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緣說인연설

성기조

 

어둠이 밀려올 때

눈이 사락사락 내릴 때

바람이 불어올 때

매서운 추위가 몰려올 때

木花목화같은 다사로움으로

바위 같은 沈黙침묵으로

풀꽃같은 香氣향기로

무르익은 果肉과육으로

開化개화하는 꽃잎의 부드러운

눈짓으로

눈 오는 밤 당신이

내게 들려주는

사랑의 말씀

 

대북한 정책: 기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교수
본 협회 편집위원장

출퇴근을 하다가 심각한 교통체증에 빠지게 되면 빠른 우회길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체되어 있는 내 차선 옆 텅빈 차선을 보면 누구나 그곳으로 달리고 싶어 한다. 실제로 그 쪽으로 차선을 바꿔서 달리면 처음 얼마간은 정말 신이 난다. 잠시 동안은 차가 쭉쭉 빠지고,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서 곧 더욱 심한 정체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그 정체를 극복해도 목적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정체되어 있는 차선에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결국은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 구역만 극복하면 많이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대북 또는 대북핵 정책이 텅빈 차선으로 바꾼 위 이야기에서의 차와 같지 않을까?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제대로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것으로 생각 및 홍보하고, “한번도에서 전쟁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보수 정부가 취해온 신중한 압박 위지의 대북 정책을 경멸하기라도 하듯이 숨가쁘게 남북관계를 진행했다. 세차례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나도록 만들었다. 정말 잠시 신이 났다.

그러나 싱가포르 회담에서부터 기대와 달리 아무런 의미없는 합의가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채 노력했으나 결국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에서의 미북 정상회담은 결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협상과 대화의 창구가 의미없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함께 생·화학무기까지 폐기하기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정도만 폐기하는 조건으로 경제제재의 대부분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잠시 순항하다가 더 극심한 정체에 직면한 위 이야기의 운전자처럼 현재의 남한 정부는 오던 길을 계속 갈 수도 없고, 새롭게 바꿀 길도 없으며, 되돌아오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다소 힘들고 답답했더라도 1년 전에 차선을 바꾸지 말고, 힘들지만 조금씩 전진했으면 어떠했을까? 미국과 함께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더라면, 북한이 핵무기 폐기에 관한 확답은 물론이고, 그 로드맵까지 제시하였을 수도 있다. 이미 북한의 핵무기가 해외에 반출되어 해체되고 있을 수도 있다. 답답한 마음에 4월 11일 2시간을 위하여 10여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하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으로부터는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말고, “제정신을 갖고” 처신하라는 충고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에서 텅빈 길로 잠시 신나게 달리다가더욱 극심한 정체에 진퇴양난에 빠진 운전자와 너무나 유사하지 않는가?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원래도 되돌아와야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그 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가급적이면 조금이라도 더 빠른 길을 또 찾고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둥되다가 또다시 더욱 극심한 정체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수를 만회하고자 발버둥칠수록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로 인하여 2시간 걸릴 길을 5시간, 어떤 경우는 10시간을 걸려 도척하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그 동안의 시행착오가 뼈저리게 후회되고, 그 동안 낭비한 시간이 아깝지만, 다시 원래의 정상적인 길로 돌아와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잠시 막힌 것과 되돌아오는 시간만 손해본 후 3시간 정도에 목적지에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쉽지 않지만 이제 정부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최우선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고, 그 이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지만, ‘완전한 비핵화’는커녕 부분적인 비핵화를 위한 진전도 없었다. 오히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철폐를 통하여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1970년대부터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에 합의하였을 뿐이라고 강변하였다. 이제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증거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유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러한 냉정한 현실 인식 하에서 기존의 북핵 접근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한 후 180도 방향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게 잘해주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유아적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고, 핵위협의 처리에 관한 어떠한 교과서에도 추천되지 않는 방식이다. 1년 동안의 실험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지 않았는가? 인간도 그러하지만, 상대국이 선의로 대해준다고 하여 자국이 소중하게 아끼는 것을 포기할 국가는 없다. 포기하지 않을 경우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야 마지못해 내어놓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의 교과서로 되돌아가서 미국과 함께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이로써 북한에게 핵무기 보유는 자신과 체제를 백천간두에 서게 만들 수 있다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장기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둘러싼 국론분열에 대해서도 반성하면서 전향적인 개선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국민과 국론을 통합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신중하면서도 차근차근한 접근을 요구하는 여론은 무조건 배척하였고, 정부의 노선을 지지하는 인사들의 말만 들음으로써 현재와 같은 비참한 결과를 자초하였다. 비록 시간이 걸리지만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대북 또는 대북핵 전략을 수립하고, 그 결과로써 남한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확고한 입장을 북한에게 과시해야 한다. 친북인사들을 제외하는 대신에 북핵 문제에 관한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중용하고, 야당 지도자, 보수적인 외교 및 안보전문가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들을 망라하여 북한 비핵화에 관한 범정부조직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합리적인 북한 핵무기 폐기 전략을 개발하도록 요청한 뒤, 총력적인 차원에서 추진해 나가야할 것이다.

실질적인 북핵 억제 및 방어책 강구

이제 정부는 유사시 북핵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포괄적이면서 실질적인 대책도 강구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사용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과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과도하다고 싶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여 대비하는데, 한국은 유독 최상의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만 인식하면서 태평이다. 국민이 그러하더라도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할 것인데, 한국은 오히려 반대이다. 국민들이 불안하다고 아우성이고, 정부와 여당은 태평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이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계승되어오고 있는 것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당연히 핵우산(nuclear umbrella)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가 실제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한미 양국군 간의 협의와 절차훈련을 강화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미국 정부와 모든 대북한 또는 대북핵 정책을 협의해야할 것이고,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4D” 즉 “탐지(Detect), 와해(Disrupt), 파괴(Destroy), 방어(Defend)”를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능력과 체제를 구비해 나가야 한다. 현 상황이라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한 모든 협의를 중지시키거나,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할 경우에 스스로의 능력으로도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과 대책을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이를 위한 정부와 군의 전략을 개발하며, 그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태세를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 ‘3축 체계’로 추진했으나 현 정부 들어서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선제타격(Kill Chain), 탄도미사일방어(Ballistic Missile Defense), 대규모 응징보복(KMPR: Korea Massive Punishment and Retaliation) 등의 개념을 재활성화하고, 그를 위한 군사역량 확충에 매진해야 한다.

‘9·19 군사분야 합의’에 관한 재검토도 미룰 수는 없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40km밖에 되지 않아서 기습공격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 합의를 준수하고 있는 지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그에 맞도록 우리의 준수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북한이 지키지 않는 부분은 우리도 지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설정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북한에게 알려야 한다. 전방지역 부대 이외에는 훈련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전방 지역도 북한의 상응한 조치에 맞춰서 훈련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전제 하에 합의한 사항이니만큼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는다면 합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의 복원 필요

그 동안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에 치중한 나머지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였고, 필요한 처방을 강구하지도 못하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한미동맹이 불안해지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한미동맹은 확고하다고 강변할 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미동맹은 매우 취약해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지난 방위비분담의 협성과정, 이번 4월 12일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한미 실무자들 간의 접촉 빈도를 보면 한미동맹은 빠른 속도로 형해화(形骸化)되고 있다.

