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시대의 정책적 과제-문용린

국민행복시대의 정책적 과제

문 용 린
서울대 명예교수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아졌다. 그런 실망의 근원지는 국회였다. 국가가 당면한 굵직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국회는 진보-보수로 갈려 싸움이나 하고, 계파이득이나 찾고, 공천과 대권놀이에만 빠져, 사회발전에 활력과 방향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긴장과 갈등만 부추겨 사회전반에 낙담과 절망의 안개를 짙게 드리우게 했다.

2012년 대선 때, 행복이라는 화두가 선거공약으로 등장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들만의 리그에 빠져서 국민들의 관심사인 행복을 도외시한, 그간의 정치권의 역할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로 국민행복을 챙기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라는 화두가 그래서 신선해 보였고,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2년을 넘어 3년차로 접어든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공약은 과연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행복은 무수한 변수들의 종합적인 영향을 받는 심리적 느낌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수십개 또는 수백개의 정책사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해방이후 지난 70여 년 간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는 ‘중단없는 경제발전’이었다. 국민행복시대는 이제 이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그럼 발전과 성장을 그만두고, 분배만 공평하게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 발전하고 성장했다고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졌다고 꼭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 대(對) 분배라는 딜레마적인 진부한 논쟁은 국민행복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그쳐야한다.

이 논쟁은 행복감의 중심요소가 물질적 조건이라는 전제에서 가능한데, 이미 많은 연구에서 나타났듯이 물질적 조건은 행복감의 최소한의 필수조건일 뿐, 주된 영향력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행복시대에서 ’행복‘은 물질적 조건의 향상 또는 공평한 분배로 달성되는 그런 좁은 개념의 ’행복‘이 아니다. 즉 경제적 성장과 공평한 분배로 달성 될 수 있는 행복은 이미 지난 산업화시대에 추구해 왔던  행복론일 뿐, 21세기 현 시점에서의 행복론은 결코 아니다.

그럼 국민행복시대의 ‘행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 일까? 미국의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계를 대표하는 에드 디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기 삶에 만족하면서 즐거움을 자주 경험하는 반면에, 슬픔이나 분노 같은 불쾌한 감정을 많이 겪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행복수준이 높다고 말 할 수 있다. 반대로 사는 것이 불만족스럽고, 기쁨이나 애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면서 분노나 불안감 같은 불쾌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면, 그 사람은 행복수준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의에서 보듯이 디너는 행복을 외적조건으로가 아니라 주관적 느낌 즉, ‘주관적 안녕감’(wellbeing)으로 규정한다. 부자인지 가난한지, 이혼했는지 아닌지, 건강한지 아픈지 또는 외모가 좋은지 아닌지 하는 조건 그 자체가 행복감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조건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는가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난해도, 이혼 했어도 행복할 수 있고, 외모가 안되는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가 있다. 반면에 부자도, 건강해도, 외모가 출중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따라서 경제성장, 복지제도 확충, 분배의 공평화 등등의 제도적 조건이 행복국가의 충분조건은 이라는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민행복시대에는 두가지 상이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첫째는 삶의 경제적, 복지적 조건의 향상을 위한 행복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며, 둘째는 이와 더불어, 국민들 하나하나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각자의 행복수준을 능동적으로 높여 갈 수 있는 행복역량을 키우려는 노력이다. 행복제도와 행복역량은 국민행복시대의 불가피한 정책적 파트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은 행복을 위한 제도 면에서는 많이 앞서고 있지만, 국민들의 행복감은 높은 편이 아니다. 부탄을 위시한 몇몇 이른바 후진국들은 행복제도 면에서는 거의 낙제점이지만, 국민들의 행복수준은 상당히 높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행복제도도 잘되어 있고, 행복감도 높은데, 아이슬랜드나 스위스는 그들 세 나라의 1/3만 복지에 투자하고도, 거의 비슷한 행복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행복제도와 행복능력이 동시에 추구 되어야할 정책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물질적 풍요로만 친다면, 미국은 가장 행복감이 높아야 할 나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현상을 학자들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로 설명한다. “소득이 상승하면서 미국사람들은 더 높은 생활수준에 곧 익숙해지게 되고, 더 윤택한 삶을 살고 싶은 데, 필요한 돈이 모자라 걱정을 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이런 악순환의 쳇바퀴에 빠져 살게 된지 오래 되었다. 새차를 사서 기분이 좋은데, 얼마 안가 다른 새 차가 나오면 다시 불행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이런 쳇바퀴에 빠진 사람이 많다. 이러한 쾌락의 쳇바퀴를 빠져나오는 능력이 바로 행복능력이다. 이것은 국가차원의 행복제도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국민각자의 역량의 문제다. 이 역량이 있는 사람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행복감의 수준을 스스로 높여갈 줄 안다.

