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오늘과 내일 – 박근

한.일관계의 오늘과 내일

박  근
(전) 유엔대사
본회 명예회장

대한민국 앞에는 눈 부시는 새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우여 곡절을 겪으며 시간이 흘러도 세계사의 힘찬 물결은 대한민국과 일본을 같은 물결에 태울 것이고 태극기와 일장기는 함께 쓰다듬고 함께 펄렁거릴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는 두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지속되고 있다. 통일대박으로 통일에 대한 담론은 활성화시켰지만 신뢰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제안 등은 통일을 아득한 먼 앞날의 과제로 밀어내고 있다. 중요한 한일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상 가장 나쁜 시간이 가장 길게 지속되고 있다.

북핵과 일본의 과거사문제는 특히 위안부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UN안보리가 불법화시켜 제재중인 북핵은 결코 합법화 될 수 없는 불법소유물이다. 북한체제와 함께 해체되든지 때가오면 군사력에 의해 강제 제거되고 말 것이다.

세계사의 물결은 힘차다. 세계 제 2차 대전 중 일본군의 가미카제 자살폭격 등으로 수만은 인명과 군함을 잃은 나라는 미국이다. 역사상 처음이고 마지막이길 바라는 핵폭탄으로 십여만 명의 인명을 잃은 나라는 일본이다. 이 두 나라는 그러나 단시일에 끈끈한 동맹국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반복되는 전쟁과 보복으로 피 바다가 된 서구대륙을 EU라는 평화와 민주주의와 번영의 터전으로 전환시켜놓았다. 모두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라는 역사의 흐름이 낳은 아름다운 결실이다.

이 가운데서 한국과 중국만이 일본이 저지른 과거에 매달려있다. 일본과 입씨름을 해 오고 있다. 한국은 요즘 일본과 세력 경쟁하는 중국의 동맹국이 된 것 아닌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한국국민은 원래 과거에 매달려 사는 국민이 아니다. 오랜 사대주의의 슬픈 과거를 문제 삼지 않았다. 과거와 싸우고 역사를 탓하다가 미래를 잃는 국민이 아니다. 현재에 살며 미래를 내다보는 국민이다. 이승만은 물론, 박정희대통령도 위안부문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1960년대에 수억 불의 작은 보상으로 국교를 수립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때문이었다. 처칠의 말처럼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 는 시각도 있었지만 과거에만 매 달려 사는 국민은 절대 아니다.

일청, 일로전쟁을 통해 청나라와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욕을 물리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 하였고 2차 대전 중에는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린 어린 한국소녀들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화 하는 과정과 위안부 모집 시에 강제가 있었다고 문제 삼지 않았다. 한일관계가 끈끈해지는 것을 걱정한 중국과 북한, 그리고 국내좌익이 떠들고 나오기 까지는 문제되지 않았다.

식민지배가 얼마나 억압적이었고 위안부 소녀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얼마나 강탈당했는지 차마 글로 쓰기가 창피할 정도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 대해 지은 용서할 수 없는 최악의 숨은 죄 덩어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 그럴수록 나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중국에 대한 오랜 치욕적 종속주의, 일본의 억압적 식민주의와 치욕적 위안부제도 모두 우리 감정으로는 용서해 주기 어려운 역사적 죄악들이다.

특히 위안부문제는 신라 이후 처음 나온 여성 통치자 박근혜대통령으로서는 정서적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을 용서해주는 것은 강하고 용기 있고 정과 멋있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빛나는 자선이고 덕행이다. 한국인의 본성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한국국민의 정이고 멋이다. 한국국민의 정과 멋에서 나오는 한가위의 보름달이다.

몇 명 안 되는 위안부들에게 정부가 보상하고 용서를 통해 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한다면 세계와 국민은 박근혜 여성대통령에게 눈물로써 박수갈채를  보낼 것으로 믿는다.

일본 아베 수상은 어떻게 나올까? 모리 전 수상을 통해 전달해 온 아베수상의 친서에는 별로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고 한다. 아베수상은 그러나 과거사문제를 용서하는 박근혜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위안부에 대한 추가보상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경제협력, 기술협력, 외교안보협력, 촉진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자기중심으로 노는 안보문제는 더욱 예측하기 힘든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건 없는 용서는 일본이 나오기에 따라 동북아 외교안보 분위기를 확 바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세계 세 번째 경제대국이 동 아세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대한민국과 손잡고 잘 지낸다면 아세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미일, 한미동맹 안에서 개인당 소득 3만5000$의 나라와 2만5000$의 나라가 자랑스러운 이웃으로 있는 한 중국과 핵을 안은 북한의 무책임한 행동은 견제될 것이다. 동북 아세아의 두 자유국가가 아세아와 세계가 우러러보는 두 개의 반짝이는 별이 될 것이다.