우선 정부는 핵무기 억제 및 방어의 교과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로 북한의 핵에 대한 만반의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북한에게 알리고,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경제제재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공해상에서 북한이 석탄이나 석유를 환적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이를 위하여 미국 및 일본을 비롯한 동맹 및 우방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북한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남북관계에도 긴장을 조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핵무기를 폐기하여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민족공영을 보장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과의 연합훈련도 재개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매년 봄에 실시하던 ‘키 리졸브’와 ‘폴 이글’ 연합훈련은 ‘동맹-1’이라는 컴퓨터 모의 연습으로 대체되었고, 여름에 실시되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훈련도 지난해 취소된 데 이어 ‘동맹-2’라는 컴퓨터 모의 연습으로 대체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훈련에는 ‘반격’ 단계가 포함되지 않아서 미 증원군의 전개에 관한 사항을 제대로 점검할 수 없다. 당연히 컴퓨터 모의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제대로 묘사하여 훈련할 수 없다. 이외에도 과거 연합 차원에서 실시하던 각군의 훈련들이 한국군 단독훈련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이러한 방향을 180도 전환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고, 군에게 강한 훈련을 실시하도록 강조하면서 미국에게도 과거의 한미연합훈련을 복원시키는 방향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것은 북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최선의 대책이기도 하지만, 북핵 폐기의 유일한 실질적인 길일 수도 있다. 한미동맹이 강화될수록 중국은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고, 결국 북한에게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경우 중국은 전략적으로 봉쇄된다고 인식하여 사전에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이 북중동맹을 압도하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설득의 대상은 북한, 주제는 핵무기 폐기

문 대통령은 4월 15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과 북이 마주앉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될 결실을 맺을 방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도대체 현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북한 또는 북핵과 관련하여 어떤 전략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할까? 북한은 “오지랖”과 “제정신”의 용어를 사용하여 한국을 무시하고 있고, 한국과 대화할 생각 자체가 없다. 이렇게 안보를 어렵게 만든 것을 앞으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제 정부는 성과없는 북한 설득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침묵함으로써 국격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모욕당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모욕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북한에게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 이 대한민국은 문대통령과 현 정부인사들의 나라가 아니고, 현재를 사는 모든 국민, 과거의 선조들,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이 공유하는 나라이다. 잠시 국정을 맡은 기회에 후손들이 살 국가의 모습을 함부로 결정해서는 곤란하다.

텅빈 차선을 선택하여 잠시 달리다가 정체되면서 실수한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차를 정지시키고, 현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북한이나 북한 핵무기에 대한 접근방법이 잘못되었음을 확실하게 깨닫기만 한다면 1년 동안의 실험이나 시행착오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반성없이 잘못된 길을 계속한다면 정말 문제이다.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계속성과 헌법의 수호”라는 헌법 제66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책무를 엄중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할 뿐이다.

김정은의 권력재편과 비핵화 전망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수렁에 빠진 북한의 비핵화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트럼프-김정은 회담(하노이회담)이 결렬되어 북한 비핵화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판문점 선언」(2018.4.27.)과 싱가포르 성명(2018.6.12.) 및 평양 공동선언(2018.9.19.)에 환호하던 북한 비핵화 문제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의 회담 이후 미국을 굴복시켰다고 기고만장했던 김정은이 하노이회담의 실패 이후, 지난 달 조선노동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4.10)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4.11)를 연이어 개최하고 ‘자력갱생’ 의지를 내세우며 당 노선과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4.25)을 통해 미국의 압박에 대해 공동 대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향후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다.

북한 비핵화 개념의 올바른 이해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비핵화한반도 비핵화의 개념 차이를 파악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North Korea)란 북한의 과거·현재·미래의 핵무기, 핵시스템, 핵물질,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까지를 완전히 해체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진영과 서방세계가 말하는 비핵화로 북한의 ‘핵 폐기’를 의미한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란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정확히 말하면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로 미국과 한국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한 비핵화이다.

북한당국은 2016년 7월 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북 비핵화 궤변은 조선반도 비핵화의 전도를 더욱 험난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성명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다. 여기에는 남핵 폐기와 남조선 주변(미국 지칭)의 비핵화가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① 남조선 배치 미국 핵무기 공개 ② 남조선 배치 핵무기와 기지 철폐 ③ 핵타격 수단 불 배치 약속 ④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천명 ⑤ 미군철수 등을 북핵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바 있다.

결국 이러한 주장들로 비추어 볼 때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성명에 명시되어 있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사실상 북핵 폐기를 않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사안이 이러한데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성명 및 평양 공동선언(2018.9.19.)에 명시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환호하는 문재인 정부와 언론 및 이에 부응하는 얼치기 안보학자들의 행태는 아주 우려스러운 반(反)안보적 작태이다.

북한 비핵화의 가능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향후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제제가 성사된다고 하여도, 지구상에서 김정은 정권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북한 비핵화는 요원하다. 즉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주체사상과 선군노선에 기반을 둔 김정은 정권이 없어지고 김씨 일족이 아닌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야만 가능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 하에서 핵은 ① 선대 수령(김일성-김정일)의 유훈(遺訓)사업이며, ② 2013년 3월 당 전원회의와 2016년 제7차 당 대회 시 공식 채택한 ‘핵무력 건설-경제건설 병진노선’이라는 당의 정책방침이며 ③ 김정은이 언급했듯이 ‘만능의 보검’이다.

대남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김정은이 정권 목표(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한반도 공산화통일)인 대남전략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선대 수령의 유훈(핵보유와 적화통일)을 포기하는 것이고, 조선혁명의 배신자가 된다는 말이다. 조선 혁명전통의 유일한 관철자이자 계승자라는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또한 핵과 ICBM급 미사일실험 성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위상이 한없이 높아진 것을 감안해봐도 핵없는 북한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은이 진짜 의지만 있다면 비핵화를 1개월이면 끝낼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는 핵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의회(상하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법적 절차가 있어서 오래 걸리겠지만 북한은 다르다. 수령절대주의 폭압체제 하에서 이른바 최고 존엄(수령)인 김정은이 핵을 없애는 게 내 방침이라고 선언하고 핵무기를 없애라고 지시하면 1개월도 안 걸린다. 비핵화 의지가 없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 절차, 과정 등을 이야기하며 질질 끄는 것이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과거와 현재의 핵은 보유한 채, 미래 핵과 미 본토를 공격할 ICBM급 탄도미사일(화성 15형 등)만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풍계리 폭파 쇼도 그래서 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회담이 재개되면, 적절한 시점에 화성-15형 해체 쇼를 할 것이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과 운반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포기하며 트럼프를 만족시키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유지되는 한, 과거와 현재의 핵은 유지하고 미래의 핵은 유지하겠다는 김정은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나 장담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돌발적이고 충동적이며 자기 우월적 정책결정 행태 때문이다.

