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생긴 일

정소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소설가, 본 협회 편집위원

민구 씨는 60대 초입에 들어선 사람이다.

모 재벌 회사의 상무까지 하고 한 5년 전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온데다가 재벌회사의 상무까지 했으니,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적 의미에서 인생결산표라 할 수 있는 은퇴 후의 재정 상태를 보면 그리 만족할 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최절정기라 할 수 있는 은퇴 무렵, 아파트를 제외하고 퇴직금까지 포함하여 근 열 장 정도를 꾸렸는데, 은퇴 후 한 5 년을 놀고나니 그마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요새 사람들이 다들 한 8,9 십은 산다고 하니 아직 남은 2,30년을 뭘 먹고 살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답답한 노후에 대해 더 안달하는 사람은 민구 씨와 일생 같이 살아온 김 여사이다. 따지고 보면 민구씨가 이 정도의 인생결산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김 여사의 공 탓이었다.

월급 등 수입을 애오라지 마누라에게 부지런히 갖다 준 사람은 민구씨였지만 그것을 알뜰히 저축하고 불려서 오늘의 그런 금액으로 만들어 내놓은 사람은 김 여사 자신이었다. 그 점에서 민구씨는 열 번 입을 열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 인생의 역정 속에서 현실이라는 파도를 이겨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으로 김 여사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자신의 단산수술이었다. 김 여사는 첫 아들놈 희철을 낳고나서부터 벌써부터 단산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둘은 벅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안을 내지리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 첫딸인 희애를 가지고 말았다.

“여보, 나 해 버리고 말았어요.”

산부인과 침대 위에서 핏덩이를 옆에 누이고 있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뭘? 아기를 잘 낳았으면 됐지…”

“당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서…단산수술을 받아 버렸어요…”

그들의 결산대조표가 민구씨의 은퇴 후 5년여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고정 수입이 없게 된 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역시 외아들 희철의 결혼과 도미 유학 탓이 가장 컸다. 이것은 푼돈으로 해결될 일들이 아니었다.

아들놈이 오랫동안 연애를 한 며느릿감을 더 기다리라 할 수 없는 것도 인생의 원리이다. 결혼을 한 아들놈이 별 직장이 없어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도 없었다. 그것도 신혼의 아내마저 떨쳐놓고 혼자 떠나겠다고 하니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왠지는 모르지만 김 여사도 옛날 같지가 않았다. 얄팍한 저금통장을 들고 이 은행 저 은행 뛰어다니던 그녀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는 지나가는 투로, 일평생 한 남자만 쳐다보며 살다가 늙어버려 여자로서는 폐기처분된 자기 같은 여자야 말로 진정 노벨평화상 수상자감이라나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민구씨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세 여자가, 즉 시어머니와 딸과 며느리가 사이가 좋아 자주 만나고 키득거리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경우 민구씨를 부르지도 않았다.

민구씨는 요즘 하버드대학생이 되고 말았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요즘 말로 하버드대학생이라고 한다나. 전국대학생은 전국의 산을 누비는 사람을 말하고, 동국대학생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삼복더위 속에서 혹서와 외로움에 지친 민구씨는 예년에는 전혀 하지 않던 일을 이번 여름에는 하고 말았다. 마누라쟁이는 딸년과 며느리를 만난다고 아침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타러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즉 그는 근 십년 이래로 찾지 않던 풀장을 찾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수영을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풀장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물이 들어간 귀를 흔들고 있는 민구씨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와글거려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버님, 청년 같은 몸이세요. 몸짱이세요!”

“아빠, 아랫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헤라클레스 같아요.”

“당신 대학생 때 수영선수였잖아요!”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을 내려다보니, 자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늙고 젊은 여자 셋이서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민구씨의 눈에 황급히 물살을 가르는 인어들처럼 비쳤다.

 

*정소성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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