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의 선택, 지정학적 위치가 아니라 제도다 - 김태기

한국의 선택, 지정학적 위치가 아니라 제도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본 협회 편집위원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부터 하고,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데 한국도 동참하라고 요구한다. 트럼프 행정부 때 취해왔던 문재인 정권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거부한 셈이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공개적으로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죽창가’로 들먹일 정도로 문 정권은 일본에 대해 반일감정을 부추겨 관제 좌파민족주의 논란을 만들었다. 반면, 문 대통령 자신은 중국을 방문해 ‘한국과 중국은 공동운명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과 통화에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문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한국을 낮추고 중국을 대국이라며 찬양해 사대주의와 모화사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시 주석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고, 6.25 참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6·25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향한 중대한 이정표’라고 했다. BTS가 ‘6.25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라고 하자 중국의 네티즌들은 공격했고 관영 언론은 이를 부추겼다.

 

중국이 한국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반면, 미국은 한국의 반미감정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물론 국제무대에서 한국 따돌림 전략으로 맞섰지만 미국은 조정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달랐다. 미국 국무부는 문 정권 인사들의 행보와 발언에 대해 ‘70년 역사의 한미동맹과 한미동맹이 성취한 것을 자랑한다.’, 중국의 6.25 발언에 대해 ‘6.25는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이다.’라며 공식적으로 반박했다. 이제 핵무장으로 강화된 북한의 위협에다 경제력으로 한국의 안보까지 위협하는 중국의 압박으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착각임이 분명해졌다. 관제 반일감정은 한국 스스로 일본과의 협력을 걷어차고 일본이 대만과 베트남 등과 협력을 강화하게 만들어 손해를 자초했다. 한국과 일본의 신뢰 상실은 양국의 무역 감소로, 일본의 한국 따돌림으로 경쟁국인 대만이나 베트남 등은 반사이익을 보고, 수출 한국의 위상은 흔들렸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장을 마치고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도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위협한다. 게다가 북한은 한국이 합의를 어겼다고 비판하고 문 대통령을 원색적인 단어로 공격한다. 한국은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안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안보만 위태로워진 게 아니라 경제도 그렇다. 중국은 진작부터 경제력을 안보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문 정권은 ‘경제는 중국’에 ‘북한과 평화경제’라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착각의 늪에 빠졌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항의조차 못 했고 중국의 한국 기술 빼가기로 주력 산업마저 흔들리는데도 모른 체했다. 문 정권의 오판은 한국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끌어올린 수출경제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문 정권 등장 이후 수출 규모는 줄었고 親中과 反日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총수출이 2019년 10.3% 감소할 때 중국으로의 수출은 16.0% 감소했다. 2020년 한국의 총수출이 7.2% 감소할 때 일본으로의 수출은 11.7% 감소했다.

 