김정은의 대응, 자력갱생 노선과 중·러 공조

하노이회담의 실패 이후 미국 등 서방세계의 대북제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의 타개책으로 김정은은 당 전원회의에서 의정 보고를 통해 미북회담의 취지를 밝히며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당의 확고부동한 정치노선으로 내세웠다. 김정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김정은은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여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4월 20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란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고난의 행군’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논조는 2차 미북회담(하노이회담)에서 대북제제를 면해보려 했던 김정은의 의도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부당하자 향후 지속될 강력한 대북제제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 결국 미국의 의도하는 비핵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자력갱생 노선이 경제위기와 주민불만을 얼마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나, 장기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자력갱생 노선은 북한 주민의 고통과 희생을 전제한 것이기에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한 것이다. 지속적이며 만성적 경제의 위기는 곧 정권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최근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상징조작 구호로 내세우고 있으나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는 의문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북한-중국-러시아’ 공동전선을 구축해 미국의 비핵화 압박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김정은이 대북제제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 살 길은 조속한 북핵 폐기와 개혁개방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앞서 지적한 이유로 이를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 비핵화의 해법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현안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얼마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 국민의 생존권 및 국가안보를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북핵 문제를 폭압통치자 김정은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희망 없는 짝사랑’에 불과하며 북한식 표현으로 ‘오뉴월의 개꿈’으로 결국 안보포기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등이 논의되고 있다. 어렵겠지만 이를 성사시킨다면 한반도의 핵 균형(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불안정하나마 일단 현존하는 북한의 핵공갈과 핵위협을 억제(Deterrence)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그 이유는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란 ‘과거의 핵’과 ‘현재의 핵’ 뿐만 아니라 ‘미래의 핵’까지 핵시스템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을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명백한 상태에서는 핵에 대한 대칭적 대응이 아닌 비대칭적 대응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즉 핵문제를 야기시키는 핵심 상위 타켓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김정은 정권을 고립화시켜 해체, 붕괴시키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즉 북한 핵의 상위자인 김정은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시간, 비용, 효과측면에서 가장 확실한 대안임을 지적한다. 김정은 체제가 해체되고 들어서는 정권에 강력한 제재와 압력을 통해 스스로 핵을 해체하는 길을 열도록 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김정은 정권을 고립화시켜 해체해야 한다고 제안하니까 그렇다면 북한과 전면적인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흥분하나, 그것은 인류사의 정권붕괴 사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의 지적이다. 김정은 체제를 해체시키는 전략은 북한주민을 아래로부터 변화시켜 축출하는 방법으로부터 김정은과 체제지탱력인 군과 고위층을 분리시켜 제거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과 유형이 있으나,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다루지 않겠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반문명적인 김씨 집단(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게 70년 동안이나 당하고도 북한 김씨 집단의 속성을 그리도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바로 잡겠다고 하는 발상은 실현 불가능한 허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북한의 핵협박과 도발을 막기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가 지불했던 막대한 경비와 시간과 노력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고, 김정은 정권을 해체시키는 대북전략을 구사해야 함을 제언한다.

박근 대사님을 추모하며

조원일
본 협회 전 부회장, 전 베트남 대사

박근 대사님은 애국자셨습니다.

박근 대사님은 지난 30여 년간 앞장서서 애국활동을 선도하셨습니다.

대사님은 보수는 자유를 지키는 정치운동이라고 하면서 “역사는 자유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고, 그래서 당대에 제일 번영하는 국가는 항상 자유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고 했습니다. 좌익의 발호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이념적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落膽(낙담)하는 후배들과 우리 국민을 격려했습니다.

대사님은 “세계 자유민주주주의 아버지” 링컨대통령과 共通(공통)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링컨대통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民主(민주)정부는 최선의 정부로서 어떠한 어려움도 모두 다 극복하고 세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이라고 했고, 박근 대사님도 민주정부가 한국에서 영속할 것이고, 우리 국민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과 발전을 누리는 밝고 힘찬 나라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선각자인 대사님은 1960년 자유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下野(하야)를 극구 반대했습니다. 당시에 대사님은 서기관이셨는데 건국의 아버지 하야에 반대하여 사표를 제출한 유일한 공직자였습니다.

박 대사님은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큰 원인은 박 정희 대통령의 리더십과 한미동맹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우리 국민과 지도자들이 미국처럼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발전한 것입니다.

2001년부터 8년간 한미우호협회 회장직을 맡은 기간에는 솔선수범해 좌파의 반미 난동과 暴擧(폭거)를 막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라를 위하고 협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느 누구에도 머리를 숙일 수가 없다고 하며 ‘행동하는 지성’이기를 그 분은 늘 강조하셨습니다. 좌익분자들이 인천에서 농성하며 맥아더 장군 동상 毁損(훼손)을 시도했을 때는 소수의 동지들과 함께 현장에 찾아가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경찰과 인천시민들을 독려하여 좌익의 폭거를 중단시키도록 했습니다.

2005년에 평택에서 좌익세력이 장기간 농성하며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할 때에는 3개 경제단체의 후원을 받아 재향군인 수천 명과 함께 주한미군기지 이전촉구 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좌파의 농성을 중단시켰고, 2008년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에는, ”부시대통령 방한 환영 범국민대회“를 열고,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그를 열렬히 환영함으로써 광우병 亂動(난동)을 제압하도록 이끈 분도 박근 대사님이십니다.

부시대통령이 광우병 난동을 보면 “대한민국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라로 비추어질 것이 아닌가. 그러니 방한을 환영하고 FTA를 지지하는 국민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독지가를 설득할 때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실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박근 대사님의 모습은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분의 지극 정성인 모금활동으로 사무실과 기금이 마련되고, 연중 최대행사인 6월 “한미우호의 밤” 행사와 연말 “송년한미우호의 밤” 행사는 미국에서처럼 테이블을 독지가가 사주는 방식으로 주최해 수백 명의 주한 미군장병들을 매년 정기적으로 초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애국활동을 하는 한미우호협회가 다수 국민의 지원과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라와 자유를 사랑하는 그 분의 지혜와 무한한 열정 덕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또 “世界市民(세계시민)”이셨습니다. 세계시민의 애국주의는 “共同善(공동선)” 즉 소수의 이익보다 다수의 이익을 선호하여 애국은 자기 나라나 자기 종족과 部族(부족)뿐만 아니라 人類(인류) 전체의 이익을 추구 하는 것이며, 애국자는 자유와 改善(개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적으로 유익한 애국자는 주위 사람들이 마음과 가슴을 열어 더 나아지게 할뿐더러 세상의 기본원칙을 세우고, 개인이익은 사회이익에 일치하도록 하고, 국가이익은 인류의 이익에 부합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박근 대사님은 또 명연설가로 널리 알려지신 분이기도 합니다.

대사님이 미국대사관 근무 중이던 1963년 텍사스 Weyland Baptist College에서 외교관으로서 첫 연설을 했는데 ”한국인의 熱望(열망)“이란 연설은 미국 죤슨 대통령, 교황 바울 6세, 프랑스 드골 대통령 연설과 함께 1964년 1월 15일자 세계의 주요연설(Vital Speeches)로 선정 되었는데 한국인 연설로는 처음입니다.

그분은 이 연설에서, “경제자원이 부족하고 사회문화와 전통이 다르며, 끊임없는 공산주의 도발에 직면하고 있는 개도국 국민에게는 짧은 기간에 세련된 새 정치제도를 억지로 덮어씌울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민주주의 내용이 미국 민주주의의 複寫版(복사판)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 말은 민주주의원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운용과 절차에 있어서는 국가 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내가 밝히는 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屬性(속성), 즉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갖춘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한국인의 세 가지 열망은 통일, 번성하는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이다”라고 미국지성인들을 설득했습니다.

월남전 부상병을 살리는 외교

1969년 영국공사로 근무 시에는 제네바에서 개최된 인도주의회의에 파견되어 베트남戰場(전장)에서 砲火(포화)를 피하게 부상병이송 헬리콥터에 국제적십자사 휘장을 표시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학도병으로 6. 25동란에 참전한 경험을 살려 베트남 전장에서 한국군, 미군 부상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십자휘장을 표시한 헬리콥터의 구출활동 뿐이므로 각국 대표들은 인도주의정신을 발휘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소련과 공산권국가 대표들은 막무가내로 반대했고, 북한대표는 박공사에게 ”당신 연설은 자신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위협했지만 결국에는 양심에 호소하는 박공사 제의가 전체회의에서 채택되었습니다. 박공사는 이 快擧(쾌거)로 미국 국방장관으로 부터 감사서한을 받기도 했습니다.

