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核시대,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미래비전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통일연구원 초청위원

한반도 핵시대의 도래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 간에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던 ‘재래식 균형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 7월 ICBM 발사와 9월 수소탄 실험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이 美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려는 미국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었다. 냉전시대 서유럽의 NATO 국가들이 과연 미국이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소련의 핵공격을 무릅쓰고 파리와 함부르크를 방어할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듯이, 이제 한국도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을 독점한 가운데 미국의 對韓 방위공약에 대한 신뢰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한미동맹은 창설 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해있다.

김정은이 핵포기를 약속했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지 않는 국민이 80%에 달한다. 여섯 차례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북핵폐기에 진전이 없자 비핵화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좌절감이 분출하고 있다. 1945년 지구상에서 핵시대가 열린 이래 핵개발 단계에 있던 나라들은 외부의 압박과 설득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핵을 완성한 나라의 핵포기는 체제변화를 통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사례뿐이다. 이라크와 시리아(군사공격), 이란(제재), 리비아(당근)는 전자에 해당하고, 남아공과 우크라이나는 후자에 해당된다 남아공은 흑백정권 교체기라는 내부 요인으로,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 붕괴라는 외부 요인으로 체제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도 사회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북핵의 볼모가 된 오늘의 상황은 우리가 먼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소위 비핵화외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비핵화외교는 처음에는 당근으로 핵포기를 설득하다가 1차 핵실험 후부터 채찍을 들고 압박했으나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다. 트럼프의 최대압박 정책도 실패한 비핵화외교의 막바지 시도일 뿐이며, 미국 내에서도 비핵화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대북압박의 일환으로 제한적 군사옵션이 거론되었지만, 전면전이 아닌 한 북한의 핵포기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상당기간 핵을 가진 북한과의 공존을 각오하고 북한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핵폐기를 실현하는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현주소

하와이와 괌은 물론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치, 외교,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김일성은 30년 전에 핵개발을 미끼로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어 직접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토대로 선대의 숙원이었던 미북 정상회담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북핵을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강박관념이 커진 탓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한다는 구실로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등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핵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미국에서 한미동맹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고 국제질서와 동맹의 가치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다. 그는 국제협약을 파기하는 것은 물론 오로지 돈을 잣대로 동맹의 가치를 재단하며 우방국들을 압박한다. 한미훈련을 값비싼 전쟁게임으로 비하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한다며 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도 트럼프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미국에 대한 위협은 아니고 다른 나라도 하는 실험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북한의 핵, ICBM 시험 중단과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자랑하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트럼프로 인해 북핵문제의 불확실성만 높아졌다. 그가 美본토를 위협하는 ICBM만 폐기하고 북한이 핵을 탑재한 단·중거리 미사일을 갖도록 용인하는 것은 아닌지, 내년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국지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지 많은 국민이 불안해한다.

미국의 군과 관료집단의 태도도 문제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비합리적인 정책이 이들의 저항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있었다.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가 좌절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는 미국의 국익을 폭넓게 조망하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신뢰할 만 한 참모가 없다. 카터의 철군에 반대해서 옷을 벗은 싱글러브 소장과 같은 용기 있는 군인도 찾기 어렵다.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코트 국가정보국장과 같은 정직한 인사들이 줄줄이 떠나고, 그 자리를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는 예스맨들이 채우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야심이 큰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역대 美정부가 제공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는 ‘전례 없는’(unique)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안전보장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국의 對韓 안보 공약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대해 우리국민은 아는 바가 없다.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 북핵문제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했던 탈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하며 국익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경쟁시대가 도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중국, 이란과 북한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고 서방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현상변경세력으로 규정했다. 이 세력의 특징은 미국과의 전쟁은 피하면서도 공격적인 외교, 대담한 군사행동, 우호세력을 활용한 대리전을 배합해서 미국 영향권의 주변부를 공략하고 동맹을 위협하는 소위, ‘간보기’(probing)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확보, 이란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원,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반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 핵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북한을 대리인으로 삼고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는 간보기 전략의 장이자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안보우려도 해소되어야 한다며 ‘쌍중단’과 ‘쌍괘병행’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미훈련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러시아 모두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양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핵폐기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도 전략적으로 미·중, 미·러의 경쟁관계를 잘 이용해왔다.

