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공보참사관 축사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미첼 모스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축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황진하 회장님, 박재민 차관님, 최병혁 대장님, 윌리암스 소장님,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사님께서 오늘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씀하시면서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시면서 한미우호협회의 훌륭한 활동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황진하 회장님께서 대사님의 훌륭한 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외에도 저보다 훨씬 머리좋고 잘생기시고 재미도 있으신 분이신데 아쉽지만 오늘 제가 대사님을 대신해서 축사를 드리겠습니다.

또한 오늘 수상하신 장병 여러분들의 봉사와 헌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리고 축하 말씀 드립니다. 수상자 여러분들께서는 동료와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한 것 외에도 한미동맹을 지키고 강화해 나가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의 역할을 해왔으며, 또 이 지역 전체의 안보와 안정의 주춧돌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6년 전에 우리는 한미동맹의 ‘환갑’, 즉 한미동맹 60주년을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형성되고, 또 자유를 추구하면서 우리가 함께 흘린 피로 더욱 단단해진 한미동맹은 지난 60여 년 동안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해서 이 한미동맹을 아끼고 여기에 투자를 하고 또 헌신해 나아간다면 미래에도 우리 한미동맹은 번영하고 발전에 나갈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군사동맹이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분야의 파트너십들, 즉 경제, 사회, 학계에서의 양국 간 파트너십들입니다. 올해 말이면 풀브라이트로 알려져 있는 한미교육위원단의 70주년 창설기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미교육위원단은 그 동안 수천 명의 풀브라이트 학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고, 또 학계, 정계, 재계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서 수많은 지도자들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올해 우리는 미 국무부 창설 230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20년 동안 외교관 생활을 해온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서 한국에 부임하는 주한미국 대사로서 저희 해리 해리스 대사님 보다 더 훌륭한 적임자는 없을 것입니다.

신의있는 동맹국 여러분들게 대사님에 대한 일화를 여러분께 짤막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해리스 대사님과 같이 근무한 사람들은 그 분이 어떤분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해리 해리스 대사님을 모시고 롯데가 32억 달러를 투자해서 루이지애나에 세울 화학공장 준공식에 대사님과 함께 참석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댈러스에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으나 악천후 때문에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어 대사님을 승용차에 모시고 제가 직접 운전을 해서 6시간 동안 계속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 운전해가야 했습니다.

저는 외교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내는 편인데, 레이크 찰주까지 가는데 예비량까지 생각해서 연료를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레이크 찰주에 거의 다와 시내로 진입하는 다리 위에서 교통 혼잡이 발생하여 꼼짝달싹 못하는 정체 상황이 되자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불안해졌습니다. 점점 불안감이 고조되어가는 저의 모습을 보신 대사님께서, “미첼, 무슨 걱정이 있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사님께 “ 대사님을 모시고 운전하고 가다가 레이크찰스 다리위에서 기름이 다 떨어지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해리스 대사님은 P3 초계기 조종사로부터 군 복무를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대사님 하시는 말씀이, “미첼, 분명히 우리는 조종사가 아니고, 다행히 우리는 지금 비행기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사님은 그런 리더이십니다.

신의 있는 동맹이자 이 지역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이 지역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지지합니다. 또한 우리는 양국의 파트너십을 더욱 확장하여서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추구하는 상호 호혜적인 목표를 온전히 실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일함으로써 계속해서 민간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역과 해로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함께 협력함으로써 우리가 많은 대가를 희생하면서도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가치, 그리고 원칙들을 수호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협력함으로써 5G와 같이 부상하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 시민들을 위해서 최대한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핵심적인 인프라가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대사님보다 훌륭하게 연설 못할 것이라고 처음에 말씀을 드렸는데 너무 오랜 시간 말씀을 드린 것 같아서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미우호협회가 계속해서 한미동맹을 위해서 해주시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수상자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한미동맹과 한미 간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헌신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의 노력 덕택에 우리는 한미동맹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일에 매진 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갑시다!

Commemoration Remarks for Korea American Friendship Night

Mitchell R. Moss
Minister Counselor for Public Affairs, U.S. Embassy Seoul

President Hwang,

Vice Minister Park,

General Choi,

General Williams,

Ladies and Gentlemen, 안녕하세요!

Ambassador Harris sends his regrets in not being with us tonight, and he sends his best wishes and thanks for all the great work that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does.

And I have to ask for your indulgence because Ambassador Harris, in addition to all the very complimentary things that President Hwang said about him, he is smarter, better looking, and a lot funnier than I am. But I’ll do the best I can.

I would also like to commend the service and dedication of the military officers who received the awards tonight. In addition to serving their colleagues and communities, these awardees devoted their lives to protecting and promoting US-ROK alliance, and we are deeply grateful for your service.

Ours is an alliance that serves as the foundation for peace and prospe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s a cornerstone for security and stability in the region. 6 years ago, we concluded the US-ROK alliance ‘환갑,’ which of course was our 60th anniversary.

Forged in the crucible of war, hardened by blood spilled together in the pursuit of freedom, our alliance has stood the test of time over more than six decades. And will continue to thrive for generations to come. As long as we nourish it, invest in it and remain committed to it.

Let us not forget the other partnerships between our two countries: economic, social, academic that our military alliance made possible. Later this year, we will celebrate the 7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American Educational Commission, our Fulbright Commission, which have given scholarships to over 7,000 Fulbright Scholars from Korea and the United States have created multiple generations of leaders, academics, politics and business.

This year we will also celebrate the 230th anniversary of the Department of State. Having served as a diplomat for the past 20 years, I can credibly tell you that you cannot have a stronger embassador from President Trump to the Republic of Korea than Ambassador Harry Harris.

As a loyal ally, do you want to hear a quick story? Those of you who have served for Ambassador Harris knows what it is like. But, I had the honor of accompanying him to Lake Charles for the opening of Lotte Petro Chemical Plant there, which represents 3.2 billion Dollars in Korean foreign direct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The weather was terrible. All the flights from Dallas to Lake Charles were canceled. I’d wound up driving the ambassador for 6 hours in the dragging rain to Lake Charles.

I’m a diplomat, we get things done. But, we don’t always think in terms of reserves. So, we had enough gas to get to Lake Charles in my estimation, but we didn’t have enough gas to get to be stuck in a massive traffic jam in a long bridge to get to Lake Charles. He sees that I’m getting nervous and asks “Mitchell, what’s going on?” I said “Sir, I’m afraid I might be known as the guy who ran out of gas with Ambassador Harris in the bridge to Lake Charles.

Many of you Know that the Ambassador started out as a P-3 pilot. He returned to me and said “We were clearly not aviators but luckily we were not in a plane.” That’s the kind of lead he is.

As a loyal ally and partner in the region, the United States support President Moon Jae In’s effort to build South Korea to even a more powerful country that can contribute to the regional peace and prosperity.

We are hopeful that we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expand our partnerships together even further, to fully realize the mutually beneficial objectives outlined in the U.S. 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 and South Korea’s New Southern Policy.

Working together, we can unlock private investment and infrastructure that keeps sea lanes and airspace free, open and secure. Working together, we can safeguard the values and principles that we had fought so dearly to preserve. And working together, we can ensure that emerging technologies such as 5G are deployed to the maximum benefit of our peoples, and our critical infrastructure remain safe and secure. So, I told you that I wasn’t great as Ambassador Harris. I’d gone on too long.

Let me conclude by thanking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their tireless efforts to host such a wonderful event every year. To the awardees, again congratulations and thank you for your efforts to maintain, to grow the great friendship between our two countries. Each day, thanks to your commitment and the commitment of everyone in this room, our two countries can remain focused on creating a better future.

같이 갑시다!

