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포항까지, 호국영웅의 발자취를 따라서

– 2019 영원한 친구들의 편집위원 워크숍

권유미
블루유니온 대표, 본 협회 편집위원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일까. 11월의 가을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한 국가 안보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굳건한 단합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서 11월 4일~5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한미우호협회 협회지 「영원한 친구들」 의 편집위원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일정은 경북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대구 동화사를 거쳐, 울산 십리대숲 국가정원, 울산 대왕암, 그리고 해군 제6항공전단 견학을 끝으로 짧지만 알찬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워크숍 인원은 한미우호협회를 위해 항상 애쓰시는 황진하 회장님, 박휘락 편집위원장님을 비롯하여 협회지를 위해 노력하는 12명의 편집위원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약속 장소인 서울역 4번 출구에서 만나 오전 8시 대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자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처럼 마음이 설렜다. 특히 나는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 하늘 위의 구름을 타고 가듯 고속버스를 가로지르는 버스의 질주가 왜 이리 반갑고 신이 나는지.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지 다들 얼굴에 들뜬 기색이 보였다.

버스에서 그동안 어렵게 느껴졌던 황진하 회장님의 따뜻한 인사 말씀과 배려가 감사했다. 회장님께선 생각보다 소박한 성정을 가진 분이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안성 휴게소에 도착해 따끈한 우동 한 그릇과 회장님께서 사주신 고소한 호두과자를 한 봉지씩 안고 다시 버스에 올라 편집위원들과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곧 첫 방문지인 왜관 다부동에 다다랐다.

잊지 않겠습니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다부동 전투
다부동은 6.25 전쟁에서 의미가 큰 지역이다. 낙동강선 다부동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힌다.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이 조선인민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어 성공적으로 방어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구국용사 충혼비에서 숭고한 희생을 위해 쓰러져간 군인들을 위해 묵념하고,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전투를 다룬 시청각 영상을 다 함께 감상했다.

다부동은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지역으로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5번, 25번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읍으로 향하는 지방도로의 시작이 되는 곳이다. 과거 조선시대에 왜관이 자리했던 곳이라 그런 지명이 붙었다.

다부동은 마을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가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한 위치다. 하지만 이 방어선이 무너질 경우 10km 남쪽의 도덕산 일대까지 아군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의 포병 사정권 안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이 다부동 전투의 방어 성공은 의미가 남다르다.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에서 대구에 진출하려는 북한인민군을 격퇴하고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그야말로 치열했던 구국의 격전이었던 것이다.

한 발도 물러서지 마라. 한 치의 땅이라도 적에게 빼앗기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이 있다는 걸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라.”

1950년 7월 29일 다부동 전투를 지휘한 미 제8군 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낙동강에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워커는 좁아진 방어구역의 장점을 활용하여 수세적인 상황에서도 부분적인 공세를 펼쳤고, 북한군의 공격 기세를 조금씩 꺾었다.

북한군의 최후공세는 9월 12일 작전한계점에 도달하여 공격이 멈췄고, 워커는 9월 16일 드디어 반격을 위한 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남침을 주도했던 북한군의 T-34 전차는 거의 전부가 파괴되었고, 9월 24일 남은 적을 모조리 소탕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켜냈다. 55일 동안 다부동 전투의 사상자는 아군 1만여 명, 적군은 1만 7500여 명의 큰 규모였고, 매우 성공적인 방어전이었다.

나라를 구한 승려들
사명대사가 이끌었던 승병 활동의 배경 동화사

오후 1시경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동화사로 향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동화사는 팔공산의 가을 정취가 가득 느껴지는 고즈넉한 사찰이었다. 우리는 동화사 근처에서 더덕구이와 산채정식과 함께 생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며 동화사 일정을 시작했다.

동화사는 493년(소지왕 15) 극달(極達)이 창건한 절로, 당시에는 유가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후 832년(흥덕왕 7) 왕사 심지(心地)가 중창하면서 그 때가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이를 상서롭게 여겨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명대사가 동화사에 영남승군의 사령부를 설치하고, 승군의 대장인 영남도총섭이 되어 팔공산성을 쌓고 승군을 지휘했던 곳이다.
에 사명대사는 승군을 지휘하고, 사서원은 격문을 지어 의병을 모집했다. 또한 의병들을 모아 절에서 훈련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나라의 큰 위기가 일어나자 승병들은 누구보다 나라 구하기에 앞장서며,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싸웠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도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태극기 민심으로 성토를 하곤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라의 평화와 안보는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국가의 국력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 그리고 보금자리가 있는 영토를 지키는 가장 기초적인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색색으로 물든 고운 단풍 사이사이 승병들의 구국 정신을 본받으면서 다음 목적지인 울산으로 이동해본다.

