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정소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소설가, 본 협회 편집위원

푸르다 못해 거무스레하게 변한 산과 산들의 끝없는 행렬이 진행되고 있는 곳, 내 고향 하정리이다. 오늘 따라 더욱 짙어진 거무스레한 산의 행렬 사이로 귀청을 찢는 듯한 산 정적이 드리워져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득한 세월 저 너머에서 있었던 일들을 수시로 추억하는 버릇 같은 것이 생겨 버렸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광호는 언제나 나의 맞수였다.

우리 둘이 인생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맞짱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백산맥 속 두메산골이 같은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 산골마을은 하정리(下井里)라고 불렸는데, 골짜기에 박힌 마을의 북쪽 산발치에 마을 공동우물이 있어서 였다. 하정리에는 한 이십여 호가 모여서 살고 있었으니 산골마을치고는 꽤 큰 편이었다. 광호네는 원래가 조상 대대로 농짝을 만들어 팔아서 가계를 꾸려온 집안이었다.

광호네가 농짝을 만들어서 소달구지에 싣고 태백이나 영월 5일장에 나가는 것을 나는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경상도 영주나 부석 봉화장터까지도 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닐 무렵 광호가 자기네 소달구지가 태백 장터에 농짝을 싣고 가는데 같이 타고 갈 수 있으니까 함께 가자고 나를 꼬드긴 적이 있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태백이라는 데를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집안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면 태백 무슨 탄광에서 일하고 있다고들 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었다.

태백이라는 데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단한 곳인 듯했다.

아마도 6.25라는 전쟁이 끝난 지 아직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도 산골짝 동네라 논다운 논이 없었다. 자기 땅으로 논 다섯 마지기를 부치면 부자 소리를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대부분 화전을 일구어 곡식을 구하거나, 아니면 영월이나 태백사람들의 땅을 도지로 얻어 경작했다. 수확량의 절반씩을 지주와 나누어 가졌다.

“순달아, 니 이번 태백 장에 가는 기제? 확실히 말해라마. 달구지에 자리 많지 않다. 먼저 말해 도고.”

“내가 안 가마 갈 아가 또 있나? 영구는 안갈 낀데…”

숙자는 아비와 어미가 없고, 할미하고 둘이서 동네 구석지 외딴 집에 사는 여자아이다. 그런데 숙자의 할미는 무당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 무당할미를 귀신할미라고 불렀다. 이 무당할미는 직업은 없고 동네 사람들 굿을 해주고 약간의 복채와 굿음식 남은 것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두 세 시간 숙자보다 늦어서 같이 고개를 넘어서 우리 동네로 하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하교시간이 틀린다고 하더라도 왕복 삼십 리가 되는 우리들의 긴 통학거리이고 보면 우리가 숙자를 만나는 기회는 자주 있었다.

우리는 숙자가 귀신할미와 같이 살아서 기분 나쁜 아이라고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숙자가 나날이 조금씩 예뻐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영구가 이런 소리를 했다.

“순달아, 내 너거 하정리에 한분 가마 안 되겠나?”

“우리 동네는 뭐 할라꼬? 볼 거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절간도 없고 물레방아간도 읎다…”

“그래도 구신 할매는 있잖나.”

“구신 할매 봐서 뭐 할라고? 어떤 때는 무섭데이. 머리가 구신처럼 허옇고 어떤 때는 두 눈에서 불이 번쩍거린데이.”

“그라마, 영구가 볼라카는 사람은 구신할매가 아이라, 구신할매 손녀 숙자다.”

“숙자라이? 그 냄새나는 쪼꼬만 가시나를 뭐할라고 볼라고 여기까지 올라카노? 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순달아, 니 눈에는 숙자가 냄새나는 쪼꼬만 가시나로 보이나?”

“그라마, 그 가시나가 옆에 오마 재수 없다는 생각밖에 없다. 무신 귀신가시나같이 으스스한 생각밖에 안들더라.”

“바로 그기다. 숙자가 어릴 때 숙자 아이다. 을마나 이쁜지 곁에 오마 으스스 한기가 든다 아이가. 니는 그걸 귀신같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가가 너무 이뻐서 그런 기분이 든다 아이가.”

나는 혀를 찼지만, 사실 나도 광호가 하는 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숙자는 초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귀신같은 귀기를 거느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태를 띄어 갔다.

