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 눈치 보는 한미연합훈련, 전략적 입지만 좁아진다 - 안호원

북한 눈치 보는 한미연합훈련, 전략적 입지만 좁아진다

 


안 호 원

전 서울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언론방송인. 칼럼니스트. 시인

 

흔히 인생 70세를 고희(古稀)라고 부른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의 첫 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념으로 갈라진 남북한이 70년 가까이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은 드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전쟁의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에 가까웠을 뿐이다. 이른바 평화 체제가 정착돼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적극적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6.25 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이후, 과연 적극적 평화가 가능한지,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은 6.25 전쟁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1953년 정전 이후 지금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수많은 국지 도발을 감행하며 만행을 저질렀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그나마 우리 한국이 소극적 평화라도 유지 할 수 있던 것은 바로 1953년 10월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즉 한미동맹에 의한 대북 억제 덕분이었다.

 

한국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안보 부담을 덜고, 경제 발전에 매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스스로 강병(强兵)으로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의 ‘사고(意識)’다. 1968년 김일성은 과학원 개발팀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발”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6.25 전쟁이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했으니 앞으로 적화통일에 대비,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비춰진다. 그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핵·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돼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로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 위협하며 공격할 수 있게 됐다.

 

70년 전 6.25 전쟁 직전 당시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침략해오면 아침은 서울, 점심은 평양, 그리고 저녁은 서울에서 먹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북한이 200여 대의 탱크를 몰고 기습공격을 감행하면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그로 인해 3년 동안 온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당하고 무수한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전쟁의 상흔(傷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00년대 초 정권에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북한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들은 깨달았다. 그 시각이 틀렸고, 또 그 지원금이 어떤 식으로든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현 정권 4년이 지난 지금, 비핵화 협상은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고, 북한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엄청난 핵전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태다. 이 와중에 지난 2월 16일 강원도 고성에서 ‘군의 경계’가 또다시 뚫린 ‘헤엄 귀순’ 사건 때문에 국민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이가 없는 것은 북한 주민(?) 귀순자의 존재를 군이 인식한 것은 감시 장비가 귀순자를 여러 번 포착한 뒤라는 것이다. ‘물샐틈없는 경계 태세’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할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신년 초에도 국방부 장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확고한 국방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군을 믿고 안심해도 된다.”라고 장담했다.

 

국방부와 군이 매번 재발 방지를 공언하는데도 이 같은 유사 사례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지엽적인 생각이겠지만, 현 정권이 평화를 강조하고, 철책과 초소와 방호벽을 철거하는 등, 군대가 평화무드로 바뀌는 동시, 인권 문제까지 중시되면서 군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아닌지, 현 정권 실세들은 묘한 표현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데 능란한 듯하다. “한미관계를 ‘냉전 동맹’에서 ‘평화 동맹’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바로 그렇다. 언뜻 듣기엔 그럴 싸 한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치도록 섬뜩하다. 이 주장에는 그릇된 두 가지 주장이 배어있다. 첫째, 기존의 한. 미 동맹은 이념 대결로 얼룩진 냉전 시대의 유물로 청산되어야 하고, 둘째, 향후 양국관계는 군사 관계를 뺀 평화 추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거다. 이 같은 주장은 동맹의 본질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의도적 왜곡일 수도 있다.

 

68년간 이어져 온 한미동맹은 소중한 자산이다. 국가 간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통일문제를 포함해 한국 상황에 간섭해 왔다며 내정간섭이라는 진보세력의 말도 맞다. 그러나 차돌처럼 단단해야 할 한미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내모는 것은 우리 안보의 기틀을 무너뜨리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정부의 부총리급 예우를 받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올해에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단을 요구했다’ 고 말했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더 이상한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 한 번도 없던 일이 벌어졌다. 범여권 국회의원 35명이 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북측의 강경 대응을 유발한다’는 이유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도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연합훈련 취소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부 여성단체도 연합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올 초 북한 김정은이 당 대회를 통해 핵전력 및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단과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를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가 적대국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훈련을 하지 않고. 또 어느 국민의 대표가 공공연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남북대화 운운하며 훈련을 저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한미연합훈련만 하지 않으면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북핵이 폐기되며, 평화 공존이 되겠는가. 그렇게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그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다.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긴장을 우선으로 하라고 지적을 해야 할 인사들이 훈련을 하지 못 하게 하다니 우리 안보가 참으로 걱정되는 현실이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알면서도 애써 회피하는 불편한 진실은 남북평화의 장애는 연합훈련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핵무기만 포기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도 일사천리로 보장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증강을 계속했고, 이제는 미국 공격을 위한 핵 잠수함과 다탄두 미사일 등 전술핵무기까지 개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책임 있는 정부 여당이라면, 북한의 핵무장에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핵 개발 중지를 촉구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정부, 여당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난 3월에 실시한 한미연합훈련은 명칭도 없이 그냥 ‘연합연습’이고 훈련도 어떤 상황을 가정해 어떤 규모로 할 것인지 설명도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쳤다. 미 국방부 역시 특별한 설명 없이 한국군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훈련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그릇된 인식으로 한미동맹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양국의 입장차가 점점 드러나고 있고, 미국은 만일에 대비, 미일동맹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여 북핵에 대비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위협 또는 공격하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국내 정치가 그렇듯 국제관계도 살아있는 생물이다. 한미동맹도 상대적 국력 차가 주는데, 맞춰 조정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도 북핵 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을 맹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 시대에 한반도 안보 문제는 안정적‧긍정적 요인이 더 많아 보인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동맹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채 권한만 요구한다면,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 ‘무늬만 동맹’이라는 말이 더 이상 회자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특히나 국제사회엔 공짜란 있을 수 없다. 미국 정부와 밀착소통을 통해 대북정책에서 한미 간 원 팀 대응으로 지혜를 모아 불협화음을 줄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