코리아게이트 사건

코리아게이트사건 때 우리 정보당국은 박정희정권을 겨냥한 미국정부의 공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언론은 ”박 대통령의 협조거부로 코리아게이트 조사가 어렵다“고 보도했습니다. 태국에서 근무하던 박 대사님은 미국언론 보도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잘 알고 지내는 태국 내 CIA책임자에게 즉각 본국에 보고해 달라고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대한민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나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이때에 만약 미국이 박대통령을 해치려 한다면, 나는 즉시 사직하고 방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남한은 북한에게 점령당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외국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동족인 북한의 노예가 되겠다.”

약 2주후에 CIA책임자는 박대사님에게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동선을 체포하여 심문할 것”이라고 응답해오자 박 대사는 귀국하여 이 사실을 박 대통령 에게 보고하고 박동선이 미국조사에 응하도록 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당시 미국 朝野(조야)의 최대 관심사는 케네디家와 매사추세츠 민주당원들이 30여 년간 공들여 키워온 팁 오닐 하원의장의 부정부패문제이었는데, 쌀 수입업자 박동선의 불법행위를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 하원의장 에게는 골프채를 선물한 것뿐이어서 세상이 놀랄만한 큰일은 아닌 것으로 밝혀져 泰山鳴動에 鼠一匹(태산명동에 서일필)격으로 마무리 되었고, 박근대사님의 非常(비상)한 외교역량으로 한미 간 갈등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태국의 새마을 운동

1975년 베트남에 이어 라오스,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자 도미노현상의 다음 희생국은 태국이 될 것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그 무렵 태국 國王(국왕)은 빈곤한 산악지역주민들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국왕과 王妃(왕비) 그리고 공주들이 꿇어앉아 농민을 맞이하는 겸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락한 궁중생활을 떠나 자주 농민들과 함께 땀 흘리며 고충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박 대사님은 태국국민들이 王室(왕실)을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국왕이 농촌의 灌漑(관개)시설 개발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으므로 박대사님은 국왕을 도와 태국 공산화를 막는데 일조하기로 결심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대통령은 덤프트럭과 불도저를 태국 국왕에게 보내주도록 했습니다.

대사님은 태국 농민대표들이 방한해 새마을운동 정신을 배우도록 주선하는 한편 새마을운동 필름을 태국정부와 방콕시에서 상영하고, 다양한 기회에 태국총리, 장관, 시민들과 함께 방콕의 廣場(광장), 관공서나 식당 등 모임에서 새마을운동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그분은 태국에서 제일 유명한 대사가 되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무렵에는 태국이 도미노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완전히 사그라졌고, 태국국왕은 훈장수여로 대사님의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소련 전투기의 대한항공기(007) 격추사건

1983년 9월 1일, 소련 전투기는 내비게이션 오류로 소련영공에 진입한 대한항공 여객기에 미사일을 발사해 269명의 탑승객과 승무원을 몰살시키고 나서 賊反荷杖(적반하장)으로 대한항공이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박 대사님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회의(ICAO; 190여개 유엔회원국 대다수가 회원국)에서 소련전투기는 “사슴을 먹잇감으로 찾는 맹수같이 고의적으로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켰고, 소련 공산정권은 무고한 인명을 빼앗은 폭력을 미화하는 속성을 들어내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민간 항공기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소련은 “惡(악)의 제국”이라고 규정했고, 몇 년 후에는 고르바초프, 옐친 등 소련지도자들 조차도 공산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공산당과 소련을 해체시킴으로써 東歐(동구) 위성국가들은 일제히 공산주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모두 자유민주국가로 轉向(전향)하게 되었습니다.

GATT이사회 의장

1986년 제네바에서 대사로 근무하실 때는 그 곳의 가장 중요한 국제기구인 GATT이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100여개 회원국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통상 4–5년 이상 근무한 대사들이나 선출될 수 있는 어려운 직책인데도 불구하고, 박 대사님은 부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의장으로 선출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며 그의 외교활동이 얼마나 超人的(초인적)이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GATT이사회 의장으로서 그는 이 기구가 훗날에 World Trade Organization(WTO)으로 확대 발전 하도록 토대를 쌓으셨습니다.

박대사님은 종종 의미 있는 조크를 하셨는데 시장경제가 아닌 중국이 GATT에 옵서버(대학의 청강생 자격과 같음)가입을 신청하자 “중국대사 이름이 “錢(전)”으로 돈이란 뜻이므로 옵서버 가입자격이 된다”고 말해 좌중이 폭소하기도 했습니다. 중국대사 본인은 다소 모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으나 중국인들이 평소 우리를 대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박대사님께서 이사회의장으로서 관대함을 보여준 사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대사님이 명연설가가 된 것은 애국자인 동시에 세계시민으로서 깊은 철학과 용기 있는 행동으로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엔대사 시절(1986 88)

박근 대사님은 마지막 요직인 유엔대사로서 서울올림픽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동구권 대사들과 친분을 쌓는 동안에 북한대사는 동구권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불참하도록 방해공작을 했습니다.

북한의 대한항공기 테러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되었는데, 북한의 테러공작원 김현희는 항공기 수하물 칸에 플라스틱 폭탄을 두고 바레인공항에 내렸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청산가리 봉지를 입에 넣었으나 목에 걸려 죽음을 면한 김현희는 서울의 발전된 모습을 보자 자기가 상상한 것과 너무 달라 차츰 마음을 열고 실토하게 되었는데, 대한항공등의 보안이 허술함을 들어내어 많은 국가들의 서울올림픽 보이콧트를 유도하려던 목적으로 김정일 특별지시에 따른 테러공작임이 들어났습니다.

박 대사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북한과의 오랜 투쟁에서 대한민국은 항상 독일철학자 니체의 金言(금언) – 우리가 괴물과 싸울 때에는 우리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다고 하고, 북한대사 박길연을 향해 “망상에서 깨어나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준엄하게 질책했습니다. 다음 날 “미국의 소행”이라고 허무맹랑하게 거짓말 하는 북한 대사를 보고 안보리 대표들이 고개를 저으며 측은하다는 내색을 하자, 북한대사는 그의 표정이 우려와 羞恥心(수치심)으로 어두워지는 것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북한의 테러나 동구권 결속을 통한 서울올림픽 방해공작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이 다가오자 소련, 중국과 동구권 대사들이 박대사님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 오는 것을 보면서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직관적으로 느꼈습니다.

제가 1983년 대한항공 007호기 격추사건 때 국제민간항공기구 회의에서 박근 대사님을 보좌하고 3년 후에 유엔에서도 그분을 보필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또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세계관과 윤리관을 가지고 얼마나 忠誠(충성)스럽게 나의 열정과 노력을 바쳐야 마땅한 지를 배울 수 있었단 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고 믿습니다. 그 분이 깨우쳐 주신 것 중에 조금이나마 조국을 위해 제 열정을 바칠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미국에서의 한인 정치력 신장- 재미동포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

윤영선
본 협회 뉴욕지회장

미주한인 이민 115주년을 맞이하여 재미동포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국 내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하여 재미동포들의 정치적 의식구조와 실태를 파악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미주한인은 소수민족이지만 현재 미국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보다도 더 막강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봄으로써 재미동포사회의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과 발전모델을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동포사회 차세대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찾아보고 이를 위한 재미동포사회의 역량결집을 필요로 한다. 둘째로 재미동포의 정치력 신장이 21세기 조국 대한민국의 발전과 역량강화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재미한인 정치력 신장의 필연적 당위성

재미동포사회에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보여준 “ LA 흑인폭동” 대부분의 한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구입하고 자녀들을 좋은 학교를 보낼 수 있게 잘 벌어 잘사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막상 LA 폭동으로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당하고 보니 정치력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폭동 당시 한인을 위해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이나 정치인은 없었다. 오히려 미국 언론들은 한인들이 평소 흑인을 차별했기 때문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백인 경찰들의 로더니킹 흑인운전자가 폭행사건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한인사회와 흑인사회의 골 깊은 갈등으로 부각시키려고 했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흑인폭동은 고속도로 과속으로 운전해 불잡힌 흑인 로더니킹을 당시 백인 경찰들이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비디오로 언론에 방영되면서 발생되었고 이어 주로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백인경찰은 무죄 판결함으로써 흑인들의 집단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항거가 집단적 폭거로 발생된 사건이다.

