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leadership – 박근

박 근 - 본 협회 명예회장

박 근 – 본 협회 명예회장

오바마의 leadership

박 근
본 협회 명예회장

꿈에도 믿기 어려운 흑인대통령의 탄생, 이 기적을 낳게 한 오바마의 leader ship에서 배울 것은 무엇 인가?

물론, 그의 젊고 깨끗한 모습, 웅변술, 좀처럼 격앙하고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차분한 성품, 뛰어난 머리와 위기관리 능력 등, 모두 2년 가까이 끌은 길고 긴 선거기간을 통해 미국 유권자를 사로잡은 오바마의 자질들이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오바마의 고유한 leadership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 고유한 leadership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면서 하와이로 인도네시아로 자기 나름대로의 꿈을 안고 떠다니던 백인 어머니의 고통과, 흑인에 대한 견디기 어려운 인종 차별, 이러한 역경 속에서 자라난 보편적인 leadership의 한 유형이다.

더욱 빛나는 leadership은 더욱 어두운 역경 속에서 나온다. 취임한지 겨우 며칠 안 된 오바마의 leadership은 이제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leadership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시점에 왔다고 믿는다.

그러면 오바마 leadership의 핵심적 특색은 무엇이고 본질은 무엇인가? 우선 지난 20일의 그의 취임사를 살펴보자.

“… 지금까지 44명의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였습니다. …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미국이 전진해온 것은 건국문서에 나오는) “우리들, 국민이 우리들 조상의 이념과 가치에 충실했고 건국문서의 정신에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 ”

그 이념과 가치는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어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기본 권리를 부여받고 태어났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이 모든 인간의 기본권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이념과 가치를 위해 국민이 싸우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었고 계속 위대하다는 것을 취임사의 출발점에서 상기시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눈앞에 가로놓인 모든 도전도 건국 이래 미국 역사 속에 보전되어온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을 보여 주었다.

보수와 진보간의 싸움, 각종 명분아래 펼쳐져 온 대립과 분열의 정치, 경제와 금융위기, 실업, 외교와 안보에 대한 테러와 핵무기의 도전, 에너지, 교육, 보건, 환경 문제들을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정신을 토대로 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부패한 독재자들에게 그는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먹을 풀면 우리 손을 잡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세계사가 흐르는 방향에 대해 자신 있는 통찰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북한 공산주의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에 대한 도전도 새롭고, 그 도전에 대한 우리의 해결수단도 새로울지 모르나 우리를 성공 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이고 오래된 가치들이다. 즉 근면과 정직, 용기와 공정성, 관용과 호기심, 충성심과 애국심— 이것들은 오래된 것들이고 진실한 것들이다. 이것들이 우리 역사를 발전시킨 조용한 힘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것들에게 돌아가는 일이다.…”

오바마는 취임사의 끝에 가서 또 다시 미국 독립전쟁시대의 건국의 아버지 말을 인용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에 고 하노니 희망과 덕행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엄동의 깊이 속에서 공동의 위험을 감지한 나라가 앞으로 나와 싸왔노라…”

위기 속에 취임한 오마바는 세계역사와 미국의 역사, 미국의 전통과 전통적 가치의 힘을 믿고 그의 앞날을 낙관에 찬 긍정적 정신 자세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진보주의자로 치부되어온 오바마는 통상적이고 대립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니지만, 그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근본적 보수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세계사의 흐르는 방향을 통찰하고 있는, 그리고 오래되고 전통적인 가치를 믿는, 참신한 보수주의적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또 어려웠던 선거기간 동안 “자신감”을 잃지 않았었다. 이 점은 부시 전 대통령과도 통한다. 낙관적 정신 과 자신감은 동전의 안팎이다. 그러나 부시의 경우에는 종교적 신앙심에서 나온 것 같고 오바마의 경우에는 역사의 흐름과 전통의 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떻든 간에 역사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자신감은 주어진 도전과 과제에 대한 결단력과 용기의 원천이다. 이것이 없는 용기는 증오의 감정에 휘말려 폭탄 자살하는 테러리스트의 용기와 별 다를 바 없다. 참된 용기는 인간 이성을 토대로 한 “지혜로운 자신감”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자신감만으로는 강한 용기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 이라는 정열이 있어야 한다. 사랑만이 착하고 선한 정열이다.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들의 정열은 갖은자나 계급, 또는 특정한 인종에 대한 미움, 증오, 또는 분노의 정열이다. 이 때문에 해롭고 위험하고 반 역사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착한 정열이 더 뜨거워지고 강한 용기가 날 것이다. 오바마는 가난한자들과 실업자들, 병든 자들에 대한 애정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한 없이 사랑한다.

이제 오바마 leadership의 핵심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통찰과 비전, 미국역사와 전통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이들을 기초로 하는 그의 용기와 낙관론, 그리고 미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이라고 하겠다.

그가 그렇게 대립하고 싸운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영입한 그 포용력이나, 야당인 공화당을 끌어 앉는 그의 관용성은 모두 그의 역사관과 전통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는 한 포용력이다. 그는 또 자기의 과거에 대한 정직과 청렴의 덕에 자신감이 있는 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진흙땅 속에 펼쳐질 정치판에 그가 많은 더러움을 겪겠지만, 나는 그의 leadership에 그리고 미국의 장래에 역사관적 낙관을 견지하며 살 것이다.

끝으로 북한 핵과 FTA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leadership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두 궁금할 것이다.

북한 핵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같다. 그를 위해 새로운 방법, 예컨대 김정일을 직접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 해 보려 할 것이다. 또 오바마는 그의 취임사에서 미국의 외교 안보전략의 기본이 동맹주의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계화 경제와 개방주의,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지도자이다.

FTA는 반듯이 미국상원의 인준을 받게 될 것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미국이 한미 FTA를 거부한다면 오바마의 미국은 근본적으로 역사에 역행하고 후퇴하는 나라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재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머지않아 FTA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우리자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

점증하는 북한의 대남 위협과 위기관리 – 전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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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 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점증하는 북한의 대남 위협과 위기관리

전 인 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1. 북한의 대남 위협

<북한의 강경하고 적대적인 대남 위협과 적대적 행태로 인하여, 긴장된 한반도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부터 비난과 비판을 서슴지 않아 왔었다.

북한의 고강도 위협이 계속되고 북한이 한・미의 대응을 잘못 계산한다면,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남북관계 악화는 물론, 무력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의 위협이 실제 무력도발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고 예측불허지만, 휴전 후 지난 50여 년의 대남 적대행태를 볼 때, 우선 대북 경계태세를 강화한 후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위기관리 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북한의 경고나 위협들을 일산적인 것으로 무시해 버리거나 과소평가한다면, 북한의 동기나 대남 적대행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

작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이른 새벽 해안을 따라 산책 중이던 남측 관광객이 북한 초병에 의해 피살되는 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일로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전면 중단시켰으며, 개성공단 상주인원들을 절반으로 감축했고, 통행을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바 있다.

북한군은 지난 1월 17일 ‘전면 대결상태에 진입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노동당 소속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월 30일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하면서 “지난 시기 북남 사이에 채택된 모든 합의들은 이미 사문화되고 백지화 되어 우리만 구속 받을 필요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특히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조항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2월 1일 자 노동신문은 1월 30일의 조평통 성명을 거론하면서 “북측 경고에 대한 남한 정부의 외면이 현재 한반도 정전상태를 감안할 때, 군사적 충돌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2. 북한의 전략적 공세 원인

북한이 어째서 이토록 위협적인 대남 강경책을 택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중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겠으나, 그 이유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추진으로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획득했었으나, 이명박 보수 정부 등장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후퇴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말기 10・4남북공동선언을 통하여 남측지원을 확보했으나, ‘비핵・개방3000’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전제가 붙은 대북 정책으로 인하여, 대규모 남측 지원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게 되고 말았다.

둘째,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 하에 남한에 대해 공세적 정책과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셋째, 북한은 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미국의 안보환경을 이용하고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유연성을 지닌 대북 정책을 기대하면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 시절과 대조되는 새로운 변화로서, 한국은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큰 신경을 써야 하며,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측의 협조도 구해야 하는 외교적 과제를 지니게 되었다.

