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발전과 변화 – 한철수(서경대 명예총장, 전 연합사부사령관)

한 철 수(서경대 명예총장, 전 연합사부사령관)

한 철 수(서경대 명예총장, 전 연합사부사령관)

한미동맹의 발전과 변화

한 철 수(서경대 명예총장, 전 연합사부사령관)

한미관계는 1945년8월15일 태평양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종결되고 일본 식민지하에 있던 한반도의 종전처리 과정에서,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38선 이남에 미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함으로서 실질적인 관계가 시작되었고, 소련 군정하의 북한 지역에는 1947년에 소련의 지원 하에 실질적인 북한 정부가 수립되고 미 군정하의 남한에는 미국의 지원과 UN의 승인 하에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어 금년에 건국 60주년을 맞게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으로 한국 사회는 일거에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었고, 자유,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시장 경제체제가 발전되어 민주사회로 내실화되고 세계11대 경제 대국으로의 번영까지 이루어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민주화, 산업화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기여한 역할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으며 한미동맹은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의 2차 대전 후 독립한 그 많은 나라들이 갖지 못한 행운이라고 보겠다.

한미 관계는 1950년 6월 25일에 구소련의 세계 공산화 전략의 일환으로 도발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싸우면서 혈맹의 관계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1953년 10월 1일 한미방위 조약이 체결됨으로서 한미동맹 관계가 정착되었다.

한미상호 방위조약 체결 후 후속조치로서 한미 의사합의록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68년부터 양국 국방장관이 매년 한번 씩 한미 안보협의회를 열어 양국의 군사관계를 협의 조정해 왔으며, 1978년부터는 한미 양국의 합참의장을 장으로 하는 군사위원회가 연례적으로 개최되어 동년에 창설된 한미 연합사령부를 통제 조정하게 되었다.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요체는 군사동맹이며 군사동맹의 실천적 핵심은 1978년 11월에 창설된 한미연합사라 하겠다. 한미연합사는 창설 후 지난 40년간 한반도에서 실질적으로 전쟁 억지 역할을 해왔으며, 대한민국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하는데 버팀목 역할을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연합사는 지난 노무현 정권이 자주성 회복이라는 미명하에 연합 사령관에게 부여된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를 미국에 요청함으로서, 한미정부의 합의로 2012년 4월 17일을 기하여 해체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금년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 안보에 중요한 한미동맹의 발전과 변화되는 과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전망과 문제점 그리고 대책에 대해서 토의해 보는 것도 큰 뜻이 있겠다.

6.25전쟁과 한미관계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의 사주에 의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되자 병력과 장비의 절대적 열세, 훈련부족 그리고 북의 기습남침으로 발생한 공황현상 등으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하고, 국군은 거의 붕괴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절대 절명의 상황 속에서 공산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재빠른 참전결정 그리고 16개국 국제연합군의 개입으로 전쟁 양상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현장보다 한사람의 우장이 지휘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지휘는 단일 지휘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휘 통일의 원칙에 의해서, 1950년 7월 17일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국제연합군 사령관에게 작전 지휘권(operational command)을 위임하였다.

그 후 1954년 11월 한미상호 방위조약이 발효되면서 작전 지휘권은 작전 통제권(operational control)으로 바뀌었는데(작전 통제권; 작전수행을 위한 전술적 통제를 보유하는 것으로 작전 지휘권보다는 권한이 제한된다) 당시 상황으로는 무기 체계와 언어, 문화의 이질성 등 복잡한 부대구조 하에서 단일 지휘관에 의한 지휘의 통일은 절대적이었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은 지혜롭고 시의 적절한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한미상호 방위조약

1950년 6월 25일에 발발된 6.25전쟁은, 1950년 8월 낙동강 교두보를 최후로 필사적인 방어작전을 하는 어려운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9월15일 연합군의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9월 28일에는 3개월 만에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에는 38선을 돌파하여 북한으로 진격하여 우리 국군 6사단은 초산을 탈환하여 압록강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여 1951년 1월 4일에는 수도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주고, 원주선까지 후퇴하였다가 현 휴전선까지 다시 반격하여 일진일퇴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주도로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다.(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한국전 종결을 선거공약으로 제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많은 인명피해와 국토가 파괴되었는데도 통일도 못하고 휴전하는데 반대하였고 한국군 단독 북진을 주장하며 미국의 휴전협상에 완강히 저항하였으며, 휴전의 반대급부로 한미상호 방위조약 체결의 성과를 얻어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미국의 어느 주요 잡지에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고집 센 노인”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을 보았는데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휴전협정을 추진하려는 미국을 압박하여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해 내고 나아가 한국의 부흥을 위한 미국의 경제 협조를 받아내고 재건을 위한 기반을 조성한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심과 전략적인 혜안을 높이 평가한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되어 이듬해인 1954년 11월 18일 발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 조약은 전문과 본문 6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에는 한미 양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공동방위 한다는 결의가 명시되어 있고, 제3조에는 당사국 중 일국이 피침 시 각각 자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대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제4조에서는 미군의 한국 내 주둔을 허여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주둔은 바로 이 조항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은 외부세력의 침략에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기본 틀로서 54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와 한국의 안보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은 한미연합 방위체제의 법적 근간으로서 여타의 각종안보 및 군사관련 후속 협정 등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한미합의 의사록

한미합의 의사록은 1954년 11월 7일 체결되었으며, 한국전쟁 후 한국의 전후 복구를 위한 한미 양국의 기본정책 사항을 규정한 합의문서이다. 동 합의 의사록은 미국의 휴전 협상을 강력히 반대했던 한국정부에 정전 협정체결의 보완사항으로 장기간에 걸친 경제원조와 한국군 군사력 증강을 약속한 문서이다.

「특히 한국군 작전통제 문제와 관련하여 합의 의사록 기본문에 “국제연합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동 사령부의 작전 통제 하에 둔다.”고 명시함으로서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UN군 사령관과의 공한 교환에 의해 이루어졌던”한국군 작전 통제의 유엔군 사령부(UNC)행사“ 문제가 정식 문서로 공식화됐다.」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주한 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 있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근거를 두고 1966년7월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주한 미군이 한국 내 주둔시 필요한 토지, 시설, 출입국관리, 통관과 관세, 형사재판권 등 주둔에 관계되는 양국 간 권리와 의무 그리고 양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동 협정은 주한 미군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나 가끔 주한 미군이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특히 재판 관할권과 노무관련 조항에서 한국 국민의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어 한미 간에 갈등과 불신이 야기할 가능성이 많아 한미 양국이 상호 호혜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 안보협의회(SCM;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한미 안보 협의회는 한미 양국의 주요 군사정책협의기구로서 양국의 국방장관이 안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매년 양국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하는 회의이다.

1968년 1.21사태 및 미국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되는 등 한미 양국 간 밀접한 안보 협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같은 해 4월 17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례 국방 각료회의를 양국에서 교대로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동년 5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1971년 제4차 회의부터 명칭이 한미 안보 협의회의(이하SCM)로 바뀌었다.」

1977년 7월 25일 개최된 제10차 SCM에서는 한미연합사 창설 연구위원회 구성과 한미연합사를 통제할 양국의 합참의장으로 구성되는 한미 군사위원회(이하MCM)설치에 합의하였고, 1978년7월26일 제11차 SCM에서 MCM 및 연합사 권한 위임 사항을 승인하였다.

군사위원회(MCM)및 한미연합군사령부 관련 약정(TOR)

「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 meeting)및 한미연합사령부 관련 약정(TOR;Terms of Reference)」은 1978년 7월 27일 체결된 문서로서 군사위원회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에 대비해 한미 양국이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한 효율적인 연합 군사 대비책의 일환으로 한미 연합 사령부(CFC)의 창설과 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매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미 군사위원회는 한미 양국의 국가 통수 및 군사 지휘 기구의 전략지침, 전략지시와 임무를 발전시켜 한미 연합군 사령관에게 전달하며 한미 연합군 사령관이 작전 통제하는 한미군 부대들을 양국의 국가 통수 및 군사 지휘 기구에 건의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월남전 참전으로 한국과 미국은 새로운 혈맹으로 발전

1964년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월남전 지원을 호소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64년 9월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 요원을 파견하였다. 그 후 미국의 전투부대 증파 요청에 따라 1965년부터 1973년 철군 때까지 8년 6개월 동안 미군과 함께 동맹군으로 함께 전투하여 6.25전쟁 후 또 하나의 혈맹 관계를 수립하였다.

베트남전 파병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해외 파병이며, 참전한 연 인원은 32만 여명에 달한다. 월남전 참전으로 6.25전쟁 시의 미군 지원에 대한 은혜갚음을 하였고 한국군은 헬리콥터 운용을 비롯한 현대적인 새로운 전수교리와 무기체계 운용 능력을 향상 시켰으며 많은 장병들이 전투 경험을 갖게 되어 국군의 전력 강화에 크게 기여 되었다.

