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미동맹의 挑戰과 課題

이동복
전 국회의원,
신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자유민주연구원 고문

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하는 한미동맹이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문제 전문가로 한미 안보동맹의 앞으로 관하여 집중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고든 창(Gordon G. Chang)이 최근 “미국, 한국을 잃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한편으로는 “미국과 한국 사이의 군사동맹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잃는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통탄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혈맹(血盟)’ 관계는 더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는 비관론을 제시하여 읽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2020년의 벽두에서 한미동맹은 지금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 양국은 2월 24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양국 간 당면한 현안인 방위비분담 문제에 관한 다른 입장을 좁히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한미관계는 2017년에 출범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로 그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해 왔다. 한미 양국은 재작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통상적으로 5년 주기로 유지해 오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관한 ‘특별조치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 2019년분을 1년짜리로 합의했었다. 그 시한이 2019년 12월 31일로 만료되었기 때문에 2020년 이후의 분담금 내용을 새로이 합의하지 않으면 올해부터 주한미군 유지에 어려움이 초래되게 되어 있다.

이 1년 시한의 ‘특별조치협정’에서 한미 양국이 합의한 2019년의 한국 측 분담금은 2018년 대비 8.2%의 인상률을 적용한 1조389억 원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는 이 한국 측 분담금을 2019년도분의 5배에 해당하는 50억 달러(한화로 약 6조 원)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 관한 양국 간의 협의가 난항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 다양한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적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NATO와 일본 등에 대해서도 “그동안 미국의 부담이 과중했다”라는 이유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트럼프 자신이 심지어 “주한미군 감축” 카드마저 만지작거리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단순한 “방위 분담금의 조정” 차원을 넘어서 전통적인 한미 안보동맹 관계의 기조에 이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형편인 것이 사실이다.