넷째, 북한은 김정일 ‘유고’ 가능성과 김정일 이후를 부정적으로 크게 취급한  남한사회의 적대적 행태에 대해 크게 분개한 것으로 생각된다. 혹한기 군사훈련과 풍선을 이용한 대북 전단(삐라) 살포도 북한 지도층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경제적으로 무척 어렵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남 강경책은 인민의 불만과 불평을 외부로 돌리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여섯째, 북한 내부사정의 악화는 체제유지 차원에서 김정일과 강경한 입장의 군부 가 상부상조의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북한 군부 및 당 지도층이 김정일의 이름으로 강경한 대남 정책을 계속 추구한다면, ‘상생공영’과 ‘대화’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된다.

3. 북한의 생존을 위한 선택

북한이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를 위한 당국 간 합의를 무효화하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며, 남북은 군비경쟁과 경제사정 악화 등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남북 양측 모두가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고통을 받는 처지에서, 보다 큰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북한의 대남 위협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사고방식이나 득실계산은 우리와 다르다.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일 정권 유지를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있는 북한사회에서, 인민의 개인안보와 인권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인민의 살길을 제시하는 좋은 모델이지만, 북한 지도층은 중국 따라 하기를 두려워하며, 강경보수파들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개혁과 개방은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약속한다. 개방과 개혁 없이는 북한의 장래가 없다. 북한의 살길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난의 행군이나 선군정치가 아니라, 과감한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간다면, 핵 포기도 가능해 진다.

북핵 문제 해결은 북한의 난관돌파의 열쇠가 된다. 북한이 검증을 통한 비핵화에 응한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응할 것이며, 북한의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및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북한은 눈치만 보지 말고 조속히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27일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6자회담은 필수적임을 강조한바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 검증서와 모든 세부 이행조치를 문서로 서명하기 원하나,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피력하면서도  여전히 지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1월 30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중국의 6자회담 의장국 역할 수행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지난 1월 23일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왕자루이(王家瑞)를 맞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중이며, 중국과 협조를 이뤄 6자회담을 부단히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한 김정일의 발언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미국과 북한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남북관계도 크게 변할 것이다.

4. 한국의 과제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편으로 유감 표시와 더불어 의연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 군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한국의 수세적 반응을 당연하고 적절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성급한 반응과 지나치게 강경한 대응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우선 현 남북 간의 긴장상태를 안정시키고 나서 차분히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동시에 중국・북한 간의 특별한 관계를 활용하기 위해 대중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사태악화를 방관하는 것 보다,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겉으로는 침착히 대응하되 속으로는 부단히 외교적 접촉을 시도하고, 분열된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경우에 따라 단호한 대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으나, 동시에 북측에 대해 유연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정부는 ‘비핵・개방3000’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하며, 북한의 공세나 위협에 대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미 공조 강화 외,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다양한 분야에서의 꾸준한 협력 및 비핵화가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이야 말로 진정한 윈-윈과 상생공영의 길임을 북한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때까지, 한국은 거시적・장기적 차원에서 북한을 꾸준히 설득하고 투명성이 강화된 인도적 지원을 적극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신년 인사 – 박근(본 협회 회장)

박 근 - 본 협회 회장

박 근 – 본 협회 회장

신년 인사

박   근
본 협회 회장

애국회원 여러분님, 애국 후원자 여러분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가정에 행복이 가득 차고 건강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한미동맹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새해 아침에 한 번 더 되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지리와 우리 주변의 국제정치정세, 즉 우리의 “지정학”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세계의 4대 강국 즉 제1(미국), 제2(중국), 제3(러시아), 제4(일본)에 둘러싸여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이름도 힘도 없는 후진 쓰레기가 아닙니다. 주옥같이 빛나는 탐스런 동북아의 새 별로 떠올랐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체제나 생활수준에서 그들보다 앞서가기 때문에 부담스런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도의 후진국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느낄 것입니다. 또 북한은 한국이 가만히 있더라도 한없이 밉고 겁날 것입니다. 이것이 2009년 새해아침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정학의 실상입니다.

민주주의 간에는 전쟁하지 않는다. 라는 정치학자들의 이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일본과 한국은 독도를 놓고 전쟁할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에 1941년에 군주독재 일본이 민주주의 미국을 급습하여 2차 대전을 일으켰듯이 독재와 민주주의 간에는 아직도 전쟁의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이 완전히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을 놓고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은 눈에 거슬리는 동북아의 주옥이 아닙니까?

우리가 아직도 국제정치에 눈이 멀어 있을 20세기 초에 “독립정신”이란 저서를 펴낸 우남 이승만 선생은 이런 우리의 지정학적 약점을 잘 알고 있은 유일한 지도자였습니다. 북한의 남침에서 살아나자 그는 한국이 살길은 미국과의 동맹뿐임을 간파하고 한미동맹을 실현 시켰습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을 피하려면 두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가 완전히 민주주의 국가가 되던지 한미동맹을 보전하고 강화해 나가 던지의 두 길입니다. 물론 민주주의 간에도 평화적 경쟁은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 간에, EU와 미국 간에 서로 경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동맹은 이러한 평화적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지난 50년 사이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발달한 이유는 물론 이승만, 박정희 같은 위대한 지도자와 이들이 이끈 우수한 우리 국민의 자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똑 같은 자질을 수천 년 간 갖고도 우리는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지난 50년간에 우리가 눈부시게 떠오를 수 있었던 밑바닥에는 한미동맹이라는 커다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은 이승만뿐 만 아니라 박정희에게도 비전과 포부와 목표를 안겨준 영감의 원천이라고 믿습니다.

저 북한을 봅시다. 그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이가 왜 저런 나라밖에 못 만들었습니까? 왜 더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도 저렇게 되었습니까? 이북 동포는 우리보다 못한 열등 족이 아니지 않습니까? 역사와 문화를 달리한 이방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날에 벌어진 남북 간의 격차는 결국 한미동맹이 남한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주는 자극과 비전, 그리고 북한의 조중, 조러 동맹이 북한 주민과 지도자들에게 주는 쇠고랑 같은 구속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미국도 민주주의 한국과의 동맹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중요한 세계적 동반자로서 한미동맹의 가치는 솟아오르는 태양과도 같습니다.

우리와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가치는 바다와 같이 넓고 하늘과 같이 높습니다.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은 통일도 하고 세계 일류 선진국가가 되어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그 가치가 크기 때문에 그것을 해체하려는 도전도 크고 끈질깁니다. 국내에는 아직도 미국에 원한을 품고 있는 일부 국민이 데모에 매달려 있는 형편입니다.  북한 김정일과 그 체제는 미국을 제일의 적으로 간주하고 미국만 없으면 남한을 간단히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미동맹이 얼마나 싫었던지 우리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 중인데도 외무성이 “한미동맹은 냉전의 유물”인데 왜 필요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함을 저질렀습니다. 말은 적지만 러시아도 마찬 가지라고 믿습니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자 난데없이 한국 지도층 일각에서 한중일 3국이 금융공조를 하자는 발상을 내놓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가 아직도 국제정세에 눈이 멀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중국은 수조달러의 외환을 보유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 돈을 풀어준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경제발전의 엔진입니다. 이 엔진은 그러나 가끔 고장이 나서 수리도 해야 하고 또 급유를 받아야하는 엔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서운 순발력으로 인류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내가 몇 일전에 이불을 하나 샀더니 “메이드 인 차이나” 이었습니다. 중국제품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싸고 좋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21세기 세계의 새 패권국이 될 수 있을 까요?

중국은 그 인구의 크기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아니 지난 수천 년간 세계에서 제일 큰 GDP를 누려 왔을 것입니다. 1830년대 만 해도 중국경제는 세계의 1/3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중국은 역사상 세계적으로 패권다운 패권을 누리지 못했을 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과 학문은 고대 희랍에서 로마를 거쳐 근세 서구라파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구시대를 만들어냈고 20세기부터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시대를 낳고 있습니다. 이 세계사의 흐름은 학문과 과학과 기술의 흐름입니다. 또 그 흐름의 밑바닥에는 자유라는 인류이성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중국이 각종 학문과 과학과 기술에서 세계의 선두주자가 되어야만 세계패권을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것은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을 때만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날이 언제나 올 수 있을지…

여하튼 간에 우리는 우리 후손을 위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켜나갑시다.

