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바다

정 소 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소설가, 본 협회 편집위원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의 동창인 연숙이가 살고 있는 교동도는 요즈음 논스톱으로 진입할 수 있는 섬이다. 최근에 연육교가 놓여져서, 강화도에서 4차선 도로로 논스톱으로 진입할 수 있다. 교동도라면, 역사적으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유배지로서 알려져 있고, 이런 사실 때문에 왠지 가기 어려운 곳으로 인식되어졌던 섬이다. 지금은 두 폐주의 흔적은 이 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실토하기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이놈의 연숙인가 하는 여자 때문에 일생 애만 태우는 비참한 사내이다.
그것은 애오라지 한영구 때문이다.
영구는 나와 동년배이고 초등 중등 대학의 동기생이다.
내가 느끼는 영구는 모든 분야에서 언제나 한 수 위인 아이라는 사실이다. 지적인 능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강철 같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 완력도 내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자식이다.
영구는 ‘물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바다에 뜨면 적어도 백리를 헤엄칠 수 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풍문이 있다. 이런 심상찮은 능력을 가진 영구가 영숙의 영혼을 그러잡고 있는 것이다.
그가 동창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5.16정변 일어나고 한 후였다.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난 후에는 뭐니 뭐니 해도 길거리에서 데모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군사혁명 몇 해 전, 그러니까 4.19학생혁명 이후에는 자유의 물결이 넘쳐 길거리는 데모대로 넘쳐났다.
당시의 좌파정권이란 오늘날의 그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어린 영구가 은근히 좌파적인 경향으로 흐른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살고 있는 도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큰 호수에서 초중 고등학생 대상으로 수영대회가 있었다.
영구는 이 대회에서 중학생이면서도 고등학생부까지 포함해서 우승을 하였다. 우승도 너무나 월등한 성적이었다. 즉 그 호수를 열 바퀴 도는 시합이었는데, 그는 뒤 따르는 다음 주자를 두 바퀴 이상 추월하여 골인했던 것이다.
영구의 이런 수영솜씨는 인기절정의 좌파정치인의 이목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같이 다니던 학교의 범위를 넘어 이 도시 전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학생으로 소문난 연숙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이 도시에 무슨 학생 미인대회 같은 것은 없었지만, 연숙의 미모와 활동성은 그녀가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치부되지 않게 했다. 큰 열쇠와 세련된 몸매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뜨거운 물처럼 흐르는 정열적인 그녀의 언변은 단연코 지역 타 학교 학생들의 이목까지도 잡아끌었다.
이 두 학생들이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 때 가장 뛰어난 수영선수는 영구이고, 질주자는 연숙이다.
두 학생이 애인 사이라는 소문이 학내와 이 도시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문을 일소에 붙였다. 연숙은 나와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록 중학생이었지만 만날 때마다 어설픈 어조로 우리 사이의 친밀감을 다짐했다.
“야, 연숙아, 너 영구하고 친하다는 소문이 있어?”
“무슨 걱정이야. 우리는 약속했잖아! 같은 대학에 진학하자구. 뭘 더 말해!”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거니까 하는 소리지.”
“소문은 그냥 소문이야. 내 마음 속에는 너밖에 없어.”
나는 영구같이 무슨 특출한 재능이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은 나를 주목했고, 연숙이 역시 나의 이런 장점을 크게 사주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학업성적이었다. 나는 입학 때부터 수석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 벌써부터 고시합격생의 레테를 붙여주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서울 모 대학 법대에 합격하여 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제일로 쳐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 세 명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각기 진학했다. 가장 감성이 민감해지는 17, 18, 19세를 다른 공간에서 보낸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은 모른다. 각자가 대학입시 준비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이하게도 서울의 같은 대학의 학생이 된 것이다. 동숭동에 위치한 M대학이다. 그 사이 정국은 급변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군사정권은 자기들 집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경제건설에 매진해서 상당한 업적을 쌓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산업을 일으켜 세울 자본이 필요했고, 해결의 한 가지 수단으로 민족의 원수인 일본과 화해하고자 했다. 그들의 자본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대학생들은 점심을 제대로 먹는 학생이 드물었고, 교복은 군복 물들인 검은 작업복이 일반적이었다. 신발은 ‘똥구두’라 하여 군화를 그대로 신고 다녔다. 한일회담 반대단식학생들 중에는 탈진하여 학교 건너편 대학병원으로 실려 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단식학생들은 하나의 교실에 집결했다. 어느 날 밤 단식으로 정신이 혼미하던 연숙은 자신의 몸을 흔드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이거 교수님이 주셨어. 자-”
영구는 부드러운 촉감의 종이봉지를 연숙이 코앞으로 디밀고 사라졌다. 빵 봉지였다. 투쟁하려면 먹어야 한다던 고 교수님 생각이 났다.