특히 한국군 전투 부대를 차출해서 월남에 파병함으로서 생긴 국내 전투력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서 브라운 각서에 의해, 미국은 한국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를 현대화하고 베트남 주둔 한국군을 위한 물자와 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조달하고, 베트남에서 실시되는 각종 구호와 건설 등 제반 사업에 한국인 업자를 참여시키고 미국은 한국에 추가로 AID 차관과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등 보완대책이 마련되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으로 매년 수 천만 불의(1964년도에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억불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고 월남 특수와 한국기업의 외국수주 경험, 중장비운용 기술의 향상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중동 특수 붐에 많은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한미 연합 사령부(CFC)

한미연합사령부(CFC;Rok-us Combined Forces Cammand)는 한미 양국의 통수 기구의 통수권이 동등하게 미치는 조직이며, 한미 양국 국방 장관에 의해 운용되는 SCM과 양국 합참의장에 의해 운용되는 MCM에서 합의된 전략지침과 전략 지시를 받아 이를 수행한다.
CFC는 책임의 균등원칙에 의해 미군 대장 1명, 한국군 대장 1명을 위시로, 동수의 한미 양국의 고급 장교로 편성되었으며, 한국군 장군 참모부장 밑에는 미군 장군 참모차장, 미군 처장 밑에는 한국군 부처장이 보직되는 등 각 부서별로 한미 장교가 균등하게 보직되어 있다.

한미 연합 사령부의 임무는 북한의 전면 남침 시 한미 연합군으로 적의 남침을 수도권 북방에서 저지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여 북한 지역으로 반격하여 북한지역을 수복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시에 작전계획(5027)을 발전시키고, 각 제대별, 기능별 다양한 연합 훈련을 실시하며, 특히 전시에 미 본토와 주일 미군 등 전체 병력 가운데서 해병대 70%이상, 공군 50% 이상, 해군 40%이상의 증원 병력을 한반도에 전개하게 계획되어 있다. 유사시 미군의 증원계획(TPFDD;Time-Phased Force and Deployment Date)에 의하면 전개되는 미 증원군 총병력은 69만 여명이며, 함정 160여척, 항공기 2,000여대가 함께 투입된다.

「대략적인 전력은 주일 미군소속 공중조기 경보기 및 전자정보 정찰기, 주일 미군소속 F-15전투기 140대, 주일 미군소속 해군 함정 12척, 하와이와 알래스카 등 미 본토소속 F-15E, B1, B2 등 전략 폭격기를 위시로 한 항공기 1,000여대, 미 본토 육군 3군단 5만 명, 미 본토의 여단급 규모 해병 원정 상륙군, 미 본토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및 태평양 사령부소속 핵 잠수함, 미 본토 및 태평양 사령부소속 항공모함 5개 전단, 이지스함, 순양함, 구축함 등 160여척으로 막강한 전력이다.」

미 증원 전력 계획은 한반도 방위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연합사는 지속적으로 미군의 증원 전력 전개 절차를 발전시키고 실제 전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미국의 증원 전력이며, 증원군에 장비된 최신예 육해공군 정밀과학 무기와 막강한 화력의 위력은 세계 최고이다.

한미 연합 사령부 창설로서 창설 전까지 미군이 사령관인 UN군 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되었으며, 다만 전시에는 지휘의 통일과 증원되는 미 육해공군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1992년 12월 CFC 예하 육군 구성군(미 본토 증원군을 포함한 한미 육군)에 대한 지휘권은 CFC 사령관으로부터 한국군장군(연합사 부사령관)에게 이양 되었는데 이는 한국군의 전시 작전 통제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문제점

한미 양국은 2007년 2월 24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양국 국방장관 회담 에서 2012년 4월 17일부로 한미연합사(CFC)를 해체하고 한미 간 지원 – 피 지원(Supporting – supported) 관계로 전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어서 2007년 6월 28일에 한국 합참의장과 주한 미군 사령관이 양국을 대표해서 한미 지휘관계 전환 계획서에 서명하였다.

여기에는 CFC 해체 전까지 해결해야 할 주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한미 군사위원회 산하에 동맹군사협조본부(Alliance military Coordination Center, AMCC)를 두기로 하였다.

따라서 향후 한미 양국은 평시 및 전시를 불문하고 별도의 지휘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AMCC를 통해 작전 협력과 조정을 하게 된다. 그 외에 AMCC 외에도 한국 합참과 주한 미군 사령부간 협조 체제를 가동하기 위해 공동정보센터, 공동작전센터, 연합군수협조센터 등 협조 기구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CFC 해체 후 발생 가능한 여러 취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대소 공동 연습을 실시할 예정이며, 금년도 8월에 실시된 군사연습도 CFC 해체를 전제로 한국군 주관으로 실시된바 있다.

CFC가 해체 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첫째는 북한의 오판으로 인한 전쟁 가능성이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중거리 노동 미사일 200여기를 위시로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 800여기를 보유하고 있고 생화학 무기 약 5,000톤 등의 대량 살상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10만 여명의 특수부대를 포함하여 120만 명의 현역군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제까지는 CFC가 존재하여 전쟁 도발 시 강력한 한미 연합군으로 인해 전쟁의 승산이 없고 한미 연합군의 반격의 계기만 제공하기 때문에 감히 전쟁 도발을 못했으나 CFC 체제가 해체되면, 미군의 자동적인 개입이 100% 보장되지 않으므로 한미 간을 이간시켜 미국의 개입을 방해하거나 미국이 국내외 문제로 개입하지 못하거나 최소의 해공군 지원만 가능한 상황의 발생하면 상황을 오판하여 전면 도발을 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제까지 CFC 체제하에서 미국은 주한 미군의 운용에 유연성이 없었다. 주한 미군의 고정 배치로 해외에서 추가 병력이 소요되는 경우에도 자유로이 빼낼 수 없었으나“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를 내세워 주한 미군을 범세계적으로 대응하는 신속대응군으로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그만큼 전쟁 억제력이 감소하게 된다.

둘째 이제까지 대부분의 중요한 전략, 전술 정보는 미 측으로부터 제공되어(전략정보 100% 전술정보 70%)한미가 공유하면서 함께 대책을 세워 왔으나 앞으로는 정보 지원이 많이 제한 될 것이다.

셋째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습과 훈련을 하던 체계가 깨지면서 전쟁 발발시의 유기적인 작전협조(Interoperatility)가 저하 될 것이다.

넷째 각종 전쟁 예비 물자의 비축 및 준비, 미국으로부터 첨단 무기의 구매, 과학기술, 새로운 전술교리의 획득에 많은 제한을 받을 것이다.

전망 및 대책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정부 간에 이미 합의되고 이행 계획서까지 서명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이행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으로서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한반도에 발목이 잡힌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커다란 반대급부가 없는 한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2008년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의 성공적인 캠프 데이비드 회담으로 많이 손상되었던 한미 관계가 복원되고 있으므로 CFC의 해체시기를 우리 힘으로 충분한 억지력을 갖는 강력한 국방력을 가질 때까지 최대한 연기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이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지고 챙기고, 정부, 국회, 재계, 학계, 문화계 등 총력을 가지고 노력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미 관계는 근원적으로 훼손되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인사, 양국민간에 정서적으로 불신하고 혐오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째로 한국내의 반미 감정과 미국 내의 반한 정서를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미 관계에 대한 왜곡된 사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와 청소년 교육이 필요하다. 효순, 미선양을 위한 마음속으로부터 명복을 비는 것은 좋겠으나 촛불 시위 같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정치 선동으로 반미 감정을 부추기거나, 미친 소 촛불 시위로 어린 학생들을 선동하여 반미 감정을 유발하는 등 친북좌파세력의 조직적인 반 대한민국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의법 처리하여 이 땅에서 종북 좌파세력을 뿌리 채 뽑아내야한다.

이와 아울러 미국 각계에 번지고 있는 반한 정서 해소를 위해 정부, 재계 및 민간 차원에서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한미 동맹의 3가지 핵심 요소인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과 대국민 홍보로 한미 동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 지난 좌파정권 10년간 많이 훼손된 한미 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동맹은 서로 필요하고 신뢰할 때에 이루어진다. 앞으로 대북 한미 공조체제, 해외 평화유지군 파견 등 서로가 필요할 때 서로 믿고 지원하고 협조하는 동맹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뒷받침해 주었던 한미 동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한편 우리의 안보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웃 중국은 군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잠재되었던 중국인들의 중화민족 우월사상이 팽배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체 방위력을 증가하면서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에 걸 맞는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 북한은 핵개발로 비대칭 권력에서 우리를 압도하고 큰 위협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약화는 우리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08년 4월 19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 회담은 10년간 조성되었던 양국 간 불편한 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 한미 관계의 복원을 대외정책의 우선으로 삼고 전 국민적 노력을 경주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CFC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전쟁억지력 약화와 북한의 오판가능성, 우리군의 전력강화를 위한 국가자원의 우선적 배정 등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조선조 말에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대처 못한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교근공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협회 창설 제17주년 기념 한미우호의 밤-인사말(박근 회장)

회장인사

박 근
본 협회회장

Minister and Mrs. Yu, Myung-hwan, Amb. and Mrs. Vershbow, New Commander of the USFK General and Mrs. Sharp,  Awardees of the Friendship Awards, our American warriors;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patriotic sacrifices.

Amb. Vershbow, I thank you again for your drumming virtuosity.
I also thank renowned 8th Army Band for their performance.

Let me introduce to you General and Mrs. Sharp. Gen. Sharp’s father was a veteran of the Korean War. Gen. Sharp himself served in Korea 10 years ago. Both Gen. Sharp and lovely Mrs. Sharp, for two generations, have been friends of Korea. Let us welcome them with big applause!