2011 한미우호의밤 축사 –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한미우호협회 송년의 밤 행사 연설(2008년 12월 4일)

따뜻한 환대와 올 한해를 기념하는 뜻깊은 송년 행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올 한해에도 한미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따뜻하게 저를 환영해주신 박근 대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인적교류야말로 오늘날 한미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33년전 한국에 살았을 때 저는 많은 한국 분들이 처음 만난 미국인이자 유일한 미국인이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시겠지요. 그 충격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살던 마을에서 미국에 가 본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정말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수 십년이 지난 후 한국에 다시 돌아온 저에게 한국의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밤새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30년 전에 비해 한국 사회는 한미관계만큼 훨씬 다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둘째, 한국과 미국 국민들은 30년 전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같은 폭넓은 이해는 여기 계신 분들의 한미 관계 발전에 대한 헌신적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이 처음 탄생한55년전부터 오늘날까지의 모습을 살펴보면 한미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뿐만 아니라 전세계 무대에서 긴밀히 협력해왔습니다. 박근 대사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이자리를 빌려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사에서 주한미군과 함께 협력하고 있는 한국군에 한반도뿐만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훌륭한 파트너로 함께 노력을 해주신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미 양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이 그랬듯이 사회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미 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북한의 주민들이 하루 빨리 빈곤과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안보 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새해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새해의 또 다른 과제 중 하나는  한국과 미국, 전세계가 현재 겪고 있는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계속해서 협력해나가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뿐아니라 미국에서도 적절한 시기에 한미 관계에 혁신을 가져올 한미 FTA에 대한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8년은 한미 우호관계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욱 돈독해진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미 양국 지도자의 긴밀한 협력이 돋보였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서울, 그리고 워싱턴 D.C. 에서 잇따라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양국의 외교 장관, 국방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만나 양국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의 전통을 다졌습니다.

특히 기념할 만한 성과 중 하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오랜 숙원이었던 비자면제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비자면제프로그램 덕분에  더 많은 한국 국민들이 좀 더 쉽게 미국을 왕래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새해에는 본격적인 결실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매년 50만건의 비자 인터뷰를 하던 대사관 직원들이 이제 다른 좀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양국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1월에 출범함에 따라 2009년은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얼굴,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한 여러 변화를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견고한 한미 동맹에 대한 굳건한 의지는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박근 대사님께서 “엄마” 이야기를 하셔서 생각이 났는데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리아 마모킨이라는 미국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60년대 한국에 와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제 평화봉사단원 선배입니다. 두 달 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한 평화봉사단원 모임 참석차 글로리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그녀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글로리아는 1967년 서울에 도착해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학에서 그녀가 청각장애인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전문 치료사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들과 만나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세브란스 병원의 언어 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글로리아는  의심스러운 표정의 의사들이 가득 모여 있는 강당에서  어린 청각장애 소년과 그 어머니와 함께 강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의사가, “미국에서는 청각 장애인들이 말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한국에는 그런 기술이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시연해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데다 아는 한국말로 별로 없었던 글로리아는 그 어린 소년이 “엄마”라는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엄마”는 글로리아가 아는 몇 안되는 한국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아이는 당시 7살 정도로 평생 한 마디도 해본 적이 없는 청각 장애인이였습니다.

글로리아는 배운 모든 기술과 수단을 총동원해 아이가 말을 하도록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모여 있던 의사들이 그녀에게 별다른 기술이 없다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글로리아는 당황한 나머지 아이의 어머니에게 그만 가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는 마지못해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문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  아이가 “엄마”라고 외쳤고  소년의 어머니, 의사, 글로리아까지 모두 울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리아는 바로 그 다음부터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옛날 옛적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요? 글로리아가 두 달전 제 관저에 왔을 때 여러명의 의사와 치료사들과 함께였습니다. 이들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언어 치료 및 청각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이 센터는 청각 장애인과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세계 최고의 클리닉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의사들은 이제는 60대가 된 글로리아를 잊지 않고 오랫 동안 연락해왔다면서 그녀가 오래 전에 한국에 씨를 뿌렸고 이제 그 씨가 자라 이렇듯 훌륭한 나무가 되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야말로 끈끈한 양국의 인적 교류와 한미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살아 있는 “엄마”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Remarks at the Welcoming Party for Amb. Stephens and the Year-End Party

Park, Keun (President, KAFS)

Park, Keun (President, KAFS)

Remarks at the Welcoming Party for Ambassador Kathleen Stephens and the Year-End Party (12. 4. 2008, Hotel Shilla)

Park, Keun (President, KAFS)

The very first word I learned was 옴마, and whether in joy or in distress, how many times I called out 옴마! 옴마!

Ambassador Stephens, you are our 옴마 Ambassador! We heartily welcome you and congratulate you.

We are gathered here not to forget, but to celebrate, a rewarding year just passing and a hopeful new year at hand. In our new President, and in America’s new President-elect, and above all, in our 옴마Ambassador’s return in silk dress, we have ample cause for celebration. Even the current financial crisis should not dim the bright star of our hope and expectations.

While still very young, Ambassador Stephens, you embraced the quintessential American spirit of service for mankind. You volunteered to help an unknown people with unknown language and culture. With your own young decision to serve in the Peace Corps in Korea, you embodied the spirit of your new President’s “audacity of hope”.

Now, you are back with the same brave and loving spirit. Because of your unshakable love of Korea, our Alliance will become ever more an embracing Alliance. Under your leadership, the blood, the flesh, and the bones of peoples of Korea and America will come to pulsate together as one.

Let us give Amb. Stephens our hearty applause!

General Lee Sung Chul, General and Mrs. Fil, Warriors of the USFK, once again we thank you for your sacrifice. We offer this evening to you as a token of our eternal gratitude for liberating us from a colonial rule, from the Communist invaders, and for keeping us secure in democracy and prosperity.
Joyful Holidays and a Happy New Ox Year to you!

젊은 여성으로 낯 서른 한국에 자원봉사자로 오셨던 스티븐스 대사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말한 “대담한 희망”의 정신을 일찍이 몸소 실천 하신 것을 존경 합니다.

한국에 대한 대사님의 사랑은 한미동맹을 더욱 포용하는 동맹으로 만들 것입니다. 한미 두 나라 국민의 피와 살과 뼈는 함께 하나같이 맥동 치게 될 것입니다.

손경식 상공회의소 회장 내외분님,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님, 박재규 총장 내외분님, 한미 우호와 동맹을 사랑하는 기타 애국 귀빈 여러분님, 자리를 빛내주시고 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

스티븐스 대사님, 미국 출장 중인 샤프 사령관을 위시한 주한미군 용사 여러 분님,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북한 공산 침략군의 격퇴와, 한국 민주주의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미국에게 영원한 감사를 품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 저녁의 준비를 위해 협찬해 주시고 협조해 주신 우호협회의 애국회원 여러분님과 한철수 준비위원장과 준비위원 여러분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행복과 건강을 빕니다.

오바마의 당선과 한국의 장래-박근(본 협회 회장)

박   근   본 협회 회장

박 근
본회 명예회장

오바마의 당선과 한국의 장래

박   근
본 협회 회장

그날 보수주의 철학의 신봉자로 자처해온 나는 울었다. 파출부도 TV앞에서 눈물을 글썽 거렸다. 오바마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미국과 세계 방방 곳곳에서 그날 흘린 눈물을 합친다면 아마 작은 물줄기를 이루었을 것이다. 흑백인 사이에 난 혼혈아 이지만 미국에서는 흑인으로 분류되고 통하고 자처한다.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5년 전만 해도 농담거리 이상의 미친 놈의 환상에 불과 했다.

그의 당선은 미국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니 그 이전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미 깊숙이 변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특히 미국인구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백인들이 그 동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 있었다는 증거이다. 즉 미국은 새로운 나라로 변해 있은 것이다.

