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전략적 리더십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전략적 리더십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장관)

벌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이한다. 그런데 나의 가슴은 찢어지듯 아프기만 하다. 그날 중앙청에 나 붙었던 표어는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라 외쳐댔고 기념가의 가사는 이러했다.

“삼천만 무궁화 새로이 피라, 반만년 이어 온 단군의 피로
겨레들 모두 다 손을 잡아라,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우리는 받들자, 대한민국을 다 같이 받들자, 우리의 조국”

우리는 아직도 남북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 얼마나 더 많이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얼마나 정성껏 받들어왔던가? 심각한 반성부터 해야 하고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지난 박정희 시대를 돌이켜 볼 때 그것은 이 나라의 산업혁명의 시대였으며 그 산업혁명은 한반도의 민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민주보루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존시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전통성은 대한민국에 있다.”고 항상 강조해 왔다. 그것은 한반도의 공산화혁명을 추진하기 위해 북조선을 혁명의 기지로  만들겠다는 노동당 강령에 대항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민주통일의 보루로 삼겠다는 결의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경쟁을 선포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북쪽보다 더 강한 민주국가로 만들어야겠다고 남북간의 체제경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들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우리에게 걸어왔었으나 우리는 전쟁 대신 체제경쟁을 다시 말해서 어느 쪽 체제가 백성을 더 잘 살 수 있게 하느냐 경쟁을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그 경쟁의 과정이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이었다.

5.16 혁명이 일어났던 해 남북간의 개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 보면 (세계은행 통계) 한국이 82달러인데 대해 북한은 320달러로서 세계의 125개국 가운데 우리가 101번째였던데 대해 북한은 50번째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비명으로 이 세상을 떠났던 1979년에 우리의 개인당 소득은 1천636달러로 125개국 가운데 49번째로 껑충 뛰어 올랐는데 반하여 북쪽은 120번째로 급락하는 후진성을 나타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한강변에 기적을 만들었다고 칭찬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을 거절했다. 우리가 이룩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우리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노력의 결정체였다고 주장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명비평가 기 소르만(프랑스)은 남북간의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한 원인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략적 리더십」에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을 위한 전략적 리더십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리더십이었다. 박 대통령은 북쪽에게 남북대화 (74성명)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결코 유화정책(宥和政策)을 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체제경쟁에서 북쪽의 공산주의체제를 능가하고 국민을 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라는 확신을 국민들이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국력을 배경으로 삼아 평화통일을 해보자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우리 남쪽에는 가짜 평화주의자들이 제법 활개를 치면서 국민을 현혹시키던 때가 과거 10여년 계속 되었었다. 이들은 또한 「민주인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정체가 불명했고 그 대신 허명(虛名)은 요란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 애호가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 진면목을 우리는 74년 8월 15일 제 29주년 광복절 경축식전에서 확인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날의 비극을 기억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의지를 간과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북한당국이 밀파한 암살범의 흉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경축식장에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육영수 여사를 한쪽으로 지켜보면서 감연히 연설대에 다시 모습을 들어 낸 박 대통령은 중단되었던 경축사를 계속했다. 그 경축사의 내용은 우리가 전쟁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하고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만 장차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평화통일정책의 천명이었다.

그날의 경축사는 평화통일의 기본을 천명하는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육 여사의 서거 소식으로 도하의 모든 신문이 비보 일색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무슨 내용의 경축사를 읽었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노렸다가 실패하자 자기 대신 사랑하는 자기 아내의 목숨을 빼앗아간 북한 당국에게 대화를 호소하고 평화통일을 호소하는 그 박 대통령의 심경이 과연 어떠했었겠는가? 그것이야 말로 자기희생을 통한 남북간의 평화통일을 구현해 보려는 평화주의자의 숭고한 참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백 마디의 말 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그 사람의 진정성을 웅변으로 표시하는 법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남북 간의 토착인구비례에 입각한 자유 직접 비밀투표에 의한 남북총선거의 실시를 통해서 남북통일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남북의 모든 동포들이 누구의 압력이나 회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건국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세워놓은 통일정책이었다. 그 후 장면 총리가 국회연설을 통해 계승한다고 천명했고 유엔에도 통고되었던 통일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이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을 뿐 아니라 더욱 더 강력한 국력으로 뒷받침해 주는 정책으로 보강해 나갔다.

따라서 이 정책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시와 더불어 민주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계속 유효한 기본정책이라고 나는 믿는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현실성도 없는 탁상공론이요 변절자들의 사기노름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위에 우뚝 솟아있는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는 인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대한민국을 다 같이 받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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