폭동 당시 주방위군은 백인들의 거주하는 곳은 철저히 방어하였으나 한인들이 밀집한 곳은 무법천지로 방치한 결과 한인들의 피해가 제일 심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어떻게 살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똑 같이 세금내고 사는데 어떻게 해야 백인들과 같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공권력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으며 어떻게 해야 동등한 기회와 권익을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결과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하고 우리를 대변해 줄 정치인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정치력 신장과 한인정치인 배출만이 내 자신의 생명과 재산, 권익을 보호 받을 수 있다는 대의정치의 기본 원칙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가져다 준 교훈

1950년대 시작한 흑인민권운동은 14년 만에 1965년 죤슨 대통령의 민권선언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1970년 후반부터는 많은 흑인들이 공직과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서는 절대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를 생명을 건 투쟁을 지속하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무려 30년 이상을 싸워 얻은 투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법적지위를 얻었고 흑인대통령까지 탄생시키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 결과물이 아시아나 중남미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에게도 투표권은 물론 선출직 정치인으로까지 진출 할 수 있는 문호를 열어준 셈이다.

재미동포들의 정치사회적 의식구조가 변해야 한다

미국에서 정착한 여러 민족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행동이나 또한 자신들의 존재와 권익, 정체성을 확장시키고 지켜가는 행위이기도 한다. 우리 한인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정치는 남의 일이고 나하고 관계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느낀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 때문에 정치행위 자체를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권력, 명예, 부당한 이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내 목소리를 내어야만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다. 한인들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린지 115년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정당한 몫을 찾을 때가 왔다. 이러기 위해서는 잘못된 인식이나 관습은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미국에서는 정치는 모든 것을 좌우한다. 우리가 정치를 모르고, 관심도 없고 투표하지 않으면 이사회에서 늘 소외받고 결국에는 소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앞으로 백년대계의 뿌리를 확고히 내리기 위해서는 높은 유권자 등록과 높은 투표율, 적극적인 정치사회 참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인, 유태인 사회와 비교해 현격하게 뒤져있는 재미동포사회의 투표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미국인구의 순수 백인은 63.7%이며 그 다음이 흑인이고 히스패닉계이다. 백인 다음으로 흑인이 13%를 차지하나 히스패닉 계는 9%이므로 아직도 마이너리티(Minority)로 분류된다. 그러나 미국 인구의 2.3%밖에 되지 않은 650만의 인구를 가진 유태인들은 누구도 소수민족이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종교와 커뮤니티가 하나 되어 움직이는 응집력과 결집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 사회 각 분야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고 돈과 미디어를 통한 로비력과 정치력 또한 막강하다. 이들의 유권자 등록은 거의 100%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기초지자체 시의원 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라는 선거에 모두가 투표한다. 선거투표율은 평균 85~90% 이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란 내 목소리를 내고 내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고, 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사회적 관습으로 통념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재미동포사회는 어떠한가? LA 폭동당시 미국 내 한인 시민권자들의 유권자 등록은 고작 5%이었다. 26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겨우 60%의 등록률, 40% 투표율이 유지되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백인이나 타 민족에 비해 20~40% 정도가 낮다. 큰 이유는 한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한인 정치인도 없고 내가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 한인들의 선거참여가 낮은 원인중의 하나이다.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한국은 동네에 벽보도 붙이고 집까지 찾아다니지만 미국은 집으로 배달되는 선거광고도 없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른다.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선거방식이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투표하려면 우리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먼저 250만 재미동포사회가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가슴속 깊이 다시 한 번 깨닫고 백인과 유태인처럼 80% 유권자등록과 80% 투표에 참여하여 내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임을 각자가 깨달아야 한다.

친북 정책의 틈에서 피어난 ‘신안보세대’

오승준
본 협회 대학생 회원/경희대 국제학과

  2017년 5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당선인이 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2008년 노무현 정권 이후 약 9년 만에 진보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부터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까지, 햇볕정책을 기반으로 한 대북지원과 친북 스탠스(stance)의 사회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아온 현 20대들은 2018년 문재인 정권 하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여러 대북지원 시도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20대들의 안보관을 걱정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즈음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신안보세대’라는 키워드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2015년 8월에 일어난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사건’과 ‘서부전선 포격사건’ 당시 대표적인 SNS플랫폼인 페이스북(Facebook)과 인스타그램(Instagram) 상에서는 수많은 20대들이 “백두산부대의 굴삭기 운전병 출신이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와 같은 글과 함께 자신의 군복과 인식표 인증 샷을 기재했다. 물론 누리꾼들은 이 20대 예비역들의 용기에 공감과 격려의 표시인 ‘좋아요’를 굉장히 많이 눌러주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전역을 연기하는 현역 장병들도 많았다. 강원도 육군 제 3사단부터 중서부전선 제 5기갑여단까지 총 88명의 현역 병사들이 서부전선 포격사건 당시 전역을 연기하였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21.7세이다. SK와 롯데 등 대기업은 이러한 20대들의 용기에 ‘전역 연기자 36명 특별채용’으로 화답하였다.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신안보세대등장배경은?

달라진 20대, 신안보세대의 등장 배경은 친북 정책을 펼쳐왔던 정부와 그에 반(反)하는 북한의 태도에 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약 70억 불(국민정부 24.7억불, 참여정부 43.6억불/통일부 자료)에 달하는 대북 송금 및 현물 제공을 했다. 통일부의 ⌜대한민국 정부의 연도별 대북지원 지표⌟에 의하면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총 대북지원 중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이루어진 분을 금액으로 표기하면 평균 3,500억 원 정도이며, 이는 타 정권의 많게는 30배 적게는 3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북한은 이러한 지원을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등에 업고 2002년 연평해전, 2006년 1차 핵실험이라는 모험까지 강행하고야 만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북한이지만 이는 어차피 불능화 대상으로 파괴 처리 예정이었으며 IAEA등 국제 서약을 위반하고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까지 한다. 이를 기반으로 북한은 연거푸 핵실험을 거듭하였으며, 참여정부 때의 ‘10.4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도 2010년 천안함 폭침도발, 2011년 연평도 포격도발을 강행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적으로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태까지 일어나게 된다.

‘친북’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진보정권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이는 가운데 계속된 북(北)측의 도발로 인한 경계심과 분노는 고조되었으며,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 북한의 약한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전사자 유족들과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정부의 처우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에서, 11월 29일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을 발사한 지 반년도 안 된 시점에서 김정은은 핵실험 중단 및 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을 한다. “북한을 또 믿느냐”라는 일부 걱정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현 정부는 CIA 및 외국기관에서 추정한 핵무기와 핵실험장 수치와 김정은이 발표한 수치 간의 차이(북한이 외부에 공개한 영변 핵시설외 희천에 위치한 우라늄/플루토늄 공장과 강선의 농축우라늄 시설이 그 예)가 드러나고 하노이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한편, 2010년 폭침된 천안함의 전사자들은 ‘보수정권의 내부 자작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논란거리’로 진보 정권에 의해 낙인이 찍혔다. 반면, 2014년 4월 16일 학생들을 비롯한 민간인 다수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인 세월호 침몰 사건에는 적극적으로 애도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정치적 진보세력 확충 및 보수 세력 타도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국민의 정부 때 태어나 현 정권까지 성장기를 보내고 위의 모든 사건을 목격해왔던 20대들은 군(軍)이라는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혼란을 넘어서 친북 정책을 바탕으로 한 진보 세력들에게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현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으로 인한 극심한 취업난도 20대 취업준비생들의 싫증에 ‘덤’으로 작용했다.