General and Mrs. Wood, General and Mrs. Fil, other warriors who arrived here recently, our warm welcome to the country of CANDLE LIGHTS!

June can be a cruel month for Korea. Not just because of the Monsoon season, North Korea attacked us in June, igniting the Korean War. This year, the central streets of Seoul have been paralyzed by demonstrations and counter-demonstrations, candle lights and waving flags, metal pipe sticks and water cannons. Cries of emotion echo in the swelling greens of the city hills and the flying clouds above. False and unfounded fear and hatred fill our digital space where American cows became mad cows and Americans became mad cow patients. Poor American beef, so tender and so tasty!

Yet, let me say this loudly and clearly: June is the month of friendship, love, and renewal. Doesn’t this festival bespeak so?
Just as a miraculous new nation has risen from the ashes of the Korean War, so will a new and stronger Alliance emerge from the cries of the demonstrators. Our President, once a young demonstrator himself, knows how to handle these violent outbursts. We have a new Foreign Minister who knows the irreplaceable value of our Alliance and the FTA. And above all, we have the wise and peace-loving Korean people who have proven their mettle in overcoming much harder ordeals.

The Korean people’s resolute drive for self-betterment will, no matter what, safeguard our priceless Alliance with the brightest star in the sk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ank you very much.

유명환 장관 내외분님,  버시바우 미 대사 내외분님, 샤프 사령관 내외분님,
한미우호상 수상자 와 주한미군용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애국 후원자 및 회원 여러분님 도와주시고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버시바우 대사님의 뛰어난 드럼연주 실력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신데 대하여 재삼 감사드리며, 또한 유명한 미 8군 캄보밴드의 공연에도 감사드립니다.

특별하게도 이번에 유엔사/ 연합사/ 주한미군사 사령관으로 부임한 샤프 사령관의 부친은 한국전 참전 용사이시며 샤프사령관 자신도 10년 전에 한국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대(代)를 이은 오랜 옛 한국 친구입니다. 샤프사령관과 우아한 샤프사령관 부인을 뜨거운 박수로 환영합시다.

우드 장군과 필 장군 내외분 그리고 최근에 한국에 부임한 용사들에게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유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장마가 시작되고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달입니다. 금년에는 데모와 반 데모, 촛불과 깃발, 쇠파이프와 물대포들이 서울의 도심지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감정의 고함소리는 주변언덕의 푸른 숲과 날아가는 구름 안에 메아리칩니다. 거짓되고 근거 없는 공포와 증오가 디지털 공간을 채우면서 미국소가 광우병 소가 되고 미국사람이 광우 병 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련한 미국산 쇠고기, 그렇게도 연하고 맛있는데…

그러나 크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6월은 우정과 사랑과 재생의 달입니다. 오늘 저녁 축제가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기적 같은 새 나라가 솟아났듯이 데모대들의 고함소리 속에서 새롭고 더 강한 동맹이 탄생할 것입니다. 젊었을 때 데모를 해 본 우리 대통령은 폭력 시위를 다룰 줄 압니다. 우리의 새 외무부 장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미동맹과 FTA의 가치를 잘 아는 분입니다. 그리고 더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온 슬기로운 우리국민이 있지 않습니까.

더 잘 살아보겠다는 우리국민의 단호한 의지는 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 미국과의 한없이 귀중한 동맹을 결단코 지켜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협회 창설 제17주년 기념 한미우호의 밤-축사(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Yu Myung-hwan 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Yu Myung-hwan
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Remarks at the 2008 June Festival
(Hyatt Hotel, 30 June 2008)

Yu Myung-hwan
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President and Mrs. Park,
Ambassador and Mrs. Vershbow,
General and Mrs. Sharp,
Men and Women of the USFK and Their Families,
Distinguished Guests,
Ladies and Gentlemen,

It is my great pleasure and honor to be invited to the 2008 June Festival and to speak before the distinguished guests here.

Let me begin by expressing my heartfelt gratitude to President Park and the member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for hosting such a meaningful gathering this evening.

Since its launch in 1991,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has made invaluable contributions to fostering friendship and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our two peoples, — by organizing various activities, including goodwill concerts and academic symposia.

In particular, the society has been presenting the annual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Awards to outstanding USFK personnel in recognition and appreciation of their dedicated service.

In this light,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 congratulations to General Bell, the former Commander of the CFC, and four other distinguished USFK personnel on receiving such honorable awards this evening.
[ Please allow me to recognize each one by name : Lieutenant Seth D. Thornhill of the US Navy; Master Sergeant Richard L. Webber of the US Air force; Sergeant Henry Negron of the US Army; and Sergeant Leslie C. Gray of the US Marines. ]

Congratulations once again on your most admirable achievements.

Distinguished Guests,

The ROK-US alliance has proven to be one of the most successful and exemplary alliances in the world.  And, it has also served as the cornerstone for peace and prospe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s well as in Northeast Asia.

The commendable work of the USFK personnel has served to make the alliance rock-solid.  On behalf of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Korea, I would like to express, once again, our sincere appreciation for your devoted efforts.
Thanks to the alliance and our strong combined defense posture, Korea has developed into a full-fledged democracy and stands at the threshold of becoming an advanced nation.

Now, given the changing security environment and needs of the 21st century, our two nations are aiming to further develop and transform our alliance into a strategic one.

Our alliance should go beyond bilateral dimensions to tackle global issues.  The scope of the alliance also needs to be expanded from security and military-oriented issues into various other fields including the economy, culture, and society in general.

As such, the early ratification of the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and Korea’s participation in the US Visa Waiver Program will be a milestone for further upgrading the alliance.

Just a couple of days ago, Secretary of State Condoleezza Rice and I met here in Seoul, and reaffirmed our strong commitment to further strengthen our alliance for the 21st century.  /
I am confident that the bonds we have forged during the past several decades, will surely take our friendship and cooperation to new heights.

Distinguished Guests,

I think all of you would agree that people-to-people exchanges are vital in cementing friendly relationships between countries.  In this aspect, each and every one of you can contribute to promoting cultural and personal exchanges between our two peoples.

For instance, the Good Neighbor Program, carried out by the USFK, is an exemplary instrument for strengthening cultural ties and friendship between the USFK service members and the local communities of Korea.

Korea is a country with rich historical and cultural heritage, and I hope that the servicemen and women of the USFK will make good use of their stay here to enjoy and experience the charms of Korea, both traditional and modern.  Down the road, I am sure that you will all do your part to deepen the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our two peoples.

Ladies and Gentlemen,

As the saying goes, “tonight is your night.”  We are gathered here to honor your achievements and efforts.  So please, do enjoy this joyous celebration.

Thank you very much.

협회 창설 제17주년 기념 한미우호의 밤-축사(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

Alexander Vershbow U.S. Ambass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Alexander Vershbow
U.S. Ambass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Remarks for June Festival 2008 – Korea America Friendship Night
(Seoul, Grand Hyatt Hotel – June 30, 2008)

Alexander Vershbow
U.S. Ambass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Thank you, President Park Keun, for your invitation to tonight’s event.  Foreign Minister Yu Myung-whan, distinguished members and friend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Lisa and I are pleased that you have again invited us to spend time with you to celebrate the close ties between our two countries at this year’s Spring Festival.  It was only six months ago that I spoke with you at the Shilla Hotel for the “Forget-the-Year” Party.  At that time I reviewed Korea-U.S. relations and told you that 2007 had been a year to remember, with the signing of the KORUS FTA, progress on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nd major decisions to strengthen our defense alliance.

I can report to you today that we have continued to see progress so far in 2008, although there have been a few bumps along the way.  In February, we witnessed the peaceful passing of the baton from one Korean President to another.  In April, President Lee Myung-bak had a successful summit with President Bush at Camp David.  Four weeks ago, General Walter (“Skip”) Sharp took command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Combined Forces Command and U.S. Forces Korea – and we’re pleased to have Skip and Joanne Sharp here tonight.  And yesterday I saw Secretary Rice off on her way to Beijing after successful meetings with Foreign Minister Yu and President Lee that focused on the latest, dramatic developments in the Six Party Talks and where we go from here.

All these events of the last six months show that our alliance continues to move forward.  But, of course, none of the things I just mentioned has been making the headlines for the past two months.   Unfortunately, one issue, the reopening of Korea’s market to imports of U.S. beef, and the Korean public’s reaction to that, have dominated the news, creating the impression that our relationship is in trouble.

These past weeks have certainly been difficult.  But I think we have shown the strength of our relationship by our shared commitment to work together to find a solution that addresses public concerns – one that will, we hope, restore confidence in the quality and safety of U.S. beef exports, the same safe and delicious beef that we serve to our families back home every day.

Some of my Korean friends tell me: “Don’t take this personally, this is partly about U.S. beef, but mainly about Korean politics.”  That’s fine, but I think we have a responsibility – both in the United States and in Korea – to ensure that our alliance is insulated from domestic politics in either country as much as possible.  Our alliance is too important – indeed, it’s “priceless,” as President Park said in his remarks.

Now that we have worked out a solution on the beef issue, I hope that we can begin to focus on the wider agenda between our countries.  There’s a lot that we have to do in the months ahead:  we need to ratify the FTA in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U.S. Congress; we have to develop a roadmap for the next stage of the Six Party Talks, the stage of complete and verifiable elimination of all of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nd programs; we need to continue the transformation of our defense alliance into a 21st-century partnership, as Foreign Minister Yu just said; and last but not least, we must get Korea into the U.S. Visa Waiver Program – the sooner, the better!