 

한미우호의 밤 축사

대장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안녕하십니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최병혁 대장입니다.
먼저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이렇게 성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황진하 회장님과 한미우호협회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빛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부여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한미장병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오늘 “한미 우호상”을 수상한 “엘라이니 클라이네스 대위” 등 4명에게도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은 오천년 역사 속에 빛날 “역사적인 전환기” 를 맞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험난하지만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2018년, 남북 양 정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습니다. 미북 정상도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9.19 군사합의”를 통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정전협정의 기본정신을 준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JSA 비무장화”, “남북공동유해발굴”, “DMZ 평화의 길” 조성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들을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역경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함께 이겨내 온 한미동맹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강력한 동맹이자 친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미양국의 우정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 한미장병 여러분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여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의 최전선(Freedom‘s Frontier)’에서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한미장병 여러분과 오늘 “한미 우호상” 수상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친구 한미장병 여러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박수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한미연합사 전 장병은 강력한 연합방위태세를 바탕으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기여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지난 28년간 한미동맹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신 황진하 회장님과 한미우호협회 회원여러분께 연합사 한미장병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미우호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한미동맹의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해 우리의 우정을 빛내기 위해 소중한 걸음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e go together!

Good Evening. I am CFC Deputy Commander, General Choi Byung Hyuk. First I would like to thank President Hwang, Jin Ha and member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hosting magnificent event for ROK US Alliance. Also, I would like to thank distinguished guests for your valuable prepense on this beautiful night as the name of ‘friendship’.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ROK US service members for carrying out their given mission all around Republic of Korea at this moment.
Especially, I would like to sincerely congratulate 4 personnels including Captain Elaine Clines for being awarded with ‘Korea America friendship award.

As you all know, Korea faces “historical grand turning point” which will shine in five thousand years of history. We have started perilous yet great journey for settling everlasting peace on Korean Peninsula.

In 2018, Both leaders of ROK and North Korea agreed on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everlasting peace on Peninsula through Panmunjum Declaration and Pyongyang Joint Declaration. Leaders of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promised their cooperative efforts on denuclearization on Peninsula and world peace through “Singapore Summit”.

Our Military prevented armed conflict on Peninsula through CMA, conducted various activities on fulfill basic principles of Armistice Agreement. As a result, we are baring substantive fruits to de-escalate Military tensions and establish trust such as “JSA demilitarization”, “Inter Korea Joint Remains Recovery”, “DMZ Road to Peace”.

“Adversity teaches you true friend”. ROK US alliance is the most successful and strongest alliance and friend in the world today as we have overcame many hardships during past 70 years.

Therefore, we are gathered here today to remember effort of ROK US service members who tried to enhance peace on Peninsula and brotherhood of both Seoul and Washington.

I would like to thank ROK US men and women in uniform for faithfully executing their mission at Freedom’s Frontier at this very moment and to the recipients of “Korea America Friendship Award.”
Ladies and Gentlemen, please give a round of applause to our friends, ROK US service members. (Clap!)

Thank you for your applause. On the strength of your support I promise that all CFC members will support diplomatic efforts based on robust combined defense posture and will contribute to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settle permanent peace on Peninsula.

Lastly, on behalf of all CFC members,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to president Hwang and members of the society for being stout supporter of ROK US alliance for last 28 years. I wish boundless development of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nd bright future of the Alliance. I thank all of you for your valuable attendance to honor our friendship. Thank you. Wo go together!

한미 우호상 수상자

PFC Emily Lopez (미 육군 에밀리 로페즈 일병)

6-52 방공포대대 지휘부 운전병인 로페즈 일병은35 방공포여단 6-52대대 장병들과 수원 시민들 그리고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로페즈 일병은 대대 지휘부 간부들과 수원시장을 포함한 시의원들과 대대가 수원 지역사회를 지원하는방안을 토의하는 회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부대의 신뢰 증진 및 부대와 지역 주민 간의 차후 협력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로페즈 일병은 지역 공군기지에서 한국 공군과의 교류를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카투사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 있는 8군 카투사 우호 워크샵에 참석하였습니다. 로페즈 일
병은 한국어-영어 수업 그리고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동료들과 지휘자들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열린 마음과 지역문화
를 배우고 싶은 열망은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부단히 지역문화탐방을 하고 있어 지역 문화를 경험하고자하는 병사들은 로페즈 일병을 찾아갑니다. 로페즈 일
병은 친선 프로그램의 발전과 한미 장병 간의 동료애와 유대강화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IT2 Marcus Foster (미 해군 마커스 포스터 병장)

주한미해군사령부 소속 마커스 포스터 병장은 미 해군과 한국 해군 지휘부를 통합하는 주요 네트워크 확장 프로젝트에 대한 감독, 추적 및 유지를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탁월한 홍보대사로써 한국 해군 장병들과 협력하여 복잡한 해상 프로젝트를 미 해군이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그 절차를 이해시켰습니다. 그는 12,000 달러 프로젝트에 대한 공간 할당 및 추가 지원 요구 사항의 조정 및 유효성 확인에 있어 한국 해군 장병들과 매일 통신망을 유지했습니다. 포스터 병장의 노력으로 미 해군은 한국 해군과 실시간 중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고, 미 해군의 기획참모부와 민군작전부가 한국 해군의 해당 부서들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터 병장은 주한 미해군은 물론 미 해군 전체를 대표하는 훌륭한 병사로서 기지 내에서 한미 해군 장병들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Capt Elaine Clines (미 공군 일레인 클린즈 대위)

일레인 클린즈 대위는 한측 업무협조관들과의 관계 증진과 한미동맹 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발작을 일으킨 한국인 시민을 발
견하고 같이 있던 동료와 함께 발작 중인 한국인 환자를 응급조치를 실시한 후 지역 응급치료팀(EMS)이 도착할 때까지 환자를 안정시켰습니다. 또한, 클린즈 대위는 51비
행단의 이노베이션 엔진(Innovation Engine)부서와 같이 업무 일하면서 지역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기지에서 사용되는 모든 화학 장비 가방을 최신으로 개선하였
습니다. 또한 지역내 한국 교회를 통해 2~4세의 지역 어린이들에게 놀이 및 영어를 가르치는 큐비스( Cubbies) 프로그램을 주도하였으며, 지역내 고아원과도 계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소속 비행중대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고, 전국 어린이 치과 건강의 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거의 매주 자원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클린스 대위는 지역 사회에 총 50시간 이상을 헌신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은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산 공군기지 내의
공동체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Sgt Jacob Fuller (미 해병대 제이콥 풀러 하사)

풀러 병장은 헌신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해병입니다. ‘무적’ 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풀러 병장은 병력 결원이 발생 시 주로 선임 부사관이 수행하는 훈련반장 직책을 훌륭
히 수행하였습니다. 풀러 병장은 주어진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35개 이상의 체력 검정과 12개 이상의 지역 훈련 기록을 관리하고 훈련일정을 관리
했습니다.

풀러 병장은 전 기지내의 유일한 화생방 및 핵방어 요원입니다. 그는 화생방 및 핵전 상황하에서 장비 운용, 훈련, 그리고 준비태세 능력 등을 크게 향상 시켰습니다. 그 결
과 부대훈련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작전부서들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풀러 병장은 ‘무적’ 부대의 SMP(Single Marine Program)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임기 동안 그는SMP 행사를 5회 개최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에 남부 소방소와 베
들레함 교회에서 자원봉사로 영어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천고등학교에서 ‘할로윈 트릭 오어 트릿; Hallowin trick or treat’ 행사, 포항시 드림스타트 프로그램
및 포항 해병대 체험 캠프 행사와 연계하여 어린이날 행사 등의 공동체 활동에도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무적’ 부대 근무는 8개월 정도밖에 안되지만 풀러 병장은 여러 활동을 통해 포항시민과 미해병대의 관계를 크게 증진시킨 주한미해병대의 자랑스런 해병입니다.