울산에서 한미우호협회의 뜻을 다지며 들어간 편집회의

오후 5시 30분 버스는 울산에 도착했다. 울산 태화강에 위치한 국가정원은 오밀조밀 꾸며져 있어 알싸한 국화 향기를 만끽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바다가 가까운 울산에서 즐기는 싱싱한 회정식으로 헛헛한 배를 채우고 숙소로 향했다.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석기시대부터 육로 또는 해로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 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의 원동력, 공업도시로 유명한 울산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산업화의 본고장이자 국내 대기업인 현대 기업이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7시 50분. 호텔에서 브런치를 먹고 회의실로 전원 모였다. 드디어 편집 회의가 시작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박휘락 편집위원장님의 주도로 진행된 편집회의는 제251호의 주요 테마와 필진 구성부터 해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었기에 다른 때보다도 더욱 신경이 쓰이는 호였다.

12월 5일 마지막 행사 준비와 2020년도 주요 주제,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국내ㆍ해외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들이 쏟아졌다. 또한 2021년에는 한미우호협회가 3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가 되기에 그간 우리 협회의 역사와 활동사에 대한 화보, 백서 발간 등에 관한 의견들도 있었다.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활발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우리 협회에 대한 편집위원님들의 애정과 열정들을 다시금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2020년도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한미우호협회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호국룡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울산 대왕암 바위

오전 9시. 편집회의를 마치고 협회에 대한 애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울산에서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대왕암 공원으로 출발했다.

대왕암 공원은 동구 일산동 동쪽 끝에 있어 동해 바다와 접해서인지 독특한 기암절벽이 많은 곳이다.

1만 5천 그루의 오랜 해송을 산책하듯 걸어 안으로 들어가면 웅대한 바위들이 신묘한 자태로 자리하고 있다. 대왕암과 울기바위, 남근바위, 탕건바위, 처녀봉, 용굴 등 이름부터 신비로운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어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대왕암 바위에는 신라왕조 때의 임금인 문무대왕이 경상북도 경주시 앞바다에 있는 왕릉에 안장되고 그의 왕비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용이 되어서 승천하여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여러 가지 기암절벽과 돌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멋진 곳이었다. 멀리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이 보인다. 드디어 우리는 이번 워크숍의 마지막 목적지인 포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유일한 항공대 제6항공전단을 나서며

포항 죽도시장 근처 식당에서 따끈한 순두부 돌솥밥을 먹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시간을 조금 앞당겨 도착해 달라는 해군 제6항공전단의 요청으로 미 해병 제1비행단 전몰용사비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해군 제6항공전단을 방문하기로 했다.

제6항공전단은 대한민국 해군의 유일한 항공대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 해군 항공부대 활약상을 체험한 해군이 독자적으로 항공기를 보유하자며 만들었다고 한다.

1951년 한국 전쟁이 저물던 그 해 4월 진해 해군기지에서 처음 조직된 항공반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노스아메리칸 T-6 텍산의 개조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적인 개조 항공기인 ‘해취호'(海鷲號)’를 취역시켰다. 이는 육군과 공군의 항공기 운용 역사가 타국에서 들여온 항공기로 시작된 것과는 다른 출발이었다. 1957년 7월 15일 정식으로 항공대가 창설되었다. 1973년 해군과 해병대 항공대를 통합하고 1978년 포항 기지로 이전했으며 1986년에는 작전사령부 제6항공전단으로 개편했다.

활약상도 무궁무진하고 뛰어나다. 1978년 거문도 간첩선 격침, 1988년 북한 반잠수정 격침을 비롯해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 Lynx 해상작전 헬기가 출격해 엄호 지원 등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해군 제6항공전단 단장님과 간부들이 직접 나오셔서 “영원한 친구들” 편집위원들이 타고 있는 버스를 기다리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협회의 방문을 위하여 세심하게 준비를 해주신 부분이 많았다. 항공전단의 소개와 다양한 활약사를 직접 귀로 듣고 멋진 모자와 기념사진까지 선물로 받았다. 오늘도 바다를 굳건히 지키는 제6항공전단에 황진하 회장님께서 감사패를 전달해 드렸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배웅해주신 단장님과 제6항공전단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박 2일간의 워크숍 일정이었다. 지역과 시대는 달라도 나라를 지키는 마음만은 모두 하나였던 분들의 기상을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고 훈훈하리라는 생각에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의 마음도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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