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와 미북관계 – 전인영

국제정세와 미·북 관계

전 인 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1. 국력차이와 미・북 대결

이 글의 목적은 미・북 관계가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로 영향을 받으며, 특히 북한이 국제정세 변화(안보환경 변화)에 어느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가를 분석・평가하는 데 있다. 국력과 영향력이 월등한 초강대국 미국 보다, 북한이 국제정세 변화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현격한 국력과 국제적 위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미 비난과 도발은 상식을 초월할 만큼 집요하고 강하다.

국제사회에는 많은 국가들과 다양한 행위자들이 교류협력하고 상호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권국가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상호협력하고 상호의존하나, 때로는 국익추구 및 국익상충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며 전쟁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국제사회는 국내사회와 달라 협력 보다 갈등 측면이 강한 사회이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상을, 이상주의나 평화주의 보다, 현실주의 이론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하기가 쉽다. 이는 오랫동안 숙명적 적대관계를 유지해 온 미・북 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책결정자들은 다양한 국내・외 변수들을 인지・ 평가하여 국익을 위한 선택(반응)을 한다. 초강대국 미국과 군사적 소강국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은 경제・군사・외교 등 다방면에서 결코 미국의 적수가 못 되나, 국제정세가 허용하거나 유리하게 전개된다면, 대미 도전이나 도발이 불가능 하지 않다. 패권국가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위기상황에 대처하느라 여력이 없거나 북한을 보호해 줄 세력이 존재한다면, 북한이 초강대국에 도전하는 일도 가능해 진다. 물론 김일성 개인숭배 조장이나 김정은 권력승계 시기처럼, 북한의 국내정치 필요 때문에 한・미 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적도 있다. 국력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미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요 한계가 아닐 수 없다.

2. 미・북 간의 국력차이와 심리적 요소들

미국은 국력 면에서 북한의 추종을 불허하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북한의 대미 도전 또한 지속적이고 집요하다. 미・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변수들은 다양한데, 이들을 가시적/양적 변수들(영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과 불가시적/질적 변수들(지도력, 외교력, 교육수준, 정치과정, 문화)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처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을 선도해야 하는 국제경찰 미국의 대처능력은 약화되고 피로해 질 수밖에 없다. 초강대국 미국일지라도, 통치지도자를 절대시하고, 당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며, 중・러의 비호를 받고, 경제난 해소 보다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을 설득하거나 복종시키기가 용이치 않다.

미・북 관계는 심리적 요소들에 의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미국과 북한은 부정적 ‘거울 이미지’ 및 ‘에너미(적) 이미지’를 통해 상대방의 정책과 전략・전술 및 행태를 인지한다. 미・북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인지적 균형’과 ‘선별적 인지’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증폭된다. 북한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침략적이고 악한 국가로 규탄해 왔다. 특히 북한은 미군의 한국주둔을 남조선 강점으로 규탄하고 철수를 요구해 왔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공격적 ‘북침 훈련’으로 비난해 왔다.  북한은 부시 전 대통령을 ‘폭군’으로 규탄하는가 하면, 최근 북한붕괴 발언을 한 오바마 대통령을 ‘원숭이’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을 호전적이고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도발을 일삼는 ‘악의 축’ 일원으로 규정하여 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서울과 워싱턴에 대한 불바다 위협 및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 등은 호전적 북한 이미지를 크게 악화시켜 왔다. 미국과 북한의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경멸 및 적대감은 미・북 협상이나 관개개선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체제로 인해 좌절감과 적대감을 키워왔다. 특히 북한은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훈련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불바다’ 발언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강도 높은 위협과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2013년 3월 유엔 안보리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가결하자, 북한은 미국에 대한 공격까지 언급하며 위협했었다.

