국의 반발이다. 우리 정부는 사드 마찰 이후 ‘3불 정책’을 고수해왔는데 MD 편입이 정책적으로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MD 가입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며 “MD는 북핵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현재로서는 ‘모호성 전략’을 취하는 게 낫다”고 했다. 다만, MD 편입으로 인해 최근과 같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압박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군 관계자는 “MD에 편입되면 한반도에서 중국의 탄도미사일 초기 궤적을 포착할 수 있고 결국엔 미국에 엄청난 이득”이라며 “우리도 미국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게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MD 편입은 없다”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MD에 편입하지 않음을 천명해왔고, 독자적으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9년 8월 14일 기사)

♣ 美국방장관, ‘한미동맹 강조’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부 장관은 9일 “한미동맹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linch pin)”이라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 국방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저는 오늘 한미동맹은 철통(Iron clad) 같다는 것을 재확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한미 양국은 전쟁 속에서 형성된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며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대북 문제에서 “우리는 역내 우방국들과 함께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CVID)에 참여하기 전까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단호하게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교적 해결 노력도 강조했다.

는 미국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모든 약속에 대한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접촉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조건을 기초로 미군 사령관이 가진 전작권을 한국군 사령관에게 넘기는 문제에서 진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동맹으로서 갖는 신뢰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자 그 어떤 상대도 필적할 수 없는 전략적 이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출처 : 매일경제 2019년 8월 9일 기사)

피의능선 전투 전적비를 찾아서

최상진
수필가 / 본 협회 편집위원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 양구

내가 사는 마을은/대안산 아래 작은 마을/저 너머 북녘하늘 바라보며/

소리쳐 부르면

이산가족 달려 나와/손짓 할 것 같은데/아무리 불러 봐도/대답이 없어요.

가칠봉 정상에 올라/산 아래 북녘 땅 바라보며/소리쳐 부르면

북한 친구 달려 나와/뛰어놀 것 같은데/아무리 불러 봐도/메아리만 대답해요. (중략)

 

1977년 6.25전쟁 47주년을 맞아 경찰청이 주관한 제 1회 전국 학생 백일장 아래 우리 마을”이란 작품이다. 양구의 어린 소녀의 시에서 우리민족의 참담하고 불행한 전쟁의 양상을 떠 올리고 인류 역사상 어디서도 전례가 없는 동족상잔의 참혹성과 그 결과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바닥에는 동판으로 “You want peace, remember war!!”, 즉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문구가 새삼 가슴깊이 와 닿는다.

이번에 답사한 양구 지역은 우리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6.25전쟁 시 군사 요충지로 격전의 현장이었다. 6.25전쟁이 만 1년을 경과한 시점(1951년 7월)에서 펼쳐진 양구지역 전투는 전쟁 당사국과 지원 강대국들의 지루한 협상과 치열한 고지전의 공방속에서 피아 장병들의 막대한 희생과국토의 파괴 등 목적과 결과에 비해 과정상 너무나 큰 희생을 낳았고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던 전투이었다. 이 땅에 그러한 전쟁의 참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68년전 이곳 양구에서 있었던 치열했던 전투를 회고해 본다.

1951년 양구 전선

전쟁의 피로감은 고조되고

1951년 4월 지평리 전투를 기점으로 6.25 한국전쟁은 양상은 전면전에서 휴전을 염두에 둔 국지전, 고지전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양구와 철원지역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회담과 직결된 곳으로 1953년 7월 27일 협상이 종료 될 때까지 쌍방이 협상 주도권과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행해진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 2년차인 1951년 6월의 전황은 피아간 극심한 피해로 전쟁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각자의 정치상황에 따른 대안, 즉 휴전에 관한 논의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5차 공세의 실패로 인한 10만의 병력의 손실과 소련이 약속한 60개 사단규모의 전투장비 및 전쟁물자 지원이 지연됨으로 1주일 이상의 전투를 수행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북한은 더 이상의 폭격 목표물이 없을 정로 철저히 파괴되어 김일성 체제 유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 7만 8,8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힘에 의한 승리는 힘들다는 결론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과 확전, 궁극적으로 대치하게 될 소련과의 마찰로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대전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人海)전술과 미국의 화해(火海)전술은 현대전의 전술로는 너무나 무식하고 비인간적 살상의 형태였다.

