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의 실현을 위한 정치리더십 – 손기섭

손 기 섭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손 기 섭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한.일 정상회담의 실현을 위한 정치리더십

손 기 섭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1. 한.일관계 악화일로인가? 해빙인가?

한.일관계가 꽉 막힌 지 2년이 넘었다. 한일 양국 간 관계를 걱정하고 미래지향적 발전을 기대하는 많은 분들의 우려와 탄식이 깊어진 상황이다. 지난 8월까지는 갈등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건만 풀릴 기미가 전혀 없었던 상태였다. 아베 일본은 한국의 동아시아외교를 무시하듯 역사수정주의적인 보수 우경적 행보를 계속하고, 청와대는 원칙만 내건 강경기조에서 외교적 지혜가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팽배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후,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대한민국 최고통치자의 독도방문은 그 자체로 고유영토의 확인이자 통치행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이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관계를 격동에 휩싸이게 하고 일본 내에 고조된 한류문화의 확산을 단번에 꺾이게 만든 것은 외교적 실책이었다.

외교부 및 한일관계 전문가와 긴밀한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 정무라인의 판단에 따른 갑작스런 정책결정으로 판단된다. 물론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2011년 말 ‘이명박  노다 회담’에서부터 이어져 온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성의 있는 답변을 주지 않은데 대한 강한 실망감의 표출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더라도, 한일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어느 주일 주재원의 말을 빌리면, ‘거의 재앙 수준’의 행위로서, 북핵위기에 대한 한미일 공조체제나 한일 신경제포럼, 한류문화 확산 등과 같은 산적한 외교이슈를 고려치 않은 비외교적 결정이었다.

2012년 12월의 일본 아베정권의 등장과 2013년 2월의 한국 박근혜 정부의 출범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초석을 놓는 찬스로 여겨졌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되었는가?

아무래도 아베 정권의 무리한 우경화노선이 그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했던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군부의 조직적 관여를 인정했던 ‘고노 담화’ 같은 90년대 일본의 문서화된 역사인식이 무시되고, 위안부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익인사들의 장관 임용, 전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나아가 전후 평화헌법의 개헌 움직임 등 역사인식의 퇴행적 행위가 큰 요인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어떠한가? 처음부터 너무 역사적인 문제를 한일 외교 이슈의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는가? 우리 쪽 기준에 아베정부가 무조건 따라와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던가? 조금 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하는 정치적 리더십은 보일 수 없었던가?

한일관계가 더 이상 악화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국면인 점을 고려하면 다양한 면의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의 기념비적인 해이면서도 일제 강점으로부터의 ‘광복 70주년’이기도 하다. 과연 한일 간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국교 50주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한일 갈등의 ‘광복 70주년’이 될 것인가? 어느 쪽에 더 방점이 찍힐지는 지금부터의 한일 지도부의 갈등해빙 방정식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의 발휘에 달려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9월 들어 해빙의 조짐이 어느 정도 보이는 상황은 매우 다행스럽다.

한일관계의 해빙은 곧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수상의 정상회담을 뜻하는데, 한일관계의 해빙을 도모하는 양국정부의 노력이 포착된 것이다.

첫째는 9월 19일 모리 요시로 전 일본수상의 한국방문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한 모리특사는 아베수상의 친서를 휴대하고 청와대를 방문하여 한일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띄웠다. 오는 가을에 개최되는 국제회의 즉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도쿄에서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와 만나 의견을 교환한 이후의 특사방문이어서 양국 정상의 관계개선 의사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판단된다.

둘째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이다”라며 비교적 짧은 우회적 언급에 그친 점이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여성인권에 대한 국제적 환기를 도모하면서도, 일본을 노골적으로 지목하지 않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직접적인 저촉이 되지 않도록 발언수위를 낮춘 것은 관계개선을 위한 신호탄이다.

