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자주국방 - 박휘락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자주국방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체결(2020. 2. 29)한 지 18개월, 바이든 행정부가 철군을 개시한 지 3개월, 핵심 거점인 바그람(Bagram) 기지에서 미군 주력이 철군한지 1개월 남짓 만에 기존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되고,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정권의 교체에 불과하겠지만, 일부 아프간 국민들에게는 생사(生死)의 위기이다. 세계의 이목 때문에 자제하고 있지만, 곧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에서 일하였거나, 미군에게 협력했거나, 자신들과 이념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에게 엄청난 보복을 가할 것이다. 그 것이 두려워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보면서 한국은 유사한 사태가 한국에서도 발생할까봐 자주국방 노력을 한층 강화했다. 한미동맹과 총력 안보태세도 강화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잔혹한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아프간 사태의 경우 우리 정부는 교훈을 도출하기는 커녕 “한국은 아프가니스탄과 달라!” “주한미군은 절대 철수하지 않을 거야!”라면서 마음의 위안만 찾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교훈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필사적인 탈출 노력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우려를 떠올리지 않았을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흥남철수작전 등 6·25 전쟁 당시의 피난 행렬이 기억났을 것이고, 3면이 바다라서 우리는 탈출조차 할 수 없을텐데…라며 걱정했을 것이다. 

  이륙하는 미군 수송기를 따라가는 아프간 국민들의 모습,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 미군 수송기에 짐짝처럼 앉아서 그나마 안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보(安保)”의 소중함을 깨닫지 않았다면 그는 책임 있는 국민이 아니다. 

  국민들은 또한 자기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국가는 외국이 도울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은 2,000조원 정도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사용했고,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200조원 정도의 돈을 지원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비겁한 도주에서 보듯이 정부는 무능(無能)했고, 군대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었다. 바이든(Joe Biden) 대통령도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국가를 도와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외국과의 동맹(同盟)이나 안보협력 (安保協力)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동맹의 약속보다 자신의 국익(國益)을 더욱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제쳐놓은채 탈레반과 직접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그에 따라 미군을 철수시켰다. 아프간 국민들이 미국을 원망해봐야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알지 못한 어리석음만 광고할 뿐이다. 국제사회는 원래 그러한 곳이다.


아프간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은 당연히 안보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친구가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면 병원에 가서 종합진단을 받아 보고, 이웃집에 강도가 들면 우리집 울타리를 살펴 보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다르다고 강변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국의 군인들도 저렇게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고, 한국의 정치인도 도망가기에 바쁠 수 있으며, 미국이 한국도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국가의 자주국방(自主國 防) 의식과 불굴의 항전(抗戰) 의지가 필수적인데, 우리 모두 자문해보자. 지금 우리는 북핵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는가? 

  정부는 ‘외교적 비핵화’라는 허망한 목표를 세워둔 채 북핵을 회피하고 있고, 군대는 홍길동처럼 북핵을 언급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미국이 우리를 대신하여 북핵을 없애주고, 유사시 핵우산으로 우리를 지켜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것 아닌가? 120만이 되는 북한군을 상대해야 한다면서 군대를 감축하고 있고, 훈련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으며, 군대의 군기, 사기, 단결도 돌보지 않는 것 아닌가?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자주국방 노력을 강화하는 대신에 미국의 한국 포기 여부를 두고 논쟁하거나 미국 인사들의 공약 준수 약속을 들은 후 안도하는 것도 한국에서의 아프간 사태 재연 가능성을 걱정하게 만든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장관의 구두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대비를 해야지, 어찌 미국 철수는 없다고 장담하면서 태평인가? 나중에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겠다거나 철수해야겠다고 결정하면 책임질 수 있는가? 울면서 미국을 원망할 것인가?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고? 