선택의 결단 : 중립은 없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전 고려대 석좌교수,
전 서울대 초빙교수

이 글은 필자가 태평양 아시아 협회 발족 25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본 협회 월간지 영원한 친구들의 게재를 위해 약간 수정을 가하여 기고한 글입니다

나라의 위기 중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위기는 국가 존립의 위기입니다. 경제위기, 사회 문화적 위기도 물론 심각합니다. 이런 위기는 우리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향방의 문제는 한번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바로 그 위기의 절벽에 놓여 있습니다. 잘 아시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많은 것이 코앞에 놓여 있습니다. 화웨이 문제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사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중국해 문제는 어떤 입장인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따를 것인가, 미국의 인도 태평양전략을 쫓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미국과 중국 중에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해양세력을 선택

국제정치에서 지정학을 애기할 때 크게 대륙지향국가냐, 해양지향국가냐로 그 나라의 성격을 구분합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우리는 지난 5천년을 대륙지향국가로 지내 왔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대한민국만 해양지향국가로 변신했습니다. 해방과 6.25 사변 당시의 아시아 지도를 보십시오. 아시아 대륙이 몽땅 빨갛고 한반도 끝인 한국만 파란색으로 남았습니다. 마치 붉은 대륙에 매달린 파란 맹장 같았습니다.

이념적으로 지도를 보면 한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선택을 하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 덕분이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이 대륙국가인 소련의 영향력 하에 공산화 되었지만 유독 우리만 공산화를 면하고 자유주의 세계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륙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피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대륙과 단절된 우리는 대륙 대신 바다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을 아셨던 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분은 바다 너머를 개척하여 우리를 무역대국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이 두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두 분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두 분 덕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국제상황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이념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와 평등, 즉 자유의 세계와 공산 전체주의 세력 중에 누구 편에 설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얘기하면 냉전적인 사고라고 비난하지요. 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냉전체제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냉전의 주체가 바뀌어 돌아 온 것이지요. 과거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주체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대 변형된 공산주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어려운 선택이니 어물어물 지내보자고 넘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립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대국 사람들이 우리 꾀에 넘어 갈 바보입니까?

선택의 중요성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길 짐승 나라와 날 짐승 나라 사이에 전쟁이 났습니다. 길짐승 나라 특사가 박쥐나라를 방문하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박쥐나라 대표는 “우리는 걷기도 하지만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길 짐승나라 편을 못 들겠다” 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뒤 날 짐승 나라 특사가 찾아 왔습니다. 박쥐 대표가 이번에는 “우리는 날기도 하지만 걷기도 합니다” 라며 같은 편이 될 수 없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참 처신을 잘했지요? 현명하지요? 그런데 길짐승과 날 짐승이 뜻밖에 화해협정을 맺었습니다. 두 나라의 일치된 의견은 얄미운 박쥐나라를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박쥐는 그 뒤 새와 동물이 뛰 노는 벌판에 나오지 못하고 동굴에 숨어 살며 밤에만 다닌다고 합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해야 할 시점에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애매모호하거나, 요리저리 피해 갈 상황이 아니라면 확실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선택할 시점에 왔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체제일 때 한국에게는 운신의 폭이 넓었습니다. 미. 중 화해 시대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으며 중국과 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누려 왔습니다. 지금은 미‧일로 수출하는 것 보다 중국 수출량이 더 많습니다. 중국 무역이 우리 무역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끝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후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걸며 확실하게 중국견제 정책으로 돌아 섰습니다. 미. 중간에 갈등이 있을 때 우리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아집니다.

한반도의 지정학: 운명

한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지정학입니다. 그 나라가 어느 자리에 위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거대한 에너지가 흐르는 경로 상에 위치한 약소국은 그때그때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고 생성되었습니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에 붙은 반도이기 때문에 지난 5천년을 대륙국가, 즉 중국의 영향력 아래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7년 시진핑이 트럼프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본래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한반도는 반도라는 속성 때문에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강해지면서 일어난 전쟁이고,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 전쟁도 한반도를 놓고 대륙과 해양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중 어느 한쪽이 완승하지 못할 때 한반도 분할론이 제기 됐습니다. 지금의 38선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지요.

임진왜란 발발 3개월 후 왜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명나라가 참전하게 되면서 전선이 교착되었습니다. 그러자 명의 심유경과 일장수 고니시 유키나까(小西行長)간에 한반도 분할지배가 논의됐습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명나라 간에 다시 강화회담을 하면서 히데요시는 강화 7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선 4도( 경상, 전라, 충청, 경기) 분할 지배였습니다. 1894년 청.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습니다. 그럼에도 3국 간섭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자 일본은 한반도 분할을 러시아에 제시했습니다.

선택의 실수

이런 우리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지정학의 볼모, 즉 어쩔 수 없는 반도의 운명을 타고 난 것입니까? 주변 강대국의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는 운명입니까? 아닙니다, 그 운명 안에서도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아니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상황이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21세기가 20여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우리의 상황은 다시 19세기 말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조선이 막 개방을 시작했던 1880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이 한 문건을 들고 귀국했습니다. 중국의 외교관 황쭈센(황주헌)이 쓴 『조선책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여 지리적으로 반드시 쟁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아, 시세의 핍박함은 위태롭고도 위태로우며 기회의 찾아옴은 미세하고도 미세하다.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면 조선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조선만이 이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한다. 이야말로 부엌에서 불이나 집이 타게 되었는데 처마에 있는 제비와 참새는 그것도 모르고 저희 끼리 지저귀고 있으니 이야 말로 연작처당이 아닌가? 지혜로운 자만이 기회를 탈 수 있고, 군자만이 미세함을 알 수 있으며, 호걸만이 위태로움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것이 조선에 인물이 있어 급히 일어나 일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황쭈센은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친중, 결일, 연미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위기를 모르고 참새와 제비처럼 저마다 짹잭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때의 참새와 제비가 아닙니까? 조선은 방황했습니다. 친중을 하다가 친일로, 다시 친일에서 친러로 돌아 섰습니다. 결국 그러다가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때 조선의 각성을 외치던 황쭈센의 목소리가 지금 우리 귀에도 쟁쟁 함은 어찜입니까? 지금 이 나라는 황의 말대로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 미세한 기회 속에서 나라의 운명을 구해 낼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인물, 위기를 국민과 함께 극복해 낼 수 용기 있는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내 나라를 잃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를 잃었습니까? 아니면 백성들이 나라를 망쳤습니까? 아닙니다. 조선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쳤습니다. 누가 갖다 바쳤습니까? 이완용을 비롯한 내각들의 서명으로, 고종의 무능으로, 한일 합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운영하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부를 누가 운영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국민은 일단 대표에게 나라를 맡기면 나라는 맡은 자의 책임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무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권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하버드대학의 그래함 엘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에는 언제나 패권국이 있고 그에 도전하는 도전국이 있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시절 당시 패권국이던 아테네에게 스파르타가 도전하여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인용하여 만든 말이지요. 앨리슨 교수는 지난 5백 년 동안 세계의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을 분석했는데 16건 가운데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지금의 미. 중 갈등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미중 갈등의 한 복판 속에 놓여 있습니다. 패권국인 미국과 도전국인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 적이 있습니다. 17세기 임진란이후 중국 대륙은 명이 쇠하고 청이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대륙의 패권국이던 명나라를 선택하였습니다. 도전국인 청나라는 조선을 침공하여 정묘‧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러시아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패권국은 영국이었고 도전국은 러시아였습니다. 일본은 이 세력 판도를 읽고 패권국인 영국 편에 가담했습니다. 국왕인 고종은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집무하는 아관파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자 우리는 기댈 언덕을 잃고 말았습니다. 선택을 잘못한 것이지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두 가지 틀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무엇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정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위 정치 현실주의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이상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나라의 목표와 이상과 부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상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양과 대륙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패권국과 도전국이라는 힘의 관계 등으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해양과 대륙, 패권국과 도전국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운명입니다. 이 운명을 어떻게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현실과 이상입니다. 현실은 누구의 힘이 더 크냐를 판단하여 힘이 센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이상이지요. 어느 나라가 더 우리의 이상에 부합하느냐는 겁니다.