영구가 하정리에 오던 날, 나와 광호 그리고 상섭이가 그를 맞아 우리 집에서 놀았다. 상섭이는 동네 사람들 머리를 일 년 동안 깎아주고 가을에 이발료를 쌀로 받아서 살고 있는 홀아비 소천의 아들이었다.

상섭이네 집은 바로 숙자네 집과 나란히 있었는데, 두 집만이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두 집만이 서로들 내왕을 한다는 소문이었다.

“니 재 너머 학교 가다가 우리 상섭이 엉딩이를 발로 찼제…그러마 안 된다…”

하면 우리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더. 다시는 안그럴께예.”

“야 못이 더럽게 크다야-”

영구가 소리쳤다.

“이쪽은 모래무지나 잉어가 안 잡힌다. 저쪽 좀 얕은 데로 가마 잘 잡힌다. 요 새끼들이 물이 얕아야 쳐묵을라꼬 떠오린다 아이가-”

광호가 말했다.

상섭이는 형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낚싯밥을 새것으로 대기가 바빴다. 그리고는 잡힌 잉어와 모래무지들을 커다란 대나무 통에 주워 담았다. 통 속에 갇힌 물고기들은 은빛색채를 번득이며 퍼득거렸다.

“상섭아, 니 초고추장 있나?”

내가 물었다.

“없어…”

“그라마, 너거 반 친구 숙자한테 좀 갖고 오라 캐라.”

광호가 말했다. 어느 새 대나무 통 안에는 물고기들이 절반이나 차올랐다. 상섭이는 고기를 모으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짜석아, 그거는 내가 할끼이까네 니노마는 구신할매집에 가서 가시나한테 초고추장 좀 달라캐라. 너거 둘이는 같은 반이까네 같이 학교 가고 같이 재 넘고 같이 집으로 온다 아이가. 집도 딱 들어붙어 있으민시로 그것도 좀 못하나!”

“숙자가 내 말을…내 말을…들어쳐묵겠나…”

상섭이는 투덜거리면서 대나무 통을 내려놓고 귀신할머니집 쪽으로 걸어갔다.

“숙자야–”

목소리가 돼지 목따는 소리였다. 흙집 담에 난 문이 뽈좀히 열리더니 콧날이 오똑 서고 푸른 눈매를 가진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상섭이를 바라볼 뿐 말이 없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투였다.

“순달이하고 광호가 잡은 모래무지 처먹는다고 초고추장 좀 달래. 재 너머 읍내에서 영구가 왔다…”

“…”

숙자는 아무 말도 안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침묵이었다. 한참 만에 다시 문이 열리더니 숙자가 이런 소리를 했다.

“별노무 자식들이 다 있다. 저거가 3학년이라고 우리를 부려쳐묵나! 그래도 잉어를 쳐묵을라카마 초고추장은 있어야제. 가 있거라. 내가 만들어갖고 따라갈게. 할매가 오늘은 집에 없을 끼다. 그래서 내가 해줄라칸다. 어서 꺼지거라. 거기 서 있으마 멀리서 동네 사람들이 보고 놀란데이!”

“다음에 홍수지마 재 너머 도랑 건널 때 또 업어주마.”

상섭이는 숙자의 아픈 데를 찔렀다. 홍수 져서 도랑물이 불어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섭이가 업어주지 않으면 건너갈 수가 없다. 홍수지는 날이 상섭이가 숙자한테 대접받는 마당쇠가 되는 날이었다.

“듣기 싫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마 니는 내 손에 죽일끼다. 알았제! 어서 낫가리 뒤로 몸뚱이를 낮추거라. 동네사람들 본다카이! 이 빙신아!”

상섭이가 못 가로 오고 나서 한참 만에 과연 숙자가 주전자에 초고추장을 해가지고 나타났다.

“지린내 나는 가시나가 증말 잘 생겼다. 비단 옷만 입으마 태백시장에 갖다놔도 안빠질 끼다마!”

영구는 숙자한테 혹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숙자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영구야, 너거 아부지 지서주임한테 말해서 재 밑에 흐르는 도랑에 나무다리 좀 놓아달라캐라. 우리는 다리 걷고 건느마되지만, 숙자는 치마를 입은 데다 다리가 짧아갖고 안 된다 아이가. 학교를 못가거나 아이다 상섭이가 숙자를 업고 건넌다카드라.”

잠을 깬 아이들은 홀라당 벗고 못 속으로 뛰어 들어가 헤엄을 쳤다.

몸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옷을 주워 입었을 때, 광호가 쓰윽 나섰다.