억지와 이기적인 지루한 휴전 협상

미국과 중국의 소비적 전투로 힘이 약화되기를 내심 희망한 소련은 공산 3국(소련, 중국, 북한)의 대표 격으로 1951년 6월23일 소련 유엔 대표 말리크가 휴전 제의를 발표하고 1주일 후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정식 제안하고 중국의 팽더화이(彭德懷)와 북한의 김일성에게 수락함으로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은 처음에는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어 7월 26일에는 의제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후 일차적인 어려움은 양군의 경계선의 책정문제였다. 이미 38도선을 넘어서 진출하고 있던 미국은 양군의 접촉선에 따라서 결정하자고 주장한 반면, 공산측은 38도선의 원상회복을 고집함과 동시 한반도로부터 외국군(특히 미군)의 철수를 고수하여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8월 22일에 공산측이 회담의 중단성명을 냄으로써 회담은 정지되었다. 회담은 시작은 순탄해 보였으나 설전(舌戰)이 혈전(血戰)으로 이어지며 2년 간 죽음의 시간이 흘러갔다.

– 19517월 전선(戰線)의 난기류

여전히 전투는 미국과 중국의 주도로 치러지고 있었지만 국군의 경우 군 체제의 정비와 훈련으로 점차 일선 전투부대의 역할이 커졌다. 미군은 여전히 막강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전장의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지상전투에서는 기계화 부대의 기동능력을 극대화해 나갔다. 그러나 전투가 장기화하자 휴전과 정전을 염두에 둔 전략이 구사되어 무리한 남하, 북진의 완승개념의 전투가 아닌 휴전 또는 전쟁 재발 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 즉 전면전에서 고지전, 산악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전투의 양상이 바뀌면서 공중폭격이나 첨단병기의 운용이 제한적이었고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우선되는 뺏고 빼앗기는 살상의 소모전이 지속되었고 승자도 패자로 가릴 수 없는 혼돈의 시간에서 참전국의 정치적 입장은 어떤 목적이던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하기 힘든 방향으로 기울어져 미국과 중국은 휴전협상의 조급증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1년 7월 이후의 전투들에서 치열했던 전투상황 속에서 전쟁 영웅담들이 전쟁으로 야기된 비극적인 모습과 처절함이 전적비와 추모비에 새겨져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서글픔에 가슴을 여민다.

양구지역 9대 전투

양구 전쟁기념관에는 야외에 9개의 기둥에 1951년 6월부터 12월까지 양구에서 일어난 전투 양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투명 기간(1951년) 참전 부대
도솔산 전투 6.4–6.20 미 해병 제1사단 외. 국군 해병 1연대
대우산 전투 7.8 -7.31 미 제 2사단. 네델란드 대대. 국군 해병
피의능선 전투 8.18-9.5 미 제10군단. 미 제2사단. 국군 3,5,7,8사단
백석산 전투 8.18-10.28 국군 제7,8사단. 미 제96야전 포병대대
펀치볼 전투 8.31-9.20 미 해병 1사단, 국군 제 1 해병연대
가칠봉 전투 9.4 -10.14 국군 제 5사단
단장의 능선 전투 9.13-10.13 미 제 10군단, 제 2사단. 프랑스/네델란드 대대
949고지 전투 11.17-11.18 국군 제6사단, 제 8사단
X마스 고지 전투 12.25-12.28 국군 제 7사단

당시 양구지역은 6개월 동안 사상최대의 폭격이 가해지고 피해규모도 엄청나 피아간에 사상자가 아군은 전사 2,797명, 부상 외 13,801명, 적군은 전사 25,422명, 포로 2,015명이 발생하였다.

산하(山河)를 붉게 물든 피의 능선 전투

피의 능선 전투는 중공군 6차 공세(2차 춘계 공세)의 하반기에 해당한다.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1951년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한 유엔군은 향후 전황을 전쟁 이전상태로 회귀해 휴전으로 종결하고 최종 목표인 통일국가는 유엔 기구를 통해 계속 추구하기로 내부방침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군의 1차 저지선을 임진강-영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설정하고(서부전선에서는 38선에서 3-9km 정도, 동부전선에서는 16km 북쪽의 산과 고지를 연결하는 선) 이를 캔사스 선이라 명명했다. 예상보다 쉽게 캔사스 선을 확보한 유엔군은 캔사스 선의 북방 10-20km 내에 방어선을 설치하여 최종 방어에 주력하게 되었는데 이 선이 유엔군이 주장한 휴전회담 당시의 군사접촉선으로 휴전선의 기초가 되었다.