As you know, Lisa and I will be leaving Korea in a few months’ time, so a lot of this work will fall on the shoulders of my successor and my great team of colleagues at the U.S. Embassy – although I intend to stay involved in Korean affairs when I’m back in the States.

We have many fond memories of the time we’ve spent here.  I think that we have visited almost every part of South Korea in the past three years.  We have participated in great state dinners and enjoyed small rural festivals.  We have spoken to large groups like this organization and to small groups of students.  We have been in large concert halls and small, intimate jazz clubs and noraebang.  We have visited many great universities and many small art museums.

Lisa has been welcomed by the artistic community here and been able to exchange ideas on design and technique, while I have been invited to share my modest drumming skills with some great Korean rock groups and orchestras – even sharing the stage with Mayor Oh Se-hoon at the Seoul Drum Festival last October.   And, of course, we have become passionate fans of Korean cuisine!

So it is with mixed feelings that I stand here before you tonight at what will be our last Korea-America Friendship Night.  But when we depart Korea later this year, we will always remember the great friendships we have made here, and the tremendous support for the U.S.-Korea alliance that we have consistently felt from the members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We still have a few months to go before we say our final farewells, so let me simply close with a very sincere Gamsahamnida.

박근 회장님, 오늘밤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명환 장관님, 귀빈 여러분, 한미우호협회 회원님들, 한미 양국의 우호 관계를 축하하는 2008년 봄 페스티벌에 올해도 저희 부부를 초대해 주셔서 저와 제 아내 리사 모두 기쁘게 생각합니다. 불과 6개월 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망년회’ 행사에서도 여러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미관계를 되짚어보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북한 비핵화 문제 진전, 그리고 양국 방위동맹을 강화하는 주요 결정들이 이뤄진 2007년은 기억할 만한 한 해였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오늘 2008년 올해 역시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현재까지 계속해서 진전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월 한국에서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새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4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4주 전에는 월터 샤프 미 합참 합동참모본부장이 유엔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샤프 사령관 내외분이 오늘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제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유명환 장관 및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최근 6자회담의 극적인 진전 사항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성공적인 회담을 가진 후 베이징으로 떠났습니다.

지난 6개월간 있었던 이 모든 일들은 양국 동맹이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방금 말씀 드린 사건들은 지난 두 달간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라는 한 가지 사건과 이에 대한 한국민의 반응만이 언론에서 크게 다뤄졌고 이 때문에 한미관계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지난 몇 주간은 확실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양국은 한국민의 우려를 해소할 해결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매일 미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안전하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함으로써 탄탄한 한미관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한국 친구들은 “이 문제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며, 이는 부분적으로는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문제지만 대체로 한국 정치에 관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만, 저는 양국 모두 한미동맹이 가능한한 양국 국내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국 동맹은 너무나 중요하며, 박 회장님께서 연설 중 말씀하셨듯이 ‘귀중’합니다.

이제 우리는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였으니 양국간 더 큰 의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향후 몇달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에서 FTA를 비준해야 하고,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는 6자회담 다음 단계를 위한 로드맵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께서 말씀하셨듯이, 양국 안보 동맹도 21세기 파트너쉽으로 지속적으로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실현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리사와 저는 몇 달 후에 한국을 떠날 예정이므로 이러한 많은 문제들이 제 후임자와 훌륭한 대사관 직원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문제에 계속 깊은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즐거운 기억들이 많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난 3년간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주최하는 훌륭한 공식 만찬에도 참석했고 소규모 지역 축제에도 참여했습니다. 한미우호협회와 같은 큰 단체에서부터 작은 학생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였습니다. 큰 연주회장 뿐만 아니라 작고 아늑한 재즈 클럽이나 노래방에도 가보았습니다. 훌륭한 대학교와 작은 미술관도 여러 곳 방문하였습니다.

제 아내 리사가 이곳에서 예술계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디자인과 기법에 관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한편, 저는 뛰어난 한국 록 그룹 및 오케스트라와 – 작년 10월에는 서울 드럼 페스티벌에서 오세훈 서울 시장과 –  부족하게나마 드럼 연주자로 함께 공연할 수 있도록 초청 받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한국 음식의 열렬한 팬도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한미우호의 밤 마지막 행사가 되는 오늘밤 여러분 앞에 서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올해 후반 우리가 한국을 떠날 때 이곳에서 쌓은 돈독한 우정과 한미우호협회 회원 여러분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한미동맹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까지는 아직 몇 달이 남았으니, 오늘은 진심으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 정도로 연설을 마치고자 합니다.

협회 창설 제17주년 기념 한미우호의 밤-축사(샤프 주한미군사령관)

GENERAL WALTER L. SHARP  COMMANDER UNC / CFC / USFK

GENERAL WALTER L. SHARP
COMMANDER UNC / CFC / USFK

REMARKS FOR “KAFS JUNE FESTIVAL AND FRIENDSHIP NIGHT”

GENERAL WALTER L. SHARP
COMMANDER UNC / CFC / USFK

“Friendship is unnecessary, like philosophy, like art… it has no survival value; rather it is one of those things that give value to the survival.” ~C.S. Lewis (1898-1963)

The ROK-US alliance, which started out as a purely military partnership, has flourished into a 58-year old friendship between two likeminded nations.  It was the unbreakable bonds of friendship and commitment to the ideals of democracy between our two countries that preserved the freedom of the Republic of Korea.  This close relationship, forged in blood, has elevated the lives of millions of Koreans and Americans who have benefitted from this long-standing exchange.

The ROK-US alliance is extremely important to the United States and the US continually seeks to improve it through rigorous, combined military training, cultural exchanges, and events such as these.  I am proud to say that after a half-century of cooperation, the ROK-US alliance stands as one of the strongest in the world.

It is my honor and privilege to participate in this Friendship Night sponsored by the Korean-America Friendship Society.  As prominent leaders from Korean society, your encouragement of cooperation and understanding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is essential to maintaining this strong alliance.  Thank you for seeking out and rewarding those individuals that strive to make our alliance even stronger.

Tonight’s awardees represent the finest Soldiers, Sailors, Airmen, and Marines stationed in Korea.  Each of them is an ambassador of goodwill and their effort to make a difference in the local community is the backbone of our Good Neighbor Program.
God Bless the ROK-US Alliance and may Korean-American Friendship continue to strengthen throughout this century and beyond.

우정은 불필요하다, 마치 철학이나 예술 처럼….우정은 생존의 가치가 없다; 차라리 생존을 위한 가치를 주는 것이 우정이다.
C.S. 루이스 (1898-1963)

한미동맹은 순수한 군사 파트너관계로 시작을 하였으며, 뜻을 같이 하는 오랜 우정을 나눈 국가간의 동맹으로서 58년간 번영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를 한것은 바로 끈끈한 우정과 양국의 민주주의 정신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이 같은 확고한 관계는 피로써 맺어졌으며, 오랫동안 지속된 교류로부터 혜택을 받은 수 백만의 한미 양국 국민들의 삶은 향상되었습니다.

한미동맹은 미국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하며, 미국은 강도 높은 연합 훈련, 문화교류, 그리고 오늘과 같은 한미 친선 행사들을 통해 한미 동맹을 향상시키고자 합니다.  저는 반세기동안 협조를 한 한미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한미우호협회가 주관하는 한미우호의 밤에 참가하게 된 것을 한없는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로서 한미 양국의 협력과 이해 도모에 대한 관심과 격려는 이 공고한 동맹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미동맹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시상을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밤 수상자들은 한국에서 근무하는 육해공군 해병대를 대표하는 최상의 장병들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미국을 대표하는 친선대사이며, 여러분의 노력은 여러분들께서 근무하시는 지역사회 좋은 이웃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룹니다.

한미동맹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며, 21세기와 그 이후에까지 한미 양국의 우정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기를 기원합니다.

미친 소, 미친 사람들 이야기

미친 소, 미친 사람들 이야기

박 근  본 협회회장

1. 광우병 (학술어로 bovine spongiformenc ephalopathry, BSE : 소 계통 동물이 걸리는 스펀지 형 뇌질환)이라는 병은 푸리온 (Prion)이라는 특수단백 물질이소의 뇌를 스펀지같이 변질시켜 생기는 뇌신경계통 질환이며 BSE라고 부른다.

소 뇌신경 질환(BSE)이 사람에게 걸리면 인간 광우병이 되며 vCJD이라고 부른다.(약 300년 전에 Creuztfeldt와 Jacob라는 두 학자가 발견한 뇌신경계통 질환<CJD>이 있는데 인간 광우병이 이와 비슷한 뇌신경계통 질환이라고 해서 변형된CJD 즉 vCJD라고 부르게 된 것)

사람이 걸리면 대개 몇 주일 또는  몇 개월 내에 죽는 병이다. 광우병 소 BSE에 있는 Prion 단백질을 인간이 다량 섭취하면 일정기간 잠복기(또는 일정한 대량섭취에 필요한 4~5년 내지 10년 또는 그 이상도 가능)를 거쳐 인간 광우병(vCJD)을 발병시킨다.

2. 소 광우병은 1985~6년에 영국에서 처음 발견되어 1992~93년에는 매주 1,000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생했다. 서 구라파 전역에 광우병이 발생하였고 제일 심한 영국에서는 약 19만 마리의 소가 이 병에 걸렸었다.