“너거 놀라지 말거래이. 내가 숙자를 꼬셔갖고 점심 묵고 숙자네 집에서 신랑각시 놀이를 하기로 했다.”

“니가 운제?”

영구가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너거 초고추장 쳐 묵고 나가 자빠졌을 때 내가 다 가시나를 꼬셔 놨다. 지도 가시난데 무서운 할매하고만 사는 것보다는 우리 같은 잘 생긴 머스마들하고 놀이하마 조을 거 아이가!”

광호는 한수 높았다. 순달이하고 영구보다 한발 앞서서 걷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집에 창하고 칼, 그라고 구신들이 득시글거리지 않나! 무서버서 우째 그 집에서 하노?”

내가 말했다.

영구가 신방으로 들어간 이후 잠시 시간이 흘렀다. 뜻밖에도 신방에서는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영구가 숙자더러 자기의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애걸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갔더니 숙자는 보료 위에 누워 있었다. 꽤 괜찮은 요잇이 깔린 무명 요 위 한 귀퉁이에 기워져 있었다. 비단인 듯했다. 숙자는 방안으로 들어온 나를 거들떠도 안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고 한쪽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요 위로 올라가 숙자 옆에 누웠다. 숙자가 머리를 감쌌던 팔을 내려 내 머리를 감쌌다. 신랑각시 놀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나는 갑자가 속이 욱하고 토할 것만 같았다. 숙자에게서 정말 알 수 없이 역겨운 냄새가 풍겨져 왔기 때문이었다. 숙자가 입고 있는 옷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이기도 했고, 아니면 머리채에서 피어오르는 것이기도 했다. 아니면 숙자의 몸, 어쩌면 사타구니에서 솟구치는 냄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오라버니만 좋다아…”

분명 이런 소리가 들렸는데, 누가 하는 소리인지 금방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숙자의 목소리였지만, 숙자가 한쪽 팔로 자기의 얼굴을 감싸고 있어서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주변에 둘러서 있는 무시무시한 귀신형상들이 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어서 이 고약한 냄새 풍기는 여자아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아이 몸뚱이 위에 다시금 픽 스러졌다. 그 구역질나는 냄새를 다시 맡아보고 싶은 욕구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내 작은 몸둥아리는 숙자의 몸통 위에 픽 스러졌다. 나는 그만 혼절하다시피 코가 꽉 막혀오는 호흡곤란을 느꼈다. 악취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바닥으로 굴러 콧구멍을 숙자의 몸통으로부터 떼어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귀신할매가 없는 틈을 타서 밤새 숙자네 집에서 놀았다. 신방에 늘어선 귀신형상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광호는 귀신형상들에게 보자기 같은 천을 덮어 씌어 버렸다. 어쩐지 조금은 무섭고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하거나, 아니면 팔씨름, 아니면, 두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한 쪽 손을 마주잡고 상대방 쓰러뜨리기를 해서 숙자를 차지할 순서를 정하는 놀이를 했다. 얌전한 신랑각시 놀이는, 이제는 힘과 재주로 겨루어서 순서를 차지하는 놀이로 변했던 것이다.

숙자네 집을 벗어나서 동네를 돌아서 재를 향해 방향을 틀던 우리들은 멀리 숙자네 집 담벼락에 붙어서 꾸물적거리는 아이, 광호를 보았다.

우리를 알아본 광호는 조금 놀라는 눈치더니 이윽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니 집에 가서 안자고 거기가 뭐했노?”

영구가 물었다.

어느 날인가, 다음다음 날인가, 읍내 지서에서 순경이 와서 리장인 아버지와 머리깎아주는 상섭이 아부지 소천어른 그리고 염소수염을 한 영달이 어른 등 동네 어른 서너 명을 불러서 재를 넘어가 도랑에 나무다리를 놓았다. 다리는 튼튼했다.

상섭이는 숙자가 노골적으로 괄시를 해도 아무런 불평도 안하고 묵묵히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러면 숙자는 상섭이가 불쌍하다는 듯이 말 한 마디를 건네주곤 했다.

나는 광호가 숙자와 함께 학교 가는 길에 나를 붙여주지 않을까봐 우리 집 뒷마당에 서 있는 밤나무에서 추수한 밤이나, 찐살같은 것을 늘상 녀석에게 주었다.

“순달이 니도 영구만큼이나 숙자를 좋아하는구나. 너거 그래싸도 소용없다. 숙자는 나만 좋아한다카이…그기이 무슨 수로 그런지 아나?”