보수 쪽 입장에 있는 분들은 대개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국 쪽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동안의 한미동맹의 혜택도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미국 편에 섰던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2030년 까지는 아니 2050년 까지 미국 우위의 세력판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니 미국편에 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너무나 중요해 미국은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는 미국의 세계전략인 태평양-인도양 전략에 가담치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제외하고 일본, 인도, 오스트렐리아를 주축으로 새 전략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1949년 애치슨 라인 같지요. 왜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호칭하고 신무기를 공급하기로 했을까요. 한반도를 포기했을 경우도 일본 대만 필립핀 선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함입니다. 반면 이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사드를 추가 배치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국에게 우리의 주권 사항을 양보한 것이지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막으려면 한국-미국-일본의 안보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협력 없이는 북한 미사일의 종착점을 알 수 없습니다. 지구 곡면 때문이지요. 또 현대전은 전장이 범위가 넓어져 우리 단독으로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현실인데도 이 정부는 왜 과거사를 두고 반일 캠페인을 극성스럽게 해 댈까요?

현실주의 입장에서 힘을 보아서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 현실주의 입장을 넘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가치의 선택

가치의 중요성입니다. 대한민국이 품은 이상이 어느 쪽과 맞느냐는 것입니다.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말더듬이 죠지 6세가 말더듬이 장애를 넘어 사상 최고의 명연설을 했던 것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이 가치의 전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끼며 지켜오던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 내려는 싸움이 지금 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치를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힘이 센 쪽을 택하기보다 우리 이상과 목표에 맞는 국가가 누구냐 입니다. 자유와 억압, 민주대 전제, 개인대 전체, 자유시장대 통제경제 중 어느 가치를 따를 것이냐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내세우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 압박에 굴복하여 19세기 이전으로 돌아 갈 것이냐 아니면 지난 70년의 번영을 지켜 나갈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당연히 미국을, 해양지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동맹의 조정은 통일 후에라도 늦지 않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토록 맺기를 갈망했던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습니다. 그는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 대대로 덕을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개인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가의 관계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애써 만든 동맹이라는 소중한 관계를 깨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미. 중의 협력시대에는 선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중의 대결 시대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당연히 미국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시아 대륙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해양이 먼저입니다. 태평양에서 힘을 얻어 아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도 중립통일이니 민족 통일이니 애매한 통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의 자유 통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좌파세력의 한미동맹 파괴활동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한국 좌파세력의 특징

한국의 좌파세력은 서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좌파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의 좌파세력 중에는 자기 나라를 부정하고 해치는 반국가적인 세력이 있는 점이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종북세력이다. 북한공산정권의 폭정에 견디다 못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탈북민들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 현재 3만 명에 달하는데도 이들 종북세력은 불가사의하게도 무조건 북한이 좋다고 한다.

종북세력이 존재하는 근본이유는 한반도가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경우는 달랐다. 과거 동서독 병립시대에 동독에서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해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분단국가인 베트남의 경우는 달랐다. 남부 월남은 정치불안과 부패가 심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6개국의 군사지원에도 불구하고 베트콩의 끈질긴 전복활동과 월맹 정규군의 진격으로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한국의 반국가적인 좌파세력은 해방직후에 결성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그 후신인 남로당이 그 뿌리이다. 이들 좌파세력은 6‧25전쟁을 계기로 거의 소멸되었으나 1960년대에 들어 지하조직의 형태로 부활했다. 북한으로부터 공작원들이 남파되어 오기도 하고, 남로당의 잔존세력이 비밀리에 조직을 재건하기도 했다. 이들 좌파지하세력의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말의 통일혁명당 사건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자신이 존경한다고 공언해 물의를 빚은 신영복은 통일혁명당의 군사책임자였다.

한국의 종북세력은 대개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내세우기 때문에 선의의 평화통일논자들과 혼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반국가적 좌파세력의 실제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근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파괴와 소멸을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국가적 좌파세력의 통계가 없어 그 규모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주한미군철수와 맥아더 동상철거를 주장하는 세력과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순수한 지역주민들을 제외한-직업적 좌파활동가들과 사법부가 정식으로 반국가단체라고 판결한 종북단체 소속원들이 반국가적 좌파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출범한 한국진보연대는 국내의 좌파세력 지도자들을 총망라한 단일조직이다. 한국진보연대는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등 여러 계급과 계층별 대중 조직들 및 진보정당 등 총 37개 단체가 가입한 좌파진영의 단일 연합체이다.

이 단체의 상당수 간부들은 실정법 위반 경력의 소지자들이다. 박근혜 탄핵운동에 앞장섰던 이 단체의 주요임무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이다. 한국진보연대는 출범 당시 한미 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4대 과제를 내걸었다. 이 4대 과제 중 비정규직 철폐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3대 과제들은 모두 외교 안보정책과 관련된 분야들이다. 현재 한국진보연대의 10개항 강령 중 제1항이 제국주의적 지배정책 반대와 나라의 자주권 쟁취로 되어있다.

좌파학생들의 경우, 1980년대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이어 1990년대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대표적인 반국가 학생운동조직이다. 한총련은 나중에 대학생들의 외면을 받아 PD(평등파)계열이 NL(민족해방파) 주류파로부터 떨어져 나가 전국학생회협의회(전대련)을 결성했다. 그러나 곧 NL계열의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결성되어 이들은 2017년 10월 트럼프 미국대통령 방한반대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트럼프 참수경연대회까지 개최했다. 이 같은 끔직한 행사를 개최하는 저의는 미국의 여론을 자극해 주한미군을 스스로 철수시키려는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5년 4월 출범한 한대련은 한 때 20여개 대학의 총학생회를 거느렸는데 한대련의 11기 회장을 지낸 김모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요즘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한진련)을 이끌고 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한진련은 박근혜 탄핵 1주년을 맞은 2018년 3월 1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출범에 즈음하여 “새로운 봄,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서 우리 대학생들도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주장하면서 “평화의 길, 통일의 길, 적폐청산의 길, 그리고 대학생문제 해결의 길로 더욱 달려 나가야한다”고 선언했다.

한진련이 그동안 1년여에 걸쳐 수행한 활동은 국민들의 큰 우려를 낳았다. 이들은 작년 10월부터 연말에 걸쳐 국민주권연대 등 12개 단체와 협력해 백두칭송위원회이니 위인맞이환영단이니 하는 이름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모임을 만들어 세종로 일대에서 춤추고 노래를 했다. 한진련은 작년 11월 초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 들이닥쳐 “한반도 내정간섭 일삼은 주한미국사령관 지명자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사과하라”, “한반도평화 방해하는 주한미군 철수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진련은 올해 들어 지난 2월에는 김정은 연구모임을 발족시켰다. 이 모임은 “김정은이 왜 위인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김정은이 “북한의 모든 주민에게 크나큰 지지를 받고 있다”느니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펼친 세심함” 이니 하고 칭송을 했다. 이들은 또한 김정은이 한 말을 가사로 해서 작곡한 노래도 불렀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서울 세종로 일대, 특히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국민주권연대 및 청년당과 함께 “한반도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진련은 지난 4월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4층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의원회관사무실에 쳐들어가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은 사퇴하라”, “김학의 성접대 사건 은폐 황교안은 사퇴하라”, “세월호 진실 은폐주범 황교안은 사퇴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회장 김모 군 한 사람에 대해서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한진련은 또한 같은 시기에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자유한국당 해산을 주장하는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벌이기도 했다.