서구를 제외한 기타 세계에서는 극히 소수의 광우병 소가 생겼으며 일본에서는 26마리, 미국에서는 3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생하였다. 미국의 광우병 소 중 한 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3. 왜 최근에 와서, 그리고 유달리 서구라파, 특히 영국에서 광우병 소가 많이 생겼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과학적 연구 결과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즉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서구라파는 소에 주는 식물성 단백질 사료가 되는 콩의 생산이 많지 않다. 따라서 근년에 와서 고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폐기동물 찌꺼기로 만든 동물성 단백질 사료를 많이 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특히 영국이 앞섰던 것이다.

소고기 소는 미국이 제일 많이 양육하고 소비하는 데도 미국에서는 풍부한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주로 쓰기 때문에 서구라파의 경우처럼 소 광우병이 대량으로 발생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라파서도 이제는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있고 미국도 금지 시켰다. 그 결과 광우병 소는 세계적으로 대폭 줄어들어 거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4. 광우병소가 인간을 전염시켜 인간 광우병을 일으키는 확률은 영국의 경우2008년 4월 현재까지 183,823마리의 광우병 소에서 163명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병하였다. 그동안 4백40만 마리의 소가 도살되었다. 미국에서는 2003년에 한 마리의 캐나다수입 광우병 소가 생겨 그 목장에 있던 4000마리의 소를 도살하였다.

미국 전국에서 그 무렵에 3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견 되었고 그중 2마리는 Wash.주에서 또 한 마리는 Texas주에서 발견되었다. Wash.의 광우병 소 한 마리는 2001년에 캐나다에서 수입한 소로 판명되었다.

5.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 3명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 하였는바, 이 3명의 병력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모두 미국외의 다른 나라 (2명은 영국에서, 1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에서 전염 후 미국으로 입국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광우병 소는 3마리가 발견되었지만 인간에게 전염된 광우병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6. 지난 10년간에 미국은 3억 5000마리의 소고기 중 그 96% (4%는 수출)를 3억의 미 국민이 먹어 왔지만 그 10년 기간에 출생한 미국 소 가운데 광우병 소는 한 마리도 없었다.

7. 미국의 식약청 (FDA)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최첨단 식품 안전 관리기관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식품에 원재료 명을 표시하게 된 것도 미국 FDA에서 미국식품에 적용한 식품관리 방법을 도입 한 것이다.

8. 광우병에 걸린 소를 철저하게 해부 검사해 본 결과 그 병의 원인이 되는 푸리온 단백질이 소 신체의 특정 부분에 잠입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컨대 소의 뇌, 척추골수와 신경, 편두선, 눈알 등 동물학적으로 특정한 신체부위에 축적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을 “특수위험 물질” “Specific Risk Material”(SRM)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소라 할지라도 소를 도살하면 맨 먼저 이 “위험물질”부터 제거시킨다. 그리고 난 다음에 국내와 국외로 유통 판매 시킨다. 국내용이든, 수출용이든 차별 없이 똑 같이 제거 시킨 다음에 비로소 국내, 국외로 판매 시킨다. 자기국민 먹을 것 만 위험물질을 제거한다든가, 수출용이라고 해서 적당히 제거하는 나라가 아니다. 만약 미국이 그런 나라라면 세계의 시장개방을 위해 늘 앞장 서 오면서 WTO에서 자유무역주의의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미국을 믿고 교역할 나라도 없어 질 것이다. 미국은 그 순간부터 2류 3류 국가로 전락 하게 될 것이다.

9. 소위 30개월 이상 된 늙은 소의 고기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에서는 못 팔게 하고 한국이나 후진국에만 팔게 한다면 누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겠는가. 미국은 자기가 안 먹고 못 먹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먹이는 나라가 아니다. 30개월 이상 된 늙은 소는 고기질이 나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햄버거나 소시지로 만들어 먹는다. 우리는 값이 싸기 때문에 곰탕 같은 것에 사용하지 않겠는가.

10. 소위 MM유전자(methionine-methioninegene)가 인간 광우병 환자에서 발견되었고 한국인의 94%가 그 MM유전자를 소유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광우병에 걸리기 쉽다는 주장은 아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광우병 환자를 검사해 보니 모두 몸에 털이 있었으니 털 있는 사람은 광우병에 약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인간 광우병의 권위자인 Belay박사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다량 섭취했을 때만 인간 광우병 (vCJD)에 걸린다” 고 하였다. 영국에서 과거 18만 마리 이상의 광우병 소가 나왔으나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163명 인 것을 보면 “광우병 소고기를 다량” 으로 섭취해야 걸린다는 주장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11. 결론적으로 미국 소고기에 대한 안전장치로는 5중 방어망이 있다.
첫째. 위험성이 높은 소 무리는 한 마리도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광우병 소가 생긴 목장의 소떼는 몽땅 도살 처분된다. 광우병 아니라도 주저 않는 소의 고기도 유통이 금지된다.
둘째. 소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동물성 사료는 이제 미국에서도 전면 사용 금지되었다.
셋째. 건강한 소라도“특수위험 물질” (SRM) 은 모두 제거 시킨 후에 국내 국외로 유통시킨다.
넷째. 광우병 소고기를 먹어도 다량(多量)을 장기간에 걸쳐 먹지 않으면 인간 광우병 (vCJD)에는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 광우병 소의 발생에 대한 철저한 감시제도가 확립되고 있는 이상 광우병 소고기를 계속해서 다량(多量) 섭취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미국 내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하면 주권 국가로서 즉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2. 미국과의 FTA는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 국가와 경제적 협력을 통해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의 말대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을 면하는 유일한 길이다.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제1의 도약을 넘어 제2의 도약을 기약하는 국가이익의 최고 전략이다. 한국을 선진 국가 대열로 진입시키는 보증 수표이다.

비록 최근에 보여준 일부 우리국민의 광우병 공포증이 아직도 선진 국민다운 점이 약하다 하더라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가고야 말길이다. 그 길은 이제 우리 앞에 열려있다. 그리고 그 길은 고난의 길도 아니고 수치의 길도 아니다.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세계화의 길이다. 여기까지 온 대한민국이 광우병에 걸린 소같이 땅에 주저앉지 않으려면 FTA로 가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전략적 리더십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전략적 리더십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장관)

벌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이한다. 그런데 나의 가슴은 찢어지듯 아프기만 하다. 그날 중앙청에 나 붙었던 표어는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라 외쳐댔고 기념가의 가사는 이러했다.

“삼천만 무궁화 새로이 피라, 반만년 이어 온 단군의 피로
겨레들 모두 다 손을 잡아라,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우리는 받들자, 대한민국을 다 같이 받들자, 우리의 조국”

우리는 아직도 남북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 얼마나 더 많이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얼마나 정성껏 받들어왔던가? 심각한 반성부터 해야 하고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지난 박정희 시대를 돌이켜 볼 때 그것은 이 나라의 산업혁명의 시대였으며 그 산업혁명은 한반도의 민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민주보루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존시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전통성은 대한민국에 있다.”고 항상 강조해 왔다. 그것은 한반도의 공산화혁명을 추진하기 위해 북조선을 혁명의 기지로  만들겠다는 노동당 강령에 대항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민주통일의 보루로 삼겠다는 결의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경쟁을 선포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북쪽보다 더 강한 민주국가로 만들어야겠다고 남북간의 체제경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들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우리에게 걸어왔었으나 우리는 전쟁 대신 체제경쟁을 다시 말해서 어느 쪽 체제가 백성을 더 잘 살 수 있게 하느냐 경쟁을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그 경쟁의 과정이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이었다.

5.16 혁명이 일어났던 해 남북간의 개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 보면 (세계은행 통계) 한국이 82달러인데 대해 북한은 320달러로서 세계의 125개국 가운데 우리가 101번째였던데 대해 북한은 50번째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비명으로 이 세상을 떠났던 1979년에 우리의 개인당 소득은 1천636달러로 125개국 가운데 49번째로 껑충 뛰어 올랐는데 반하여 북쪽은 120번째로 급락하는 후진성을 나타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한강변에 기적을 만들었다고 칭찬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을 거절했다. 우리가 이룩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우리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노력의 결정체였다고 주장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명비평가 기 소르만(프랑스)은 남북간의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한 원인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략적 리더십」에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을 위한 전략적 리더십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리더십이었다. 박 대통령은 북쪽에게 남북대화 (74성명)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결코 유화정책(宥和政策)을 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체제경쟁에서 북쪽의 공산주의체제를 능가하고 국민을 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라는 확신을 국민들이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국력을 배경으로 삼아 평화통일을 해보자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우리 남쪽에는 가짜 평화주의자들이 제법 활개를 치면서 국민을 현혹시키던 때가 과거 10여년 계속 되었었다. 이들은 또한 「민주인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정체가 불명했고 그 대신 허명(虛名)은 요란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 애호가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 진면목을 우리는 74년 8월 15일 제 29주년 광복절 경축식전에서 확인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날의 비극을 기억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의지를 간과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북한당국이 밀파한 암살범의 흉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경축식장에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육영수 여사를 한쪽으로 지켜보면서 감연히 연설대에 다시 모습을 들어 낸 박 대통령은 중단되었던 경축사를 계속했다. 그 경축사의 내용은 우리가 전쟁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하고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만 장차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평화통일정책의 천명이었다.