사실은 2017년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새로이 출범한 이래 전개되고 있는 양국관계의 껄끄러운 상황은 그 원인이 방위비 분담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양국 간에는 동맹 관계 관리의 차원에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및 미국과 이란 관계의 악화에 따른 호르무즈(Hormuz) 해협 파병 및 한국에 전개된 사드(THAAD) 방공포대의 운영 등 난제들이 산적(山積)해 있고 이들 난제를 해결하는 양국의 노력은 사사건건 박빙(薄氷)을 밟는 것과 같은 난항(難航)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 현안은 수면(水面) 위로 드러난 빙산(氷山)의 각(角)들일 뿐이고 한미관계 표류(漂流)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한미동맹의 본질(本質)에 관하여 수면 아래서 뿌리가 자라고 있는 양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미국 수도 워싱턴의 링컨(Abraham Lincoln) 기념관 옆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 조형물’ 입구 진입로 바닥의 명문(銘文)에 새겨져 있다.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와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조국의 부름에 호응한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ur nation honor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라는 문구(文句)다. 이와 함께 이 조형물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를 키워드로 삼고 있다. 한 마디로 한미동맹은 “혈맹(alliance in blood)”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패망시킨 전승국(戰勝國)으로 한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고, 38선 이남에 거주하는 전체 한국인의 2/3가 공산주의 학정(虐政)을 모면케 해주었으며, 대한민국이 유엔을 산파역(産婆役)으로 하여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독립을 획득한 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 주었고, 1950년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으로 하여금 북한을 ‘침략자’로 낙인(烙印)찍고 미군 위주의 16개 회원국의 군대로 유엔군을 편성, 파견하여 대한민국이 북한에 의한 공산화 통일의 희생양(犧牲羊)이 되는 것을 모면하게 해준 나라이다. 6.25 전쟁이 계속된 3년 동안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연인원으로 572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33,741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에 참전하고 있던 유엔군 병력의 총수는 94만 4천 명으로 그 가운데 62.6%인 59만 명이 한국군, 32%인 30만 명이 미군으로 한미 양국 군이 전체 유엔군의 94.6%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한미 양국의 관계는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 한미 양국 간에는 전쟁의 포화가 멎고 2개월여가 지난 뒤인 1953년 10월 1일 양국 간에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이 체결(양국의 국회 비준이 완료된 뒤인 1954년 11월 18일 자로 발효)됨으로써 비로소 공식적인 ‘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휴전 이후 북한의 재남침이 있으면 6·25 때처럼 무방비 상태로 이를 맞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보장 조치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당시)이 집념으로 성사시킨 외교적 성과였다. 그러나 이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한 초기의 ‘한미동맹’은 여전히 북한에 의한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무력 남침의 경우에만 작동(作動)되는 ‘전수방어(專守防禦)’ 전용(專用)으로 NATO 식의 “유사시 미군의 자동참전(自動參戰)” 보장조치가 빠진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같은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승만의 집요한 대미외교의 결과 한미동맹은 “주한미군의 무기한 유지”와 “주한미군의 인계철선(引繼鐵線; Tripwire) 배치”라는 2개의 이빨로 무장한 가운데 출범했었다. 이로써 한미동맹은 “미군의 유사시 자동개입” 문제를 일단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그 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팎의 정세변화에 따라서 끊임없는 적응과 진화를 계속해 왔다. 1960년대 중반 한국군이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지는 것을 계기로 1968년부터 연례행사 화 된 한미 국방장관회의가 1971년부터는 ‘한미 안보협의회’로 격상‧확대되었고, 1978년에는 한미 양 국군이 ‘연합사령부(CFC; Combined Forces Command)’를 구성하여 연합작전체제를 구축했으며 작전계획-5027과 5029, 그리고 5015등 유사시 한미 양 국군의 연합작전계획들이 개발되어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한미 국방장관회의에서 연례적으로 반복되던 미국의 “유사시 억지력(Deterrence) 제공” 약속은 1990년부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등장하고, 1991년 미국이 한국에 배치됐던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것을 계기로 “유사시 핵우산(Nuclear Umbrella) 제공” 약속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 제공” 약속으로 보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애초 예상치 못했던 변수의 등장으로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동요를 겪기 시작했다. 동맹의 일방인 한국 쪽에 진보정권 등장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김대중(1998∼2003)‧노무현(2003∼2008) 대통령이 이끄는 2개의 진보정권들은 종래의 한미동맹 기조를 벗어난 친북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전통적인 한미동맹 기반의 본질적 동요를 초래했다. 이들 두 진보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보수 정권인 이명박(2008∼2013) 정권이 2013년에는 역시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권에 의하여 계승되었지만, 이들 두 보수 정권은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서 한국 정국을 강타한 “대통령 탄핵 파동”의 격랑(激浪) 속에서 2017년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진보정권의 등장을 허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은 물론 한미동맹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태풍 속으로 함입(陷入)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미동맹은 그동안 한반도 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진화를 거듭해 오는 과정에서 2009년에는 ‘미래비전’, 그리고 2013년에는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향후의 한미동맹은 대북한 ‘전수방어’의 소극적 임무를 탈피하여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쌍무적(Bilateral), 지역적(Regional) 및 세계적(Global) 차원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 문제였다. 특히 2017년 한국에서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고 이에 앞서서 같은 해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양국 간에는 동맹 관계의 본질을 형성하는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기반이 유실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어 오고 있다.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진화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요체(要諦)는 여전히 대북정책, 그 가운데서도 북한의 핵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 기간 중 집요한 궤도이탈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동맹’ 차원의 ‘공조(共助)’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아 왔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한미동맹이 아니라 북한과의 ‘민족 공조’를 앞세우는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가 노골화된 것이다. 문 정권은, 이른바 ‘운전자론(運轉者論)’을 앞세우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마치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명국인(明國人) 심유경(沈惟敬)이 명과 왜(倭) 사이에서 시도했던 ‘강화회담(講和會談)’ 방식을 방불케 하는 ‘양다리 외교’를 시도했다.

문 정권은 동맹의 다른 일방인 미국의 편에 서서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공조’의 차원에서 북한의 편에 서서 북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당연히, 임진왜란 때 심유경의 기만적인 ‘강화외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 같은 문 정권의 ‘양다리 외교’가 성공할 리 만무했다. 한동안 문 정권의 ‘양다리 외교’가 2017년 미국에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와의 ‘밀월(蜜月)’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시(錯視) 현상이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착시가 오래갈 수 없었다. 트럼프는 오로지 모든 그의 내치‧ 외교 행위를 올해 11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전략의 틀 속으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원비장(自願裨將)’ 역할을 잠시 용납하는 듯했지만, 싱가포르(2017)와 하노이(2018년), 그리고 판문점(2019)에서 김정은(金正恩)을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의 외교적 방법에 따른 해결 기대를 사실상 접어 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치명적 상처는 한미동맹의 몫이 되었다. 동맹의 기초인 “공통의 가치”와 “상호 신뢰”의 토대가 크게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통의 가치”와 “상회 신뢰의 토대” 상실이 지난해 말의 한‧미‧일 간의 지소미아 파동을 초래했었다. 지소미아 파동은 문재인 정권의 막바지 양보로 봉합(縫合)이 된 상태로 아직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한미 양국 간에 “공통의 가치”와 ‘상호 신뢰“가 회복되느냐의 여부에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올해 4월 15일 대한민국에서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1월에 미국에서 시행하는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양국의 정치 판도가 새롭게 짜인 뒤에라야 그 향배가 드러날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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