한진련의 가장 최근의 움직임으로는 지난 6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을 맞아 서울 신촌에서 개최한 통일한마당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사진전, 통일을 바라는 한마디 적기와 한반도 버튼 판매, 북한 물품 박람회, 대동강맥주를 먹고 싶은 소망을 담은 맥주 나눔, ‘분단적폐 쏘기’, 자유한국당 비판행사 등 총 8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분단적폐 쏘기’ 프로그램은 장난감 총으로 트럼프, 나경원, 황교안, 대한애국당 등을 쏘아 넘어뜨리는 행사였다. 이날 오후에는 6·15 통일문화제를 열고 대학생들의 연설과 노래, 춤 공연 등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참가자들은 그 후 장소를 광화문으로 옮겨 6·15 19주년 민족자주대회에 참여했다. 같은 날 부산에서도 ‘통일, 멀다고 말 하면 안되겠구나’, 춘천에서는 ‘6·15 강원도민 통일 문화제’, 광주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 청년학생대회’라는 이름으로 6·15 남북 공동선언 19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3대혁명 역량과 남한의 친북세력

북한정권은 한반도의 공산통일을 위해 3대 혁명역량의 강화라는 중요한 전략을 갖고 있다. 이미 1964년 2월부터 북한당국은 이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북한의 혁명역량, 남한의 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역량 세 가지이다. 북한의 혁명역량이란 적화통일에 필요한 북한 자체의 군사력 외교력 등 힘을 의미하고, 남한의 혁명역량은 북한의 도움으로 남한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지하조직의 힘 등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앞에 소개한 한진련 같은 학생단체가 남한의 혁명역량에 들어간다. 국제적 혁명역량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만들어 내는 여론과 지지 세력을 의미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에서 중요한 남한의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서 북한 당국은 남한 사회의 노동자 농민 학생 등 혁명을 이끌 계층을 양성한다. 이들은 결정적 시기가 오면 ‘남조선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발휘한다. 남한의 혁명역량 문제는 6·25전쟁 이전에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김일성이 1949년에 남한을 침공하려 하자 모택동은 이를 말리면서 남한의 게릴라부대를 활용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전쟁직전인 1950년 4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박헌영이 한자리에 앉아 남침작전을 논의할 때 박헌영은 만약 북한의 인민군이 서울만 함락하면 남한에서 활동하는 빨치산부대가 사흘 안에 나머지 지역을 해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헌영의 ‘좌경모험주의’ 때문에 과도한 빨치산활동을 벌여 ‘혁명역량’을 희생시킨데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휴전이후 김일성이 박헌영을 처형하는데 중요한 구실로 이용되었다. 정부는 이상과 같은 조직적인 좌파세력의 한미동맹 파괴 기도를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

외교의 신이라는 이승만 박사의 한미동맹 결성 공로

김정은은 2017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맞아 미국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급인 화성 14형의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이로써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개발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시간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북핵의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위한 대북협상이 성공하리라는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김정은의 평화공세를 액면 그대로 믿고 남북관계 증진에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북핵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북한의 ‘레이짐 체인지’를 이룩하거나, 아니면 한국도 자체 핵개발을 하든지 미국의 핵을 재배치하는 길 외는 없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든 긴밀한 한미동맹 관계는 중요하다.

한미동맹의 근거가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외교의 신’이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 덕분에 체결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이 휴전협정 교섭을 시작하자 한반도 통일 이전에 휴전을 하는 것은 제2의 6·25전쟁을 부르는 행위라고 강력 반대했다. 그는 휴전협상을 깨기 위해 휴전회담에 정부대표를 보내지 않고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정부의 방침이 바뀌지 않자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의 조건으로 한미동맹의 결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그 대신 1951년 12월 20일 국가안보회의에서 휴전협정 체결이후 공산측이 다시 한국을 침략할 경우 무제한 응징한다는 NSC 118/2호 계획을 입안해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이승만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휴전을 반대했다. 결국 트루먼 행정부는 1952년 휴전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그를 체포해 제거하는 이른바 ‘에버레디작전’을 수립했다.

그런데 휴전협정 체결 약 2개월 전인 1953년 5월 29일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당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이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국무부 합참 연석회의에서 그 동안 미국정부 특사로 이승만 대통령과 휴전문제를 협상을 하던 국무부 차관보 월터 S. 로버트슨의 발언 한 마디로 사태가 급변했다. 그는 회의 도중 발언권을 얻어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한국 정부를 접수합니까? 정녕 우리 자신을 침략자의 입장으로 몰고 가고 싶은 겁니까?”하고 이승만 체포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승만이 요구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방법 외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에버레디작전은 중지되고 이승만 박사가 그렇게도 바라던 한미동맹 결성 쪽으로 미국의 대한정책이 급선회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의 한미동맹 결성 방침이 한국정부에 통고되고 이승만은 휴전에 동의하게 된다.

휴전협정 조인 직후인 1953년 8월 8일 경무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이 거행되었다.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약에 서명했다. 변영태 뒤에 서서 가조인 행사에 입회한 이 박사는 곧 특별담화를 내고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며…….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대한민국은 곧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中國夢에서 깨어나라

이황헌 , 충남대학교 3년 재학
충남대학교 홍보대사,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자문위원

“천하의 대세란 오랫동안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 (話說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이다. 중공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약 70년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중국은 다시금 분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흘러가는 분열의 시계를 멈추기 위해 중공은 갖은 무리수를 동원했다. 천안문에서 자유와 민주를 외치던 학생 수만 명을 학살했고 독립을 외치던 티베트와 위구르의 주민들은 사찰의 대상이 됐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세계는 중공이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13억이라는 거대한 시장 앞에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공 체제의 반자유性에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에서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관점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중공은 단 한 번도 사회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다. 덩샤오핑이 말했던 흑묘백묘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괜찮다가 아니었다. 중공은 개혁개방 이후 체제의 변화 없이 세계 경제에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세계 GDP 2위에 올랐다. 13억 인민을 통제하고 다스릴만한 경제력이 충족되고 나니 도광양회(韜光養晦)가 대국굴기(大國崛起)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중공의 전체주의와 미국의 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 자유, 법치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는 아무리 경제적, 사회적으로 유착된다 하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근원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美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중국산 수입품 중 500억 달러 (58조 1750억 원) 상당 품목 1,300개를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미국 투자도 제한하는 내용의‘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고율 관세 대상에 오른 품목들은 중공이 대국굴기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추진하던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되어있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2019년 5월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화웨이를 미국 시장에서 퇴출한다. 화웨이는 매출 1071억 달러 (124조 6100억 원), 종업원 8만 7500여 명, 세계 2위의 스마트폰 판매 업체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석권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AP를 설계하는 ARM, 퀄컴, 인텔 등이 모두 미국기업이기에 미국에서의 퇴출은 곧 세계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한다.

더하여 화웨이는 네트워크, 통신장비 제조업체이기도 하다. 화웨이는 5G 핵심기술에서 독보적으로 앞서있다. 특히 가격도 타사의 70% 수준으로 저렴하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통신망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시장의 토대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가적 역량이 총동원된 결과이다. 중공은 자국의 기술 기업이 해외에서 수집한 정보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화웨이의 창업주인 런정페이는 중국 공산당 당원일 뿐 아니라 중국 군대의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퇴출을 선언한 것이다.

중공을 향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은 그간 있었던 무역 전쟁과 차원을 달리한다. 과거 냉전 시기 레이건 행정부가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미국의 경제를 일으켜 소련을 압박, 붕괴시킨 것과 비슷하다. 경제적인 압박을 통해 전체주의 중공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미국은 중공의 국영기업 보조금 지급을 멈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생산수단의 독점이라는 점에서 이는 체제 자체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다.