양구지역 전투의 또 다른 특징은 공산군의 불성실한 회담(전황이 불리한 경우 갖은 핑계로 회담 불참, 중지)태도에 유엔군은 강력한 군사적 압력으로 그들을 회담장으로 불러낸다는 전략이었다. 피의 능선 전투를 비롯한 양구지역 전투는 당시 공산군의 동북부 주요 보급기지인 해안분지(亥安盆地)를 확보와 캔사스선 고수를 위한 전투로 휴전 초기 최대의 격전지로 손꼽히고 있다.

1951년 휴전회담 기간 중 북한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은 주요 고지대를 요새화하여 미군과 국군에게 큰 난제였다. “피의 능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된 수리봉 983 고지를 중심으로 940, 773 고지는 현재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이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 제 12 보병사단과 제 27 보병사단은 북쪽의 문등리 계곡과 사태리 계곡 일대, 아군의 후방지역인 인제 일대까지 관측하며 주저항선과 주보급로는 물론 화력지원과 병력 이동상황 등 모든 군사행동을 제어하고 있었다.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7일 아침 한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8월 25일 10여 일에 달하는 공격으로 능선을 점령했으나 다음날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이때 한국군 제36연대는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 뒤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 대대 ,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그리고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공격을 감행했다. 8월 27일, 940고지에 있던 미 제9연대 제2대대가 983고지를 공격하였고, 28일에는 제3대대가 동쪽에서 긴 능선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8월 30일에는 제1대대 및 제2대대가 북쪽 940고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능선 정상의 수백 미터 전방까지 진출했다가 적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말았다. 이후 9월 3일까지 제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러, 3주일 동안 지속된 한·미 양군의 공격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투 결과 북한군 제6 보병사단 13 보병연대, 제12 보병사단, 제27 보병사단은 1,250명이 사살되는 등 총 15,000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해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한국군 제5 보병사단 36 보병연대와 미 제2 보병사단 역시 전사 326명, 부상 2,032명에 실종 414명이라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한·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하였다. 하루 평균 3만-5만 여발, 총 42만 여발의 포탄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2천 여발의 대인지뢰가 터지는 가운데 수많은 장병들이 발목이 절단되는 부상자를 감수해가며 끝내 고지를 탈취하는 모습을 미국 기자가 ‘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으로 격전 상황을 보도하면서 ‘피의 능선’이라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국군 제21 보병사단 “백두산 부대”가 수비하고 있으며 당시 격전지에는 1980년 11월11일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기타 양구지역 주요 전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솔산 전투

도솔산(해발 1,148)은 해안분지를 감제관측 할 수 있는 요충지로 미 8군으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 제 5해병연대와 교대해 도솔산 탈환을 명령 받은 국군 제 1해병연대는 악전고투 끝에 야간기습으로 도솔산을 점령하였다. 국군 해병대 5대 전투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도솔산 전투로 이승만 대통령이 무적해병의 휘호를 하사하고 해병대를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다.

펀치볼 전투

“펀치볼을 공격해 공산군의 요충지를 탈취하고 아군의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확보 한다”는 전략은 휴전회담 이전에 세운 아군의 작전개념 이었다. 와이오밍선의 구축과 공산 측을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게 할 목적으로 행해진 이 작전에서 미 해병 1사단과 국군 해병 제 1연대는 탈환 고지 명을 적개심 고취 차원에서 김일성 고지, 모택동 고지로 명명하여 북한군 제 3군단 1사단을 치열한 혈전 끝에 펀치 볼을 확보했다.

