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들은 이사갈 수 없다 – 복거일

복 거 일 작가, 사회평론가

복 거 일
작가, 사회평론가

1.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

바로 이웃하고 살아온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가 근년에 갑자기 험악해졌다.  두 나라 정부들은 상대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거친 태도를 보이고, 두 나라 시민들은 서로 격앙된 감정들을 분출한다.  양쪽 다 상황이 워낙 험악해서, 차분히 살피고 합리적으로 문제들을 풀어가자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식민 통치는 1945년에 끝났으니, 두 나라가 대등하게 평화적으로 사귄 지 두 세대가 훌쩍 넘었다.  그만한 세월이면, 일본의 침략과 식민 통치의 깊은 상처도 상당히 아물었을 법하다.  두 나라의 시민들 가운데 일본의 식민 통치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그리 많지 않으니, 어둡고 괴로운 그 시절의 구체적 기억들도 많이 바래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 불행한 과거는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상처는 점점 커진다.  무엇이 이처럼 불행한 상황을 낳는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를 갑자기 험악하게 만든 요인을 살피면, 우리는 두 나라 사이의 분쟁들은 실질적 이해와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60년대에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물질적 보상은 일단 타결되었고 뒤에 나온 실질적 문제들은 그리 크거나 복잡하지 않다.  분쟁의 핵심인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비록 영토와 관련되었지만, 독도 자체의 가치는 두 나라의 협력에서 얻는 거대한 이익에 비기면 아주 작다.  우리 시민들의 가슴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부르는 것은 실질적 손해가 아니라 과거에 관한 일본의 태도다.  지금 불붙은 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본질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일본의 태도다.  즉 문제의 핵심은 물질적 이해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다.

실제로, 역사에 대한 태도만 빼놓으면, 한국과 일본은 모든 면들에서 모범적으로 협력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 긴밀히 협력해서 서로 큰 이익을 보고, 문화적으로 아주 동질적이며, 군사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서로 의지해 왔다.  특히, 6.25 전쟁에서 미군의 발진과 보급의 후방 기지였던 일본은 그 전쟁에서 국제연합군이 이기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고, 지금도 그런 군사적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이 한국보다 상당히 앞섰으므로, 문화와 정보의 흐름은 늘 일방적이었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 통치가 남긴 감정적 앙금을 고려하면, 한국 시민들은 일본에서 들어오는 문화와 정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의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과 태도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르고 그것이 다른 면들에서 긴밀하게 협력적인 두 우방국들 사이의 관계를 독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 왜 이리도 끈질기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거세게, 두 나라가 보다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가?

2. 대중의 민족적 경험

역사를 들여다보고 둘레를 살피면, 이처럼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태도는 현대 인류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져 온 추세임이 드러난다.  그것은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거세게 분출된 독일 민족주의에서 싹텄으니, 적어도 2세기 동안 점점 강력해진 추세다.  그런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추세가 떠받친다는 사정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를 늘 어렵게 만들어온 주요 요인이다.

이 현상에 대해 통찰한 사람은 프랑스 사상가 줄리앙 방다(Julien Benda)다.  1928년에 나온 <지식인의 배반>에서, 그는 민족주의가 거세어진 과정을 살피고 앞으로 더욱 거세어지리라고 예언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인류는 민족주의 때문에 점점 큰 괴로움을 겪어왔다.

방다는 현대가 “정치적 증오들을 지적으로 조직하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현대에선 대중이 민족적 정열을 경험하며, 그래서 그 정열이 이전보다 훨씬 더 순수하다.  근대 이전엔 민족적 정열은 국왕이나 지배 계급이 경험했고, 주로 이권과 관련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중들이 경험하는 민족적 정열은 주로 자신들의 국가와 그 역사에 대해서 품는 자부심이다.  자연히,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향한 명예나 모욕에,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조국에 대한 명예나 모욕이라고 자신들이 느끼는 것들에, 아주 민감하고 거세게 반응한다.  그들은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고, 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국가에 대해 자신들이 품은 자부심만으로 정책들과 외교 활동들을 명쾌하고 단호하게 판단한다.

방다에 따르면, 17세기에도 유럽의 시민들은 벌써 국가의 명예라는 개념을 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영예를 지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판단하는 일은 국왕과 그의 보좌관들에게 맡겼다.  그래서 유럽의 국왕들은 냉정한 계산을 통해서 비교적 합리적인 정책들을 추구하고 파국을 피하는 방식으로 협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현대의 시민들은 국가의 명예가 무엇을 뜻하는지 자신들이 잘 안다고 여기며, 만일 정치 지도자들이 그 일에 관해서 자신들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보이면, 분연히 일어나 그들에게 맞선다.

