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단 : 중립은 없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전 고려대 석좌교수,
전 서울대 초빙교수

이 글은 필자가 태평양 아시아 협회 발족 25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본 협회 월간지 영원한 친구들의 게재를 위해 약간 수정을 가하여 기고한 글입니다

나라의 위기 중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위기는 국가 존립의 위기입니다. 경제위기, 사회 문화적 위기도 물론 심각합니다. 이런 위기는 우리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향방의 문제는 한번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바로 그 위기의 절벽에 놓여 있습니다. 잘 아시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많은 것이 코앞에 놓여 있습니다. 화웨이 문제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사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중국해 문제는 어떤 입장인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따를 것인가, 미국의 인도 태평양전략을 쫓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미국과 중국 중에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해양세력을 선택

국제정치에서 지정학을 애기할 때 크게 대륙지향국가냐, 해양지향국가냐로 그 나라의 성격을 구분합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우리는 지난 5천년을 대륙지향국가로 지내 왔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대한민국만 해양지향국가로 변신했습니다. 해방과 6.25 사변 당시의 아시아 지도를 보십시오. 아시아 대륙이 몽땅 빨갛고 한반도 끝인 한국만 파란색으로 남았습니다. 마치 붉은 대륙에 매달린 파란 맹장 같았습니다.

이념적으로 지도를 보면 한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선택을 하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 덕분이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이 대륙국가인 소련의 영향력 하에 공산화 되었지만 유독 우리만 공산화를 면하고 자유주의 세계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륙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피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대륙과 단절된 우리는 대륙 대신 바다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을 아셨던 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분은 바다 너머를 개척하여 우리를 무역대국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이 두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두 분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두 분 덕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국제상황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이념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와 평등, 즉 자유의 세계와 공산 전체주의 세력 중에 누구 편에 설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얘기하면 냉전적인 사고라고 비난하지요. 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냉전체제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냉전의 주체가 바뀌어 돌아 온 것이지요. 과거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주체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대 변형된 공산주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어려운 선택이니 어물어물 지내보자고 넘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립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대국 사람들이 우리 꾀에 넘어 갈 바보입니까?

선택의 중요성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길 짐승 나라와 날 짐승 나라 사이에 전쟁이 났습니다. 길짐승 나라 특사가 박쥐나라를 방문하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박쥐나라 대표는 “우리는 걷기도 하지만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길 짐승나라 편을 못 들겠다” 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뒤 날 짐승 나라 특사가 찾아 왔습니다. 박쥐 대표가 이번에는 “우리는 날기도 하지만 걷기도 합니다” 라며 같은 편이 될 수 없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참 처신을 잘했지요? 현명하지요? 그런데 길짐승과 날 짐승이 뜻밖에 화해협정을 맺었습니다. 두 나라의 일치된 의견은 얄미운 박쥐나라를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박쥐는 그 뒤 새와 동물이 뛰 노는 벌판에 나오지 못하고 동굴에 숨어 살며 밤에만 다닌다고 합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해야 할 시점에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애매모호하거나, 요리저리 피해 갈 상황이 아니라면 확실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선택할 시점에 왔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체제일 때 한국에게는 운신의 폭이 넓었습니다. 미. 중 화해 시대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으며 중국과 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누려 왔습니다. 지금은 미‧일로 수출하는 것 보다 중국 수출량이 더 많습니다. 중국 무역이 우리 무역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끝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후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걸며 확실하게 중국견제 정책으로 돌아 섰습니다. 미. 중간에 갈등이 있을 때 우리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아집니다.

한반도의 지정학: 운명

한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지정학입니다. 그 나라가 어느 자리에 위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거대한 에너지가 흐르는 경로 상에 위치한 약소국은 그때그때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고 생성되었습니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에 붙은 반도이기 때문에 지난 5천년을 대륙국가, 즉 중국의 영향력 아래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7년 시진핑이 트럼프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본래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한반도는 반도라는 속성 때문에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강해지면서 일어난 전쟁이고,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 전쟁도 한반도를 놓고 대륙과 해양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중 어느 한쪽이 완승하지 못할 때 한반도 분할론이 제기 됐습니다. 지금의 38선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지요.

임진왜란 발발 3개월 후 왜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명나라가 참전하게 되면서 전선이 교착되었습니다. 그러자 명의 심유경과 일장수 고니시 유키나까(小西行長)간에 한반도 분할지배가 논의됐습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명나라 간에 다시 강화회담을 하면서 히데요시는 강화 7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선 4도( 경상, 전라, 충청, 경기) 분할 지배였습니다. 1894년 청.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습니다. 그럼에도 3국 간섭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자 일본은 한반도 분할을 러시아에 제시했습니다.