그날의 경축사는 평화통일의 기본을 천명하는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육 여사의 서거 소식으로 도하의 모든 신문이 비보 일색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무슨 내용의 경축사를 읽었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노렸다가 실패하자 자기 대신 사랑하는 자기 아내의 목숨을 빼앗아간 북한 당국에게 대화를 호소하고 평화통일을 호소하는 그 박 대통령의 심경이 과연 어떠했었겠는가? 그것이야 말로 자기희생을 통한 남북간의 평화통일을 구현해 보려는 평화주의자의 숭고한 참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백 마디의 말 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그 사람의 진정성을 웅변으로 표시하는 법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남북 간의 토착인구비례에 입각한 자유 직접 비밀투표에 의한 남북총선거의 실시를 통해서 남북통일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남북의 모든 동포들이 누구의 압력이나 회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건국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세워놓은 통일정책이었다. 그 후 장면 총리가 국회연설을 통해 계승한다고 천명했고 유엔에도 통고되었던 통일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이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을 뿐 아니라 더욱 더 강력한 국력으로 뒷받침해 주는 정책으로 보강해 나갔다.

따라서 이 정책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시와 더불어 민주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계속 유효한 기본정책이라고 나는 믿는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현실성도 없는 탁상공론이요 변절자들의 사기노름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위에 우뚝 솟아있는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는 인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대한민국을 다 같이 받들자!

우리 가슴 속에 영원한 한국

미육군 대장 비. 비. 벨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 사령관

3년 전 유럽에서의 사령관 근무를 마칠 무렵, 저는 군에서 은퇴하여 미국 테네시주 동부의 고향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워싱톤의 군수뇌부로 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저를 유엔사, 연합사, 및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지명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대단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영예스럽게 느껴졌고, 아내 케이티와 의논한 후, 그 제안을 곧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근무한 것은 1979년이 마지막이었고,  그 사이 한국은 놀랍게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 한국이 변화하는 과정을 계속 눈 여겨 보았고, 때때로 이곳에 와서 훈련과 연습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한국인들이 이 나라를 진정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공 스토리로 그렇게 빠르게 바꾸어 놓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 항상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내 케이티를 늘 압도한 것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들의 호의와 친절이었습니다.

2006년 2월 초 이곳에 온 순간부터 한국인들은 저희들을 그들의 가슴속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이제, 이곳을 떠나는 시점에서, 저희 두 부부는 한국인들을 저희들의 가슴 속에 품고 떠날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령관이 된 이후, 아내 케이티와 저는 한극에서의 생활 속에서 어린이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의 한국인들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만남은 모두 다 풍요롭고 보람된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한국인들에 대한 저희들의 사랑은 용산에서 자라나는 향기로운 백합화처럼 그렇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베푼다 한들 한국인처럼 베풀 수는 없다.”는 그런 옛말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진리를 몸소 경험하였고, 한국인들의 이런 아낌 없는 마음씨에 늘 감동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인들의 관대함과 넓은 아량이 늘 제 마음을 깊게 움직였고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 초, 제 아들 버크와 며느리 제니퍼는 진희라는 이름의 어린 한국 여자아이를 입양하게 되었고, 진희는 제 삶의 자랑이요 기쁨이 되었습니다.  제 손녀는 이제 태어난지 11개월이 되었습니다.  진희는 아주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일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휼륭한 품성들, 즉, 아름다움, 우아함, 영특함, 그리고 유머감각을 이미 다 지니고 있다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은퇴를 하면, 그저 진희의 할아버지로서 보내게 될 시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희와 한국인 모두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한국과 우리 가정이 지속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저는 진희와 함께 자주 한국에 오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인들을 둘로 갈라놓아 온 휴전선을 진희와 함께 손을 잡고 건너게 될 그런 날이 도래하여, 한국인들이 통일된 조국의 열매를 향유하게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는 그 꿈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평화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믿습니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이루어집니다.  아내 케이티, 저 그리고 저의 가족 모두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모두 ‘같이 갑시다!’

영원한 보수주의자 레이건 대통령을 회상한다

직설적이지만 품위 있는 화법으로 고르바초프 제압
자유사상·애국심으로 2류국가 전락 위기 미국 일으켜

레이건의 비문

미국을 쇠퇴론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출한 대통령, 반세기에 걸친 소련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낸 대통령, 미국정치의 주류를 영원한 보수주의 정치이념으로 짙게 물들여 놓은 대통령… 하늘의 레이건 묘비는 이렇게 새겨져 있을 것으로 믿는다.

70년대 중반 미국내 주유소에는 자동차가 줄을 서서 얼마간씩의 휘발유 배당을 기다리고 있었다. 탄핵의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국제적 수치 속에 중도하차했고 월남전은 공산통일로 끝을 맺었고 아프리카의 앙골라, 중동의 아프가니스탄, 중남미의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등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으로 미국대사관 직원들 52명이 인질로 붙잡혀 있었고 미군의 구출작전은 아랍사막에 미 군사 헬리콥터의 잔해만 남겼다.

침체에 빠진 미국자본주의는 연 두자리 숫자의 인플레 속에 허덕이고 있었고 미국의 저명한 학자 폴 케네디는 미국의 전성기는 끝나고 이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예언했다. 사양길로 들어선 병든 미국이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도 패배할 것이 뻔한 듯했고 많은 우리 유학생들은 소련 공산주의가 미래의 물결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미국 국민들은 2류국가로 전락하게 될 미국의 운명을 감수하는 듯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침체와 비관과 체념의 늪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을 때 한국 나이로 70세의 2류 배우 였던 한 노인이 대통령 자리에 등장했다. 공산주의와의 생사를 건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쇠퇴주의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을 무슨 수로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사를 끝맺기 전 국회의사당 건너편의 알링턴 국군묘지를 바라보며 1차대전에 나가 전사한 한 시골 소년 마틴 트렙타우가 남긴 애국의 맹세를 인용했다.

“나는 일할 것이다. 나는 저축할 것이다. 나는 희생할 것이다. 나는 인내할 것이다. 나는 이 전쟁의 전 목표가 내 홀로에게 달려 있는 듯 즐겁게 싸우면서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미국 젊은이의 애국의 맹세는 얼마 전 대한민국을 부르짖고 태극기를 흔들며 소위 386세대를 뛰어 넘은 ‘영원한 20대’ 우리 젊은이들이 외침이 아니냐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진솔하고 순박한 애국의 목소리다. 레이건은 취임사에서 애국을 설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살아갈 자기 자신의 애국신조를 한 소년의 글을 통해 자백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는 의회에 나와 서부활극 속의 난장판이 된 마을에 되돌아 온 보안관을 묘사하듯 “미국은 되돌아왔다. 키 높이 서서…”(America is back, standing tall…) 라고 갈파할 수 있었다.
칠순을 지난 늙은 지도자 아래에서 쇠퇴주의 병의 검은 안개는 걷히고 밝은 아침의 햇빛 아래 자유의 재생력이 발동을 걸고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대통령

레이건은 가난했을 뿐 아니라 대학도 좋은 곳을 나오지 않았다. 영화배우도 2류배우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 미국국민을 진실로 한없이 사랑했다. 그가 무장괴한에 의해 저격당했을 때 부인 낸시를 보자마자 “여보, 내가 엎드리는 것을 잊었단다.”라고 한 말은 “범인은 잡혔나. 잡아서 엄벌해…”하는 자기중심적 의식구조와는 너무도 다르다.

해마다 미국언론간부들이 초청돼 대통령과 유머와 농담을 교환하는 만찬장에서 한 언론인이 “대통령께서는 집에 가져간 공문서를 TV광고 시간에만 잠깐잠깐 읽는다면서요…” 하고 레이건의 게으름을 꼬집었다. “그것은 거의 맞지만 조금 틀렸소. 광고시간에는 광고를 열심히 보고 뉴스시간에는 공문서를 읽지요.” 만찬장에 폭소가 터졌다.

어느 기자가 “당신은 왜 그렇게도 국민들 간에 인기가 좋습니까?”하고 물었다. 즉석에서 그는 “아마도 나도 그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자를 포함해서 모든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한 대통령이었다. 참된 애국은 그곳으로부터 시작되며 참된 영도력은 그곳으로부터 나온다.

베를린 장벽 앞에 서서 “고르바초프 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을 때 많은 미국지도자들이 겁을 먹고 걱정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호칭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화법과 화술은 우리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처럼 솔직하고 가식 없고 직설적이다. “저거 참 저러다 큰일 나지 않을지…”하며 공포감에 휩싸인 병아리 정치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레이건의 화법에는 격이 있고 위엄이 있었다. 저속한 싸구려 말투를 기피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의분은 강했지만 소련 고르바초프에 대한 증오는 없었다.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고 가슴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 저 핵을 철거하시오!”라고 외칠 수 있고 북한을 ‘악의 계곡’이라고 호칭할 수 있는 대한의 지도자는 언제 어디서 나올 것인가. 부시가 우리를 대신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다고 꼬집는 비겁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아이슬란드에서 고르비와 핵 미사일 퇴치 협상을 벌이다가 끝내 결렬되고 서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고르비가 따라 나오면서 “낸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고 항의했었다. 레이건은 고르비를 향해 “You could have said YES”(YES라고 할 수 있었잖나!)라고 쏘아붙였다.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로 불린 그는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고 강한 화법을 썼지만 품격 없는 표현은 안썼다. 평양 가서 6·15 협상을 할 때 TV에 비친 DJ의 힘 없던 말소리가 눈을 가린다.