물론 오바마의 혼혈 유전자는 흑 백인을 융합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뛰어난 지성과 화술, 각종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에도 격정에 휘말리지 않은 차분한 성격, 그가 발산하는 이미지의 참신함 등 등, 그의 매력은 유권자들을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또 인기 없는 이라크 전쟁, 대선 말엽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는 부시 공화당 정부에 대한 피곤감과 겹쳐서 유권자들을 오바마에게로 몰았다. 원래 대권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차지하기 어려운 보물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노예국가로 건국하고 노예해방 전쟁에 가족끼리 피를 흘렸고, 얼마 전 까지 같은 식당 같은 버스 자리에 앉지 못한 흑인, 그러한 한 젊은이에게 미 국민은 미국의 최고 권력, 따라서 세계의 최고 권력을 안겨주었다. 그 동안 쌓고 흘려온 흑인의 원한과 눈물을 하루아침에 환희의 눈물로써 씻어 주려는 듯이…

사회주의자니 테러리스트니 하는 딱지를 덮어씌우려던 대선의 진흙바닥을 바라보며 나는 오바마를 지지했고 그의 당선을 바랬다. 그의 당선은 미국이 건국과 노예해방에 이어 세번째로 새 출발을 하는 한 기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을 세계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강할 뿐만 아니라 가장 도덕적으로 앞선 나라로 재 정립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당선 뒤에는 세계사의 거대한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자유가 전진하면 그 속에서 솟아나오는 거역 못할 새 물결, 더욱 이성적이고 더욱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신비로운 물결, 고대 아테네와 로마와 근세 유럽, 그리고 미국을 만들어낸 새 자유의 물결, 이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열광과 기쁨 속에 오바마를 당선시킨 물결 아닌가.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자유와 정의가 세계 어느 나라도 다다를 수 없는 새 고지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은 쇠퇴로 향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로운 미국시대로 이끌고 나갈 새로운 자유와 정의의 나라이다. 더욱 자유로우면 더욱 이성적이 되고 더욱 이성적이면 더욱 정의로워 진다. 민주주의적 법은 점점 커지고 넓어지는 인간의 자유를 정착 시키고 정리하고 영속시키기 위한 인간 자유의 자기 관리의 산물이다.

물론 자유의 전진은 보편적이지도 않고 직선적이지도 않다.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부서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래에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는 지난 5000년간 일관되게 더 큰 자유로 향해 흘러왔다.

이것이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진짜 보수주의의 핵심사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바마는 미국이 당면한 여러 현안, 특히 금융위기와 안보, 맑은 에너지와 국민 건강보험, 그리고 교육 문제 등을 포함한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들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은 분명히 우리나라의 좌익이나 좌파의 부류에 속하지 않는 건전한 보수주의적 입장이다.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에 속하는 입장, 즉 우리나라의 개혁 보수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더욱이 그는 보수주의 공화당과 손잡고 함께 협력해 나가겠다고 하고 있다. 그를 노무현이나 김대중 부류의 좌익으로 판단한다면 틀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금융위기에 대한 긴급처방은 오히려 부시보다 더 보수주의적인 인상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북핵 문제와 FTA문제에 대한 그의 정책은 어떤가?

첫째 오바마는 공화당 정부처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일본보다 한국을 더 중요시 하지 않는가 싶다. 선거전에서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그가 한국과의 FTA에서 자동차부문의 재협상을 주장한 것을 놓고 FTA에 대한 한국의 소신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 선거 전략의 일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GM와 Ford사가 구제 금융을 받지 못하면 파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 않는가.

그렇더라도 한국은 자동차부문을 포함한 기존 FTA를 사수할 수 있고 사수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우방 사이의 외교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우리 국회가 단결해서 만장일치, 또는 압도적으로 통과 시키면 미국 상원으로서도 별도리 없을 것이다. 콜롬비아나 파나마와 달리 한국은 미국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하로 빨리 FTA의 국회 비준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공을 미국 측에 넘겨야 한다. 오바마 정부에 줄을 못 대서 허둥지둥 하지 말고 정면으로 가장 중요한 동맹국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에 국회가 정략과 정치싸움으로 FTA체결에 차질을 일으킨다면 우리 국민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반듯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 앞에 그 무책임한 해국(害國)행위를 그냥 두고 넘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오바마의 당선을 기다렸다가 이제 잔꾀를 부리면서 시험하기 시작했다. 핵도 가지면서 얻을 것은 다 얻겠다는 기존전략을 고수하면서 그 동안 약하게 보여진 이명박 정부도 함께 싸잡아서 효과의 극대화를 노리는 듯하다. 그러나 오바마는 굉장히 강하고 총명하다. 지난 2년간의 기나긴 선거전을 통해 발휘한 그의 추진력과 지도력 앞에 미국에서 나 아니면 내놓으라고 자처하던 대단한 인물들도 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김정일 이가 어느 정도 아픈지는 몰라도, 또 그의 대타가 얼마나 똑똑하고 강한지는 몰라도 오바마는 백전불굴의 용장이다. 걱정할 것 없다고 본다.

북핵문제는 오바마의 등장으로 이제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6자회담은 중국에 대한 잘못된 기대에서 발상된 구상이었다. 중국의 협력 없이는 북한 핵을 제거 못할 것이라는 기대, 중국이 한 미 일의 압력 때문에 핵 제거에 협력해 줄 것이라는 기대, 이 두 기대는 모두 빗나갔다. 실제로 현재까지 그런 전제나 기대가 얼마니 틀린 것인지 충분히 입증 되지 않았는가?

6자회담은 핵문제 해결 후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시에 동원 되어야 했을 발상에 불과 하다. 중국은 말로 움직여지는 나라가 아니다. 나는 한때 중국을 움직이는 최후의 방안으로 한국이 핵무기의 독자 개발카드로써 중국을 위협해야 한다고 주장 했었다. 그러나 전략적 사고와 외교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지도층 자신부터 잘 납득 못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제 오바마가 국제 안보문제의 가장 골치 거리에 대처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최고 당사자끼리 둘이서 직접 만나야 한다” 는 처방을 내 놓았다. 참신하고 기대 해 볼만 한 발상이다. 특히 이 직접대화 방식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라는 수수께끼적 간여를 배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김정일이가 이면에서 중국과 내통하고 협력할 수는 있지만 직접 대화의 이점은 그것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론 김정일의 건강문제가 대 전제로 깔려있기는 하다. 그러나 김정일이 불능해지더라도 이 방식은 그의 후계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만큼 꼭 시도 해 볼만한 발상이다. 김정일이가 오바마를 달콤한 말로써 기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옷을 벗던지 쓰러지던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는 가장 큰 기대이고 희망이다. 어떻든 간에 미국과 손잡고 있는 대한민국의 앞은 새 미국의 앞길처럼 밝게 튀여 있다고 믿는다.

시험대에 선 남북 및 북미관계-전인영(서울대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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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 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시험대에 선 남북 및 북미관계

전 인 영
서울대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남북관계가 기로에 처해 있다. 북한, 특히 북한 군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은 지난 11월 12일 전격적으로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차단, 남북 직통전화 단절 및 북핵 시료채취 불허 등 일련의 강도 높은 대남・대미 정책결정들을 발표했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남북 간 긴장완화와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마저 중단시킨다면, 남북관계는 후퇴와 파국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방적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아 온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대신에, ‘남북기본합의서’ 존중과 ‘비핵・개방・3000’ 및 인권 등을 강조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경색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기피하고 지연시켜 온 북한은 남한의 소극적 대북 지원, 남한 민간인에 의한 대북 삐라 살포 허용, 남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의 대북 강경 발언, 그리고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 채택에 공동 발의 국으로 나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과 반감을 표출해 왔으며, 이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도 역도라는 노골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

남한에 대해 6・15공동선언 및 10.4남북정상선언 준수 요구와 더불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이, 동시 다발적으로 6자회담 재개를 어렵게 하는 북한의 ‘핵 시료 채취’ 거부 입장을 선언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북한의 정책이 이미 강경노선으로 선회했으며, 상황변화에 따라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우려이다. 최근의 대남・대미 정책 변화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또는 국방위원회 결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며, 군부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 된다.