당시 나는 정치학과 학생이었으나, 이 대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학자 양성에 진력하기 보다는 고시공부에 전력투구했다. 고시에 합격하여 가난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구해야 한다는 신조가 확고했다.
과연 나는 주변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학교 4학년 때 재학생의 몸으로 고시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졸업 후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거쳐 모든 수속을 마치고 이십대 후반에 검사에 임명되었다. 그것도 나의 모교가 위치하고 있는 동대문지청에 공안담당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삶의 지평이 아무리 달라지고 심화 확산되었다 하더라도 내 청소년시절의 친구인 영우와 연숙을 잊을 수는 없었다.
연숙과는 세상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나름대로 사랑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같은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연숙은 강화도 어느 중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어 서울을 떠나 있었다.
나의 일상은 너무나 바빠서 사실 연숙과의 만남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마침 우리들이 공부한 모교인 그 대학에 소위 말하는 인혁당 사건이 터져 담당 지역의 공안 담당 검사로서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상부에서도 과중한 업무를 감안하여 담당검사를 다섯 명으로 늘려주었다.
새내기 검사인 나는 나의 모교이기 때문에 학내 사정에 더욱 정통할 수 있다는 상부의 짐작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사건에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사실이지만 학내의 학생들의 반국가 분위기는 내가 재학할 때와는 판이하게 훨씬 더 심각하게 좌경화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이 자들은 심각한 반정부적인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그룹임에 확실했으나, 검사의 입장에서는 증거를 확실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관련자들과 재일 조총련과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출장을 간 사이 이들은 전격적으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즉시 집행되었다. 총 여덟 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나와 동년배였고, 학창시절 같이 공부하고 자취방을 나누어쓰던 학우들이었다.
나의 정신은 그로키상태가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이 언제나 멍한 표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바보 꼴이 되었다.
나는 장가도 안간 나를 파멸의 길로 계속 빠지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다잡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를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려면 이 동대문지역에서 벗어나야 했고, 가정을 만들어 심신의 안정을 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나의 타 지역으로의 전보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근무성적이 좋다는 이유였다. 상하관계가 엄격한 조직이라서 명령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 연숙은 대학생시절과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 만나기는 했으나 그 때마다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심각한 인생의 고비에 처해 우리들의 사랑이나 결혼문제같은 것에 대해 차분히 의견을 나누지 못했다.
결심을 굳힌 나는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나는 수첩에 적혀 있는 연숙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웬 여자가 전화를 받는데 분명 연숙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전화번호 최근에 바뀌었습니까”
“아니요. 바뀐 지 2년 넘었어요.”
내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연숙을 찾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변명 같지만 격동하는 한국사회에서 공안검사의 일상의 삶이 얼마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 가를 내세우고 싶다. 나는 즉각적으로 강화경찰서 수사과로 오연숙의 소재파악을 지시하는 공문을 띄었다.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128번에 오연숙이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은지 2년 가까이 되었으며, 주거자가 어디로 옮겨갔는지 알 수 없음. 주민등록이전을 하지 않았음. 양사면 면사무소에 주민등록이전 흔적이 없음.

나는 이 회신을 받고 아연실색했다. 물론 어떤 사건의 피의자가 아닌 연숙의 소재를 수사적인 관점에서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개 눈에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공안검사라는 직업인이라 그런 것일까. 나는 별별 생각을 하면서 직접 연숙을 찾아 나섰다.
나는 바닷가 둔덕에 쓰러질 듯이 서 있는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사복 둘과 정복 한 명을 지휘하여 오연숙의 행방을 찾았다. 면사무소 쪽으로는 주민등록이 옮겨간 흔적이 없어서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연숙이 근무했다는 중학교를 주목했다. 이 학교에서도 연숙의 흔적은 묘연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2년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뒷일을 강화군 경찰서에 맡기고 귀경했다. 시국이 그만큼 급박하게 돌아가 공안검사를 개인적인 일에 이틀 이상 매달리게 버려두지 않았다.