  미군이 철수한 후 탈레반 군대가 파죽지세로 승리하자 일부 정치인들은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처럼 되지 않으려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부분 국민들은 흘려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문제를 연구해온 필자는 그 무지함과 무책임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간 군대는 독자적인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군과의 긴밀한 작전 협조체제를 구축 하지 못해서 저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범한 실수 중 하 나는 아프간 군대와의 지휘통일(unity of command: 한 사람의 지휘관이 지휘하는 상태)을 이룩하지 못한 채 ‘따로 군사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작전통제권을 통합하지 않아서 지휘의 이원화(二元化)를 초래한 것이다. 아프간 군대의 작전통제권은 아프가니스탄이 가지고 있었고, 미군은 미군 작전만 통제 했다. 당연히 군사작전에서 목표나 계획을 상호 조정하지 못했고, 그래서 현재와 같은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통합적으로 행사하여 축차적인 방어나 지연전을 전개하였다면 지금처럼 급속하게 붕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사한 경험을 우리는 6·25전쟁에서 겪기도 했다. 미군이 참전하기 전 한국군은 독자적 군사작전을 전개했고, 그 결과 이번 아프간군처럼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붕괴되어 낙동강까지 밀렸다. 맥아더(Douglas MacAthur) 장군이 한미 양국군을 통합적으로 통제하자 낙동강 방어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고, 우리는 생존하였다. 남베트남도 미군과의 통합작전을 거부하다가 역사처럼 무참하게 붕괴되었다. 아프간 사태의 교훈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재고하라는 것인데, 여당의 정치인들이 그 반대로 해석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일부 인사들은 작전통제권 환수를 “군사주권의 회복”이라면서 선동하지만, 작전통제권은 다수 국가의 군사작전을 하나의 목표로 통합하기 위한 편의일 뿐이다. 대부대나 다수 국가의 군대일수록 ‘따로 군사작전’이 되어서는 패배하기 때문이다. 연합 작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하여 하나의 최고사령부를 구성하고, 그 사령관에게 군사작전을 시행하는 통합 목표와 계획을 조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작전통제권이다. 당연히 인사(人事), 군수(軍需), 사법 (司法), 군기(軍紀) 등 주권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지휘한다고 우리 축구팀이 네덜란드 대표팀이 되지 않듯이 미군 대장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하여 우리 군대가 미국 군대 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군사주권 운운은 일부 지식인 들이 반미(反美) 사조를 자극하여 표를 획득하고자 왜곡시키는 주장일 뿐이다. 


자주국방에 대한 교훈 

  자주국방은 자력 국방이 아니다. 따라서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동맹과 자주국방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우리 군도 재래식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지만, 북핵 위협은 미국의 핵우산 없이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을 보유하고 있고, 핵잠수함(SSBN)도 건조 중에 있다. 미국이 핵 무기로 응징보복 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ICBM 또는 SSBN에 탑재된 SLBM으로 미 본토의 도시를 공격 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고, 따라서 한미 양국 군사력의 통합적 운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근간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그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한미 양국 정부는 물론이고 양국 군에 존재하는 다양한 협의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 및 강화하고, 양국 군 간의 연합작전체제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당연히 연합훈련을 강화 및 확대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 군대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어야 한다. 군대의 무기나 장비보다 군기, 사기, 단결을 중요시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정신적으로 무장되지 않는 군대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 문이다. 우리 군대를 철저히 훈련시키고, 임전무퇴 (臨戰無退)의 정신을 길러주며, 불굴의 용기를 갖도록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핵 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 지도자의 솔선수범(率先垂範)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드러났듯이 그것이 없으면 군인들도 국민들도 나라를 위하여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지도자를 뽑을 때 인기보다는 능력, 능력보다는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더욱 중요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지도자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정치지도자인지 점검하고,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그렇다면 국가안보의 모든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한다. 아프간 정 부와 군대의 문제가 심각하지만, 더욱 큰 틀로 보면 아프간 국민들의 안보 의식이 미흡하여 아프가니스탄이 패망한 것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국가와 국가 안보의 주인이라는 인식하에 정부와 군대에게 자주 국방과 한미동맹 강화를 주문하고, 감상적인 통일론이나 대북관을 배척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그러한 것 같지 않으니…. 걱정일 뿐이다.