3. 북한의 핵무장 의지와 대북 협상 딜레마

북한의 도발로 발생했던 여러 차례의 위기상황들과 역사상 유례없는 장기 휴전을 생각 할 때, 미・북 간의 적대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어 온 셈이다. 1967-1968년 기간 북한은 휴전선 일대와 동해에서 일련의 군사적 도발로 미・북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으나, 베트남 전쟁 수행으로 여력이 없던 미국은 무력보복을 자제했다.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 바다에서 발생한 미 정보함 푸에블로 호 납치는 좋은 예가 된다. 1969년 4월 15일 EC-121 정찰기가 북한의 미그기에 의해 격추되자, 닉슨 미 대통령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행태는 비이성적, 예측불가, 호전적이다.”라고 한탄했다. 미국이 푸에블로 호 납치 사태에 보다 강력히 대처했더라면,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참고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전념과 더불어, 1960년대 후반에 브레즈네프의 구소련이 대북 경제・군사 원조를 재개도 북한의 대미 도발을 고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휴전 이래 60여 년 동안 무력사용 같은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을 응징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북한에게 충분한 교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북한의 거듭된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무력사용을 자제한 채, 주로 압박외교와 경제제재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6월에 미국이 카터 대통령 방북을 막고 영변에 대한 예방적 폭격을 감행했더라면, 오늘의 미・북 관계나 북핵문제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은 미・북 양자회담, 중국을 내세운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여러모로 노력해 왔지만, 북한의 핵 보유 의지 또한 매우 강력했다. 북한은 자국을 핵 국가라고 선언했고, 북한의 외부 세계의 한반도 비핵화를 생각조차 말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후인 1994년 10월의 미・북 간 ‘제네바 핵 합의’는 일단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합의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반면에, 북한은 다른 방법에 의한 핵무기 제조를 은밀히 추진했다. 2002년 10월 초 케리 미 차관보의 방북 때 북한의 농축 우라늄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은 그 해 12월 12일 핵 동결 해제를 발표하고, 2003년 1월 10일 NPT 탈퇴를 선언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사태 이후 알카에다 세력 응징에 전념했다. 미국은 2001년 10월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고 이어서 2003년 3월 후세인의 이라크에 대해서도 침공을 개시했다. 이러한 국제정세 악화가 북한의 핵무장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3년 8월 27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차 6자회담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과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시작되었다. 2004년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회담도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났다. 2005년 2월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북핵 문제는 주요 국제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2005년 9월 13-19일 베이징서 열린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폐기 및 이행 원칙을 포함한 6개 항으로 구성된 ‘9・19공동성명’이 채택되어 해결 가능성이 밝아지고, 미・북 관계에도 서광이 비치는 듯 했다.

그러나 북한은 시간을 끌며 합의 이행을 지연시켰다. 나아가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같은 해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유관국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0월 14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 제1718호를 채택하여 북한을 압박했다. 12월 18-22일까지 제5차 62자회담이 열렸으나, 핵 폐기와 금융제재에 관한 미-북 간의 입장차이로 성과 없이 폐막되고 말았다. 2007년 1월 16-18일 기간 미국과 북한은 베를린에서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2월 8-13일까지 베이징에서 다시 열린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2・13합의’가 이루어 졌다.

2007년 10월 3일 제6차 6자회담에서 북한은 2007년 말까지 모든 핵 신고를 완료하고 핵 기술이전 금지를 약속했으나, 다음 해인 2008년 6월 26일에야 핵 신고서를 제출했다. 2008년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 신고서 검증을 위한 사료검증 절차를 협의했으나, 북한의 사료채취 거부로 실패했다. 이렇듯 6자회담은 동력을 상실해 갔다. 시간을 끌던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6월 12일 유엔안보리는 34개 조항으로 된 결의안 1874호를 채택하여 북한을 압박했을 뿐이다.

북한은 2009년 9월 우라늄 농축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 해 11월 방북한 핵 전문가 헤커 박사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원심분리기)을 공개함으로써, 북한의 핵기술 수준과 핵 국가라는 점을 세계에 과시하려 했다.

북한은 2012년 4월 13일 개정 헌법 서문에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2012년 12월 12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이어, 북한은 안하무인으로 2013년 2월 12일에 제3차 핵실험까지 단행했다. 3월 유엔안보리가 제재 결의안 2094호를 채택하자, 북한은 ‘제2의 조선전쟁’ 및 ‘핵 불바다’ 등의 지극히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폭언을 쏟아 냈다.