선택의 실수

이런 우리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지정학의 볼모, 즉 어쩔 수 없는 반도의 운명을 타고 난 것입니까? 주변 강대국의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는 운명입니까? 아닙니다, 그 운명 안에서도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아니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상황이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21세기가 20여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우리의 상황은 다시 19세기 말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조선이 막 개방을 시작했던 1880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이 한 문건을 들고 귀국했습니다. 중국의 외교관 황쭈센(황주헌)이 쓴 『조선책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여 지리적으로 반드시 쟁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아, 시세의 핍박함은 위태롭고도 위태로우며 기회의 찾아옴은 미세하고도 미세하다.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면 조선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조선만이 이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한다. 이야말로 부엌에서 불이나 집이 타게 되었는데 처마에 있는 제비와 참새는 그것도 모르고 저희 끼리 지저귀고 있으니 이야 말로 연작처당이 아닌가? 지혜로운 자만이 기회를 탈 수 있고, 군자만이 미세함을 알 수 있으며, 호걸만이 위태로움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것이 조선에 인물이 있어 급히 일어나 일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황쭈센은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친중, 결일, 연미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위기를 모르고 참새와 제비처럼 저마다 짹잭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때의 참새와 제비가 아닙니까? 조선은 방황했습니다. 친중을 하다가 친일로, 다시 친일에서 친러로 돌아 섰습니다. 결국 그러다가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때 조선의 각성을 외치던 황쭈센의 목소리가 지금 우리 귀에도 쟁쟁 함은 어찜입니까? 지금 이 나라는 황의 말대로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 미세한 기회 속에서 나라의 운명을 구해 낼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인물, 위기를 국민과 함께 극복해 낼 수 용기 있는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내 나라를 잃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를 잃었습니까? 아니면 백성들이 나라를 망쳤습니까? 아닙니다. 조선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쳤습니다. 누가 갖다 바쳤습니까? 이완용을 비롯한 내각들의 서명으로, 고종의 무능으로, 한일 합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운영하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부를 누가 운영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국민은 일단 대표에게 나라를 맡기면 나라는 맡은 자의 책임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무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권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하버드대학의 그래함 엘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에는 언제나 패권국이 있고 그에 도전하는 도전국이 있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시절 당시 패권국이던 아테네에게 스파르타가 도전하여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인용하여 만든 말이지요. 앨리슨 교수는 지난 5백 년 동안 세계의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을 분석했는데 16건 가운데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지금의 미. 중 갈등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미중 갈등의 한 복판 속에 놓여 있습니다. 패권국인 미국과 도전국인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 적이 있습니다. 17세기 임진란이후 중국 대륙은 명이 쇠하고 청이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대륙의 패권국이던 명나라를 선택하였습니다. 도전국인 청나라는 조선을 침공하여 정묘‧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러시아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패권국은 영국이었고 도전국은 러시아였습니다. 일본은 이 세력 판도를 읽고 패권국인 영국 편에 가담했습니다. 국왕인 고종은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집무하는 아관파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자 우리는 기댈 언덕을 잃고 말았습니다. 선택을 잘못한 것이지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두 가지 틀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무엇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정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위 정치 현실주의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이상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나라의 목표와 이상과 부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상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양과 대륙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패권국과 도전국이라는 힘의 관계 등으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해양과 대륙, 패권국과 도전국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운명입니다. 이 운명을 어떻게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현실과 이상입니다. 현실은 누구의 힘이 더 크냐를 판단하여 힘이 센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이상이지요. 어느 나라가 더 우리의 이상에 부합하느냐는 겁니다.

보수 쪽 입장에 있는 분들은 대개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국 쪽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동안의 한미동맹의 혜택도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미국 편에 섰던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2030년 까지는 아니 2050년 까지 미국 우위의 세력판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니 미국편에 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너무나 중요해 미국은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는 미국의 세계전략인 태평양-인도양 전략에 가담치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제외하고 일본, 인도, 오스트렐리아를 주축으로 새 전략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1949년 애치슨 라인 같지요. 왜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호칭하고 신무기를 공급하기로 했을까요. 한반도를 포기했을 경우도 일본 대만 필립핀 선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함입니다. 반면 이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사드를 추가 배치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국에게 우리의 주권 사항을 양보한 것이지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막으려면 한국-미국-일본의 안보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협력 없이는 북한 미사일의 종착점을 알 수 없습니다. 지구 곡면 때문이지요. 또 현대전은 전장이 범위가 넓어져 우리 단독으로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현실인데도 이 정부는 왜 과거사를 두고 반일 캠페인을 극성스럽게 해 댈까요?

현실주의 입장에서 힘을 보아서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 현실주의 입장을 넘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가치의 선택

가치의 중요성입니다. 대한민국이 품은 이상이 어느 쪽과 맞느냐는 것입니다.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말더듬이 죠지 6세가 말더듬이 장애를 넘어 사상 최고의 명연설을 했던 것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이 가치의 전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끼며 지켜오던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 내려는 싸움이 지금 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치를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힘이 센 쪽을 택하기보다 우리 이상과 목표에 맞는 국가가 누구냐 입니다. 자유와 억압, 민주대 전제, 개인대 전체, 자유시장대 통제경제 중 어느 가치를 따를 것이냐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내세우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 압박에 굴복하여 19세기 이전으로 돌아 갈 것이냐 아니면 지난 70년의 번영을 지켜 나갈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당연히 미국을, 해양지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동맹의 조정은 통일 후에라도 늦지 않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토록 맺기를 갈망했던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습니다. 그는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 대대로 덕을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개인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가의 관계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애써 만든 동맹이라는 소중한 관계를 깨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미. 중의 협력시대에는 선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중의 대결 시대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당연히 미국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시아 대륙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해양이 먼저입니다. 태평양에서 힘을 얻어 아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도 중립통일이니 민족 통일이니 애매한 통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의 자유 통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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