가칠봉 전투

펀치 볼 전투에서 전세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작전지역의 중앙인 가칠봉 일대에 국군 제 5사단을 투입하면서 전투는 시작되었다. 차후 작전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1,122고지(가칠봉 전방 500m)를 점령하기 위해 40일 동안 고지쟁탈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국군은 여섯 번의 쟁탈전을 거치며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하며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단장의 능선 전투

남으로 처져있던 주저항선을 정리하기 위하여 양구 북방의 931고지(일명 단장의 능선)를 1개월에 걸친 공격 끝에 점령한 전투이다. 미 2사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단장의 능선을 공격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잔여 2개 연대를 투입하여 전차를 주축으로 한 특수임무 부대로 적의 후방을 강타하면서 이 능선을 확보하였다.

양구지역 전적 비 방문을 마치며

아직 무언가 어색한 기운이 돌지만 오늘의 양구는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곳이다. 펀치 볼이 상표가 되어 펀치 볼 시래기가 특산품으로 팔리고 70년 전 피에 젖은 전쟁 상처가 상품이 되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미 제 2 보병사단 과 국군 제 5사단 36연대가 주축이 되어 피로서 지킨 현장에서 산화한 국군용사와 혈맹으로 이 나라를 지켜준 미군 장병들에게 감사의 묵념을 드린다. 굳건한 한미동맹만이 이 나라를 지켜왔고 또 지켜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깊어지는 여행이었다. 동행해 주신 협회 채연석 사무국장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한미우호협회가 한미동맹의 영원한 기축이 되기를 기원한다.

양구지구 9대 전투기념물
(양구 전쟁기념관)

도솔산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양구 전쟁기념관)

 

100세 인생 생활의 힌트 (12)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이사장, 본 협회 부회장

방학이 되어 3세 손자들이 자주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옵니다. 중1, 중2, 고1들입니다. 우리 세대는 고맘때 6.25를 당했지요. 중4를 마치고 한 달도 안돼서였습니다. 80평생 가운데 전쟁 전 그 4년간의 중학생활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떠오릅니다. 그때 공부하던 옛날 얘기를 3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얘들아, 중고 기초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단다.

중고 3세들에게

앞으로 모든 지식의 기계적 작업은 다 AI 인공지능이 가져간다. 그러나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만은 끝까지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중고 시절에 「영어」, 「수학」, 「독서」, 이 3가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A. 수학공부 이야기:

수학은 숫자 공부를 넘어서 차분히 이치를 따지는 「습관」을 몸에 익히는 훈련이다.
학원에서 가르치듯 정답만 빨리 내는 기계적 학습은 절대 안 된다. 사고력을 죽인단다.

1. 계산의 기본원리: “=” 등호 이야기:

“=”를 건너가면 (+)는 (-)가 되고, (x)는 (÷)가 된다. 이런 학원식 공부는 절대 하지마라.
“=”는 「좌변」과 「우변」이 똑같다는 기호다. 그러니,
양변에 똑같이 (+),(-),(x),(÷)를 해야 한다. 양변에서 똑같이 (+)를 빼주니까, 좌변에선 (+)가
없어지고, 우변에선 (-)가 생기는 것이다.
양변을 똑같이 (÷)를 해주니까, 좌변에선 (x)가 없어지고, 우변은 (÷)를 해주게 된다.

2. 응용문제 풀이: 우선 「답」을 “x”라 해놓고 생각해라.

(문제) 닭과 개가 합해서 5마리가 있다. 다리는 합해서 14개다. 몇 마리씩이냐?
(답) 먼저 닭은 x마리, 개는 y마리라 해놓고 생각하여라.
x+y=5마리…①
닭다리는 ‘2 x (x)’개, 개다리는 ‘4 x (y)’개다.
2x+4y=14개…②
풀면, 닭x=3마리, 개y=2마리가 된다.

3. 문제 만들기:
‘닭 4마리, 개 2마리’가 답이 되는 문제를 만들어 보아라.

B. 외국어공부 이야기

나의 경험 얘기다. 초등학교 때 배운 일본말로 그 후 계속 책을 읽은 덕분에 일생 일에도 써 먹고, 교양과 지식도 많이 얻었다. 영어는 중고 6년, 대학 4년, 10년 동안 공부했어도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한다. 외국어는 계속 읽지 않으면 결국 장식품에 그치고 만다.

