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 Bulletin



GT Bulletin 제11호 (유엔기(旗)의 빛과 빚)

유엔기(旗)의 빛과 빚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전쟁으로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했을 때 대구에 온 유엔기의 빛은 눈이 시리도록 빛났다. 인민군이 소련제 신형T34탱크와 122mm포를 앞세워 서울을 3일 만에 점령하고 끊어진 한강다리를 건너 다시 수원-평택으로 밀고 내려올 때 유엔의 회원국도 아닌 대한민국을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3번에 걸친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군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을 구성하여 대한민국을 살리려 보냈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 필리핀, 에티오피아 등 16개국이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0여척의 항공모함, 전함, F86전투폭격기, 155mm포, M4A1셔만탱크, 3.5인치 대(對)전차포 등을 보냈고 다른 5개국이 병원선, 보급선 등을 보내 당시 남한보다 압도적인 우세를 가진 북한군을 물리치게 했다. 유엔은 맥아더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했고 “한 전쟁 한 사령관” 원칙아래 유엔회원국 참전군과 대한민국 국군도 모두 유엔군으로 편성되었다. 국군 20만 명과 10만이상의 유엔회원국 군인이 전사하고 부상했다. 낙동강전선을 지키고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침략군을 물리치면서 펄럭인 유엔기의 빛은 대한민국을 살렸다. 그 빛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공산군침략의 어둠속으로 빨려들고 말았을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유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쟁이 나던 그해 유엔창설일인 10월24일을 국경일로 정해 거국적인 유엔의 날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유엔창설일을 국경일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었다. 개천절, 광복절등과 함께 5대국경일로 지키면서 ‘유엔의 노래’를 불렀다.

1976년 유엔의 날이 국경일에서 빠지고 국가기념일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국가기념일로 내려지고 난 뒤 유엔의 날은 국가적 행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국군의 날이나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같은 많은 기념일은 주관부서 주관으로 전국적인 행사를 하지만 유엔의 날로 지정되어 있는 10월24일은 지난 40년간 그냥 지나갔다. 부산 유엔군 묘지에서 하는 유엔군 행사가 있을 뿐이다. 2015년 성우회, 대한언론인회, 6.25참전언론인회, 라이스업 코리아 등 30개 단체가 ‘유엔의 날 기념협회’를 조직하여 국무총리실로 정부주도의 유엔의 날 기념행사를 하도록 하는 국민청원을 했다. 국민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기념협회는 국무총리, 외무장관 등의 화환을 받아 충무아트홀 콘벤션센터에서 유엔창설기념 70년, 대한민국 유엔의 날 설립 65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2016년 유엔의 날 기념행사도 정부주도행사는 결정되지 않았다. 유엔의 날 기념협회는 외교협회, 유엔한국협회와 공동으로 이날 오전 10시 외교협회강당에서 기념행사를 하기도 했다.(지하철 사당역 1번출구에서 9시반 셔틀버스운영).
이날을 거국적인 기념행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유엔기의 빛이 아직도 찬란하다는 것과 우리가 유엔에 빚진 나라로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휴전상태이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큰 의미에서는 국군은 유엔군의 모자를 쓰고 있다. 휴전당시 참전국 16개 유엔회원국은 다시 이 땅에 전쟁이 터지면 즉각 군대를 파견하겠다는 국제성명을 발표해 놓고 있다. 일본은 요코스카 등의 주요한 군사기지 6개를 유엔후방기지로 지정해놓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유엔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웃의 도움 없이 나라를 성공적으로 지킬 수는 없다.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도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방을 만들고 우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가안보를 지킨다. 유엔군을 우군으로 갖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고 대한민국은 유엔군이 있는 한 그만큼 안전한 것이다. 전쟁 중 유엔군의 이름으로 많은 공훈을 세우고 전사 또는 부상한 선배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군사학교에 유엔기가 걸리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전쟁이 나는 경우 다시 달려올 16개국 참전국 전우들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도 되고 유엔군사령부가 갖고 있는 위력과 후방기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크기를 최우선으로 보는 현실주의(real politics)자들은 흔히 한국을 지키는 힘은 한미동맹이고 미국이지 유엔은 허울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교관계의 극단행위인 전쟁도 벌거벗은 물리적 힘(naked physical forces)에 의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정당성 또는 명분을 앞세우고 일어난다. 자유 민주국가가 국가의 무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성과 명분을 갖고 의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어 국제관여를 하게 된다. 미국의 한반도관여의 정당성은 유엔이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지켜야 할 인연이 없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에 들어왔다가 화공을 받아 가라앉았고, 1871년 로저스제독이 제너럴 셔먼호사건을 응징하려 아시아함대를 끌고 와 ‘작은 전쟁’을 했으나 국내사정으로 급히 돌아간 것 등이 고작 양국관계의 역사성이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1945년 미국이 2차 대전 승전국 자격으로 38선 이남을 점령했지만 3년간의 군정기간을 통해서도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소련과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적으로도 미국파, 소련파, 중국파, 일본파 등의 갈등이 좁혀지지 않았다.

미국은 아시아대륙의 언저리에 붙어 있는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를 심기 위해 유엔을 통한 세계여론을 모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1947년 11월 유엔회원국 절대다수의 가결을 거쳐 한반도의 자유로운 총선거를 통해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를 세울 것을 결의했고,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이 북한지역의 총선을 반대하여 유엔선거감시단의 입북을 막자 다시 1948년 2월 우선 남한지역만이라고 총선을 하고 북한지역은 자유로운 선거를 할 수 있게 될 그때 선거를 해서 통일국가를 완성할 것을 결의했다. 제헌국회는 북한지역을 위해 100석의 빈자리를 비워뒀다. 1948년 5월10일 총선에 의해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유엔은 한반도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유엔이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을 한반도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하자 미국도 이듬해 1월 대한민국을 승인했다. 6 25전쟁이 났을 때 미국은 유엔이 대한민국을 도울 것을 결의한 결의안에 의지하여 미군을 파견했고 이어 유엔회원국을 독려하여 유엔군을 결성해 싸웠다. 당시 유엔회원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위해 유엔군을 결성한 것은 트루먼 대통령-애치슨 국무장관-딘 러스크, 존 히커슨 국무성 차관보 같은 당대의 걸출한 정치인들이 예리한 판단력과 사력을 다한 외교력을 동원해 이룩한 것이었다. 휴전협정 때 이승만은 쿠데타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고집해 결국 체결했다. 유엔을 못 믿어서가 아니고 유엔의 집단안보능력을 미국과의 개별동맹 체결로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유엔군이 없어도 미군만 있으면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계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유엔군 체제가 없으면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정당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에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과 유엔과의 관계를 혼란시키려는 것은 처음부터 북한이었다. 유엔에 의해 합법적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군사령부를 눈의 가시로 삼고 온갖 비난을 해왔다. 1991년 유엔에 가입된 후에도 여전히 유엔을 비난하고 있다. 5차 핵실험 후에도 유엔제재결의안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38선 이북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유엔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엔에 빚진 대한민국이 묵묵부답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유엔기를 높이 올려야 한다. 북한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유엔의 이상인 “전쟁은 범죄행위이며 인간의 기본권존중과 국제조약의 성실한 이행”을 힘주어 설득하고 이행케 하는 유엔의 아시아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외교의 큰 줄기는 바로 이런 유엔의 구도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한미안보연구회 이사 정 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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