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정권과 공존하는 길 – 복 거 일

사악한 정권과 공존하는 길

복거일  
작가 • 사회평론가

지난 8월 초순에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로 일어난 위기가 그럭저럭 풀렸다. 북한의 공격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늘 미흡했다. 이번에는 상당히 달랐다. 우리가 대응 수단으로 삼은 대북 확성기 방송은 뜻밖으로 효과적이었다. 대북 방송을 통한 정보의 유입이 북한의 위태로운 체제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고 북한 정권이 판단한 것이다. 연전에 북한의 해외 은행 계좌를 미국이 동결했을 때, 북한이 괴로워한 것과 비슷하다. 북한처럼 극도로 폐쇄적인 전체주의 정권에게도 아픈 곳들은 있게 마련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정권은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한은 시한을 정해놓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시한이 지나면 공격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협박에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의 협박이 허세(bluffing)라 판단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무시한(call the bluff) 것이다. 뜻밖으로 결연한 우리의 대응에 북한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렸다. 협박을 실행해야 체면이 서고 신뢰성이 손상되지 않는데, 협박을 실행할 생각도 없었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허세는 북한 당국이 우리를 너무 얕잡아본 데서 나왔다. 실제로, 우리 사회엔 북한 정권에 호응하는 세력이 작지 않고 북한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사회는 응집력이 작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가 북한의 공격과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물러나리라 북한은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거듭된 공격과 도발이 우리 시민들을 깨우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쨌든, 유화적 태도가 상대의 오판을 불러 궁극적으로 대결의 위험을 높인다는 교훈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린 것을 깨닫자, 북한은 서둘러 대화를 통해 위기를 풀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우리가 받아들여 긴 회담을 통해서 양쪽은 타협하는 데 이르렀다. 북한의 비열한 술책과 무도한 도발에 분노한 우리 시민들에겐 타협의 내용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허세를 부려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고 우리가 북한이 물러날 길을 터주었다고 북한이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 자체가 실질적 성과다. 보다 근본적으로, 남북한 사이의 관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 긴요하다, 우리에게 북한은 또 하나의 이웃 나라가 아니다. 두 나라는 원래 하나였고 언젠가는 다시 하나가 되리라고 우리 시민들 모두가 믿는다. 그런 사이인지라, 남북한은 늘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서로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히, 합리적 대북한 정책의 목표는 단기적 승리가 아니라 장기적 공존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 북한과의 관계가 상당히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 따라서 지금은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해 살피고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한 대북한 정책들을 검토할 때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책이 북한 정권의 반발을 부른 까닭을 살피는 일은 긴요하다.

북한 정권의 성격

먼저 살필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이다. 북한 정권은 극단적 전체주의를 추구한다. 20세기 초엽 러시아 혁명에 의해 처음으로 구체화된 전체주의는 이전의 모든 전제정치와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전체주의는 다른 세력과 공존을 거부하고 사회의 완전한 통제를 추구하며 밖으로는 확장주의적 정책을 추구해서 늘 공격적이다.

특히, 전체주의자들은 도덕적 개인을 부정한다. 당연히, 그들은 가장 깊은 뜻에서 부도덕하다. 전체주의자들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개인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개인은 자신의 도덕을 가진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개인들의 도덕은 전체주의 국가가 그들에게 내리는 지시들을 따르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마키아벨리적 행동 계획을 수행하라고 조언할 때, 그는 그 행동들에 어떤 종류의 도덕성이나 아름다움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도덕성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뜻하는 것이며, 그것이 정치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안타까움이 없지 않게) 지적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군주는 늘 선을 실천할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비록 정치를 돕는 경우에라도, 악은 그대로 악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의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주의의 도덕론자들이다. 그들에게,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행위는 그렇게 한다는 사실에 의해 도덕적 성격이 부여되고, 그 행위가 무엇이든 그렇다. 정치에 봉사하는 악은 악이기를 그치고 선이 된다.

[쥘리앙 방다 (Julien Benda), <지식인들의 배반>]

북한 정권이 사악한 짓들을 태연히 자행하고 우리에게 늘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전체주의의 특질에서 나온다. 북한과 교섭할 때, 우리는 북한 정권이 본질적으로 부도덕하고 공격적이며 그런 본질이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을 자신의 대북한 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이 정책은 명백히 그르다. 본질적으로 부도덕한 전체주의 정권과 어떻게 신뢰를 쌓아갈 수 있겠는가? 이론과 경험을 거스르는 그 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북한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우리 시민들에게 북한 정권이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정권이라는 환상을 주어 우리 사회의 건강을 약화시킨다.

남북한 사이의 관계

다음에 살필 것은 남북한 사이의 관계다. 늘 험악하고 복잡하고 유동적인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적절한 이론적 틀에 비추어 살피는 것이 긴요하다. 그런 틀이 없으면,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에 파묻혀서 상황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이 일에 적합한 것은 갈등을 다루는 경기 이론(game theory)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뒤, 둘 사이의 관계는 이인 비영합 경기(two-person non-zero-sum game)였다. 양쪽이 거의 모든 분야들에서 경쟁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했고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루려고 시도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협력적 특질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적대적 특질들이 극대화되었다. 적의 손해는, 비록 우리에게 직접적 이익을 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이익이었고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은, 당장 적에게 직접적 이익을 주지 않더라도, 적을 돕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인 영합 경기(two-person zero-sum game)다.