한 가지 뜻밖에 덕을 본 것이 있다. 50이 넘어 「Word Power Made Easy」를 공부한 일이다. 유명 영어교수의 권유로 중2, 고1, 고3 세 아이들과 부모 다섯이서 공부를 했다. 단어공부는 물론, 독해력과 회화까지 놀랍게 향상되었다. 2년이 지나니 TIME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희들도 고교, 대학시절에 이 책으로 공부해 봐라. 교과서 단어 8천개에 1만 단어가 추가되더구나. 미국 대학생 수준 실력이다.

C. 국어(독서)공부 이야기: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생각은 누구나 제나라 말로 하게 된다. 아는 낱말 수가 「사고」의 수준을 결정한다. 모르는 말로 생각을 할 수는 없으니까.
독서는 어려서부터의 청소년기 습관이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서양인들은 대개 책을 읽고 있다. 초중고 때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한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D. 나에겐 한 가지 한이 있다. 전쟁 중에 학창생활을 보낸 탓에 예술에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 흥을 못 느낀다. 정서적 불구자가 된 셈이지. 학생 때 되도록 많은 예술작품을 접하도록 해라. 물론 문학작품도 매한가지다.

E. 끝으로, 학교 성적에 대한 자세다.

시험성적에 구애하지 말고 올바른 공부법을 따라야 한다. 느려도 괜찮으니 “하나하나 이치를 따져보고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과 함께 확고한 실력이 쌓이고 공부에 자신이 생긴다. 학기말 시험은 2주 정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성적은 신경 쓰지 말아라. 평상시의 올바른 공부법이 차츰 내신 성적도 힘차게 밀어 올리고 대학 입시 때도 원하는 진로를 자유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든다. 중고시절의 기초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수영장에서 생긴 일

정소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소설가, 본 협회 편집위원

민구 씨는 60대 초입에 들어선 사람이다.

모 재벌 회사의 상무까지 하고 한 5년 전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온데다가 재벌회사의 상무까지 했으니,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적 의미에서 인생결산표라 할 수 있는 은퇴 후의 재정 상태를 보면 그리 만족할 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최절정기라 할 수 있는 은퇴 무렵, 아파트를 제외하고 퇴직금까지 포함하여 근 열 장 정도를 꾸렸는데, 은퇴 후 한 5 년을 놀고나니 그마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요새 사람들이 다들 한 8,9 십은 산다고 하니 아직 남은 2,30년을 뭘 먹고 살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답답한 노후에 대해 더 안달하는 사람은 민구 씨와 일생 같이 살아온 김 여사이다. 따지고 보면 민구씨가 이 정도의 인생결산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김 여사의 공 탓이었다.

월급 등 수입을 애오라지 마누라에게 부지런히 갖다 준 사람은 민구씨였지만 그것을 알뜰히 저축하고 불려서 오늘의 그런 금액으로 만들어 내놓은 사람은 김 여사 자신이었다. 그 점에서 민구씨는 열 번 입을 열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 인생의 역정 속에서 현실이라는 파도를 이겨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으로 김 여사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자신의 단산수술이었다. 김 여사는 첫 아들놈 희철을 낳고나서부터 벌써부터 단산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둘은 벅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안을 내지리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 첫딸인 희애를 가지고 말았다.

“여보, 나 해 버리고 말았어요.”

산부인과 침대 위에서 핏덩이를 옆에 누이고 있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뭘? 아기를 잘 낳았으면 됐지…”

“당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서…단산수술을 받아 버렸어요…”

그들의 결산대조표가 민구씨의 은퇴 후 5년여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고정 수입이 없게 된 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역시 외아들 희철의 결혼과 도미 유학 탓이 가장 컸다. 이것은 푼돈으로 해결될 일들이 아니었다.

아들놈이 오랫동안 연애를 한 며느릿감을 더 기다리라 할 수 없는 것도 인생의 원리이다. 결혼을 한 아들놈이 별 직장이 없어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도 없었다. 그것도 신혼의 아내마저 떨쳐놓고 혼자 떠나겠다고 하니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왠지는 모르지만 김 여사도 옛날 같지가 않았다. 얄팍한 저금통장을 들고 이 은행 저 은행 뛰어다니던 그녀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는 지나가는 투로, 일평생 한 남자만 쳐다보며 살다가 늙어버려 여자로서는 폐기처분된 자기 같은 여자야 말로 진정 노벨평화상 수상자감이라나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민구씨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세 여자가, 즉 시어머니와 딸과 며느리가 사이가 좋아 자주 만나고 키득거리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경우 민구씨를 부르지도 않았다.