약해지는 ‘2030’의 끈신안보세대30

그렇다면 20대와 연령 상 근처에 있는 30대는 어떠한가? 우리는 ‘2030’, ‘현 20대, 30대’ 등 20대와 30대를 묶어서 표현하는 기사 제목, 칼럼의 글들을 왕왕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20대와 30대를 주로 묶어서 표현하는데 이에 깔린 생각은 ‘그들의 생각은 큰 차이가 없이 동일할 것이다’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에 기반을 둔 ‘묶음’은 점점 그 매듭이 풀리고 있는 듯하다. 2015년 6월 국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국민안전처 조사에서 ‘전쟁 발발 시 참전 혹은 지원 활동에 동참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20대(19~29세) 응답자의 78.9%가 ‘그렇다’고 답해 30대(72.1%)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 2010년 같은 조사에선 20대의 69%가 ‘그렇다’고 답했었다. 이는 30대 응답률(81.1%)보다 12.1%포인트 낮은 수치였다. 국가보훈처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 나라사랑 의식조사’(11월18일~24일)에서도 20대의 65.9%는 우리나라의 안보 수준에 대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30대(57.2%)와 40대(57.3%)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 같은 20대 ‘신안보세대’ 구축에 대해 그동안 정치참여 연령대가 젊을수록 진보적이라는 구도 자체도 새롭게 봐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내일신문이 유권자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유권자 의식조사’(2014년12월19일~23일 조사)에서 전통적 진보가치로 대접받았던 ‘남북협력’에 대한 의견은 확실히 다르다. 내일신문 2015년 1월2일 보도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에서 ‘남북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75.0%)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무상복지·촛불세대의 40% 가까이가 ‘반대’입장을 내놨다”며 “유신체제세대’(55~64세·69~79학번)나 유신이전세대(65세·68학번 이상)보다 더 강경한 태도”라고 설명했다. 이지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2015년 1월5일 ‘내일신문’ 전문가 기고 글에서 “2030세대는 결코 한 묶음이 아니었다. 이념 성향으로만 보아도 젊을수록 진보적이고 나이 들수록 보수적인 기존의 패턴이 사라졌다. 20대 후반이 30대보다 보수적이었고, 30대 후반은 20대보다 진보적일 뿐 아니라, 전 연령대를 통틀어 진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신안보세대진보나 보수 모두 안보가 우선순위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20대가 보수화됐다’라는 말이 반드시 유효할까? 단언하기는 이르다. 현재 20대들에게 있어서 ‘보수’와 ‘진보’를 구성하는 것들이 바뀌었다.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는 튼튼한 안보관과 시장경제의 옹호이다. 반면 진보의 구성요소는 남북협력 및 화해와 부의 재분배에 그 뿌리를 둔다.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는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신안보세대’ – 국가안보와 대북관의 중요성을 지난 십 수 년간 몇 차례나 보고 느낀 이들로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분류를 떠나 안보를 제1의 가치로 삼고 있다. 계속되는 무분별한 ‘남북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뒤통수를 연거푸 맞아왔던 대한민국이기에 젊은이들의 안보관을 걱정하는 세대들에게는 신안보세대의 등장 및 결집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한국군보다 수많은 전쟁에 참전하여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미군의 앞선 전술과 작전을 받아들여 강경한 대북정책을 바탕으로 한 트럼프 정부와 함께 대한민국의 대북안보를 강화 할 수 있는 한미동맹의 잠재적 신흥지지세력으로도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신안보세대’라고 생각한다.

같이 갑시다 : Go Together

◎ “韓美연합훈련 축소돼 역량 예전 같지 않아… 수술 연습도 안한 의사한테 수술 맡기겠나”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2017년 전쟁위기설은 진짜
당시 서울의 외국 대사관들 자국민 철수 심각하게 고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3일(현지 시각) “북한과 미국 사이 긴장감이 고조돼 2017년 불거졌던 전쟁 위기설은 진짜였으며,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든 군사적 옵션을 고려했었다”고 밝혔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이날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당시는 전쟁이 임박한 위기 상황이었다. (북한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메커니즘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했다”며 “백채널(물밑 채널)조차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물밑 채널 대상자)이 북한 김정은과 제대로 접촉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2017년엔 북한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과 핵실험에 나서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군사 행동 가능성을 경고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전쟁) 위험 신호를 알아보는 여러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이 해외 공관의 자국민 철수”라며 “당시 서울에 있던 외국 대사관들은 대단히 심각하게 이를 고려했었고, 유엔사령부를 넘어 미국 측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런 (위기) 단계를 지나갔지만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뻔했던 오해들로 인해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브룩스는 지난달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도 “북한과의 전쟁 준비는 실제적이고 진짜였다(real and true)”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또 한·미 연합 훈련 축소에 대해 “훈련이 과거와 같은 강도로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다소 (역량이) 저하된 부분이 있고 예리함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모든 프로의 세계에선 연습이 중요하고, 군도 예외일 순 없다”며 “당장 뇌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 한동안 수술 연습도 안 한 의사한테 가고 싶겠나? 그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군사 훈련이 협상의 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근본적으로 군의 준비 태세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비록 오늘 밤에 싸우지 않더라도 당장 오늘 밤에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준비 태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2019년 4월 5일 기사)

언론속의 한미관계

◎ 국회, 1조389억원 규모의 한미방위비분담금 비준동의안 가결

국회는 5일 본회의를 열고 올해 주한미군 주둔비용 가운데 한국이 1조389억원을 부담하기로 한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비준동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비준동의안은 재석 의원 194명 가운데 찬성 139명, 반대 33명, 기권 22명으로 통과됐다. 한국이 부담할 금액은 작년보다 8.2% 인상된 수준이다.
한미가 지난 8일 정식 서명한 협정의 유효 기간은 1년(2019년)이다.

비준동의안에는 6개 항목의 부대 의견이 첨부됐다. 부대의견은 차기 협상에서 작전 지원 등 추가 항목이 신설되지 않도록 하고 합리적인 부담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출처 : 매일경제 4월 5일 기사)

◎ 美상원의원들 “한국, 중재자 아닌 동맹의 편에 서야”

[韓美 정상회담]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란 개념은 ·의 중간에 있는 듯한 인상

미 상원의원들이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과 관련해 “한국은 중재자가 아닌 동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방송에 따르면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은 “중재자 역할이라는 개념은 한국이 (미국과 북한) 중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우려된다”며 “한국은 중간에 있는 게 아니라 미국과 동맹 관계”라고 말했다.

코리 가드너 상원 동아태 소위원장(공화)도 “한·미 동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핵심 요소로 한·미는 절대적으로 역할을 공유해야 한다”며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완화를 하는 것은 한·미 모두에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잭 리드 상원의원(민주)도 “미국과 한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목적에 단결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전문가 목소리도 나왔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입장을 대변하면 동맹에 대한 마찰이 생길 수 있다”며 “북한이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해제해선 안 된다”고 했다.

