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 사태와 미중갈등,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

코로나 사태와 미중갈등,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

윤 덕 민



코로나 사태와 미중갈등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전 세계를 휩쓸고 현재 900만 명 이상이 감염되어 47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미국의 사망자 수는 11만 명에 달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들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우한 코로나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초기 단계에 이를 공개하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했으며 여전히 정보의 투명성에 있어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중국의 감추기로 바이러스 유입 차단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 책임론은 물론 향후 세계 경제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 코로나 감염증 앞에 국가 간 이동이 사실 차단되면서 세계 경제의 역동성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전후 세계의 번영을 가져온 자유무역질서는 코로나 사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각국은 각자도생의 자국 우선주의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성격상 일거에 사라질 수 없으며 백신과 치료제가 조기에 투입되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의 글로벌 벨류체인이 크게 타격받으면서 기업들의 연쇄 도산과 대량 실업이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는 인종차별 사태에 따른 각종 소요로 잔뜩 먹구름이 쌓여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중국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중국에 보다 강하게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미중대결은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감염증을 둘러싼 대립부터 홍콩사태에서 보는 가치관 대립 그리고 아태지역의 지정학적 대립으로 미중갈등은 점점 전략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대립



2019년 여름 갑자기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편대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들 폭격기 편대는 독도와 울릉도를 통과해서 대한해협을 거쳐서, 이어도 상공을 지나갔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독도 영공까지 두 번이나 침공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쟁의 두 당사자들이 전략폭격기 편대 비행을 통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항상 국제정치 강의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조건이 폴란드와 더불어 최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것을 정말 피부로 느끼는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한반도가 발칸과 더불어 세계의 화약고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전부 다 한반도가 강대국 사이에 지역적 패권을 둘러싼 전쟁터가 되었던 사례들이다. 그런데 마치 그런 경험을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같은 시기, 북한은 전략 핵 잠수함을 공개하고 최신형의 이스칸데르(Iskander)라는 새로운 탄도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하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일본은 우리의 경제 급소를 노리는 경제 보복까지 단행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에게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태가 초래되었을까?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표명되다. 더욱이 ‘키리졸브(Key Resolve)’, “을지포커스‘, ‘맥스선더(Max Thunder)’ 등의 한미 연합 훈련들이 중단된 바 있다. 연합 훈련과 미 전략자산 전개가 사라진 우리의 해·공역을 결국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들이 메우러 나타난 셈이다. 중러 폭격기 편대의 침범을 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최악의 지정학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잊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130년 전 청일전쟁에서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얼마후 다시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를 노리면서 1905년에 러일전쟁으로 격돌했다. 그리고 1950년 소련의 스탈린은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가졌고 미국의 애치슨 라인을 보면서 결국 모택동과 김일성으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그것이 1950년 6.25전쟁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시킨 애치슨라인이 한국전쟁을 촉발시킨 원인의 하나이며, 전쟁당시 일본과 태평양상에 있는 기지들을 활용하여 미군이 개입해서 낙동강에서 북한군 침공을 저지하여 대한민국이 겨우 살았다는 교훈이다.


전쟁 이후 1953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70년 가까이 한미동맹이 견지되었으며, 그 덕택에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심각성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도 되었고, 민주화도 이루어내 명실상부한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심각함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대 정권들은 ‘한미동맹의 일정 부분을 줄여서 중국과 가까워지는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일대일로와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중국과 같이 꿈을 꾼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미일간의 안보협력이 냉전 구조가 돼서 남북협력이나 평화체제에 해가 된다. 그래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해소하고 남북 간의 평화체제로 가야 된다’는 주장들이 여권에서 제기된다. 그리고 심지어 한미일간의 안보협력의 중요한 요소였던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도 한일 갈등에서 쉽게 종결하겠다는 입장이 대두되었다. 한미동맹을 해소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며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유리하며, 전략적 자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고 판단된다.


한미동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금융위기로 미국경제가 휘청거릴 때, 우리 사회에서는 명청 교체기에 비유하면서 미국대신 중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역사상 중국의 영향을 잊고 살았던 예외적인 반세기를 보내고 우리의 일상은 다시 중국 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경제를 제쳐놓고라도 우리 하늘은 중국발 미세먼지에 싸여있고 달갑지 않은 바이러스도 들어온다. 우리 일상은 싫든 좋든 중국과 연관되어 있다.


최근 중국은 공세적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특히 남중국해에서 팽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이 공히 둘러싸고 있는 서해는 어떠할까? 한국과 중국은 지금까지 124 도선을 상호 간의 중간선을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중국은 125 도선을 주장하면서 그 서쪽으로 한국 해군 함정이 들어오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거의 서해의 72~3%를 중국이 통제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더욱이 중국이 주장하는 중간선을 따라 부표들을 설치했는데, 잠수함 움직임을 감시하는 군사용 소나를 부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미동맹이 해소되면, 중국과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이 해소되면, 동맹 없는 한국의 길은 어떠할까? 남북평화공동체가 이루어져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도래한다고 하는데, 중국에 조공 바치고 김정은의 핵 보호를 받으며 살면 행복할까? 일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들은 우리 땅을 더 이상 유린하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자유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는 버틸 수 있을까? 동맹이 아니라면 미국도 동네북 때리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을까? 많은 질문이 몰려온다.


미국의 메티스 전 국방부 장관은 최근 회고록에서 ‘동맹이 있는 나라는 번영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퇴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동맹이 없던 구한말 조선의 운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한미동맹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의 원칙은 확실하다. 필리핀에서 보듯이, 동맹국 국민이 싫다면 철수한다는 것이다. 동맹 종언은 정권이 아닌 국민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