미국은 올해 초부터 한국에도 화웨이 퇴출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실용적인 ‘정미경중(政美經中)’ 원칙을 깨뜨리고 과도하게 중공에 밀착하는 방식을 취하며 그동안 중국몽에 함께 할 것이라고 공언했기에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이 한국에 反 화웨이 전선에 참여하라고 요구한 것은 한국은 미국과 중공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칫 중공의 편에 서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면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미국이 제재를 가했을 때, 중공은 우리의 편에 서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의 우려에도 천안문 성루에 올랐을 때 중국은 북한 핵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설 것처럼 말했지만 한미동맹이 자위권적 차원에서 사드(THAAD)를 배치하자 돌변하여 보복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그동안 미국이 방관하며 키워 온 중공 전체주의를 해체하고 중공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체제로 바꾸려는 가치 전쟁이다. 전체주의냐 자유주의냐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할 때이다. 트럼프가 말했듯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실행된 곳엔 고통과 파괴가 뒤따랐다. 불과 서울로부터 1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펼쳐진 북한이 증거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나라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통한 번영으로 나아가는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가 다시 찾아오고 있다. 격랑의 시대에서 홀로 공허한 평화를 외치며 소국을 자처하는 일은 옳지 않다. 대한민국은 인권과 자유, 법치를 존중하는 민주공화국이다. 만약 당장 피해가 우려된다고 결단하지 않거나 전체주의 중공의 편에 선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로마의 小스키피오가 말했듯 한 사람의 잔인함으로 전체가 억압받고, 또 하나의 법적인 유대나 합의나 계약된 결속, 즉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공화국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콩이 바로 이런 상태이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최소한 2047년까지는 홍콩의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2015년 시진핑의 부패를 취재하던 출판사 직원들이 중국 당국에 납치됐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반환 20주년인 2017년 중국 외교부는 “영-중 공동선언은 더는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는 역사적 문서”라며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했다. 더 이상 홍콩에 자유는 없다. 이는 우리가 중공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인다면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소명은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인류 문명사에 남기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성장시킨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중국몽이라는 전체주의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준 자유 우방국들에 대한 도리이자 책무다.

같이 갑시다 : Go Together

♣ 한미연합사령부도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한미 국방장관 회담
   작년 용산잔류 결정 뒤집어, “미군 서울 인계철선 무너져”
   미래연합사령관 韓 4성장군, 합창의장 겸직않고 별도임명

3일 오전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한기 합창의장,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3일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은 한미연합군사령부를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국방부는 앞서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말(2018년 12월)부터 연합사 본부의 국방부 용지 내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기존의 결정을 뒤바꾼 것이다.

한미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초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를 번복한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검토 과정에서 작전효율성 등을 따져서 결과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1~2년 사이에 연합사 이전 장소를 국방부에서 평택 미군기지로 변경할 정도로 각 지역의 입지와 조건이 달라질 리는 없었다. 한국의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의 결정을 뒤집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면서 “합리적으로 검토해보니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미가 지난해 중반까지 추진하던 연합사령부 본부의 국방부 용지 내 이전 방안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부임하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기존의 이전 방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는 국방장관 회담 이후 연합사 평택 이전 관련 설명에서 “이러한 조치가 연합사의 작전 효율성과 연합방위태세를 향상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즉 연합사령부가 국방부 용지 안으로 이전하면 작전 효율성과 연합방위태세에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국방부 이전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당시 연합사령부가 국방부 내로 이전하는 것으로 가정해 검토됐던 국방부 근무지원단 건물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결정됐다”고 말했다.

연합사령부 본부가 서울에서 벗어나면 미군 병력이 서울에 남아 있지 않아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군 자동 개입‘ 장치가 사라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공격 시 미군의 개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미군이 공격을 당하느냐다”면서 “마지막 ‘인계철선‘인 연합사마저 서울을 떠나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미군이 꼭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행사할 ‘미래연합군사령관‘을 별도의 한국군 대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또 양국 장관은 회담에서 미래연합군사령관은 한국 합참의장을 겸직하지 않는 별도의 한국군 4성 장군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합동참모본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이런 방안을 양국 국방부에 건의했다. 미래연합군사령관은 전작권을 행사하는 임무를 맡는다. 애초 합참의장 또는 지상작전사령관 등이 겸직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가 최근에 별도의 대장 직위로 두는 쪽으로 결정됐다. 미래연합군사령부 체제로 바뀌면 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한국군 대장) 직위는 없어지는데, 이때 남게 되는 대장 자리 1석을 미래연합군사령관 몫으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양국 장관은 하반기에 조정된 연합연습을 시행하기로 하고, 앞으로 시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나기로 했다. 이 연합연습은 한국군 대장 주도로 오는 8월 `19-2 동맹` 이름으로 실시될 연합위기관리연습(CPX)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연습인 ‘프리덤가디언(FG)’을 대체한 이 연습에서는 한국군의 전작권 행사 능력을 평가하는 최초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이 이뤄진다. 양국 장관은 올해 3월 실시된 전반기 동맹연습(19-1)이 현행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함과 동시에 굳건한 연합방위태세 유지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회담 결과를 계기로 프리덤가디언 연합연습이 종료됐다는 데 합의했다. (출처 : 매일경제 2019년 6월 3일 기사)

♣ “한국은 동맹… 中 보복땐 미국이 함께 방어”

해리스 주한 대사 인터뷰 韓美日이 잘 지내지 못한다면 ·문제 대응에 힘 분산돼
트럼프, 미사일 테스트에도 손 내밀었듯 김정은 협상 임해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11일(현지 시각)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2019년 현재 미국에 있어 한국보다 더 좋은 동맹이나 친구는 없다”며 본지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너무 외교적이 아니냐’는 질문에 웃으며 “(군인 출신이라) 외교적이 되려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나 한·미·일 공조 문제 등을 언급할 땐 전혀 ‘외교적’이지 않았다. 직업 외교관 출신들과 달리 강한 어조로 소신을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한·미·일이 잘 지내지 못하면 북한과 중국 같은 문제에 있어 힘이 분산된다”며 한·일 갈등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3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군 4성 장군 출신으로 태평양사령부(현 인도·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는 작년 7월 부임했다.

해리스 대사는 청와대 관계자가 최근 ‘화웨이 통신 장비 사용이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았다. 3차 회담이 있을 것으로 보나.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실질적 협상의) 초입(qualifier)에 들어섰다. 그동안은 초입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북한의 (위협적인) 일부 수사와 최근 미사일 테스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먹을 쥐는 대신 대범하게 손을 내밀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의) 문을 열어야 한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선 서로 말하고 싶은 것만 한 것 아닌가.

“어떤 협상에든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명백하게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나는 그 자체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기반 아래서 다음(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최근 연설에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했는데.

“세 나라가 잘 지내지 못하면 북한이나 중국 같은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힘이 분산된다. 이것(한·일 갈등)은 우리가 중요한 지역 안보 문제를 다루는 것을 방해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상호(방위) 동맹을 맺은 5곳 중 2곳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의 도전에 맞서는 위치에 있다. 이런 점에서 3국 공조는 더욱 중요하다.”

―중단한 한·미 연합 훈련을 재개할 가능성은 있나.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 사령관은 미 의회에서 ‘어떤 위협에도 한·미 연합군이 대응할 수 있다는 데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평가에 동의한다.”

―한국에선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어떤 회사와 얘기했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겠지만 나는 한국의 인사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미국은 우리의 민감한 안보 정보를 수용할 수 없는 위험 수준으로 노출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이 미·중 양쪽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은 이미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미국을 동맹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한국과 위대한 동맹이자 훌륭한 친구로 계속 일해 나갈 것이다. (사드 보복처럼 중국의 보복이 있을 경우) 미국은 계속 한국을 방어할 것이고 동맹으로서 의무를 다할 것이다.”
―주한 미 대사관 페이스북에 칵테일 만드는 동영상을 올린 것이 화제다.

