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경제의 5영역과 정권 지탱력-유동열


북한경제의 5영역과 정권 지탱력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북한경제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서방세계와는 달 리 5개의 독립적인 경제영역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1경제는 ‘인민경제’(내각경제)라고 불리우는 통상적인 (국가) 경제영역이다. 북한에서는 내각이 경제계획과 관리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통상 인민 경제는 크게 인민경제비, 인민적 시책비, 군사비, 국가관리비 등으로 구성된다. 북한은 매년 초 개최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른바 국가예산을 채택한다. 그러나 총액 규모는 발표하지 않고 있어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한국은행이 추산한 2020년 북한 예산은 87.6억달러(9.6조원)이다. 

  제2경제는 군수(軍需) 경제이다. 핵, 미사일, 각종 무기 등 군사 장비의 계획·생산·분배 뿐만 아니라 자체 대외무역(외화벌이)까지 담당한다. 북한은 국무위원회 직속으로 이를 담당하는 ‘제2경제위 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황장엽 전 북한 당비서와 함께 2005 년부터 201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안가(安 家)에서 학습과 토론을 한 바 있다. 그 시간이 무려 500시간이 넘는다. 당시 제가 황장엽 선생께 ‘북한 제2경제’의 규모에 대해 물어보니 인민경제를 능가한다고 답한바 있다. 내각에서 운영하는 예산보다 국방비에 엄청난 자원을 배분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북한은 제2경제와는 별도로 인민경제 예산에 군사비 항목을 두고 있는데, 올 1월에 개최된 제14기 4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전체 예산 중 국방부문 예산이 15.9%라고 밝힌 바 있다. 제2경제의 개념을 모르는 학자들은 이를 국방비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이는 제2경제 예산과는 별도로 군정(군행정) 예산이라고 보면 된다. 

  제3경제는 수령경제이다. 수령절대주의 폭압사회인 북한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경제영역이다. 수령경제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운영하는 영역이다. 김정은 일가의 각종 호화사치품을 구매하고 수십 억 달러의 비자금을 스위스 등 서방은행에 은닉시켜 놓고 있다. 이는 김정은 서기실과 당 38호실에서 관장하고 있다. 내각과는 별도의 경제단위(공장, 농 장, 수산, 금융, 무역 등)를 운영하며 독자적으로 외화벌이를 하고, 각 기관의 외화벌이 부서로부터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상납받고 있다. 김정은의 개인 금고라고 보면 된다. 수령경제에 북한 내 자원을 최우선적으로 공급, 사용하다 보니 인민경제 등과 충 돌할 수 밖에 없으나 이에 맞설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수령경제가 북한의 경제난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제4경제는 당(조선노동당) 경제이다. 당 재정경 리부에서 인민경제의 지침을 하달하고 당자금을 운용하는 경제영역인데 조달은 당 39호실에 한다. 당 운용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고 관리한다. 

  제5경제는 이른바 장마당 경제이다. 여기는 시장이 지배하는 경제영역 즉 자본주의 경제영역이다.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사회주의 중앙배급시스템이 붕괴되고 다수의 아사자(餓死者) 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그동안 10일장 형식으로 당국의 묵인 하에 운영되던 군소 장마당을 ‘농민시장’ 형태로 상설시장화 하였다. 이것이 바로 2003년 3월 내각조치 제245호에 의해 합법화 한 종합시장이다. 종합시장은 당국이 공식 허용한 시장이나 아직도 북한전역에는 비공식적 장마당이 확산된 상태이다. 현재 북한 전역에 500여개 종합 시장과 암시장, 야시장, 메뚜기 시장 등의 비공식적 장마당이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김정일정권은 장마당이 북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0% 내로 관리해왔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경제의 기본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라고 판 단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20% 정 도까지 확대하였다. 이를 놓고 대다수 학자들은 장마당에서 자본주의 즉 시장을 학습한 북한주민의 요구가 거세 확대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중앙배급제가 20% 정도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80%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현실에 주목 하였다. 아예 장마당을 확대시켜 정권부담을 덜고 주민불만의 해소책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장 통제력에 대한 김정은의 자신감이 내재되어 있다. 즉 장마당이 사회주의 경제구조를 위협한 다고 판단되면 말 한마디에 장마당을 폐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실제 김정은 지시로 수차례 장 마당을 부분 폐쇄하여 시장통제력이 먹히는지 확인한 바 있다. 브레이크 없이 자본주의 영역이 늘어간 다면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기본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2020년부터 각종 회의때 단골로 반(反)사회주의, 비(非)사회주의 풍조와의 전면 투쟁을 강조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북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추정해보면,  인민경제 25%, 제2경제 25%, 수령경제 20%, 당경제 10%, 장마당경제 20% 등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으로 가장 어려운 영역은 인민경제이다. 북한경제에서 주민들을 위해 제일 집중되어야 할 인민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자원배분에서 최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수령경제와 그 다음 제2경제 영역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보니 북한주민들의 의존도가 높은 경제영역이 바로 장마당 경제이다. 일부 학자들이 북한전체 GDP(국내총생산)의 70%를 장마당이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북한경제의 영역을 인민경제 와 장마당경제에만 국한시킨 무지의 소치이다. 


북한경제의 3중고(三重苦) 

  올 1월 5일 개막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1.5- 12)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일찍이 있어본 적 없는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은 우리 혁명의 전진에 커다란 장애를 몰아왔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이란 ① 지속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② 코로나19 ③ 자연재해(태풍, 홍수해) 등으로 인한 가중된 경제난(難)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른바 3중고로 인한 경제난의 타개책으로 ‘자력갱생(自力更生)과 자립적 민족경제노선’ 을 채택하였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 지속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력갱생 노선만 가지고 장기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북한이 위기 국면 때마다 내세우는 ‘고난의 행군’이 라는 구호를 떠올린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 노동신문은 작년 말 까지 무려 80여 건의 기사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였다. 대표적인 보도가 2019년 4월 20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란 노동신문 정론이다. 향후 ‘제3차 고난의 행군’ 시기가 곧 도래할 전망이다. 

  북한의 지속적이며 만성적인 경제 위기심화는 곧 정권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김정은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채택하고 주민불만을 잠재우려 하지만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살길은? 

  김정은이 대북제재 등 3중고로 인한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살길은 조속한 북핵 폐기와 개혁개방 이다. 그러나 이를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핵은 김정은이 언급했듯이 ‘만능의 보검’이자 김정은 체제 유지의 핵심 카드인데 이를 포기할 수 없을 것 이다. 또한 본질적 개혁이란 수령절대주의 폭압체제를 민주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며, 개방이란 사회 주의 폐쇄경제체제를 시장경제화하는 것인데 이를 김정은이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채택한 경제위기 돌파 카드는 자력갱생과 함께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인데 이는 단기적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난을 심화시킬 뿐이다. 북한경제 위기 의 주원인은 사회주의경제의 구조적 모순(낮은 생산력)에서 비롯되며 비정상적 경제영역(제1경제-제 5경제) 운용이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 경제난 돌파책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우호 관계 강화 및 지속적인 경제 지원 확보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도 단기적으로 식량난 등을 해소할 수는 있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믿는 최후의 유용한 카드는 경제난 돌파를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정치 군사적 카드라고 판단된다. 즉 (위장)평화와 민족공조에 환호하는 문재인 정권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자칭 평화세력들을 부추겨 경제지원을 극대화하고 이도 저도 안될 때에는 무력적화통일의 위협 공세를 강화하는 것일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제고시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어내고 최후에는 우리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켜 적화혁명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일 것이다. 이에 대한 냉철한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