중국의 장래는? 10%대에서 7%대로 내려앉고 있는 중국경제의 성장은 세월이 갈수록 어려워 질 것이다. 중국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오는 활력이 제대로 발산 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수 만 년 전 부터 현재까지 인류경제를 발전시켜온 또 하나의 힘은 과학기술이다. 중국인은 상품교류와 교환에는 유태인과 함께 뛰어 났지만 더 중요한 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세계를 앞지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두뇌의 문제가 아니고 언어의 문제라고 믿는다. 가장 많은 인구로써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에 내놓은 중국의 과학기술과 학문의 발자취는 너무도 희미하고 미미하다. 중국의 말과 글(한문)때문에 중국이 한 번도 세계패권을 잡지 못하고 자칭 지역강대국으로 머물러 온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문의 획수를 탓하면서 획수를 줄이면 한문도 선진화되어 과학기술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지만, 중국 언어의 문제는 구조적 문법적 문제이지 문자의 획수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한국말과 일본말이 과학기술과 학문을 위해 한문보다 더 우월한 언어이다. 말이 얼마나 자유롭고 글이 얼마나 그 자유로운 말을 문자화 할 수 있는가? 학문적문학적 표현의 자유는 분석과 이론 전개를 하는 말의 자유에 달려있고 자유로운 말은 자유로운 사유에 달려있다.

사유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뗄 수 없다. 생각이 하늘을 날아다니듯 자유로워야 머리에서 좋은 구상이 구름같이 솟아나고 이론과 논리가 그림같이 펼쳐질 수 있다. 권리가 마음과 생각을 죄어 붙이면 과학기술과 학문, 발명, 발견, 창조적 이론 등이 머리에서 떠오르기 힘들다. 억압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억압적 문화로부터의 자유는 인류발전의 원동력이다.

나는 한문학자가 한문으로 쓴 과학기술의 전문서적이나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학문서적을 본 적이 없다. 이점에서 중국은 후진국중의 후진국이다. 자유를 주면 나라가 분산되고 자유를 안주면 발전이 멈추게 될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경제는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급진하는 세계의 과학기술혁명 앞에 항상 모방경제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를 영도하는 패권 국가는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일본은 한때 미국을 앞질러 세계 제일가는 나라가 된다고 35년 전에 Ezra Vogel 하버드대학 교수가 예언한 나라다. 사유의 자유가 있고 언어의 표현력이 한국말처럼 뛰어난 나라다, 중국과 비교 될 수 없는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자유의 나라 한국도 때가 되면 일본처럼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세계역사를 보면 세계패권과 해양은 같이 간다. 고대희랍의 해양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승리한 이래 영국, 스페인,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패권국들은 모두 해양국이다. 칭기즈 칸은 겨우 100년 정도밖에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해양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세계를 지배 못한 중국의 해양사정은 어떤가? 중국은 거대한 고속도로이고 식품, 자원, 에너지의 보고인 해양을 한 번도 지배하지 못했다. 중국의 해양지정학은 중국해양을 연안국 바다로 만들고, 갈가리 쪼개진 좁은 바다로 만들고 있다. 세계 제일가는 인구가 쪼개진 좁은 바다에 갇혀있기 어렵다. 때문에 중국은 바다에 산재하는 다른 나라 소유의 도서들을 놓고 일본, 월남, 필리핀, 그리고 한국하고까지 실랑이를 벌리고 있다. 중국 것이 아닌 이 많은 섬들을 강제로 점거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세계가 앉아서 보고만 있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싫더라도 중국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관련국들과 함께 앉아 중국의 동해와 남해를 평화적으로 함께 이용하는데 합의하는 길 외에는 별도리가 없다. 지정학은 그 나라의 운명이고 그 운명을 개척하는 데는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구의 반을 차지하는 태평양도 미국과 일본소유의 섬들이 산재하는 미일의 영해 같은 곳이다. 중국은 욕심내지 말고 자기입지를 직시하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한 모임에 중국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한 중국남해연구원 홍농원장은 “역사적으로 중국은 이 지역의 강대국으로 과거에는 조선의 종주국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이익 (어로, 항행 등)을 고려해 보다 많은 역사적 이익이 보장되어야 함”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같이 조공을 바친 나라를 특별히 고려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반박하고는 이는 농담이라 하고 웃고 말았지만 점심식사 중에 그에게 다가가서 중국은 연성적 힘(체제의 매력) 이 너무 약하니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더니 순순히 잘 들어주었다.

중국은 아직도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하고, 높고 낮고 중심과 변두리 같은 불평등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일본은 이점에서 한국의 국제적 시각과 훨씬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일본 정치외교의 우경화는 그 나라의 본성이다. 그 동안 희미했던 정치노선이 이제 본 궤도에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집집마다 가족 신을 모시는 신전을 두고 있고, 가미카제 특공대나 전범들도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고 야스쿠니 진자에 안치하는 나라다. 이런 문화는 쉽사리 바꾸어지지 않는다. 일본인이 비교적 덜 부패하고 정직한 이유는 이런 종교의 덕이라고 믿는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용기도 무사도와 함께 신도 종교에서 온 사나이 문화가 아닌가 싶다.

어느덧 친일파로 오해 받을 수 있는 논리를 펼쳐놓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과의 우호관계는 자연스런 관계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한마디 한마디 직역 할 수 있듯이 한일관계도 직역이 가능한 관계이다. 직통 할 수 있는 관계다. 손 꽉 잡고 아세아를 변화시킵시다. 세계를 발전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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