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 Bulletin



GT Bulletin 제10호 (절망의 악몽 천상의 환희)

절망의 악몽 천상의 환희

6‧25 폐허에서 만난 할리우드 영화는 까마득한 꿈나라 동화였습니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벌어지는 미군 병영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버트 랑카스터, 데보라 카, 프랑크 시나트라, 어네스트 버그나인, 몽고메리 크리프트,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벌이는 우정과 사랑, 의리와 복수, 의무와 희생. 전후 끝없는 암흑 속을 헤매는 우리 젊은이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오아시스였지요.

6·25는 우리 모두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인민군이 전쟁을 벌였다는 소문이 미쳐 현실로 가슴에 와 닿기도 전에, 설마 사흘 만에 서울이 공산군에 점령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새벽녘 사람들이 웅성거려 나가보니, 중앙청 정문 앞에 인민군 탱크가 서있고, 국기게양대엔 인공기가 꽂혀 있지 않겠습니까. 6월에 고2에 진급하고, 체부동 남의 집 뜰아랫방을 빌려 동생하고 자취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아버지 직장 따라 강원도 고성 땅에 가있다가, 해방 직후 38선이 막혀 반년 넘게 공산 치하에서 살아보았습니다. 그간 사람 구실하고 제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인민의 적이었습니다. 경찰서에 자리 잡은 인민위원회 앞을 지나노라면 매일 같이 고문에 비명 지르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겨우 사지를 벗어나 충북 고향땅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미처 몇 해도 안 돼 이곳까지 공산치하에 들어가다니…….

아, 나도 이제 백계 러시아인 신세가 되겠구나! 문득 충무로에서 보던 백계 러시아인들 생각이 났습니다. 일차세계대전 후 러시아혁명으로 고국을 쫓겨난 러시아 귀족들이 여기 정착해 양복점을 꾸려 근근이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울에 와있던 두 동생을 데리고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도살장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짐승의 심정이었습니다.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내려가던 인민군이 충북 진천 땅에서 처음으로 김석원 장군 휘하의 국군에 저지돼 일주일을 지체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집에 들어서니, 우리를 보고 어머니가 풀썩 주저앉으셨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에 서울이 쑥밭이 돼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생전 처음 두 다리를 뻗고 엉엉 우셨다는 겁니다.
반가움도 잠시, 온 식구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불길한 운명이 언제 닥쳐올는지 가슴 조이며 하루하루 보내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조 말엽 망국 기미에 벼슬을 내놓고 낙향해 계시던 증조부가 1940년에 돌아가시면서 후손들에게 이런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我死十年 (내 죽은지 10년 만에)
世事紛紜 (세상이 어지러워질 것이니)
欲求余生 (더 살기를 바라거든)
二十八人 (스물여덟 사람이)
一心是也 (한마음이 되어라)
天機恐漏 (천기가 샐까 두려우니)
見則付丙 (보거든 바로 불에 태워라)

「二十八人 一心」이 무엇일까. 집안 어른들이 구수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德덕을 쌓으라」 는 말씀이다. 「德」자를 풀면 ‘双쌍人’변에 ‘十四’, ‘一心’아니냐.”
“二八청춘”이 ‘16청춘’을 가리키듯, ‘쌍인’에 ‘十四’면 ‘二十八人’이 된다. 거기에 “一心”을 붙이면 「德」자가 되지 않느냐“
예언대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딱 10년 만에 6·25가 났습니다.
유훈을 명심해온 덕에 주위에 크게 인심 잃을 일을 해 오진 않았지만, 잘 사는 사람은 다 반동으로 모는 마당에는 꼭 화를 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전긍긍 두 달여를 지내던 어느 날, 읍내 사시던 작은 아버지가 단파로 들었다며 아군의 인천상륙 소식을 전해 오셨습니다.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줄 알았던 캄캄한 터널 속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쳐 들어온 것입니다.
한 열흘 지났을까, 저녁나절 긴 총을 멘 인민군이 아버지를 데리러 왔다가 못 찾고, 들어오는 대로 즉시 학교 교정으로 나오라 이르고 돌아갔습니다.
그날 모였던 사람들은 다 끌려가 참살되고, 그 당당하던 기간원들은 밤새 다 도망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시끄러운 차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아, 국군 유엔군 차량들이 벌떼같이 북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선 춤은 특별한 양식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들썩,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면 될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그게 잘 안됩니다.
그날, 9월28일 날, 북으로 달리는 우리 국군 차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덩실덩실 조선 춤이 추어진 겁니다.
80평생을 사노라니 잊지 못할 날들이 꽤나 생깁니다.
12월8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한 날, 소학교 2학년 때입니다.
8월15일, 해방이 된 날, 3년 후 같은 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6월25일, 공산군이 남침하고, 9월28일, 서울이 수복된 날입니다.
그 후 4·19, 5·16, 88올림픽은 모두가 다 아는 날들이지요.

한국이 공산군 치하에 들어가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지옥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6·25 그날과 참으로 천우신조로 미국이 참전하여 환희의 천상으로 끌어올린 9·28 그날, 이 두 날은 나에게는 생과 사를 갈라놓은 운명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9월15일은 우리나라 모든 민주인사가 다 같이 목숨을 건진 위대한 날입니다. 맥아더장군이 합참본부의 5천분의 1 성공확률 제시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인천상륙을 결행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서서히 북진해 왔더라면, 그 사이 수많은 인사가 끝없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도 그에게 멸족을 면한 은혜를 지고 있는 일원입니다.

오늘 9월 28일, 66년 전 서울 수복으로 인해 시작된 우리나라의 평화와 번영에 대해 우리 모두 한미동맹의 의미를 깊이깊이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꼭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常山 이 성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