‘기다림도 전략’이라는 냉정함과 여유를 보여 준 이 대통령의 발언에도 일리는 있으나, 이러한 소극적 대응만으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개선하기는 힘들 것이다. 북한의 상황인식 및 문제점들을 지적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남한으로서도 독재국가이며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개인숭배를 중시하고 있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한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거시적・장기적・전략적 시각의 유연한 정책과 조치들을 택해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지난 7월 11일 새벽에 금강산 관광지역 해변에서 산책 중이던 50대 박왕자 씨가 북한 초병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남북관계가 생각보다 크게 꼬이기 시작했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관광객 피살사건과 북한군부의 억지 및 미숙한 사후처리는 지난 10년 동안 근 200만 명이 다녀 온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회의에서 이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남북이 외교적으로 대결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다.

서해교전이나 금강산 총격 사건은 10년 기간의 햇볕정책 추구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여전히 예측불허의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힘든 관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개성공단 사업마저 중단된다면, 결과는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총 2,000만평 개발 대상 면적 중 제1차 100만평만이 개발된 개성공단에는 3만 3천명의 북측 근로자, 83개 남한 기업, 그리고 1,200명가량의 남측 인원들이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근로자 1인 당 60여 불을 지급받는 개성공단은 북한의 달러 박스인 동시에,  남북경협의 상징이며 북한 인민들을 위한 자본주의 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금전으로 개성공단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보다 큰 이유는 공단지대가 남북 간의 긴장완화를 위한 상징적 사업인 동시에, 북의 남침을 어렵게 하는 비무장 완충지대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사업 중단이 북한의 중국 의존도 심화와 더불어 통미봉남을 가속화 시킬 수 있음을 지적 한다.

남북화해와 협력 및 통일을 위한 중요한 전략적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 모두의 큰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거시적・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평가되어야 한다. 잘못 다루어 질 경우 시험대에 오른 남북관계가 가부간 어느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기로에서, 남북은 신중함과  인내 및 관계개선 의지를 필요로 한다.

지난 12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 달 크리스토퍼 힐 국무성 차관보가 평양 방문을 통해 북측과 합의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검증방법은 현장방문, 문건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북한은 “힘들게 이룩된 서면합의 외에 한 글자라도 더 요구한다면 그 것은 가택수색을 시도하는 주권침해 행위가 될 것이며, 필연코 전쟁을 불러오게 되어 있다.”고 위협했다. 지연 전략으로 부시 행정부와의 북핵 문제 타결을 회피해 온 북한이 이제 출범 이전의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이토록 빨리 위협적 강수를 둔 이유는 오랜 대미 관계에서 터득한 나름의 경험과 득실계산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 휴전 성립 후로부터 현재까지, 북한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힘을 두려워하고 존중해 왔으며 승산 없는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극력 회피해 왔다. 9・11사태 발생 이후의 이라크 및 아프간에서의 힘겨운 대 테러전쟁 수행과 미국 발 국제금융위기는 미국의 일방주의 한계와 영향력 감소를 여실히 보여 주었으며, 정권교체기에 처한 미국 사회의 공백과 변화를 이용한 대미 도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오바마 당선자는 북핵 불허라는 기본 입장을 유지할 것이나,  유세기간 북한과의 직접대화 의사를 밝힌바 있다. 북측이 유리한 협상고지 점령을 위해 시료 채취 거부라는 강수를 두었다면 시간이 걸려도 평화적・외교적 해결 여지가 있겠으나, 시간을 벌어 파키스탄처럼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 한다는 동기와 전략 및 의지를 지녔다면, 미-북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에도 계속 심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에 ‘작은 위기’(mini-crisis situation)를 조성한 최근의 북한 정책결정 및 행동은 미국 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세이며, 권력교체기에 자의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된 임기 말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고, 한창 출범 준비로 바쁜 오바마 정부에 대한 경고요 시험이다.

우선 생각 할 점은 북한의 대남 강경정책 전환이 권력 엘리트의 국내외적 안보환경 변화 인지에 따른 정책 재조정 필요성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북한은 국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 군부 위상 강화 및 경제난 극복 및 민심동요 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대남 강경책으로 공세를 취하고, 동시에 권력교체기의 미국에 대해 유연한 대미 정책 추진과 더불어 미국의 의지를 테스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과 미국 간의의 긴밀한 대북 정책 공조 필요성을 의미한다.

지난 8월 14일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현실로 믿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대남 및 대미 정책은 강도 높은 대결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 쌍방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화를 통한 적극적 갈등해소 대신 각각의 입장 강조를 통한 갈등심화의 길을 걸어 왔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중요하고 효과적인 대미 협상 지렛대로 십분 활용하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북한은 수사적으로 민족 간의 화해・협력 또는 공생・ 및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긴장과 대결을 조장・심화시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남북 간의 갈등심화나 위기발생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잘못된 인식과 정치적 계산을 중단하고, 남한은 소극적 대응이 아닌 정책적・전략적 차원의 대북정책을 수립・추진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상황논리와 득실계산에 따라 각각 다른 대남 정책과 대미정책을 수립・추진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긴밀하고 공고한 한미 공조 강화는 물론이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일・러 3국과의 전략적 관계 강화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핵을 포기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잘못된 인식과 계산으로 남한 정치과정을 파악하고 이용하려 들지 말고, 통미봉남 대신 견고한 한-미 동맹을 다짐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초당적 외교・국방정책 특성과 강점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북한 변화는 민초(民草)에서부터-유석렬(본지 편집위원장)

유  석  렬(본지 편집 위원장)

유 석 렬(본지 편집 위원장)

북한 변화는 민초(民草)에서 부터                                          

유  석  렬(본지 편집 위원장)

1. 체제변화유형

일반적으로 체제의 변화는 지도층이 이끄는 ‘위로부터’의 변화, 민중이 주도하는 ‘아래로 부터’의 변화 그리고 외압에 의한 ‘옆으로 부터’의 변화 유형이 있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의 변화는 극히 제한적이거나 ‘위로부터’의 변화 또는 변화자체를 거부한다. 변증법적 발전은 ‘모순’이 있어야 하는 데 주체사상은 모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식 유형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것으로서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며 일을 해내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변화를 거부한다. 절대무오류의 수령이 통치하는 사회는 이상사회라는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체제의 붕괴이며 기득권층의 자멸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면 그것은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제한적이고 선별적일 수밖에 없다.

2. 변화거부로 경제낙후

북한은 지리적, 경제적 여건이 남한보다 월등하다. 한국보다 넓은 땅, 풍부한 지하자원, 빼어난 경치, 지정학적 요충지, 주민의 근면성, 지도자의 경제마인드 등 한국보다 좋은 경제 여건을 갖추었다.

채굴 가능한 우라늄 400만t은 세계 다른 지역의 총 매장량과 비슷한 규모이며 그 잠재가치는 남한이 24배인 2,300조원에 달한다. 마그네사이트는 그 매장량이 35억t 규모로 세계 1위라는 것이다. 지하자원만 잘 개발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나라다. 김일성은 정권수립 직후부터 영토 확장을 노렸고 현지지도, 속도전, 주체농법, 대안의 사업체계, 천리마운동 등으로 주민들을 경제 현장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북한은 1960년대를 통해 한국보다 잘사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급격한 변화의 외면으로 기술낙후, 자연재해에 겹쳐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북한이 변화를 거부하고 1인 독재 우상화와 주체사상에 매달려 현지지도에 의존하는 한 북한 경제의 몰락은 사필규정이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외면하고 체제유지를 위한 ‘위로부터’의 변화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자체의 힘보다 한국의 지원에 힘입은 바 컸다.