한국의 수출이 2020년 감소할 때 베트남은 수출이 6.5% 증가했다. 금년 들어와 한국의 수출은 11% 정도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대만은 37%, 중국은 18% 증가했다. 2020년 한국이 경제성장률이 –1%로 후퇴할 때 이들 국가는 3% 성장했다. 수출 한국의 앞날도 어둡다.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에 매달려있지만 대만에 밀리고, 전기자동차와 2차 전지에 기대를 걸지만 이 또한 중국에 역전될 조짐이다. 한국의 수출은 대기업중심으로 반도체 등 몇 가지 품목이 주도하고 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이마저 흔들렸다. 2020년 수출은 대기업이 7.4%, 중견기업 4.1%, 중소기업 0.2% 감소했다. 하지만 수출중소기업은 영세하다.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은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를 넘기지 못한다. 또 중소기업의 수출 규모는 대기업 평균의 1/400 정도다(2019년 기준). 수출경제가 흔들린 이유는 국제관계에 대한 오판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실패에도 있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평화경제에 매달려 기업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 수출경제력을 떨어뜨렸다. 소득주도성장과 재정 확대로 내수경제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경기침체와 고용악화 그리고 소득 불평등이 커져 내수기반을 오히려 더 허약하게 만들었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주목을 받는 미국의 지정학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단합이 깨진 국가들(Disunited Nations)」(2020) 등에서 탈세계화 시대의 혼란스러운 국제질서와 한국에 대해 충격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한국은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면서 ‘중국과 손잡을지, 일본과 손잡을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서 ‘한국은 일본과 다시 손을 잡아야 한다.’라고 했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로 에너지 자급의 꿈을 이루면서 세계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고 주한미군의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한미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참 싸다’면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한국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한국의 수출경제모델은 2030년이 되면 작동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모두 외국에서 수입하고 그 규모가 세계에서 5번째로 크지만, 안전한 해상운송이 가능한 국제 안보 환경이 2020년대에 사라진다고 했다. 주한미군은 규모가 일본과 독일 다음으로 크고 위험성도 높지만, 한국이 안보 위험 속에서도 지구상 어떤 나라와도 교역을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한국은 반미감정이 넘치고 반면, 미국이 한국을 지킬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미국인들이 정파와 이념과 관계없이 미국의 글로벌 위치를 축소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간과하고 미군이 한국을 떠나게 스스로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자이한은 미국이 구축한 세계화 질서가 종말에 직면함에 따라 미국의 동맹은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빠 결국 국제사회에서 손을 떼게 되고 세계는 혼란과 무질서에 놓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중국도 추락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는 중상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유무역은 말뿐이고 결국에 중상주의로 중국의 성장도 멈추게 된다고 본다.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문제는 북한의 핵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을 포기하면 북한의 핵은 한국과 일본 및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지역 문제로 본다.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손을 놓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다른 나라의 경제제재를 받는다. 중국은 한국에 최대 교역국이지만 역사가 말해주듯이 중국의 자국 이익 확대는 한국을 빈곤하게 만든다. 이런 비극을 피하려면 한국은 산업구조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구조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수출경제가 한계에 왔다고 내수경제가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내수경제도 발전의 운동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과 협력하고, 경제이론과 지정학적 예측을 넘어서는 한국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정학적 관점의 자이한의 주장은 한국에 자극제는 되지만 중대한 허점이 있다. 국가가 놓여있는 지역이라는 불변의 외부 환경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성쇠와 국제협력은 지정학적 요소를 넘는다. 한국과 북한이 같은 위치에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이러한 문제는 이스라엘과 아랍, 북미와 남미 등의 대조적인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지정학적 위치보다 법과 정책 그리고 국민 의식 및 관행 등 제도의 차이가 나라의 성쇠와 국제협력에 결정적인 변수다. 민주주의제도와 자본주의제도를 따르는 나라가 부강하고 반면, 재산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제도와 경제 제도를 가진 나라는 가난하다. 정치제도와 경제 제도가 일체화해야 발전한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가 진영으로 분리된다.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선택한 반면, 공산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경제를 따르고 그 결과 전자가 후자보다 경제력이 우세하다. 제도는 동태적인 문제이자 내부적인 문제다. 외교·안보와 국제무역 등에 관련된 각국의 제도는 환경 변화와 그 인식에 따라 바뀐다. 제도에 따라 국민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한 결국 합리성을 찾아간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공산당에 장악된 중국과 신뢰를 쌓기 어렵다.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은 희망일 뿐 중국의 팽창에 따른 안보 불안만 커지고 반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나라인 미국에 대한 기대심리는 커진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서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적 갈등은 작지만 경제적 갈등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 한국은 이념 문제와 역사문제로 미국과 일본과의 갈등이 복합적이다. 한국은 정치 권력이 좌파의 수중에 들어가 이념과 역사 갈등이 커졌다. 좌파는 반미감정과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우파는 좌파의 친미와 친일의 프레임 공세에 밀려 한국 스스로 손해를 자초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국제관계도 협상력에 따라 갈등의 해결이 달라진다. 국제질서는 강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나머지 나라는 그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취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바넷 교수와 레이몬든 듀발 교수는 ‘국제정치에서의 힘’(2005)에서 국제관계에서 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군사력뿐 아니라 자원과 기술, 식량 등 경제력과 가치와 문화 등이 힘의 기반이다. 힘은 다른 나라와의 갈등에서 협상력을 의미하고 어떤 힘이 중요한지는 갈등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관계에서 갈등과 협상은 협력과 대립의 선택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갈등을 일으킬 요인은 줄이고 각각에 대해 협상력을 높일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신뢰는 국제협력과 경제교류를 활발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요소다.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신뢰가 약하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아론 호프만 교수는 협력과 대립의 선택은 힘뿐 아니라 힘이 올바르게 쓰이느냐에 대한 인식(perception) 즉 신뢰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신뢰는 상대국이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자 상대국과의 협력에 따른 위험을 받아들일 용의로 볼 수 있다. 자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국제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푸트남 교수(1984)나 피터 에반스 교수(1994)는 각각 국제협상이 외국과 국내를 동시에 상대하며 국내에 이익이 될 때 합의에 도달하고, 외교는 국제협상과 국내 정치의 결과라고 했다. 신뢰는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심리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대국과 자국의 행태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의 이론을 종합하면 한국은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외국에 대해서는 정파와 이념을 넘어 공감대를 모음으로써 다른 나라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제고해야 한다.

 

중상주의는 자국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시킨다. 갈등은 상시화하고 결국 두 나라 모두 손해를 본다. 중국이 중상주의를 추구하는 한 한국의 중국 편향 국제관계 전략은 한국 스스로 피폐화한다. 이러한 문제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1776)에서 일찍이 인근 국가궁핍화(beggar thy neighbour)이론으로 제기했다. 그의 이론은 자국의 경기침체와 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 보호정책이 타국의 경제를 악화시킨 역사적 경험으로 확인된다. 현재에도 독일과 스페인 등 남부유럽의 갈등처럼 유럽통합지역에도 발생하고 있다. 중상주의는 이웃을 가난하게 만들지만 자유무역주의는 비교우위에 따라 상호 무역을 함으로써 모두 이익을 본다.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중국판 세계화라는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중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의 반대에 부딪히자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쌍 순환 전략을 내놓았지만 본질은 중상주의다. 한국이 중국의 중상주의 전략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중국이 협력을 선택하면 한국도 협력을, 중국이 대립을 선택하면 대립을 선택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