정부권력 만능 믿는 좌익 배척

레이건은 의사로부터 치매의 초기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1994년 11월 5일 ‘나의 친구 미국민에게’라는 고별 편지를 직접 써서 배포했다.

“… 끝으로 여러분들의 대통령으로서 여러분에게 봉사할 수 있게 허용해주신, 커다란 영광을 베풀어 주신 미국국민에게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 때는 나는 이 우리들의 나라에 대한 최대의 사랑과 그의 장래에 대한 영원한 낙관을 안고 떠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삶의 해저묾으로 이어질 여행길에 오릅니다. 미국의 앞길에는 언제나 밝은 아침이 있을 것을 나는 압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들이여, 하느님께서 항상 여러분을 축복하소서. 도날드 레이건”

그는 미국과 미국국민을 사랑했기 때문에 계급의식에 기초한 좌와 우의 분열정치를 멀리했다. 그 대신 그는 좌냐 우냐 보다 한차원 높은 ‘영원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소지자였다. 개개인의 행복의 기초인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힘을 무한히 키우고 신장시키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선택은 실로 (좌냐 우냐가 아니고) 위로 가느냐 아래로 가느냐가 아닌가요? 아래로 향해 국가주의로, 복지국가로(정부가 가난한 계층을 돌봐줘야 한다는 현대판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더 많은 국가 권력이 따라붙는 정부돈 선심 쓰기로, 더 적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 독재로 향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언제나 우리들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내세우는 길. 이와 대치되는 또 하나의 길은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의 꿈인 올라가는 길 즉 질서 있는 사회 속에 개인의 자유의 극치를 향해 올라가는 길이다…”

레이건은 정부권력이라는 것은 본질상 끝없이 비대해지는 억압의 괴물, 개인의 자유를 짓밟고 개인의 재산을 먹어치우는 공룡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정부가 그 권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 좌익 진보주의적 시각을 철저히 불신하고 배격했다. 모든 종류의 부패도 따지고 보면 정부권력에 따라붙어 다니는 똥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은 거짓이다. 바로 ‘정부 자체가 문제’라고 갈파했다. 국민의 등에서 정부라는 원숭이를 떼주자고 호소했다. 그가 공산주의독재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싫어한 것도 그의 이러한 자유의 힘과 가치를 신봉하는 ‘영원한 보수주의 신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 최대의 군비확충사업도 소련의 억압체제가 얼마나 사악한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바람 일으킨 레이건의 개혁

그의 개혁은 정부권력을 빼앗아서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정부의 ‘자기 부정적 개혁’이었다. 사상 최대 가장 큰 감세조치를 통해 국민이 번 돈을 국민에게 최대한 되돌려주는 개혁이었다. 침체 속에 허덕이던 미국경제에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제거해줌으로써 국민 개개인의 창의와 창업정신을 최대한 북돋워주는 개혁이었다.

정부를 믿고 정부에 의존하는 개혁이 아니고 국민을 믿고 국민에게 의존하는 개혁이었다. 정부와 관료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이 아니고 국민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이었다. 국민이 정부보다 더 현명하고 선하다는 것을 믿는 개혁이었다.

미국국민들간에 신바람이 일어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또다시 뛰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쇠퇴주의와 패배주의 대신 미국 고유의 자신감과 낙관론이 무지개처럼 떠올라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미국 경제의 엔진이 다시 우렁차게 시동했다.

당시 타임지는 하늘을 두 팔 벌려 나는 미국국민의 행복감을 그 표지에 띄웠다. 이윽고 그가 ‘악의 제국’이라고 갈파한 소련 공산주의체제가 미국과의 군비경쟁의 중압을 못이겨 무너지고 반세기에 걸친 냉전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이 유일 초강국으로 21세기 역사무대에 우뚝 등장했다.

인류가 어떤 형태든 조직체를 꾸며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정치권력을 경계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믿는 레이건의 ‘영원한 보수주의’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염원과 함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그의 이름도 20세기 역사 안에서 하나의 커다란 별같이 빛날 것이다. 영롱한 한미동맹의 별과 함께…

미래한국신문 특별기고
박근 (한미우호협회 회장·전 UN대사)

새 정부에 바라는 한미동맹 정책(편집위 토론회 요약)

“이명박, 美 상하원 합동연설 나서야”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美 의회서 연설한 두 번째 지도자 돼야
전자전 능력 보유한 ‘정예강군’ 육성해야

[1] 유석렬: 17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의 승리로 386친북정권을 교체하게 됐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 5년간 어느 정도의 공도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줬다. 특히 노 정권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 등 한미관계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대위기로 몰아가며 안보위기를 자초했다. 반면 이명박 당선자는 그동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 당선자의 기본적인 대미관을 어떻게 보는가?

전인영: 이명박 당선자는 한국전쟁 세대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미국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울러 이 당선자의 경우 대기업 CEO 출신이기 때문에 성향이 보수적·친미적일 수밖에 없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 그리고 이번 선거기간 이 당선자가 행한 발언들을 봐도 그가 ‘중도우파’(Center-right) 성향의 친미적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명박의 당선 직후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자와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장차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공조하고 싶다”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가능한 한 빨리 워싱턴을 방문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미국이 이 당선자에 대해 큰 신뢰를 보여준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앞으로 호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극우·극좌도 아닌 실무적 인물”

권영훈: 이 당선자는 극우·극좌도 아닌 실무적인 인물이다. 한국의 외교관계는 크게 한미·한일·한중·한러·한EU로 나뉘는데 가장 중요한 관계가 바로 한미관계다. 한미관계가 기본적으로 잘 풀려야만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가 잘 풀려나간다. 실리적인 이 당선자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며 그동안 소원했던 한미관계를 회복·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2] 유석렬: 미 하원 본회의는 지난 6월11일 향후 한미 양국간 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내용이 담긴 ‘한미동맹에 관한 결의안’(H.Res.295)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이 당선자는 최근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실용적 한미관계를 내세우며 양국의 관계증진을 언급했다. 이 당선자에게 한미관계 강화방안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김용선: 회의론자(Skeptics)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우리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당선자의 취임 전 어떤 변동이 있을지 알 수 없으며, 한미동맹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종속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여론 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제쳐두고,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언론은 기술적인 얘기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한미동맹 관계가 왜 중요한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카인이 아벨을 죽였음을 상기해야”

차기 정부가 5년간 치세를 잘 했다고 해서 정권이 연장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적인 이해,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등 이념문제에 있어 흔들리지 않도록 국가가 지속적인 대(對)국민 계도를 해야 할 것이다.

전인영: 미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의 더그 밴도우(Doug Bandow)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미국이 이혼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말까지 했다. 2005년 10월 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안보회의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 핼핀(D. Halpin) 보좌관은 한국의 한 각료가 ‘미국은 단지 한국의 우방이지만, 북한은 우리의 형제’라고 한 말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사실이나 인류 최초의 두 형제인 카인과 아벨도 종국에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음을 그 각료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다”고 비판했었다. 이는 한국의 안보를 위해 ‘민족’ 보다 한미관계 공고화가 더욱 중요함을 충고한 것이다.

이제는 한미 간의 상처치유와 신뢰회복이 필요한 시기다.  그를 위해 우리가 먼저 한-미
FTA 비준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한-미 FTA 비준을 통해  경제·안보 문제가 한꺼번에 풀려나갈 수도 있다. 그동안 군사문제에서 한미양국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는데, 긴밀한 군사협력체제 구축이 요망된다.

양국 국방장관이 오는 2012년 4월17일 전시작전권을 이양하기로 서명까지 한 상태여서 재협상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친미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적어도 협조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내문제 잘 다스리면 국제문제 잘 풀릴 것”

이성원: 언더우드 일가는 이조말엽 조선에 들어와 연희전문과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3대에 걸쳐 한국을 지켜보며 한국이 잘 되기를 가장 축수한 분들이다. 몇 년 전 작고한 3세 언더우드 박사는 늘 한미간의 유대가 약화될 것을 걱정하며 한국의 식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었다.

“문제는 한국 내부의 풍조입니다. 미국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에게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려 애쓰지 말고, 이곳 한국의 일반 국민들에게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깊이깊이 인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불행히도 그의 말이 적중해서 결국 우리나라에서 좌파정권이 출현하여, 지난 10년간 한미관계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이제 새 정권은 한미관계의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3] 유석렬: 지난 12월 20일 도널드 자고리아 뉴욕 헌터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와 부시 미 행정부가 함께 일할 향후 1년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중유 등 에너지 지원 제공이 늦어지고 있는 것을 이유로 핵시설의 불 능화 작업을 늦출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향후 6자 회담에 참여를 거부할 경우 한미는 어떻게 공조를 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권영훈:  미국과의 공조에 앞서 한국의 대북정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과거 서독이 동독을 원조했던 방식을 관심 있게 봐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은 수십 년 동안 동독을 지원했다. 그러나 서독의 통일 정책은 한국의 햇볕정책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달랐다.

서독의 통일정책은 철저한 ‘기브 엔 테이크’(give-and-take)였으며 동독을 지원하는 대신 개방을 하도록 만들었다. 차기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과의 의견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북경협기본법’의 제정해야 할 것이다.