민구씨는 요즘 하버드대학생이 되고 말았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요즘 말로 하버드대학생이라고 한다나. 전국대학생은 전국의 산을 누비는 사람을 말하고, 동국대학생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삼복더위 속에서 혹서와 외로움에 지친 민구씨는 예년에는 전혀 하지 않던 일을 이번 여름에는 하고 말았다. 마누라쟁이는 딸년과 며느리를 만난다고 아침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타러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즉 그는 근 십년 이래로 찾지 않던 풀장을 찾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수영을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풀장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물이 들어간 귀를 흔들고 있는 민구씨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와글거려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버님, 청년 같은 몸이세요. 몸짱이세요!”

“아빠, 아랫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헤라클레스 같아요.”

“당신 대학생 때 수영선수였잖아요!”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을 내려다보니, 자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늙고 젊은 여자 셋이서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민구씨의 눈에 황급히 물살을 가르는 인어들처럼 비쳤다.

 

*정소성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수상

한미우호의 밤 인사말

황 진 하
본 협회 회장/전 국회국방위원장

존경하는 박재민 국방부 차관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최병혁 대장님 내외분,
주한미군사 참모장 스테판 윌리엄스 소장님 내외분,
미첼 모스 공보공사 참사님,
미국 대사관에서 오신 귀빈 여러분,
한미우호상 수상자와 주한미군 모범장병 여러분!
이 행사를 적극 후원해 주신 애국 후원자 여러분,
자랑스러운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
신사숙녀 여러분!

바쁘신 일정들을 무릅쓰고 오늘의 뜻깊은 행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마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 한미우호협회는 그동안 6.25 전쟁을 상기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유사시에는 반드시 승리를 위하여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주한미군 장병들을 위로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매년 June Festival이라고 명명된 한미우호의 밤을 개최하여 왔습니다.

이제 11일 후가 되면 우리는 6.25 69주년을 맞게 됩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북한의 끈질긴 비핵화 거부로 진정한 평화가 아닌 위장된 평화와 같은 긴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단단한 한미동맹의 결속과 대비가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본인이 매우 다행스럽게, 그리고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탁월한 리더십과 한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지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님과 주한 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신 로버트 에이브람스 장군이 우리와 함께 현재와 같은 긴장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해리 해리스 대사께서는 오늘 본국 출장으로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대사로 부임하기 전, 지금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이 바뀐 전 태평양 사령부의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태평양 지역 그리고 특히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전쟁억지를 위한 확실한 비전을 갖고 대사에 부임하셨기 때문에 현 한반도 상황에서 최적임의 대사님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본인이 국방위원장 시절 태평양 사령부를 방문했을 당시 함께 나눈 대화에서 이미 이를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로버트 에이브람스 연합사령관의 뛰어난 군사전략과 용기를 겸비한 리더쉽에 대해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세계최강의 연합사로써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나가리라 확신합니다. 그는 그의 아버님, 형님, 자기 자신 등 3 부자가 한국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해 오신 미국군이 자부심으로 삼고 있는 집안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한국군의 정예 사단장과 군단장을 역임했으며 미 육군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미연합작전부서에서 중책을 역임한 한국군 내 최고의 연합작전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에이브람스 사령관과 함께 최강의 연합전비태세를 발전시키고 발휘할 수 있는 환상의 콤비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용장 밑에 약한 부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써 내려온 한미동맹, 탁월한 주한 미 대사님과 연합사령관님의 리더십이 환상의 콤비 최병혁 부사령관님과 함께 단련된 한미 연합 장병들은 세계 최강의 장병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들 중 대표자들이 오는 수상을 하였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뜨거운 박수로 이들에게 감사와 성원을 보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하여 그리고 한미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서로 다짐합시다.

오늘 밤은 우리의 동맹 강화를 다짐하고 우의를 더욱 단단히 하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각테이불 별로 이러한 뜻과 정담을 나누시면서 맛있는 식사와 공연을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영사를 마치기 전에 이번 행사를 위하여 준비위원장이신 정의승 위원장님과 우리 한미우호협회 회원님들이 또 기타 여러분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범장병들을 격려해주시는 뜻으로 다시 한 번 힘찬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We go together!
Let’s go together!