3. ‘햇볕’으로 지도층 변화 추구

‘국민의 정부’이후 지난 10년간 한국정부는 ‘아래로’나 ‘옆으로부터’ 북한 변화 전략을 내려놓고 북한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위로부터’변화에 편승했다.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의사가 없으며 가능한 분야부터 화해와 협력을 추진했다.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반대하며 모든 현안은 대화를 통해서 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햇볕, 평화, 번영’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예상과는 달리 중앙방송을 통해 “누가 벗어야 하는 가” 제하에 햇볕정책을 비난했다. 햇볕정책에 의한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와 협력은 북한체제의 와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층이 주장하는 논리는 분명하다. 북한의 미약한 경제력과 남한에 비해 열세인 군사비를 들어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수 없으며 남한 안보를 위협 못해, 진정성을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남북경협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선공후득’ 선제적 양보 방식으로 우세한 남측이 먼저 양보함으로써 북한을 심리적으로 안심시켜 뒤늦게라도 양보를 받아 낸다는 것이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어 남북주민이 자유로운 상호왕래를 하면 그것이 바로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다. ‘위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평화, 화해, 협력, 사실상의 통일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단계 하나하나가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고 ‘사실상의 통일’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인데, 북한이 이러한 논리를 수락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생존 전략은 일정한 수준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체제를 강화시키고 주한미군 철수 그리고 한국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4. NGO의 구제와 선교, ‘위로부터’ 변화추구

남한의 종교 및 NGO단체들은 지난 10년 동안 구제와 선교를 앞세워 ‘위로부터’ 변화를 추구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헐벗고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구제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구제 사업은 투명성이 문제였다. 북한정권을 통해 구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지원해 준 구제물품이나 현금의 정확한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다.

기독교단체들은 선교라는 명목으로 북한정권과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게 거액의 돈을 갖다 주었다. 기독교 단체가 1995~2004년까지 북한에 지원한 돈이 2,700억 원이나 된다고 하니 그 이후에는 훨씬 많은 돈이 북한에 들어갔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그련은 기독교단체가 아니다. 조선노동당 통일 전선부 산하 단체이고, 강영섭 위원장은 조그련을 대표하기에 앞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10명 위원 중에 하나인 정권의 핵심세력이다. 그의 부친인 강량욱은 김일성의 외조부로서 1923년 목사안수를 받고 암정교회를 섬겼다.

김일성이 정권을 잡자 기독교인들을 숙청하는 데 앞장선 ‘ 북한판 가롯유다’였다. 기독청년들이 던진 폭탄으로 작은 아들과 딸이 폭사했으나 강영섭은 무사했다. 기독교인들은 가족을 폭사시킨 철천지 원수이지만 선교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동안 기독교단체들은 북한정권과 조그련을 상대로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봉수교회, 칠골교회, 평양제일교회 등을 새로 짓거나 증축했고, 수백억 들어가는 조용기 심장전문병원과 평양 과기대 등을 건축하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면 평양, 신의주, 원산, 남포등에다 대형교회를 짓고 선교 전초기지를 삼겠다는 교회들이 줄줄이 서 있다. ‘위로부터’의 변화를 끌어내서 북한복음화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주체사상과 공존할 수 없음을 알고도 이를 계속하는 것은 김정일 정권에 힘을 실어주어 북한주민들의 고통과 인권유린을 지연시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억지시키는 일이다.

5. 진정한 북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북한의 진정한 개혁개방으로의 변화는 ‘아래로부터’ 만이 가능하다.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구제하고 선교를 하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철저한 감시와 탄압 때문에 북한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나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북한사회는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일탈되어 있으며, 군인이나 정부관리 들도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크게 떨어져 있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돈이면 죽을 사람도 살리는 풍토가 되었다.

지난달 중국 통화시에서 북한지하교회 지도자 한사람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다. 지하교회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해지고 있으며 지하교회가 빠른 속도로 북한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어림잡아 북한에는 30만명의 지하교인들이 있으며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시작해서 위를 바꾸는 것이다. 북한에 성경을 배달하고 복음풍선을 띄우고,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광야의 소리’방송을 계속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 온 탈북 동포들을 모아 기간별로 신앙 훈련을 시켜 북한에 들여보내 지하교회 지도자로 활동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북여성들을 인신매매나 브로커로부터 보호하여 직업교육과 신앙훈련을 시킨 후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조선족 보따리 장사를 통해 북한 복음화에 앞장세우는 방법 등이 있다.

이제까지는 변경, 북방지역 중심으로 탈북자, 지하교회 양육 사업이 중심이 되었으나 앞으로는 북한에 양육해 들여보낸 지하교회 교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하교인들이 계속 늘어나야하고 지도자가 양육되고 방송을 통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예배장소로서 교회가 준비되어야 하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 법, 문화의 기반도 필요하다.

북한이 복음화 되어 주민들이 자유, 인권, 평화에 눈이 뜨여 전체적인 힘으로 발전시켜 나갈 때 독재체제가 무너지는 ‘아래로부터’ 변화는 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한미가 필요로 하는 경제정책-권영훈(한양대 명예교수)

권 영 훈(한양대학교 명예교수)

권 영 훈(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한미가 필요로 하는 경제정책

권 영 훈(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으로서 시장경제체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국가질서정책>과 시장경제를 합리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경제질서정책>과 <과정정책>을 겸비한 삼위일체의 경제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난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과정이 신속히 전개되는 과정에서 국가와 시장 간에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형성되어져야만 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이르러서는 내부와 외부로부터 심각한 이중적 도전을 받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6개월 동안 우리는 벌써 세 번에 걸쳐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지난 늦봄부터 시작하여 100여일이 넘도록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이라는 괴담이 수도 서울의 중심부를 무법천지로 만든 촛불시위이다. 시위 초기에는 괴담에 잘못 현혹된 시민들이 국민건강을 걱정하면서 참가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난 10년간 등장한 그 많은 시민단체들의 일부가 삶의 한계선에 서있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군중히스테리를 조장하고, 그 결과 촛불시위가 점차로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되어 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자면 현장에서 검거된 1400여명 중 무직자가 21%이고 직업이 모호한 사람까지 합치면 무직자군이 37%나 되었다. 또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을 보면 첫 시위가 열린 5월 2일부터 100번째 시위가 열린 8월 15일 까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직접 피해 1조 574억원, 간접피해 2조 6939억원 등 총 3조 7513억원의 사회적 손실을 기록하게 되었다.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 한국경제연구원 9월25일)

이와 같은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가장 원천적인 근원은 양극화현상이 심화되어 사회적 불만을 품은 삶의 한계선상에 놓인 빈곤층이 증가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자면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중산층 가구의 비중은 68.5%(1966)에서 58.5%(2006)로 하락한 반면 빈곤층은 11.5%에서 17.94%로 증가하였다(KDI).

일반적으로 시민단체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로서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사회발전을 위하여 기여하는 조직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621억원의 보조금을 받았으나,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세부증빙서류나 영수증조차 확보할 수 없어 시민단체 보조금은 “눈먼 돈”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노무현 정부 5년간(2004~2008), 대학유치원 교원을 제외하고, 회원 수 7만3000명을 가진 전교조는 45억7497억원 그리고 회원수 15만7000명을 가진 한국교총은 13억510억원의 사무실 임대비를 정부로부터 지급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등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참여단체들은 지난 5년간(2003~2007) 방송발전기금으로 12억원을 받았으며, 이달 (2008년9월) 초에만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금년도 지원금 76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삶의 한계선상에서 곤경에 처해있는 국민들을 구제하고, 사회경제적 혼란상을 극소화시키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추진시킬 수 있는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경제질서정책>과 <국가질서정책>의 수립이 필수 전제조건이 된다.

두 번째로는
최근에 유포되고 있는 북한국방위원장 김정일의 건강소식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필연적인 과제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김정일 정권에게 3조 5000억원(김대중 1조 5000억원, 노무현 2조원)정도의 대북원조를 제공하였다. 햇볕정책이라는 이름하에 한국이 제공한 대북원조의 대부분은 현금원조였다.

그리고 지난번 한국대통령선거를 얼마 앞두고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략 14조 3000억원의 원조제공을 약속하였다고 한다(KIEP). 이와 같은 막대한 비용은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10.4 선언의 이행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서독도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약 18년 동안 매년 50만 마르크(약 3조원)가량의 경제 원조를 동독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원조액의 대부분은 독일 경제질서정책의 하부구조인 <동서독 경제협력기본법>에 따라 <결제수단(Verrechnungseinheit)>으로 계산된 현물원조였다.