3. 낭만적 애국심

상황을 한결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런 자부심이 주로 역사와 관련되어 표출된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조국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어 한다.  특히, “역사적 권리”들을 누리고 싶어 한다.  천 년 전 발해가 멸망하면서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만주 벌판을 우리는 아직도 그리워하지 않는가?  이런 “낭만적 애국심”이 바로 대중이 가장 열정적으로 발휘하는 애국심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맞은 어려움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양국의 대립은 본질적으로 양국의 역사에 관련된 것이고 어느 쪽도 자신의 “낭만적 애국심”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양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명예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 통치를 받았으므로, 한국 시민들이 더 뜨거운 민족적 감정을 지녔을 터이지만, “낭만적 애국심”이 실질적 이익과 관련이 적은 감정이므로, 일본 시민들의 민족적 감정도 무척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부끄러운 행적을 감추려 애쓰고, 필요하면 역사를 왜곡하고, 사과에 인색하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 그런 사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두 나라 지도자들은 실질적 이익을 위해 타협할 수 없다.  그들은 각기 낭만적 애국심으로 가득한 자기 시민들의 노예들이다.  노예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흐 지멜(Georg Simmel)의 지적대로, “모든 지도자들은 또한 이끌린다.  수많은 경우들에서 주인은 그의 노예들의 노예다.”  따라서 두 나라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아주 좁다. 소극적으로 시민들의 민족적 정열에 이끌리거나 적극적으로 그 정열을 북돋아서 손쉽게 정치적 이득을 얻는 길뿐이다.  놀랍지 않게도, 두 나라 지도자들은 후자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쉽게 정치적 자산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민족적 열정을 북돋우는 발언을 해서, 좀 나아지려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다시 헝클어뜨린다.  정권의 운명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 수교를 추진해서 두 나라 사이의 협력 관계를 마련하고 그런 관계를 활용해서 경제를 발전시킨 박정희 대통령이 거의 유일한 예외다.

4. 외교적 손실

이런 요인들은 두 나라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면전을 한다는 생각을 품도록 만든다.  역사에 관한 논쟁에서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고 한쪽의 손실은 다른 쪽의 이익이라고 믿게 된다는 얘기다.  즉 두 나라 시민들이 오직 자신들만이 참여하는 이인 영합경기(two-person zero-sum-game)에 임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여러 나라들이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연합과 협력을 하는 다자 비영합경기(n-person non-zero-sum game)다.  그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전면전을 하듯 영합경기를 벌이는 것은 두 나라 다 손해다.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다른 나라들의 지원이 필요하므로,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는 데 자원을 많이 쓰게 마련이다.  전에 남북한이 외교적으로 치열하게 다투면서, 중립국들의 지원을 얻으려 많은 자원을 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런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가 절감했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의 싸움에 외교적 자원을 많이 쓴다. 일본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침략했으므로, 일본과의 대결엔 중국과의 연합이 자연스럽고, 그래서 근년에 우리와 중국 사이의 관계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특히 우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뒤에 바로 중국을 방문하고 일본은 아직도 방문하지 않는 사태까지 나왔다.  빠르게 커지는 중국의 영향을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중국의 영향권으로 스스로 한 걸음 들어간 형국이다. 게다가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 교섭으로 대응한다. 자연히, 우리와 미국 및 일본으로 이루어진 굳은 동맹 관계는 갑자기 부실해졌다. 경제적 손실도 결코 작지 않다. 우리로선 실질적 손실이 너무 크다.

5. 대책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품은 자부심을 무엇보다도 높이는 “낭만적 애국심”이 워낙 강력한 힘이어서,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합리적으로 타협할 여지가 아주 좁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정치 현안인 문창극 총리 후보의 ‘친일 역사관’ 논쟁이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근본적 해결책은 두 나라 시민들이 두 나라가 ‘이인 영합경기’를 함으로써 입는 손실을 제대로 알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가파른 흥기를 걱정한다.  두 나라가 그런 걱정을 더는 길은 연합해서 중국에 대응하는 것뿐이다.  그 점을 두 나라 시민들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다자 비영합경기’인 외교에서 ‘이인 영합경기’를 벌이는 어리석음을 줄일 수 있다.

일본이 한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어리석다는 점을 일본이 깨닫는 것도 긴요하다.  특히, 센카쿠 제도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는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어리석다는 점을 일본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독도와 센카쿠 제도는 중요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독도의 경제적 및 군사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센카쿠 제도는 둘레에 자원도 풍부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막는 일본의 방어선의 핵심이다.  따라서 일본으로선 영토에 관한 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이 실제로 지배하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일본은 자신이 실제로 지배하는 센카쿠 제도에 대한 자신의 영유권을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와 센카쿠 제도 문제가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국제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는 ‘합법주의(legalism)’를 내세운다.  그런 주장은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영토에 대한 현상 유지를 어렵게 해서, 국제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일본의 실질적 이익을 위협한다.

이웃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관계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불행하게도, 한국과 일본은 사이가 유난히 나쁘다.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전망도 없다.  그래도 두 나라 시민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이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사를 갈 수 있는 개인들과는 달리, 나라들은 이사를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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