“…”

“다아 수가 있다 아이가! 순달아 내한테 좀 배우거라. 그래 날 따라와라. 내가 그걸 가리치줄끼다마. 사실은 가르쳐주마 안 되는데…”

나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쉬어빠진 행주냄새 같기도 하고, 썩은 고구마 냄새 같기도 한 숙자의 냄새를 나는 더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상 하고 있었다. 그런 숙자를 꼬시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귀신할매가 집을 비운 날 밤 신랑 각시놀이할 때 내 차례가 되어서 방안으로 들어갔더니 각시 노릇을 하던 숙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광호 오라비를 더 좋아한다고. 그런가하면 숙자가 나를 상섭이처럼 괄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살가운 시선을 주는 것만 같았다.

달빛마저 사그라진 어느 날 밤, 우리 집 사랑에서 천자문을 같이 읽던 광호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이런 소리를 했다.

지금 보니, 거기는 언젠가 내가 영구를 우리 집에서 재우고 재를 향해 가다가 여기 담벼락에 붙어 서 있던 광호를 보았을 때의 바로 그곳이었다.

“뭘 집어 넣었노?”

“세숫비누다.”

“그라마 숙자가 아나?”

“내일 봐라, 숙자 낯짝이 깨끗해졌을 끼고 몸에서 냄새도 덜 날 끼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숙자에게서는 그 구역질나는 고구마 썩는 냄새 대신에 코를 따갑게 하는 비누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것이 광호가 나에게 가르쳐준다는 바로 특효의 숙자 꼬시는 방법이란 말인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시시껄렁한 잡동사니를 자꾸만 사다주는 것이 무슨 그런 신통한 방법일 수 있나.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 하정리 마을에 도무지 본 적이 없는 엿장수 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 엿판을 멜빵을 해서 가슴팍에 매달고 키가 조그만 사내가 산악을 돌다가 우리 마음에 이른 것 같았다. 산악을 돌았으니 그가 엿구루마 같은 것을 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산간을 두 발로 헤집고 다니는 엿장수였다. 다들 없던 시절이라 이런 엿장수들이 수지가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보이까네 할배가 예사로 주름이 깊던 게 아니더라고. 무신 탈나는 게 아닐까…”

“걱정도 팔자지. 무신 그런 걱정을…홀로 살던 사람들 노인이건 중늙은이건 서로 마음 맞아 같이 살마 그거보다 좋은 게 어디 있노 말이다.”

“그런데 무당이 서방 얻을 수 있노 말이다.”

“그라마, 아무 상관없다 아이가! 중들이 여편네 얻고, 신부가 파계하고 장가가는 세상이다. 무당이 시집 가는 거 아무 상관없다 아이가…”

“그런 뜬소문이야 나도 들었지만 소천이도 점잖은 사람, 설마 무신 몹씰 짓이야 할라고…”

“이 사람,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무신 일이 벌어져도 특별난 게 없다 하지를 않나!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럴! 그래야 인종이 씨가 마르지를 않을 거 아닌가베!”

소백산맥 깊숙이 들어앉은 산간 오지 마을에 엿장수 할배가 나타남으로써 심심하던 입들에 장날이 선 것이다. 그러나 별별 희한한 입방아만 찧을 뿐 무슨 뾰족한 눈요깃거리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언제나 침묵에 갇혀 있는 무당할매집에는 깊은 침묵만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이장님요, 우리 할배가 죽었어예!”

“할배라이? 무신 소리하노 니? 니가 할배가 있나?”

“할배는 없지만 그 집에서 사는 엿장수 할배는 있잖는교와!”

우리 어메가 한 마디를 했다.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아버지가 불러준 어른들의 집을 돌면서,

“사람 죽었구마! 귀신할매집으로 오시랍니더!”

내가 상섭이를 데리고 무당집에 도착해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호롱불이 켜진 신당에 모여 있었다. 조용들 했다. 뜨내기 할배가 죽었기 때문에 슬피 우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머리를 디밀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조그만 영감 하나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당 한 구석에 누워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엿장수 할배의 죽음은 복상사라는 지서주임의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날로 야산에 매장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기별을 해야 할 가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지서주임의 결론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지서주임의 처사를 보고 다들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복상사라는 기이 귀 뒤로 피가 마구 쏟아지는 병이라예?”

내가 물었으나 대꾸하는 어른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서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 흐르는 세월은 나를 결국 갑년까지 끌고 온 것이다.

*정소성
서울대, 프랑스그러노불대 졸업(문박),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등 수상, 소설집 20여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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