다시 말하자면, 동독사람들의 생존보장을 위한 현물을 주로 서독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도록 투자하여 그 제품을 경제원조로 동독에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독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서독의 원조방식은
(1)동독으로 하여금 서독원조를 이용하여 핵무장과 군비확장을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동시에
(2)서독의 중소기업발전과 동서독 간에 경제 통합 그리고 동독 사람들의 생활안정을 동시에 이루도록 하고
(3)나아가서는 평화통일을 달성시키고자 하는 종국적인 목표를 향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
그 결과 독일은 1989년 우리의 개천절인 10月 3日에 통일을 성취하였다.

우리도 앞으로 안개 속에 싸인 북한에서 돌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단편적인 상황변화에 너무 당황하지 말고,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서독과 같이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와 효과적으로 긴밀히 협력을 하면 독일과 같이 평화통일도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건전한 <국가질서정책>과 효율적인 <경제질서정책>을 수립하고 확고한 <한미 동맹>의 기조 위에서 총력을 다하여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소문으로만 난무하던 <9月 위기설>을 참고하면서 실제로 다가온 <美國발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미칠 피해를 극소화시키고, 나아가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9月 위기설은 10년 전에 비하여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가계부채에서 부터 발단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풍선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는 가계의 빚 상환능력을 말소시키고 이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하여 주택담보대출이 연체되어진다. 따라서 부실금융기관이 등장하게 되어 자금난과 신용경색이 일어나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금리, 물가 그리고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는 급락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건설경기를 부양시키고자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하자마자 8月 21日 건설업체주가가 일제히 하락하였다. 또한 WSJ(Wall Street Journal)이 “한국에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찬양한 감세정책이 발표되자마자 9月 1日에는 종합주가지수가 약 60포인트나 급락하였다. 그리고 환율을 방어하기 위하여 3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투입하였으나 외환시장의 요동치는 파고는 진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메커니즘(mechanism)은 은행권으로 하여금 달러조달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수반되는 경기침체는 금융기관과 대기업들로 하여금 도미노현상으로 무너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9月 말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채권액 8조원을 상환하여 한국금융시장에서 이탈하게 되면 종국적으로 한국경제는 10년 전 악몽이었던 IMF사태 같은 것을 다시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항간에 떠돌던 9月 금융위기설이다.

<여우를 피하자 호랑이를 만났다>는 말대로, <여우같은 9月 금융위기설>이 <설>로 지나가자 이번에는 <호랑이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진짜로 마주치게 되었다.

미국 금융위기가 한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①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②주가하락과 환율상승 ③금융기관의 외화차입의 어려움 ④기업자금조달의 악화 ⑤투자와 생산의 하락 ⑥수출,수입의 감소 ⑦실업자증가와 소비감축 ⑧경기 침체의
확산의 순서이다.

실질적으로 KIKO에 가입한 대부분 중소기업의 70%와 이와 연관된 수천개 회사들이 (흑자)도산위기에 처해있다.

또한 리만브라더스,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AIG, 워싱턴뮤추얼 등 기타 대규모 금융기관에 투자한 한국인의 피해액이 얼마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는 상태이다.

월스트리트발 금융허리케인이 미국경제에 미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①금융 불안과 주가하락 ②유동성 부족 ③기업 자금난 ④투자,생산 및 소비의 위축 ⑤ 대규모 금융기관과 기업의 도산 ⑥실업자 증가 ⑦경기침체 ⑧전 세계로 경기침체의 확산의 순서이다.

여기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Bretton Woods 제도 하에서 미국달러가 세계기축화폐가 되었고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침체가 세계경제침체로 확산된다는 점을 빼고는 앞에 언급한 한국의 9월 위기설과 월스트리트(Wall Street)발 금융위기가 한미 양국 경제에 미치는 피해경로의 메커니즘(mechanism)이 놀랄 만큼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차대한 이유가 있다.

첫째이유는 한미 양국이 ①부동산거품, ②인플레압력 그리고 ③금융경색으로 인한 달러부족이라는 세 가지 공통된 경제적  난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1) 부동산거품: 미국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라는 부동산거품붕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로 인한 세계금융기관의 손실이 1조 3000억 달러를 넘는다고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9月 2日 밝힌 바 있다. 한국은 주택의 수요공급 메커니즘과 연관된 다양하고 복합적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10年 내에 수도권과 지방에 500만 채의 주택을 신축하고자 한다.

건설경기는 한국경제에서 15%를 점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15만호의 미분양주택이 전국에 산재하여 있다. 현재에도 도산기업이 발생하고 있는 건설업계에서는 주택신축과 연관된 예측 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한국형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 인플레압력: 미국경제도 인플레압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그러나 식량, 에너지, 원자재 및 중간재의 수요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미국보다 더 무거운 인플레압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OECD평균을 훨씬 넘는 스태그프레이션(stagflation)의 압력까지 받고 있다.

(3) 금융경색으로 인한 달러 부족: 미국도 금융경색으로 달러공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미국달러가 세계기축화폐이므로 한국경제의 고통과는 그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경우 이미 도산하였다든가 위험에 처해있는 미국대형금융기관으로부터 구매한 파행금융상품의 규모를 현재로써는 명확히 밝혀내기도 어렵다.

또한 환율변동위험회피(헤지hedge)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하였다가 손해를 보자 더 위험한 피봇(PIVOT)상품에 가입하였다가 흑자도산을 한 삼성전자거래업체, 태산LCD처럼 여의도에서도 월가와 같은 줄도산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병행하여 외국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달러자금의 공급이 고갈되어 가는 것이 한국경제의 고민이다.

둘째이유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에서부터 논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데카르트(René Decardes, 1596~1650)의 수리철학과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합리성의 개념과 19세기 철학의 혁명으로 등장한 실증주의(positivism)를 바탕으로 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가동주의(operationalis
m)와 확증주의(confirmationism)에 입각한 정통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을 발전시켜 왔다.

나아가서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을 가능하게 만드는 무한한 가능성(unlimited possibilities)을 가진 미국에서는 가동주의와 확증주의에 입각한 과정정책(Prozesspolitik)이 경제정책의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한국경제전문가들도 1950년대 중반부터 주로 미국에서 과정정책의 논리를 습득하게 되었으며 1962년 산업화의 시동이 걸리면서, 한국경제는 Bretton Woods제도의 막차를 타고 효율적인 경제정책과 유리한 국제경제환경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동태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도 국가(state)와 시장(market) 간에 연관관계에서 시대별로 주어지는 여건에 따라 항구적인 진화과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진화과정이 합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state)와 시장(market) 간에 연관관계 속에서 국민경제의 양대 기능인 <경제기계론적 기능(economic-mechanical function)과 <사회유기론적 기능(socio-organic function) 간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현재 우리가 한국과 미국에서 맞이하고 있는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가르켜 “흔들리는 영미자본주의의 모델”, “신자유주의의 포기”, “새로운 국가주도형 경제시대의 도래”, “미국식 자본주의의 몰락”, “미국식 세계경제주도권의 상실” 등의 성급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잘못된 진단이다.

첫째로 미국의 경우
이미 1931년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Hoover) 대통령은 재건금융공사(Restructuring Financial Corp.)를 설립하여 위험에 처한 은행과 기업들에게 직접 저금지원을 하여 미국 경제를 공포(panic) 상태에서 회생시킨 경험이 있다.

현재 부시(Bush) 대통령의 7000억불 구제금융안과 250억불 자동차산업 구제금융안은 미국경제를 다시 회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은 현재보다 미국에게 훨씬 더 심각하였다. 나아가서 오늘날 세계에서 국민경제의 1차 분야(농업), 2차 분야(제조업) 및 3차 분야(서비스업)가 미국만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한 나라는 없다. 미국은 또한 세계최고의 지식강국이며 경제대국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위치를 대신할 나라는 없다.

둘째로 한국의 경우
앞으로는 실증학문(positive science)으로서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한 소승적(小乘的)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과학을 바탕으로 한 대승적(大乘的) 경제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따라서 가동주의(operationalism)와 확증주의(confirmationism)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과정정책(Prozesspolitik)의 한계를 넘어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에 입각한 경제질서정책(Wirtschaftsordnungspolitik)과 국가질서정책(Staatsordnun
gspolitik)도 함께하는 다원주의적 삼위일체의 경제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삼위일체의 경제정책을 수립하여 경제-사회-국가-세계라는 측면과 관점에서 한국경제의 경제기계론적 기능과 사회유기론적 기능 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한국경제는
(1) 선진국권으로 도약할 수 있어야 하고
(2) 신세계경제질서에 현명하게 대처하여 나가야 하며
(3) 평화적 남북통일을 위한 경제적 준비를 하여야 한다.