셋째는 한중일 차관급회의가 9월 11일에 개최되어 한중일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강조한데 이어, 한일 외상회담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뉴욕에서 열린 점이다. 일본 기시다 외상은 한일 정상회담을 열자는 의사를 거듭 전달했으며, 윤병세 장관은 양국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문제에서 진정성 있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국 모두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 했지만,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양국관계의 발전에 노력할 것에 합의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문제에 대해 한미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할 것을 확인하고 다짐한 것은 큰 가시적 진전이다.

2. 한일 ‘65년 체제’의 종언

2000년대 이후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의 증대와 전후세대의 성장이 양국 간 관계를 새롭게 하는 한편으로, 역사 문화적 동질성의 상대적 약화와 국내외적 환경적 조건의 변화가 급속해졌다. 2010년대에서 보면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의 ‘65년 체제’가 종언을 고한 느낌이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시, ‘김대중・오부치 정상회담’을 통하여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합의는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방향성의 설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정권 발족 후의 2001년도에는 역사교과서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 간의 마찰이 재연되었다.

2003년 2월 발족한 노무현정권도 정권성립 당시는 우호적이었으나 중후반기의 한일관계는 매우 악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한일 역사문제는 거론치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2003년 6월 일본의 ‘유사 관련 3법안’의 참의원 통과와 거듭된 일본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은 한일관계를 위태롭게 했다.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는 ‘조용한 외교’의 전면전환을 선언하며, 이후 양국관계는 치명적인 냉각기를 면치 못했다.

2008년 초 이명박 정부의 대일본 외교정책은, 실용외교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부진하고 막혔던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한일 셔틀외교의 복원, 한일 경제각료회의의 추진, 기업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과거사 언급 자제 등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역시 정권 중후반기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의 사과’ 관련 발언으로 한일관계를 급속도로 얼어붙게 한 것이다.

일본정부의 노다 수상이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 무리한 정책결정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이명박 정권 공히 정권말기에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기현상을 연출한 것은 한일관계 ‘65년 체제’의 근본적 종언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첫째, 한일 간의 외교안보 관계는 냉전시대나 90년대와 비교할 때 매우 약화되었다. 더욱이 21세기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에 들어 한미동맹은 이완되고 약화되었다. 80년대 나카소네 내각이 40억불의 대한국 정부간 경제협력에 협조할 정도로 소련과 북한을 상대로 한 한미일 간의 외교안보 협력이 돈독했다. 한일 간은 북한의 핵위협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일 공조를 돈독히 해야 하는 측면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일본은 2000년대 이후 미일동맹의 강화, 자위대의 해외파병, 유사법제의 성립,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등 안보적 역할은 확대하면서도, 올바른 역사인식의 정책적 실천은 미흡하다.

둘째,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정치경제 및 외교안보 비중이 급증한 점이다. 한일관계에서 미국이란 변수 외에도 중국이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일본 및 한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중국의 위상이 제고된 있는 점도 한일관계의 성격변화를 가져왔다.

셋째, 동아시아의 다양한 이슈의 국제레짐이 제도화함에 따라, 한일 간의 협력과 갈등의 영역도 한일 차원을 뛰어넘어 중국과 미국 및 아세안이 관련되는 동아시아 지역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즉, ASEAN+3(한중일), APEC, 북핵위기를 둘러싼 6자회담, EAS(동아시아 정상회의) 등 다자회담의 장에서 상호 이해를 조정해야 할 장면이 더욱 많아진 것이다.

넷째, 한일 간 파워의 수평적 이동이다. 1968년 이후 42년간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일본의 국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한국은 세계 15위권 경제규모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성장하였다. 한국 국력이 신장되고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가속화됨으로써, 한일 간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많이 균등화된 것이다. 한일 ‘65년 체제’에서 상정하지 못한 점이다.