20여 년 간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오늘날의 하바드 대학의 명성을 만든 데릭 복(Derek Bok) 교수는 최근 행복의 정치학(Politics of Happiness)이라는 책에서 부국강병의 전통적 정책이 국민들의 행복증진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 즉, 국민행복시대의 정치로 전환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적 성과를 국민총생산(GNP) 중심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중심으로 전환하여, 국가정책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경제1등국가로 가기 위해서 행복을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행복1등국가로 가기 위해서 경제1등의 추구도 함께 중요하다는 인식의 확산이 그 요체다.

국민행복이 국가정책의 1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세계 현실 정치인들 사이에도 이미 널리 퍼져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행복도를 측정해서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고, 영국도 긍정심리학의 행복연구의 결과를 공공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를 지지하던 당시의 보수당 당수였던 데이비드 카메론은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에 즐거움이 느껴지도록 하는 국가정책”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많은 나라들(중국, 영국, 호주 등)이 국가번영의 지표에 경제성장 지표와 나란히 행복지표도 포함 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부국강병을 이루어서, 그 성과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발상의 퇴조를 시사한다. 부국강병을 통한 간접적인 행복증진이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증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공공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1971년 국민행복증진을 정책의 제1순위로 책정하고, 대대적인 정치혁신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부탄이다. 왕정국가 이지만, 현재의 왕인 왕추크는 국민행복증진에 왕정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면서, 스스로 왕권을 약화시켜,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확실하게 도입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면서도, 이 계획의 성공여부는 국민행복도의 증진여부로 판단할 것이라고 선언한바 있다. GNP(국민총생산)이 아니라 GNH(국민총행복)를 국가발전의 지표로 삼고, 이 행복지수에 공헌하는 4대정책 요소로 ①좋은 거버넌스와 민주화, ②안정적이고 공정한 사회, ③환경보호, ④전통문화 보전과 사회적 유대강화를 설정하고 현재 활발히 추진 중이다.

부탄이 못사는 나라가 행복지수가 높다고 의아해 하지만, 그 나라는 전통적으로 행복증진에 관한 남다른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복에 기여하는 물질적 요소와 역량적 요소의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행복시대는 이미 선언 되었다. 이제는 정책적 선택과 추진만이 남아 있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고, 비록 휴전이긴 하지만, 최근 60년 간은 죽고 죽이는 전쟁이나 민란이 없이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행복감은 낮다. 자살자 수도 대단히 많고, 이혼율도 높고, 범죄율도 높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식의 빈부격차의식도 매우 높아서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도 매우 크다.

그래서 행복역량의 개발이 중요하다. 행복역량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지혜와 기술이다. 어려운 병에 걸린 사람이 한탄하고 비관에 빠질 수도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사람도 있다. 부자를 보고 시기, 질투, 증오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과 기대로 더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능력이 바로 행복역량이다.

행복역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긍정심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역량은 어릴적부터 습관들이고 연습하기에 따라 개인차가 커진다. 그래서 행복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행복역량을 가급적 일찍부터 가르쳐서 연습시키고 습관화 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 교육이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것처럼, 국민행복 시대에도 교육은 행복국가 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경제발전이 행복감 증진의 인프라는 될지언정, 행복감을 직접적으로 생성시키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면, 누구나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교육을 통해서 행복역량을 갖추고, 이 역량을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출세와 성공 그리고 부(富)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민총행복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4만불 시대의 경제성장과 공평한 분배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 행복역량의 개발과 발휘를 담보하는 교육과 사회적 관계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다면, 우리나라 국민총행복지수를 가파르게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2015년이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원년이 되길 기대하면서,  정치에 실망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에게, 정부라도 나서서 국민행복시대의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여, 희망과 꿈을 불러 일으켜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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