Farewell Article for KAFS – Ambassador Alexander Vershbow

Ambassador Alexander Vershbow

Ambassador Alexander Vershbow

Farewell Article for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Ambassador Alexander Vershbow

Time has passed very quickly since I spoke at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Night in June.  Lisa and I now find ourselves departing Korea in a few short weeks, as I complete my three-year assignment as U.S. Ambassador the Republic of Korea.

We are both very sad to say good-bye to the many dear friends we have made here.  However, we also leave knowing that organizations such as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will continue their important work here in Korea.

Indeed, I am confident that KAFS’ unwavering support for the Alliance between our two countries will be an important part of the firm bedrock on which our friendship will continue to grow.
So on the eve of our departure, I want to express special thanks to you, the members of KAFS, for extending your personal friendship to Lisa and me and for your support in ensuring that the people of our two great nations are together in meeting the many challenges of our era .

President Bush’s August 5-6 visit to Korea and his summit meeting with President Lee Myung-bak reaffirmed the strong friendship between our two nations.

As President Bush said during his visit, America’s half-century of partnership with South Korea is “one of the great success stories of modern times,” and “freedom has helped turn a nation mired in poverty and recovering from war into a vibrant democracy and a strong partner.”

The word “partner” is a meaningful one.   As many of you know, in recent months our two nations have dealt with some difficult issues together.  Most notable has been the controversy surrounding the reopening of the Korean market to imports of American beef in accordance with international scientific standards.

This controversy, fueled by inaccurate information and false rumors, raised public anxieties and caused doubts about the future of the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which holds such great promise for the future prosperity of our two nations.  But in a renewed demonstration of the strength of our partnership, our two governments were able to find a solution that addressed public concerns.

This effort has opened the way to the approval of the FTA in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nd the U.S. Congress later this year.

When the Alliance between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was formed 55 years ago, Korea was a war-torn nation, and the relationship was based largely on economic and military aid given by the United States to Korea.  In subsequent years, the Alliance provided the security and stability that enabled South Korea to achieve its miraculous economic growth and to establish a robust democratic system.

Our partnership has been the key to confronting North Korea’s pursuit of nuclear programs, and to our wider efforts to lift the North Korean people out of poverty and repression and create a new structure of peace and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Today,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stand together not only in keeping the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but as partners around the world.  The United States and Korea now work together, side-by-side, to assist other nations, such as Afghanistan, Iraq and Lebanon, who are struggling to rebuild their shattered societies and establish the institutions of democracy as Korea was sixty years ago.

As partners, we are working together to tackle the new challenges of the 21st century, such as global warming and the search for renewable sources of energy.  As our Alliance transforms into a global partnership, it is only fitting that a citizen of Korea is now the 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and I am proud that the United States supported Ban Ki-moon’s candidacy two years ago.

On a more personal note, when my wife Lisa and I arrived in 2005, neither of us knew what to expect.  We knew that Korea was a strong ally and trading partner of the United States and that it was situated in one of the most geopolitically sensitive parts of the world.

We had read many books about Korean history and politics.  Yet we knew very little about Korea’s society, culture or people – what makes this country tick – since most of my career had been spent in working on Russian and European issues.

Yet I remember the first thing that I saw upon arriving at the airport was a sign that said Anyonghaseyo – welcome.  It was the very first word I saw in Korea, and it perfectly describes how our stay Korea has made us feel, from the very beginning.

We knew very few people when we first arrived.  Yet very quickly, many members of the Korean community reached out to us and made us feel at home.  We made early visits to some of Korea’s most unforgettable historic and religious sites – temples, palaces, ancient street markets, traditional Korean houses – as well as the beautiful new museums and the ultra-chic neighborhoods of Kangnam and Samcheongdong.

We traveled to the majestic Seorak mountains, the beautiful island of Jeju, and to many small towns and fishing villages where old Korea still thrives.  Lisa was quickly embraced by the artistic community here, and our stay in Korea has influenced her to the point where her own jewelry designs have begun to reflect the vivid colors and forms of Korea (she has even experimented with Korean hanji paper).

While I’m not sure that my drumming skills have improved much from my experience of traditional Korean pansori, I do know that Korea has also affected me greatly, and that our stay here will always have a warm place in our hearts.

The legendary generosity, even gallantry, of Koreans has impressed me  on more occasions than I can recount.  As the English poet Robert Southey once wrote, “No distance of place or lapse of time can lessen the friendship of those who are thoroughly persuaded of each other’s worth.

”  Thank you again for your support, hospitality and friendship.  Until we meet again, Anyonghikyeseyo!

-한글번역-

지난 6월 한미친선의 밤 행사에서 연설한 후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났습니다. 이제 몇 주 후면 저는 주한미국대사로서의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제 아내 리사와 함께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저희 모두 이곳에서 알게 된 소중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되어 슬프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한미우호협회와 같은 단체가 이곳 한국에서 앞으로도 중요한 일을 담당해줄 것임을 알고 떠납니다.

실제로 양국동맹에 보여주신 한미우호협회의 변치 않는 지지는 양국 간 우호관계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데 굳건한 기반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따라서 떠나기 전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께 저와 리사에게 우정을 보여주시고, 훌륭한 양국 국민들이 이 시대의 난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점에 대해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8월 5-6일 방한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돈독한 우호를 재확인하였습니다.

방한 기간 중 부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반세기동안 지속된 한국과 미국의 파트너십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공 스토리 중 하나”며, “빈곤에 허덕이고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 중이던 한 국가가 자유로 인해 활기찬 민주국가이자 강력한 파트너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파트너’라는 단어는 의미있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최근 몇 달 동안 양국은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어 왔습니다. 특히 국제적인 과학 기준에 따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논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부정확한 정보와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더욱 확대되어 국민의 불안을 야기하고 양국에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는 해결책을 마련함으로써 굳건한 파트너십을 새롭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올 후반 한국 국회와 미 의회가 FTA를 승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55년 전 한미동맹을 맺었을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져 있었고, 한미관계는 주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경제 및 군사적 지원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후 한미동맹은 한국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확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안보와 안정을 제공하였습니다.

양국 파트너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처하고,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을 빈곤과 억압에서 구제하여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핵심이 되어왔습니다.

오늘날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 수호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구촌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과 같은 국가를 돕는 일에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60년 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또한 파트너로서 힘을 합쳐 지구 온난화나 재생 에너지 연구와 같은 21세기의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가는 양국 동맹을 생각할 때 한국인이 유엔의 수장을 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2년 전 유엔 사무총장 선거 당시 반기문 후보를 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좀 더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2005년 저와 리사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희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자 교역상대국이며, 전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한국 역사와 정치에 관해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전까지 러시아 및 유럽과 관련된 문제를 주로 다루어왔기 때문에 한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한국 사회와 문화, 한국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 공항에 내렸을 때 맨 처음 “안녕하세요”라고 적힌 간판을 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가장 처음 본 한국어이자, 저희 부부가 맨 처음부터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주었고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부임 초기에 저희 부부는 절, 궁, 옛날 장터, 전통 마을과 같은 한국에서 이름난 역사적, 종교적 명소뿐 아니라 새로 개관한 멋진 박물관이나 강남, 삼청동 같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지역도 방문했습니다. 웅장한 설악산과 아름다운 제주도, 그리고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과 어촌도 여러 곳 가보았습니다.

아내 리사는 빠른 속도로 한국 예술계와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한국 생활은 그녀의 보석 공예 디자인에 한국 고유의 선명한 색채와 형태가 반영될 정도로 아내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리사는 한국 고유의 종이 ‘한지’를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한국의 전통 판소리를 경험한 후 제 드럼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 생활이 언제까지나 저희 마음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놀라운 관대함과 용기에 감명을 받은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영국 시인 로버트 사우디가 말했듯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서로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친구간의 우정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준 지지와 환대, 우정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