나의 직장이 동대문지청에서 중앙지청으로 전보 발령되었다. 그야말로 공안전담검사가 된 것이다. 공안검사의 책무란 한 마디로 말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북의 대한민국적화작업을 저지하는 일이다. 즉 간첩 잡는 일이다. 지청을 떠나니 오히려 모교가 있는 동대문지역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나는 지청을 떠난 첫 작업으로, 모교의 고 교수에 대해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아무리 모교이고 은사님이지만 이제는 검사 대 간첩의 대결인 것이다.
나는 수위실에 요원을 수위로 위장하여 배치하고 고 교수의 동태를 살폈다.
나는 몇 가지 확증을 잡은 후, 고 교수를 검거했다. 그분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투쟁을 벌렸으나, 결국 고정간첩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모교 교수들 중에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신 분들이 몇 분 있었다. 일제 시 일본에서 공부를 하신 분들인데, 이 분들의 공산주의사상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맑스와 레닌의 사상과 힘을 빌리고자하는 데서 기인하고 있었다.
대학에도 정치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학생들의 자치기구인 학생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건국 후 수십 년간 지속되던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학생들의 자치기구 구성이 허락되었다.
전성기를 지난 전대협은 한총련으로 이어졌는데 친북좌경세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윽고 한총련은 범청학련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들은 북이 주최하는 세계청년회의에 두 차례나 각기 남녀대학생 두 명씩을 북에 파견했다. 파견된 학생들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지 않고 베를린에 있는 범청련 사무실이나 동경에 있는 범민련 사무실에 업무보조원으로 머물렀다.
나는 불현듯 연숙의 실종이 이들 북파조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당시 서른 고비를 넘어 서른세 살의 노총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연숙에 대한 연모의 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극비에 파견한 수사요원으로부터의 어떤 첩보를 기다렸으나 무소식이었다.
어느 날 신문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낯익은 이름이 있어서 유심히 살폈다. ‘한영구’라는 이름이었다. 중 대학의 동기생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보니 분명 죽마고우 한영구였다. 한영구는 평양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학생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파견된 두 명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대회가 끝나고 귀국하지 않고 베를린 범청련사무실 사무원으로 머물다가 최근 북한으로 귀화했다는 것이었다. 베를린과 동경의 범청련사무실이란 자국과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위장한 북의 국제기구였다. 대한민국 내 좌파들은 여기 두 기구를 통해 전화와 무전 인터넷으로 북과의 연락을 꾀한다.
어느 날, 교동도에 파견한 요원으로부터 전보업무보고가 올라왔다.
‘오연숙의 소재가 파악되었음. 교동도 북방 300 여 미터에 위치한 무인도에서 혼자서 은거하고 있음. 민간인 접근금지구역임. 북과의 접촉을 기다리는 듯함. 자신의 흔적을 들어내지 않기 위해 연기를 올리지 않고 있음. 검거여부의 지시를 바람.’
‘위협적인 행위 일체 금지. 관찰만 할 것. 행동여부는 나의 도착을 기다릴 것.’
무인도가 조망되는 해안언덕에 우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은폐하고 접근하여 마침 큰 바위 뒤에 모습을 감췄다. 망원경으로 무인도가 잡혔으나, 안개가 너무 짙게 깔려 윤곽이 흐렸다. 과연 초막으로 가려진 동굴로 드나드는 인적이 보였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사람은 여자이고 윤곽이 연숙인 것 같았다. 여자는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연숙의 늘씬하고 잘빠진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한 남자가 상륙하여 여자를 들쳐 업고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짙은 안개 속이지만 어렴프시 잡혔다. 그리고는 바다는 농무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 수사요원들이 익히 알고 있는 간첩들의 월북 장면이었다.
“사격할까요?”
“권총으로는 안 돼. 사격범위가 넘어.”
하지만 나는 수사요원의 의심을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권총을 빼어들고 몇 번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것은 떨리는 나의 팔 탓으로 엉뚱하게도 짙은 농무 속으로 그냥 당겨보는 사격이었다.
“발동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데요.”
“뒈졌겠지. 그리곤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거야.”
“지뢰매설지역이라 접근이 어렵습니다. 확인하려면 날이 밝은 후 인근부대에 연락하여 지뢰제거반을 동원해야합니다.”
“날이 밝으면 시체회수작전을 펴도록.”
여명이 갑작스레 밝아졌다. 바다위의 안개가 갑작스레 걷히고 수면이 들어났다. 나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망원경으로 수면을 살폈다.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범상인 들의 시선에는 잡힐 수 없는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북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요원들의 눈에는 이 점이 뛸 수 없었다.

 

*정소성 : 소설가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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