“나는 (위스키에 소주를 섞은) ‘맨해튼 강남스타일’을 좋아한다. (럼으로 만든 피나콜라다에 막걸리를 섞은) ‘피나막걸라다’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동영상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야구, 안동소주, 비빔밥 같은 것도 (동영상을) 하고 싶다.” (출처 : 조선일보 2019년 6월 13일)

언론속의 한미관계

♣ 트럼프 2년반 만에 ‘한반도 라인업’ 완성
동아태 차관보에 스틸웰, 외교관 아닌 군인 출신美의 對중국 강경 노선 방점

미 상원은 13일(현지 시각) 본회의를 열고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를 찬성 94표, 반대 3표로 인준했다.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2년 5개월 만에 미 행정부 내 ‘한반도 라인업’이 완성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예비역 공군 준장인 스틸웰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에 지명했다. 스틸웰 지명자는 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참모 장교를 지냈고, 중국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파견 근무를 한 ‘대중 매파’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태평양 31개국과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전문 외교관이 아닌 군 인사를 기용한 것은 대중(對中) 강경 노선에 방점이 찍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틸웰 지명자는 1980~1983년 미 군사언어학교에서 한국어 어학병으로 훈련을 받았고 1993 ~1995년 군산 기지에서 근무해 한국과 인연이 깊다. 백악관은 지명 당시 스틸웰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일본어도 할 줄 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말에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이번엔 (북한의) 말만 듣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틸웰의 인준 통과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 겸 북한 담당 부차관보,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 마크 램버트 대북 특사 등 국무부 내 한반도 라인의 인사는 모두 마무리됐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 비핵화 협상은 비건 대표가 주로 담당하고 스틸웰 지명자는 전반적인 한반도 이슈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9년 6월 15일 기사)

♣ 2022년에 美워싱턴 ‘한국전 추모의 벽’ 세운다, 文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서 밝혀
건립자금, 韓 정부가 지원 방침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한국전 추모의 벽`을 건립할 장소로 언급한 미국 워싱턴DC 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의 모습(왼쪽 사진)과 공원 내 원형으로 건립할 `한국전 추모의 벽` 예상도.

문재인 대통령이 6일 “2022년까지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을 건립해 미군 전몰장병 한 분 한 분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한미동맹의 숭고함을 양국 국민의 가슴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내년은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로, 유엔의 깃발 아래 22개국 195만명이 참전해 4만여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며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나라는 미국”이라며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설립 계획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전용사 추모식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며 참전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겠다”면서 “워싱턴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 안에 추모의 벽 건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의 벽 건립은 워싱턴DC 중심부 내셔널몰에 있는 유일한 6·25전쟁 기념시설인 한국전기념공원 내 추모의 못 주변에 둘레 50m, 높이 2.2m의 원형 유리벽을 설치해 당시 희생된 전사자·실종자(3만6940명)의 이름을 새겨넣는 것이다.

미국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은 기념공원에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하기 위해 추모의 벽 건립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미 의회가 2016년 관련 법을 통과시키며 기념시설 신축을 허가했지만 미 정부의 예산 투입은 금지하면서 사업이 추진력을 잃고 지체돼 왔다. 추모의 벽 건립에 드는 비용은 최소 2500만달러(약 2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 연방 기념사업법에 의하면 건립에 소요되는 총 사업비 중 85%를 사전 모금해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직접 목표연도를 밝히면서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건립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인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건립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문제였는데 우리 정부 재정으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기획재정부와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추모의 벽 건립 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지난해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해 실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가 주무부처가 돼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측과 협의를 했고 2022년까지 건립하자는 데 실무 수준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의 벽을 설계할 건축가가 선정되는 등 기타 실무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은 지난달 27일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 설계를 맡을 워싱턴DC의 하트만 칵스 건축사와 서명식을 하고 “마침내 설계를 맡을 건축가를 선정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건립 추진과 별개로 한국 내 민간에서도 추모의 벽 건립 필요성에 공감해 자발적인 모금 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 왔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은 한국 내 개별 모금활동을 통해 삼성전자에서 100만달러를 기부받았다. 이와 별개로 민주평통에서도 20만5000달러가 모금됐고 재향군인회도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해 약 50만달러를 모금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매일경제 2019년 6월 7일 기사)

 

한국의 운명을 지킨 명장 월턴 H 워커 대장

최상진
전 삼성물산 임원, 본 협회 편집위원

급박한 전황

1950년 6월25일 일요일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은 오랜만에 경회루에 낚시를 계획하고 있었고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은 주말을 맞아 고향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세력팽창으로 또 다른 전쟁의 조짐을 보인 가운데 (구)쏘련은 유럽으로 당시 중국 공산당(중공)은 아시아로 세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의 총구는 중국 공산당과 타이완(대만)과의 전쟁에서 터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남북한은 역시 분단의 갈등을 겪고 있지만 군대의 수준이나 모든 상황이 전쟁을 일으킬 상황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전쟁 준비는 철저하고 집요했다.

개전당시 피아 전력을 보면 북한군은 20여만 명의 병력과 소련에서 지원받은 당시에는 최고 성능의 T-34 전차 242대, 구경이 큰 야포 172문, 야크전투기(YAK)를 포함한 211대의 항공기와 대소함정 100척 이상이었다. 여기에는 전술한 중공군에서 편입된 조선인 편성 4개 전투사단이 포함되었으며 이 전투사단들은 낙동강 선까지의 공격 전투에서 주력부대로서 활동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 국군은 10만여 명의 병력이 소구경 야포로 무장하였으며, 탱크와 전투기는 한 대도 없었으며 특히 적의 전차를 파괴하는 대전차 무기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국군에는 대부대 전투경험이 있는 부대가 하나도 없었으며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대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치명적인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다.

준비된 침공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의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남침 6시간 후, 이 대통령이 보고 받은 시점인 10시 경에는 T-34 전차부대가 파죽지세로 의정부와 문산을 축선으로 서울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을 빼앗기고 이 대통령은 대전-목포-부산을 거쳐 7월 8일 대구에 임시 경무대를 설치하게 된다. 전황은 급속도로 나빠져 7월1일 미 8군 제 24사단 제 21연대가 주축이 된 스미스 특임부대(Task Force Smith)가 부산에 도착 7월4일 오산 부근 죽미령에서 북한 인민군의 첫 교전을 벌렸으나 큰 희생을 내고 패배 하였으며, 이어 34연대가 경전차 부대와 19연대까지 투입된 금강 전투에서도 사정없이 패배하여 12일에는 금강너머로 후퇴해 있었다. 한국군 또한 뚜렷한 미군과의 연계도 없이 지리멸렬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워커장군이 초대 주한 8군사령관 겸 지상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튿날 대한민국 정부는 7월14일 “전쟁이 끝날 때 까지”의 단서조항으로 한국군 군사 작전권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한다. 전선을 시찰한 워커 사령관은 모든 전략전술을 공세에서 사수, 지연 전략으로 바꾸고 최후의 보루로 낙동강 방어선(Walker Line)을 구축한다. 8월5일 상황은 영덕, 포항, 대구, 진주를 잇는 600리 역기역자 형태의 전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김일성은 8월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그의 역할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정상적 전투를 치를 수 있을 때까지 전장을 사수하고 최소한 지원군이 교두보를 설치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7월29일) 경북 상주에 주둔 중인 미 제 25보병 사단을 방문해 전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로 침울한 군대를 독려한다.

“우리에게는 덩케르크(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철수작전을 한 곳)도, 바탄(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철수한 곳)도 없다. 부산으로의 후퇴는 역사에 유례없는 대참극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한 팀으로 싸운다. 물러서는 자는 전우 수천 명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모든 장병들은 우리가 방어선을 지켜낼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Stand or die.”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stay)” 그는 임전무퇴, 살신성인의 군인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이렇게 약 45일간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 동안 미군은 T34를 파괴할 수 있는 3.5인치 바주카포와 M4A3셔만 탱크가 한국전에 투입되었고 대구의 8군사령부를 중심으로 항공지원 및 함포지원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어 9․15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9월18일 서울을 수복하였다.