Honorable Park Jae-min, Vice Minister,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General Choi, Byung Hyuk, Deputy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and his lovely wife,
Major General Stephan Williams, and his lovely wife,
Mr.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Distinguished guests from U.S. Embassy,
Recipient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wards and Exemplary USFK service members,
Our active event sponsors,
Proud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Ladies and Gentlemen!

Let me first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to everyone for taking the time out of your busy schedule to attend tonight’s event.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has been hosting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Night successfully every year, referred to as ‘June Festival’, lest we forget the Korean War and to comfort the U.S. service members who has been doing their best to keep the freedom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o strengthen our resolve of the ROK-US alliance.

Ten days later we will again commemorate the 69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and current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unstable, just like a camouflaged peace but tension, because North Korea continuously objects to denuclearize. Therefore further solid and robust ROK-US alliance is even more critical than ever.

Under such a significant circumstances, I strongly believe that we are very fortunate and it is truly a blessing for Korean people that we are having Ambassador Harry Harris and General Abrams,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United States Forces Korea with us who have exceptional leadership and special affection for Korea.

Ambassador Harry Harris served as the Commander of U.S. Pacific Command, which restructured recently as the USINDOPACOM before coming to Seoul as an Ambassador, and he has full Knowledge of the strategic importance of Pacific area, particularly on Korean peninsula and has a clear vision to deter war on the Korean peninsular. So I am confident that he is the most qualified Ambassador to Seoul. I already assured it through the in-depth dialogue with him when I visited to his office when he was the Commander of US Pacific Command and I was the 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ttee of the National Assembly then, So I again, would like to commend and pay respect to him.

Also, I would like to recognize General Robert Abrams, Commander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family whole dedication themselves to the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r and give infinite confidence to him and courageous leadership. And I am convinced that he will carry out his important mission successfully with the strongest and utmost ROK-US combined readiness posture.

He is a member of the Abraham’s family whose father, brother and himself have contributed to the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 with deep affection for Republic of Korea, so the US military is very much proud of him.

General Choi, Byung Hyuk, Deputy Commander of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served as the commanders of elite Division and the Corps of ROK Army. As he graduated from U.S. Army War College, Carlile Barracks Pennsylvania, and served the key post at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he is known as the best expert on combined operation. I am confident General Choi and General Abrams will make a perfect duo in making and demonstrating the vigilant and unbeatable combined readiness posture.

There is an old saying in Korea, “No single weak subordinate can be under brave General” like in English “A good general will make good men.” I am certain that ROK-US combined warriors are truly the strongest one in the world trained under and by the exceptional leadership of Ambassador Harry Harris and General Abrams, who are part of this historic legacy and tradition of the ROK-US alliance.

Ladies and gentlemen, At this juncture Why don’t we give them the warmest round of applause.

Tonight, we are gathered here to strengthen our alliance and our friendship. At this meaningful opportunity, let us promise each other to do our best to promote the robust ROK-US alliance and friendship. And please enjoy the meal, the performance, and let’s heat friendship up.

Before concluding my speech, I would like to recognize preparation committee chairman Chung Eui Sung’s devoted efforts, and special thanks to the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everyone who actively sponsored for tonight’s event.

Ladies and gentlemen, may I solicit your warmest round of applause to chairman Jung and all the sponsors to express our appreciation, and again to cheer up USFK warriors.

We go together! Let’s go together!
Thank you very much!

한미우호의 밤 축사

박재민 / 국방부 차관

안녕하십니까. 국방부 차관 박재민입니다.

먼저 한미동맹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한미우호협회 회원과 내빈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황진하 회장님을 비롯한 한미우호협회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미동맹은 지난 70여 년간 한반도 방위는 물론,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에도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특히,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난 한 해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한 덕분입니다.

지금,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오고 있습 니다. 남북군사합의는 1953년 정전협정의 정신을 구현하여 남북이 신뢰를 구축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보다 나은 여건을 조성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지난해 11월 1일부로 지상·해상·공중에서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였습니다.