휴전이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다시 비영합 경기로 바뀌었다. 양쪽은 여전히 영합 경기 상태에서 익힌 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둘 사이에 공동의 이익이 이미 존재했다.   당장 휴전 협정이 지켜져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공동의 이익이었다.

양 당사자들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그 이익의 배분을 놓고 다투므로, 비영합 경기는 깔끔하게 풀리지 않는다. 늘 다투고 허세와 협박이 나온다. 신뢰를 쌓아가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물론 북한 정권이 전체주의 정권이라는 사실은 갈등을 심화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북한과의 관계가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정부의 책무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그 책무를 수행하려면,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과 흥정(bargaining)을 해야 한다. 남북한이 비영합 경기 상황에 놓였으므로, 흥정은 필연적이다. 이런 흥정을 잘 하려면, 우리 정부는 먼저 양쪽의 목표를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남한의 목표는 평화적 공존이다. 남한은 북한을 무력으로 병합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은 오직 남한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의 목표는 현 정권의 지속이다. 북한이 세워진 뒤 줄곧 권력을 쥔 김일성 일가를 중심으로 한 노동당 세력이 계속 집권하는 것이다. 서로 크게 다른 목표들이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 남북한의 흥정의 대상이다.

자연히, 우리 정부는 북한 공격의 억지(deterrence)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충분한 군사적 억지력이 필수적이다. 북한을 즉시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실제로 응징해야 한다. 그런 응징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일 국지전이 상호 보복을 통해서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북한의 권력은 군부로 넘어갈 터이므로, 김씨 정권이 무너지거나 김씨 일족이 권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점점 커진다는 사정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처에선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의 협조가 긴요하다.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과의 교섭도 중요하다. 이런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얻으려면, 먼저 우리 사회가 응집력을 굳게 하고 기본적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책을 삼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에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과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 사회가 개방되면 필연적으로 압제적이고 무능한 북한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통일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이 좌파 정권들의 ‘햇볕 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통일세’ 구상에 거세게 반발한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이란 표현을 썼을 때도, 북한 정권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흥정에서 개방과 통일을 다루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이다.

우리 나라가 평화 통일을 추구하고 우리 시민들이 그 일을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낫게 만들 길들을 모색하고 북한 정권에 의한 주민들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일차적 책무는 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평화 통일은 일단 그 일차적 목표에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시민들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

유화책의 위험성

사정이 그러하므로, 우리는 북한의 공격과 위협에 꿋꿋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나라를 지켜서 후손들에게 삶의 터전을 물려주는 것이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야 물론 좋지만, 그것이 나라를 지켜서 삶의 터전을 보존하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미리 북한에 항복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가 냉전 시기에 유럽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죽는 것보다는 공산주의자자 되는 것이 낫다(Better Red Than Dead)”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이 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북한에 예속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일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도덕에 어긋나는 일들 말고는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무엇도, 전쟁까지도, 미리 배제해선 안 된다.

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전쟁에 대비하고 북한이 침공하면 끝까지 싸워서 이기겠다는 의지를 지니는 것보다 북한이 우리를 넘볼 수 없게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서양 격언대로, 영웅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영웅적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유화 정책은 늘 전쟁의 위험을 키운다. 공격적인 국가나 집단이 위협할 때마다 상대가 물러나서 더 유화적인 정책을 펴면, 공격자는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게 되고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유화 정책은 특히 위험하다. 전체주의는 구성원들의 억압과 강제 동원에 바탕을 둔 이념이므로,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래서 전체주의 정권은 안으로는 끊임없이 대중을 몰아세워야 하고 밖으로는 다른 나라들을 공격해야 한다. 그렇게 공격하지 않으면, 전체주의는 운동량을 잃어 무너지게 된다. 자연히, 전체주의 국가는 다른 나라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늘 공격적 정책을 추구한다.

물론 전체주의의 공격성은 그것과 대척적인 자유주의에 대해서 특히 격렬하다. 전체주의 정권에겐 자유주의 사회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존속에 항시적 위험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자유주의 사회는 전체주의자들과 그들이 통치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념이 그르고 그들의 통치에 도덕적. 정치적 권위가 없다는 사실을 늘 일깨워준다.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봉쇄 정책을 처음 제안한 케넌(George Kennan)의 말대로,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가 자유주의 국가 미국에 대해 그리도 적대적이었던 까닭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한 무슨 일 때문이 아니라 자유롭고 번창한 사회였다는 사실이었다. 자유롭고 번창하는 미국의 존재 자체가 러시아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었다.

자유롭고 잘사는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이 사악하고 압제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근본적이고 항시적인 위험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우리와 공존할 수 없고 공존할 의도도 처음부터 없었다.

응징의 중요성

당연히, 북한에 대한 정책은 북한 정권의 선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북한의 공격에 맞설 수 있고 도발을 응징할 수 있는 군사력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실력에 바탕을 두고 북한과의 협력과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되 북한이 적대적 행동을 하면 즉각 응징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의 전형이다. 상호적 이타주의는 인류 사회의 구성 원리일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상호적 이타주의의 요체는 응징이라는 점이다. 상대가 착취하려 드는 데 계속 협력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비협력적 태도를 보상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에 해롭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이런 전략은 북한의 반복적 도발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비협력적 태도를 제때에서 응징하지 못하면,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쁘다. 이번의 위기는 그 점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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