[4] 유석렬: 대니얼 스나이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한 한미 공조는 잘될 것으로 본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건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비준하는 일”이라며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등을 언급했다. 한미 양국의 FTA 비준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에 바라는 것은?

“한미 FTA, 국익을 위해 반드시 실현시켜야”

김용선: 한미 FTA 자체는 국제문제이고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내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경우 국제적인 측면에서 국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권영훈: 한미 FTA는 우리 국익을 위해 반드시 비준을 해야 한다. 방송을 보면 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산 쇠고기 가져다 놓고 잘 보이지도 않는 뼈가 있다고 하면서 국민감정을 부추기는데 이런 행위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옛말에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높이 날아가려면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함께 가는 것이 우리가 더 큰 시장으로 나가는 장이 될 것이다.

쇠고기 수입 문제도 일본처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여야 하며, 미국도 한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및 기타 한국 상품과 다양한 서비스 산업분야에 관해서도 장벽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 향후 한미가 공동의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여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이 나아갈 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자는 이러한 국가질서에 기반을 두고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군사·경제문제부터 삐걱거릴 것이다.

이 당선자는 과정정책을 잘 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인데 기본적인 국가질서·경제 질서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관계가 지금 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이 당선자는 자유민주주의로 나가는 국가정책과 자유시장경제로 나가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비전이고 전략이다. 비전과 전략을 제대로 세우면 한미관계는 잘 풀릴 것이다.

[5] 유석렬: 미북 관계가 최근 들어 급진전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이 내년 2월 26일로 예정돼 있고, 얼마 전에는 북한 태권도 시범 단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5개 도시 순회공연을 하면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처럼 급진전하는 양국 관계의 이면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전인영: 국제관계는 늘 국내문제와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 발발 이후 전사자가 3,900여명에 달해 국내적으로 반전여론이 거세고, 개전 당시 36개에 달했던 파병국이 대부분 군대를 철수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특히 주요 동맹국인 영국 호주 일본 등도 철군 쪽으로 돌아서면서 미국은 사실상 혼자 전쟁을 치르게 생겼다.

“북핵 불능화 쉽지 않아, 김정일 시간 지연 시킬 것”

이런 상황에서 부시 미 행정부는 강경보수의 네오콘들이 밀려나고 콘돌리자 라이스 주도의 대북 유화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핵 폐기 및 핵 확산 금지를 요구하면서, 적성국과의 무역금지, 테러 지원국 명단 삭제 문제, 나아가 국교수립 문제 등을 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금년 2월로 예정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도 정치적 의미를 지닌 행사와 접근으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의 기조가 이렇듯 크게 변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을 지속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 문제에 있어서도 플루토늄 양과 고농축 우라늄(HEU)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북한은 그동안 HEU의 존재를 부인해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이를 시인하지 않을 것이다.

북핵 불능화는 새해 들어서도 천천히 이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폐기 이행이 다소 늦어 지드라도, 북핵 ‘불능화 및 신고’를 완전히 철저하게 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근: 미북 관계도 관계지만 개인적으로 이명박 당선자와 부시 미 대통령이 가질 정상회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이 이르면 내년 3월 초순 쯤 열릴 것 같은데 이 회담에 한미 관계의 장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상간의 회담은 길어야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정도다. 여기서 통역 시간을 포함하면 실제 두 정상이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은 30~40분 정도, 즉 하나 앞에 15분~20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간 내에 두 정상간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한 예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일화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전 대통령은 지난 81년 2월 초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맞이한 두 번째 외빈이자 첫 번째 국빈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첫 대면 5분이 가장 중요”

전 대통령은 방미 전 레이건 대통령과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두고 많은 고민을 했고, 실무진에서 준비한 회담 자료는 책상에 가득 쌓여 있었다. 실제 레이건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자 “당신을 도와주려고 미국에 왔다”고 말했다. 이 말에 배석한 사람들이 모두 놀라자 “일본이 한국에 100억 달러만 차관을 주도록 주선해 주면 그 돈으로 미국에서 무기도 사고 물자도 구입해서 미국의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미국 경제는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게 직접적인 원조를 부탁할 수 없었던 한국 입장에서 이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회담을 통해 한국은 액수는 조금 줄었지만 차관을 일본으로부터 얻게 되었고 양국 지도자의 약속은 실제로 이뤄졌다. 정상회담다운 정상회담의 한 예라고 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대면 5분이다. 이 시간 안에 상대방을 미인(美人)이라 생각하고 구워삶아야 한다. 그리고 10분 내에 중요한 얘기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 내에라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소원해진 한미 관계를 일시에 회복시킬 수 있고 회복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적한 소위 “현안 문제들”은 논의 하지 말고 한 가지만 갖고 귓속말 하듯 서로간의 가슴속 깊게 길을 터야 한다. 단 둘이서, 가능하면 통역도 없이 누구도 모르게 북핵문제를 갖고 속삭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한미 양국 지도자가 서로에 대해 진심과 믿음으로 대하면 서로 믿고 좋아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국가 지도자가 이런 것도 못하면 대통령 하지 말아야 한다. 손짓 발짓을 하더라도 정상회담은 인간적 유대관계를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당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얼마 전 사르코지가 프랑스 정상으로서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연설함으로써 미.불 양국간의 우호복원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이 당선자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반미였다. 그러나 한국은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함께 피를 흘린 혈맹(血盟)관계다. 한미동맹은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 그 이상이다

“이명박, 당당하게 우리말로 연설하면 보기 좋을 것”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 상하양원에서 행한 연설이 상기된다. 1953년 휴전협정에 따른 한국에 관한 제네바에서의 남북회의가 실패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위 대통령의 공식 초청으로 노구를 이끌고 1954년 7월 26일 미국을 방문해 상하양원 특별회의에서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이 ‘노예 반, 자유 반’으로는 쪼개진 집은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노예 해방을 위해 주저 없이 용감히 싸운 예를 들면서 “공산주의 반, 민주주의 반”으로는 평화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휴전협정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바라는 희망만 가지고서는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미동맹 반세기가 지났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에게 한 번 더 상하양원에서 연설을 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우리말로 (동시통역으로) 멋있게 연설했으면 더 보기 좋을 것 같다.

[6] 유석렬: 대니얼 스나이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미연합사를 해체한다는 기본 결정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작권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나아가 전작권의 한국군 전환 문제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김용선: 전작권의 재협상 문제는 정권교체와는 상관없는 사안이다. 그럼 대안은 뭐냐. 먼저 노무현 정권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좌익정권이 또 나오게 되더라도 협상이란 서로가 윈 윈(win-win)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연합군 체제인 한미연합사를 해체시키고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전환하면서 국익을 해쳤다. 전 세계 주둔 미군의 재배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이 원하는 최고의 친미(親美)주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근: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의 한국군 전환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면 한국은 이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협조 하에 C4I(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 시스템을 도입, 정예강군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C4I는 군단 급 이하 감시·타격 체계를 지휘·정보 체계 및 컴퓨터와 유기적으로 연결해 통합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체계다. 실제 전쟁이 벌어질 경우 군단 지휘소의 대형 스크린과 지휘관들의 노트북에는 군(軍) 전술통신망을 통해 수집된 아군과 적군의 위치와 이동 상황, 교전으로 인한 피해 상황과 화력 등 각종 정보가 한눈에 펼쳐진다.

기존에 실전 때의 지휘·통제 체계는 개별 무기체계 중심이었다. 전투기·전차·자주포·함정 등 무기마다 서로 흩어진 채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운용됐다. 그러나 C4I 체계에서는 이런 타격 무기들과 전투 부대들이 하나의 정보 네트워크로 통합된다. 전투병들도 이동하면서 유·무선 통신을 통해 주요 전장 상황 등 모든 정보를 동시에 실시간 공유하게 된다.

사실 지휘라인을 따라 음성으로 전투 상황을 계속 전달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의사소통 과정에서 중대한 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C4I 체계에서는 영상과 음성이 다 같이 결합된 상태에서 전송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전투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문자 메시지도 활용된다.

“북핵 문제 해결,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

지휘관은 스크린과 자신의 노트북에 실시간으로 표시된 각종 정보를 기초로 아군의 상태가 어떤지, 공격을 개시할지 여부 등을 신속하게 판단하게 된다. 또 무인 항공기 등 최첨단 장비를 활용해 적을 먼저 보고, 먼저 결정하고, 먼저 타격할 수 있다. 전투기에서 이동 중에 찍은 적군 동향 사진이 무선으로 전송되면 군단장에서 중대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휘관들이 동시에 공유하고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례로 지난 2000년 서해교전에서 북한 함정과 교전할 때 우리 함정이 먼저 타격을 가한 것도 해군이 먼저 도입한 C4I 체계 덕분이었다.

[7] 유석렬: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주의적 한미동맹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정책이 잘 실현되길 바란다. 한미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소원해진 양국의 신뢰를 재구축 하는 것이다.

특히 한미간의 민간교류가 그동안 정체됐는데 이에 대한 활성화가 시급하다. 이 당선자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관계도 중국·러시아·북한 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강화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접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국익에 반하는 접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핵물질을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전제하의 관계개선이 최우선 사안임을 차기정부에 권고한다.

– 협회 편집위 토론회 요약 (2007년 12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