먼저, 남과 북은 DMZ 內 양측 GP 11개소를 시범 철수한 후 상호검증을 완료하였습 니다. 또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화기를 제거하고, 남북 공동경비초소를 설치하는 등 비무장화를 완료하였습니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비무장지대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해
지뢰제거 및 남북을 잇는 도로 개설을 완료하였고, 현재는 공동유해발굴 사전준비 차원으로 화살머리고지 우리 측 지역에서 기초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두 차례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였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볼 때는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면서 비핵화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은 간단하지 않으며, 이의 성공적 진행과 성과가 있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이 굳건한 한미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다가올 미래에도 한반도의 평화 를 지켜내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의 한미 국방당국 간 공조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합니다. 올해만 해도 정경두 국방장관님과 섀너핸 美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의 장관회담을 비롯 하여, 수차례의 유선협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면서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나간다는 공동의 입장을 거듭 재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근간에는 금일 한미우호상을 수상하는 주한미군 장병을 비롯하여
전후방 각지에서 불철주야 헌신해온 한미 양국군 장병들의 노고가 자리 잡고 있습 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오늘의 알찬 행사를 준비해주시고, 이런 귀한 자리에 초청해주신 한미우호협회 황진하 회장님과 참석해주신 모든 내빈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한미우호협회가 양국의 동맹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Good Evening, I am the Vice Minister of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Park Jae-Min.

Firstly,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st gratitude to President Hwang Jin Ha, the members of the Korea-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distinguished guests for participating in this event with their deep interest in the ROK-U.S. Alliance.

The ROK-U.S. Alliance made great contributions to not only the defense of the ROK but also to its development of free democracy and economic prosperity. In particular, the dynamic changes to the security environment around the Korean Peninsula that we had witnessed over the past year was possible only because the robust ROK-U.S. alliance have been supporting the diplomatic efforts to achieve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litary domain.

As it stands, the two Koreas are faithfully implementing the Agreement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Historic Panmunjom Declaration in the Military Domain also known as the CMA. The CMA strives to lay the groundwork upon which denuclearization and peace may be established on the Korean Peninsula by embodying the Armistice Agreement of 1953 through inter-Korean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and prevention of accidental conflicts. As per the CMA, the two Koreas ceased all hostile acts in land, sea, and air as of November 1st, 2018.

The two Koreas executed the pilot withdrawals of 11 GPs each in the DMZ and completed mutual verifications. Furthermore, the demilitarization of the Panmunjom Joint Security Area was completed with the removal of firearms and installations of joint patrol posts. Furthermore, mines were removed and an inter-Korean road was laid last year for the Joint Remains Recovery in the Demilitarized Zone. As of now, pilot remains recovery operations are taking place on the southern side of the Arrowhead heights as preparatory measures for the Joint Remains Recovery that will follow.

I have conviction that the aforementioned measures will substantively contribute to the alleviation of military tension and establishment of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dmittedly, North Korea did fire short range missiles in two separate occasions of late.

However, the North Korean position of staying faithful to the CMA and maintaining the denuclearization conversation momentum remains changed.

Of course, achieving denuclearization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ill be by no means an easy task. To say that progress and success will depend on an unwavering and steadfast ROK-U.S. Alliance is an understatement.The ROK-U.S. Alliance will continue in the future, as it has done so devoutly until now, to serve as a linchpin in preserving and establishing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through its complete denuclearization.

The coordination between the ROK-U.S. authorities is more robust now than ever.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Jeong Kyeongdoo and Acting Secretary of Defense Patrick Shanahan repeatedly reaffirmed the common goal of supporting the diplomatic effort to denuclearize the Korean Peninsula while maintaining a steadfast combined defense posture through their frequent phone calls as well as their two Ministerial Meetings in April and in June.

Etched at the bedrock of the ROK-U.S. alliance are the exemplary efforts displayed by the winner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ward and all other service members of our great two nations in all their expertise and station alike.
I would like to devote this moment to them and extend my deepest gratitude.

Finally, I would like to thank once more President Hwang Jin Ha for inviting me to this meaningful event as well as all the distinguished guests for their participation. My wishes go to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for its perpetual growth and with hopes that it continues its central role in developing the ROK-U.S. Alli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