마지막으로,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구축되어 온 기존의 한일 간의 정・재계 협력채널의 약화이다. 한일관계를 푸는데 순기능을 했던 정재계 인맥과 네트워크는 매우 노후화되었다. 한국에서는 민주적 정권교체와 세대교체 등이 심하게 일어났고 일본은 자민당정권의 부침, ‘헤이세이 불황(平成不況)’의 ‘잃어버린 20년’ 등이 발생해 기존의 한일 협력채널은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65년 체제’ 하의 양국 정・재계간의 밀접했던 유대도 기능부전이 되어, 한일관계의 갈등 요인이 분출될 때 조정능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3. 중일 충돌과 일본의 역사인식 퇴행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국제환경적 근저에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잠재화되어 왔던 동북아시아 해양영토분쟁이 현재화됨으로써 ‘독도문제’가 자꾸만 부각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의 전후세대의 젊은 정치적 리더십의 역사인식의 빈곤과 우경노선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에서 해양영토분쟁이 현재화되면, 중국, 러시아, 한국의 동북아 주요 3국 모두가 일본과 분쟁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수세에 몰릴 경우, 한국 ‘독도문제’에 공세적 고리의 여지를 찾음으로써 한일관계가 악화된다. 동북아시아 해양 영토분쟁은 2000년대 이후 중일, 러일, 한일사례를 막론하고 현재화되고 악화된 상황이어서, ‘동북아 신냉전’의 위험성까지 존재한다. 2012년 여름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이 이러한 동북아 갈등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중일 간의 영토분쟁이 두 차례에 걸쳐 위기국면을 맞았다. 2010년 9월 동중국해 상에 발생한 중국선장의 구속에 따른 중일 간의 해양영유권 갈등과 중국의 초강경 대응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과 정치군사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힘의 외교’에 대한 위협을 새롭게 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덩샤오핑의 영토분쟁 ‘차세대 해결론’을 전면 전환한 것이다. 또한 2012년 9월 일본의 노다 정권은 센카쿠열도(중국명 : 댜오위다오)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바, 이에 반발하여 중국정부는 일본상품의 통관절차 강화, 히토류 수출 규제 등은 물론이고 중국 해양순시선의 지속적 배치와 순찰, 중국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의 실전배치 등으로 일본의 실효적 점유에 대한 무효화를 시도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양국 전투기의 니어 미스 사건 등 우발적 중일 충돌의 위험성까지 존재한다.

한편, 전후세대의 일본 정치지도자인 노다 전 수상이나 아베 현 수상은 비교적 자신들이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판단하고 90년대를 정점으로 ‘역사반성 피로’ 현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띤다. 일본 지도자의 역사인식 후퇴나 퇴행적 역사관이 반복되면 한국은 국내의 정치사회적 역학관계로 강한 비판적 반응을 보이게 되며, 한일관계는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역사인식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퇴보했다.

우선 일본수상이나 각료의 야스쿠니신사의 참배가 공공연히 자행된 점이다. 2001년 이후 고이즈미 전 수상이 매년 한 번 고집스럽게 야스쿠니를 방문함으로써, 한일관계와 중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적이 있으며, 2013년 12월 자민당정권을 복귀시킨 아베 수상이 전격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우를 범했다. 역사반성 자세를 유지한다면서도 아베 수상은 침략전쟁을 상징하고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이다. 아베의 역사인식의 퇴행적 행동에 실망한 한국과 중국은 흥분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미국 의회나 행정부의 비판을 샀다.

두 번째는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중고교 역사, 사회, 공민 교과서에 실으며, 독도를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에 ‘자국영토’로서 명기하는 점이다. 일본 문부성에 의한 교과서검정에 의한 역사왜곡은 90년대보다 후퇴한 상황이고, 이것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한중일 관계를 악화시켜 왔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이러한 문제가 밝혀지지 않았고, 90년대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발적 고백과 참여로 국제문제화 되었다. ‘할머니’들은 이제 많은 분들이 별세하는 상황이어서 문제해결이 시급하다. 문제의 본질은 일본정부가 정부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정부자료를 토대로 정확히 밝히고, 이에 합당한 사죄 및 ‘위로금’이 아닌 정부차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한일 ‘양국 차원이 아닌 전시여성인권문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한일 기본조약으로 개인청구권이 모두 소멸된 것은 아니며, 더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 ‘원폭피해자’는 일본정부가 솔선수범하여 해결해야만 하는 역사적 및 인권적 과제인 것이다.