또 VOA는 이날 미 상원 정보위가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보도했다. 상원 정보위는 지난달 28일 발간한 활동 보고서에서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지적했듯 북한은 협상을 통해 핵·미사일을 내줄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밝혀왔다”며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정권 안전 보장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핵무기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한·미 동맹 종식과 한반도를 장악하려는 장기 전략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지렛대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9년 4월 12일 기사)

지평리를 사수하라

최상진
전 삼성물산 임원, 본 협회 편집위원

지평리지구 전투 전적비를 찾아서

참전비를 찾아 나서면서 단순히 비석(碑石)에 담겨진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과 그동안의 깊지 못한 탐구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미 제 2사단의 사단의 혁혁한 전공은 세계 전사 속에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한국전쟁 시 2만 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내 조국 지키듯 대한민국을 지켜온 미 제 2보병 사단의 족적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헌신과 전공(戰功)을 좀 더 널리 알리고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 졌다. 이에 한국전쟁 중 중공군의 노도와 같은 공격으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소중한 승리로 재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4월의 봄꽃이 한차례 지나간 지평리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농촌의 모습 그대로였다. 누가 이 땅에 전쟁의 화마가 덮쳐 참혹한 살상의 현장이 되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픔의 현장이 되리라 예측했을까? 원래 지평리(砥平)는 사방이 낮은 산(갈지산, 용문산, 칠보산, 봉미산, 배미산, 매봉산)들로 둘러싸여 십 여리의 분지로 형성된 속칭 숯돌마을로 불리어졌던 평화스런 마을이었고 지리적으로는 동으로는 원주, 남쪽은 여주, 북으로는 홍천 서쪽으로는 서울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로서 군사적으로도 선점해야할 주요거점이기도 하다.

지평은 의향(義鄕)이라고도 불린다. 1895년 10월 일제가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조선을 찬탈할 때 지평출신 이영춘과 김백선은 포수 400여명과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대항하며 전국 의병봉기의 불을 붙였고 향후 독립군으로 활동이 계승되어 민족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가 소재한 양평군 지평면 지평로 357번지에는 지평의병과 지평리 전투를 기념하는 “지평의병‧지평리전투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이 기념관은 2014년에 양평군이 건립하였고, 작년 9월에 얼마 전 작고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협찬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1층은 전시실, 2D 역사 인포 그래픽, 2층은 지평리전투 체험관, 지평리전투 영상 체험실, 전망대등이 설치되어 해외 방문객을 위해서도 다양한 언어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지평리 전투의 역사적 의미와 그들의 소중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왜 지평리 인가?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 후 제 4차 공세에 대한 전투이다. 이시기의 전황은 전쟁발발 7개월이 경과된 시점으로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과 국군이 연전연패하여 전선포기의 기로에 섰던 심각한 상태로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중공군의 3차에 걸친 공세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1차 공세 (1950.10.25-11.7)

1950년 9월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과 유엔군의 파죽지세 공격으로 10월19일 유엔군은 평양에 입성하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같은 시점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를 총 지휘관으로 한 중공군 제 13병단 26만여 명은 이미 평북 적유산맥에 잠복하여 유엔군의 후방차단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탐지하지 못한 미 제 2사단 신의주 남방 정거동까지 진출하고 국군 6사단은 압록강 초산을 점령 한 후 북진을 기도했으나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려 작전계획이 무산되었다.

2차 공세(1950.11.25-12.15)

1차 공세에서 중공군의 개입이 입증된 가운데 11월6일부터 24일까지 중공군이 홀연히 잠적, 행방이 묘연해 졌다. 유엔군은 중공군을 과소평가하여 중공군을 싸울 의지도 준비도 충분치 않은 단순개입으로 오판하였고 동시 중공군과의 확전을 원하지 않아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의 기치로 11월 24일 크리스마스 작전을 단행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중공군의 대대적 공세에 직면하게 된다. 평안남도 영원에서 평양으로 우회하는 포위망을 구축하여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녀 섬멸 한다는 중공군의 완벽한 함정에 빠진 유엔군은 사력을 다해 후퇴작전을 수행하지만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12월 중순에는 38선까지 후퇴하게 된다. 이어 군우리 전투와 장진호 전투, 함흥철수 작전 등의 후퇴로 이어진다.

3차 공세(신정공세, 1950.12.31-1951.1.8)

중‧조 연합사령부가 창설되어 김일성의 지휘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마오쩌뚱(毛澤東;모택동)의 서울 재점령 지침에 따라 중‧조연합군 9개 사단 30만 명이 서부전선을 강타한다.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은 유엔군이 현 위치에서 더 이상 지체할 경우 주력이 중공군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전 부대를 한강-양평-홍천 선으로, 이어 1월 3일에 다시 평택-안성 선으로 후퇴를 명했다. 이에 따라 서울은 저항 없이 중공군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중공군의 공세로 아군은 아무런 대비책이 없이 “중공군이 공격해 올 경우 후퇴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한편 3차 공세로 서울을 재 점령한 중공군은 서울점령 후 1월 8일 이후 일단 공격을 멈추어 양측 모두 전력 재정비 등 짧은 소강상태를 갖게 되며, 약 2개월의 짧은 시간에 1,250Km를 후퇴한 유엔군은 여주-평택을 잇는 37도 선을 최후의 저지선으로 전력을 재편성하고 반격의 기회를 노리게 되나 중공군의 대대적 공세로 주력의 후방이 완전 포위될 위험요소는 상존하고 있었다.

지평리에서 반격의 실마리를

중공군의 3차 공세 이후 평택-삼척선에서 안정을 되찾은 유엔군과 국군은 1951년 1월 15일 울프 파운드(Wolf found;미 제 25사단 27연대의 별칭)작전을 통해 연대규모의 위력수색으로 한강 이남에는 중공군의 주력부대가 없고 차기 공세를 위해 홍천-양평(지평면)을 전초기지로 하여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중공군은 그들의 최대 장점인 기습전략, 인해전술, 매복, 포위 등의 전략‧전술을 구사하며 깊숙한 산속에 매복하여 은신하였다가 소수가 다수인양 소부대 접전으로 유엔군의 상황을 파악한 후 야간을 통해 대대적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리치웨이 사령관은 중공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썬더볼트(Thunder bolt) 작전과 라운드 업(Round up) 작전을 통해 대대급 이상의 정찰대를 적진에 투입하여 중공군을 전장으로 유인하여 강력한 공중폭격과 막강한 화력으로 중공군을 섬멸하고, 중공군의 최대 약점인 보급로를 차단하고 통신을 교란시켜 중공군의 대규모부대 지휘에 혼란을 야기시키는 등 수세에서 공세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공격위주의 작전을 계획했다. 드디어 1951년 1월 24일 전쟁의 판도를 바꿀 썬드볼트 작전개시 명령이 떨어졌고 첫 번째 중공군과의 조우가 지평리 인근의 쌍굴전투를 위시로 수리산, 관악산 전투 등 부분적인 승리를 통해 라운드 업 작전의 시동을 걸고 수도 서울 재탈환(1951.3.16)을 도모하게 된다.

지평리에 감도는 전운

중공군은 3차 공세 이후 주력 부대를 은밀하게 동부전선으로 이동시켜 횡성과 원주를 확보한 후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걸쳐 미군의 허리를 자른 뒤 미 8군의 주력부대를 측방으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 리치웨이 사령관은 미군의 주력인 제 9군단과 10군단의 경계선상으로 지평리가 무너질 경우 중부전선 전체가 위험하게 됨에 따라 반격작전의 선봉대로 미 제 2사단의 연대전투단(RCT)으로 편성된 23연대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2월 11일 횡성을 수비하던 한국군 8사단이 격파되면서 유엔군은 중부전선에서 25마일 후퇴하게 되었고 중공군에게 첩첩이 포위된 연대장 프리만 대령은 리지웨이 사령관으로부터 ‘지평리를 사수하라’는 강력한 명령을 하달 받았다. 리지웨이 사령관의 23연대의 “지평리 사수” 명령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전황 상 23연대가 지평리를 사수해야 했고, 두 번째는 유령군대라 불리울 정도의 신출귀몰한 중공군의 정체를 파악 섬멸하는 라운드업 작전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였다.