워커 사령관 그는 누구인가?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년 12월 3일 ~ 1950년 12월 23일)는 워커는 1889년 12월 3일 텍사스주의 벨턴(Belton)에서 출생했으며,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뉴욕 웨스트포인트의 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한 계기로 장군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905년 버지니아 군사학교에 입학, 브랜든 육사준비학교를 마친 후 1908년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12년 소위로 임관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시 제 5 보병사단 기관총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계기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때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조지 패튼이 지휘하던 제3야전군 산하의 20군단장으로 참전하였는데 빠른 기동성과 활약으로 그의 부대는 “유령 군단” 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프리카에서 롬멜 장군의 전차부대를 격파한 뒤 중장으로 승진한 월튼 워커장군은 1948년 9월 주일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전세가 어려워지자 곧바로 대구에 미 8군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7월 13일, 초대 주한 미 8군사령관 겸 지상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그녀의 난중일기라고 일컫는 “Mrs. Rhee’s Diary”에서 “워커 장군은 앉은키와 선키가 거의 비슷해 보였으나 벌어진 가슴과 불독같이 생긴 깊이 패인 주름의 강인한 인상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라고 회고 하였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전선을 누비며 상황을 파악하고 소신을 분명히 하는 덕장이요 용장이라고 일컬어 졌는데 6․25 참전용사이자 역사저술가인 페렌바크(T. R. Fehrenbach)는 『한국전쟁』에서 “워커 장군의 용맹하고 솔직하면서도 고집이 센 성품이 낙동강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3. 비운의 초대 8군 사령관 워커대장

워커 장군은 과거 유령부대의 사령관답게 쉬지 않고 전선을 누벼 평양 탈환이후 중공군의 3차 공격 시 까지 왕성한 활약으로 전장을 이끌어 갔고 특히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시로 전황을 전달하고 긍정적 조언을 함으로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다.

1950년 12월 23일 10시, 워커장군은 미 24사단과 영연방 27여단을 방문하고 아들인 샘 S.워크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96-5자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가 타고 있던 지휘관 지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보병 6사단 2연대 소속 한국군 스리쿼터 차량과 충돌하여 전복, 야전병원으로 긴급후송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 워커 장군의 유해는 미군 역사상 최초로 곧바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이때 맥아더 장군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귀국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이때 샘 심즈 워커 대위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 만 떠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였으나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1월 2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사후 워커 장군은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워커 사령관의 애석한 사고사는 불법 남침한 북한을 좀 더 강하게 응징할 수 있는 장군을 잃었다는 것과 우리 병사의 부주의한 과실로 전쟁의 영웅이 순직하였다는 사실에 더욱 죄송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더하다. 아들 샘 워커는 1977년 미군 역사상 최연소 육군대장으로 진급하여 미 육군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4성 장군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군인 전사자 기준 세계 7대 전쟁으로 간주되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장성 아들들은 모두 142명인데 그 중 3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리지웨이 장군의 뒤를 이은 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 벤플리트 2세는 전투기 조종사(중위)로 출격하여 실종되었고, 제3대 UN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의 아들 마크 빌 클라크 육군대위는 세 번이나 부상당하여 제대한 후 사망한 가슴 아픈 기록이 있다.

월턴 워커 사령관의 기념비를 찾아서

워커 장군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하게 알려진 이름이다.

1963년 주한 미군 휴양지로 지금의 광진구에 건립된 위락시설이 워커장군의 이름을 따 워커힐로 명명되었고, 대구의 캠프 워커나 직접적인 관계는 불명확하나 군인들의 군화를 워커화로 불리는 등 우리가 많이 접하는 이름이 되었다.

워커힐 호텔 입구 작은 동산에 1987년 10월5일 한미친선 군민협의회가 건립한 워커장군 기념비가 30여년의 풍상을 견디며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한미동맹친선회가 용산 미군기지의 구 미8군사령부 영내에 건립한 워커장군 동상은 주한미군의 평택시대의 개막에 즈음하여 2017년 4월25일 평택 캠프험프리스로 이전되었다. 또한 워커장군 추모 기념사업회 김리진 회장은 40년간 사비를 드려 워커장군 전사지를 찾아 표지석을 설치하고 매년 추모제를 드리고 있다.

워커 장군은 2012년 12월 보훈처가 선정하는 이 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되었으며 2016년 6월에는 부산의 유엔 평화 기념관 주관으로 워커장군 특별 인물전이 1년 동안 개최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이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닌 명예로운 전쟁으로 회자되는 요즘 이 시기에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양국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여 핵무장으로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북한의 헛된 망상을 버리게 해야 할 것이다.

워커힐 호텔에 위치한 워커장군 기념비

험프리 기지로 이전한 워커장군 동상앞에서

 

100세 인생 생활의 힌트 (11)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본 협회 부회장, 편집위원

동호인 끼리 한 달에 한번 「몽테뉴수상록」 교실을 엽니다. 지난달엔 “대화”에 대한 장을 공부하였습니다. 2세들에게 전해줄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2세들에게

지금은 「대화」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만인에 개방된 ‘소통의 장’이 되었다.
16세기 몽테뉴 시절엔 대화는 소수의 지식계급 귀족간의 ‘토론의 장’이었다. 테마도 달랐다.
지금의 대화론은 비즈니스를 위한 「교제술」의 테크니크 얘기지만, 몽테뉴 때는 「인생철학」을 논의하는 ‘지적 광장’의 자리였다.

사회적 성공에 지능지수 IQ가 7%를 받치고, 감정지수 EQ가 93%를 받친다 한다. 「지적 대화」의 대가가 몽테뉴라면, 「교제술」의 대가는 데일 카네기가 아닌가 싶다.

■ 몽테뉴의 대화론:
철학 논쟁으로서의 대화론이다.
논쟁은 승부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프로세스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견에 대해서는 감정 개입 없이 토론하고,
비판에 대해서는 내 오류가 확인되면 지체 없이 “흔쾌히” 인정하여야 한다.
논쟁의 모든 절차는 ‘진리’ 앞에서는 무조건 항복한다는 마음가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카네기의 대화론:
교제술로서의 대화다.
핵심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성경의 황금률이고,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는 것은 논어의 황금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수준급 인물’로 대접해 주기를 바란다.
상대방 의견에 경의를 표하고, 얘기를 경청하고, 상대방의 관심사에 공감을 표시하라는 것이다.
(원저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 번역본 「인간관계론」)

카네기의 논저에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부부간 대화」편이 있다.

■ 부부간 대화론:
인생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대화는 부부간 대화다. 100세 인생에선 더욱 그렇다.

“부부간 대화”의 7가지 비결:

i. 잔소리를 하지말자
ⅱ. 장점을 알아주자
ⅲ. 흠잡기를 말자
ⅳ. 칭찬을 하자
ⅴ. 작은 정표 프레젠트를 잊지 말자
ⅵ. 부부간에도 예의를 지키자
ⅶ. 바른 성지식을 갖자

부록1. 남편의 7가지 체크포인트:

①기념일 선물, 즐거운 깜짝쇼 벌리기

②남 앞에서 잔소리 않기

③피로해 신경 곤두선 아내 위로하기

④어머니나 남의 부인 살림살이 비교 않기

⑤아내 활동에 깊은 관심 표하기

⑥아내를 거리낌 없이 칭찬하기

⑦나를 위해 한 일에 감사 표하기

 

부록2. 아내의 7가지 체크포인트:

①남편의 바깥일에 비평 안하기

②가정을 재미있고 즐겁게 최대 노력

③남편을 기쁘게 할 상차림 연구

④시어머니, 시누이와 사이좋게 지내기

⑤옷차림을 남편 취미에 맞추기

⑥이견 불구 가정의 원만 위해 타협하기

⑦남편과 대화 나눌 교양 쌓기

 

대화가 감정지수의 중심을 차지하고, 감정지수가 사회적 성공과 가정의 행복에 93%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