북한은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했고, 한국사회는 진의를 의심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미 국무부는 마리 하프 부대변인을 통해,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없으며,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핵화’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반응이 이렇듯 냉철한 이유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의 거짓말과 약속에 속아 실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같은 말(영변)을 다시 사지 않는다”는 말은 북한에 대한 깊은 실망과 불신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것을 ‘전략적 인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나, 국내・외에서는 시간만 잃은 ‘실패한 대북 정책’ 또는 ‘소극적 대북정책’ 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 놓고 있다. 2015년 4월 1일 현재 북한은 “비핵화는 없으며, 6자회담도 없다.”는 도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4. 미・북 관계 변화 전망과 과제

초강대국 미국과 상당규모・수준의 군사력을 지닌 사회주의 국가 북한 간의 관계는 6・25전쟁(한국전쟁) 발발 이래 현재까지 누적된 뿌리 깊은 불신감과 적대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6・25전쟁 참전과 주한미군을 대미 적대관계의 근본원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신생국 한국을 구하기 위해 사망 54,246명(전사 33,870명)과 부상 10만 3,384명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 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미군의 신속한 대규모 참전으로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가 무산되고 오히려 김일성 정권이 사라질 번했으나, 북한은 중국의 대규모 지상군 파병과 소련 공군의 개입에 힘입어 살아났다.

북한은 휴전 후 지속적으로 주한미군이 북한 안보를 위협하고 통일목표를 방해하는 점령군이며 악한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규탄해 왔다. 현재도 미국은 북한의 제1주적으로 악의적 선전선동 대상이다. 감당하기 힘든 초강대국 미국이 경쟁상대 한국을 보호하고 지원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막는 것은 북한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시련을 의미한다.

북한의 대미 정책과 행태는 국제정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북한의 대외 행태는 비합리적, 예측불가, 호전적 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의 대외행태가 지나치게 도전적이고 국제적 규범・행태와 잘 맞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대외정책과 행태에도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예측가능성 및 유연성은 존재한다. 북한의  정책과 전략 및 행태가 경직된 것을 부인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나, 국제사회에서 핵개발과 인권유린 등으로 평판이 나쁜 북한도 생존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오거나 평화공세를 취할 때가 있다.

국제정세가 북한에게 불리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처럼 수습을 위해 양보를 감수하면서라도 협력적으로 나올 수 있다.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태처럼 미국에게 유감표시를 할 때도 있다. 북한은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면, 유화 제스처로 미군 포로나 인질들을 석방 할 때도 있었다.

북한은 시기, 상황, 동맹관계 유무에 따라 다양한 정책 또는 전략・전술을 활용한다. 북한이 구사 할 수 있는 대미 전략 중에는 공세적 전략 또는 수세적 전략, 벼랑 끝 전략, 시간벌기 전략, 기정사실화 전략, 평화공세전략, 불인정 전략, 간접적 사과나 유감표명 전략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북한은 시간끌기와 기정사실화 전략 등 온갖 가능한 전략을 동원하여, 주변의 압박과 제재를 피하거나 무력화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핵국가’로 대접 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 비핵화는 없다.”고 뻔뻔하게 선언하고 있다.

미국도 현재로서는 북한을 다룰 묘수가 없어 난처한 입장에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핵・미사일 확산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선언한 핵무기의 경량화, 소형화, 다종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현재 한국은 사스(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뿐만 아니라, 저고도 및 중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한국의 군사적 대비태세가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실로 통탄 할 일이다.

한국은 미・북 관계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바라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은 전략적 비전을 지니고,  능동적・주도적으로 미국 또는 북한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일들을 구상하고 실천계획을 수립・추진해 나가야 한다. 남-북 관계와 마찬가지로, 미-북 관계도 변하고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쿠바까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 시켜 나가고 있으며 북한사회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으니, 미-북 관계라고 지금처럼 마냥 악화된 채 경직된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통일 경험을 참고로 삼는다면, 우리에게는 준비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으나, 미국의 막강한 국력과 중국의 내부문제들을 감안할 때, 미국의 패권은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 한국의 현명한 안보정책(외교, 군사, 경제 정책)과 동맹국 미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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