4. 한일관계의 복원과 한미일 공조

한일관계의 복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내년 2015년 ‘국교 50주년’이 새로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설정하는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도 한일관계의 복원은 꼭 필요하다.

한미일 3국관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맺고 있는 삼각동맹형의 우방국가로서, 한일관계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한 빅터 차(Victor Cha)가 말하는 ‘유사동맹’ 국가인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도 한국도 모두 소중한 동맹국가이다. 소중한 동맹국가의 한 축이 자기주장만 강조하는 명분과 이익 다툼에만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일 간의 공조체제를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일관계의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은 북핵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이 시급하다. 북한 김정은체제의 불안정성과 비정상성은 여전하다. 김정일로부터의 권력승계가 아직도 불안정한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상상황, 급변상황의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서열 매김의 급격한 변화에 나타나듯 아직도 북한은 권력층과 군부에 있어서의 숙청과정이 진행 중이다. 장성택의 숙청 이후 김정은체제는 군은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민간은 최룡해 노동당비서로 권력을  양분한 듯하다. 김정은 밑에 2인자를 두지 않으려는 역할분담이라고는 하나 체제의 불안정성은 여전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이 핵을 소형화하여 이동식 발사대나 잠수함에 장착하여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한미일 3국에는 형언키 어려운 위협이 된다. 북핵 대응의 한미일 3국 공조체제가 시급히 절실한 것이다.

다음은 한반도의 통일외교를 위해서도 한미일 3국 공조는 꼭 필요하다. 언제까지 분단체제 하의 핵위협 속에 살 것인가? 북한 주민의 극악한 인권상황과 빈곤, 공포 환경을 더 두고만 볼 것인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우리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적극적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 스스로가 통일의지를 굳건히 가지며, 정부와 민간이 합심하여 통일헌장을 만들고 통일 로드맵을 갖출 때, 미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에 대한 통일외교를 펼칠 수 있고 이것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박세일은 ‘통일이냐 분단이냐? 한반도 통일은 축복이다’라는 한 강연 글(2013년 5월 7일 통일교육원 고위공무원 강연)에서, ‘한민족은 지금 큰 갈림길에 있다. 하나의 길은 새로운 분단의 길이다. 북한의 중국화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선진통일의 길이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 남과 북의 경제가 함께 뛰어 올라 선진일류국가가 되어 동아시아 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길이다’라고 설파했다. 우리 스스로가 통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통일외교를 전개할 때만이 선진통일이 실현될 수 있음을 깊이 호소한 것이다.

최근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극복하고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한 것일까? 한일관계 전문가 이원덕은 현대일본학회에 제출한 한 논문에서, 올해를 넘기지 않고 한일 정상회담을 하되, 이 자리에서 ⓵아베정부의 기존의 역사인식 및 역사정책의 계승 확인, ⓶양국 관계의 긴급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징용공 보상문제에 대한 합의 도출, ③한일 간 미래협력의 방향 설정을 제시했다. ⓵과 ⓶의 내용에 대한 한일 간의 외교협상을 타결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위기에 봉착할 때는 한일 양국의 최고 정치지도자의 정치리더십의 발휘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동안의 한일관계의 전개과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종필・오히라 회담’을 활용하여 1965년 한일 국교를 달성한 ‘박정희・사토’의 정치리더십, 1983년 한일 ‘40억 달러 경협’을 가능케 한 한일 양국의 ‘전두환・나카소네’ 정치리더십, 1998년 10월 ‘한일 미래지향적 액션플랜’ 체결을 가능케 한 ‘김대중・오부치’의 정치리더십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물론 각 정치결정 때마다 다소의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일관계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한국의 정치경제적 발전이 가속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일류국가화와 선진통일 및 동북아의 평화번영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수상의 정치리더십의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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