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정한 친구, 당신은 미국입니다!

진정한 친구, 당신은 미국입니다!



이승복

아시아투데이 비서실 TFT팀장

본 협회 청년위원장, 편집위원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며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은 다 팽개치고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지금의 모습,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COVID-19 사태 초기에 발원지로 의심되는 중국발 입국 금지에 대한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안위를 위협하게 만든 작금에 이르러, 돌이켜보면 제한은 고사하고 오히려 곧 진정된다며 희망 백신만 강요한 지금의 방역 대책은 과연 누가 친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외교적인 이유인지 그 후 우리는 빗장을 풀고 다시 중국 항공기를 받아들였고, 우리 항공기는 오가는 데 중국 항공기는 발병을 이유로 어떠한 양해도 없이 일방으로 항공편을 취소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과연 그야말로 ‘오랜 친구지간인가?’라는 생각과 ‘아니, 친구라면서’라는 의문이 하염없이 교차한다.

 

굴종적인 관계가 과연 친구일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였다. 천년을 넘게 지속적으로 시달린 역사는 송두리째 잊은 채 머리 색이 같고, 예로부터 같은 문화권이라는 이유로 오래된 진정한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굴욕적인 경험으로 점철되는 지금에서야, 외교가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쌓여가고 있다

 

80, 90년대 초까지 반미를 외친 선동적인 구호의 뒤에는 과연 중국과의 역사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고 외친 것인지도 의문스럽고, 도무지 어떠한 판단도 하기 힘든 이 혼돈의 시대는 왜 생겼났는지 판단조차도 불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과연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일까?

1천 년의 역사 속에서의 과연 대등한 역사가 얼마나 되는지, 70년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이미 기울어진 저울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상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사실 한미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단언한다. 태어날 때부터 워낙 잘 살고 풍요롭게 살았으니 알리도 없거니와, 미국의 도움 아래 성장한 것은 할아버지 때 이야기이고 나는 모른다는 인식이 강하다.

 

결론은 우리가 너무도 빨리 잘 살게 되었고, 너무도 빨리 민주화되었고, 너무도 빨리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신분 전환이 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첫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근면 성실함으로 뭉쳐진 위대한 국민성과, 둘째는 미국이라는 큰 배경하에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은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천 년 동안의 침탈이 계속된 역사는 잊고, 오직 해방과 동시에 분단의 비극을 미국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선동적인 구호로 덮인 역사 인식은 진정한 친구라는 정의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진정한 친구는 그 친구가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박수치고 축하해주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토록 잘살고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 과연 어느 친구가 그나마 박수라도 쳐주고 있는지는 최근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 예전에 무엇을 해주었고, 구호 물품을 보내주었으며, 이러한 배경이 되었다는 식의 일들을 기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이 든다.

 

이제는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를 새로운 세대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맹목적인 친구라는 개념이 아닌 왜 이 친구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친구가 전달하는 말들이 얼마나 정의롭고 품격이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의 각인으로 진정한 좋은 친구의 의미를 새기게 만들어 줘야 한다.

 

한미동맹 70년!

이 또한 얼마나 오래된 친구인가. 흔히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래 만났다고 가까운 것이 아니고, 처음 봤다고 먼 것이 아님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70년이란 세월, 특히 코흘리며 힘들었던 친구를 부둥켜안고 일으켜 세워준 친구와의 70년의 우정이 과연 짧은 인연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코 흘리던 친구를 이용했다는 주장들 앞에서는, 그나마 그런 친구를 안아준 친구는 누구였냐고 되묻는 자신감도 있어야 한다.

 

70년간 켜켜이 쌓아온 친구와의 우정이 한순간에 베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잘라내어진 나무밑동의 나이테가 남아있음을 보면서 희망의 싹을 다시 틔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