북핵문제가 강대국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할수록 북핵폐기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러시아의 지원 하에 동북아 질서를 자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부담을 주는 지정학적 게임을 펼칠 것이며, 그 만큼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한반도 핵시대, 동맹의 미래비전

한반도 핵시대에 한미동맹은 유럽의 NATO처럼 핵동맹이어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시대의 냉엄한 교훈이다.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한 경쟁국들은 모두 상대방의 핵개발에 자체 핵개발로 응수했다. 적대세력의 핵에 핵으로 맞대응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이다. 한 국가의 재래식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상대방의 수소탄 한 발을 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핵을 보유한 핵국과 그렇지 않은 비핵국 사이의 관계에서, 핵무기는 비핵국으로서는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한 핵국의 절대무기인 것이다.

이런 제반 상황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대치하며 비핵화외교를 하던 기존의 한반도 안보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실체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우리도 핵으로 맞대응하면서 북한의 핵사용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구도로 안보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북핵폐기 목표를 단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력을 모아야 할 초점을 단기간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북핵위협에 대한 대응, 즉 억지와 방어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핵을 독점한 북한이 가하는 정치·외교·군사적 위협과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사회·심리적 압박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제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기대를 걸며 유지해왔던 재래식 대결구도가 북한의 핵독점으로 와해되었음을 자각하고 비핵화외교를 고수하던 북핵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일방적인 핵보유로 조성된 전략적 불균형을 우리가 핵옵션을 행사해서 한반도에서 ‘핵 對 핵’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핵의 균형에 입각한 새로운 한반도 핵시대를 열어야 한다. 핵균형 시대에는 전략적 취약성이 전략적 안정성으로, 공포의 불균형이 공포의 균형으로 대체됨으로써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 미∙중 관계와 같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도 핵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동맹의 대북 억지태세는 북한의 재래도발에 대한 ‘재래억지’(conventional deterrence)와 핵도발에 대응한 ‘핵억지’(nuclear deterrence) 사이에 괴리가 있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재래억지는 휴전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한미동맹의 병력과 화력을 전진 배치하는 태세를 유지했다. 북한의 도발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성공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서 애당초 도발을 생각하지도 못하도록 한 것이다. 휴전 이후 1·21 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비정규전 성격의 도발은 있었지만 국지전이나 전면전 등 대규모 도발은 전진배치에 기반 한 억지태세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동맹의 핵억지는 재래억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 채 핵억지를 미국의 핵자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핵우산은 한반도 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한 것이 아니라 ICBM, SLBM, 중거리폭격기 등 역외에 배치된 핵투발 수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이다. 만약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는 경우 역외의 전략핵자산으로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트럼프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핵을 사용한 김정은이 살아남을 시나리오가 없다고 할 정도의 보복위협을 통해 북한을 억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진배치가 생략된 채 역외 핵자산에 의존하는 억지태세는 북한에 핵이 없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구시대의 유물일 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늘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아울러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해서 지금도 미국이 소규모의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NATO와 비교해도 타당하지 않다.

결론

한국은 ‘북한에 의한 핵독점’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에 처해있다. 핵시대가 열린 이래 군사적으로 대치한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유일하다. 국민을 북핵의 볼모로 만든 오늘의 현실은 노태우 정부 이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가 고수했던 비핵화외교의 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이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이 추진했던 비핵화외교를 ‘서희 담판’과 대비하여 건국 이후 최대의 외교참사이자 되풀이해선 안 될 안보참사로 기록할 것이다.

북한은 전술적 차원에서 수용한 비핵화란 용어를 공세적으로 역이용해서 한미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고 보상을 챙기면서 핵개발에 성공했다. 겉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비핵화외교의 장막 뒤에서 핵개발에 전력하면서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반면에 한미는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한의 핵포기일 것으로 믿고 경제・외교・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북한을 설득했고, 이제는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 군사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실정이다.

한미동맹은 현재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 번영과 평화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대등한 동맹을 만들기 위해 한국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맞서 당당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책임 있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가는 게 능사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동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적절히 분담해야 당당해질 수 있다. 세상이 달라졌고 국민의식도 바뀌었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자존과 국격을 지키며 의견대립과 마찰도 불사하는 치열하고 주체적인 대미외교를 원한다. 정부와 국민 모두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결의와 동맹도 국익을 위해 활용한다는 용미(用美)의 자세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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