일백 시간의 사투, 지평리 전투의 영웅들

중공군의 4차 공세는(1951.2.11-18) 지평리 전투를 정점으로 하고 있다.
13일 밤 총공세에 맞선 프리만 연대는 철저한 방어 전투에서 참모장이 전사하는 등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렸고 13일 자정을 넘기며 연대장이 다리에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게 된다. 군단장은 즉시 후송을 명하고 새 연대장을 임명했으나 프리만 대령은 이에 응하지 않고 연대를 지켜나갔다. 그는 “내가 부하들을 이곳에 데려왔으니 내가 이들을 데리고 가겠다”며 부하들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그의 현명한 전투지휘로 지평리 전투의 승리를 견인했다. 프리만은 후일 미 제 2사단장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 나토 사령관을 역임했다.

지평리 전투에는 세계 1차 대전의 영웅 몽클라르 프랑스 대대장이 있었다. 삼성장군으로 예편했던 그는 한국전쟁에 대대급 병력을 파견하는 프랑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 59세에 프랑스 외인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프로군인 정신을 보유한 몽크라르 대대는 육탄전도 불사하는 전투력을 발휘해 23연대가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는 “평화를 깨뜨리는 군대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강인함과 용맹성으로 일곱번의 결정적인 전상을 입은 100% 장애등급자 였다.

지평리 전투의 대미(大尾)는 미 제 1 기병사단 제 5기병연대의 대 활약이다. 미 23연대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포위망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중공군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이상으로 새로운 병력을 증원하여 투입되었다. 이에 미 제 9군단장은 장호원에서 전열을 정비 중이던 제 5 기갑연대를 급히 지평리로 진출시켜 “제 23연대를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연대장 크롬베즈 대령은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중공군의 포위지역을 돌파하였으며, 2~3일 소요될 5마일의 거리를 하루 만에 기동하여 어둡기 전에 지평리에 도착, 23연대 전차부대와 연결에 성공하여 중공군을 격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미 2사단은 전사 52명, 부상 259명, 실종 42명의 손실을 입은 반면, 중공군은 5천여 명이 전사하고 포로 79명을 획득하는 대 전과를 기록했다. 이 전투로 인해 유엔군은 중공군 개입 이래 연전연패 후퇴의 악몽이 끝나고 새로운 반격의 발판을 만들게 되었다.

지평리를 지키는 사람들

“지평 의병, 지평리 전투 기념관”은 양평군과 한국군 보병 5사단이 건립하였고 양평군이 관리하고 있다. 그 곳에는 6.25 당시 17-8세의 나이로 지평리 전투의 참상을 목격하고 향후 전선을 지킨 참전용사 몇 분이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당시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며 ‘지평리 전투’의 숭고한 정신을 일깨워 준다. 그분들 중에 예비역 육군 대령 출신 전사연구가 이정환옹은 지평리 전투의 각종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여 “지평리를 사수하라”와 그 후편인 “지평리 승전”을 발간하였으며, 참전 유공자회 지평분회 임원진으로 있는 박광만 회장, 김이만 총무, 이정훈 이사는 아직도 당시의 전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방문객들에게 소상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특히 이정훈씨는 “그 전쟁터에서 나는 살았다”란 기록을 통해 당시 17세 소년이 본 전투상황, 참상, 공포, 피난의 현장을 소상히 전하며 중공군의 민가침입과 약탈, 중공군이 생명과 같이 지참했던 흰보자기(눈에서 은폐용으로 사용) 이야기 등을 전한다. 필자가 방문한 그 때에도 이 분들은 손님을 맞고 당시를 회고하며 이 땅에 다시는 6.25와 같은 불행이 찾아오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100세 인생 생활의 힌트 (9)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이사장, 본 협회 부회장, 편집위원

그간 50대에 할 일을 얘기해 왔습니다. 오늘은 우리 1세 80대가 100세 시대에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2세들에게

후반생 걱정거리는 50대나 80대나 진배없다. 돈 걱정, 병 걱정, 그리고 고독, 할 일, 네 가지다. 「50년 인생」시절엔 과거 2천5백년 간의 이력이 쌓여 있었지만, 8, 90대 인생엔 그런 축적이 없다. 아래 얘기도 한낱 일개인의 사적 경험 사례다.

● 돈 걱정

80대엔 일도 끊기고 수입도 끊긴다. 자녀에 신세지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불로소득’의 길을 뚫어 놓아야 한다. 젊어서 근검절약해서 뒤에 노부부가 조촐히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임대부동산을 장만해 놓아야 한다.

● 병 걱정

사례1: 폐렴 공부

60세 때 통계청 여명표에서 96세를 보장받은 건강체였다. 80을 넘어서 감기가 세 번이나 폐렴으로 발전했다. 일생 자신 있었던 위장, 심장, 폐이었는데, 놀라서 공부를 시작했다. 최장수국 일본의 경우 3대 사망 원인이 암, 심장, 뇌혈관 순이었는데, 10년 전부터 폐렴이 뇌혈관을 젖히고 3위에 올랐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먹은 음식물이 쉽게 기도로 들어가게 된 것이 주 원인이었다. 나 자신 콜라 같은 청량음료를 병채 벌컥 마시다가 기도가 막혀 애를 먹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예방책: 음식물을 먹을 때 미리 목에 대고, “자, 이제부터 음식을 먹는다” 고 통고를 해주면 식도가 크게 열려 기도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외 감기가 열을 동반하면 즉각 X레이를 찍어봐야 한다.

사례2: 골절 공부

아내가 전철역에서 마지막 계단을 헛디뎌 모서리에 찧어 무릎 뼈에 금이 가 2주간 깁스를 했다. 나을 만하니까 이번에는 안 넘어지는 보행법을 시험한다고 계단 중간에서 굴러 손목뼈를 다쳤다. 여기서 또 놀라서 골절 공부를 시작했다.

예방책: 몸을 앞으로 굽혀 몸무게 중심이 앞발에 실리면, 조그만 돌에 걸려도 앞으로 고꾸라진다. 몸을 뒤로 젖히고, 허리에 몸무게 중심을 두고, 다리를 들어 앞으로 내민다는 요령으로 걸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오뚜기 보행법’이다. 몸이 좌우로 비틀거리면 옛 선비들처럼 두 다리 사이를 넓혀 「八」자 걸음을 걸으면 좋다.

● 고독

8, 90대가 되면 자연히 사람 왕래도 줄고, 전화도 뜸해진다.

사례1: 공부와 독서

젊어서도 왁자지껄 어울려 노는 곳이나, 여럿이 같이 하는 운동에는 잘 끼지 않았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 외는 책 읽고 공부하는 일로 소일했다. 나이 들어 고독해졌을 때 저 혼자 몰입할 수 있는 정신세계가 유유자적 생활할 안식처를 제공했다.

사례2: 소그룹 교류

「고립・독거」는 삶의 활력을 앗는다. 동양에는 「和而不同 화이부동」이 있고, 서양에는 「Together & Alone」이 있다. ‘어울리되 자기를 지킨다.’는 것. 노래도 각 파트의 다른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하모니를 이루어 터져 나갈 때 아름다운 코러스가 된다. “고독”과 “교류”는 수레의 두 바퀴다.

● 할 일

고독의 시간에는 주어진 사명이 있다. Pleasure (쾌락)과 Power (입신)에 파묻혀 간과되었던 자기 “일생”의 Meaning(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나도 80 들어 지난 5년간 ‘몽테뉴 수상록’을 길잡이로 틈틈이 이 일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